D+193일 / 맑음 ・ 25도
토르트쿠두크-투르가이
연일 이어지는 바람이다. 아스타나를 향해서 달려간다.

이동거리
107Km
누적거리
13,046Km
이동시간
8시간 15분
누적시간
942시간

P4
P4
67Km / 5시간 45분
40Km / 2시간 30분
도르트쿠
에르에이
투르가이
 
 
870Km

・국가정보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러시아어, 텡게(1텡게=3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무제한, 9,000원
・전력전압
◦2구220
・비자정보
무사증3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7-705-757-9922

 

환해진 텐트, 시계를 12시가 넘었는데 피곤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

"뭐지? 이 피곤함은?"

일어나지 못하고 하루를 쉴 생각으로 다시 잠이 든다.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를 했는지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계속되고, 말이나 소가 화물차에서 움직이는 소리에 다시 잠에서 깬다.

2시가 넘어가는데 텐트 안은 생각보다 환하지 않고, 여전히 몸이 무겁다.

"그늘이 졌나? 날이 안 좋은가? 근데 왜 이렇게 힘들지?"

소변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하늘이 까맣다.

"뭐야? 새벽이잖아!"

잠결에 시계를 확인하며 정오가 넘은 시간으로 착각을 했다. 정류장에는 몇 대의 차량이 정차를 하고 잠을 자거나 차량을 점검하고 있다.

"몸이 이상한 게 아니라 다행이네."

다시 쉽게 잠들지 못하고 조금 뒤척이다 잠이 든다.

7시가 조금 넘어 일어나니 여전히 불어오는 바람으로 쌀쌀한 느낌이다. 며칠 전 세메이에서 39도를 넘나들던 날씨가 어느새 10도 가까이 떨어지고 아침 기온은 12도밖에 되질 않는다.

"올해 여름은 이것으로 끝인가 보다."

빵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펑크가 났던 뒷바퀴의 튜브를 예비 튜브로 교체한다.

"타이어를 교체할 때까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9시, 패니어를 정리하고 출발하려는데 뒷바퀴가 주저앉아 있다. 정비해 두었던 예비튜브의 펑크패치가 제대로 붙지 않은 모양이다.

펑크가 난 튜브를 다시 꺼내어 펑크패치를 붙이고, 맞바람이 불어오는 도로를 따라 무거운 페달링을 해간다.

평속 8km 정도의 속도, 오늘도 꽤나 힘든 하루가 될 것 같다.

"에쉬, 오늘도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오늘의 목적지는 100km 정도 떨어진 투르가이, 어제 타지 못한 20km 정도의 거리 때문에 투르가이까지 가더라도 아스타나까지 의 거리가 120km아 남는다.

"오늘은 100km를 갈 수 있으려나?"

한 시간이 넘도록 달렸지만 고작 10km만을 이동하고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간다.

"아무래도 저 산을 넘어가는 모양이네."

"초원에 구름이 많은 날은 이제 무섭다."

어렵사리 첫 번째 산을 넘으며 바람의 방향이 극적으로 바뀌기를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리 없고, 오히려 더 강한 바람이 정면에서 불어온다.

"답이 없다. 없어!"

세 시간이 지나 어제의 목적지였던 아크몰라의 주경계에 도착한다.

출출함과 함께 몸이 무거워지던 참이었는데 다행히 주경계에 작은 식당이 하나 들어서 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식당에서 난감한 메뉴 결정의 토론을 해야 한다.

"어떤 것을 먹어야 하나요? 추천을."

번역기로 해결을 해보려 해도 네트워크가 좋질 않아 사용할 수도 없고, 전에 먹었던 닭고기 바베큐 사진을 보여주니 그런 메뉴는 없다고 하고, 어제 식당에서 먹었던 고기국수 사진을 보여주니 메뉴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거 주세요! 국수."

주문을 받고 주방으로 들어가는 아주머니를 붙잡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닭다리 구이 사진을 보여주니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진짜? 그럼 이것도 하나 줘요."

어제의 식당보다 정결하게 담긴 국수는 넓고 얇은 면의 색깔이 뽀얗게 이쁘고 국물도 시원하니 딱 좋다.

주유소 옆의 음식점보다 100텡게가 비싼 500텡게의 닭다리는 주유소 식당보다는 못하다.

개운한 국물의 고기국수를 먹는 동안 하나둘씩 손님들이 들어오고 나를 보며 인사를 한다.

"잠깐, 저건 밥인데!"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한 음식을 서빙하는 쟁반 위에 볶음밥 같은 것이 있다.

"투르가이까지 아무것도 없은데 든든하게 먹고 가자."

밥을 먹고 있는 손님을 가리키며 메뉴를 묻고 추가 주문을 하니 아주머니가 피식 웃는다.

몽골에서 먹었던 양고기 볶음밥과 비슷한 맛인데 잡내가 거의 없다. 깨끗하게 음식들을 비우고 사람들의 질문에 야간의 대화를 나눈 후 오후 라이딩을 시작한다.

1시가 넘은 시각, 투르가이까지 76km가 남았고 바람은 여전히 끔찍한 맞바람이다.

어제 만난 새 도로에서부터 세워져있던 이정표의 거리는 아스타나까지의 거리를 알려주는 것 같다.

"오늘 대충 130 정도까지 가면 끝인가."

"아고, 언제 다 가냐."

구름의 높이가 조금 다를 뿐 몽골의 풍경과 너무나 흡사하다.

"몰라. 놀면서 갈 거야."

"에잇, 신발!"

"넌 뭐, 무임승차냐?"

평평했던 도로는 작은 언덕들을 넘어가며 업다운을 반복하더니 오늘의 두 번째 산을 향해 곡선을 그리고 있다.

앞 기어를 떨어뜨리고 천천히 산을 오른다. 바람만 없다면 힘들 것도 없는 높이와 거리이지만 2~3km 정도의 거리가 한없이 길게 느껴진다.

두 번째 산을 넘고 주변의 풍경은 조금씩 달라진다. 지평선의 끝으로 산들의 모습이 조금씩 나타나고 길게 이어지는 도로는 산들을 향해 업다운을 반복한다.

"하, 정말 지독하게 괴롭히는구나."

긴 오르막의 끝에서 차를 정차하고 기다리고 있는 커플을 만넌다. 쾌활한 성격의 여자와 무뚝뚝한 남자는  왠지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영어를 잘 하는 여자와 짧게 대화를 하는 동안 'Your Crazy'만을 반복하며 고개를 절로 흔들어대는 남자.

몇 장의 사진을 함께 찍는 동안 아스타나에 도착하면 시내를 구경시켜 주겠다는 여자와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진다.

빵과 함께 작은 사과를 챙겨주며 길게 여행에 대한 응원을 해주고 떠난다.

30여 분 정도를 더 이동하고 도로변의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간다. 하루 종일 괴롭히고 있는 바람이 저녁이 되어가며 조금 선선해지니 상쾌하게 느껴진다.

조금 전 남녀 커플이 챙겨준 빵과 사과로 출출함을 달래보고.

늘 그렇듯 사람들과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카자흐스탄으로 와서 정말 많은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각자의 핸드폰으로 번갈아 가며 찍던 전과 달리 나는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을 포기한지 오래다. 대신 명함을 주고 인스타그램이나 왓츠앱으로 메시지가 오면 사진을 보내달라 부탁하고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오늘은 어디에서 마무리를 할까? 30km 정도 남았는데."

긴 오르막을 오르고 6시가 넘어가자 바람이 점차 사그라든다.

"달려!"

언더바를 잡고 분노의 질주를 시작한다.

적당히 사라진 더위와 평평해진 도로 그리고 땀을 식혀주는 미풍의 간지러움을 느끼며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순식간에 20km가 사라지고.

토르가이로 들어가는 교차로에 도착한다.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와 마을의 외곽을 돌아가는 도로의 갈림길.

이정표를 바라보면 짧은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친다.

"이젠, 어느 쪽이든 상관없잖아."

길을 잘못 들어섰다 해도 지나쳐버린 길을 되돌아갈 수도, 되돌아갈 필요도 없다.

앞으로 가야 하고, 갈 수 있고, 가고 싶은 길이 더 많으니까.

어느 쪽을 선택하든 펼쳐진 길 위에서 진심을 다해 현재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

"현재를 살아간다."

10km 정도를 달려 갈라졌던 도로는 다시 만난다.

도로변의 휴게소에 작은 음식점이 보이고.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해 한 시간 정도를 더 가고 싶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아스타나까지 123km 정도가 남았다.

카페 앞에서 숨을 돌리는 동안 사람들이 인사를 하고.

"밥이 있나요?"

전에 먹었던 볶음밥 사진을 보여줘도 없다는 응답을 한다.

"추천! 맛있는 것을 추천해 줘요!"

"마른!"

1,200텡게의 메뉴를 카자흐스탄 음식이라며 소개를 해준다.

"다른 것들보다 비싸네. 뭐지? 오케이! 주세요."

잠시 후 주방에서 나온 중년의 여자가 카운터의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내게 뭔가를 진지하게 묻는다.

"말고기인데 괜찮아?"

"말고기야? 말고기를 여기서 먹어볼 수 있네. 오케이!"

음식이 나오는 동안 식당의 주변에 텐트를 칠 수 있는지 묻고 허락을 받는다.

넓은 밀가루 면 위에 말고기의 수육이 올려져 있고, 말의 사골 국물이 한 그릇 담겨 나온다.

"말고기다!"

부드러운 면과 함께 수육을 함께 먹으니 아주 맛이 좋다.

"소와 비슷한데 뭔가가 다르네."

식사를 하은 동안 앞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계속해서 번역기를 들고 뭔가를 설명하며 웃는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야. 최고지."

옆을 보니 함께 온 사람은 밥으로 된 음식을 먹고 있다.

"밥 메뉴는 없다고 하더니."

아침에 먹으려고 남자의 메뉴를 핸드폰으로 찍고 있으니 번역기를 사용하던 남자가 손사래를 친다.

"이건 나쁜 음식이야. 이걸 먹으면 배 아파. 베쉬바르막을 먹어야지."

Бешбармак, 말고기를 베쉬바르막이라고 부르나 보다.

남자의 일행과 즐겁게 떠들고 그의 아이들과 사진을 찍는다.

알리나의 가족, 6명의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을 갖은 남자는 텐트를 치는 동안 가스 버너를 가져와 커피를 끓여주겠다고 한다.

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 커피를 마실 수 있는지 물었을 때, 식당에서 타는 커피는 짜다는 이상한 설명을 들어 포기한 것이 마음에 쓰였나 보다.

알리나의 아빠는 떠나며 음식이 가득 담긴 상자를 놓고 웃으며 가버린다.

"아니, 이거 너무 많아요."

아무래도 카자흐스탄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인사나 가격을 묻는 질문보다 정중하게 사양을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깊이 잠이 든다.

"아스타나로 가자."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176일 / 맑음 ・ 24도
바르나울
바르나울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는 하루, 시내를 둘러보고 보드엘에 들러 자전거를 정비 해야겠다.


이동거리
17Km
누적거리
11,844Km
이동시간
2시간 52분
누적시간
855시간

시내구경
나탈리아의집
12Km / 2시간 16분
5Km / 36분
숙소
보드엘
숙소
 
 
938Km

・국가정보
러시아, 모스크바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러시아어, 루블(1루블=18.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무제한, 8,000원
・전력전압
◦2구220
・비자정보
무사증60일/180일내 최대 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7(495)783-2727

 

어제 새벽 늦게 잠든 탓에 세상모르게 잠들었다. 묵직함이 느껴지는 컨디션이다.

"아고, 어린 녀석을 따라다니려니 힘드네."

잠시, 쑤니터우기에 있는 파박님과 영상 통화를 하며 오랜만에 지아오강강의 얼굴을 보고, 파박님은 오늘 얼롄하오터로 들어간다고 한다.

시내를 둘러보고 어제 만난 보드엘에 놀러 갈 생각이다.

숙소의 아저씨는 퇴근을 하고 예쁜 크리스티나가 숙소를 지키고 있다. 숙박을 연장하고 짐들을 잘 보관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건 뭐니?"

밤새 주저앉아 있는 타이어, 튜브를 교체하기도 귀찮고 해서 펌프로 바람을 넣은 후 시내 구경을 나간다.

"여기는 기차역인가?"

숙소 근처 전쟁공원의 뒤편으로 바르나울의 기차역이 있다.

"가깝네. 월터가 떠날 때 배웅을 나와야겠다."

잠시 기차역을 구경하는 사이 타이어의 바람은 모두 빠져버린다. 펑크 패치를 붙인 곳에서 조금씩 빠지던 바람이 아닌 것 같다.

"펑크가 새로 났나 보네. 이번에 튜브를 교체해야겠다."

자전거를 끌고 레닌 광장 방향을 걸어가며 시내 풍경을 구경한다.

예쁜 길거리 카페들이 영업을 준비하고 거리는 한산하다. 그리고 모기나 하루살이 같은 것들이 아주 많아 귀찮게 만든다.

레닌 광장에 도착하고.

레닌의 동상의 뒤로 관공서들이 들어서 있고, 광장의 건너편은 전쟁 박물관이 있는 분수 공원이 있다.

귀찮지만 펌프를 꺼내어 바람을 넣고 큰 길을 따라 오비강의 방향으로 내려간다.

대학교 같은 건물들이 계속 들어서 있고.

공사 중인 도로 사이로 러시아 정교회가 보인다.

붉은 벽돌의 오래된 교회, Nikol'skiy Khram.

교회 안에서는 부드러운 찬송가 소리가 작은 울림으로 퍼지고, 몇몇의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계속해서 오비강의 방향으로 길을 따라가며 바람이 빠지는 타이어에 연신 펌프질을 한다.

"아무래도 먼저 자전거 가게로 가야겠다."

도로 중앙의 산책로를 따라 레닌의 동상과 러시아 정교회의 구조물들이 세워져 있다.

"아, 귀찮아. 자전거 가게부터 가자."

인스타그램에 적혀있는 가게를 찾아 시내를 가로질러 간다.

게스트하우스 이즈바에서 멀지 않은 곳의 도로변에 보드엘의 간판이 보인다.

"문이 닫혔나?"

"나 가게에 왔어. 어디야?"

"오, 15분 정도 후에 도착할 것 같아. 기다려 줄래?"

슈퍼에 들러 시원한 콜라를 사서 마시고.

러시아의 모든 가게에서는 현금을 계산할 때 노란색의 받침대 같은 것을 사용한다. 동전이 많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손과 손이 접촉하는 것이 싫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습관적으로 돈을 주려고 하면 받침대에 놓으라고 한다. 중국이나 몽골처럼 돈을 테이블 위로 아무렇게나 던지는 것보다는 좋기는 한데. 하여튼 재미있다.

배가 출출하여 주변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오호, 여기 주문 시스템은.."

배식 장소에서 메뉴를 고르고 저울에 무게를 단 후 계산을 하면 된다.

샐러드와 마카로니 그리고 얇은 돼지고기로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는 동안 자전거 가게가 열리고 보드엘은 보드와 자전거 렌탈을 하는 정비 샵이다.

로만, 26살의 멋진 친구고 예쁜 여자친구가 있다.

자전거 펑크를 수리한 로만은 이곳저곳을 살피더니 중국에서부터 흔들리던 리어 허브를 정비해 주겠다고 한다.

웬만하면 분해를 해서 정비하는 것보다 그냥 부서질 때까지 타고 교체를 하려고 했는데, 그의 손놀림이 능숙하다.

허브를 분해하고 베어링들을 빼내어 다시 그리스 작업을 한다. 고급형 엠티비보다 중저가용 레포츠형 자전거를 많이 정비하다 보니 저가형 허브를 정비하는 것이 익숙해 보인다.

기름때와 상관없이 거침없이 자전거를 만지는 모양이 마음에 들지만 작업의 수고스러움을 알기에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작업을 마치고 로만은 밀크커피까지 대접을 해준다.

겨울엔 보드, 여름엔 자전거와 롱보드를 하는 보드엘.

나이는 어리고 가게는 볼품이 없을지는 몰라도 로만은 자부심을 갖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로만은 부자네. 꿈이 있고 삶에 자긍심이 있으니 그리고 예쁜 여자친구까지."

"로만 고마워. 네가 정비를 해줘서 아프리카까지 잘 갈 수 있을 것 같아."

정비된 자전거를 타고 레닌 광장을 돌아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에서 자료들을 정리하는 동안 월터에게서 메시지가 온다.

"사비, 호스트와 함께 저녁을 먹고 맥주 마실래?"

"좋아. 내가 그곳으로 갈게."

자전거를 타고 월터의 호스트 집을 찾아간다. 숙소에서 5km 정도 떨어진 곳의 오래된 아파트에는 모기가 굉장히 많다.

"월터, 나 왔어."

"사비, 오늘의 메뉴는 치킨과 감자야."

호스트 나탈리아와 함께 슈퍼에서 생닭과 감자 그리고 맥주를 산다.

나탈리아가 감자를 슈퍼에 놓고 오는 바람에 다시 슈퍼에 들러 감자를 사 오고.

월터와 각자의 맥주 한 병씩을 마시며 이야기를 한다.

"나탈리아는 술 안 마셔?"

"글쎄, 그녀는 술도 안 마시고, 음식도 잘 안 먹어."

"왜?"

"잘 모르겠어."

월터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탈리아는 방 안에서 무언가를 하는지 나오지를 않는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 그녀다.

1971년에 지어졌다는 그녀의 아파트는 20대 초중반 젊은 여자의 집처럼 보이질 않고, 좁고 낡은 외향적 모습보다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녀는 왜 카우치서핑을 하며 낯선 이방인과의 만남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비닐봉지에 닭과 소스를 넣고 오븐에 구운 닭고기가 준비된다.

"맛있네. 나탈리아, 한국인은 1일 1닭이야!"

나와 월터가 정신없이 닭을 해체하며 식사를 하는 동안 나탈리아는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사비, 맥주 한 잔 더 할까?"

슈퍼에서 사온 세 병의 맥주를 모두 마시고 월터는 맥주 가게에서 1리터의 맥주를 사 오자고 한다.

맥주를 사 오고 나탈리아에게 차를 타주며 함께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월터, 사람들이 나이를 물어보면 몇 살이라고 할까? 44는 너무 많잖아."

"맞아. 나탈리아, 사비가 몇 살처럼 보여?"

"29 정도."

"그럼, 32 정도라고 해."

"싫어. 30이라고 할래!"

"월터, 너 밥 로스 같잖아!"

설거지를 해주고 바르나울의 밤거리를 달려 숙소로 돌아온다.

"피곤하다. 자자."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175일 / 맑음
고르데예브스키-바르나울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가기 위해 지나쳐야 하는 도시 바르나울로 들어간다. 카자흐스탄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노보시비르스크로 갈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한다.


이동거리
91Km
누적거리
11,827Km
이동시간
5시간 02분
누적시간
852시간

 
P256도로
 
P256도로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고르데예
 
폴코브니
 
바르나울
 
 
921Km
 
 

・국가정보 
러시아, 모스크바
・여행경보 
-
・언어/통화 
러시아어, 루블(1루블=18.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0기가, 7,000원
・전력전압 
◦2구220
・비자정보 
무사증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7(495)783-2727

 
새벽까지 잠을 못 잔 탓에 피곤한 아침이다.

아침 이슬이 내려앉아 텐트가 젖어있고, 간밤에 피난을 왔던 마르코 커플은 아침 일찍 일어나 있다.

"하이."

강가를 잠시 산책하는 동안 월터도 잠에서 깨어난다.

"사비, 바르나울 호스트의 집으로 갈 거야?"

"아니, 게스트하우스에서 쉬고 싶어. 호스트의 집이 좋은데 편하지가 않아. 영어도 피곤하고."

"응. 여기 좋은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350루블."


월터가 마르코 커플과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의 정보와 현금을 교환하는 동안 빠르게 짐들을 정리한다.

"사비가 지금 담배가 필요해. 우리는 이제 가야 해."

마르코 커플과 헤어지고 슈퍼를 찾아 마을로 들어간다.

흙길과 비포장 길이 이어지는 시골의 작은 마을이다.

동네의 작은 슈퍼에서 콜라와 요거트를 고르는 사이 월터는 조용히 빵과 과일 같은 것을 산다.

작은 요거트에 월터의 시리얼을 넣어, 빵과 함께 아침을 해결한다. 슈퍼 앞에 앉아 아침을 먹는 동안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친절하게 말을 걸며 인사를 한다.

11시 반이 넘어 바르나울을 향해 출발한다.

작은 마을을 빠져나와.

다시 P256 도로에 접어들고 내가 선두에 서서 길을 이끈다.

한 시간이 지나고 업다운이 반복되며 다시 월터가 길을 이끈다.

계속 이어지는 메밀밭을 배경으로 빠르게 거리가 줄어들고.

바르나울까지의 거리가 반으로 줄어든다.

언덕을 오르면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 월터.

"월터, 오르막이 영어로 뭐야?"

"스팁."

"스팁?"

"프, 프."

"스팁프"

"프, 프."

"우쒸 적어 봐."

"steep."

"그럼 내리막은?"

"down steep."

"아하 그런 거야?"

"인클라인, 디클라인."

"인클라임?"

"라인, 화이트라인. 라인!"

"아하 라인! 인클라인, 디클라인!"

"응. 비지니스 토킹이야."

다시 긴 오르막이 나타나고 월터는 완전히 사라진다. 천천히 나의 속도대로 길을 이어가고.

휴게소 같은 곳에서 월터가 기다리고 있다.

"밥 먹고 갈까? 저기엔 고기가 있을 거야."

바르나울로 들어가는 인터체인지를 앞두고 길 건너편 휴게소에서 허기를 달래기로 한다.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쉬는 사이 한 여성이 다가와 월터에게 말을 걸며 뭔가 이야기를 한다.

"사비, 리포터야."

러시아 기자는 여행의 경로 같은 것을 묻고 월터와 나의 사진을 찍어간다. 월터가 대화를 하는 동안 중국 내몽골 쑤이터우기에 도착하여 머물고 있는 파박님의 소식을 쑤니터우기의 친구들이 위챗으로 보내온다.

"너의 친구는 우리와 점심을 먹고 있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보내는데 월터가 나를 부르며 시원한 맥주병을 건네준다.

"뭐야?"

"그들이 주고 갔어."

"예!!!"

"저기에 고기가 있을 거야. 쇼핑하고 와."

"넌?"

자신은 괜찮다는 월터를 대신해 휴게소의 식당으로 들어간다.

"유레카!"

갈비와 닭고기 꼬치를 월터의 몫까지 사든다.

"한국 사람은 혼자는 안 먹지."

휴게소의 직원에게 비닐봉지를 얻어 음식을 포장해서 월터와 하나씩 나눠먹는다.

고기를 들고 흔들며 웃자 월터는 가격을 물어본다.

"몰라."

맛있게 고기를 먹고 조금의 돈을 보태려는 월터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손사래를 치니 월터는 한국어로 인사를 한다.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인터체인지에서 바르나울까지 20km 정도의 거리다. 조금 넓어진 갓길을 따라 바르나울을 향해서 간다.

"인증샷 좀 찍자."

사진을 찍는 사이 월터는 다시 시야에서 사라진다.

잠시 후 도로변에서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월터를 지나쳐 천천히 길을 따라간다.

바르나울로 들어가는 다리를 앞두고 월터가 나를 불러 세운다.

"사비, 나 호스트를 바꿔야 해.

"왜?"

"호스트가 지금 다른 도시에 있데. 80km나 떨어진 곳에."

도착일과 시간을 알려주며 호스트의 집으로 가는데 호스트가 다른 도시로 외출을 나간 것이다.

도로변에 앉아 다른 호스트에게 연락을 하고, 잠시 후 다른 호스트가 다행히 연결된다.

바르나울로 들어가는 오비강을 건너고.

"사비, 너는 이 길을 따라가다 좌회전을 하고 나는 여기서 우회전을 해야 해."

"응. 난 이틀 동안 쉬고 카자흐스탄으로 갈 거야."

"오케이. 저녁에 맥주 마실 건데. 같이 마실래?"

"알았어."

월터와 헤어지고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서 이동한다.

비스크보다 훨씬 커 보이는 바르나울의 모습에 약간 흥분감이 느껴진다.

"천천히 둘러봐야지."

초입에 멋진 기념탑이 서있고, 트램이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의 모습이 새롭다.

도로는 좁고 혼잡하지만 예쁜 목조 건물과 현대식 건물들이 뒤섞여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시내의 풍경을 천천히 감상하며.

월터가 찾아놓은 오래된 목조 건물의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다.

나무문을 열고, 나무 계단을 오르자 마음까지 넉넉하게 만들어주는 인상이 좋은 할머니가 손주를 맞이하는 듯한 표정으로 인사를 한다.

"잠잘 수 있어요?"

"오우, 지금은 방이 없어. 내일 오후에 방이 비는데 어떻게 하지?"

"히잉."

"괜찮아. 내가 다른 호스텔을 알려줄게."

천천히 다른 게스트하우스의 위치를 자세히 설명하는데도 길이 너무 복잡하다.

"아니야. 내가 전화를 해 볼게."

할머니는 다른 곳에 전화를 해서 방을 잡아주려 했지만 그곳도 방이 없는 모양이다. 바르나울에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여러 군데 검색이 되어 이곳이 아니어도 큰 어려움 없이 다른 곳을 찾을 것 같고, 호텔도 여러 곳이 있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나는 너를 좋아해. 정말 아쉽다."

할머니는 끝까지 마음을 써주며 포근하게 웃어준다. 너무나 좋은 환대다.

호스텔의 계단에서 다른 숙소를 검색하는 동안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젊은 남자가 호기심을 갖고 말을 건넨다.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 자전거에 트러블이 없는지 묻더니 바이크 샵을 운영한다고 말한다.

"뭐 괜찮아. 나도 정비를 할 수 있어."

"바르나울에서 자전거 문제가 생기면 연락을 줘."

남자와 사진을 찍으며 인스타그램을 교환하고 헤어진다.

다른 게스트하우스를 찾기 위해 언덕을 오르는 동안 대학교처럼 보이는 석조 건물도 보이고.

작은 석조 건물들이 도로변에 들어서 있다.

바르나울 호텔의 건너편 도로변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를 찾고.

작지만 깨끗한 게스트하우스, 쉽게 체크인을 하고 샤워와 세탁을 한다.

"사비, 잘 도착했어? 저녁에 내 호스트와 맥주 마실래?"

"아니, 오늘은 좀 쉴래. 내일은 괜찮아."

"나는 내일 시내를 구경하고 노보시비르스크까지 기차로 갈 거야. 그리고 카자흐스탄까지 5일 정도 자전거, 알마티까지 기차로 갈 생각이야."

"음, 나는 낼 쉬고 모레 카자흐스탄으로 갈 생각이야."

"카자흐스탄도 몽골처럼 빈약할 거야."

"맞아. 힘든 여행이 될 거야. 내일 보자."

자전거는 숙소 앞 계단 근처에 자물쇠를 걸어 잘 보관을 하고.

숙소의 아저씨가 알려준 식당으로 갔지만 문이 닫혀있다.

작은 도로를 건너 전쟁기념 공원을 산책하고.

"부모, 형제, 가족, 사랑하는 사람.."

전쟁의 포화 속에서 가슴에 묻어야만 했던 사람들의 이별, 슬픔, 그리움.. 모든 것을 주지 못한 감정의 아쉬움 같은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가족이 너무나 괴롭고 괴롭고 고통스럽다.

공원 건너편에서 KFC를 발견하고.

울란바토르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먹었던 할배네 치킨과 햄버거.

어렵지 않게 주문을 하고, 깨끗하게 해치운다.

극장이 있는 건물인지 젊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간이고, 신체 비율이 이상한 예쁜 인형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정말 러시아에 왔군!"

KFC와 함께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살아있는 인형들의 모습에 잠시 가라앉았던 기분이 되살아 난다.

"여행 중이잖아. 괜찮아."

숙소에 돌아와 자료를 정리하며 휴식한다. 파박님은 쑤니터우기의 친구들이 잘 대접을 해준 것 같다.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 보내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오늘 같은 날 함께 백주를 마시며 웃고 떠들었으면 좋겠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다.

게스트하우스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 편하게 쉴 수 있다.

"헤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가게로 와 도와줄게. 무료다!"

"내일 시간이 되면 놀러 갈게."

Izbar의 앞에서 만났던 자전거샵의 친구가 인스타그램의 메시지를 보내온다.

내일 시내를 둘러보고 잠시 놀러 가야겠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174일 / 맑음
비스크-고르데예브스키
카우치서핑의 호스트 세미온의 집을 떠나 바르나울로 향한다. 바르나울까지의 거리가 있어 오늘은 월터와 함께 캠핑을 해야할 것 같다.


이동거리
88Km
누적거리
11,736Km
이동시간
5시간 21분
누적시간
847시간

 
P256도로
 
P256도로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비스크
 
불라니카
 
고르데예
 
 
830Km
 
 

・국가정보 
러시아, 모스크바
・여행경보 
-
・언어/통화 
러시아어, 루블(1루블=18.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0기가, 7,000원
・전력전압 
◦2구220
・비자정보 
무사증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7(495)783-2727

 
문자 알람과 함께 잠에서 깨어 핸드폰을 열었지만 네트워크가 끊겨있다.

"월터, 네트워크가 안 된다. 유심을 살 때 30일이라고 했는데 15일짜리인가 봐."

"아마도 그럴 거야. 핸드폰 가게에 들르자. 근데 너 어제 코 엄청 골았어!"

"정말?"

코골이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았는데 어제의 라이딩, 세미온의 집에서 제대로 휴식을 하지 못해 피곤했던 모양이다.

짐들을 정리하고 세미온을 깨우고 집을 나선다. 처음 경험한 카우치서핑의 헤어짐은 심플하고 쿨하다.

"잘 있어. 세미온."

우선, 슈퍼에 들러 월터가 사온 요거트에 시리얼을 넣어 아침을 대신한다.

월터는 매일 아침을 시리얼 같은 것으로 해결한다.

도로변에 있는 핸드폰 그림의 간판을 보고 들어갔지만 데이터 충전을 할 수 없고.

MTC 대리점으로 들어간다.

유심을 샀던 코쉬아가츠의 가격표와 뭔가가 다르다.

핸드폰 매장의 담당자는 영어를 못했지만 바로 구글 번역기를 꺼내어 사용하는 센스를 발휘한다.

"152루블을 충전해야 합니다. 저쪽 기기에서."

"도와주실래요?"

핸드폰 번호를 누르고 200루블을 충전하자 네트워크가 다시 활성화된다.

코쉬아가츠에서 구매한 데이터 무제한 유심칩은 15일 사용 기준인 것 같다.

"사비, 아마도 15일마다 충전이 필요할 것 같아."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핸드폰을 충전하고 복잡한 비스크의 시내를 빠져나온다.

P256 도로에 들어서 잠시 숨을 고르고.

"오늘도 지루한 도로야."

월터는 이어폰을 꺼내며 도로를 달릴 땐 작게 음악을 듣는다며 말을 한다.

"나도 그래."

각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출발한다.

내가 선두에 서서 도로를 따라가고 푸른 콩밭과 밀밭이 도로변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그리고 하얀 메밀밭이 넓게 이어지며 반복된다.

밀밭.

메밀밭.

야생화의 들녘과.

해바라기밭이 반복되어 펼쳐진다.

두 시간 가까이 라이딩이 이어지고.

조금씩 지쳐가며 앞서가는 월터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 간다.

점심을 먹을 적당한 장소를 찾으며 달려가던 월터는 시의 경계를 알리는 구조물의 그늘에 자리를 잡고 기다린다.

눈이 부신 메밀밭.

"해바라기 사진을 못 찍었다."

월터의 먹거리를 따라 어제 사두었던 식빵과 땅콩잼을 꺼내어.

"이렇게 먹는단 말이지."

월터와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월터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여자 친구를 만날 계획이다. 월터의 여자 친구는 변호사라 항상 일이 많고 바쁘다고 한다.

"난 매일 그녀를 기다리고 음식을 만들어야 해."

"한국 사람들의 삶도 매우 바쁘다. 일, 일, 일."

"맞아. 내가 본 한국의 남자들은 불쌍하다. 공부해야 하고, 군대에 가야 하고, 직장에 들어가야 하고. 그건 불공평하다."

"응. 나는 한국의 젊은 친구들이 너처럼 세상을 여행하기를 바란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부모에게 너무 의존한다. 부모님의 집, 부모님의 돈..."

"그래, 맞아. 잘 봤어."

"결혼했어?"

"아니, 한국 여자들은 날 별로 안 좋아해. 너처럼 금발도 아니고 파란 눈도 없거든."

"괜찮아. 러시아 워먼이 있잖아."

삼일 동안 월터가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그의 생각과 가치관이 건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월터가 생각해두었던 저수지 옆의 야영지까지 20km 정도를 남겨두고, 월터는 도로를 벗어나 마을 길을 따라 이동하고 싶어 한다.

"마을의 철도길을 따라 비포장길이 있을 것 같아. 메인 도로는 너무 지루해."

작은 시골 마을을 지나.

비포장의 산길을 따라갔지만 월터가 생각했던 길은 숲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이다.

"이쪽으로는 못 갈 것 같은데. 어때?"

"네가 선택해."

"음, 다시 메인 도로로 가는 것이 좋겠어."

P256 도로로 돌아가기 위해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을 따라간다. 많은 파리들이 땀 냄새를 맡고 몰려든다.

"웰컴투 몽골리아!"

"하하하. 정말 몽골 같잖아."

업다운이 계속 반복되는 도로 탓에 지쳐갔지만.

눈꽃처럼 느껴지는 메밀밭의 풍경은 너무나 좋다.

길게 이어지는 오르막길.

"아, 싫어. 이제 그만!"

월터는 저수지를 찾아 산길을 향해 들어가고.

하얀 메밀꽃 밭의 향기가 더욱 진해진다.

"월터, 프리덤 해 봐!"

"왓?"

"감성이 메마른 놈!"

월터가 메밀꽃 밭을 지나 숲으로 들어가는 동안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앞서가던 월터가 작은 언덕을 앞두고 지도를 보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아마도 이쪽으로 가면 바로 저수지가 나올 거야."

월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30미터쯤 이동하자 들꽃들 사이로 작은 저수지가 나온다.

주변을 둘러보던 월터는 물이 깨끗하지 않아 수영을 할 수 없다며 실망스러워한다.

작은 나뭇가지들을 모아 휘발유를 살짝 뿌린 후 모닥불을 붙인다.

저수지 옆이라 모기와 파리가 귀찮을 정도로 달라붙는다. 서둘러 텐트를 설치하고 저녁을 준비한다.

"사비, 뭘 만들 거야? 난 밥을 할 거야."

"글쎄, 짜장 라면을 먹어 볼까."

만저로크에서 얻은 오이도 준비하고 라면을 끓이는 동안 월터는 몽골에서 산 쌀로 능숙하게 밥을 짓는다.

월터에게 휘발유 버너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며 라면을 끓이고, 유브게니에게 선물 받은 러시아 군대식의 고기 통조림도 꺼낸다.

월터의 밥과 짜장라면 그리고 러시아 군대의 전투식량으로 저녁상이 차려진다.

"월터, 좋은 장소, 좋은 음식 그리고 좋은 친구와 함께 하니까 좋다."

"맞아, 오늘 저녁은 배고프지 않아!"

맛있게 식사를 하고 식수가 부족하여 유브게니의 전투식량 중 물 정수제를 사용해 보기로 한다.

"이걸 넣고 기다리라는 거지."

"정말 좋네!"

"사비, 뭐 할 거야?"

"일기를 좀 쓰고 잘 거야."

"난 책을 좀 읽고 잘게. 잘 자."

텐트의 내외피의 공간에 파리들이 달라붙어 요란한 소리를 냈지만 텐트 안에는 모기와 파리가 들어오지 않는다.

겨우 한두 개의 안테나가 활성화되어있는 네트워크로는 사진 전송이 힘들어 라디오와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사비, 자전거 여행자들이 방금 지나갔어."

"그래? 여자야?"

"남자와 여자였어."

"어, 관심 끊어!"

자정이 넘어서며 텐트 주변으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더니 나이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텐트 주변을 배회하며 소곤거리는 소리가 30여 분이 이어지자 월터가 조용히 해달라고 말을 한다.

몽골에서도 그랬지만 텐트 밖 사람들의 소리에 경계를 하면서도 텐트를 건들지 않는다면 떠날 때까지 그냥 텐트 안에 있었다.

굳이 밖으로 나가 말을 섞고 귀찮아지는 것보다 조용히 구경을 하고 떠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낫다.

영어를 못하는 아이들과 몇 마디가 오가자 아이들의 반응이 활발해진다.

헬로, 와이, 프렌드.. 그리고 알아듣지 못할 러시아 말소리의 톤이 높아져 간다.

"사비, 일어나 있어?"

"어."

월터가 텐트 안에서 아이들에게 말을 하는 동안 텐트 밖으로 나간다.

13~14살 정도의 어린아이 두 명이 나를 보더니 '프렌드'하며 말을 건넨다.

"알았으니까 집에 가! 빨리."

아이들에게 다가가려 하자 알았다는 제스처를 하며 오토바이를 몰고 가려고 한다.

"사비, 밖으로 나갔어?"

"어. 애들 두 명이야."

월터가 나오고 그의 손에는 작은 과도가 들려있다. 오토바이를 몰고 가려던 아이들은 월터를 보더니 다시 '할로우', '프렌드'를 하며 말을 섞는다.

"아우, 너네는 좀 맞아야겠다."

모닥불을 피웠던 자리로 가서 장작으로 쓰려던 몽둥이를 들고 아이들에게 다가가자 월터와 악수를 청하던 아이가 월터의 자전거와 텐트를 발로 차고도망을 친다.

"야! 이 @$$%#%#%//$%!"

오토바이는 저수지의 뚝방길을 따라 건너편으로 사라지고, 오토바이의 불빛을 주시하며 기다린다.

"사비, 다시 오겠지?"

"어쩌면.. 조금 전에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놓을 걸 그랬네."

"좋은 생각인데, 다시 오면 그때 찍자."

"어디를 가나 15~23살짜리들은 위험해. 특히나 술에 취한 아이들."

"맞아."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1시다. 월터가 옷을 입는 동안 오토바이의 불빛을 지켜보니 저수지의 건너편에서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마도 저녁 무렵 우리를 지나쳤던 자전거 커플의 캠핑지에 가서 해코지를 하는듯싶다.

"저기, 여자가 있는데. 러시아인이었어?"

"아니. 유러피안 같았어. 어디서나 여자 여행자는 위험해."

함께 있는 남자가 있고 아이들이 어려서 큰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불빛을 보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혹시나 여자의 비명소리 같은 것이 들리면 그곳으로 달려갈 생각이다.

20분 정도가 지나고 높은 여자의 언성과 함께 오토바이의 불빛은 저수지를 따라 사라진다.

"월터, 갔나 봐."

"또 돌아올 거야. 어쩌면 칼 같은 것을 들고 돌지도 몰라."

"뭐. 그럴 수도. 어쨌든 들어가자. 나는 지금 잠을 안 잘 거니까."

"나도."

오토바이 소리가 나는지 경계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2시가 훌쩍 넘어가고, 월터의 텐트 쪽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사비?"

"왜?"

텐트를 열고 내다보니 저수지 건너편에 있던 자전거 커플이 짐들을 챙겨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그들은 월터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고, 내 텐트의 옆에 텐트를 친다.

"이제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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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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