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20일 / 맑음 ・ 34도
성주-김천
바람을 만나기 위해 김천으로 간다.


이동거리
44Km
누적거리
27,639Km
이동시간
4시간 46분
누적시간
2,109시간

 
59번도로
 
3번국도
 
 
 
 
 
 
 
34Km / 2시간 25분
 
10Km / 2시간 21분
 
사인암
 
김천
 
은기리
 
 
1,240Km
 

 

기암절벽과 산들이 만들어 준 시원한 그늘은 아침 늦게까지 게으름을 피울 수 있도록 해준다.

약간의 허기짐은 간헐적 단식의 가벼움과 불필요함을 동시에 알 수 있을 것 같다.

"시원한 모닝커피가 간절해!"

깨끗한 계곡물에 들어가 아침의 상쾌함을 느낀다.

텐트와 짐들을 정리하는 동안.

어린아이들이 물고기를 잡겠다며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는다.

"어제 많이 잡아서 이제는 물고기가 없어!"

아이들의 서툰 물고기 잡이만큼 서툰 핑계들에 피식 웃고 만다.

고기를 잡은 아이들의 소란한 소리가 계곡에 울려 퍼지고, 김천을 향해 출발한다.

45km 정도의 거리, 부담스럽지 않지만 배가 고프다.

어제 도로변에 노점이 있었던 선바위에서 자전거를 멈추고.

"오, 있다!"

국수 같은 메뉴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통닭과 라면이 요기를 할 수 있는 메뉴의 전부다.

김치를 조금 담아주는 여주인이 옆자리에 앉아 여행에 대해서 묻는다. 차분하게 이어지는 경상도 사투리는 운율이 느껴질 만큼 감미롭다.

"이렇게 좋은 사투리를 왜 그렇게들 시끄럽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어젯밤부터 변변한 식사를 못했다는 말에 청국장과 꽈리고추볶음을 내어준다.

"그래도 먹을 복은 있네예."

오후에 통닭을 튀겨 계곡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나눠 먹는다며 통닭을 먹고 가라고 한다.

"김천까지 가야 하는데, 그럼 쉬었다가 갈까요?"

"그래요. 계곡에서 놀다가 통닭을 먹고 가요."

1시, 3~4시에 출발을 해도 김천까지 멀지 않은 거리라 선바위에서 쉬었다 가기로 한다.

밥과 라면을 먹은 터라 더는 배가 고프거나 통닭이 먹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노점 여주인의 마음이 고맙다.

선바위 근처의 계곡에는 제법 괜찮은 넓적 바위들이 있다. 어제 사인암까지 올라가지 않았어도 괜찮았겠다 싶다.

계곡물에 몸을 적시고, 바위에 앉아 자료들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낸다.

815 광화문에서 열린 빤스목사의 집회 이후 코로나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정말 싫다."

대가천 9 개 굽이의 물줄기를 따라 9 수의 시를 지었다는 무흘구곡, 조선시대 양반들의 한량스러움이 예수를 파는 사람들의 천박함보다 고귀하게 느껴지는 날들이다.

어느새 3시가 넘어가고 그늘에 앉아 더위를 피한다.

"아재야, 아재야!"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노점의 여주인이 통닭을 먹으라며 작은 접시를 건네준다.

바삭하게 튀겨진 아주 작은 통닭, 여느 옛날 통닭집보다 맛이 좋다.

통닭을 튀기느라 손등의 피부가 기름에 데어 얼룩덜룩 벗거진 노점 여주인의 손을 바라본다.

"손."

작고 뭉툭한 하얀 손, 타인을 향해 쉽게 내밀어지지 않는 고집과 반가움의 손짓이나 위로의 토닥임조차 낯설게 외면하는 수줍은 손은, 무언가를 담고 간직하기보다 버리는 것이 익숙한 너무나 게으른 손은, 지난 과거의 상흔들을 간직한 채 때때로 그 아픔의 깊이를 기억하게 만든다. 수줍고 게으른 손을 내려다본다.

"부끄러운 손이지만 난 네가 좋아. 괜찮아!"

"얼음을 많이 담아서 커피 한 잔을 만들어주세요."

여주인은 가득 담은 커피를 건네주며 전화번호를 묻는다. 여주인이 불러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번호를 남긴다.

"가끔 전화주이소."

"김천으로 가 볼까?"

4시가 넘어서야 무흘구곡을 떠나 김천으로 향한다. 지도앱으로 그리 높지 않은 고개를 넘으면 김천까지 순탄한 길이다.

조마면의 경계인 고개의 정상에서부터 길게 내리막길이 이어지고, 도로변 마을의 작은 서원이 눈에 들어온다.

몇 개의 양봉통이 놓여있는 시골집 담벼락에 자전거를 기대어 놓고.

작은 서원을 둘러본다.

"공부깨나 한 동네인가?"

한 칸짜리 작은 서원의 옛 풍경이 궁금하다.

제법 깨끗하게 정리가 된 서원의 모습은 이름 모를 마을의 정서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서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작은 지각이 보인다.

"효열각."

열부 함양 오씨 정려기의 위비문을 읽어본다.

"서기 1888년..."

병이 든 남편에게 손가락을 깨물어 수혈을 하고, 병간호 끝에 사망하자 미망인으로 칭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식음을 전폐하고 죽은 함양 오씨.

"뭔가 이상한데."

"순천 사람 박빈은 사헌부감찰로 선조 때 부친이 병석에 눕자 10년간 함께 자면서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였다. 그러다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3년간 무덤 옆에서 움막을 짓고 사는 시묘살이를 했다. 부인 함양오씨는 남편을 대신하여 품팔이와 구걸로 어려운 살림을 뒷바라지하였다. 그 후 남편이 죽자 식음을 전폐하여 3일 만에 남편의 뒤를 따라갔다. 오랜 세월이 지나 지역 유림의 천거로 1888년(고종 25)에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디지털 김천 문화대전


"대체 어느 대목에서 감동을 받고 교훈을 얻어야 하는 것이냐?"

순천 박씨 가문의 화합과 자부심을 꾀하고, 충효사상을 전승하기 위해 세워졌다는 비석에는 "通訓大夫司憲府監察孝子順天朴公諱贇淑夫人烈婦咸陽呉氏之閣" 비문이 새겨져 있다.

"끝까지 이름 없이 불린 여자의 삶이네."

400년 전 가혹했던 여자의 삶이 애처롭기에 앞서 비석을 새우고 지각을 지어 올린 100년 전 유교적 꼰대들의 곰팡이 나는 가치관에 구역질이 난다.

"낡은 경운기는 정겹기라도 하지."

조마면을 지나고 천천히 김천 시내로 들어선다.

편의점에 들러 얼음컵만을 사고, 얼음이 녹은 커피를 부어 마신다.

"좋아!"

남은 얼음에 미지근해진 물을 넣고 김천 시내를 가로질러 빠져나간다. 생각했던 것보다 김천 시내의 규모가 꽤 크게 느껴진다.

김천시를 벗어나자 도로는 자동차 전용도로로 바뀐다.

"거의 다 왔는데."

"그래, 10년 만인가?"

기찻길을 건너고.

포도밭과 복숭아밭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달콤한 과일향이 느껴진다.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는 시골길을 지나 마루바람에 도착한다.

"이쪽은 내 남편 마루님 그리고 영범이."

마루님이 준비해 놓은 저녁을 함께 하며 시간을 보내고.

모기들을 피해 집으로 들어가 밤늦게까지 함께 술을 마신다.

"그렇게 바람은 마루에 머물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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