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92일 / 맑음
베를린
베를린의 마지막 날, 트램을 타고 베를린의 둘러본 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관람할 생각이다.


이동거리
38Km
누적거리
23,774Km
이동시간
3시간 01분
누적시간
1,806시간

 
짬뽕
 
기생충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베를린
 
베를린
 
베를린
 
 
1,298Km
 
 

・국가정보 
독일, 베를린
・여행경보 
-
・언어/통화 
독일어, 유로(1즈워티=1,250원)
・예방접종 
-
・유심칩 
-
・전력전압 
◦2구220
・비자정보 
무사증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49-173-407-6943

 

오늘도 흐린 날씨다. 푹 잠든 탓인지, 미련스럽게 먹은 고기 탓인지 감기 기운은 조금 덜하다.

체코에서 만날 파박과 일정을 조율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신다.

1층에 있는 술집은 파티의 컨셉이 매번 다른 모양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많은 책들 중 함께 여행을 하고 싶었던 책으로 전혜린의 일기를 선택했다.

"언제쯤이었을까?"

그녀의 책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었던 시간이 언제였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하다. 카릴 지브란의 예언서와 함께 학생 가방이 노트북 가방으로, 서류 가방으로 바뀌는 동안에도 늘 담겨있던 그녀의 책이다.

"이 책의 주인이 아희인가 보다."

뮌헨, 그녀가 좋아했던 뮌헨으로 향하던 일정은 핀란드에서 웃는 얼굴의 아희를 만나며 베를린으로 바뀌었다. 어쩌면 그녀의 삶이 느껴질 뮌헨에 가고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20년 가까이 담고 다녔던 책, 그녀의 일기를 베를린에서 읽는다.

"모든 평범한 것, 사소한 것, 게으른 것, 목적 없는 것, 무기력한 것, 비굴한 것을 나는 증오한다! 자기 성장에 대해 아무 사고도 지출하지 않는 나무를 나는 증오한다. 경멸한다. 모든 유동하지 않는 것, 정지한 것은 퇴폐다. 저열한 충동으로만 살고 거기에도 만족하지 않는 여자를 나는 증오한다. 나무는 하늘 높이높이 치솟고자 발돋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별에까지 닿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록 그것이 허락되지 않더라도….”

"모든 전달 불가능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인간은 서로 만나도록 운명지워져 있는 것일까? 만남의 짧은 매혹 끝에는 기나긴 상처의 길밖에 남겨져 있지 않음에도 왜 인간은 만남에 황홀해 하는 것일까? 인간은 거의 만남에 의해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속 불가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다.

언제나 가능한 것은 독백뿐이다. 대화의 메아리는 언제나 독백으로 공허하게 울린다. 언제나 '너'를 찾으려던 우리의 시도는 '나'를 다시 찾은 것으로 끝나고 만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몹시도 목말라 있다. 한 개의 자매혼에, 이해하는 마음에, 눈에 그것은 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영혼과 영혼이 부딪칠 때, 그 찰나에 우리는 영원을 본다. 시간성을 느낄 수 없게 꽉 찬 순간,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감득될 수 있는 유일한 영원이다. 그 영원의 순간을 위해서 우리의 영혼은 언제나 목말라 있는 것이다."

베를린을 떠나기 전인 오늘 저녁에 아희를 만나기로 한다.

점심을 먹기 위해 아희가 추천한 짬뽕집을 찾아간다. 우선 교통티켓을 구매하고.

아희가 설명했던 AB구간의 티켓 4장을 구매하니 첫날 아희가 사줬던 티켓과 다른 모양의 티켓이 4장이나 나온다.

"뭐야? 잘못 산 거야?"

짐짓 당황하고 있으니 뒤에 서있던 독일 부부가 웃으며 티켓을 검표기에 넣고 전철을 탈 수 있다며 설명을 한다.

"아니, 그건 아는데요."

"몰라, 일단 고!"

U반을 S반으로 환승도 하고.

"U와 S는 뭐가 다른 걸까?"

베를린의 동쪽으로 간다.

환승을 했던 순환열차는 목적지를 한 정거장 앞두고 오래 정차를 하더니 지나왔던 역으로 되돌아 간다.

"이 시추에이션은 뭐야?"

한 정거장을 뒤로 되돌아간 라인의 번호가 S42에서 S41로 바뀌어 있다. 건너편 방향의 전철로 환승하고 샤를로텐부르크성이 있는 역으로 간다.

신설동 역처럼 막다른 역도 아닌데 순환노선의 전철이 갑자기 역주행을 하는 신기한 경험이다.

샤를로텐부르크성 주변의 역에서 내려.

성이 있는 공원으로 걸어간다.

짬뽕집을 찾아 걷고.

"아희가 말하던 LA 갈비집이군!"

 

짬뽕을 주문한다. 감기 기운 때문에 얼큰한 것이 당기는 모양이다.

달콤한 느낌의 국물은 꽤 괜찮지만 면발이 조금 아쉽다. 밥을 한 공기 주문해서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다.

서글서글 인상이 좋은 아저씨는 추가로 주문한 것들은 별도로 요금을 받지않는다며 짬뽕값만을 받는다.

주문할 때 조금 얼큰하게 만들어 달라 부탁하면 좋을 것 같다.

"저리 가라, 감기야!"

밥을 다 먹어갈 때 아희에게서 메세지가 온다. 점심 약속이 취소됐다며 2시에 점심을 먹자고 한다.

"콜!!"

아침으로 짬뽕을 먹었으니 점심도 먹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오후에 둘러볼 생각이었던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이동한다.

거리를 걷고.

이번에는 버스를 타고.

이동한 후.

U반으로 환승을 한다.

가로로 된 좌석도 있다.

체크포인트 찰리로 가는 역에서 하차하고.

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책은 꽃과 함께지!"

핀란드에서부터 만날 때마다 우연찮게 꽃을 들고 있던 아희를 위해 꽃을 선물하기로 한다.

 

도로변 꽃집의 마른 장미가 전혜린의 책과 너무나 어울리지만 웃는 얼굴의 사람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주황색이 좋다.

"아, 꽃 냄새!"

체크포인트 찰리는 미군이 관리하던 동서독의 경계 초소였던 모양이다.

 

아희를 만나 주변 기념품 가게에서 장벽의 조각들로 만든 기념품도 구경하고, 줄을 서서 먹는다는 케밥을 먹기 위해 전철을 타고 이동한다.

아희는 이어폰과 함께 여행 중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들을 선물하고, 나는 책과 함께 꽃을 선물한다.

 

평소보다 줄을 선 사람들이 많이 적다며 아희는 좋아했지만.

대기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기다리면서 카레 소세지 드실래요?"

베를린의 또 다른 먹거리 카레 소세지를 먹고 가야한다며 아희는 소세지를 사 온다. 벨기에의 감자튀김과는 조금 다른 바삭한 감자튀김과 걸쭉한 케찹소스가 독특한 맛이다.

"어디서 먹어?"

"밖에서요. 안에서 먹을 생각은 마세요."

어쨌든 길었던 줄도 사라지고 닭고기 케밥을 사 들고.

주변 벤치에 자리를 잡는다.

아희는 꽃을 들고.

나는 맥주를 든다.

바싹한 도우, 치즈가 뿌려지고 구은 야채가 들어간 케밥은 소스맛으로 먹던 다른 케밥보다 부드럽고 건강한 맛이다.

"줄을 서서 먹을만 하네. 인정!"

4시에 약속이 있는 아희는 서둘러 약속 장소인 텔레비전 타워가 있는 알렉산더 광장으로 가야한다.

전철을 타고 알렉산더 광장으로 이동하고.

"정말 안 보이는 곳이 없다. 베를린에서 길을 잃어버릴 일은 없을 것 같아!"

4시가 훌쩍 넘은 시간, 아희와 헤어짐의 포옹을 한다.

항상 웃는 그녀가 건강하고 치열하게 자신의 삶과 마주하며 언제나 지금처럼 밝게 웃기를 바란다.

기생충을 보기 위해 아희가 검색해준 극장으로 간다.

베를린 AB구역의 외곽에 위치한 작은 극장이다. 독일의 영화관은 독일어로 더빙을 하여 상영을 하기 때문에 자막 번역의 극장이 많지 않은가 보다.

프랑스나 유럽의 극장들은 왜 더빙을 하는지 잘 이해가 안된다. 더빙을 아무리 잘 한다하더라도 배우의 언어와 대사전달도 스토리를 전달하는 중요한 요소일 텐데 말이다.

"아, 이놈의 낙서들!"

정말 작은 영화관이다. 서울로 전학을 와 처음 극장이라는 곳을 접했던 화양리 동부극장이 생각난다. 하지만 나름 깨끗하고 정성스레 관리된 오래된 극장의 클래식한 멋이 잔뜩 느껴진다.

"설마, 더빙판은 아니겠지?"

맥주와 팝콘을 파는 카운터에서 영화표를 구매하고, 맥주 한 병을 산다.

영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작고 오래된 영화관이다.

한 쌍의 커플, 한 명의 중년여성, 한 명의 젊은여자와 한 명의 자전거 여행자가 관객의 전부이다.

언제인지 천호동 극장에서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영화를 두세 명의 관객들과 함께 본 이후로 영화관을 독차지하고 관람하는 것은 처음이다. 그것도 독일, 베를린에서 말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늘 봐왔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라고 생각된다. 오스카를 받음으로서 해외에서 더 많은 찬사가 이어지겠지만 그것이 의아스럽고 새삼스럽다 생각된다.

김연아의 경기를 보았을 때의 느낌과 비슷한 것이다.

"너희와 상관없이 그들은 항상 유니크했어!"

영화관을 나와 숙소로 돌아간다.

다시 U반을 타고.

트램으로 환승을 하고.

숙소가 있는 역에서 내린다.

하루 종일 택시를 제외한 교통수단을 모두 이용한 느낌이다. 뭔가 세련된 느낌은 아니지만 촘촘하게 연결된 U반, S반, 트램, 버스 노선은 큰 불편함이 없는 것 같다.

숙소 앞 슈퍼에서 콜라를 하나 사 들고.

"정말 맥주 천국!"

베를린 여행의 여운을 가라앉힌다.

 

"좀 멋졌다. 베를린!"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63일 / 맑음 ・ 18도
옌칭현-화이라이현-샤화위안구
새벽 4시가 넘어 겨우 잠들었다. 다섯번째 마지막 알람음에 항복하듯 억지스레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이동거리
76Km
누적거리
4,671Km
이동시간
6시간 13분
누적시간
360시간 25분

G110
G110
49Km / 3시간 50분
27Km / 2시간 23분
옌칭현
화이라이
샤후위안
 
 
4,671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 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0-8531-0700/+86-186-1173-0089

 

숙소의 창문으로 밝은 햇살이 스며든다. 그 환한 빛이 좋아 바람결에 살랑이는 커튼의 움직임에 멍하니 시선을 놓아둔다.

새벽에 겨우 잠이 든 탓에 피곤함이 남아있는 아침, 더 게으름이 찾아들기 전에 서둘러 짐들을 정리하고 떠날 준비를 한다.

9시 30분. 숙소의 물품 창고에서 자전거를 꺼내어 패니어들를 장착하고, 이제는 아침나절 쓸데없는 루틴이 되어버린 바람이 빠진 타이어에 펌프질을 한 후 오늘의 목적지 샤화위안구로 향한다.

숙소 주변에 있던 규모가 제법 큰 자이언트 매장에 들러 킥스탠드를 장착하고 27C 튜브를 사둘까 생각하다 쌀쌀한 날씨에 귀찮아져 그냥 지나친다.

"몽골로 가기 전에 타이어와 튜브를 챙겨두어야 할 것 같은데."

옌칭현 시내에서 장자커우시로 이어지는 G110 도로까지 이동하기 위해 시내 중심을 벗어나 허름하고 외진 골목길과 소도로를 타고 한 시간 정도 이동한다.

따듯한 햇볕이 드는 날씨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한기가 섞여있고, 베이징시의 외곽의 하늘은 다시 뿌연 회색빛이 내려앉아 있다.

문제는 잠시 잊고 지냈던 중국의 신경질적인 크락션 소리가 다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G110 도로에 이르자 옌칭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던 북쪽의 옥두산과 송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송산(松山)은 이름과 달리 흙과 바위가 민낯을 드러낸 회색빛의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진다.

해발 450미터에 위치한 옌칭현, 장자커우시까지 내리막길이 이어져 편안한 라이딩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길은 평지와 오르막이 계속된다.

"더 올라갈 것이 무엇이 있다고."

G110 도로를 따라 회색빛의 천황산과 거대한 산맥들이 계속 이어진다.

한 시간여를 달려 작은 버스 종점이 있는 마을의 입구에서 잠시 쉬어간다.

자금성의 처마 끝에서도 보았지만 중국의 북부지역의 처마 장식의 끝에는 사람(노인)이 무언가를 타고 있는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맞바람이 조금씩 불어오더니 이내 황량한 흙먼지의 바람으로 바뀌어간다. 남부지역의 2층 구조 목조주택과 달리 북부지역은 단층의 벽돌집들이다.

12시, 대형 풍력발전기의 바람개비들이 들어서 있는 랑산의 작은 마을에 도착한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학교 앞에서 아이들의 하교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도로변에 시장이 열려있어 북부지방의 시장은 어떠한지 궁금하여 자전거를 끌고 들어간다.

"출출한데 맛있는 장터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

특별히 다른 것은 없고 옷과 잡화, 농작물의 씨앗과 농기구들 그리고 다양하지만 조금은 빈약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다. 과일의 신선도가 많이 떨어지는 것이 약간 특이하다.

저울의 눈금을 맞추느라 내용물을 붓고 저울 한 번 보고, 다시 내용물을 붓고 눈금을 확인하느라 바쁘다.

각종 열매와 꽃들을 말려 색과 향이 좋은 차들을 판매하고.

어디서나 시장의 초입에는 정육을 판매하는 곳이 자리 잡고 있다. 제법 길게 이어진 시장을 구경하며 돌아오니 간간이 보이던 빵과 튀김류를 팔던 곳들이 철수를 해버렸다.

시장의 건너편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점심으로 면을 하나 주문하고.

이곳에서는 직접 면을 들고 칼로 면을 잘라내어 온수물에 삶는다.

향긋한 고수향이 퍼지는 면요리. 면의 양이 많다 보니 국물이 조금이다.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면발이 탱탱하고 식감이 좋다. 넉넉한 양의 면요리지만 겨우 한 그릇에 배가 차는 만족감이 느껴진다.

"확실히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거야."

식사를 하고 아주머니께 마을의 이름을 물어보니 7콰이라는 답변을 한다. 다시 한번 마을의 이름을 묻자 옆에 있던 아저씨가 담배를 끄고 랑산(狼山, 늑대산)이라고 알려준다.

"늑대산, 이름만 들어도 포스가 느껴지네."

밖에 놓아둔 자전거를 보더니 한국 사람인지를 묻는 아저씨에게 한국 담배 한 개비를 선물로 건네주니 환하게 웃으며 좋아한다.

"저쓰 한궈 앤초!"

랑산마을의 북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으로는 커다란 저수지(水库)가 펼쳐져 있다. 저수지 쪽으로 수십 기의 풍력 발전기가 세워져 커다란 날개들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랑산 마을에 세워진 수십 기의 풍력 발전기는 무심하게도 나를 등지고 돌아가고 거센 바람과 함께 직선의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간간이 불어오는 강풍이 느릿느릿 기어가는 자전거를 멈춰 세워놓고 자연스레 스탠딩 연습을 시켜준다.

"한 기만 세워져 있어도 무서운데 도대체 몇 기야?"

랑산을 지나 화이라이현으로 크게 우회전을 하며 돌아가는 길에서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를 바랐지만 이번에는 우측의 산등성이에 수십 기의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얘들아 나를 좀 봐. 왜 뒤돌아서있는 거야?"

오르막과 내리막길의 차이가 무엇인지 모를 만큼 느릿느릿 기어간다.

화이라이현의 초입에 들어서며 너무나 무겁게 느껴지는 페달링의 무게에 잠시 뒤바퀴를 내려다보니 느낌이 이상하다. 안장에서 엉덩이를 들어다 앉으니 물컹거리는 타이어와 바닥에 부딪치는 림의 딱딱함이 느껴진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아파트 공사를 하는 넓은 입구에 자전거를 눕혀놓고 튜브를 정비한다. 아침이면 조금씩 바람이 빠져있어 10여 일 동안의 매일처럼 펌프질을 해야 했던 게으름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것이다.

튜브를 탈착하고 바람이 새는 펑크패치를 찾아야 하는데 펑크패치가 이곳저곳에 붙어있어 어떤 것이 바람이 새는 불량 패치인지 알 수가 없다. 귀를 대어 바람이 빠지는 소리를 확인하려 해도 불어오는 바람소리에 묻혀 느껴지지도 않는다.

마지막 남은 새 튜브를 꺼내어 교체하고 2개의 튜브는 숙소에 들어가 펑크패치로 정비를 해두어야겠다.

"아침부터 자이언트 매장에 들어가고 싶더라니."

"도대체 몇 기가 세워져 있는 거야? 백 개 정도 되는 거야?"

양쪽으로 높은 산맥들이 둘러싸여 이곳으로 북쪽의 바람이 지나가는가 싶다.

"바람의 언덕인가. 언덕? 근데 계속 올라가고 있는 느낌인데, 얼마나 올라온 거야?"

고도 580미터. 거센 바람을 이겨내느라 정신이 없어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오는 동안 오른편으로 이어지던 회색빛의 산맥을 넘어야 하는 모양이다.

2시간 동안 겨우 15km 정도를 이동하여 화이라이현에 도착한다.

좁은 자전거길과 긴 대기시간의 신호등들을 지나치느라 라이딩 속도는 더욱 느려지고.

"그냥 오늘 여기까지만 탈까?"

잠시 오늘의 라이딩을 마무리할까 생각하다 내일도 오늘과 같은 바람이 불어올 것이 뻔하여 길을 이어가기로 했다.

중국의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고장 나면 길 가운데 임시 신호등을 세워두는데, 눈여겨보지 않으면 건널목에 신호등이 없는 것처럼 보여서 잘 확인하고 건너야 한다.

화이라이 시내를 벗어나자 회색빛의 산들은 기묘한 계곡의 울퉁불퉁한 근육들을 자랑한다. 산들을 깎아 골재를 채취하는 것인지 산줄기의 일부분들이 파여있다.

"태산도 옮길 수 있다는데, 중국에서 산 하나쯤 없애는 것쯤이야."

하루 종일 황량한 도로변을 따라 더 흉물스러운 화물차들의 정비업을 하는 가게들만이 줄지어 있다.

화이라이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화물차들의 적재량을 검사하느라 도로의 한 차로가 완전히 화물차들로 끝없이 이어진다. 가운데 차로는 일단 차량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분리되어 있다.

"정말 합리적인 것과는 담을 쌓고 있는 대륙이다."

옌칭현에서부터 오른쪽 측면으로 이어지던 산맥이 정면으로 보일 때쯤 뒷바퀴의 물컹거림이 느껴진다.

"새 튜브로 교체한지 얼마나 안됐는데 이게 뭐야. 진짜!"

화물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차고지 같은 곳에서 다시 펑크 수리를 한다. 바람이 불어 펑크 패치와 휴대용 정비 공구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녀 수리를 하는데 두 배는 힘이 들고, 바람으로 인해 싸늘한 한기마저 느껴진다.

튜브를 정비하고 지겹도록 펌프질을 한 후 바람이 빠지는지 기다린다. 후난성의 산길들을 지나며 하루에 몇 차례씩 펑크 트러블을 겪었던 악몽이 되살아 난다.

"또 한 시간을 잡아먹었구나."

풍력 발전 바람개비에 이어 이번에는 산을 깎아놓은 곳에 검은 패널들을 잔뜩 설치되어 있다.

"태양열 집열판인가?"

후이라이시내를 벗어나며 보았던 산을 깎아 파놓은 곳이 어쩌면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하기 위해 사전 작업을 한 것인가 싶기도 하고.

바람이 빠지지 않아 다시 출발했지만 장지아커우시로 향하는 우회전 안내판을 보며 타이어의 상태를 재차 확인해 보니 출발할 때의 공기압보다 느슨해져있다.

"아, *******************. 돌아버리겠다!"

도로의 방향이 바뀌었지만 바람은 정면에서 미친 듯이 불어오고, 도로는 평지처럼 보이는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 뒷변속기를 1단까지 내려 천천히 기어가지만 그것마저도 힘이 들어 잠시 자전거를 멈춰 세운다.

바람이 불어오면 정면을 보면 평지처럼 느껴지는데, 지나왔던 길을 돌아보니 눈으로 느껴질 만큼의 경사도가 보인다.

자전거를 눕히고 펌프를 꺼내어 바람을 넣으며 임시 조치를 취한다. 펑크 패치를 붙였던 곳에서 아주 조금씩 바람이 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름 특색이 있는 멋진 산들을 깎아 골재를 채취하고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해 놓은 것이 흉물스럽고 아쉽게 느껴진다.

"땅도 넓은데 굳이 산을 깎아서 그래야만 하니?"

한없이 무거워진 페달링으로 오르막을 오르고 도로변에 나타난 작은 마을의 입구에 철퍼덕 주저앉는다.

"차라리 나를 죽여라!"

계속해서 바람이 빠지는 타이어를 다시 정비하고.

자리에 주저앉아 오랫동안 쉬어간다. 베이징을 벗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주변이 풍경들이 휑하다.

"그나저나 동네 풍경들이 참 황량하다."

모든 것을 해탈한 사람처럼 무감각해지는 페달링이 이어지고.

"깜짝이야. 아저씨 놀랬잖아요!"

샤화위안구를 5km 정도 남기고 오후의 마지막 햇살이 찬란하게 빛나는 고개의 정상에 도착한다.

"천국의 문이 여기에 있네."

나지막하게 이어지던 깨끗한 도로는 샤화위구를 얼마 남기지 않고 공사구간으로 변한다.

"뭔가 불안하다. 느낌이 안 좋아!"

고층의 아파트들이 보이는 샤화위구의 모습이 나타나고 불안하게 이어지던 도로는 폭격을 맞은 것처럼 구멍들이 뚫려있다.

구멍들을 피해 가며 이리저리 핸들을 돌리는 사이 파헤쳐진 도로의 잔해물들로 길이 막혀있다.

"..."

더는 할 말이 없다.

자전거를 끌고 어떻게 넘어갈지를 확인하며 주저하고 있으니 두 명의 아저씨가 다가와 말을 건다.

파헤쳐진 길을 가리키며 난감하다는 제스처를 하자 환하게 웃으며 자전거를 들고 가자는 제스처를 한다. 아저씨들의 도움으로 자전거를 옮겨 도로를 건넌다.

"시에 시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샤화위안구의 풍경은 새로 들어선 신도시처럼 깨끗한 느낌이다. 검색해 두었던 사거리의 주점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주점을 예약한다.

"제임스 조이스 커피텔?"

모던한 인테리어의 주점은 지금까지 투숙했던 중국의 주점들과 분위기가 너무나 다르다.

"이 분위기는 뭐야. 왜 이렇게 어색하지?"

친절하고 세련된 주점의 직원들은 모두 짧은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여 쉽게 체크인을 하고, 자전거는 1층의 공간에 넣어둔다. 패니어와 짐들을 옮기고 샤워를 한 후 분위기가 있는 주점의 내부를 구경하고.

룸키와 함께 커피 쿠폰을 주어 맛있는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시고.

숙소 주변을 산책하고.

숙소로 돌아온다.

"주점 사장이 책과 커피를 좋아하나. 율리시스 굉장히 난해한 책인데."

아침에 사놓은 햄버거로 저녁을 해결하고.

자료를 정리하다 전혜린의 책을 읽으며 잠이 든다.

"내일은 여기에서 하루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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