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00일 / 맑음
아크콜-부라바이
콕세타으로 가기 전 아스타나의 팀이 소개한 부라바이의 보로보예 호수를 구경할 생각이다. 


이동거리
143Km
누적거리
13,525Km
이동시간
9시간 30분
누적시간
980시간

 
A1도로
 
R223도로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아크콜
 
스추친
 
부라바이
 
 
1,349Km
 
 

・국가정보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여행경보 
-
・언어/통화 
러시아어, 텡게(1텡게=3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무제한, 9,000원
・전력전압 
◦2구220
・비자정보 
무사증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7-705-757-9922

 

몇몇의 차량들이 휴게소를 들러 나갔지만 크게 방해받지 않았고, 문제는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소음이 너무나 심해 쉽게 잠들기가 어려웠다.

도로와의 거리가 있었지만 빠른 속도로 지나쳐가는 차량의 소음은 도로변을 향해 오픈되어 있는 휴게실에서 더 크게 모아진다.

"휴게실 부근은 이제 안 되겠다."

새벽에 잠시 깨어 부글거리는 속을 진정시키고.

아침이 되자 텐트 밖이 요란스럽다.

"헤이, 브라더 웨이크업."

텐트를 두드리며 젊은 남자가 잠을 깨운다. 20대 중후반의 어린 남자가 반가움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일어나라며 시끄럽다.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묻던 남자는 실험실에서나 사용할 법한 이상한 유리 파이프를 가져오더니 불을 붙인다.


"뭐냐?"

"마리화나."

"이게 마리화나냐? 처음 본다."

"바보 아냐?"

어설픈 한국어로 깔깔거리며 웃던 녀석은 어디서 배웠는지 반말로 농담을 한다. 마리화나가 필요한지 묻는 녀석에게 귀찮다는 듯 거절을 하자 녀석은 차 안에서 자고 있던 여자친구를 강제로 깨워서 인사를 시킨다.

두 사람 모두 영어를 할 수 있어 대화는 편하다.

사진을 찍는 사이 버스가 들어오더니 한무리의 사람들이 큰 음악 소리에 춤을 추며 흥을 돋운다.

"아침부터 왜들 이러는 거야."

잠을 깨웠던 유쾌한 녀석은 끝내 커다란 음료수 한 병을 건네주고 떠난다.

"마리화나 정말 필요 없어?"

"어. 빨리 가."

경험에 대한 호기심은 많지만 굳이 불법행위를 하면서까지 해보고 싶지는 않고, 딱히 대마나 마리화나, 마약류에 취해 얻고 싶은 쾌락의 충동도 없다.

휴게실에 있으면 여러 사람들이 들어오고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묘한 재미가 있다.

"아침부터 셀피 타임이네."

9시에 오픈을 하는 휴게소의 매점과 어제의 식당은 영업 전이다. 가까운 거리에 카페가 있어 그곳에서 아침을 해결하기로 생각하고 길을 나선다.

파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지만 아침부터 시작된 바람이 페달링을 무겁게 만들어 놓는다.

30분쯤 도로를 달려 카페에 도착한다.

"밥 있어? 고기는?"

"노 포크!"

"알아. 소나 양고기 말이야."

네트워크가 끊긴 식당에서 어렵게 식사를 주문하고, 가지런히 담겨 나온 음식은 소고기가 올려진 으깬 감자다.

"감자.. 이걸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

미니버스에서 내린 한무리의 어르신들이 식당을 점령하고, 주문을 받느라 바쁜 여자에게 조금 전 다른 테이블에서 남자가 먹었던 계란 후라이를 해달라고 부탁해도 알아듣지를 못한다.

"에그, 후라이. 프라이 에그 앤 소시지."

계란을 수차례 반복해도, 계란후라이를 먹던 남자의 테이블을 가리키며 온갖 제스처를 해도 웃기만 하는 여자다.

"나 배고플 때 좀 민감하거든."

결국 아스타나에서 먹었던 비빔밥에 올려진 계란 후라이를 보여주고서야 주문이 끝난다.

"감자와 소고기가 다 소화됐어."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사진을 찍고, 본격적인 하루의 라이딩을 시작한다. 오늘 가야 할 목적지도 100km가 넘는 거리의 쓰추친스크, 주변에 큰 호수가 몇 개 들어서 있는 작은 마을이다.

아스타나에서 팀과 프랭키는 쓰추친스크를 지나 20km 떨어진 곳에 있는 보로보예 호수를 추천해 주었다.

"140km나 나오는데 힘들겠지? 일단, 출발!"

여전히 불어오는 바람과 여전히 끝이 없는 초원의 도로를 달리고.

하늘에는 조금씩 구름들이 뭉쳐지고.

"모이지 마. 이것들아!"

1시간 반을 달리고 휴게소에 들어가 쉬어간다.

"둥실둥실 떠다니는 얄미운 구름들."

마리화나를 태우던 녀석이 건네준 음료수는 달콤하니 괜찮다.

"터틀려 버릴 거야."

팟캐스트 음원들을 다운로드하며 앉아있는 동안 한 남자가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오, 브라더. 우리 2주 전에 파를로다르에서 만났잖아. 오, 마이 갓."

이 주 전에 파블로다르에서 나를 봤다는 남자는 믿을 수 없다며 시원한 맥주를 건네준다.

"기막히다. 어떻게 다시 만날 수가 있지? 나 기억나?"

"아니. 모르겠어."

도로 위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함께 사진을 찍었던 사람들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번엔 사진을 찍어놓자!"

사진을 찍고 남자는 맥주 병을 통째로 건네주고 떠난다.

"이거 참, 난감하네."

맥주 병을 정리하는 동안 꼬마 남자가 다가와 수줍게 영어를 써가며 질문을 한다.

정성껏 대답을 해주고, 명함을 주고 사진도 함께 찍어주니 그의 부모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지나간다.

계속해서 하늘을 뒤덮고 있는 구름은 더 강한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정말 너희들, 해도 해도 너무 한다."

가득가득 쌓여가는 구름들은.

거대하게 부풀어 커져만 가고.

완전히 하늘을 뒤덮어 놓는다.

거대해지고 검게 변한 구름에서 이내 비가 쏟아질 것만 같다.

도로변의 식당으로 들어간다.

주변에 큰 호수가 있는 식당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칸막이 방들이 마련되어 있다. 테이블이 놓여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인 듯싶다.

조금 무표정하고 불친절한 여자와 메뉴를 선택하느라 고생을 하고, 삶은 소고기 갈비가 올려진 으깬 감자와.

묘한 수프를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무뚝뚝하던 식당의 여자도 결국엔 피식 웃고 만다.

계속되는 바람과 함께 어머니의 입원 소식은 라이딩의 재미를 완전히 잃게 만든다.

정말 진절머리가 나는 형제들,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할 마음도 없다. 타인의 시선만을 의식하며 껍데기를 둘러쓰고 사는 사람들 같다.

무엇이 그들의 마음과 정신을 가난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은 눈곱만큼도 동정이 가질 않는다.

선과 악이 있어 나에게 주어진 형벌이라면 아마도 최고의 형벌일 것이다.

"악마보다 더 끔찍한 인간들."

혼자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막내 누나가 안쓰럽고 미안하다.

가는 둥 마는 둥 페달을 밟는 동안 갓길에 정차를 한 화물 트럭에서 인상 좋은 아저씨가 인사를 한다.

생각해 보면 몽골의 사람들을 차를 옆에 붙이고 인사를 하거나 자전거를 세우라는 제스처를 하는데,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차를 정차시키고 기다린다.

응원의 말을 하시더니 노란 멜론을 꺼내와 건네주고 떠나신다.

먹어보고 싶었던 것이라 너무나 감사한데 멜론의 크기와 무게가 난감하다.

"다행히 말은 아니잖아!"

렉팩 속에 멜론을 어렵게 끼워 넣고 보니 각종 음료들과 함께 무게가 상당하다.

"설마, 튜브가 터지는 것은 아니겠지."

5시 30분, 지칠 대로 지쳐간다.

"너 나랑 여행 안 갈래?"

할 수 있다면 강아지라도 한 마리 데리고 다니며 여행하고 싶다.

하루 종일 괴롭히던 바람은 콕셰타우로 향하던 도로가 크게 우회전을 하며 살짝 비껴 불어온다.

언더바를 잡고 달려 보지만 쉽게 피로해지고.

7시가 다가오며 저녁의 기운이 찾아든다.

"아직도 멀었는가?"

쓰추친스크를 앞두고 자동차의 통행이 빨라진다. 멀리 갓길에 정차한 승용차에서 상체 근육이 좋은 머슬맨들이 내려 손짓을 하고.

"오, 브라더. 크레이지 맨!"

유쾌하게 농담을 하더니 트렁크에서 무언가를 챙겨 건네주고 떠나간다.

멀지 않은 곳에 톨게이트가 나오고.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하루의 라이딩이 끝나감을 즐겁게 즐긴다.

"왔다."

쓰추친스크는 큰 산을 배경으로 도시만큼이나 넓게 퍼져 들어선 마을이다.

마을의 안쪽은 평범하고, 조금 오래된 느낌의 분위기다.

7시 50분, 일몰까지 한 시간의 여유가 있고 팀이 추천한 보로보예 호수까지는 25km의 거리가 남아있다.

"어떻게 할까?"

쓰추친스크의 뒤편 호수에서 캠핑을 하려고 했지만 마을과 너무 근접한 지역이라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에잇, 며칠째 도로만 보고 있는데 호수라도 구경하자."

보로보예 호수가 있는 부라바이까지 가기로 결정한다.

소나무 숲길에 들어서고 부라바이 15km의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좁은 이차선 도로의 업힐이 시작된다. 9시까지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길에서 험난한 암초를 만나게 된 것이다.

"설마 계속 오르는 것은 아니지?"

솔향기가 은은하게 코끝을 자극하고, 선선해진 저녁 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지만 계속 이어지는 업힐 구간에 종아리가 뭉쳐온다.

다행히 6km 정도의 거리를 오르고 길은 나지막하게 내리막이 계속되고 부라바이의 초입에 들어선다.

소나무 숲 사이로 넓은 호수와 짧은 모래사장의 모습이 드러나고, 천천히 어둠이 내려앉는다.

주변의 숙소를 검색하니 마치 유원지처럼 많은 호텔들이 검색되고, 호수 건너편으로 음악소리와 함께 불빛들이 요란하다.

"뭔 호텔이 이렇게 비싸!"

30,000~50,000원 정도의 숙소들뿐이다. 아이오버랜드를 검색해도 캠핑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저녁해는 완전히 사라진다.

"일단 중심으로 가자."

자전거를 출발하려는데 뒷바퀴가 물컹거린다.

"에잇."

자전거를 끌고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는 호숫가로 들어간다.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호숫가는 캠핑을 하기에 최상의 장소이다.

"사람들도 없고, 자리도 평평하고, 나무도 좋고, 물도 깨끗하고. 여기에 캠핑을 해도 되나?"

작은 모래사장에 앉아 붉은 노을이 저물어 가는 것을 구경하고.

"아, 이건 정말 심했네."

호숫가에 빠르게 텐트를 설치하고, 산책을 하는 몇몇의 사람들도 아무런 말 없이 지나쳐 간다.

멋진 머슬맨들이 준 토마토와 카페에서 사 놓은 빵 그리고 맥주로 저녁을 해결하고.

어젯밤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바람 속에 140km를 달려온 피로가 몰려온다.

뻣뻣하게 뭉쳐진 종아리를 주무르며 어떤 생각의 겨를도 없이 골아 떨어진다.


Trak 정보

GPS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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