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8일 / 맑음 ・ 10도
화더현-샹황기
숙소 앞에 걸려있는 붉은 오성기가 찢어질 듯이 펄럭인다. 저쪽 방향이면 오늘 가야 할 방향인데.

이동거리
49Km
누적거리
7,703Km
이동시간
4시간 24분
누적시간
550시간

G511
S208
26Km / 2시간 30분
23Km / 1시간 54분
화더현
샹황기계
샹황기
 
 
4,954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 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0-8531-0700/+86-186-1173-0089

 

6시 45분, 첫 번째 알람에 몸을 일으켜 세운다. 어제의 힘들었던 라이딩의 피로가 조금 남아있는 것 같다. 무심결에 바라본 창밖의 하늘이 심상치 않고 바람 소리가 요란하게 창문 틈을 파고든다.

"오늘은 정말 힘들겠구나."

조식을 먹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머리 위에 바로 떠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대한 구름의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직원에게 조식 시간을 물으니 7시 반이라고 알려준다. 다시 방으로 올라가 출발 준비를 한다.

타이레놀 한 알을 꺼내 먹고 패니어에 넣어두었던 이너웨어를 다시 꺼내 입는다.

"계절을 거꾸로 달려 들어가는 기분이야."

오늘 가야 할 목적지를 결정해야 한다. 몽골로 넘어가는 국경의 얼렌하오터시의 방향으로 숙소를 찾을 수 있는 도시가 몇 군데 없다.

쑤니터우기, 주리허진의 거리는 화더현에서 130km가 훌쩍 넘은 부담스러운 거리다.

"아무래도 끊어서 가야겠다. 이 바람을 이기며 130km를 달릴 수는 없어."

주리허진과 쑤니터우기로 향하는 길에 위치한 50km 거리의 소도시 샹황기. 샹황기의 지도를 확대하여 주점들의 유무를 확인하니 제법 많은 수의 빈관과 주점이 검색된다.

"됐다. 일단 출발해서 상황을 보고 샹황기를 지나칠지 고민하자."

체크인을 하고 현금을 조금 찾기 위해 시내 쪽으로 이동한다. 거센 바람을 등지고 가니 자전거가 스스로 굴러간다.

"오늘도 망했어!"

중국에서 사용할 경비 1,000위안을 찾고 찬 바람을 맞으며 샹황기 방향으로 길을 향한다.

이내 작은 소도시를 벗어나고 윙윙거리며 불어오는 바람 속에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쟤네들은 꼭 뒤돌아서있더라."

화더현, 내몽골 자치구에 들어서며 모든 이정표와 간판 등에는 꼬불거리는 이상한 글자가 함께 적혀있다.

무심하게도 열심히 돌아가는 수십 기의 풍력발전기들을 지나고, 고산지대의 초원으로 끝없이 길게 늘어진 도로가 나타난다.

순간순간 불어오는 강풍에 자전거는 휘청이고.

"힝. 바람, 바람, 바람! 이놈아!"

"그냥 뒤로 달려볼까?"

엄청나게 불어대는 바람과는 상관없이 하늘빛이 너무나 좋다.

햇빛에 반사되는 얼어붙은 호수를 지나며 잠시 쉬어간다.

뒤를 돌아 지나온 길과 하늘을 쳐다보며 감탄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거니?"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끝이 없고.

지나온 길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래, 내가 졌다! 샹황기까지만 이동하자."

상형문자처럼 보이는 글자가 얼핏 중국 한자와 형태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우리의 시골 분교들처럼 생긴 긴 주택들이 가끔씩 도로변에 자리 잡고 있다.

한적한 고산지대의 도로변에 교통 공안의 차가 정차되어 있어 그곳에 도착하니 모형이다.

"산타페의 적절한 사용법이군! 제법이야."

조금 더 지나니 교통 공안의 모형도 서있고, 그 이후 건너편에는 도로를 향해 과속탐지기를 들고 서있는 모형도 있다.

"너라면 속겠니? 차리리 방지턱을 이쁘게 만들어 놓지."

12시 30분, 평속 10km의 속도로 겨우 샹황기의 경계면에 들어선다.

"저 이상한 글자를 어떻게 식별하는 거지? 쓰기도 힘들 것 같은데."

도로변 아래로 우물 같은 것이 보여 자전거를 눕혀놓고 언덕 밑으로 내려간다.

도르래를 사용하고 우물을 퍼 올리는 듯싶다.

여전히 사용감이 느껴지는 우물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얼마나 많은 세대에 걸쳐 우물을 파고 관리했을까."

언덕을 내려오니 바람이 없다. 이런 곳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 정도 야영을 해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아쉽다.

"샹황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해발 1,500미터. 생각보다 기온이 낮은 것 같지는 않은데 일교차가 큰 탓인지, 차가운 바람과 기압의 영향인지 얼음이 녹지 않고 있다.

길은 멀리 보이는 흙산을 향해 오르막이 이어지고 소모양의 안내판이 재미있다.

장국영이 나오는 왕가위 감독의 동서사독 속 풍경들이 떠오른다. 이해하기가 정말 힘들었던 영화, 언제나 보다가 잠들어 버려서 한편 전체를 끝까지 보지 못해 이해하지 못했던 영화라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시간과 공간, 에피소드들이 뒤섞여 있는 영화의 흐름을 따라잡는 것이 힘들지만 시간에 대한 왕가위 감독의 독특한 세계관과 장국영의 냉소적이며 쓸쓸함 전해지는 연기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멀뚱멀뚱 쳐다보는 소들에게도 인사를 하고.

샹황기 역시 마지막 오르막길을 오르라 한다.

능선 위로 철탑이 들어선 산을 넘어 작은 마을 샹황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전의 도시들과는 완전히 다른 다른 나라의 도시에 들어온 듯 묘한 분위기의 마을이다.

마을에 들어서 트립닷컴으로 숙소를 검색하니 판매 완료 표시가 된 주점 한 곳이 검색된다.

"일단 주숙등록은 된다는 말이니 다른 방이라도 있겠지."

찾아간 주점은 폐업을 했는지, 리모델링 중인지 영업을 하는 것 같지 않고 큰 건물만이 을씨년스럽게 텅 비어 있다.

조금 난감하지만 주점이나 빈관이 마을의 규모에 비해 많고 시간도 넉넉하게 있어 걱정 없이 고덕지도로 다시 검색을 한다.

마을의 공원 옆에 위치한 주점을 찾아가 어렵지 않게 체크인을 하고, 슈퍼에 들러 내일의 긴 여정을 위해 비상식을 먼저 사둔다.

가격표 붙이기가 귀찮은지 물건들에 숫자들을 직접 적어놓은 슈퍼.

멀쩡한 계산기를 옆에 두고 아주 오래된 주판을 튕겨 계산을 한다.

빵과 과자 그리고 콜라를 넉넉하게 사서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의 프런트 직원에게 굼벵이 모양의 글자를 가리키며 무엇인지를 묻자 몽골어라고 알려준다.

"몽골어. 이상하네 몽골어는 영어 알파벳처럼 생겼었는데."

자료들을 정리하다 출출함이 느껴져 1층 식당으로 내려간다.

식당 입구에서 조리사 복장을 입고 있던 젊은 남자는 한국인이라 말하니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다가와 이것저것 질문들을 한다.

자신의 핸드폰은 번역이 안된다며 투덜거리길래 위챗의 변역 기능을 알려준다.

"자, 봐. 네가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면 위챗으로 변역을 할 수가 있어."

왜 중국 사람에게 중국의 SNS 채팅앱 사용법을 가르쳐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법을 알려주니 좋아하며 위챗으로 메시지를 날린다.

"야. 지금은 여기에 그냥 말해!"

양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니 98위안하는 어린양 통구이를 추천해 준다.

"양이 많아?"

"아니 몇 개 못 먹을 거야."

"그런데 왜 추천했어?"

고기를 좋아하는지 묻고는 88위안하는 메뉴를 추천해 준다.

담배 한 개비를 뺏어 피더니 아주 신이 난 아이처럼 우유차와 수박을 내주며 무료라고 알려준다.

몽골 지방에서 먹는 우유차 같은데 조금 비린 듯 고소한 맛이 난다.

약간 짜면서 매콤한 맛이 감도는 우리의 백김치 같은 것도 밑반찬으로 내어주고.

잠시 후 추천해 주었던 메뉴가 나온다. 고수를 수북하게 깔고 그 위에 올려진 바삭하게 구워진 고기다.

약간 오돌뼈 같은 느낌이지만 연골이 씹히는 느낌은 거의 없고, 고수와 적당히 섞어 먹으니 그 맛이 일품이다.

"근데 왜 그림이랑 완전히 틀리지? 그리고 언제부터 고수를 미나리 먹듯이 먹게 된 거지?"

밥 두 공기를 비우고 계산을 하니 72위안을 달라고 한다.

"대체 뭘 요리해 준 걸까?"

주방에서 조리를 하는지 보이지 않는 젊은 남자에게 위챗으로 메시지를 남겨도 답이 없고, 서빙을 하던 아주머니에게 담배 한 갑을 건네준다.

"그 녀석에게 주세요. 선물!"

의외의 선물에 아주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방방 뛰 듯 젊은 남자를 찾아 주방으로 들어간다.

알 수 없는 요리를 한 젊은 남자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빨갛게 얼굴이 상기되어 인사를 한다.

"브로, 남자는 쿨해야 돼."

시크하게 빠, 바이를 외치며 손을 들고 식당을 나온다.

아름다운 하늘과 넓은 초원의 풍경들이지만 감기 기운은 여전하다. 내일 가야 할 100km가 넘는 거리가 조금은 부담스럽다.

구글 지도를 확인하여 쑤니터우기까지는 내리막길임을 확인했지만 바람이 불면 내리막도 오르막도 의미가 없는 길이다.

"제발, 조금만 불어줘!"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37일 / 구름 ・ 14도
샹시 투자족 먀오족 자치현-구장현-푸롱전
산길들을 넘어 장가계로 간다. 150km 거리, 70km를 오늘 이동하면 내일 드디어 장가계에 도착할 수 있다.


이동거리
79Km
누적거리
5,274Km
이동시간
7시간 30분
누적시간
368시간

 
S229도로
 
S229도로
 
 
 
 
 
 
 
45Km / 4시간 20분
 
34Km / 3시간 10분
 
샹시
 
구장현
 
푸롱전
 
 
2,489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86-1173-0089

 

똑똑똑 창문 밖으로 들리는 낙수 소리에 비가 내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짐들을 정리하며 빗속 라이딩의 피곤함이 먼저 밀려든다.

"또 하루를 빗속에서 허우적 거려야 하겠네."

오늘 가야 할 푸롱전은 69km에 있다. 150km가 남은 장가계, 푸롱전에서 장계가까지는 변변한 숙소가 보이질 않아, 이틀을 두고 장가계로 갈 것이다.

"일단 푸롱전에 가서 푹 쉴 것인지, 더 갈 것인지 결정하자."

자전거를 가지러 옥상으로 나가보니 비도 오지 않고 바닥에 물기도 없다.

"굿!"

난방기 실외기의 낙수 소리거나 다른 것의 낙수 소리였나 보다.

친절한 여자 주인과 인사를 하고 숙소를 나와 우선 주변에 식당부터 찾는다.

터미널 부근이라 아침에 문을 열고 분주한 식당이 많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식당에 들어가 면을 주문한다.

만두 같은 것이 없나 식당을 둘러봐도 삶은 계란과 빵처럼 보이는 것만 추가 메뉴로 있다.

바로 나온 음식은 면발이 그저 그랬지만 시원한 국물은 괜찮다.

간단히 한 그릇을 비우고 나와서 비상식을 사기 위해 근처 슈퍼를 찾는다.

바로 옆으로 식당들이 이어지고 뷔페처럼 밥에 밑반찬들을 골라 담는 곳들이 많다.

"꼭 먹고 나면 이렇다니까."

잠시 밥으로 한 그릇 더 먹고 출발할까 생각하다 오늘 라이딩할 거리가 짧으니 참기로 한다.

슈퍼에 들러 3.5위안 하는 빵 두 개와 콜라를 10위안에 사들고 계산을 하려고 10위안을 주니 두꺼비상을 갖은 남자가 나를 쳐다본다.

"뭐? 10위안 맞잖아!"

슈퍼의 포스기를 보니 10.5위안이 찍혀있다. 남자를 한번 째려보고 빵과 콜라를 들고 가니 남자는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중얼거리며 다시 넣는다.

아마도 비닐봉지 값을 0.5위안 받나 보다. 중국은 대부분 주황색 얇은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아 주는데, 남자가 들고 있던 비닐봉지는 제법 비닐봉지스럽다.

안개가 내려앉은 아침은 늦가을의 아침처럼 조금 쌀쌀하게 느껴진다. 시내를 벗어나자 초반부터 오르막이 시작된다.

"오늘은 또 얼마나 올라가려고 이러나?"

한 고개를 넘는 동안 쌀쌀하게 느껴졌던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숨을 헉헉거리며 온몸이 더워지기 시작한다.

하늘에서 한두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지만 오늘 예보된 강우량이 얼마 되지 않아 이러다 말겠지 싶다.

짧은 내리막, 밭에 여자들이 나와 곡갱이질을 한다. 잠시 자전거를 멈추고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여 다가간다.

집을 새로 짓다 보니 집 근처나 집 밖에 있던 것이 마당 한구석 뭔가 어색한 위치에 놓여있고.

마당에 그네와 탁구대가 바닥에 고정되어 놓여있다.

여자들은 묘목 같은 것을 밭에 옮겨심고 있다. 낯선 사람이 마당에 들어와 구경을 하는데도 별 관심도 없고.

부업으로 가정수를 파는가 보다.

마당 한편에 남녀가 구분되어 있는 화장실이 있어 소변을 보려다 상태를 보고 참기로 한다.

"논두렁이 차라리 낫겠어."

마을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은 장가계의 남은 거리를 알려주고 내려가기 시작한다.

"열심히 달리면 한달음인데, 무리겠지? 일찍 쉬면서 밀린 자료나 쓰자."

가끔 전통의상을 입은 할머니들의 모습을 담으려면 무표정하게 인상들을 짓는다.

"서로 모습이 신기할 텐데. 웃으면서 서로 구경하면 좋잖아요!"

길가에 잘 정비된 하천 사이로 목조 건물들이 모여있는 마을이 보인다.

마을의 풍경이 예쁘다 생각하며 마을 가까이 도착하자 버스에서 한무리의 사람들이 내리고 연이어 가이드를 따라 많은 사람들이 마을 쪽으로 걸어간다.

"뭐지? 전통 마을인가?"

멋진 마을의 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하느라 바쁘고 마이크를 단 가이드가 높은 하이톤으로 무언가를 설명한다.

마을 입구에 여러 명의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서있고, 강 건너편에서 화려한 복장을 한 여자들이 노래를 부르며 무언가를 하고 있다.

궁금해서 자전거를 끌고 입구 쪽으로 가서 사진을 찍으니 나를 주시하던 남자가 다가와 자전거를 다른 곳에 세우라며 주변의 여러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응, 알았어."

마을의 안내석 뒤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구경을 하기로 한다.

"오늘 시간도 많은데, 구경이나 하고 가자."

"저기가 매표소인가?"

마을 입구에 매표소처럼 보이는 곳에 가봤지만 사람도 없고 표를 파는 어떤 흔적도 없다.


다른 중국 관광객들도 가이드를 따라 그냥 들어간다.

"무료입장인가?"

사진을 찍으며 중국 관관객들을 따라 들어가는데, 뒤에서 제복 입은 남자가 큰소리로 나를 부르며 '매표'를 외친다.

조금 전 자전거를 다른 곳에 두라고 말한 남자다.

"날 계속 지켜본 거야? 매표 나리?"

남자는 길 건너 관광버스들이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을 가리킨다.

길 건너편 주차장 안쪽에 매표소가 있다.

이 동네에는 이상하게 한글 안내가 잘되어 있다. 알고 보니 단체 관람객들은 번호표를 받아 목에 걸고 입장을 하는 것이었다.

입장료는 30위안, 다른 곳의 터무니없는 입장료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입장권을 들고 마을 입구로 돌아가 나에게 관심을 준 남자를 향해 방긋 웃으며 표를 흔들어 보인다.

"됐지!"

청푸르게 맑은 강을 건너 북과 대포가 늘어선 마을로 걸어 들어간다.

초입에 전통의상을 입은 어린 여자들이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조금 전 노래를 부르며 관광객을 맞이했는데 혼자 들어가니 아무것도 안 해준다.

"나한테도 불러줘! 보고 싶다고."

다른 관광객 무리가 들어 오기를 기다리는데 사람들은 오질 않고.

어린 여자들이 서로 사진을 찍으며 쉬길래 같이 카메라를 들이밀고 사진을 찍는다.

생뚱맞게 옆에 서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한 여자가 와서 말을 건다.

"우리들 쉬면서 놀고 있는데, 다른 곳을 다녀라."

"나 한국에서 왔어. 한국! 같이 사진 찍어주라!"


마을 곳곳에 대나무 모자와 바구니로 쓰레기통을 만들어 놨다. 멋진 아이디어다.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진 마을은 실제로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집들이다. 집안으로 무작정 들어가 볼 수도 없고 해서 망설이는데 가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들어간다.

박물관 공간으로 묘족의 전통의상이나 생활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것은 길가에 청소부가 입고 있었던 우의.

묘족의 전통의상, 원색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의상이다.

옷감을 짜는 물레 같은 것도 있고.

전시 공간을 나오니 붉은 의상을 입은 남자가 의식 같은 것을 하고.

곧이어 양쪽에 선 남자와 여자에게 대나무를 잡고 있으라 하더니.

종을 흔들면서 왼손을 대나무 밑으로 계속 돌린다.

"붙어라! 붙어라!"

그리고 대나무 가운데 부분이 모아지며 붙는다.

"것 봐. 붙었지!"

어떤 의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심풀이 마술은 아닌 것 같고, 남녀 간의 애정운 같은 것을 테스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결혼 전에 점을 치는 것일까?"

마을 골목 곳곳에 기념품이나 음식 재료들을 파는 곳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 직접 파는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의 협동조합 형태는 아닌 것 같고 개별적은 판매인듯싶다.

담에는 묘족의 생활상이 벽화로 그려져 있고.

어쩌다 보니 중국 관광객들과 한무리가 되어 가이드를 따라다니게 됐다.

좁은 골목 사이사이에 있을 건 다 있다. 음식을 파는 곳에서 나뭇잎으로 싼 2위안의 떡을 하나만 달라고 하니 여자가 웃는다.

"우리나라 떡하고 맛이 똑같은데, 낙원떡집 거야?"

은제품을 세공하는 공방.

세련되고 정교하지는 않은데 열심히 한다. 선조들의 기술력을 못 따라가나 싶다.

"딱 보면 알아! 좀 어설픈 거 너희들도 알지? 티 많이 나!"

다음으로 가이드는 차를 마시는 공간으로 데려간다. 차를 내리는 모습을 찍으려니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한다.

작은 의자에 앉아 전통차를 마시며 차를 팔려나 싶다.

그냥 혼자 나와 골목 곳곳을 구경한다.

전통의상을 입은 동네 여자들을 찍으려 했는데 실패.

마을을 내려오니 길게 음식점과 상가들이 모여있다.

목조 주택들이 참 예쁘다.

이상하게 생긴 녀석, 감자나 고구마 같은 것인데 잘 모르겠다.

환영행사를 보기 위해 마을의 초입으로 돌아간다.

관광객을 기다리는 앞에 앉아 사진을 찍으니 조금 전 함께 사진을 찍었던 어린 여자들이 '한궈렌'하며 손을 흔들고 자기들끼리 깔깔거리며 웃는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화기애애 분위기가 좋다.

관광객들이 다가오자 웃음기 가득하던 얼굴들이 사라지고.

관광객들에게 환영의 노래를 불러준다. 부드럽고 맑은 소리다.

짧은 행사가 끝나면 다시 밝게 웃으며 떠들고 논다.

하루 종일 이것을 반복하고 있으면 피곤해서 가식적인 웃음을 팔법도 한데 웃고 떠드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관광객 온다. 그만 웃고 조용!"

미니버스를 타고 한무리씩의 관광객들이 연이어 찾아드는 묘족마을이다.

12시 30분, 묘족마을을 구경하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다. 남은 거리는 여전히 45km.

2시쯤 푸롱전에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고 자료를 정리하려고 했는데 4시 정도에나 도착할 것 같다.

묘족마을을 출발하며 계속되는 내리막을 기대했지만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끝없는 오르막이 이어진다.

잘 쓰지 않던 앞기어의 1단을 걸고 힘겹게 페달링을 이어간다.

"다 좋은데, 올라간 만큼 꼭 그 만큼만 내려가라."

찌그덕 거리는 체인에 윤활을 하며 잠시 쉬고 다시 출발.

"오전에도 충분히 많이 올라온 것 같은데, 얼마나 더 올라야 내려갈 거니?"

엉덩이 골반이 틀어진 듯 아파온다.

오르고 오르더니 그제서야 터널이 나오고, 터널의 길이조차 안내가 없다.

첫 번째 터널을 지나 바로 이어진 두 번째 터널, 역시나 길이 안내가 없고 터널의 끝도 안 보인다.

꽤나 길게 뚫린 터널 두 개를 조심스레 통과한다. 이상하게도 중국 운전자들은 터널 안에서는 매너가 좋다. 크락션을 잘 울리지도 않고 속도를 줄여 지나쳐 준다.

터널을 지나자 드디어 내리막길이 보인다.

"아, 겨우 끝났구나."

도로 옆 정자에 쉬며 빵으로 점심을 대신한다. 1시 40분, 한 시간 동안 업힐을 하느라 겨우 8km 정도 이동했다.

얼마나 올라왔는지 산들샘 GPS를 보니 539미터.

"최소 10분 안에 10km 이상 내리막이어야 한다. 단 1미터도 빼먹지 마라!"

시원하게 그렇지만 조심스럽게 내리막을 내려간다.

중국의 도로는 갑자기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역주행해오는 차량들이 있어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황산, 계림에서 그랬듯이 장가계에 가까워질수록 산들의 모양이 높고 기묘해진다.

빠르게 10km가 사라지고 계속해서 내리막이 이어져 구장현에 도착한다.

길 건너 차 문화 거리가 있어 잠시 쉬어간다.

"당신은 뉘신지요?"

중국에서 이런 모양새은 100% 마작이나 카드게임이다.

중국 사람들은 마작을 많이도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면 참 즐거워 보인다.

얘기들을 업는 도구도 참 다양하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구장현의 기묘한 터널들을 골재를 실은 화물차량, 흙먼지 가득한 버스, 오토바이 그리고 터널을 걸어 지나가는 사람들과 함께 지나간다.

내리막길에 만난 풍탄저수지.

"이게 저수지야? 호수지!"

중국에서 이 정도 사이즈는 쑤이쿠(水库), 저수지라고 하나 보다.

"타이호에 비하면 좁쌀만 한 크기니, 할 말은 없다."

계속 이어지던 내리막은 산들의 풍세가 높아지더니 다시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산들이 멋지다 생각하던 즈음 앞서가던 차량이 유턴을 해서 돌아온다. 설마 하며 그 앞으로 천천히 다가서니 교통 공안이 나와 팔을 가로젓는다.

"취부러!"

"헐, 못 가? 못 간다고?"

교통 공안은 앞으로 보이는 도로를 가리키며 통행금지라 알려주고 임시 사무실로 들어가 버린다.

황당 난감 모드, 고덕지도를 들고 공안을 부른다.

"워 취 저리."

푸롱전을 가리키자 공안은 내가 온 방향을 가리키며 길게 설명을 하고, 번역기를 주었지만 급한 상황에서는 언제나 오번역이다.

다행히 공안의 말 중에 1km를 말하는 '이공리'와 좌회전을 말하는 '샹주어츠완'이 들린다.

고덕양이 매일 수차례씩 떠들어 대는 단어들이다.

"이공리, 샹주어츠완?"

공안에게 한 번 더 확인을 하고 고덕지도를 확대하니 풍탄저수지를 따라 뱀처럼 휘어지는 작은 산길이 보인다.

공안에게 길을 보여주며 맞는지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다른 길이 있어 다행이었지만 그 길의 모양새가 절망적이다.

할 수 없이 힘들게 올라간 오르막을 뒤돌아 내려와 문제의 삼거리에 도착한다.

오던 길에 차로 중앙에 놓인 안내판을 보았지만 다른 차량들도 지나가고 한자도 모르니 그냥 지나쳐 간 것이다. 자세히 보니 교통 중단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고덕지도는 왔던 길로 되돌아가라며 유턴을 계속 외치고.

고덕양의 안내를 무시하고 동네길로 들어간다. 다시 경로를 잡은 고덕지도에는 푸롱전까지 14.7km가 찍혀있다.

조금 전까지 9km가 남았었는데 6km 가까이 돌아가는 것이다.

"흐규!"

"이 길을 내려가면 다시 죽도록 올라가야 할 텐데."

길은 흙투성이 길로 변하고 화물차들과 차량들이 크락션을 울려대며 지나간다.

"하루라도 무난히 가면 재미가 없을까 봐 이러는 걸까?"

흙길과 다름없는 좁을 산길을 돌고 돌아 오르고 오른다.

급기야 시커먼 골재들로 도로를 덮어버린 채석장을 지나고.

크락션을 울려대며 수풀 사이로 빠르게 내려오는 차들을 피해 또 오르고.

오르다 보니 정상이다. 시원한 바람이 살랑이며 땀을 식혀주니 속도 없이 쓸데없는 성취감이 찾아든다.

"또 이렇게 올라오니 좋기는 하네."

썩 좋지만은 않은 도로지만 올라온 만큼 털털거리며 내려가니 기분은 난다.

그런데 가끔씩 보이는 산채에서 개들이 짝을 지어 달려든다. 다행히 내리막이라 개 짖는 소리와 함께 속도를 내어 달아날 수 있지만 짜증나는 개도, 길도 위험하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집까지 개들을 피해 달리다 보니 기운이 다 빠진다.

그리고 엉망으로 망가진 도로 가운데 네 번째 집에서 개 짖는 소리가 다시 들린다. 개를 피해 달아날 수도 없는 난감함이 밀려온다.

잠시 자리에 서서 뒤에서 들려오던 배기음의 차량이 오기를 기다린다. 차량과 함께 지나가면 달려들지 못할 것 같다.

잠시 후 RV 차량이 내려와 그 뒤를 바짝 붙어 따라간다. 그런데 걱정했던 개는 없고 오래된 채석장에서 작업을 하느라 길을 완전히 막고있다.

"개 소리는 환청이었나?"

그 사이 두어 대의 차가 더 내려와 줄을 서고.

보통 이런 상황이면 작업을 멈추고 지나갈 자리를 마련해 줄 법도 한데 그런 건 일체 없다.

"정말 양보나 배려라는 것은 쥐똥만큼도 없어."

한참을 기다려 내려온 끝에 국도에 다시 접어든다. 그곳에도 통행금지의 같은 안내판이 조그맣게 놓여있다.

풍탄저수지의 풍경을 감상하며 천천히 길을 내려간다.

넓은 저수지와 산들의 풍경이 수려하다.

산 위로 기이한 철근 기둥이 박혀있는 공사장이 보인다. 아마도 높은 교각의 다리를 만드는 것인가 싶다.

멀리 넘어가야 할 푸롱전대교가 보이고.

푸롱전대교를 건너며 풍탄저수지 주변을 내려다본다.

홍석림(红石林)의 풍경을 볼 수 있는 푸롱전경구(芙蓉镇景区)의 모습이 하루의 피곤함을 잊게 해준다.

흐린 날씨가 조금은 아쉽다.

푸롱전대교를 넘어 푸롱전까지 남은 거리 3km.

푸롱대교에서 푸롱전의 중심까지 3km의 거리 중 2km가 오르막길이다.

"정말 끝까지 오르는구나."

주변 관광지들이 유명한지 도로의 양옆으로 주점들이 즐비하고 관광객들이 무리를 지어 돌아다닌다.

도시의 위쪽에 있는 버스터미널, 이곳에서 장가계나 구장현으로 버스를 타고 관광을 하는 것 같다.

터미널 건너편 도로 이면의 빈관에 숙소를 잡고 나니 피곤함에 다리가 풀린다.

소파에 앉아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는 숙소 아주머니의 옆에 털썩 주저앉아 힘들고 배고프다 하니 애잔하게 쳐다본다.

"워 헌어. 츠판 나리?"

식당을 물어보니 어떤 음식이 필요하냐며, 매운 음식을 먹을 것인지 단백한 음식을 먹을 것인지 묻는다.

손으로 입에 부채질을 하며 매운 음식을 원한다 제스처를 하고, 번역기에 짧은 한자를 써서 아주머니에게 보여준다.

"肉!"

크게 웃더니 버스터미널 옆에 식당이 있고 15위안에서 20위안 정도 한다며 알려준다. 식당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니.

"내가 식당에 데려다줄게."

재미있게 웃으면서 보던 드라마를 끄고 일어나 가자고 한다.

식당에 들어가 숙소 아주머니가 알아서 주문을 해주고, 밖으로 나오라 하더니 두 가지 배추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

무엇을 하려는지는 모르겠고 들밭에 노랗게 꽃이 피는 향이 진한 배추를 선택하니 알았다며 15위안이라고 알려주고 아주머니는 돌아간다.

그리고 나온 음식은 돼지고기볶음과 배추데침.

고기양이 적었지만 배추데침이 있어 너무 좋다. 향이 진하고 짭조름 한 것이 느끼함도 잡아주고 좋다.

이제 식당에 가면 알아서 밥솥에 밥을 퍼먹는다. 세 그릇을 고봉으로 비우고 불룩해진 배를 튕기며 나온다.

숙소 아주머니께 잘 먹었다 인사를 하니 웃으면서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한궈"

짧은 거리의 일정에 마음을 놓다 길고 힘든 라이딩이 돼버린 하루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여행이지 싶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시간과 순간들을 마주하자."





경비내역
식비:23위안 / 식료품:15위안 / 관람료:30위안 / 숙박:70위안 / 합계:138위안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32일 / 비 ・ 13도
룽성 각족 자치현-퉁다오 둥족 자치현
퉁다오현까지 80km, 하지만 지도에 나오는 길들이 구불구불 수상하다. 험난한 하루가 예상되는 하루다.


이동거리
85Km
누적거리
4,835Km
이동시간
7시간 40분
누적시간
335시간

 
G321도로
 
G321도로
 
 
 
 
 
 
 
44Km / 3시간 35분
 
0Km / 0시간 00분
 
각족자치현
 
간시시앙
 
둥족자치현
 
 
2,050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86-1173-0089

 
창문 밖으로 강한 바람이 불어오는지 길가 가로수의 나뭇가지가 이리저리 휘청인다.

"하필이면 가야 할 방향의 역풍이야."

심상치 않은 바람에 일기예보를 보니 의미를 알 수 없는 번개 아이콘이 가득이다.

"하다 하다 이제 번개 세트냐."

체크아웃을 하고 자전거를 보니 설마 했던 펑크가 나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펑크가 나니 여행 전 여행용 슈발베 타이어로 교체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될 정도다.

타이어 내부를 여러 차례 훑어보아도 타이어에 박힌 이물질은 없는데 어찌도 이리 부지런히 펑크가 나는지 모르겠다.

펑크패치를 붙이고 정비를 한 후 잠시 기다려 패니어를 올리니 그때서야 다시 바람이 빠져버린다.

"아, 정말!"

계림에서 정비해 놓은 예비 튜브를 꺼내어 교체하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바람을 넣고 기다린다.

"중국의 빵구 귀신이 붙은 게 틀림없어."

다행히 바람이 빠지지 않는 타이어. 한 시간을 알뜰하게 날려버리고 10시가 가까워서야 출발을 한다.

어두운 하늘, 강한 바람과 함께 멀리 산으로부터 비구름이 내려앉는다.

오늘따라 가벼운 느낌의 페달링 하지만 불어오는 맞바람은 자전거를 그대로 멈춰 세워버린다.

앞서가는 우산을 단 오토바이는 날개가 달린 듯 펄럭거리며 하늘로 날아오를 기세다.

"비, 바람 그리고 산길. 번개까지 치면 완벽하겠네."

빈강(滨江)을 따라 퉁다오 둥족 자치현으로 길을 향한다.

고덕지도가 안내하던 G321번 국도를 벗어나 문제의 구불구불한 산길로 이어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아무리 봐도 시멘트 포장의 고된 산길이 될 것 같다. 잠시 망설임의 시간이 가고 페달을 밟는다.

"바람이 불어오는 국도와 고됨이 예상되는 산길, 이런 불운한 선택의 딜레마가 다 있나. 못 먹어도 고다!"

하지만 산길의 초입부터 가파른 경사가 시작되고 채 5분을 가지 못하고 포기한다.

"아니 되오, 아니 되오! 이 길만은 안되겠어. 좀 돌아가더라도 국도를 타고 가자."

초입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며 벽돌들을 쏟아낸 트럭이 아직도 뒤처리를 하고 있다.

중국의 작은 트럭들은 종종 화물들을 떨어뜨리고 다녀서 절대 뒤를 따라가면 안되는 것 같다.

청록빛의 빈강을 따라 이어지는 G321번 국도 역시 구불구불하지만 큰 오르막 없이 이어진다.

차가운 바람에 이어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순간순간 변하는 날씨라서 우의를 챙겨 입지 않고 조금 더 가보기로 한다.

펑크로 인해 아침 식사의 시간을 고스란히 날려버린 뱃속에서 허기짐의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식당은커녕 작은 슈퍼라도 있을지 모르겠다.

"역시 저녁밥은 세 공기쯤은 먹어야 아침에도 든든한 건데."

새 집을 많이 지어 올리는 중국의 시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골재를 혼합하는 믹서기다.

마을조차 없는 길을 달리다 길가의 작은 슈퍼를 만난다.

간단하게 빵과 콜라를 6위안에 사서 출출함을 달래고.

재미있는 슈퍼의 추 저울. 간단한 것들은 가격 정찰제를 하면 편할 텐데 중국은 무엇이든 저울에 올려서 판다.

롱지에서부터 사람들은 대나무 작대기를 어깨에 메고 짐바구니를 달고 다니는 방법이 아닌 커다란 대나무 바구니를 메고 다닌다.

중국에서 마음에 드는 아이템들 중 하나인 의자들은 크기도, 만든 소재도, 모양도 다양하다. 조그마한 의자에 앉으면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곳의 집들은 독특하게 옛 목조 건물들을 이층과 삼층에 올려 지은 것들이 많이 보인다. 이상한 창고처럼 보이는 최근의 벽돌집보다 멋있고 보기가 좋다.

빵을 먹고 얼마 안 가서 작은 시골 마을이 나온다. 어제 2시간 정도 라이딩 시간이 남았던 오후에 도착하려고 했던 피아오리전(瓢里镇)이다.

도로를 따라 돼지고기나 채소 등을 파는 노점들이 이어진다. 길가의 식당들에서 밥을 먹을까 하다 조금 전 먹어둔 빵의 열량으로 충분하여 쉼 없이 지나친다.

"꼭 뭘 하고 나면 그 뒤에 필요했던 것이 나오더라. 뒤에 있을까 싶어 지나치면 아무것도 없고."

중국의 강들에서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를 찾아보기 꽤 어렵다. 생각보다 강을 건너는 다리들이 그렇게 많이 놓여있지 않아서 시골에는 나무로 만든 출렁다리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운치는 있는데 말이지."

가끔씩 기와지붕이 올려진 중국의 독특한 다리들. 중국의 옛 건축물들, 다리나 집, 수로들을 보면 나름의 특색이 있고 자연과의 어울림이 좋아 감탄스럽다. 하지만 요즘 건축물은 그냥 우스꽝스럽다.

산골이라 그런지 옛 목조 가옥들이 많다. 이층 또는 삼층으로 지어진 목조 가옥들은 자연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고 독특한 멋이 느껴진다.

"이게 유채꽃이지!"

석물(石物)이라는 비석이나 기념석으로 사용하는 멋들어진 돌들이 많이 놓여있고, 수석 같은 공예점이 많다. 돌이 유명한 동네인가 보다.

중국은 마을마다 대나무 마을, 돌 마을, 나무공예 마을 등등 컨셉이 확실하다. 

돌 마을을 지나 계림 여행을 안내했던 G321번 국도를 벗어난다.

"고맙다. 멋진 광시성, 매력적인 계림이었다."

"중국의 집들은 한 일이 년에 걸쳐 짓는 것일까?" 

온돌을 까는 것도 아니고 난방 시설도 없고, 상하수도나 전기배선이 복잡하지도 않을 것 같은데 짓다 만 집들이 많이 보인다. 주로 대나무와 향나무 같은 것을 짓는 집의 받침대로 사용하는 것 같다.

좋은 풍경으로 길을 이어준 빈강도 한 컷.

할머니가 그녀보다 더 늙은 할머니와 길을 걷는다. 

"부녀지간 아니면 고부지간일까."

G321번 국도를 벗어나 장가계까지 길을 이어줄 G209 국도의 산길이 시작된다.

조금씩 경사를 더하며 오르고 광시성을 벗어나 다시 후난성의 경계에 들어선다.

마을의 멋진 초입을 지나 길게 이어지는 오르막이 계속되고 반대편의 코너를 돌아 사이클을 탄 남자가 내려온다.

"짜요!"

잠깐 눈이 마주친 남자가 응원의 말을 던지고 지나간다. 넓은 중국에서 두 번째로 만난 라이더다.

남자가 내려온 코너를 돌자 검은 개가 자전거의 길을 막고 사납게 짖어댄다.

길을 막고 따라 올라오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짖어대더니 서둘러 속도를 내는 더욱 거세게 따라붙으며 리어 패니어를 물어뜯으려고 한다.

"저리 안 가. 광견병 접종은 안 했단 말야!"

개의 눈을 계속 바라보며 오르막에서 속도를 내어 있는 힘껏 페달을 밟으니 20미터쯤 쫓아오다 돌아간다.

"빌어먹을 개새끼!"

오르막에서 힘을 쓰다 보니 순식간에 기진맥진이다.

중국의 개들은 못 먹어인지 삐쩍 마른 것들이 늑대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가지고 있다. 도로를 가로막고 차들이 크락션을 울려도 쉬 피하지도 않고 중국 사람들처럼 제멋대로다.

별일 없었음을 안도하며 길을 오르는데 이번에도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길에서 30미터쯤 떨어진 집에서 누런개가 무서운 기세로 나를 향해 달려온다.

"썅! 오지 마!"

측면에서 달려드는 개의 기세가 대단하고 위험하다. 다시 개의 눈을 보며 속도를 내며 겨우 뿌리친다.

무섭게 달려드는 사나운 개들을 피하느라 완전히 녹초가 돼버렸다.

"아, 된장을 발라도 시원치 않을 개새끼들!"

개들을 피해 산길을 오르고, 달려드는 개보다 더 살벌한 중국의 안내판이 보인다.

가끔 산을 통째로 깎아내는 중국의 산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중국의 많은 인구를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자원의 소모가 필요할지 가늠도 안된다.

오르막 안내판 4종 세트가 길을 안내한다. 

"급회전, 급경사, 위험, 지그재그."

돌고 오르고 돌고를 반복하다 내리막이 시작되고, 벗어놓은 장갑을 끼고 자켓의 지퍼를 올린 후 내리막의 보상을 받기 위해 출발했지만 그것이 무색하리만큼 짧은 내리막은 바로 끝나버린다.

"..."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을 투덜거리며 오랫동안 오르고.

다시 만난 내리막 810미터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인다.

"야! 뭔가 계산이 틀리잖아. 올라온 거리가 얼만데 겨우 810이야."

고개의 정상에서 쓸데없이 내려가면 더 한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산골에도 목재 가옥이 사라지고 그 형태만을 그대로 본뜬듯한 모양 없는 벽돌 가옥들이 들어선다.

언젠가 사라져버릴 그것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긴 오르막이 끝나고 꼴랑 1,200미터 정도를 내려간다. 내려간 거리에 알파를 더해 다시 오르라는 안내와 다를 바 없다.

소수민족 자치구에 들어선 롱지에서부터 이 모양의 건물이 자주 보인다. 확실히 롱지전을 지나면서 부터는 풍경도, 사람도, 건물들도 모두 이색적인 모습이다.

오르막에서 만난 중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경운기는 미니멀한 사이즈다. 척박한 산자락의 꼭대기에서도 삶의 노력들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하늘이 보이는 고개의 끝을 마주한다.

"이번에는 정말 마지막인가? 분위기가 마지막 고개 같은데!"

2km쯤 내려가던 길은 그것으로 끝이 나고.

마을을 오르던 중 한 아저씨가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워 주고, 두 명의 어린 여자아이들이 '할로우'하며 인사를 한다. 중국에서 쉽게 받을 수 없는 환대의 인사에 즐거운 인사로 답을 한다.

차가운 바람과 안개비가 시작되는 마지막 고개에 도착한다. 퉁다오현까지 45km를 남기고 들어선 G209 국도는 아직도 26km가 남아있다.

"겨우 내려가려니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오네."


몇 분이 안돼 5km가 삭제되고, 자켓은 순식간에 젖어버린다. 롱청전(陇城镇)에 들어선다.

제법 규모가 되는 마을의 식당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자전거를 세운다.

마침 먼저 있던 손님들의 메뉴가 나가는 것을 보고 똑같은 것을 달라고 요청한다. 얼마인지 물으니 15위안이라 한다.

"쓰우콰이!"

물론 돼지고기가 들어간 메뉴다.

남편은 요리를 하고 아내는 국을 끓인다.

잠시 후 나온 음식은 돼지고기볶음과 배춧국. 우선 선지가 들어간 배춧국은 부드럽고 향긋한 배추향이 좋고 국물이 시원하다.

"완전 해장용인데."

메인 메뉴로 나온 돼지고기볶음은 시래기 같은 건조한 채소를 잘게 썰어 돼지고기와 말린 고추 등을 넣어 볶은 것으로 먹는 순간 짧은 감탄이 나온다.

"와우, 최곤데!"

중국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고 입맛에 맞는 음식이다.

따듯하고 편안한 배춧국이 언 몸을 녹이고 시래기 돼지고기와 머슴밥으로 허기짐을 채운다.

식당의 테이블 아래 전기난로가 놓여 정말 따듯하다. 식사가 끝났음에도 선뜻 일어나지 못하는 한없이 나약하고 가벼운 마음이다.

거실이나 가게 같은 곳에 내부 난방을 하지 않는 중국에서는 이렇게 테이블 밑에 난로를 두고 자기들만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손님의 테이블마다 난로를 둔 곳은 처음 본다.

"페이창 하오 츠!"

'내가 중국에서 먹은 음식 중 최고의 맛이다'했더니 '그렇냐'며 좋아한다.

밥을 먹고 나니 4시가 되고, 앞으로 내리막길일 테니 21km 거리의 퉁다오까지 5시 반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비와 함께 맞바람이 불어오지만 내리막의 가속도가 붙은 무거운 자전거를 방해하지는 못하고, 30분 만에 10km가 사라진다.

산길을 내려가는 동안 소수민족의 독특한 옷차림과 복장을 한 사람들을 자주 지나친다.

조금씩 도로의 상태가 나빠지더니 퉁다오를 10km 정도를 남기고 지옥문이 열린다. 도로포장을 다시 하는지 길들이 파여있고 곳곳이 시멘트 흙탕물로 엉망이다.

웅덩이를 지날 때마다 털털거리며 좌우로 미끄러지는 바퀴들 그리고 대형 트럭들의 통행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수없이 많고 불규칙하게 파여있는 흙탕물 웅덩이를 지나며 매너 없는 운전자가 지나가면 큰일이겠다 싶었는데 때마침 그때 그분이 지나간다.

블랙코드의 복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감사하게도 시멘트 흙탕물로 회색빛 무늬들을 흩뿌려 밋밋했던 복장을 화려하게 수놓아 준다.

"고맙다. *&^*#*#&$&$^*#&$^!"

어디에나 그런 사람들은 있으니 중국인을 뭐라 할 수는 없고, 인구의 1%만 저러해도 매너없는 사람이 1,500만 명이나 된다는 것이 문제겠지 싶다.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돼버린 자전거와 옷들이다.

중심을 잡느라 손아귀가 아파오고 그 와중에 길은 오르막이 이어진다.

"대체 얼마나 파헤쳐 놓은 거야?"

무려 6km에 이르는 지옥을 경험하고 심신이 너덜너덜거리며 6시가 되어서야 퉁다오의 시내로 들어선다.

초입부터 오묘한 산들이 우뚝 솟은 퉁다오현.

하지만 머릿속은 온통 시멘트 흙이 마르기 전에 자전거를 세척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첫 번째 주유소를 들렀지만 세차를 하는 차량들이 있어 되돌아 나오고, 두 번째 주유소에 들렀지만 세차 시설이 없다.

주유소 세차를 포기하고 신호등을 건너 좌회전하려는데 주유소에서 검은 요크셔 같은 작은 개가 나와 길을 막고 따라오며 짖는 바람에 좌회전 신호를 놓쳐버린다.

"아, 오늘 개새끼들이 왜 이래!"

가장 가까운 곳의 주점으로 들어가 자전거를 세차하고, 시멘트로 엉망이 된 옷들을 씻어낸다.

"오늘 저녁은 건너뛰자. 먹는 것도 귀찮고 힘들다."

저녁이 되니 화려한 조명이 들어오는 퉁다오현이다.

"야경이 알록달록 이쁘네."

아침나절 펑크로 시작하여 비와 바람, 오르락내리락 산길과 사나운 개들 그리고 시멘트 흙탕물까지 뒤집어쓴 이상한 날이다.

"맛있는 음식도 먹었고, 예쁜 야경도 봤으니 그럭저럭 퉁치자."

아침에 예보되었던 번개 세트가 빠졌다고 생각했더니 자료를 정리하는 동안 비가 내리고 요란한 번개가 번쩍번쩍 거린다.

"참나, 이상하고 요상한 날이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31일 / 비 ・ 14도
롱지전-용척제전-룽성 각족 자치현
늦어진 아침, 9km에 위치한 계단식 논밭 용척제전을 보러갈 것인지를 수없이 망설인다. 짙은 안개비가 자욱한 룽지전. "가자!"


이동거리
38Km
누적거리
4,750Km
이동시간
4시간 56분
누적시간
327시간

 
산길
 
G321도로
 
 
 
 
 
 
 
12Km / 2시간 40분
 
26Km / 2시간 16분
 
롱지전
 
롱지촌
 
룽성
 
 
1,965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86-1173-0089

 

한 시간 늦잠으로 9시에 겨우 일어난다. 나처럼 게으른 여행자가 또 있을까 싶다.

비가 내리고 다음 목적지까지 90km의 거리, 지도에 보이는 경로가 구불구불 거린다.

"산길들인가?"

늦은 출발시간, 비와 안개, 숙소가 없는 산길 그리고 보고 싶은 용척제전의 풍경이 일정의 선택을 어렵게 만든다.

안개 때문에 용척제전에 가더라도 그 풍경들을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일정대로 퉁다오 둥족 자치현으로 갈 생각이다.

짐들을 정리하고 체크인을 한 후, 다시 한번 망설임이 이어진다.

"그래도 이대로 그냥 갈 수는 없잖아!"

고덕지도를 롱지에 위치한 용척고장채제전관경구(龙脊古壮寨梯田观景区)로 목적지 설정을 하고 출발한다.

롱지전의 용척제전으로 가는 길은 2개가 있다. 9km 거리의 용척고장채제전관경구와 17km 거리의 평안장족제전관경구(平安壮族梯田观景区).

10시 40분, 숙소에서 가까운 용척고장채으로 가기 위해 땡땡이 우위와 고무장갑을 착용한다.

"9km 산길, 딱 속초에서 넘어가는 미시령 사이즈네."

초입을 지나자 나지막이 시작된 오르막은 구비져 이어지며 조금씩 경사도를 더해간다.

천천히 밀려 내려오던 안개비가 짙어지더니 주변의 모든 것들을 비밀스럽게 감춰버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 거친 숨을 몰아쉴 때쯤 좁은 산길로 버스가 지나간다.

"버스, 버스가 있었어!"

숙소에서 아무리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던 대중교통 노선이었는데 어디서 출발한 것인지 미니버스에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내 곁을 지나간다.

지나쳐간 버스는 안개가 감싸인 조용한 산길 어디선가 크락션을 울려댄다.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이라 그 소리가 어디서 울리는지조차 가늠하기가 어렵다.

계속되는 산길 너머로 인가들이 조금씩 보이고 작은 산바람과 함께 순식간에 안개가 걷힌다.

덥혀진 온몸의 열기에 우의의 단추들과 자켓의 지퍼가 내려지고 고무장갑은 벗어버린 채 핸들을 잡은 맨손은 전혀 춥지가 않다.

첫 번째 마주한 몇몇의 집들 하지만 가야 할 길은 아직 4km가 더 남아있다.

어느새 안개구름들이 시선 아래 위치하고 산을 타고 넘는 안개구름의 변화무쌍한 흐름에 감탄이 절로 새어 나온다.

"혼자 보기에 너무 아깝다. 사진으로 대신할게."

2km를 남기고 이전보다는 조금 편안한 길이 이어지나 싶더니 이내 급격한 오르막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다시 짙어진 안개와 안개비가 축축하게 몸을 적시고 있다.

"그냥, 희뿌연 안갯속에서 사진으로 봤던 풍경을 마음속에 그리다 오는 것은 아닌지 몰라."

그렇게 1시간 20분 만에 도착한 용척고장채 입구, 자전거로 오르는 나를 보더니 모두들 환한 미소로 맞이해준다.

"빠쓰?"

100위안을 주니 잔돈과 입장권을 내주고 영어 팜플렛이라며 관광 안내서를 밝게 웃으며 건네준다.

"근데 얼마나 올라온 거야?"

산들샘을 켜고 고도를 확인하니 입구까지 670m 정도 높이다.

안개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주차장에서 잠시 쉬며 용척고장채의 관광 지도를 보고 있으니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밥을 먹을 것인지 묻는다.

마침 허기가 밀려와 가게 이름을 번역기에 메모하고 지도를 가리키며 가게의 위치를 물어보니 입구 가까운 곳을 가리킨다.

"응 알았어. 구경하고 밥 먹으러 갈게."

잠시 쉬고 싶은데 내 주변을 떠나지 않는 여자는 계속 무언가를 말한다.

"중국어 사투린가?"

말을 해도 전혀 의사소통이 안되고 할 수 없이 내가 쉬는 것을 포기한다.

"그래, 갑시다! 취! 취!"

입구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니 숙소들과 기념품 가게 그리고 단체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음식점이 나온다.

여기가 식당인지 묻자 여자는 안개에 감싸인 산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킨다.

"판티엔 나리? 멀어? 머냐고?"

알아들었는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대체 너는 누구냐?"

헛웃음을 크게 지으니 저기를 보라며 손가락으로 전망대 같은 곳을 알려준다.

갑자기 안개가 걷히며 모습을 드러낸 계단식 논밭들이다.

"와우~!"

감탄을 자아내니 아주머니가 따라하며 예쁘냐고 물어본다.

"쩌리 쓰 피아오량! 피아오량!"

순식간에 나타난 풍경을 놓칠까 서둘러 핸드폰과 카메라를 꺼내어 바쁘게 셔터들을 눌러댄다.

경이로운 삶의 노력들이 자연의 다채로운 변화 속에 어우러져 눈에 담기에도 아까울 지경이다.

사진을 찍는 사이 다 보았으면 가라는 듯 다시 안개가 빠르게 밀려든다.

다시 식당을 가기 위해 길을 따라 자전거를 끌고 오른다. 여자가 있어 자전거를 타고 갈 수도 없다.

용척고장채의 관광로는 나무테크로 예쁘게 이어지고 곳곳에 전망대처럼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빠르게 안개에 둘러싸이고 안개비가 시작된다.

산책을 하던 남성이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사진을 찍자고 한다.

타이완에서 왔다며 소개하고 한국인이지 묻더니 엄지를 치켜세운다.

계속해서 산길을 올라가며 무엇이 즐거운지 여자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계속 중얼거린다.

"근데 니 더 밍즈?"

윈웬밍이라고 말하는데 사용하는 중국어가 사투리인지 발음을 알아듣기가 힘들다. 그냥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면 그만이다.

가다 보니 논밭의 논두렁을 따라 가지런히 무언가가 세워져있다. 아마도 밤에 불을 밝히는 조명 같다.

용척제전의 야경을 보면 논두렁을 따라 조명을 켜둔 사진들이 있었다.

논밭 사이사이 흙계단이나 돌계단들이 정성스레 만들어져 있다.

"얼마나 많은 노력들을 했을까?"

시골의 볼품없는 가랑이 논자락들, 삐뚤한 논두렁에 반듯반듯하게 돌들을 쌓아올리려 무던히도 애를 쓰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난다.

"무엇이든 당신 마음에 들 때까지 고집스러웠지."

디자인 공부를 시작할 무렵, 반듯한 선 하나를 긋기 위해 밤을 새는 고집스러움에서 그를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고작 1픽셀짜리 그레이 선 하나 때문에 말야."

20여 분,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산길을 오르고서 윈웬밍의 식당에 도착한다. 여기저기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저 사람은 누구인지를 묻는 것 같다.

"다 왔어? 여기야? 쩌리 니더 판띠엔?"

질문에 맞다고 그러더니 갑자기 옆에 건물을 가리키며 잠자는데 42위안이라고 알려준다.

"알았어. 쭈띠엔 42카이. 일단 밥줘! 츠판, 워 헌어!"

식당은 예상외로 깔끔하고 우리의 일반 음식점처럼 인테리어도 세련되고 괜찮다.

하지만 원재료를 보면서 주문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돼지고기를 골라 얼마냐고 물으니 아들처럼 보이는 주방장과 뭔가를 얘기하더니 50위안이라고 한다.

"뭐가 이렇게 비싸! 나 조금만 먹으면 돼."

소통불가, 밖에 나와 조리대에 붙어있는 돼지고기가 들어간 사진을 가리키며 얼마인지 물으니 30위안이라며 삶아 놓은 면을 보여주며 괜찮은지 물어본다.

"그래, 면 줘! 쓰, 쓰, 미엔"

어렵게 주문을 마치고 윈웬밍이 낑깡 같은 것을 따듯한 물과 함께 내어준다.

그리고 젊은 주방장은 고추와 방울토마토를 보여주며 넣을 건지 묻는다.

오는 동안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든 옷들에서 한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나온 음식은 퓨전 음식처럼 심플하고 맛과 향이 너무 좋다.

"와, 맛있는데 양이 부족하겠다."

순간 사라져 버린 맛있는 면요리. 맛있다 말하자 젊은 주방장이 좋아하고 잠시 후 들어온 윈웬밍도 맛이 어떤지 물어본다.

"하오, 하오 츠!"

점심을 먹고 윈웬밍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후 마을의 위쪽 가장 높은 전망대를 올라가기 위해 출발한다.

조금 오르자 길은 급경사로 이어져 자전거를 끌 수밖에 없다. 힘들게 자전거를 끌고 있으니 조금 전 인사한 윈웬밍이 뒤에서 따라온다.

자전거를 끌며 헉헉거리면 따라서 하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 핸들바를 끌어준다.

"근데 너 왜 나를 따라와?"

계속 길을 따라다니는 윈웬밍에게 물어본다.

"너는 길을 모른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길을 안내해 주려고 나를 따라온 것 같은데, 하나밖에 없는 산길에서 길을 잃어버릴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렇게 30여 분을 오르고 길은 한층 더 경사가 지고 노면은 나빠진다. 계속되는 안개비에 정상을 100미터쯤 남기고 포기한다.

"저기 가면 다시 이리로 내려와야 해?"

온갖 몸짓으로 물어보니 길이 없다고 한다.

"부쓰, 부쓰! 안되겠다. 아래로 가자. 취! 취!"

마을을 가리키며 내려가자고 하니 윈웬밍이 박장대소를 한다.

빗물에 젖은 급경사를 내려오는 것은 더 힘들다. 무거운 무게에 밀리는 브레이크를 잡느라 손아귀가 아파온다.

조심스레 천천히 경사면들을 내려와 다시 윈웬밍의 가게 앞에서 캘리퍼의 유격을 조정하여 브레이크를 정비하고 마지막으로 윈웬밍과 인사를 한다.

함께 사진을 찍고 가볍게 포옹을 하며 감사의 마음을 표시한다.

"짜이 지엔. 윈웬밍! 시에 시에."

출발을 하려는 나에게 마지막까지 잠을 자라고 하는 윈웬밍을 뒤로하고 용척고장채를 떠나기 위해 출발한다.

잠시 안개가 걷히며 다시 모습을 드러낸 용척제전의 풍경들이다.

용척고장채의 첫 번째 전망대로 돌아오니 그동안 계속해서 마을 내에 울려 퍼지던 폭죽과 악기 소리는 장례식을 하는 것인가 보다.

전망대 바로 밑, 논밭의 최상단에 다른 묘들이 있던 곳에 붉은 천의 관과 마을 사람들이 보인다.

다시 안개가 밀려들어 마을을 감싼다. 마지막 풍경이 못내 아쉬워 셀카와 동영상을 찍고 계속해서 변하는 용척제전의 풍경을 잠시 바라본다.

"가는 걸음이 잘 안 떨어지네."

내려오는 길, 이곳을 오르며 안개 속에 숨어있어 보지 못했던 반대편의 마을과 논밭들이 살포시 그 모습을 보여준다.

든든해진 브레이크로 내리막을 내려오는 동안 순간순간 변하는 풍경들이 가는 길의 발목을 붙잡는다.

오전엔 보지 못하고 오르기만 했던 뾰족한 산봉우리들도 보이고, 구불구불한 이 길을 어떻게 올라왔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

숙소가 있는 롱지전으로 되돌아오니 3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다. 오늘 라이딩을 할 수 있는 시간이 3시간 정도 남아있다.

"자, 이제 어디까지 가볼까."

우선 10km 거리의 룽성 각족 자치현으로 목적지를 잡고 바로 출발한다.

"어제 산길의 오르막으로 벌어 놓은 게 있으니 룽성현까지는 내리막길이겠지. 설마!"

룽성현까지는 생각대로 나지막한 내리막이 계속된다.

다른 현들에 비해 좁고 작게 느껴지는 룽성현에 도착하고, 은행에 들러 현금을 찾으니 4시가 되어간다.

30km 정도는 라이딩 할 수 있었지만 오늘은 이곳에서 마무리하기로 하고 트립닷컴으로 숙소를 검색하여 근처 빈관을 선택한다.

"간만에 트립닷컴을 쓰네. 하지만 예약은 빈관에 가서 가격을 물어본 다음에."

트립닷컴과 고덕지도를 써서 주점을 찾다 보니 요령이 붙었다. 어떤 곳은 온라인이 저렴하고, 어떤 곳은 직접 결제하는 것이 저렴하다.

그래서 일단 숙소를 검색해 찾아간 다음, 가격을 문의하고 1,700원 환율로 따져 저렴한 결제를 선택하는 것이다.

좁은 도로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소수족의 자치현이라 그런지 다른 도시들과는 분위가 약간은 다르게 느껴진다.

처음 선택한 빈관을 가려다 도시 자체가 작다는 것을 깨닫고 도심의 외곽에 있는 평점이 좋았던 주점으로 방향을 바꾼다.

외곽이라 해봐야 1.5km 거리밖에 안된다.

숙소에 도착하니 프런트에 있는 여자 직원이 영어가 된다. 가격을 물으니 벽면에 표시된 가격표를 가리키며 149위안이라 한다.

트립닷컴에 수수료 포함 14,770원에 올려진 것보다 한참 비싸다.

"고뤠, 그렇다면 트립닷컴으로 온라인 결제!"

영어가 되니 편하다. 농담도 하고 여행에 대해 짧게 얘기도 하고, 롱지의 용척제전을 보고 왔다 말하니 자신의 고향이 롱지라며 논밭의 사진들을 보여준다.

깨끗하고 따듯한 숙소, 프런트 옆에 자전거를 놓아두려니 뒷바퀴가 바람이 살짝 빠져있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저녁을 먹기 위해 나가면서 뒷바퀴에 바람을 채워 넣고 숙소의 옆에 붙어있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벽면에 붙어있는 메뉴 사진을 가리키며 달라고 하니 식당의 여자는 사진을 나보다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

"..."

아마도 메뉴 사진이 아니고 인테리어 사진인가 보다.

그림을 확인하고 글자로만 쓰인 메뉴판에서 15위안 메뉴를 가리키며 알려준다. 친절하고 정이 많은 웃음을 갖은 사람처럼 보인다.

주문을 받은 뒤 뭔가를 물어보는데 번역기가 오번역을 계속한다. 여주인이 주방을 향해 뭔가를 달라는 제스처를 하는 사이 여주인의 발음을 따라 번역기에 말하니 '칠리'라는 단어가 뜬다.

"칠리? 쓰!"

맵게 해줄 것인지 묻는 질문으로 짐작하고 그렇게 해달라 말하니 주방에서 고추 하나를 들고 나와 보여준다.

"쓰, 쓰!"

흔쾌하고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니 주방에 있던 직원들과 함께 크게 웃으며 한국인이 '어쩌구 저쩌구'라며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고추를 넣어주나 싶다.

잠시 후 나온 음식은 돼지고기 피망 볶음과 계란국. 음식이 담긴 그릇과 모양이 예쁘고 정갈하다.

대나무 그릇에 담겨 나온 음식은 우리네 음식과 거의 흡사하고 맛이 좋고, 중국에서 가끔 밥과 함께 주던 국물들은 모두 고수나 향신료 맛이 강하게 느껴졌는데 이곳은 맑은 계란국이다.

중국집의 계란국 보다 단맛이 덜했지만 편하고 순한 국물이다.

한 그릇 정도 더 먹을까 싶다가 내일 아침에 혹시 문을 열면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식당을 나온다.

"하오 츠, 시에 시에!"

역시나 정감 가는 웃음으로 인사를 해준다.

중국의 여러 지역을 가로질러 오다 보니 지역마다 사람들의 성향과 특색이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용척제전을 보기 위해 장가계로 향하는 80km를 포기하고 맞바꾼 하루지만 놀라웠고, 즐거웠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부족한 것은 다음에 채우면 돼."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