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보고 싶었다. 바람개비 하나, 가슴깨에 걸린 먹먹한 숨막힘이 마냥 즐겁던 그 지난 어린아이의 뜀박질처럼.

 

아무런 의미도 어떤 특별함도 없이, 그저 심장의 두근거림과 이유모를 해소의 충만함이 좋았던 그 때.
힘들면 거기까지 그만인, 털석 주저않은 자리 시원한 긴 숨 한 번으로 충분했던 그 아이처럼 달려보고 싶었다.

 

누구 하나 탓하지 않을, 대단할 것도 보잘 것도 없는 그것이 하고싶어 "싶다"의 바람 목록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였다.
현재의 삶이 그 누구나의 삶처럼 그러함을, 다르지 않음을, 나또한 어쩔 수 없음을 핑계만 하였다.
 

바라본다. 힘들고 고단했을 그 무엇이 애잔하여, 애써 외면하며 부정했던 내가 아닌 나를 바라본다.

언젠가 아무것도 남지않을 결과들의 무의미함을 뻔히 알면서도, 단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체념적 순응과 의지의 반항만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섭취와 배설의 반복. 그 사실의 불편함들이 너는 무엇을 하고 싶냐며 따져 묻는다.


보잘 것 없는 삶이였다. 어떤 특별함도 없으며, 특별하고 싶지도 않고 특별하지 않기를 바라였다.

 

 

 

 

 

 

 

4개월여의 투병생활을 끝으로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차가운 겨울을 지나 봄이 돌아오기까지 짧았지만 길었던 그 시간동안 그는 여전히 이기적이고 고집불통이였다.

 

지난시간 그러했듯 또 한번 지나쳐 가리라는 경험적 확신도 아니였으며, 머지않아 마주할 것에 대한 받아들임이나 삶에 대한 애착도 아니였다.

그저 한 평생 몸에 각인되어 의식의 범주를 벗어난 집착, 누구보다 고단했을 삶의 대상없는 싸움 같았다.

 

죽음을 직면하고 있음에도 오직 자신의 삶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그를 전혀 원망치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삶에만 충실한 그의 모습이 다행스럽고 애처로웠다. 누구에나 주어진 단 한번 삶, 그것은 오롯이 그 자신만의 것이며 그 어떠한 삶의 선택도 그의 몫이였다.

 

모든 짐들을 털어내듯 끊임없이 온 몸의 각질들을 벗어냈고 하루가 다르게 앙상해져 갔다. 처음으로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처음이였다. 세월의 온갖 기억들과 고단했던 삶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거칠고 두꺼운 손, 미온의 따듯함이 전해지는 손이였다.

 

며칠 후, 그는 그의 마지막을 보여주지 않은 채 생을 마감하였다. 20여분, 수없이 많은 날들 중 찰라의 순간에 불과한 그 시간을 기다려 주지않았다.

마지막까지 이기적이다 생각하였다.

 

비록 인자하고 자상하지는 않았으나 주어진 그의 삶을 원망치 않았으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을 그에게, 너무 많은 죄송함과 한없는 감사의 말 한마디 전할 시간 정도은 주어져야 했다.

 

 

그것은 부당하였고 화가 났다.

 

 

작은 나라, 외진 시골의 작은 마을을 떠나 본 적이 없었던 그는 좁고 한정된 공간, 시간, 사람들 속에서 고집스레 자신의 삶과 싸워왔다.

또한 삶이였다.

 

세상이 보고 싶어졌다. 그가 한번도 보지못한 세상.

그의 바람과 달리, 그의 삶에 비해 보잘 것 없이 살아가는 형편없는 나는 그것이 보고 싶어졌다.

 


나의 눈을 통해 그와 함께 세상을 보고, 충분했던 삶의 수고를 위로하고 그와 다른 나의 삶을 만들어 가고싶다.

 

 

 

 

 

 

피안의 날들이였다.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할 수 있다면, 그 어울리지 않는 행복감이 내게도 주어진다면, 그것이 지금이라면 기꺼이 영원함의 거짓을 믿을 것이다 욕심하였다.

익숙치 않은 것들에 대한 불편함과 내것이 아닌 것들에 대한 낯설음, 어설픈 내 삶의 모난 조각들로 인하여 그녀가 힘들지 않기만을 바라였다.

 

위로 받았으며 기대였다. 모든 것이 좋았고 너무나 과분한 것이였다. 사랑하였고 사랑받았다.

그 시간들의 평안함과 달리 결핍과 결여의 삶을 지내온 존재의 불안정성은 잃어버릴지도 모를 것에 대해 안달하였다.

 

자신이 없었다. 나와 함께여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그럴수도 있다는 사실이 두렵고 서늘하였다.

언제나 그러했듯 체념적 선택은 나와 그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듯 이탈하는 것이였다.

 

한 때 나이듬을 생각하였다. 늘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리던 내가 처음으로 생각했던 미래에 대한 바람였다.

 

 

함께한 시간만큼 나이들어 가는거야.

그녀로인해, 어지럽기만 한 나에게도 산다는 것이 익숙해지고 조금은 편안해지는 시간이 올지도 몰라.

 

 

그 때가 되면 함께 세상을 여행하고 싶어.

 


우리가 지나온 모든 것들과 지나쳐 가야 할 모든 것들을 함께 바라보고 싶었다.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쓰라린 과거의 사실들과 알 수 없는 미래의 불안따위에 집착하느라 그 때의 시간이 내가 바라왔던 행복의 현재 시제였음을 알지 못하였다.
그렇게 현재의 삶에 충실했던 그녀와 현재의 삶을 살지못한 나는,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시간과 바람들을 쌓아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떠나고 싶어졌다. 한번도 말해주지 못한 나에 관한 것들과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말해주고 싶어졌다.
눈을 마주하며 말해야 했을, 해야 하는 것들을 멍청한 나는 그것조차 할 줄 모르니 여전히 나는 비겁하다.

 

시간이 지나 어느 좋은 그런 날, 내가 지나간 수많은 길들과 공간사이 어느 한자락을 그녀도 걷게 될지 모른다.
비록 서로 다른 시간의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바람들을 채워가겠지만 내가 바라보는 것들을 그녀도 바라보기를 바란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세상의 수많은 시간과 공간,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 대해 먼저 가서 알려주고 싶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방식이나 방향성이 아닌 현재의 나를 선택하였다. 단지 지금의 현재가 나의 삶이 되도록..


 

여전히 상처받고 아파하며 익숙해져 버린 외로움을 직면할 것이고, 시간의 흐름에 기대어 즐거움에 환희하며 때때로 찾아올 어색한 행복감에 낯설어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나의 것들이 나로인해 더는 냉소되거나 부정되지 않는 나의 삶이 되었으면 한다.

 

이미 지나버린  명백한 사실들과 사실이 아닌 사실의 하릴없는 거짓들, 오지않은 것에 대한 막연함과 오지않을 것에 대한 무의미한 두려움들,
타인에 의해 무례하게 투영 채 제멋대로 놓여진 내가 아닌 나와 내 것이 아닌 나의 모든 것들을 이제는 벗어 던진다.


 

할 수 있는 한 해 볼 것이고 갈 수 있는 한 달릴 것이다.

 

그 어떤 만족감과 충만함이 나를 멈춰 세울 때 돌아올 것이다.

 


 

돌아온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힘들었고 즐거웠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잘 다녀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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