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30일 / 맑음 ・ 28도
용인-성남-안양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용인에 들러 유림을 만나고 아버지에게 간다.


이동거리
76Km
누적거리
27,960Km
이동시간
7시간 19분
누적시간
2,143시간

 
도로
 
도로
 
 
 
 
 
 
 
53Km / 4시간 50분
 
23Km / 2시간 29분
 
양지
 
성남
 
평촌
 
 
1,591Km
 

 

편하게 잠든 밤이다. 흐리지만 비가 그친 하늘은 풍부한 감정을 품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 여행은 어떻게 끝이 날까?"

지난 630일 동안 계속되던 마음속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아야 할 것인지 여전히 알 수는 없다.

수없이 많은 길들을 달렸다.

그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시간을 홀로 보냈다.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알 수 없던 시간.

무엇을 버리고.

어떤 것을 담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불투명한 것들이 어지럽게 놓여있지만.

이제는 이 여행을 끝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현재를 살아갈 것이다.

"이번에도 10년 만인가?"

여전히 유림의 목소리는 친근하고 활기차다.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와 감정의 톤, 그녀의 경쾌한 웃음과 '선배'라 부르는 특별할 것 없는 일반적인 호칭은 내가 좋아하는 그 무엇 중에 하나인 것 같다.

하늘 높이 치솟은 아파트 단지 사이로 작은 모퉁이 꽃집을 찾아간다.

작업용 앞치마를 입고 있는 유림의 모습은 마치 아주 오랫동안 그 모습을 보아왔던 것처럼 편안하고 익숙하다.

작은 가게 안으로 퍼지는 꽃의 향기, 생각해 보면 유림은 꽃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왜 꽃이야? 너무 잘 어울리잖아!"

10년 만의 만남, 그 어느 때 그 무엇으로 만나든 상관없는 사람의 편안함이 느껴진다.

시원한 커피와 점심을 함께하고, 스무 살의 어느 날처럼 긴 수다가 이어진다.

"내겐 꽃 이름을 아는 것보다 어디선가 꽃이 피고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생활의 천재들 중에서

꽃, 나에게도 언제나 그대로인 꽃이 한 송이 있나 보다.

언제나 씩씩한.

여전히 게으른 나를 스무 살의 어느날처럼 수다스럽게 만드는 그녀에게 호박꽃처럼 밝은 감사를 드린다.

"얌, 또 한 시절이 지나더라도 너는 그대로 일 테니 그것으로 나는 좋을 거야!"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유림과 대화를 하느라 4시가 훌쩍 넘어간다. 유림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항상 그렇다.

"이제 가야겠다."

여행의 마지막 여정, 아버지가 계시는 분당 메모리얼 파크로 향한다.

시간이 늦어 메모리얼 파크의 출입시간에 늦을지도 모르겠다. 기흥역에서 야탑까지 20km 정도의 거리, 탄천의 자전거 도로를 따라 경쾌하게 페달을 밟아간다.

흥건하게 젖어드는 땀, 좁은 야탑천을 따라 메모리얼 파크로 향하고.

5시 반, 분당 메모리얼 파크에 도착한다. 출입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20km를 내달리고, 언덕을 오르느라 다리에 힘이 풀린다.

5시까지 안내되어 있는 출입시간이지만 몇몇 사람들과 대형 장례차량이 보인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잘 다녀왔습니다."

"좋은 시간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이제 집으로 가자."

뭔지 모를 평온함과 함께 피곤함이 밀려온다.

평촌으로 향하는 경로를 결정하고, 청계산의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 마지막 오르막 길이 싫다.

"어디 한강변에서 캠핑이나 할까."

"그래도 시원한 맥주가 그립다. 가자, 안양으로!"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한강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깨끗한 물이지만 한강 천변의 다리 밑에서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조금 짠하기도 하다.

낙생대 공원을 지나.

판교의 시내를 인도를 따라 천천히 가로지른다. 퇴근 시간대의 서울 시내 도로는 역시 끔찍하다.

청계산을 넘어가는 초입, 차량들로 꽉 찬 도로를 벗어나 하오개 옛길을 넘어간다.

로드바이크를 타고 지나쳐가는 라이더들을 따라 꾸역꾸역 페달을 밟고, 어둠이 내려앉은 시각 청계산 고개의 정상에 도착한다.

"끝이다!"

라이트와 후미등을 장착하고, 인도로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 안전하게 안양으로 들어서고.

안양천을 따라 평촌으로 향한다. 저녁 무렵의 안양천에는 산책과 운동을 나온 사람들로 혼잡하다.

"좀비들 같네."

핸드폰만 쳐다보는, 강아지를 모셔가는, 떠드느라 바쁜, 제 갈길만 가는 그리고 힘없는 발걸음의 영혼 없는 사람들이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에 뒤섞여 정신이 없다.

"다시 현실을 살아가야 하지만 누구나처럼, 저들처럼 살아가지 말아야지."

평촌역에 도착하고,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던 먹자골목은 여전히 화려한 조명들로 밝지만 오히려 한산한 풍경이다.

편의점에 들러 맥주와 소주를 사 들고, 누나의 집에 도착한다.

"다 왔네."

시원한 얼음 커피로 갈증을 달래고.

"역시, 집이 좋아!"

센스있게 안주를 사 온 조카 덕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맛!"

"너희들만 마무리하면 끝이구나."

630일, 긴 여행이 끝났다.

"괜찮다."

아직 못다 한 여행이 남았고, 하고 싶은 또 다른 바람이 있다.

"언젠가 다시 떠날 수 있는 시간이 오겠지. 그때는 혼자이고 싶지 않아."

이제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








 

 

GPS 정보

 

 후원 : KEB 하나은행/변차섭/415-910665-18507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629일 / 맑음 ・ 32도
음성-안성-이천-용인
여행이 끝나간다. 용인을 지나 서울로 향한다.


이동거리
57Km
누적거리
27,884Km
이동시간
4시간 32분
누적시간
2,135시간

 
318번도로
 
17번국도
 
 
 
 
 
 
 
32Km / 2시간 30분
 
24Km / 2시간 02분
 
음성
 
이천
 
용인
 
 
1,515Km
 

 

새벽 5시, 발과 다리를 살살 간지럽히던 배가 뚱뚱해진 모기 세 마리를 잡는다.

"흉악한 놈들!"

이내 잠이 들고, 10시가 넘어서야 잠에서 깬다. 산림욕장의 주차장에는 몇 대의 승용차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어쨌든 오랜만에 푹 잘 잤네."

조용한 새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봉학골, 상큼한 아침의 굿모닝을 알리고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정비된 계곡의 인위적인 모습이 조금 아쉽지만.

너무나 깔끔하게 정돈된 산림욕장이다.

산책로와 많은 휴식공간들이 마음에 든다.

"이제 서울로 돌아가야겠지?"

여행의 아쉬움, 조용한 봉학골에서 하루를 더 머물까 고민하는 순간 공원의 안내 방송이 들려온다.

"코로나로 인해 공원에 텐트는 당분간 칠 수 없습니다. 주차장 주변의 텐트는 정리 바랍니다."

"아, 네에!"

고맙게도 일정의 고민을 공원 관리인이 해결해준다. 비에 적었던 텐트를 말리고 천천히 출발을 준비한다.

텐트를 펼쳤던 은행나무 아래 떨어진 씨앗에서 조그만 싹이 자라고 있다.

"나를 뭉개지 않아 다행이네."

"님도, 이제 떠나시지요."

용인으로 넘어가는 지산 고개를 목적지로 정하고 출발한다. 집으로 가는 길 유림을 만나고 갈 생각이다.

봉학골을 내려와 저수지의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작은 고개를 넘어간다.

"충주, 유혹하지 마!"

국도로 안내하는 지도앱의 경로를 무시하고 작은 지방도로를 따라간다.

생극면까지 이어지는 도로변의 풍경이 마음에 든다.

생극면, 점심을 먹기 위해 검색을 하니 양평 칼국수집이 유명한 모양이다. 고민 끝에 결정한 칼국수와 김치만두 메뉴는 언제나 그렇듯 정기휴일이다.

"그래, 늘 그래서 이제는 그냥 그렇다."

생극면의 두 번째 맛집으로 찾아가 소머리국밥으로 점심을 한다.

칠순이 넘었다는 할아버지가 백발의 할머니에게 '엄마, 엄마'하며 대화를 하는 모습이 부럽고 인상적이다.

지금의 내 나이 때쯤 나를 낳았던 부모님과 살가운 대화를 나눠본 기억이 없다. 늦둥이로 애교라고는 전혀 없는 내 성격의 문제도 있겠지만 어찌 그리도 무심하게 키우셨나 싶다.

"함께 세월만큼 늙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폴란드의 수잔나는 18번째 생일을 맞았나 보다.

가족이 모두 모여 수잔나의 성년식을 축하했나 보다. 꽤나 멋진 문화이다.

생극면의 하천은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다. 하천의 오래된 벚꽃나무를 따라 체육시설들과 넓은 나무 평상들이 잘 갖춰져 있다.

"캠핑하기에 최고네."

작은 면소재지의 잘 조성된 생활 편의시설에 면장이 누구일까 궁금할 정도다.

작은 고개들을 넘고.

경기도에 들어선다.

이천으로 들어서며 길은 평탄하게 변한다.

"김해, 김제, 나주 그리고 이천 평야, 김포도 있나?"

"너도 덥지?"

"이렇게 끝나는구나."


한가롭던 지방도로가 끝나고 신경질적인 국도를 따라 용인의 백암면으로 향한다.

거친 자동차들의 지나침에 따라 아무런 생각 없는 페달링의 속도도 빨라진다.

빠르고 쉽지만 지루하고 위험한 국도에서 벗어나 백암면에 들어선다.

하나로마켓에 들러 무려 500원밖에 안 하는 폴라포 두 개를 사든다.

"뭐든 서울이 싸!"

사각거리며 사라져 가는 폴라포의 시원함으로 갈증을 달래는 동안 하늘의 빛이 수상하다.

"오늘도 쏟아지려나?"

용인시까지 이어지는 17번 국도, 어느새 가을의 느낌이 나는 하늘이다.

오늘의 목적지였던 지산 스키장 부근의 고갯길에 도착한다. 어둑해지던 하늘에서 여지없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마음만 먹으면 용인을 지나 평촌까지도 갈 수 있지만 비를 맞기도 싫고, 힘들게 가야 할 이유도 없다.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고.

정자 위에 텐트를 펼친다.

소나기가 내린다. 이틀 동안 퍼붓던 폭우에 비하면 잔잔한 이슬비 정도다.

공원에 수도시설이 없어 땀으로 끈적거리는 몸이 불편했는데 마침 빗줄기가 강해진다. 모든 옷을 벗고 내리는 빗물에 몸을 씻는다.

"개운함이란."

내일이면 여행이 끝난다.

"집으로 가자. 아, 나는 집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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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28일 / 비 ・ 28도
괴산-음성
지난 밤 폭우를 맞은 몸은 몸은 힘이 없다.


이동거리
27Km
누적거리
27,827Km
이동시간
3시간 45분
누적시간
2,131시간

 
516번도로
 
가마치통닭
 
 
 
 
 
 
 
21Km / 2시간 35분
 
6Km / 1시간 10분
 
목도면
 
음성
 
봉학골
 
 
1,458Km
 

 

자정 가까이 내리던 빗줄기는 처음 폭우가 시작될 때처럼 순식간에 멈춘다.

"정말 요망한 날씨다."

배추밭의 주인이 폭우로 유실된 배추들을 찾아 밭고랑을 살피는 움직임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다.

"잠은 잘 잤는데, 나른하네."

푹 잠든 편안한 잠자리였는데 몸에 힘이 없다.

"배가 고픈가?"

비에 젖은 것들을 말리고.

목도면으로 출발한다.

"탐스럽게 열렸네."

작은 고개를 넘고 목도면에 들어선다.

목도 강수욕장은 지난 폭우로 인해 출입통제 상태이다.

"어제 왔어도 야영은 못했겠네."

출입통제 중이지만 강수욕장의 강변과 나무테크로 만든 휴식공간은 꽤나 좋은 시설로 들어서 있다.

조용한 목도시장으로 들어간다. 작은 면소재지에 제법 큰 재래시장이 있다는 것이 의아하다.

깔끔하게 정비가 된 재래시장, 제비 소리가 청아하게 울리는 한산한 시장 골목을 둘러보고.

이덕화와 찍은 사진이 크게 걸려있는 보신탕집에서 염소탕을 주문한다.

"몸이 허해진 거야. 보신을 해야지."

든든하게 허기를 채우고 나니 졸음이 밀려온다. 주민센터가 있는 공원의 정자에 드러눕는다.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의 움직임과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의 시원함이 좋다.

"이 동네는 뭔데, 이렇게 좋지?"

시골의 작은 면소재지지만 잘 정비된 재래시장, 강변의 캠핑장과 자전거 도로 그리고 번듯한 주민센터와 깔끔한 공원까지 들어선 마을이 궁금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교통과 상권의 중심지였을까?"

한 시간 넘게 단잠에 빠져들고 깨어나니 맑았던 하늘빛이 수상하다.

"왜 이래?"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다 이내 멈추고 다시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강변 옆의 정자에서 비를 피하며 바닥에 떨어진 5천 원을 발견한다.

"오, 대박!"

비에 젖은 지폐의 흙을 털어내고 슈퍼마켓에 들어가 밀키스와 얼음 생수를 산 후 음성으로 향한다.

"예수님, 님아 제발 님의 백성들 좀 어떻게 해봐요!"

수상한 하늘빛과 구름의 움직임.

"아, 멋지긴 한데."

두껍게 내려앉은 구름이 이제는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음성군에 들어서고.

좋은 은행나무길을 달리고.

나무그늘에서 화투를 치는 할아버지들을 구경하고.

검은 구름이 내려앉은 음성읍을 향해 달려간다.

"오늘도 망했어!"

"쏴아."

만화에서나 봤을법한 빗소리의 지문이 음향으로 살아나 들리는 것 같다.

주춤해진 빗줄기를 틈타 페달을 밟으면 다시 쏟아지고.

쏟아지고.

쏟아진다.

"에이, 정말!"

편의점 외부 의자에 앉아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며 읍내에 있는 모텔을 검색한다.

"치사해서 숙소에 들어간다."

폭우가 시작된지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모텔이 있는 방향으로 빗속을 달려가다.

읍내의 중심이 끝나갈 때쯤 옛날통닭의 우아한 자태에 정신을 잃고 만다.

"아, 너가 여기서 왜 나와?"

밖에서 빗물을 닦아내며 서 있으니 주인이 나와 전화주문을 했냐며 물어본다.

"아니요. 두 마리 주세요!"

숙박비는 치킨값으로 나가버렸고, 다행히 치킨이 튀겨져 나올 때쯤 멈출 것 같지 않던 비가 천천히 잦아든다.

"역시 치느님의 은혜를 입어야 해."

편의점에 들러 소주 한 병을 챙겨들고.

어제 검색했던 봉학골 산림욕장으로 향한다.

산 위로 넘어갔던 비구름이 다시 내려앉기 시작하지만 패니어에 담긴 치킨이 있으므로 오늘 밤 폭풍이 불어와도 괜찮다.

산림욕장으로 가는 저수지의 언덕을 오르고.

봉학골 산림욕장에 도착한다. 주말이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공원에는 캠핑을 하는 사람도, 계곡을 관리하는 사람도 없다.

깔끔하게 정비된 계곡과 깨끗한 산림욕장의 공원, 주차장을 지나 캠핑 자리를 살피며 입구에 도착하자 낯익은 경고문의 안내판이 보인다.

"그렇지. 자전거는 안 돼."

잘 정돈된 조각공원의 잔디밭도.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휴식공간도.

안락해 보이는 숲 속의 넓은 정자들도 모두 좋지만.

"그림 속 떡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다면 굳이 하지 말라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

수도시설과 화장실의 위치를 확인하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텐트 자리를 찾는다. 차박 캠핑을 하는 두 대의 차량이 보인다.

"그럼 내 자리는 여기."

비를 막아줄 타프가 없는 상태라 은행나무 우거진 곳에 텐트를 펼친다. 다음 국내 여행을 할 때는 가벼운 타프도 하나 들고 다녀야겠다.

텐트를 설치하고 공원의 수돗가에서 비에 젖은 몸을 씻어낸다.

치킨과 소주로 달콤한 저녁을 한다. 소주 대신 맥주를 샀어야 했나 보다.

"역시 치맥인가? 아니지 쏘맥에 치킨이어야 했어!"

텐트에 달라붙은 모기떼들, 밖에 놓아둔 생수를 마시고 싶지만 난감하다.

밤이 깊아지며 다시 빗줄기가 강해지고 모기들이 사라진다.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계곡물소리와 함께 찢어지는 고음의 노랫소리가 섞여서 들려온다.

주자창 건너편에서 차박을 하고 있는 젊은 커플이 술을 마신 후 말도 안 되는 화음을 넣어가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다행이다. 계곡물소리가 훨씬 우렁차서."

여행이 끝나간다. 충주로 방향을 틀거나 서해안을 돌아 남쪽으로 내려갈 수고 있지만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용인으로 가서 유림을 만나고, 아버지에게 들리면 끝인가."



 

 

GPS 정보

 

 후원 : KEB 하나은행/변차섭/415-910665-18507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627일 / 비 ・ 26도
화양구곡-괴산읍-불정면
화양구곡을 산책하고 괴산읍을 향해 출발한다.


이동거리
31Km
누적거리
27,800Km
이동시간
4시간 10분
누적시간
2,127시간

 
515번도로
 
폭우
 
 
 
 
 
 
 
22Km / 2시간 40분
 
9Km / 1시간 30분
 
화양동
 
괴산읍
 
불정면
 
 
1,431Km
 

 

8시, 조금씩 더워지는 텐트의 온도에 잠이 깨고 산책로에 펼친 텐트를 서둘러 정리한다.

새벽에 내렸던 짧은 소나기에 젖어있던 텐트를 말리고.

계곡의 넓적 바위에 슬리핑 에어매트를 깔고 여분의 잠을 잘 생각이었지만.

해가 뜨고 기온이 올라가니 잠자기가 불편하다.

"날이 화창하니 좋네."

물속으로 들어가 첨벙거리니 계곡으로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한 가족이 들어온다.

아이들에게 계곡을 양보하고 그늘에 앉아 자료를 정리하고, 어제 편의점의 여주인이 챙겨준 햄버거와 꼬치들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다.

12시가 가까워지자 계곡은 여러 가족들이 찾아와 붐비기 시작한다.

"떠날 때가 됐군."

선유동문 계곡과 충주로 가는 경로를 고민하다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이제는 여행을 끝내야 할 것 같은 생각과 여전히 허전한 무언가가 충돌을 하고 있다.

"할 수 있다면 멀리, 아주 멀리 떠나고 싶어."

한국에 들어온 이상 더 오래 여행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아프다.

"이렇게 왔는데, 화양구곡을 좀 둘러봐야겠지?"

자전거를 공원의 초입에 묶어두고 화양계곡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간다.

"화양 서원만 구경하고 내려오자."

우암 송시열이 머물렸다는 화양동, 한 시대를 풍미한 학자이자 문인이었지는 모르겠으나 유교와 사대주의에 찌들어 망해가는 조선을 상징하는 인물로 기억된다.

숲길이 끝나고 다리를 건너자 화양구곡의 2곡 운영담이 나온다.

구름의 구림자가 맑게 비친다는 운영담.

수영금지의 안내판과 이리저리 어지럽게 쳐져있는 밧줄들이 요란하다.

몇 개의 숙박, 슈퍼, 음식점을 겸업하는 펜션을 지나자 화양서원이 나온다.

서원, 위패를 모시고 제를 올리며 학문을 탐구하던 곳이라 허울 좋게 말하지만 조선시대 양반들의 계급 권력을 상징하던 장소이다.

송시열이 사약을 받고 죽은 후 다시 노론이 득세하자 송시열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지었나 보다.

서인이니 남인이니, 서론이니 노론이니 당파싸움만 일삼던 권력자들의 영원한 권세에 대한 헛된 욕망들이 낡은 서원의 일부로 남아있다.

"사대주의에 찌든 유교적 양반네들이 여기에 모여서 못된 짓들만 골라서 했다 이거지!"

대단한 위세로 가파르게 쌓여있는 돌계단들과 그 위로 들어선 콧대 높은 건물들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역겹다.

회연서원을 조금 지나친 곳에 다시 몇 개의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다. 커피와 점심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몰고 온 차량들이 계곡의 산책로를 가로막고 있다.

"참 이상하고 불편한 나라야."

식당의 맞은편 계곡으로 오래된 사당과 함께 4곡 금사담이 나온다.

크고 작은 넓적 바위들 사이로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계곡의 풍경은 이전까지 완만했던 계곡의 풍경과 느낌이 다르다.

좋은 계곡을 양반들이 서원을 세우고 차지했으니 천한 민초들이 시원한 계곡물에 마음 편히 발이나 담글 수 있었겠나 싶다.

"예나 지금이나."

4곡 금사담부터 시작되는 계곡의 풍경은 정말 매력적이다.

"저게 첨성대인가?"

산 중턱으로 재미있는 바위들이 쌓여있는 첨성대를 지나 계곡을 따라 오르다 발길을 멈춘다.

"발 담그고 쉴 것도 아닌데, 내려가자."

입구로 돌아와 목적지를 정하지 못하고 괴산읍으로 무작정 향한다.

"저기서 점심을 먹어야겠네."

괴산읍으로 향하는 515번 도로, 달천을 따라 이어지는 풍경이 좋다.

달천의 굽이마다 들어선 마을들의 풍경과.

폭과 모양을 달리하여 유유히 흘러가는 달천의 풍경에 빠져 한낮의 무더위도 잊은 채 페달을 밟아간다.

49번 도로로 갈아타야 하는 덕평리에 들어서고 도로변에서 보았던 짬뽕집에 찾아갔지만 늘 이렇다.

"한 시간이나 남았네."

배터리들을 충천하며 1시간을 기다릴 생각으로 가게 문을 열고 1시간 후 영업을 하는지 물으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젊은 남자는 시큰둥하게 그렇다고 답한다.

"됐다. 괴산에 가서 먹자."

음식점 부근 삼거리로 내려와 갈증을 달래기 위해 슈퍼마켓으로 들어간다.

"동민슈퍼, 성신슈퍼?"

"롯데 커피와 해태 얼음과자, 최고의 조합이네."

"동민슈퍼, 성신슈퍼."

아주 작은 시골마을의 골목을 사이에 두고 슈퍼마켓이 2개나 있는 것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더 오래된 동민슈퍼의 낡은 간판.

"여기는 낚시, 생닭, 얼음, 김치."

동민슈퍼 옆의 약과 철물을 취급했던 오래된 가게는.

건너편 성신슈퍼로 옮겨간 것 같다.

"여기는 담배, 낚시, 얼음, 약."

약과 철물을 팔던 성신이 새 건물로 옮기며 담배와 식료품을 함께 팔기 시작한 모양이다.

"성신이 너무했네."

끝없이 이어지는 상상을 뒤로하고 괴산읍으로 향한다.

"날씨가, 하늘이 참 좋다!"

49번 도로로 진입하고 달천 강변의 마을에 감탄이 새어 나온다.

"여기, 좋다!"

넓게 굽이쳐 돌아가는 달천, 해변처럼 넉넉한 모래사장 그리고 멀리 속리산을 감싸 안은 풍경이 너무나 좋다.

마음에 드는 마을의 풍경을 뒤로하고 달천을 넘어가는 다리를 넘으니 산막이 옛길의 이정표가 나온다.

"아, 여기는구나."

옛길의 풍경이 아름답다는 산막이 옛길, 달천을 따라 고개를 넘는 길이 꽤나 흥미롭지만 중간 부분은 자전걸로 갈 수 없는 길이라 포기했던 코스다. 산막이 마을에서 유람선을 타고 이동할 수 있지만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유람선도 아니거니와 코로나 때문에 유람선의 운행도 불투명하다.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괴산읍으로 향하는 고개를 넘어간다. 습도가 높은 오후의 시간, 미끌거리는 고무신과 흘러내리는 땀으로 온몸이 흥건하게 젖어든다.

괴산읍에 들어서고 검색을 해두었던 순댓국집은 생각했던 것보다 좋지 않아 지나치고.

읍내 도로변의 백반집을 확인하고, 먼저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편의점으로 간다.

시원한 얼음 음료로 목을 축이고, 수돗가에서 발을 씻은 후 오늘의 야영지를 검색한다.

20km 떨어진 음성의 산림욕장과 12km 정도 떨어진 괴산의 강수욕장이 괜찮은 것 같다.

"강수욕장?"

달천의 넓은 천변을 해수욕장처럼 정비하고 캠핑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무료 공간이다.

"목도 강수욕장, 여기 좋네."

강수욕장 근처의 목도시장에서 저녁거리를 사서 캠핑을 할 생각으로 출발을 서두른다.

1시간 정도 편의점에서 쉬는 동안 하늘빛과 바람의 느낌이 수상하게 변해있다.

"설마?"

목도면으로 가기 위해 괴산읍을 빠져나가자 하나둘씩 떨어지던 굵은 빗방울은 순식간에 폭우로 바뀌어 쏟아붓는다.

멀리 보이던 맑은 하늘도 어느새 사라지고 온 세상이 뿌옇게 변해간다. 계속되는 언덕과 고갯길을 넘어가고 쏟아지는 빗줄기에 눈을 뜰 수가 없다.

"아, 미친다!"

지도를 확인하기 위해 꺼낸 핸드폰은 빗줄기 속에서 미친 듯이 오작동을 하고.

도로의 굴다리로 들어가 비를 피하며 지도를 확인한다.

"이건 뭐, 목도면에 가도 강 주변에서 캠핑을 할 수 없잖아."

폭우로 강물이 불어났을 목도 강수욕장에서 캠핑을 할 수는 없다.

"배고픈데, 목도시장 까지만 갈 수 없나."

캠핑장이 아니더라도 마을의 정자에 텐트를 펼치면 폭우를 피할 수 있어 큰 상관은 없지만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이 문제다.

"꼭 이렇더라!"

약간의 소강상태, 멈출 것 같던 비는 또다시 쏟아붓는다. 조심스럽게 내려온 길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도로를 벗어난 곳에 낡은 원두막이 보인다.

"일단 피신!"

목도면 까지 얼마 남지 않은 거리, 빗줄기가 약해지기를 기다리지만 의미가 없다. 네이버의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강우확률 30%냐!"

비에 젖은 옷들을 갈아입고.

패니어들을 떼어내 오두막에 텐트를 펼친다.

강풍에 대비해 튼튼하게 텐트를 고정하느라 갈아입은 옷도 모두 젖어버린다.

"에쉬, 텐트를 치고 갈아입을 걸."

텐트 안으로 들어온 모기들을 퇴치하고.

"흉악한 놈들!"

텐트 밖에 우글거리며 붙어있는 모기들을 쫓기 위해 모기향을 피워놓는다.

"오늘 먹을 복은 이게 전부인가 보다."

라면을 끓이고 나니 텐트 안이 찜질방처럼 후끈하다.

폭우는 자정까지 계속된다. 쏟아지는 폭우량에 비해 바람은 잔잔하여 오두막의 텐트는 나름 아늑하다.

"구라청!!!"

 

 

GPS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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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626일 / 맑음 ・ 28도
속리산-괴산-화양구곡
호들갑스럽게 떠들던 태풍 바비는 조용하게 지나갔다. 태풍이 지나가고 잠잠해진 하늘, 화양계곡으로 향한다.


이동거리
37Km
누적거리
27,769Km
이동시간
3시간 12분
누적시간
2,123시간

 
도로
 
도로
 
 
 
 
 
 
 
25Km / 1시간 45분
 
12Km / 1시간 27분
 
속리산
 
괴산
 
화양동
 
 
1,400Km
 

 

새벽에 쓸데없이 잠에서 깨어 비와 바람소리를 체크한다. 불규칙한 빗소리와 바람소리가 들려오지만 호들갑스럽게 떠들던 매스컴의 태풍예보가 과장처럼 느껴진다.

잠시 밖으로 나가 상황을 체크해도 역대급이라는 태풍의 위력은 지난 폭우의 위력에 비하면 가는 이슬비 정도의 느낌이다.

"구라청! 기레기들!"

"어제 비가 많이 왔어요?"

"글쎄, 여기는 태풍이 안온 것 같은데."

아침 늦게까지 늦잠을 자고 모텔을 나서며 아저씨와 인사를 나눈다.

인상이 좋았던 큰집 식당에 들러 비빔밥으로 이른 점심을 한다. 조용한 미소의 아주머니보다 더 친절한 아저씨가 밥 한 공기를 더 내어주며 많이 먹으라며 웃는다.

"속리산은 큰집 식당!"

"하루 더 계곡에서 보낼까?"

조용한 속리산 계곡에서 하루를 더 보내도 좋을 것 같고, 법주사를 둘러본 속리산에서 대청봉을 오르는 트래킹을 하지 않는다면 딱히 할 것도 없을 것 같다.

"절대 산은 오르지는 않아."

어디로 향할지 결정을 못하며 시간을 보내고, 속리산 둘레길의 코스를 검색하다 화양구곡과 선유동계곡에 호기심이 닿는다.

"가자!"

고개들을 넘느라 흥건하게 땀을 흘리고.

무언가를 심느라 바쁜 시골의 할머니들.

"배추네. 이제 가을이 오나 보다."

고개와 고개를 넘어가지만 바쁠 것 없는 여행자의 마음은 한가롭다.

"그래도 너무 많이 넘어간다. 힘들어!"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해 마을 입구의 정자에서 비를 피해간다.

할머니들이 베개로 사용하는 정자의 물통을 베고 낮잠을 잔다.

한 시간 정도 잠을 자고 나니 비는 멈추었다.

"마저 가 볼까?"

화양계곡으로 가는 마지막 고개를 넘어가고.

넓고 풍부한 달천을 마주한다.

도로를 벗어나 화양계곡의 화양천으로 향한다.

"왔다!"

계곡의 초입, 넓은 화양천에는 물놀이를 하는 가족들이 모습이 보인다.

초입의 슈퍼에서 땀에 젖은 발을 씻어내고, 계곡 주변의 식당과 편의시설들을 검색하지만 몇몇 펜션을 제외하고 별다른 것이 없다.

"음식들을 사서 가야 하네."

속리면의 수많은 음식점들이 그리워진다.

저녁거리와 이틀 정도 머무를 동안의 부식들을 사기 위해 편의점으로 들어가 결정장애의 머뭇거림을 반복한다.

냉동 삼겹살, 스팸과 각종 훈제 꼬치들의 유혹, 결국 라면과 가래떡, 편의점 도시락을 골라 들고 계산대로 향한다.

"어머, 여행을 하시나 봐요."

"네."

여행에 대해 호기심을 보이던 여주인은 메모지를 건네며 사인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어떻게 여행을 하게 됐어요?"

"그냥 인생 중 한 5년만 나를 위해 시간을 쓰기로 했어요."

여주인은 훈제 꼬치들을 잔뜩 선물해준다.

해가 떨어진다.

"캠핑할 곳은 정했어요?"

"아니요. 가다가 계곡에.."

"캠핑이 안 되는데!"

"계곡에 텐트를 못 치나요?"

"네. 해가 지면 눈치를 봐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려 편의점으로 들어가자 여주인은 신발 하나를 선물하겠다며 예쁜 고무신발을 가져온다.

사이즈가 맞지 않는 신발, 여주인은 편의점으로 들어가 여러 종류의 신발을 뒤적이고 적당한 사이즈의 신발이 없자 물놀이용 의류를 선물한다.

"감사합니다."

어둠이 내려앉기 전 텐트를 펼치기 위해 계곡으로 향한다.

계곡의 초입으로 화양구곡의 1곡 경천벽이 나온다.

기암절벽 위로 소나무들이 자라 있는 풍경이 이색적이다.

"뭐, 생각보다는 그저 그런데."

경천벽 주변 계곡의 빈약함 때문인지 큰 감흥이 없다.

소나무숲길을 따라 길을 따라가니 화양구곡의 공원 입구가 나온다.

풍성한 산책로를 따라 이어지는 공원의 초입을.

지나치려는 순간 눈에 들어오는 안내문에는.

"자전거 출입금지?"

"왜? 왜 그래?"

계곡 주변에서 캠핑을 할 수 없다는 편의점 아주머니의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이미 해가 떨어진 시각, 다시 슈퍼마켓이 있는 계곡의 초입으로 내려갈 것인지 고민을 하다 잠시 공원 입구의 주차장 주변을 둘러보기로 한다.

주차장 휴게소 뒤편의 계곡에 물놀이를 하던 한 가족이 자리를 정리하고 있다.

넓적 바위가 있는 넓은 공간이 마음에 든다.

일단 계곡물에 들어가 땀과 열기를 식히고.

"바위에 텐트를 칠까?"

"오늘은 물가가 조금 위험하니 주차장 근처에."

비예보가 있어 계곡 주변을 피하고 주차장 주변에 텐트를 펼치기로 한다.

휴게소의 화장실과 수도시설을 확인하고.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나무테크 산책로의 넓은 공간도 확인한다.

"여기?"

"일단, 물속에 더 들어가 놀자."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몸을 뉘어본다.

"석양빛이 참 좋네."

나무테크의 넓은 공간에 텐트를 펼친다.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엄청나게 몰려든 날벌레들을 쫓아내고.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 든다.

"화양구곡도 선유동문 계곡도 자전거로는 못 가네.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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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25일 / 비 ・ 26도
법주사
조용한 속리산의 하루, 법주사로 산책을 간다. 오후 늦게 태풍 바비가 상륙한다는 기상예보가 요란스럽다.


이동거리
6Km
누적거리
27,731Km
이동시간
1시간 58분
누적시간
2,120시간

 
법주사
 
태풍
 
 
 
 
 
 
 
1Km / 20분
 
5Km / 1시간 38분
 
공원
 
법주사
 
모텔
 
 
1,363Km
 

 

새벽 6시, 밤을 꼴딱 지새우고 환하게 밝아오는 아침의 기운 속에서 기절하듯 잠이 든다.

아침 9시, 풍성한 단풍나무의 그늘은 매우 시원하다. 피곤하게 잠에서 깨어난 뒤 다시 침낭을 끌어당긴다.

아침 10시, 조각공원의 계곡으로 인솔자와 함께 몇몇의 아이들이 들어온다.

"날씨, 태풍 바비는 어디까지 왔지?"

제주 남쪽까지 북상한 태풍 바비, 구글의 기상예보와 네이버의 기상예보가 엇갈린다. 가끔씩 소나기 예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구름 낀 흐린 날을 예상한 구글과 다르게 네이버는 12시부터 비가 내린다고 예상한다.

"곧 알겠네. 근데 바로 비가 내릴 하늘은 아닌데."

태풍의 영향권으로 들어가는 내일은 숙소를 잡고 태풍을 피하려고 한다. 속리산의 둘레길을 돌아 상주로 가려던 계획을 태풍으로 인해 변경해야 한다.

"근처에 저렴한 숙소는 청주에 있는데."

속리면에도 많은 모텔과 펜션 그리고 민박들이 있지만 하나같이 터무니없는 숙박비다. 30km 정도 떨어진 청주 외곽의 저렴한 숙소를 검색해 놓는다.

"청주로 내려가서 다시 속리산으로 올라오기도 그렇고."

상주, 충주, 여주를 거쳐 경기도로 돌아가려던 일정이 꼬였다. 청주, 안성, 용인으로 가는 경로를 생각하고 있지만 수도권 외곽의 중소도시를 거쳐가는 경로가 탐탁지 않다.

"이렇게 여행이 끝나는가."

"뭐하지?"

"일단 굿모닝을 알리고."

텐트 옆으로 수다스러운 중년의 남녀가 자리를 잡는다. 넓은 공원의 다른 공간도 많은데 굳이 텐트 근처로 와서 자리를 잡는지 모를 일이다.

배터리들을 모두 들고 식당으로 간다.

속리산 방향의 하늘이 거뭇거뭇 어둡다.

"네이버가 이긴 건가?"

배터리를 충전하며.

밥을 먹고.

배터리를 맡겨놓고 법주사를 둘러볼 생각이었지만 말을 걸어도 시큰둥한 식당 어르신에게 배터리 충전을 부탁하기가 그렇다.

식당 옆 카페로 들어가 충전을 부탁하고, 아메리카노 커피를 들고 법주사로 간다.

"구글이 이긴 건가?"

매표소에서 4,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태풍으로 등산로는 올라갈 수 없다는 안내를 받는다.

"법주사만 갈 거예요."

특별히 매력적이 않은 체험 숲길을 따라 걷는다.

단풍나무들이 풍성하게 숲을 이루는 법주사길은 가을에 오면 꽤 괜찮겠다 싶다.

법주사로 들어간다.

두 그루의 나무가 높게 자란 천왕문이 보이고.

그 뒤로 황금빛 청동 미륵대불의 모습이 웅장하다.

특별해 보이지 않는 사천왕상의 천왕문은 조금 실망스럽다 생각하며 지나치니.

은은한 옛스러움이 매력적인 팔상전 목조탑이 마을을 사로잡는다.

대웅전은 외관 공사 중이라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어 아쉽다. 중앙계단의 석상이 꽤 독특하다.

팔상전 단청의 은은한 색과 모양 그리고 처마 끝에 매달려 있는 풍경 소리가 너무나 좋다.

넓고 깨끗하게 정돈된 법주사, 법주사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팔상전이 아닌가 싶다.

법주사 측면에 보이는 커다란 암석 바위들 사이로 약수터가 보이고.

암석에 새겨진 미륵불의 조각도 보인다.

"나도 돌 하나 올리고."

"역시 구글이 이겼군."

사찰 주변으로 여기저기 쌓여있는 조그만 소원의 돌탑들이 많다.

"허전하니까 마지막으로."

"어머니도 건강하게, 그녀도 행복하게.."

매표소 근처 찻집의 나무판자로 만든 담이 매력적이다.

텐트가 있는 조각공원까지 걸으며 한가로운 법주사 산책을 마친다.

"캠핑 의자?"

텐트로 돌아와 쉬려고 하니 뭔가가 어색하고 허전하다. 텐트 옆에 있어야 할 의자가 없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아침에 텐트 옆으로 자리를 잡았던 중년의 커플이 버너에 라면을 끓이며 내 의자를 바람막이로 사용하고 있다.

어이가 없어 할 말이 없다. 라면을 끓여먹으며 소주를 마시고 있던 사람들은 겸연쩍은 웃음으로 라면을 먹으라고 말한다.

시끄럽고 한심하고 무례한 사람들이다.

"됐고, 의자나 다 쓰셨으면 주세요."

카페로 가서 배터리들을 찾아오며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서 죠스바를 발견한다.

냉동고의 문을 열는 내 표정이 꽤나 즐거웠는지 가게의 할머니는 자신의 손주들도 죠스바를 좋아한다며 웃으신다.

"우리 아이들도 꼭 그것만 먹어! 맛있나 봐."

돌아와 뒷바퀴가 주저앉아 있는 자전거를 정비한다.

계곡물에 튜브를 넣어 펑크가 난 곳을 찾고, 타이어를 쓰다듬어 타이어에 박힌 이물질을 찾아낸다.

"요놈이!"

소나기가 오락가락 내리다 멈추기를 반복하고, 술에 취한 4명의 남녀는 시끄럽게 떠들더니 드러누워 잠을 잔다.

"쌤통이네. 소나기야, 더 내려라!"

소나기를 맞으며 잠을 자던 남녀들은 황급히 잠에서 깨어 계곡을 떠나고 주변은 다시 조용함이 찾아든다.

"아무래도 수명을 다 했나 봐."

반복되는 소나기,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만드는 계곡물의 풍경이 유혹적이다.

시원한 계곡물속으로 들어간다.

두어 시간 아무도 없는 계곡물에서 조용하게 물놀이를 하는 젊은 커플의 모습이 아름답다 느껴진다.

"무례하고 한심했던 중년의 남녀들도 한 때는 그러했을까? 아니야, 사람은 변하지 않아. 이건 타고난 정서의 문제야!"

잠시 후 계곡으로 찾아와 신나게 놀던 어린 브로맨스들은 계곡의 안전요원 아저씨에게 꾸중을 듣고 사라진다.

비와 바람이 조금씩 강하게 불어온다. 텐트를 정비하고 태풍의 경로와 날씨를 살펴보니 태풍의 북상 속도가 오전에 비해 빨라졌다.

내일 오전에 중부지방을 지나간다던 태풍이 이른 새벽시간으로 앞당겨져 있다.

"오늘이야, 내일이야?"

역대급 태풍이라 호들갑을 떠는 매스컴의 예보를 믿지는 않지만 어쨌든 오늘 밤 태풍을 피하는 것이 맞다.

서둘러 짐들을 정리하고.

검색해둔 청주 외곽의 모텔로 가기 전 속리면의 모텔을 둘러본다.

코로나로 인해 한산하던 거리는 태풍으로 더욱 적막하게 변해있다.

"어머니, 하루에 얼마예요?"

출입문이 활짝 열려있는 오래된 모텔의 여주인과 눈이 마주쳐 숙박료를 물어본다.

"4만원요."

"깎아주시면 안 돼요?"

모텔 앞을 빙글 돌며 대답을 기다리고, 안된다는 부정적 손사래를 하려는 순간 안쪽에서 인상이 좋은 어르신이 웃으신다.

"한 명?"

"네."

"들어와요. 3만원에 해줄게."

고급스럽지도 않고, 최신식 모텔도 아니지만 가끔씩 이런 오래된 여관들이 정겹고 좋다. 청주 외곽의 모텔도 25,000원의 숙박료이니 30km 떨어진 곳까지 서둘러 가는 것보다 낫고, 속리산의 둘레길을 따라 여행하려던 계획도 변경할 필요가 없으니 괜찮은 선택이다.

"태풍이 오긴 오는가 봐."

소나기가 멈춘 하늘은 빠르게 어두워진다.

현금을 찾아 숙박비를 내고, 2층의 방은 예전 여관의 모습이지만 나름 깨끗하고 에어컨도 잘 작동이 된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주변 음식점들을 둘러봐도 모두 산채비빔밥이다.

"비 오는 날에는."

주인아저씨에게 근처에서 어느 집 해물파전이 제일 맛있는지 물으니 빙긋 웃으며 말한다.

"맛? 그 나물에 그 밥이지! 다 똑같아."

"그렇죠? 그럼 아무 식당이나."

"그럼 길 건너 한성식당에 가서 여기 모텔에서 왔다고 많이 달라고 해!"

아저씨가 알려준 식당은 문이 닫혀있다. 음식점 중 제법 큰 식당에 들어가 해물파전을 주문한다.

이틀 동안 먹었던 식당의 무뚝뚝한 어르신에 비해 조용하게 웃는 아주머니의 인상이 좋다.

"배고파요. 많이 주세요!"

"대박!"

슈퍼에서 알밤막걸리 한 통을 사들고 모텔로 돌아온다.

뉴스속보를 보며 막걸리와 파전으로 저녁을 한다.

"아, 맛 좋다. 고맙다, 태풍아!"

새벽녘 정도에 중부 지방을 지나간다는 태풍은 저녁 늦게까지 잠잠하다.

"구라청이 구라청 했나?"

배터리들을 모두 꺼내 충전을 하고, 막걸리 한 통에 알딸딸하니 좋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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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20일 / 맑음 ・ 34도
성주-김천
바람을 만나기 위해 김천으로 간다.


이동거리
44Km
누적거리
27,639Km
이동시간
4시간 46분
누적시간
2,109시간

 
59번도로
 
3번국도
 
 
 
 
 
 
 
34Km / 2시간 25분
 
10Km / 2시간 21분
 
사인암
 
김천
 
은기리
 
 
1,240Km
 

 

기암절벽과 산들이 만들어 준 시원한 그늘은 아침 늦게까지 게으름을 피울 수 있도록 해준다.

약간의 허기짐은 간헐적 단식의 가벼움과 불필요함을 동시에 알 수 있을 것 같다.

"시원한 모닝커피가 간절해!"

깨끗한 계곡물에 들어가 아침의 상쾌함을 느낀다.

텐트와 짐들을 정리하는 동안.

어린아이들이 물고기를 잡겠다며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는다.

"어제 많이 잡아서 이제는 물고기가 없어!"

아이들의 서툰 물고기 잡이만큼 서툰 핑계들에 피식 웃고 만다.

고기를 잡은 아이들의 소란한 소리가 계곡에 울려 퍼지고, 김천을 향해 출발한다.

45km 정도의 거리, 부담스럽지 않지만 배가 고프다.

어제 도로변에 노점이 있었던 선바위에서 자전거를 멈추고.

"오, 있다!"

국수 같은 메뉴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통닭과 라면이 요기를 할 수 있는 메뉴의 전부다.

김치를 조금 담아주는 여주인이 옆자리에 앉아 여행에 대해서 묻는다. 차분하게 이어지는 경상도 사투리는 운율이 느껴질 만큼 감미롭다.

"이렇게 좋은 사투리를 왜 그렇게들 시끄럽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어젯밤부터 변변한 식사를 못했다는 말에 청국장과 꽈리고추볶음을 내어준다.

"그래도 먹을 복은 있네예."

오후에 통닭을 튀겨 계곡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나눠 먹는다며 통닭을 먹고 가라고 한다.

"김천까지 가야 하는데, 그럼 쉬었다가 갈까요?"

"그래요. 계곡에서 놀다가 통닭을 먹고 가요."

1시, 3~4시에 출발을 해도 김천까지 멀지 않은 거리라 선바위에서 쉬었다 가기로 한다.

밥과 라면을 먹은 터라 더는 배가 고프거나 통닭이 먹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노점 여주인의 마음이 고맙다.

선바위 근처의 계곡에는 제법 괜찮은 넓적 바위들이 있다. 어제 사인암까지 올라가지 않았어도 괜찮았겠다 싶다.

계곡물에 몸을 적시고, 바위에 앉아 자료들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낸다.

815 광화문에서 열린 빤스목사의 집회 이후 코로나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정말 싫다."

대가천 9 개 굽이의 물줄기를 따라 9 수의 시를 지었다는 무흘구곡, 조선시대 양반들의 한량스러움이 예수를 파는 사람들의 천박함보다 고귀하게 느껴지는 날들이다.

어느새 3시가 넘어가고 그늘에 앉아 더위를 피한다.

"아재야, 아재야!"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노점의 여주인이 통닭을 먹으라며 작은 접시를 건네준다.

바삭하게 튀겨진 아주 작은 통닭, 여느 옛날 통닭집보다 맛이 좋다.

통닭을 튀기느라 손등의 피부가 기름에 데어 얼룩덜룩 벗거진 노점 여주인의 손을 바라본다.

"손."

작고 뭉툭한 하얀 손, 타인을 향해 쉽게 내밀어지지 않는 고집과 반가움의 손짓이나 위로의 토닥임조차 낯설게 외면하는 수줍은 손은, 무언가를 담고 간직하기보다 버리는 것이 익숙한 너무나 게으른 손은, 지난 과거의 상흔들을 간직한 채 때때로 그 아픔의 깊이를 기억하게 만든다. 수줍고 게으른 손을 내려다본다.

"부끄러운 손이지만 난 네가 좋아. 괜찮아!"

"얼음을 많이 담아서 커피 한 잔을 만들어주세요."

여주인은 가득 담은 커피를 건네주며 전화번호를 묻는다. 여주인이 불러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번호를 남긴다.

"가끔 전화주이소."

"김천으로 가 볼까?"

4시가 넘어서야 무흘구곡을 떠나 김천으로 향한다. 지도앱으로 그리 높지 않은 고개를 넘으면 김천까지 순탄한 길이다.

조마면의 경계인 고개의 정상에서부터 길게 내리막길이 이어지고, 도로변 마을의 작은 서원이 눈에 들어온다.

몇 개의 양봉통이 놓여있는 시골집 담벼락에 자전거를 기대어 놓고.

작은 서원을 둘러본다.

"공부깨나 한 동네인가?"

한 칸짜리 작은 서원의 옛 풍경이 궁금하다.

제법 깨끗하게 정리가 된 서원의 모습은 이름 모를 마을의 정서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서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작은 지각이 보인다.

"효열각."

열부 함양 오씨 정려기의 위비문을 읽어본다.

"서기 1888년..."

병이 든 남편에게 손가락을 깨물어 수혈을 하고, 병간호 끝에 사망하자 미망인으로 칭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식음을 전폐하고 죽은 함양 오씨.

"뭔가 이상한데."

"순천 사람 박빈은 사헌부감찰로 선조 때 부친이 병석에 눕자 10년간 함께 자면서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였다. 그러다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3년간 무덤 옆에서 움막을 짓고 사는 시묘살이를 했다. 부인 함양오씨는 남편을 대신하여 품팔이와 구걸로 어려운 살림을 뒷바라지하였다. 그 후 남편이 죽자 식음을 전폐하여 3일 만에 남편의 뒤를 따라갔다. 오랜 세월이 지나 지역 유림의 천거로 1888년(고종 25)에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디지털 김천 문화대전


"대체 어느 대목에서 감동을 받고 교훈을 얻어야 하는 것이냐?"

순천 박씨 가문의 화합과 자부심을 꾀하고, 충효사상을 전승하기 위해 세워졌다는 비석에는 "通訓大夫司憲府監察孝子順天朴公諱贇淑夫人烈婦咸陽呉氏之閣" 비문이 새겨져 있다.

"끝까지 이름 없이 불린 여자의 삶이네."

400년 전 가혹했던 여자의 삶이 애처롭기에 앞서 비석을 새우고 지각을 지어 올린 100년 전 유교적 꼰대들의 곰팡이 나는 가치관에 구역질이 난다.

"낡은 경운기는 정겹기라도 하지."

조마면을 지나고 천천히 김천 시내로 들어선다.

편의점에 들러 얼음컵만을 사고, 얼음이 녹은 커피를 부어 마신다.

"좋아!"

남은 얼음에 미지근해진 물을 넣고 김천 시내를 가로질러 빠져나간다. 생각했던 것보다 김천 시내의 규모가 꽤 크게 느껴진다.

김천시를 벗어나자 도로는 자동차 전용도로로 바뀐다.

"거의 다 왔는데."

"그래, 10년 만인가?"

기찻길을 건너고.

포도밭과 복숭아밭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달콤한 과일향이 느껴진다.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는 시골길을 지나 마루바람에 도착한다.

"이쪽은 내 남편 마루님 그리고 영범이."

마루님이 준비해 놓은 저녁을 함께 하며 시간을 보내고.

모기들을 피해 집으로 들어가 밤늦게까지 함께 술을 마신다.

"그렇게 바람은 마루에 머물렀구나."


 

 

GPS 정보

 

 후원 : KEB 하나은행/변차섭/415-910665-18507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619일 / 맑음 ・ 36도
성주-김천
계속되는 폭염, 더위를 피해 대가천의 무흥구곡으로 들어간다.


이동거리
28Km
누적거리
27,595Km
이동시간
3시간 16분
누적시간
2,105시간

 
30번도로
 
30번도로
 
 
 
 
 
 
 
12Km / 1시간 20분
 
16Km / 1시간 56분
 
비봉암
 
성주호
 
사인암
 
 
1,196Km
 

 

정자가 만든 그늘 덕분에 오랜만에 10시까지 늦잠을 잤지만 어제 폭염 속에서 도로를 달려온 피곤함이 남아있다.

"더위 먹었나?"

1,400미터의 가야산 자락으로 들어온 탓인지 어제와 달리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지만 시원함도 잠시뿐 바람이 멈추면 후덥지근한 공기가 후끈하다.

"모든 것이 나른하고 귀찮다."

빤스목사, 개독교 그리고 극우 꼴통들의 광화문 집회 이후 코로나 감염자가 전국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하필이면 대구, 김천, 상주의 경상북도를 지나가는 시기에 광기 어린 한심한 짓을 벌여놓은 터라 쓸데없는 걱정거리를 만들어 놓는다.

"사람이 적은 외진 코스로 빨리 벗어나자."

제대로 항해조차 못하고 잠깐 맛보기만을 한 영일대의 요트 타기, 검붉게 익어버렸던 팔과 다리의 피부가 벗겨져 나간다.

"바다 위의 햇볕의 강렬함을 몰라봤다."

 

땀띠가 생겼는지 어제부터 몹시 가렵던 엉덩이와 옆구리가 수상하다. 아무래도 약국에 들러 연고를 사야 될 것 같다.

가까이 있는 가천면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으로 천천히 출발을 한다.

어제 늦게 도착하여 구경하지 못한 회연서원을 둘러본다.

"거리는 얼마 안 되는데 무흘구곡을 다 둘러볼 수 있나?"

더운 날씨에 계곡을 따라가는 길이 쉽지 않을 것이다. 선바위나 사인암 부근에서 캠핑을 해야겠다 싶다.

대가천 주변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오래된 서원이다.

"아무리 봐도."

"옛날 그림과 다른데."

그림 속 높게 치솟은 비봉암, 기생 봉비가 춤을 추다 떨어져 죽었다는 비봉암은 쉽게 찾기가 힘들다.

천천히 둘러보고 싶은데 작은 날파리들이 달라붙어 귀찮게 한다. 조선시대 양반문화에 대해 별 관심이 없으므로 날파리들에게 항복하고 허기를 채우러 가천면으로 간다.

교차로에서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오고.

다방이 굉장히 많은 가천면의 면소재지 창천리에 들어선다. 마을 초입에 있는 중국집에서 해물짬뽕을 주문하고, 점심시간이라 음식점에 사람들이 많다.

한참 후에 나온 짬뽕은 그릇 가득 수북하게 올라온 해물들과 야채들이 인상적이다. 자극적이지 않은 국물이 좋다.

"동네 맛집이네."

가격도 저렴하고 양도, 맛도 괜찮으니 작은 면소재지의 음식점인데도 찾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어제 아침으로 돼지국밥을 먹은 후 음료수와 커피 이외에 아무것도 먹질 않았는데 짬뽕 한 그릇을 비우기가 힘들고, 쉴 새 없이 떠들며 밥을 먹은 어린 친구들의 수다에 현기증이 난다.

"원래라면 밥 한 공기를 추가로 말아먹어야 정상인데, 어제 더위가 심하기는 했나 보다."

편의점에서 얼음 커피를 사려고 마을의 수호신이라는 회화나무 그늘에 자전거를 세운다.

시원한 에어컨을 틀어놓고 낮잠을 자고 있는 약사를 깨워 땀띠 연고를 달라고 한다.

"연고로 줄까요, 분으로 줄까요?"

잠이 덜 깬 약사는 진열대를 뒤적거리더니 벌레 물린데 바르는 연고를 건네주며 깨알같이 적혀있는 효능 설명 문구의 '땀띠'라는 글자를 찾아 보여준다.

"급한대로 상관은 없지."

"나무가 참 좋네. 700살이라고?"

편의점에서 얼음 커피를 사 와 나무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계곡으로 올라간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 닭강정을 파는 가게를 발견했지만 더운 날씨에 귀찮아져 그냥 지나친다.

"설마 가는 길에 음식점 하나쯤 있겠지. 이러면 꼭 망하던데 자전거도 무겁고 길도 힘들고 귀찮다."

성주호를 향해 길은 올라가고, 저수지 외곽을 따라 크게 돌아가는 대가천 계곡길이다.

느릿느릿 굴러가는 페달링은 작은 사찰 입구의 나무 그늘에서 멈춘다.

먹다 남은 얼음 커피로 갈증을 해결해보지만 너무나 부족하다.

"겨우 7km 왔는데."

캠핑지로 결정한 사인암까지 13km가 남아있다.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 작게 오르내리는 도로는 힘든 코스는 아니지만 더위가 문제다.

햇볕이 내리쬐는 계곡 건너편으로 정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무흘구곡의 3곡 배바위의 무학정이다.

사유지임을 알리는 펜션의 마당을 가로질러 무학정이 있는 계곡 물가로 내려간다.

이곳에서 물놀이를 하라는 듯 넓고 풍부하게 고여있는 무학정의 계곡물이다.

대가천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기 좋은 장소들은 하나같이 펜션이 들어서 있어 캠핑은커녕 물가로 진입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펜션이 들어선 자리 이외의 지역은 도로의 펜스가 이어져 들어갈 수도 없다.

"뭔가가 아쉬운 계곡인데."

많은 펜션들이 들어선 도로를 따라간다. 민박, 평상 임대와 같은 현수막들이 곳곳에 붙어있고, 계곡에서 취사나 야영을 금지한다는 현수막도 수없이 붙어있다.

계곡의 환경을 생각하는 느낌보다는 마치 계곡에서 놀려면 펜션을 이용하라는 협박처럼 느껴진다.

펜션이나 민박집에서 계곡에 설치해 놓은 평상이나 영업시설들을 철거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싶다.

"평상에서 취사를 하고 음식들을 먹는데, 전혀 설득력이 없잖아!"

내일 김천으로 넘어갈 도로를 지나치고 평상 임대 현수막이 더 빈번해지는 계곡으로 올라간다.

도로 건너편 계곡으로 평상들이 들어서 있고, 넓은 공간의 계곡물이 나온다.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있는 4곡 선바위다.

계곡의 넓은 공터는 펜션은 없고 정자와 몇 개의 벤치가 설치되어 있다.

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커피와 음식들을 파는 노점이 있고, 그 옆으로 코로나 검사를 하는 검사소가 설치되어 있다.

먼저 체온을 체크하고 방명록에 출입기록을 작성하니 노란 손목띠를 채워준다.

"정자도 있고, 공터도 넓고, 그늘도 있고, 음식도 있고."

캠핑하기에 좋은 장소지만 뭔가 밋밋한 계곡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단 킵. 사인암을 가보고 마음에 안 들면 내려오자."

5km 정도 떨어진 곳의 다리 밑으로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풍부한 계곡물 그리고 넓적 바위들, 계곡의 도로변에는 그늘막을 치고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네."

"그런데 멋진 바위는 어디에? 설마 저것?"

"이상하게 뭔가 속은 기분처럼 아쉽네."

언양 작천정 계곡의 만족스러움 때문인지 대가천 계곡의 풍경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뭐 이 정도면."

넓적 바위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 몸을 담근다.

"아, 시원해!"

어제의 피로 그리고 오늘 하루의 나른함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해가 지면 사람들이 떠날 도로변 공원의 나무 그늘에 텐트를 펼칠까 생각했지만 시원한 물가가 마음에 든다.

"일단 날씨를 확인하고, 비예보 없지!"

텐트를 펼치고, 공원에서 고기를 굽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냄새에 갑자기 허기가 밀려온다.

짬뽕 한 그릇을 다 비우지 못할 정도로 입맛이 없었던 하루인데, 급작스럽게 찾아든 식욕이 난감하다.

"닭강정을 사 왔어야 했어."

물속에 들어가 열기를 식히고, 따듯하게 달궈진 바위에 누워 삼겹살을 그려본다.

"아, 오늘 제대로 배고프겠다."

내일 김천으로 찾아갈 행숙 누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통화를 한다.

"낼 와서 밥 먹고, 신랑이랑 술 한잔해. 김천에 들러서 흑돼지도 먹고 오고."

"흑돼지?"

"김천에 흑돼지가 유명해. 내일 저녁에 뭐 먹고 싶어?"

"흑돼지 삼겹살!"

"이 더운 날?"

"어!"

"그럼, 네가 구워 먹어라."

"어!"

삼겹살 냄새와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성을 잃은지 오래다. 정신이 혼미하다.

젖은 옷들을 갈아입고, 간지럼이 시작되는 엉덩이와 옆구리에 연고를 바르니 아주 시원하고 좋다.

해가 지고 사람들은 모두 계곡을 떠난다. 혼자만의 시간, 흐르는 계곡물소리의 청량감, 유난히 밝고 맑은 밤하늘 별들의 청하함, 조용히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의 친근함 그리고 지독하게 밀려오는 배고픔의 긴 밤이 시작된다.

"배고프다!!!!!"

"잡아먹는다. 저리 가라!"

패니어를 뒤적여 카레와 빵으로 허기를 채워보지만 역시나 부족하다.

"삼.. 겹.. 살.."



 

GPS 정보

 

 후원 : KEB 하나은행/변차섭/415-910665-18507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618일 / 맑음 ・ 36도
창녕-대구-고령
지루한 낙동강 자전거길을 벗어나 내륙의 도로를 따라 여행한다. "덥다. 계곡으로 가자!"


이동거리
78Km
누적거리
27,567Km
이동시간
5시간 43분
누적시간
2,101시간

 
도로
 
도로
 
 
 
 
 
 
 
40Km / 3시간 00분
 
38Km / 2시간 43분
 
창녕
 
달성
 
고령
 
 
1,168Km
 

 

뿌연 물안개가 내려앉은 새벽, 차량들의 소음 소리에 잠시 잠에서 깨어났다 다시 잠이 들고 만다.

"오늘은 또 얼마나 더우려고 이러니?"

텐트를 말리고.

"어디로 가지?"

낙동강을 따라가는 낙동강 자전거길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인다.

"힘들어도 낙동강을 벗어나 산으로 가자."

고령을 지나 성주에 있는 무흘구곡으로 목적지를 바꾸고, 김천의 마루바람에 들러 바람을 만날 생각이다.

"창녕에 있는데, 지나가는 길에 잠시 얼굴이라도 볼까요?"

바람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보조 배터리 충전을 맡겼던 식당으로 간다.

반갑게 맞이해주는 식당 부부의 웃는 얼굴이 친근하다.

돼지국밥과 함께 육수를 만들며 함께 삶는 족발을 담아준다.

그리고 아침에 삶은 수육을 썰어 담아주고, 편의점에서 얻어온 빵들을 건네준다.

"어디로 가세요?"

"글쎄요. 계곡으로 가려고요."

이틀 동안 친절과 미소를 보여준 부부에게 인사를 하고 고개를 넘어 창녕읍으로 향한다.

무더위 속에서 이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5번 국도를 따라간다.

국도 라이딩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마을길로 벗어나도 보고.

창녕읍의 경계를 지난다.

다른 지방에 비해 인구수가 많아서 그런지 창녕읍의 규모도 생각보다 크게 느껴진다.

언덕길을 올라 읍내로 들어서고 첫 번째로 보이는 편의점에 들어간다.

"와, 덥다 더워!"

다시 국도를 따라 현풍읍으로 향한다.

가야산이 있는 소백산맥의 자락으로 들어서기까지 어쩔 수 없이 이어가야 하는 지루한 코스다. 무더위 속에서의 라이딩은 짧고 굵게 라이딩을 하고 길게 휴식을 갖은것이 좋은 것 같다.

"대구다, 대구! 빨리 벗어나자!"

대구시 달성군에 속한 현풍읍의 모습도 꽤나 크고 발전이 된 모습이다. 7~80년대 계발의 혜택을 먼저 누린 이곳 지역들의 모습은 전라, 충청도 지방 도시들의 모습에 비해 규모가 크고 발전된 모습이다.

첫 번째로 보이는 카페로 들어간다. 창녕읍의 편의점에서 산 얼음 커피의 얼음이 녹기 전에 도착했지만 흘러내리는 땀과 갈증으로 지쳐간다.

"카시아처럼 나도 빙하가 줄어드는 것이 슬프지만 지금은 네가 제일 필요해!"

커피와 함께 얼음을 가득 얻어 냉수를 들이켠다.

한 시간이 넘도록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폭염 속으로 들어간다.

그늘 한 점 없는 강변길을 달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땡볕의 자전거길을 벗어나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로 벗어났지만 그늘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고령으로 가는 팔만대장경의 자전거길, 호숫가에 세워진 오래된 정자에서 잠시 쉬어가고 싶은데, 득달같이 달려 붙는 날파리들의 습격에 포기한다.

"에쉬, 저리 가!"

그늘이 있는 편한 정자를 앞에 두고.

날파리들에게 벗어나기 위해 뙤약볕에서 얼음물로 갈증을 달랜다.

"정자에서 낮잠을 자고 가면 좋겠는데."

고개를 넘어가고 다시 이어지는 고개를 피해 강을 따라 멀리 돌아간다.

땀으로 미끌거리는 신발에 물을 적시느라 바쁜 하루다.

지루한 농공단지를 돌아 고령의 초입에 도착한다.

"괜히 돌아왔나? 지친다."

대가야읍의 중심으로 들어가 대형 슈퍼마켓으로 좀비처럼 찾아간다.

"있다!"

폴라포 두 개를 손에 들고 밖으로 나와.

"저 통닭이 먹고 싶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폴라포 두 개.

무흘구곡이 시작되는 대가천까지 20km 정도를 더 가야 한다.

터널을 통과하고 지루하게 이어지는 국도의 오르내리막이 뜨거운 날씨와 함께 힘들게 한다. 대가야읍에서 얼음과 커피를 사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폴라포는 하나만 먹고, 얼음 커피를 샀어야 했는데."

도로를 달리던 중 고무신발이 미끌리며 벗겨져 나간다. 신발이 벗겨지며 헛페달링에 돌아간 페달이 정강이를 찧는다.

"에쉬!"

"이 짓을 오늘만 몇 번을 하는지."

길게 이어지던 1 터널의 이름을 보고서도 2 터널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것을 보니 꽤나 지쳤나 싶다.

밀려드는 갈증과 더위에 지친 몸이 납돌처럼 무거워진다.

낮은 업다운이 이어지는 도로를 벗어나 슈퍼마켓이 있는 수륜면으로 들어간다. 한적한 시골의 풍경, 조금 어두운 오래된 상점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가 앉아있다.

탄산이 들어간 아주 옛날의 그 음료수, '사랑해요 밀키스'를 골라 든다. 이름만 들어도 그 맛이 느껴지는 추억의 음료수다.

"주윤발 따거가 멋지긴 했어."

"할매, 이 부채는 파는 거예요? 그냥 주는 거예요?"

"하나 가져가!"

"감사합니다."

작천정 계곡에서 아이들이 버리고 간 날개가 부러진 아이언맨 손선풍기를 그냥 버린 것이 가끔은 아쉽게 느껴졌는데 할머니에게 부채 하나를 득템 한다.

열대야가 있어도 이제 조금은 괜찮을 것 같고, 텐트 안으로 들어온 모기를 잡을 때도 유용할 것 같다.

"할매, 여기 계곡에 텐트 치고 잠잘 곳이 멀어요?"

"계곡?"

"네."

"계곡은 멀데이. 자전거 타고 못 간다. 여기 조금 올라가 내려가만 보물섬이라 카는데 나온다. 거 뒤로 잔디밭에 정자도 있고, 물도 나오고.. 거가 좋다."

할머니가 말하는 곳은 무흘구곡의 1곡 회연서원이 있는 비봉암이다.

"할매, 거 멀어요?"

"아이다. 조금 올라가 내려가다 오른쪽에 보물섬이라고 있다."

할머니가 말하는 보물섬이 뭔지 검색하니 회연서원 앞에 있는 음식점이다. 슈퍼마켓이 있는지 물으니 술을 파는 곳이 있다며 조금 비싸다고 알려준다.

할머니에게 밀키스 하나를 더 사고, 건강하시라고 인사를 전한 뒤 보물섬을 찾아 회연서원으로 간다.

산세가 높은 가야산으로 저녁해가 사라진다.

 

할머니가 말하던 보물섬은 삼겹살과 된장찌개 같은 메뉴가 있다. 먼저 텐트를 치고 보물섬에서 삼겹살을 먹어도 좋을 것 같다.

더위에 지친 하루,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 생각난다.

회연서원의 외관을 살짝 살펴보고.

"조선 양반들의 삶이란 정말 한가롭다."

"그런데 비봉암이라는 기암 바위는 어딨어?"

기암 바위의 비경이 펼쳐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회연서원의 강변 쪽 모습은 꽤나 허탈하다.

"무흘구곡, 이런 느낌이야?"

폭우로 인해 범람했던 강변이 조금 더 황량하게 보이는 탓이겠지만 무흘구곡이라는 멋들어진 명칭이 혹시 과장된 미화가 아닐까 의심을 해본다.

할머니가 알려준 공원의 정자에 자전거를 세우고.

"오, 일단 식수대 완벽."

"먼저 씻자."

화장실 앞에 있는 수돗가에서 샤워를 하니 하루의 피로가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다.

정자 위에 텐트를 펼친다. 강바람이 불어와 오늘 저녁은 덥지 않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피곤함에 입맛이 사라져 삼겹살도, 소주도 귀찮게 느껴진다. 아침에 식당의 남자가 챙겨준 빵들은 더운 날씨의 열기 속에서 모두 상했을 것 같아 버리기로 한다.

"먹을만한 것이 하나도 없네. 그냥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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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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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17일 / 맑음 ・ 34도
밀양-김해-창원-창녕
밀양으로 갈지 아니면 김해로 갈지를 고민하다 대통령님을 만나러 김해 봉하로 간다.


이동거리
54Km
누적거리
27,489Km
이동시간
4시간 39분
누적시간
2,096시간

 
낙동강길
 
낙동강길
 
 
 
 
 
 
 
13Km / 1시간 10분
 
41Km / 3시간 39분
 
밀양
 
봉하
 
창녕
 
 
1,090Km
 

 

아침 햇볕을 막을 그늘을 예상한 텐트 자리는 적중했다. 교각이 만든 그늘로 다른 날에 비해 조금은 아침 더위가 덜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공원의 주차장에 차들이 몰려들어 어수선하다.

"오늘은 이렇게 잠을 깨우는구나."

요즘 들어 평균적으로 4~5시간 정도 잠들기가 힘들다. 내 안 어딘가 차곡차곡 쌓여가는 피로의 저금통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른 8시부터 주차장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침수로 인해 망가진 공원을 청소하기 위해 모인 자원봉사자들이다. 더운 날씨에 고생들이 많다.

수돗가로 가서 세수를 하고.

어디로 향할지 고민을 한다.

"속리산, 속리산으로 갈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밀양이 궁금하지만 봉하마을의 김해로 결정한다.

"밀양에 전도현은 없잖아."

텐트를 말린다. 아침 이슬과 바닥의 물기, 머지않아 이 계절도 바뀌려나 보다.

자원봉사자들의 밥차인 줄 알았는데 푸드트럭이다.

패니어에 무게를 더하던 동전들을 꺼내어 밀크커피를 사고.

"비율이 어떻게 되는 거지? 맛있단 말이야."

뽀송하게 텐트가 마르는 동안 봉화마을을 지나 어디로 향할지 결정한다.

"일단 창녕까지."

짐들을 챙겨 아침을 먹기 위해 삼랑진읍으로 돌아간다.

"이 집은 휴가인가?"

시장 근처에 돼지국밥집으로 들어간다.

"경상도에 왔는데, 한 끼 정도는 괜찮지 뭐."

"대통령님을 만나러 가 볼까!"

레일바이크가 운영되는 철로를 지나고.

김해로 넘어가는 철교를 건너간다. 지난 여행에서 멋진 저녁노을을 만들어줬던 철교이다.

철교를 넘으면 바로 김해시.

짧은 거리지만 곧 넘어가야 할 고개를 생각하니 숨이 답답하다.

그 고개를 앞두고 잠시 큰 한숨을 내쉰 후 페달을 밟는다. 짧은 고개지만 올 때마다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고개를 넘은 후 자전거 도로를 벗어나 한림면으로 향한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가다 봉화를 빠져나가는 길은 농공단지 같은 공장들이 즐비하고, 큰 화물트럭들의 통행이 잦아 꽤 힘든 코스였다.

한림역을 지나 봉화마을로 향하는 천변길을 따라간다. 국궁장으로 잘못 들어선 길에서 잠시 헤매고.

"설마 차량 도로가 끝이라는 거겠지?"

산책로는 봉화의 습지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폭우의 침수로 조금 황량해진 풍경이 주인을 잃은 아버지의 헛간처럼 쓸쓸한 느낌이다.

습지공원의 끝에 봉화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알 수 없는 헛헛함이 찾아든다.

한적할 것으로 생각했던 봉화마을은 습지공원의 모습과 달리 활기가 느껴져서 좋다.

생가터 건너편으로 체험센터가 새로 지어지고.

마을을 찾은 몇몇 사람들과 마을을 둘러본다.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함께 찾아와 헌화를 하는 사람들이 조용하게 마을을 둘러본다.

"잘 다녀왔습니다."

지난번 둘러보지 못한 공간들을 거닐며 시간을 보내고.

"마을이 더 아담하고 예뻐졌네."

"계셨으면 마을을 가꾸며 즐거워하셨을 텐데."

두어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으로 묘역을 둘러보는 순간 노란 바람개비들이 돌아간다.

"그래요. 바람이 불면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

낙동강 자전거 도로로 진입하기 위해 김해의 농로길을 따라 달린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이지만 들녘의 풍요로움은 여유롭다.

가끔씩 보이는 연꽃밭에서 자전거를 세운다.

개화 시기가 지난 것인지 아니면 이른 꽃들이 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분홍빛 은은한 꽃들이 만발하면 예쁠 것 같다.

샤워기의 꼭지처럼 생긴 꽃이 진 봉오리들이 귀엽다.

계절이 지나가고 있음이 느껴지는 농촌의 풍경들이 좋다.

농로와 마을길을 따라가던 길은 낙동강 자전거 길로 이어진다.

강변의 자전거 도로로 들어가지 않고 시골길을 따라가다.

국도와 만나는 지점에서 어쩔 수 없이 자전거 도로로 들어선다.

강을 따라 길게 뻗은 지루한 자전거 도로다.

"이 길을 따라가다 정신이상이 생길 것 같다."

아무런 특색도 없이 강을 따라 이어지는 낙동강 자전거 도로, 이 길을 따라 국토종주를 하는 사람들의 기분이 궁금해진다.

낙동강 자전거 도로를 따라 부산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자전거 타고 강 보러 가냐'던 카일라스 형님의 말이 십분 이해가 된다.

"이런 의미 없는 길을 계속 갈 수는 없어!"

"겹겹이 쌓여있는 우리나라의 산들과 풍경들도 참 곱다."

 

지루했던 창원시의 구간보다 창녕군의 자전거 도로는 그늘이 있고.

 

오르내리막의 도로가 있고.

 

반대편으로 펼쳐진 풍경이 있어 조금은 지루함이 덜하지만 라이딩의 즐거움을 찾기에는 부족하다.

 

강을 따라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를 벗어나 길게 뻗는 도로를 타고 빠르게 페달을 밟아간다. 속도를 내어 달려가다 보니 

 

"이런 것에 적응하는 거 아닌데."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창녕의 함안보가 나온다. 낙동강 자전거길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함안보를 건너야 하지만 자전거 도로를 따라 라이딩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지 오래다.

 

"아, 잊을 뻔했네. @%@#%$^%$%$%$&^, 쥐새끼!"

 

함안보를 지나 오늘의 목적지였던 송진 삼거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야영을 한 후 낙동강 자전거길이 아닌 도로를 따라 창녕읍으로 향할 생각이다.

 

고민의 여지없이 곧장 시원한 편의점에 들어간다.

 

"저기 나무 밑에서 야영을 할까?"

 

"몰라, 일단 폴라포!"

 

비싼 편의점의 폴라포로 행복감을 느끼고 있을 때 편의점의 마케팅 안내문이 눈에 들어온다.

 

"뭐야? 아이스크림을 킵해주는 거야?"

 

폴라포 3개를 한꺼번에 먹을 수 없어 비싼 1,200원의 가격으로 하나씩 사 먹었는데, 증정품이나 남은 상품 등을 모바일 앱에 보관할 수 있나 보다. 

 

"이러는 거 아니다. 왜 이제서야 보이는 거냐!"

 

만만한 데미소다 1+1을 사 들고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편의점을 나온다.

 

삼거리에는 편의점 옆에 있는 짬뽕집, 그리고 길 건너편의 돼지국밥집이 있다. 

 

"하루에 투 국밥을 할 수는 없잖아."

 

매콤한 짬뽕국물이 생각나 중국집의 아저씨에게 영업시간을 물으니 8시라며 시큰둥하게 대답을 한다.

 

"투 국밥을 할지언정 친절한 집으로 갈 테다!"

 

돼지국밥집으로 들어서자 중년의 부부가 친절하게 인사를 하고 영업시간을 묻자 8시까지 영업을 한다며 안내를 한다. 1시간의 여유가 있지만 텐트를 펼치고 오기에는 빠듯한 시간이다.

 

"일단 먹자."

 

돼지국밥과 소주 한 병을 주문하고, 보조 배터리를 충전하며 남자 주인에게 밖에 있는 수돗가에서 씻을 수 있는지 물어본다.

 

"그럼요. 거기 비누랑 샴푸도 있으니 사용하세요."

 

아침에 삼랑진에서 먹은 돼지국밥과는 국물 맛부터 다르다. 진하고 부드러운 육수와 넉넉한 내용물들이 제대로다.

 

평상시 같으면 두 공기 정도 거뜬하게 비웠을 저녁 식사인데 지루한 낙동강길에서 더위를 먹었는지 식욕도, 술맛도 그저 그렇다.

 

"저희가 내일 아침 8시에 문을 열거든요. 필요한 것들을 충전하고 아침에 찾아가세요."

 

텐트를 설치하는 동안 보조 배터리의 충전을 부탁하니 식당의 부부는 부족한 배터리들을 충전하고 내일 찾아가도 된다고 말한다. 참 친절하고 웃는 얼굴이 부드러운 부부이다.

 

오래된 나무 근처에 텐트를 설치하고, 충전해놓은 배터리를 찾으러 오니 테이블에 시원한 음료수와 빵이 놓여있다. 밝게 웃는 부부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대용량 배터리의 충전을 부탁하고 나온다.

 

식당 옆 수돗가에서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텐트에 누웠지만 열대야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 

 

"부채가 필요한가?"

 

편의점으로 들어가 얼음 커피를 마시며 열대야의 열기가 사그라들기를 기다린다.

 

새벽 1시가 넘어가며 조금씩 더위가 사그라든다. 

 

"그나저나 내일부터 어디로 가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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