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01일 / 맑음
부라바이-콕세타우
조용한 보로보예 호수에서의 시간이 좋다. 무거워진 마음과 피곤한 몸을 잠시 추스르고 콕세타우로 향한다. 


이동거리
90Km
누적거리
13,615Km
이동시간
7시간 36분
누적시간
987시간

 
A1도로
 
A1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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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라바이
 
케네사리
 
콕세타우
 
 
1,439Km
 
 

・국가정보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여행경보 
-
・언어/통화 
러시아어, 텡게(1텡게=3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무제한, 9,000원
・전력전압 
◦2구220
・비자정보 
무사증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7-705-757-9922

 

너무나 조용한 호숫가, 잠에 굶주린 사람처럼 밤새 푹 잔고 깨어난 아침이다.

생각해 보니 카자흐스탄에 와서 처음 보는 산과 호수다.

카자흐스탄 남부의 알마티 지역 고산지대와 달리 북부의 지역은 모두 평평한 초원 지대다.

"오늘 아침으로 이놈을 해결해야 하는데."

어젯밤 주저앉은 타이어를 정비하고.

펑크 난 곳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펑크패치가 뜯겨져 있다.

"매일처럼 이게 무슨 짓인지."

멜론을 잘라 아침을 대신한다. 달콤한 맛이 좋다.

모래사장에 앉아 느긋하게 오전의 시간을 보내며 200일의 여행을 정리한다.

11시 반, 80km 정도 거리에 있는 콕셰타우를 향해 출발한다.

호숫가 주변으로 잘 정비되어 있는 자전거길을 따라 보로보예 호수를 둘러본다.

호수의 중심지에 가까워질수록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거나 썬텐을 즐기고 있다. 가족 단위의 사람들의 움직임이 여유롭고 평온해 보인다.

야외 음식점에서 풍기는 바베큐의 냄새가 유혹의 손길을 뻗었지만 유원지의 물가는 어디를 가나 비싸다.

소나무 숲의 자전길을 천천히 산책을 하듯 이어가다 마주한 난감한 상황.

"아니, 저곳에 왜 회전문을?"

사람들이 자전거를 끌고 이동을 하기에 자전거를 끌고 통과를 해보려 했지만 쉽지 않다. 바보 같은 모습을 지켜보던 아저씨가 다가와 도움의 손길로 거들어 주어 겨우 통과한다.

20미터의 끝에도 회전문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어설픈 회전문 탓에 어렵지 않게 통과를 하고, 호숫가의 주변에는 다양한 모습으로 피서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바다가 없는 카자흐스탄도 몽골처럼 주변의 큰 호수를 바다처럼 즐기고 있고, 보로보예 호수는 너무나 아름답게 정비가 되어있다.

요란스럽게 인위적이지도 않고, 자연의 훼손을 최소화하여 꼭 필요한 만큼만의 편의 시설만이 갖춰져 있다.

"오, 자전거 도로가 끝까지 이어져 있네."

울창한 소나무 숲과.

호수변을 따라 이어지는 자전거길.

"잘 생긴 봉우리도 있고."

시간이 여유롭다면 산책과 물놀이를 반복하며 휴식을 취하고 싶은 곳이다.

잘생긴 돌 봉우리 위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과.

호수 가운데 솟아있는 바위에서 점핑을 즐기는 사람들.

"카자크 사람들은 참 조용하다. 좋다."

호수를 벗어나 콕셰타우로 가는 메인도로로 빠지는 길을 따라간다.

넓은 공터에 높게 솟은 황금 독수리탑이 보이고, 도로의 좌우로 기념품을 사고, 기념사진을 찍느라 사람들의 움직임이 바쁘다.

역시나 여러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카자흐스탄의 전통 의상을 입고 독수리와 함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독수리보다 내가 더 인기가 많다.

몽골의 의상과 달리 카자흐스탄의 전통 의상은 하늘을 날아갈 듯 하늘하늘 예쁘다.

황금 독수리탑을 지나 메인도로로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을 달려간다. 생각대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도로의 끝에 큰 오르막을 앞두고 잠시 쉬어간다.

소나무 숲의 정자에 들어가 빵과 토마토로 출출함을 달래고.

머슬맨이 주었던 빵은 맛이 좋았지만 부드러운 크림 같은 내용물이 없어 무언가가 필요하다.

패니어 속의 러시아 바르나울에 산 잼을 꺼내어 빵과 함께 먹는다.

"이건 신발을 찍어 먹어도 맛이 있겠어. 러시아 가면 또 사야지."

"문제없어? 도와줄 일이 있니?"

나무 그늘에 앉아 콕셰타우의 숙소를 검색하는 동안 중년의 남자가 다가와 영어로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후원을 하겠다며 카자흐스탄 돈을 챙겨준다.

월터의 말처럼 리치한 남자다.

높은 경사의 오르막을 오르고,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가 긴 리무진을 정차하고 환호성을 질렀지만 조금 부러우니까 그냥 웃어주며 지나친다.

팀의 결혼 사진을 보도라도 카자흐스탄에서는 결혼식을 치른 하루 종일 드레스와 예복을 입고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닌다. 그리고 이틀에 걸쳐 축하 파티를 할 때에도 예복을 입고 있었다.

"결혼하기가 정말 힘들거나 정말 행복하거나 둘 중에 하나겠지."

오르막을 끝으로 내리막이 시작된다. 달리는 동안 여러 가족,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며 즐거움을 나눈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벗어나자 바람과 함께 따가운 햇볕,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오아시스 같은 곳에서 보낸 시간처럼 아련하네."

초원 한가운데 생뚱맞게 솟아있는 높지도 않은 소나무 숲의 산과 호수를 벗어나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이상한 마을을 벗어난 느낌이 든다.

콕셰타우로 가는 A1 메인도로로 나왔다. 강한 바람이 정면에서 불어와 페달을 밟기가 힘들다.

"큰일이네. 60km는 가야 할 텐데."

내리막조차 무거운 페달을 밟아가며 내려와 도로변 휴게소로 들어간다.

계속된 캠핑으로 핸드폰의 배터리도 떨어져 가고 보조 배터리의 충전 용량도 넉넉하지 않다.

콕셰타우의 숙소를 검색하지만 몇몇의 호텔 그리고 3~5만원 정도의 숙박료에 어이가 없다.

"도대체 왜?"

가끔 작은 소도시의 숙박료가 터무니없이 높거나 쓸데없이 시설이 좋은 곳이 종종 있다.

4,500원 정도의 호스텔이 딱 한군데 검색되지만 이상하게 너무 저렴하다.

"몰라, 샤워만 하고 충전만 할 수 있으면 돼."

휴게소를 지나 도로는 90도 가까이 크게 휘어지며 바람의 방향을 살짝 비껴나게 만든다.

오르 내리막을 반복하며 부지런히 달려가고.

바람 탓에 무더위는 그럭저럭 덜하지만 갈증은 어쩔 수가 없다.

"아고, 다 와 가는가. 힘드네."

기찻길이 지나가는 다리 위에 앉아 200일의 여행을 정리한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자전거 세계일주 200일째, 막연했던 중국의 여행, 경이롭던 몽골의 하늘과 지평선 끝까지 이어지는 메밀꽃과 해바라기 밭의 러시아를 지나 카자흐스탄의 초원을 달린다.

매일 아침 짐을 싸고 어딘가를 향해 떠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길 위에 서서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 여행자의 삶에도 제법 익숙해졌다."

"세상의 넓은 땅과 하늘, 바람, 빛과 소리, 사람들의 미소와 삶의 모습들 그리고 지나쳐가는 공간과 시간의 흐름을 모두 담을 수는 없지만 이 여행이 끝났을 때 단 한 사람의 눈과 마음, 시간을 담을 수 있는 자리가 내 안에도 생겨났으면 좋겠다."

"함께 했던 시간, 서로의 바람들과 고민 속에서 조금씩 금이 가고 깨어지던 감정의 유리 파편들. 어지럽게 흩어져 떠다니던 유리 파편들 속에서 각자가 바라던 시선에 의해 굴곡되고 반사된 우리의 거리는 아주 가깝게도 때로는 그 거리를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멀게도 느껴졌다.

그 거리는 어느 정도였을까. 너무나 아프게 마음을 짓누르고, 시리도록 눈을 흐리게 만들던 그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어졌다."

"지구 한 바퀴, 그 정도의 거리일까?"

"되돌아갈 수 없는 길, 그 길 위에서 지난 시간들과 그녀로부터 멀리 벗어나 달아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아픈 거리를 가늠하며 현재의 그녀와 내 삶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익숙해져 버린 감정들을 애써 외면하며 이겨내기 보다 무거운 자전거의 무게가 조금씩 줄어가듯 마음속 감정들을 하나둘씩 내려놓는다."

"이 여행에서 나는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콕셰타우로 들어선 길에서 한국어를 하는 남자를 만난다. 사가.

"무슨 일이 있으면 나에게 연락을 줘."

다른 도시에 비해 한적한 콕셰타우의 풍경이다.

시내를 가로질러.

부킹닷컴으로 숙박을 예약한 호스텔에 도착한다. 콕셰타우의 외곽 후미진 곳에 들어선 단층의 긴 건물.

호스텔에 숙박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입구에서 즐겁게 인사를 나누는 동안 동양인 외모의 젊은이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나를 쳐다본다.

사람들과 여행에 대해 말하며 잠시 쉬고.

체크인을 위해 들어간 숙소는 꽤 길쭉하다.

"저는 고려인이에요. 아버지는 중섭김."

숙소를 운영하는 동양인 외모의 남자가 자신을 소개한다.

고려인, 남북이 나뉘어진 현실에서 중앙아시아의 교포들이 고민 속에 선택해야 했던 자신들의 정체성이다.

대한민국이 아닌 고려인이라 스스로를 칭해야 했던 사람들의 슬픔과 고뇌가 담긴 호칭이다.

짐들을 옮기고.

자전거는 실내 창고에 넣어둔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숙소의 남자가 조용히 찾아와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두만, 20살의 앳된 얼굴을 갖은 아이는 대뜸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아버지를 찾고 싶어요?"

"엉?"

"저의 아버지는 한국 사람이고, 어머니는 카자흐스탄 사람입니다. 태어나서 아버지를 본 적이 없어요."

카자흐스탄에서 일을 했던 남자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고, 두만은 자라며 아버지를 만나적이 없다고 한다.

어려운 이야기다. 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 무거운 무게가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두만의 부모님은 각자의 선택에 의한 삶이지만 두만은 그렇지 않다. 이건 너무나 부당하고 불공평하다.

"왜 아버지를 찾는데?"

"그냥 아버지니까. 한 번 만나보고 싶어요."

"그래, 너의 바람이라면 그렇게 해. 너의 권리니까."

아무런 정보도 없고, 이름과 서울에 산다는 것이 전부다. 페이스북에서 캡쳐를 한 사진만을 받아들고 검색을 시작한다.

두만의 아버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지만 핸드폰에 저장해 놓은 정보들은 모두 오래전의 것이라 도움이 되질 않는다.

"한국에서 사람 찾기가 힘든가요?"

"응, 한국에는 사람이 많아. 그리고 너의 아빠는 이름도 흔해서 힘들지 몰라. 괜찮아, 불가능하지는 않아."

무책임한 내 형제들의 모습과 오버랩 되어 화가 난다.

"두만, 내가 여기에 하루를 더 있을게. 천천히 찾아보자."

카자흐스탄의 체류기간이 빡빡하지만 전화번호라도 찾아주고 갈 생각이다.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냐. 괜찮아."

두만과 얘기를 하느라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고 식당은 문이 닫혀있다.

"에쒸, 하루 종일 굶었는데."

두만의 호스텔에는 사람들이 많다. 편안한 카자흐스탄 사람들이라 쉽게 친해지고 농담을 하며 웃는다.

이곳도 심심할 때는 카드놀이를 한다.

피곤하고 힘든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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