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1일, 102일 / 흐림
호르고
호르고에 도착하여 뱀바의 도움으로 서동고의 집에서 휴식을 취한다. 5월인데 눈이 내려 수북하게 쌓인 날,  호르고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9,530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667시간

나혼로집에
난로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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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고
호르고
호르고
 
 
1,34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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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바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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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유의・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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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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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50G,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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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6-9911-4119

 

즐거웠던 지난밤이 지나고 호르고의 아침이 하얀 눈과 함께 시작된다.

"어제 날씨가 그렇게 짓궂더니 눈이 내리려고 그랬나 보네."

8시가 조금 넘어 슈퍼에 들렀지만 문이 닫혀있다. 중국에서는 수도꼭지를 떼서 가지고 다니는데 몽골에서는 문의 손잡이를 떼서 다니나 보다.

조금씩 굵어지던 눈은 이내 함박눈으로 변하여 펑펑 쏟아져 내린다.

등교를 하는 아이들만이 바쁘게 움직이는 호르고.

서동고의 집으로 돌아와 침대로 다시 기어들어 간다.

"어제 몇 시까지 마신 거예요?"

시계를 보여주며 침대와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새벽 6시의 시간을 가리킨다.

"으으."

어제 남은 음식으로 아침을 챙겨주어 아침을 먹고 있으니 소파에서 구겨져 잠자고 있던 사이흐른아(сайхнаа)가 일어나 어디선가 술병을 찾아들고 자리에 앉는다.

"아침부터 또 마셔?"

빙긋이 웃으며 건네는 술잔을 손사래를 치며 거부한다.

유치원에 가는 서동고를 데려다주기 위해 두 부부가 집을 나가며 담배를 사다 주겠다며 2,000투그릭을 달라고 한다.

그 사이 사이흐른아는 자신의 큰 등치를 다시 소파에 구겨 넣고.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점심이 가까워지자 이번에는 오도덕이 큰 술병을 들고 문으로 들어온다.

"도대체 너희들의 정체는 무엇이냐?"

아무런 안주도 없이 술을 따라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건네고, 술잔을 받아 아무런 거부감도 없이 그냥 마신다.

"뭐라도 먹으면서 마셔라."

언제나 엄지손가락만을 치켜세우며 웃는 오도덕을 피해 가며 작은방을 돌아다니는 동안 한 무리의 여자들이 집으로 들어온다.

병원에서 일을 한다는 여자들 중 사이흐른아의 아내는 몇 차례 타박을 주고 그를 데려간다.

서동고의 엄마가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고기를 녹이는 동안 깡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위해 안주거리라도 사다 주려 슈퍼에 나간다.

과자와 과일주스 그리고 컵라면을 사 오는 동안 오도덕은 작은 테이블에 뒤집어져 누워있다.

"아이고, 이 대책 없는 사람들!"

점심으로 양고기 국밥을 먹고 허리를 꺾어 누워있는 오도덕을 바닥에 눕혀놓는다.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낮잠을 잔다.

푸르스름 해가 진 저녁까지 뱀바는 보이질 않고 두 차례 전화가 왔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다.

"이 정도면 화산에 올라가기 힘들겠다."

눈은 하루 종일 내리고 멈추기를 반복한다.





다시 새벽에 눈이 내려 세상이 하얗다. 오늘도 화산 구경은 틀린 것 같고 날씨마저 너무나 추워진다.

어제 사다 놓은 컵라면은 귀여운 서동고가 아침으로 맛있게 먹었고, 양고기 죽으로 아침을 먹는다.

"고기가 심하게 당기는데."

눈이 쌓인 마당에 빗자루질도 해보고.

슈퍼에 나가 서동고가 먹을 수 있는 초코파이와 과일주스를 사다 주었다.

패니어에 넣어두었던 조끼와 방풍자켓 그리고 겨울용 버프를 꺼내어 방한 준비를 하고.

서동고의 가족은 무슨 행사가 있는지 새 옷을 꺼내 입고 바쁘게 준비를 한다.

잠을 자라며 제스처를 하는 서동고의 부부, 번역기를 줘도 오초르처럼 이상한 말들만 적어놓으니 아무 소용이 없다.

집의 열쇠를 받고 동네를 둘러보기 위해 걸어 다닌다.

"감바가 자랑하던 열쇠보다 더 독특하네."

구글 지도와 달리 몇몇 호텔들이 거리에 있지만 모양새가 어떤 기대를 하기 어렵다.

"양고기 볶음을 파는 음식점이 없나?"

하나뿐인 도로를 따라 걸어도 음식점은 보이질 않고, 호텔에 있는 작은 식당에 들어갔지만 역시나 생각했던 그런 모습이다.

"meat, potato, soup"

소고기와 감자튀김 그리고 수프를 생각했던 요리는 양고기에 감자를 넣은 국물에 식빵을 곁들인 음식이다.

"이건 서동고네 집의 식사와 별 차이가 없잖아."

세상 천지에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심심한 입을 달래러 슈퍼에 나가 아이들과 장난을 치고.

눈이 그치고 맑게 변한 하늘과 주변의 풍경을 구경하고.

"내일은 떠날 수 있을까?"

그럭저럭 편하게 보내고 있지만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없으니 너무나 지루하다.

"몽골 여행은 정말 어렵구나."

차가워지는 방안을 덥히기 위해 화로에 불을 붙여 본다.

"고무에 불을 붙여서 태우던데."

일차 시도 실패.

이차 시도 실패.

대문을 비집고 들어와 풀을 뜯는 말들을 쫓아내고.

이번에는 창고에 있는 장작을 도끼로 패서 잘게 조각낸다.

작게 조각난 나무들을 제대로 쌓고, 고무도 큼직하게 잘라 불을 붙인다.

이번엔 성공!

저녁으로 패니어에 들어있는 컵라면을 먹기 위해 물도 끓여보고.

찌그러지고 구겨진 컵라면으로 저녁을 해결.

"어째 한국에서 있을 때보다 컵라면을 더 먹는 거지?"

몽골 사람들은 컵라면을 좋아하는 것 같다. 조리 기구나 주방을 보면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라면을 좋아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만 한편 게을러 보이는 성향 때문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가 십 년처럼 느껴진다. 12시쯤에 돌아온다는 서동고의 가족은 정말로 12시가 넘어서 돌아올 것 같다.

난데없는 이런 상황은 뭘까? 몽골 사람들의 성향은 참으로 오묘하고 독특하다.

"내일은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100일 / 지독한 바람 ・ 8도
초도트쏨-호르고
30km가 남아있는 휴화산의 호르고로 간다. 처음 보게 될 화산의 모습이 궁금하다.


이동거리
33Km
누적거리
9,930Km
이동시간
5시간 56분
누적시간
667시간

A0603
A0603
21Km / 3시간 31분
12Km / 2시간 25분
초도트쏨
울고싶다
호르고
 
 
1,348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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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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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50G,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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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사람들이 오가며 부릉거리는 오토바이와 승용차 소리에 잠을 여러 번 깨었다. 이곳 사람들은 밤을 즐긴다는 것보다 할 일이 없어 싸돌아다닌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체체를렉에서도 느꼈지만 몽골 사람들은 밤과 낮의 모습이 너무나 다르게 느껴진다. 평온해 보이는 낮과 달리 밤의 모습은 왠지 불완전하고 위험해 보인다. 어쩌면 밤에 노느라 낮에는 힘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편하게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피곤한 아침이다. 초원을 바라보며 시원하게 굿모닝을 알릴 수 있는 것이 몽골 여행의 색다른 즐거움일지 모른다.

제법 강한 바람이 불어와 텐트를 정리하는데 꽤 애를 먹었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30km 정도 떨어져 있는 호르고에 되도록 일찍 도착해서 쉬고 싶은 마음이다.

가볍게 라이딩하여 12시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던 생각은 출발과 함께 멀리 사라진다.

귀를 시끄럽게 울려대는 바람 소리와 함께 엄청난 맞바람이 0도의 비껴남도 없이 좌우 정면에서 정신없이 불어온다.

자전거를 멈춰 세워버리는 바람 앞에 20분도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이 너덜너덜 해진다.

"정말 징그럽게도 불어온다."

끝이 없는 직선 도로와 페달을 밟을 수 없는 지독한 맞바람을 맞으며 한 시간 동안 겨우 5km 남짓을 이동한다.

선택의 여지가 아무것도 없다. 호르고까지 어떻게든 가야만 한다.

평지를 지나 길게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나오고 채 몇 미터를 오르지 못하고 자전거에서 내리고 만다.

"씨** 몽골 너무하네. 끌고 간다. 끌고 가!"

불어오는 바람을 서서 견디며 끌며 오르막을 오른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고, 신발을 질질 끌며 걷기도 힘든 상황의 연속. 갑자기 승용차 한 대가 뒤쪽으로 붙으며 정차를 한다.

창문을 내리는 사람은 식당의 여자이다. 식당을 출발하며 인사를 못하고 떠난 마음에 반가운 인사를 하니 약간 주저하는 듯 멈칫거리더니 뭔가를 반복해서 떠들어 댄다.

느낌상 돈의 단위를 말하는 숫자처럼 들려 핸드폰으로 적어달라 하니 식당의 남자가 2G폰을 조작하며 16,000을 적어 보여준다.

어제 저녁으로 먹었던 츠이완의 값을 달라는 것 같은데 터무니없는 금액이다.

"그래, 먹고 떨어져라. 다툴 정신도 없다."

어제 먹은 달달한 한국 소주 값이다 생각하며 돈을 주고, 차를 타라는 제스처를 하는 남자에게 주먹 감자를 먹여주고 싶었지만 참는다.

조금씩 몽골 사람들에게 적응이 되고 친숙해지려던 참이데 아직 멀었나 보다.

"몽골인들은 사람을 잘 속인다. 많은 물건값을 요구하니 최대한 깎아라."

수니터우기에서 지아오강강이 해주었던 조언이 생각난다.

바람 탓에 기진맥진 해지고, 무엇보다 식당 여자의 마지막 모습 때문에 기분이 순식간에 나빠진다.

"에잇 **! 똥 밟았네."

기운이 빠진 탓에 움직이기도, 쉬기도 귀찮아지고 여행의 피로만이 밀려온다.

마치 중국 여행에서 방이 더러워졌다며 청소비를 달라던 호텔을 빠져나올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

힘든 여정의 피로와 환경들 보다 사람들에게 지치는 것이 훨씬 더 힘든 것 같다. 공통된 것은 모두가 잔돈푼의 욕심을 얼굴에 붙이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 얼굴들을 마주하면 구역질이 난다.

평지에서조차 자전거를 끌며 1미터, 2미터를 이동하고 쉬기를 반복한다.

1시, 호르고까지 12km가 남았다. 평속 5km 정도의 속도이니 2시간은 더 가야만 한다.

바람으로 인해 눈은 충혈되고 조금씩 시야가 흐려진다.

"아까 욕해서 죄송해요. 몽골 너무 좋아요."

지독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하늘은 왜 이리도 멋지고 좋은지 모르겠다.

정말 가혹하리만큼 힘든 몽골의 여행 환경인데 몽골이 품고 있는 자연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좋은 하늘을 감상할 여유조차 주질 않는 바람이지만 흙바닥에 주저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뭐, 어쨌든 두 시간이면 충분하잖아."

지나가는 트럭이라도 있으면 잡고 싶은 심정으로 1미터씩, 1미터씩 끌며 걸어간다.

12, 11, 10, 9, 8. 호르고를 앞두고 강을 건너는 작은 다리의 밑으로 족히 1미터가 넘을 것 같은 두께의 얼음이 얼어있다.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바람에 밀려 무거운 자전거가 넘어지려 한다.

퍼드득 거리며 날아갈 듯한 태극기에서 이상한 쇠의 마찰음이 나는 것 같다.

흔들리는 자전거를 잡고 사진을 찍기도 힘들어지고, 끝없이 올라가는 언덕의 끝으로 호르고 초입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마을을 향해 무겁고 더디게 걸음을 옮겨간다.

드문드문 이어지는 도로변의 집들을 지나며 마을의 중심이 나오기를 바랐지만 아무것도 나오질 않는다.

자전거를 세우고 지도를 확인해도 근처에 있어야 할 진입 도로가 보이질 않고.

마지못해 도로변의 호텔과 식당을 순서대로 들어가 봐도 너무나 허름하고 구색조차 갖춰지질 않았다.

"그래도 몽골의 관광 랜드마크는 될 텐데, 너무 없잖아?"

마을 초입에 있었던 게스트하우스 겸 레스토랑으로 길을 돌아갔지만 폐업을 했는지 출입구마다 합판이 덧대어져 막혀있다.

"없다. 없어도 너무 없어! 배고파! 쉬고 싶다고!"

다시 길을 돌아가 들어가 보았던 호텔과 식당을 다시 찾아가 보았지만 휴식을 취하거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이제는 제대로 앞이도 보이질 않을 만큼 시야가 흐려지고 구글맵이 가리키는 안내를 따라 흙길을 따라간다.

"이게 마을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길이야?"

멀리 마을의 나무판자 담들이 보이고, 넓은 공터에서는 사람들이 가축의 똥을 모아 담고 있다.

좌우로 나눠진 골목들을 따라 집들이 이어져 있고, 슈퍼처럼 보이는 곳의 문을 열고 무작정 들어간다.

이제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없는 문이 닫힌 몽골의 가게는 무작정 열어보고 확인한다. 생각대로 작은 슈퍼다.

"일단, 맥주 하나 주세요."

맥주를 마시며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여자와 어디서부터 대화를 시작할까 고민을 한다.

"잠! 식당!"

잠 자는 시늉과 음식을 먹는 제스처를 해도 그저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여자는 핸드폰으로 주변에 호텔이 있는지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가게에서 놀고 있는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에게 구글 지도를 보여주며 호텔과 레스토랑이 있는지 물어보니 손가락을 가리키며 호텔이 있는 장소를 알려준다.

"역시 어린애들이 영특하군."

일단 호텔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아이들과 장난을 치다 가게로 들어오는 젊은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샌 베노!"

남자에게 인사를 하고 악수를 청하니 웃으면서 인사를 한다.

"난 싸비. 넌 이름이 뭐야? 타니 네르?"

이름을 알려주는 남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자 남자는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준다.

뱀바(Бямбаа), 1975년생의 생글생글 잘 웃는 남자이다.

뱀바와 웃으면서 얘기를 나누는 동안 호텔이 아닌 그의 집에서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선교사님과 툴가에게 전화를 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고 할 수 없이 감바에게 전화를 걸어 내용을 설명했지만 그동안 한국어 실력이 다시 줄어버렸는지 잘 이해를 하지 못한다.

남자에게 전화를 주고 감바와 통화를 하게 해주었더니 한참 동안 심각하게 통화를 한다.

"감바, 뭐라고 했어?"

텐트를 치고 자는 것을 잘 모르는 감바는 뱀바에게 게르에서 잘 수 있게 도와주고 식사도 제공해 주라고 얘기를 한 모양이다. 말이 많은 감바의 성향으로 뱀바에게 여러 가지 설교를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뱀바와 슈퍼를 나와 그의 오토바이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간다. 그의 집은 마당에 한 채의 게르가 설치되어 있는 집이다.

게르 안에는 중학생 정도의 애들과 여러 명의 사람들이 있다. 각자에게 인사를 하고 컵라면을 먹는 동안 뱀바를 보드카 술병을 들고 신이 난 듯 웃으며 돌아다니고.

여러 명의 사람들이 차례대로 뱀바의 게르에 찾아 들어와 정신이 하나도 없다. 뱀바의 친구들과 예쁘장한 꼬마를 데리고 온 노부부 그리고 잘 생긴 고등학생 정도의 아이들까지 뱀바의 게르가 북적이며 정신이 없다.

"아이고, 정신이야. 너희들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거야?"

예쁜 여자아이를 데리고 온 노부부는 50세와 46세의 부부고, 손녀로 보았던 아이는 그들의 딸이다.

"헉, 46세라고?"

"뱀바, 저 여자 정말 46세야? 그럼 친구잖아!"

"응, 군복을 입은 애는 44살, 여자의 엄마는 46살. 내 친구들이야!"

오토바이를 타다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졌다는 남자는 목발을 짚으며 술병을 가지고 다니며 술을 마신다. 뱀바의 친구인데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자꾸만 귀찮게 불러대는 남자.

"형 힘들다. 부르지 말어! 너 술 먹으면 뼈 안 붙어!"

조금 후에 목발을 한 남자의 형이자 여자아이 아빠의 친구인 오도덕(49)이 37세의 부인과 게르 안으로 들어와 다시 난장 법석이 되고.

어렵게 어렵게 그들의 관계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마뜨가(50)와 그의 아내(46) 그리고 예쁜 여자이이, 오도덕(49)과 그의 아내(37) 그리고 동생(44), 그리고 뱀바의 친구들.

술에 취한 듯 힘이 없는 마뜨가는 핸드폰의 번역기에 이상한 글자들만을 적어주며 보여주고, 안쪽 주머니에서 술병을 꺼내어 사람들에게 술잔을 따라주는 오도덕은 나를 향해 연신 OK만을 외쳐댄다.

마뜨가는 나를 보며 자꾸만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제스처를 하고, 뱀바는 어딘가 정신없이 사라졌다 새 술병을 들고 생글생글 웃으며 나타난다. 이유를 알 수 없어 김병남 선교사님께 전화를 걸어 고마움을 전하고 이유를 설명 받는다.

뱀바가 아이를 낳아서 와이프가 있는 병원으로 내일 가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마뜨가의 집에서 잠을 재워 달라며 나를 부탁했던 것이고, 그 소식을 들은 마뜨가의 친구인 오도덕의 가족들이 구경을 하러 온 것이다.

예쁜 여자아이와 친구라고 생각하기엔 존댓말이 절로 나오는 마뜨가의 아내, 힘없이 느릿느릿 말을 하고 행동하는 마뜨가와 그의 친구 오도덕, 오도덕의 젊은 아내와 뱀바가 마뜨가의 집으로 이동을 한다.

마뜨가의 집은 단층의 벽돌집이다. 집의 현관인 창고에 넣어두고 작은 침대를 나에게 내어준다.

그리고 마뜨가와 오도덕, 뱀바는 또 어디서 사 왔는지 새 보드카를 꺼내어 술을 마시고 있다. 느릿느릿 술잔을 따라 상대방에게 건네주고 무언가 대화를 하며 술잔을 받아 아무런 안주도 없이 술을 마신다.

그 사이 마뜨가의 아내는 장작불을 피우고 밀가루 반죽으로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침대에 앉아 꼬마 아이와 놀고 있는 사이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하던 곳에서 소란이 일어난다.

오도덕의 아내에게 술을 권하는 뱀바와 술잔을 거부하며 피해 다니는 오도덕의 아내가 이리저리 방안을 돌아다니느라 시끄럽다. 마지못해 술잔을 받아들고 약간을 마신 후 술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오도덕의 아내.

그런데 갑자기 그 모습을 본 오도덕이 화를 내며 술병을 집어던져 깨뜨리고 뱀바에게 주먹을 날린다. 그리고 그의 아내에게 주먹질을 하는 것이다.

"헉, 너네들 뭐 하는 거야?"

한순간 집안이 아수라장이 되고, 주먹으로 얼굴을 맞았던 뱀바가 천천히 일어나며 오도덕에게 주먹을 날리며 무언가를 떠들어 댄다. 마뜨가의 아내와 오도덕의 아내가 어렵게 두 사람을 뜯어말리고, 두 사람의 몸싸움에 얼굴을 맞았는지 마뜨가의 코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다.

오도덕과 뱀바 그리고 오도덕의 아내가 집 밖으로 나가고 마뜨가의 코피를 지혈하며 깨진 술병의 유리조각을 치우는 동안 오도덕과 뱀바는 밖에서 서로 멱살을 잡고 주먹을 교환하고 있다.

"야, 이 사람들 답이 없는 사람들이네!"

한참 후에 오도덕과 뱀바는 어깨동무를 하고 집으로 들어온다. 얼굴에 상처가 난 뱀바와 주먹에 상처가 난 오도덕은 서로 뭔가를 말하며 화해를 한 모양이다. 그리고 이유 없이 맞아 코피가 난 마뜨가는 휴지로 코를 막고 소파에 앉아 있다.

"너희들, 너희들 정체가 무엇이냐?"

마뜨가와 오도덕 그리고 뱀바는 자리를 잡고 술을 따라 나긋하게 대화들을 하며 다시 술을 마신다. 계속 술을 권하는 오도덕을 피해 다니다 분위기를 바꿔주기 위해 그들과 자리를 함께 한다.

그 사이 저녁을 준비하던 마뜨가의 아내가 양고기 국수를 내어주고.

"깡술을 마시면 안 돼! 아니 이렇게 좋은 안주가 있는데 같이 먹어야지!"

자리를 잡고 그들과 앉아 대화를 하는 사이 분위기는 좋아지고, 농담을 하며 제스처와 스킨쉽으로 웃고 떠든다.

"툴가야, 몽골 사람들은 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툴가에게 문자를 보내고, 다시 술을 사러 나가는 뱀바를 잡아 계속 깡술을 먹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안주가 될만한 것을 사주려고 뱀바를 따라간다.

오토바이를 타고 꿀렁꿀렁 흙길을 달려 문이 열린 슈퍼를 찾아 마을의 이곳저곳을 들렸지만 열려있는 슈퍼가 없다.

"무슨 동네에 슈퍼가 이렇게 많아!"

슈퍼를 찾아온 동네를 돌아다니던 뱀바는 도로변의 식당으로 들어가고, 술을 사려는 뱀바 대신해 술과 몽골식 만두를 주문하고 돈을 낸다.

"내가 살게. 근데 술 마실 거면 만두랑 같이 먹어라."

양만두가 나오는 동안 한 잔씩의 술잔을 비우자 그곳에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마뜨가와 오도덕이 포터 트럭을 몰고 식당으로 들어온다.

"정말 너희들의 정체가 무엇이냐?"

마침 주문한 만두가 나와서 마뜨가의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꿀렁꿀렁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오며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 버리고, 마뜨가의 집으로 돌아와 몇 잔의 술을 마시며 떠들며 웃는다.

"뱀바! 내 모자가 날아가 버렸어. 내일 찾아와! 노란 모자야."

피곤함 때문에 침대에 누워 먼저 잠이 들고, 잠든 지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뱀바는 잠자는 나를 깨워 모자를 씌워준다. 잠결에 뱀바를 안고 고맙다고 중얼거리며 다시 잠이 든다.

생각해 보니 조명도 없는 그 어두운 곳에서 바람에 날아간 모자를 어떻게 찾아왔는지 궁금하다.


술을 마시며 느닷없이 주먹질을 하고, 이내 화끈하게 화해를 하는 이상한 몽골의 사람들 그리고 바람에 날아간 이방인의 모자를 찾아주려 어두운 동네를 뒤적이며 돌아다녔을 친철한 몽골의 사람들.


"야! 너네들 정체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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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99일 / 맑음 ・ 6도
동궈이-소도트쏨
호르고를 향해 가는 길, 동궈이 바른자야의 게르에서 야영을 하고 호르고로 떠난다. 90km 정도의 거리가 남았다.


이동거리
57Km
누적거리
9,497Km
이동시간
5시간 56분
누적시간
661시간

A0603
A0603
42Km / 2시간 40분
50Km / 4시간 25분
동궈이
바수이전
협곡
 
 
1,315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저녁 늦게까지 오토바이와 승용차들이 바른자야의 집을 드나들었지만 피곤함 탓인지 이내 잠이 들었다.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이겠지만 날씨가 계속 추어지는 것 같다.

패니어를 정리하고 야영자리를 흔쾌하게 제공해 준 바른자야의 식구들에게 바른자야의 과자와 아빠의 맥주를 사주기 위해 언덕 위의 슈퍼로 간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슈퍼의 문이 닫혀 있어 그냥 돌아와야 온다.

언제나 시크한 바른자야의 아빠와 짧게 인사를 하고 동궈이를 출발한다.

어제와 달리 맞바람이 조금씩 강해지고 동궈이를 벗어나자마자 시작되는 오르막길에 페달링이 느려져간다.

"왜 계속 올라가는 거지?"

몽골에 와서 태극기가 잠잠한 날이 없다.

한 시간 동안 느리게 오르막을 오르고 도로변에 앉아 작은 빵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호르고에서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북향의 산에만 나무가 자르는 몽골의 산악지대는 볼 때마다 신기하다.

"여행자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모험가, 수도승 아니면 그저 그런 방랑자?"

오르막길과 맞바람은 계속 이어지고.

오르막의 반복 끝에 멀리 비포장도로처럼 보이는 길이 산을 향해 굽어지며 올라간다.

"어떻게 타고 갈 수가 없는 길이네."

자전거를 끌며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사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남자가 나를 보며 오토바이의 뒤쪽에 묶여있는 밧줄을 가리키며 웃는다.

"바에르사!"

손을 가로저으며 도움을 주려는 남자에게 방긋 웃어준다.

흙길의 산을 넘어 조심스럽게 다운을 하니 길은 다시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왜 산을 넘는 길들은 포장도로가 끊기지? 여기도 돈을 빼먹는 놈이 있나?"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던 오르막길의 끝이 보인다. 멀리 눈이 쌓인 높은 산들의 실루엣과 길게 이어진 하천의 강물들이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햇빛에 반사된다.

"어쨌든 풍경은 참 좋네!"

멀리 얼어붙은 하천을 바라보며 빵과 음료수로 점심을 한다. 이틀 동안 끊겨있었던 통신이 근처의 작은 마을 틸(Teel, Тээл)에 가까워지며 작은 안테나를 반짝이며 연결되어 있다.

"벌써 1시인데, 아직도 50km가 더 남았네."

도로변의 작은 마을을 지나며 제대로 된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처럼 생긴 곳에 들어갔지만 문이 닫혀 있다.

평탄한 길이 이어지지만 바람 때문에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한 시간을 달려 다시 작은 마을의 모습이 나타난다.

"밥을 먹어야 해. 식당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화물차들이 정차되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데 작은 집 앞에 있던 노인이 나를 향해 손짓을 하며 부른다.

"코리아? 문재인!"

할아버지의 집에 자전거를 세우고 쳐다보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한다.

"오! 할배 문파야?"

할아버지를 보고 밥을 먹는 제스처를 하며 화물차들이 정차되어 있는 곳을 가리키니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할아버지의 집에는 할머니와 손녀로 보이는 아이가 있다.

자리에 앉아 숨을 돌리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뜨거운 물과 함께 커피와 설탕을 내어준다.

오래된 몽골 지도를 가져와 지명들을 읽어주며 현재의 위치를 확인시켜 주는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름이 뭐예요? 네르?"

느린 걸음으로 볼펜과 종이를 가져온 뒤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준다.

"할배, 어려워서 나는 못 읽겠네."

빵을 가져오고 쌀을 가져와 보여주는 할아버지에게 손사래로 거절을 하고 사진을 찍는다.

"할배,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할배, 웃어야지. 웃어봐요!"

할아버지의 집에서 따듯한 커피를 마시고 다시 길을 출발한다.

"아이고 언제 가나!"

마을의 끝을 벗어나자 맑은 물소리와 함께 김병남 선교사님이 말했던 협곡 같은 곳이 나타난다.

마치 제주도의 어느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처럼 검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이색적인 협곡의 모양이다.

"가다 보면 그랜드캐니언 같은 협곡이 나와요. 나는 그곳이 정말 좋더라고요."

김병남 선교사가 그랜드캐니언과 비교하며 말했던 곳인가 싶다.

"선교사님도 참! 뭐 어쨌든 해발 2,000미터의 초원에서 보는 멋진 풍경이네."

도로를 따라 협곡의 모습은 계속 이어지고 도로와 멀어지기 전에 안쪽으로 들어가 풍경을 구경하고 싶어진다.

"내가 또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이다. 들어가자!"

도로를 벗어나 50미터 정도 자전거를 끌고 협곡 쪽으로 들어간다.

생각보다 꽤 깊은 높이로 파여진 자연 협곡이다.

거의 변함이 없는 초원의 풍경 속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협곡의 모습은 신기하고 낯선 풍경이다.

협곡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며 풍경을 감상하다 이곳에서 야영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여기 어디서 텐트를 쳐도 괜찮겠는데."

도로와 떨어져 있고, 도로를 이동하는 차량도 별로 없고, 바위와 언덕으로 가려져 있는 장소라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해도 좋을 것 같다.

"아 좋은데, 통신도 느리지만 연결이 되고."

1시간 가까이 협곡의 주변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며 야영에 대한 고민을 하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조금만 더 이동하기로 결정한다.

"그래도 60km는 채워야겠지!"

천천히 길을 따라 이동하는 사이 주변의 풍경은 현무암 지반의 독특한 지형으로 변하고, 나무가 자란 숲길로 이어진다.

"몽골의 숲길은 이런 느낌이구나."

오래된 침엽수들 사이로 풀들을 뜯는 말들이 지나다니고, 제법 울창하게 들어선 숲을 보니 늑대도 살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숲길의 끝에 타리안트의 경계를 알리는 구조물이 나오고.

멋진 협곡이 구부러진 언덕 위로 리조트처럼 보이는 작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몽골 하나로 투어 여행사? 한국 여행사 리조트인가?"

"일단 가보자!"

한국인 여행객들이 있을지 모를 리조트를 향해 무작정 자전거를 끌고 들어간다. 협곡의 끝에 조성된 리조트는 작은 나무 펜션과 게르들이 들어서 있다.

"코리아?"

나를 보고 밖으로 나온 여자들에게 리조트가 한국 여행사의 리조트인지를 물으니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는 인적감이 없는 펜션과 게르를 가리키며 잠을 자는 제스처를 한다.

"나 여기서 잠을 자도 돼?"

여자는 손을 가로저으며 리조트의 위쪽 도로변에 있는 몇 채의 게르를 가리키며 밥을 먹는 시늉과 잠을 자는 제스처를 한다. 아마도 여행 시즌이 아니라 리조트가 운영되고 있지 않는 모양이다.

리조트의 여자가 가리킨 도로변의 게르로 올라가니 한 여자가 나를 보며 반갑게 손짓을 하며 반겨주고, 게르의 옆 공간을 가리키며 텐트를 치라는 듯 안내를 한다.

도로변의 작은 식당으로 보이는 곳에 자전거를 세우고, 여자는 식당 내부를 페인트칠을 하는 중이라며 알려준다.

"식당 내부 인테리어를 하나 보네."

여자를 따라 들어간 게르에는 식당을 공사하는 인부처럼 보이는 사내들이 4명 정도가 침대에서 쉬고 있다.

"소주!"

게르의 테이블에 앉아 반갑게 인사를 하던 남자는 '소주'를 반복적으로 말하며 참이슬 병을 보여주며 나에게 술을 따라준다.

"뭐야? 참이슬이네. 한국 제품이잖아!"

남자가 안주도 없이 큰 사발에 마시고 있는 참이슬은 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가정용 소주다.

"소주! 소주 좋아? 보드카를 마셔야지! 몽골 보드카!"

"몽골 보드카 모! 모!"

남자는 연신 소주를 외치며 엄지를 치켜세우고, 몽골의 보드카는 나쁘다며 새끼손가락을 아래로 향하며 모모를 외친다.

그 사이 여자는 소금을 뿌린 냄비에 감자를 넣고 볶는다.

약간의 물과 함께 고기를 넣고.

몽골의 조미료 같은 것을 뿌리고.

밀가루 국수를 푸짐하게 집어넣고.

끓인다. 몽골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초이완을 만드는 것이다.

바구니에 가득 담겨있는 작은 빵을 먹으라고 권하며 소주를 따라주는 남자의 잔에 손사래를 치며 밖으로 나온다.

"안 돼! 빈속에 소주를 마시면 속 쓰려. 초이완하고 같이 먹어야지."

공사 중인 가게의 주변에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참이슬 박스가 여러 개 놓여있다.

잠시 후 음식이 나오고 남자가 건네준 소주와 함께 맛있게 저녁을 먹는다.

텐트를 치는 것을 구경하는 남자에게 패니어에 들어있던 관절염 진통제를 몇 개 건네준다. 소주를 마시며 팔목과 어깨에 소염제 같은 로션을 바르며 아프다는 제스처를 했던 남자다.

"여기 아플 때 한 알씩 먹어!"

남자에게 진통제를 주는 것을 본 여자가 다가와 '에취! 에취!'하며 감기약이 있는지 물어보며 산만한 덩치로 아양을 떤다.

"없어! 그냥 이거나 써!"

먹지 않는 진통제는 몇 알 준다 해서 큰 문제는 없지만, 감기약은 누구에게 나눠줄 만큼 넉넉하지 않다. 뭔가를 바라는 여자에게 오초르가 주었던 쓰다 남은 핸드크림을 건네준다.

우리나라 개그맨을 닮은듯한 인상의 남자와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내고.

나를 향해 짖지도 않고 잘 따르는 이상한 몽골 개와 협곡으로 산책을 나간다.

협곡의 주변에는 동물의 뼈들이 잔뜩 흩어져 있다.

"늑대가 먹은 거 아냐?"

"쫓아오는 개들을 때리려면 이거라도 들고 다녀볼까."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을 보니 언젠가부터 소의 생김새가 야크처럼 생겼다.

"할미꽃인가?"

게르와 조금 떨어진 곳에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고, 몽골 초원의 화장실을 보면 바람이 주로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알 수 있는 것 같다.

해가 지기 시작하여 길 건너편 돌바위가 있는 작은 산에 올라간다.

멀리 협곡의 모습이 보이고.

내일 지나가야 할 서쪽으로 길게 뻗은 도로도 보인다.

그리고 초원의 일몰이 시작된다.

"초원의 아름다운 석양을.."

"내 손에 담아.."

"너에게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찬 바람과 함께 구름 사이로 떨어지는 아름다운 석양빛이다.

찬 바람이 불어오는 산을 내려와 불리해지면 벌러덩 누워버리는 개와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내고.

초저녁 무렵 빠르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우렁차게 짖어대는 개들의 소리와 텐트 가까지 지나가는 소들의 움직임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깬다.

요란하게 지나다니는 오토바이 소리와 게르에서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는 밤늦게까지 계속되고, 하늘에는 별들이 빼곡하게 박혀있다. 핸드폰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어보지만 블랙 화면만이 찍힌다.

카메라를 꺼내어 별을 찍는 연습을 하고 싶지만 너무 추워서 귀찮다.

자정이 넘어 다시 잠이 든다. 호르고까지 30km 정도가 남아있어, 아침 일찍 출발하면 점심 이전에 도착하여 편안하게 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왜 밤늦게까지 싸돌아다니는 거야? 딱히 할 것도 없는 이곳에서!"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98일 / 흐림 뒤 맑음 ・ 8도
체체를렉-동궈이
아름다운 도시 체체를렉을 떠나 휴화산이 있는 호르고를 향해서 떠난다. 편안하고 자유로웠던 체체를렉의 시간이 그리워질 거야.


이동거리
78Km
누적거리
9,440Km
이동시간
7시간 34분
누적시간
655시간

S320소도
X006길
42Km / 2시간 40분
50Km / 4시간 25분
체체를렉
바수이전
동궈이
 
 
1,258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5일간 머물렀던 체체를렉을 떠나는 날이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둘러본 것은 아니지만 조용하고 조용한 이 도시가 너무나 마음에 든다.

몽골 여행의 피로를 씻어내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날들이다.

미국식 아침식사는 심플하고 좋지만 배고픈 여행자에겐 뭔가 허전하다.

짐들을 정리하고 친절하게 대해준 몇몇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페어필드를 떠난다. 휴화산이 있는 호르고까지 170km 정도의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슈퍼에 들러 물과 빵 그리고 간단한 먹거리들을 사 든다.

"박카스도 한 병 마셔 볼까?"

페어필드의 숙박비를 결제하고 나니 당분간 사용할 현금이 떨어졌다. 다행히 슈퍼의 바로 옆에 ATM 기기가 놓여있어 은행을 찾아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던다. 물가에 비해 돈의 가치가 떨어지니 몽골에서는 현금 지급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칸 뱅크인가?"

자민우드에서 처음 이용했던 은행인데 뭐라고 읽는지 모르겠다. 느낌상 칸 뱅크인 것 같은데, 어쨌든 영어 서비스가 되는 ATM 기기라서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체체를렉의 서쪽 마을을 돌아 고개를 넘어가는 오르막이 이어진다. 이틀 동안 조금의 눈이 내리며 쌀쌀해졌지만 라이딩을 하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다. 산등성이를 타고 알록달록 양철지붕의 집들이 모여있는 도시의 모습이 이색적이고 마음에 든다.

"안녕. 체체를렉!"

체체를렉을 둘러싸고 있는 돌산 불간울(Bulgan Uul, Булган Уул ДГ)을 넘기 전 작은 톨게이트가 나오고, 그 너머로 흙길로 된 산 길이 이어진다.

"시작부터 이상한 기운이 감도네."

페어필드에서 만난 한국인 교사에게 호르고까지의 도로 상태가 좋다고 들었는데 시작부터 흙바닥의 산 길이다. 몽골의 표현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산을 따라 듬성듬성 자라고 있지만 체체를렉의 경계를 넘어서며 몽골에서 나무를 볼 수 있다.

"나무가 자라는 것이 신기하다니. 별스럽다."

흙길에 미끄러지는 바퀴를 어렵사리 밟아가는데 저 멀리 높은 경사도의 오르막이 보인다.

그리고 따듯하게 등을 달구던 날씨가 갑자기 변하면서 세찬 바람과 함께 빗방울이 떨어진다.

"진짜, 갑자기 왜? 왜 이러는 거야."

정상에서부터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자전거에서 내려 흙길을 끌고 간다.

그렇게 20여 분동안 자전거를 끌고 볼간울을 넘는 고개의 정상에 도착한다. 해발 1,970미터의 체체를렉을 넘는 볼간울의 고갯길.

고개의 정상에 돌을 쌓아놓은 어붜 대신하여 큰 바위들의 주변에 기도의 흔적들이 놓여있다.

멀리 체체를렉의 하늘에는 검은 비구름과 함께 비가 내리고 있고, 하늘에선 커다란 천둥소리가 요란해진다.

체체를렉에서 쉬는 동안 하루에도 몇 차례씩 날씨가 변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급변하는 몽골 고산의 기후가 생소하고 낯설다.

검은 구름에 휩싸여 있는 체체를렉과는 달리 반대편의 하늘은 고요하고 맑다.

흙길에 미끄러지는 자전거를 브레이킹하며 털털거리는 자전거를 어렵게 제어한다.

"젠장, 어렵게 끌고 올라왔는데 내리막의 보상도 없네."

볼간울 너머 체체를렉의 건너편은 몇 분 전의 궂은 날씨가 이상하리만큼 평화롭고 바람마저 없다.

내리막의 끝에서 포장도로는 다시 이어진다. 오늘 어쩌면 이런 도로의 상황을 수차례 만날지도 모르겠다.

나무들이 자라는 숲이 있어서인지 이곳에는 햄스터보다 큰 다람쥐 같은 것이 도로변을 돌아다닌다. 동남부의 햄스터들처럼 재빠르게 몸을 숨겨버려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바람이 사라진 평온한 도로에는 멋진 구름들만이 둥실둥실 하늘을 채우고 있고.

평평한 도로는 끝이 없이 구부러지며 이어진다. 체체를렉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확인하기 위해 GPS를 켜보니 산들샘 GPS가 먹통이다. 다시 재부팅을 하고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는지를 확인한 후 길을 이어간다.

넓은 초원 한가운데 생뚱맞게 놓여있는 비석과 대리석 테이블이 있는 곳에서 잠시 쉬어간다.

무덤의 비석인지 기도를 하기 위한 공간인지는 모르겠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노란 꽃들이 초원을 뒤덮을 준비를 하고 있고.

무엇보다 몽골의 초원, 부드러운 산의 능선들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하늘과 구름의 움직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잠시 고개를 돌리면 순식간에 변해있는 구름의 모양들이 신기하다.

평탄하게 이어지는 도로에서 한가로운 페달링으로 풍경들을 감상하며 게으르게 길을 이어간다. Zaankhushuu(Заанхошуу)가 시작되는 마을의 초입을 지나 길게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간다.

지루한 업힐이 계속 이어지고 거대한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어버린다. 해를 가리고 있는 검은 구름을 지나면 언제나 그렇듯 바람이 불어온다.

산 길이 이어지며 핸드폰의 네트워크마저 완전히 끊겨버린다.

새끼 양을 데리고 다니는 녀석들은 자동차가 지나가도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앞서 지나가던 자동차가 갑자기 뛰어든 새끼 양을 피하느라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휘청거린다.

빠른 자동차가 지나가도 꿈적하지 않던 녀석들은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빠르게 도망가 버린다. 이상한 녀석들이다.

체체를렉을 지나며 차량의 통행마저 뜸해진 겹겹의 산들을 오르고 또 오른다.

멀리 고산의 초원에 얼어있는 얼음은 녹지 않고 햇볕을 받아 반짝거리고.

도로변의 남쪽의 산(북향)에만 나무가 자라는 고산의 초원이다.

"몽골의 숲은 북향이나 음지에만 형성이 되어 있어서, 예전에는 그것을 보고 방향을 잡았다고 하네요."

김병남 선교사의 말처럼 따듯한 남향의 양지에는 초원의 풀들이 자라고, 북향의 산등성이에는 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나저나 저 구부러지는 고갯길은 어떻게 할 거야!"

지나온 길 위로 비를 뿌리듯 흐릿하게 하늘로 올라가는 구름들이 보인다. 처음 중국의 고산 초원과 몽골에 왔을 때, 카메라에 찍힌 구름들의 사진이 솜뭉치로 문지른 듯 흐릿하게 뭉개진 것이 카메라의 렌즈에 이물질이 묻어 그런 줄 알았다.

카메라 렌즈를 닦고 사진을 찍어도 똑같은 모양의 구름들, 바람에 흩날리며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가며 구름을 만드는 모양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글을 쓰고 하늘을 보면 지면에서 올라가는 구름의 모양들이 신비롭게 보인다.

"몰라. 밥이나 먹고 가자."

슈퍼에서 사온 빵과 음료수로 점심을 먹는 동안 수없이 모양을 바꾸며 움직이는 구름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의 푹신해 보이는 구름이 너무나 좋다.

느릿느릿 산 길을 오르고.

언제나 몽골 초원의 정상에서 볼 수 있는 어붜가 쌓여있다.

나무가 자라는 곳이라 어붜도 나무를 쌓아 세워놓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사고가 많이 나는지 언제나 어붜에는 목발들이 많이 놓여있다.

길은 다시 오르막의 산길로 구부러지며 이어지고.

끝날 것 같지 않던 산길은 해발 1,997미터의 정상을 찍고 내려간다.

저녁이 가까워지며 조금씩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내리막길을 달려 만난 도로변의 작은 식당과 몇 채의 집 앞에서 잠시 고민에 빠진다.

"오늘 여기까지만 탈까? 식당에서 밥을 먹고 게르 주변에 텐트를 치면 좋을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 5시가 가까워져 간다. 라이딩을 마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고 통신조차 되지 않아 조금만 더 길을 가보기로 결정한다.

"꼭 중국의 변발처럼, 누가 깎아놓은 것처럼 나무들이 자라네."

초원에서 말을 타며 휘파람을 부는 목동들과 손인사를 하며 평탄한 초원의 길을 달린다. 6시까지만 달리겠다는 생각으로 시계를 확인하니 이미 6시가 넘어 7시를 향해 분침이 움직이고 있다. 내리막이 시작되던 작은 식당의 앞에서 6시의 시간을 5시로 잘 못 본 것이다.

"어쩐지, 적당한 장소가 나오면 거기까지만 움직이자."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해가 저물기 시작하며 조금씩 마음이 조급해진다. 평평한 길을 달리던 중 초원에서 움직이는 검은 가축과 눈이 마주쳤다. 족히 4~50미터는 떨어져 있을 것 같은 곳에서 그 눔이 나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한다.

"아. 오지 마. 개**********!"

쓰레기들이 놓여있는 웅덩이 같은 곳을 배회하던 검은 개가 이빨을 드러내며 빠르게 자전거를 향해 달려든다. 또다시 개와의 단거리 경주를 하듯 미친 듯이 페달을 밟고 남아있던 체력도 완전히 바닥이 난다.

"아오. 짝대기를 하나 장만하던지, 짱돌을 들고 다니든지 해야지."

조금씩 해가 저무는 동안 멀리 작은 벽돌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도로를 빠져나와 몇몇 사람들이 차에서 짐들을 옮기고 있는 작은 식당으로 갔지만 문이 닫혀있는 집은 사람의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집 주변에 텐트를 칠만한 좋은 공간이 있지만 썩 마음이 내키질 않고.

짧은 고갯길을 돌아 나오니 저 멀리 석양빛을 반사시키는 양철지붕 같은 것이 보인다.

"집 같은데, 3~4채 정도. 5~6km만 가면 되겠는데."

몇 채의 집이 모여있는 것 같은 곳을 향해 마지막 힘을 다해 달려간다. 5~6km 정도 될 것 같았던 거리는 좀처럼 줄어들지를 않고 30분이 넘게 흐릿한 집들의 실루엣을 바라보며 달려간다.

무려 10km 정도의 거리를 달려 도착한 동궈이 마을.

"몽골에 가면 눈이 좋아진다고 하더니, 어떻게 10km 떨어진 작은 집이 눈에 보였던 거야?"

멀리서 보였던 양철 지붕의 집은 생각했던 그대로의 모습이다. 집을 지나 도로변으로 작은 주유소와 몇 채의 집들이 들어서 있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어떻게 저렇게 먼 곳에서 이곳이 보였지?"

식당이 있는지 찾기 위해 도로를 따라가다 마주 오던 오토바이를 탄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샌 배노!"

남자에게 인사를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오토바이의 남자가 언덕 위에 있는 집을 가리킨다.

"저기에 가라고?"

어리둥절하게 서 있으니 언덕을 오르던 오토바이가 멈춰 서더니 다시 나를 향해 작은 간판이 붙어있는 집을 가리킨다.

"몰라. 일단 가 보자!"

언덕을 올라가 보니 그곳은 식당이 아니고 작은 슈퍼다.

슈퍼에 들어가 주변에 식당이 있는지 물어보려 해도 핸드폰에 네트워크가 잡히질 않는다. 난감해하며 한숨을 돌리고 있으니 중년의 아주머니가 가게를 닫아야 한다며 나가라고 한다.

"아니, 왜 문을 닫아. 음료수라도 하나 살게."

슈퍼 아주머니에게 겨우 오렌지 음료수 하나를 사들고 가게를 나오니 다른 남자와 얘기를 나누던 오토바이의 남자가 나에게 다가온다. 툴가가 적어준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메시지를 보여주니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

시큰둥하게 반응을 하는 남자의 표정을 이해하기 어려워 정확한 의사 전달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김병남 선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해보려 했지만 전화기마저 먹통이다.

"내 핸드폰이 안돼! 너, 취 핸드폰 있어?"

온갖 제스처로 표현을 해도 시큰둥하게 주유소가 있는 길 건너편 방향의 게르를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인다.

"저기가 네 집이야? 저기로 가자고?"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의 남자를 따라 게르가 있는 곳으로 간다. 내가 이해한 내용이 맞는지 주저주저하고 있으니 빨리 오라며 손짓을 하는 남자.

남자를 따라 들어간 게르에는 어린아이 둘과 남자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와 서너 명의 남자들이 앉아 있다. 고글과 헬멧을 벗고 인사를 하니 침대에 앉으라며 안내를 하고 우유차를 내어준다.

그리고 부셔놓은 과자 가루 같은 것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 와 나에게 먹으라고 한다. 무엇인지 몰라 약간을 집어먹으니 남자는 바구니를 처음 놓여있던 곳에 놓아둔다.

"몽골 집에 방문하면 의식적으로 먹는 그런 건가?"

게르의 기둥에 걸어놓은 2G 폰을 보여주며 사용하라 제스처를 해서, 남자의 전화기로 김병남 선교사와 통화를 한다.

"여기 호르고 가는 도중에 게르에 들어왔는데 하룻밤 신세를 지겠다고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김병남 선교사와 통화를 한 남자는 여전히 시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 않은 듯 자리에 앉아 맥주를 따라 살짝 입을 갖다 댄다. 그리고 사람들과 무언가 대화를 하던 남자는 맥주잔을 채우고 상대에게 건네주고, 잔을 받은 남자는 살짝 입을 갖다 대듯 한 모금만 마시고 다시 남자에게 건네준다.

이번에는 집을 들어서는 남자에게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마지막으로 그의 아내에게도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무엇을 하는 거지? 느낌상 마지막 차례는 난데?"

게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던 중 아니나 다를까 남자는 다시 맥주잔을 채워 나에게 준다.

"이걸 어떻게? 어떻게 하는 거야? 마셔? 전부? 내가 전부 마시라고?"

나의 제스처를 보며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 우유차와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것을 내어주고, 잔을 돌려 마신 술을 주는 것이 몽골의 손님을 맞이하는 풍습인가 생각한다.

쇼바가 높은 오토바이를 타는 몽골의 유목민들.

항상 작은 가죽 가방을 옆에 차고 있고.

가방 안에는 망원경이 들어있다.

다섯살짜리 꼬마 바른자야의 집에서 하룻밤을 신세진다.

바른자야에게는 어린 젖먹이 여동생이 하나 있고.

숲이 있는 곳이라 겨울철에는 늑대 사냥을 했던 모양이다.

맛있는 요거트까지 얻어먹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양 떼들의 사이에.

텐트를 친다. 텐트를 보고 손을 잡고 끌고 들어가 게르의 침대에서 잠을 자라는 남자의 권유에 정중히 감사의 인사만을 하고 텐트로 돌아온다. 김병남 선교사님의 말에 따르면 몽골 사람들은 의사표현이 직설적이고 확실하다고 한다.

텐트에서 자겠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고 그 후로 의견을 물어보거나 권유하지 않는다.

바른자야에게 남은 초콜릿을 건네주기 위해 게르로 들어간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바른자야의 젊은 엄마는 나에게 양고기 볶음밥을 한 그릇 건네준다. 양고기 향이 퍼지는 볶음밥은 꽤나 괜찮은 맛이다.

텐트에서 잠을 자는 동안 늦은 시간까지 오토바이들이 게르를 들렀다 간다. 몽골 사람들은 조금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체체를렉에서도 새벽까지 나이트클럽이나 노래방 같은 곳에서 시끄럽게 울려대는 음악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밤하늘의 별을 조금 쳐다보고 싶지만 너무 춥다. 바람과 산길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초원의 라이딩이 그리 쉽지만은 않지만 조금씩 몽골의 사람들에게 익숙해져 간다.

완전히 통신이 끊겨버린 밤, 그냥 자는 것이 최고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75, 76일 / 눈 ・ 8도
체체를렉
조용한 도시 체체를렉에서 휴식을 취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9,326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647시간

라마교사원
식당
0Km / 00분
0Km / 00분
숙소
숙소
숙소
 
 
1,180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눈이 내리며 기온이 떨어진 체체를렉, 진눈깨비처럼 눈이 내리더니 하늘이 어둡다. 체체를렉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모두가 하얗게 변해있다.

아침으로 먹을 것은 일명 풀 일글리쉬 블랙퍼스트.

"빵 식사에 적응을 해야 해."

게스트하우스는 러시아 사람들이 빠져나간 이후로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 3인실의 방을 혼자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페어필드 전체를 독차지하고 있는 기분이다.

산책을 하기 위해 패니어에 들어있던 방풍 재킷을 다시 꺼내어 입고 불교사원을 둘러본다.

게르 형태로 지어진 작은 라마교의 불교 사원을 문을 열고 들어간다.

동그란 게르의 정면에 부처로 보이는 상들이 모셔진 제단이 있고, 천장으로 달라이 라마의 사진과 스님으로 보이는 모르는 사람의 사진도 커다랗게 걸려있다.

양쪽으로 나누어진 책상에 각각 세 명의 스님들이 앉아 있고 사람들이 마주 보며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입구 쪽에 놓아진 작은 의자에 네 명의 사람이 순서를 기다리며 앉아있어 조용히 그 옆에 앉는다.

옆에 있는 여자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보니 안된다며 엷은 미소를 보인다.

스님들은 작은 쪽지 같은 것을 넘기며 불경 같은 것을 계속 읊조리며 종을 울리거나 통에 든 주사위를 굴리거나 부적 같은 것을 적어 사람들에게 건네준다.

사람들은 스님들의 앞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거나 수첩에 무언가를 받아 적는 등 모두 제각각이다. 아이와 함께 온 사람, 부부처럼 보이는 사람, 중년의 아주머니, 부녀처럼 보이는 사람 등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앉아있다.

마치 우리의 점집이나 신당에 와있는 기분이 든다. 사람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고 경건한 모습들이다.

낮은 중저음의 불경 소리가 편안하여 오랫동안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다 숙소로 돌아온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몽골도 토템신앙을 기본으로 티벳불교의 문화가 복잡하게 섞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학교 옆에 있는 공원이 조각상. 중국의 조각상들이 정교하다면 몽골의 조각상들은 모두가 강렬하다.

주변의 몽골리안 식당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토요일이라 대부분 문을 열지 않는다며 안내를 해준다. 딱히 먹고 싶은 음식도 생각나지 않고 숙소에 있는 피자를 시켜 먹어본다.

10,000투그릭, 4,500원 정도의 피자인데 부드럽고 편안한 맛이다.

저녁 무렵 랜드로버를 타고 여행을 하는 독일인 커플이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온다. 러시아를 통해 몽골로 들어온 그들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컴퓨터로 무언가를 정리하는 남자가 짧게 대화를 하며 여행자 명함을 건네준다.

남자는 바로 인스타그램으로 친구 등록을 하며 'long long journey'라며 친근하게 웃는다. 조금씩 영어가 들리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말하는 것이 어렵다.

여행하며 아무 말이나 내뱉고 다니다 보니 외국인에 대한 낯선 거부감이나 언어 사용에 대한 부끄러움 같은 것이 전혀 없다.

"뭐 아무 말이나 던져 놓으면 지들이 알아듣겠지. 못 알아들으면 번역기 쓰고!"

함께 자전거를 타며 여행하는 외국 친구가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든다. 대충 나보다는 나이가 어릴 테니 언어도 배우고 일도 부려먹을 수 있게 말이다.

몽골의 게르나 집에서는 연료로 석탄을 태워 사용하기 때문에 마을은 언제나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로 가득하고, 연탄 냄새 같은 것이 난다.



새벽까지 진눈깨비가 날리더니 여전히 아침이 흐리다. 10시쯤 게스트하우스를 나서는 독일 커플과 인사를 나눈다. 마치 페어필드의 호스트가 된 기분이다. 남자는 나의 인스타그램으로 소식을 보겠다며 인사를 하고, 잘 생겨서 예쁜 여자는 좋은 여행을 하라며 악수를 청하며 웃는다.

"개미 손톱만큼 부럽기는 하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하루 종일 자료들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낸다. 점심 무렵 외국인 커플이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왔지만 숙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바로 나가버린다.

이후로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

나를 싱가폴 사람으로 생각했다는 여직원 자이카와 인사를 나눈다.

"싱가폴 사람보다는 내가 귀티가 날 텐데."

복도의 테이블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고, 소파에 기대어 핸드폰의 자판을 두들긴다.

저녁 8시가 되어 출출함이 느껴져 자니카에게 근처에 테이크 아웃 식당이 있는지 물으니 길 건너편의 식당과 숙소 바로 옆에 있는 호텔에 식당이 있다고 알려준다.

"저게 식당이었어?"

자니카에게 저녁을 어떻게 먹는지 물어보니 집에 가서 먹는다고 한다.

"나 밥 먹으러 갈 건데, 같이 안 갈래?"

언제나 웃는 얼굴의 자니카가 조금 주저하길래 같이 가자며 반강제적으로 소원을 한다.

불고기 같은 한국 음식을 판다는 길 건너편 식당은 불이 켜진 채 문이 닫혀있어, 숙소 옆에 있는 호텔의 식당으로 들어간다. 가라오케가 운영되는 묘한 컨셉의 호텔 식당에서 메뉴들을 주문했지만 요리가 안된다고 하여 간단한 것들을 시켜 먹는다.

"우리 게스트하우스에도 한국 음식이 있어."

"앙? 페어필드에 한국 음식이 있다고?"

"응."

왜 나는 쓸데없이 빵 식사에 적응을 한다며 굳이 양에 차지도 않는 빵과 베이컨 같은 것을 먹고 있었을까 싶다.

체체를렉에서 태어난 27살의 자니카는 7살의 딸이 있고, 남자 친구와 살고 있는데 아버지가 결혼을 반대해서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나처럼 여행을 하고 싶은데 가족, 돈, 일 등등으로 갈 수 없다고 말하고, 한국에 가보고 싶은데 비자를 받는 것이 어려워 갈 수 없다고 한다.

김병남 선교사님이 말하기를 몽골에서 한국에 가려면 500만투르크 정도를 보증금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비행기표 값이나 여행경비 등등을 고려하면 보통의 몽골인들이 한국을 여행하기란 쉽지가 않을 것 같다.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자니카와 어쩌면 삶의 고민거리일지도 모를 이야기가 오가다 보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 나는 왜 사람들과 이야기만 하면 주제들이 이렇지."

자니카와 페이스북을 연결하고 식당에서 나와 숙소로 돌아온다. 밥을 잘 먹었다며 웃으며 인사하는 자니카.

"같이 먹어줘서 내가 더 고맙지."


"I don,t know whether to stay another day or leave."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94일 / 흐림 ・ 8도
체체를렉
흐리고 쌀쌀해진 날씨, 하늘에서 싸리눈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동거리
00Km
누적거리
9,362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647시간

뒹굴뒹굴
뒹굴뒹굴
0Km / 00분
0Km / 00분
숙소
수도원
숙소
 
 
1,180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해발 1,600미터의 도시 체체를렉, 쌀쌀해진 아침이다. 어두워진 하늘에서 하나둘씩 진눈깨비가 떨어져 내린다.

"눈이 내리려나 보네."

1층에 있는 카페 겸 식당으로 들어간다. 친철한 웃음을 갖은 어제의 여직원이 방긋 인사를 건넨다.

단품으로 적혀있는 메뉴들을 고르며 배가 많이 고프다고 하니 아침 세트 메뉴를 추천해 준다.

"아마도 오늘 눈이 내릴 거예요. 날씨가 추워요."

하늘을 보고 있는 나에게 여직원이 친절하게 날씨를 알려주며 음식을 가져다준다. 빵을 잘 먹지 않는 나에게 팬케잌과 빵, 베이컨 등의 아침 식사는 어색하고 성에 차지 않는다.

"빵으로 먹는 식사에도 익숙해져야지."

게스트하우스답게 이곳저곳에 여러 나라의 소개 자료 같은 것들이 걸려있고.

"이곳에 산악자전거 투어 같은 것이 있나?"

바위가 있는 산악지역이라 MTB 코스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오후에 시간을 봐서 한 번 가볼까. 체체를렉의 싱글 코스를 타보고 싶네."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던 여행객들이 하나둘 짐들을 들고 빠져나가고, 여행 자료를 정리하다 산책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숙소 뒤편의 바위산에 사찰 같은 것이 있어 올라가 보고 싶어진다.

"저기 올라가면 체체를렉이 한눈에 들어오겠네. 가보자."

학교가 있는 작은 공원에 불상으로 보이는 석상이 놓여있는데 그 모습이 이색적이다.

공원 뒤편에 있는 기와지붕의 오래된 건물이 보인다.

"이곳이 사찰인가?"

자전거를 공원의 난간에 묶어두고 건물로 들어가며 안내 간판을 살펴보니 사찰이 아니고 박물관이다.

몽골의 사자상의 입 부분에는 무엇을 묻히는지 모두가 시커먼 기름 같은 것이 묻어있다.

5,000투그릭 입장권을 사들고.

작은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는데, 뭔가 휑하니 그렇다.

몽골은 알록달록 원색을 많이 사용하고, 문양이나 조각상들의 형상이 강렬하다.

옛 게르의 모형을 봐도 지금의 게르와 별반 다른 것이 없다.

옛 건축물을 전혀 볼 수 없던 몽골에서 유적처럼 남겨진 건물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 같다.

박물관 안에는 과거의 생활 유물들과 종교 관련 유물들 그리고 근현대의 역사 정보들이 3개의 구역으로 나눠져 전시되어 있다.

라마교의 부처상은 느낌이 사뭇 다르고, 종교 관련 조각상들의 마치 악마나 사탄의 형상을 표현한 것처럼 강렬하고 이색적이다.

"마르코 폴로가 서방에 몽골을 알려주기 전, 사람들은 우리는 야만인으로 생각했데요."

울란바토르에 세워진 마르코 폴로의 석상에 대해 물었을 때 툴가가 대답했던 말들이 떠올른다. 토템 신앙을 뿌리에 두고 있는 몽골의 독특하고 이색적인 문화를 엿볼 수 있다.

60년대 체체를렉의 모습을 그린 그림도 보이고, 박물관이 있는 건물과 뒤편의 사원을 제외하고 모두가 사라지고 없는 것 같다.

원나라의 성쇠기 100년간 원나라의 속국으로 지배를 받았던 고려시대의 지도도 보인다.

"외세에 많이도 치이면서 살아온 민족이야.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니 짠하다 짠해!"

거대한 대륙을 정복했던 몽골이 자신들의 글자를 잃어버리고 산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칭기스칸 광장에 있던 조각상의 모형도 보이고.

관람객이 아무도 없는 박물관을 혼자서 구경하고.

박물관의 뒤편의 사원으로 올라간다.

돌산을 배경으로 부처상이 보이는 많은 계단이 보이고.

"무엇을 묻혀놓은 거지. 궁금해지는데."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보이고.

계단의 중앙으로 12간지의 동물들상이 순서대로 놓여있고, 호랑이 조각상 밑에 돌을 하나 올려놓고 계단을 올라간다.

정상의 사원 앞에 커다란 부처상이 세워져 있는데 왠지 우리의 부처상과 너무나 똑같다.

체체를렉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도원의 주변을 둘러보고 부처상의 오른 편에 놓여있는 종을 보기 위해 가까이 가보니 이것은 한국의 종이다.

"세계인류평화 기원의 종. 설마 저 부처상도 한국에서 세워놓은 것인가?"

시내 중심의 좌우 언덕으로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체체를렉의 풍경이 소박하고 아름답다.

산악 초원에도 꽃들이 피기 시작하고, 초원의 능선에 들어서 있는 몽골의 집들에도 익숙해져 간다.

"Are you tourist?"

수도원을 내려오던 중 산 길에서 걸어 내려오던 외국인과 눈이 마주치자 관광객인지를 물어본다. 러시아에서 워킹 여행을 왔다는 그와 인사를 나누고 여행자 명함을 주며 대화를 나눈다.

"Good luck!"

봄과 가을에 짧은 기간 여행을 즐긴다는 러시아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자전거를 세워둔 박물관 앞까지 함께 걸어온다. 러시아 남자는 그의 빠른 영어 발음이 부담스러워질 때쯤 짧은 인사와 악수를 건네고 시크하게 바쁜 걸음으로 걸어가버린다.

"오, 브로. 뭘 좀 아는 녀석이군."

자전거를 타고 체체를렉의 시내를 잠깐 구경하고 몽골 씨름 선수의 석상이 세워진 사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자전거를 탄 초등학생 정도의 꼬마가 인사를 한다.

"안녕. 너 한국 자전거 타는구나."

알톤 자전거를 타고 있는 꼬마에게 자전거 가게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봤지만 모른다고 한다. 숙소에 보았던 트렉 자전거 샵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보이질 않아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의 카페에 걸려있는 트렉 자전거 매장의 약도를 가리키며 어디에 있는지 직원에게 물어보니 한참 동안 포스터를 살펴보더니 울란바토르에 있는 가게라고 알려준다.

"Not here? 아쉽네. 산악코스가 있으면 MTB로 달려보고 싶었는데."

동네 곳곳에 소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체체를렉.

마땅한 음식점을 찾지 못하고 호텔에 있는 음식점으로 들어간다.

높은 테이블과 낮은 소파가 음식을 먹기에 불편한데 내몽골에서부터 이런 구조의 음식점들이 많다.

"내가 짧은 거겠지."

영어를 잘 구사하는 남자는 몽골어로 되어있는 메뉴판 대신 영어 메뉴판이 있다며 책상을 뒤적거린다. 괜찮다며 몽골어 메뉴판을 가지고 와 펼쳐보는 순간 영어 메뉴판이 왜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메뉴들 속에서 김치찌개백반 같은 것이 보이고 제육볶음 같은 메뉴가 보인다.

"난 소고기나 양고기가 먹고 싶은데."

남자에게 메뉴판을 가리키며 돼지고기인지를 묻자 그렇다고 대답하며 매운 양념으로 볶은 음식이라며 소개를 한다.

"제육볶음이네. 이걸로 주세요."

10분 정도가 지나 제육볶음이 나오고, 밥이 없느냐는 질문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가져다주며 두 공기의 밥과 함께 약간의 반찬을 내어주었다. 아마도 2인분의 메뉴인가 싶다.

맵다는 주인 남자의 설명과 달리 내 입에는 아주 달달하게 맛있는 정도다. 국물 떡볶이 정도의 느낌이랄까.

한국에서 이런 음식을 주면 형편없다고 말하겠지만 외국인들이 먹기에는 아주 적절한 맛의 제육볶음이다. 김병남 선교사와 먹었던 김치찌개도 그랬지만 한국 음식의 맛이 조금은 느껴지면서 현지인들이 먹기 편한 게 만들어지는 음식들이다.

중국의 한국 음식점에서 판매되는 한국 음식들이 아주 이상한 형태의 맛이라면, 몽골에서 판매되는 한국 음식들은 고개가 끄덕여지고 이해가 되는 그런 맛이다.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좋은 음식이다."

식당의 남자와 여행에 대해 짧은 이야기를 하며 여행자 명함을 건네주고 나온다. 저녁을 먹는 사이 비가 내렸는지 도로와 땅들이 젖어있다.

슈퍼에 들러 숙소에서 주전부리로 먹을 것들을 골라 담고, 독수리 타법으로 POS기를 사용하는 아주머니 탓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참 느긋하단 말야."

서툰 업무인지 계산을 하기 위한 줄이 길어지지만 짜증을 내는 사람도 없고, 빠르게 계산을 처리해 주려고 허둥거리지도 않는다. 한국에서 이런 상황이라면 귀까지 빨갛게 변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텐데, 카운터의 여자는 너무나 태연하고 느리다.

해발이 높아지면서 진공 포장되어 있는 제품들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다.

아침에는 눈이 내리고 오후 들어 맑아지더니, 저녁에는 잠시 비가 내리고 이내 비현실적인 구름들이 저녁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소들을 주인이 있는 거야?"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 체체를렉이 마음에 든다.

문제라면, 이런 좋은 곳에서는 많은 생각들이 낡은 영사기의 파노라마처럼 찌그덕거리며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때는 미처, 그때는 그저, 아마도, 어쩌면, 그래서.. 그러했는지 모르겠다 등등의 유효 기간도 없이, 순서도 없이 무례하게 파고드는 낡은 감정들.

툭.. 툭.. 툭. 이제는 괜찮은지 묻는 듯 감정의 끝을 건드려 놓고, 이번엔 어떻게 할 것인지 지켜보는 것처럼 빈 시간을 놓아둡니다.


"이번엔 네가 틀렸어. 널 이곳에 놓아두려고 온 거야! 꽤나 힘들 거야. 다시 나를 찾으려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93일 / 맑음 ・ 20도
카라코룸-코톤트-알탄유브-체체를렉
카라코룸에서의 야영을 마치고 체체를렉으로 향한다. 남부의 사막 초원과는 다른 몽골 중부의 푸른 산악 초원을 달린다.

이동거리
111Km
누적거리
9,362Km
이동시간
7시간 12분
누적시간
647시간

에르덴산트
A0602
85Km / 5시간 08분
36Km / 2시간 04분
카라코룸
알탄유브
체체를렉
 
 
1,180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새벽 몽골 초원의 날씨는 생각만큼 쌀쌀하고 추웠고, 깊은 잠에 빠져들지 못하고 가수면에 가까운 잠자리로 새벽까지 뒤척였다. 겹겹이 옷을 껴입고 여름 침낭을 덮었지만 조금씩 한기가 밀려들어 불편한 잠자리를 뒤척이게 만들었다.

새벽 5시가 되어서야 피곤함에 못 이겨 잠에 빠져들고 해가 떠오르며 따듯해진 텐트 안에서 피곤함을 달래며 게으름을 피웠다. 거세게 불던 바람은 사라지고 밤새 귀를 간지럽히는 새들의 지저귐이 즐겁다.

"마른 풀과 새롭게 새싹들이 자라나는 초원의 냄새 그리고 새들의 노랫소리."

"선교사님, 여행 다니며 누구라도 만나려면 침낭이 하나 더 필요하겠어요."

커피를 끓이고 선교사님과 앉아 몽골에 대한 궁금증과 유목 민족의 몽골인들의 이야기로 초원의 아침을 보냈다.

몽골의 초원에서 쑥처럼 자라는 풀은 독초처럼 만지면 쓰라리고 아파서 동물들조차 먹지를 않는다고 한다.

카라코룸(Хархорин)에서 체체를렉(Цэцэрлэг)까지는 120km 정도의 거리이다. 김병남 선교사는 체체를렉으로 가는 길의 초입까지 배웅을 해준다. 체체를렉 100km의 거리를 알리는 이정표에서 차량을 세우고 자전거를 꺼내어 패니어들을 장착한다.

고생스러운 잠자리였지만 함께 추억을 만들어준 선교사님과 포옹을 하며 인사를 하고 체체를렉으로 향한다.

파릇파릇 풀들이 자란 몽골 중부의 초원은 남부의 사막 초원과는 달리 생동감이 느껴진다.

한 시간 정도를 달려 작은 마을 호턴트(Khoton, Хотонт)에 도착한다.

카라코룸에서 이어지는 작은 강줄기가 마을을 돌아가고.

"말이나 양들은 자기 소유를 어떻게 확인하죠?"

넓은 초원을 돌아다니는 가축들의 소유를 어떻게 확인하는지 물었을 때 선교사님은 유목민의 고유 인장이나 인식표를 찍고, 뿔 같은 곳에 각자의 색으로 표시를 한다고 알려주었다.

염소들의 양쪽 뿔에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져있고, 양들은 엉덩이에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져있다.

마을의 초입에도 풀을 뜯는 양들이 가득하고.

"이놈들은 노란색과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져있네."

도로변에 있는 작은 슈퍼에서 물과 오렌지 음료수를 산다. 중국에서 매일처럼 먹었던 콜라가 지겹기도 하고 목이 칼칼하여 콜라보다는 과일음료가 낫겠다 싶다.

계산을 하며 밥을 먹는 제스처를 하며 식당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고 손가락을 가리켜 알려주는 길 건너편의 식당을 확인한다.

슈퍼에서 나와 잠시 쉬고 있으니 조그마한 초등학생이 다가오며 인사를 한다.

"Hi, My name is Sutan!"

수탄과 인사를 하고 가볍게 악수를 청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슈퍼의 여주인이 우리들을 지켜보며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다.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수탄을 다시 불러 사진을 찍는다.

슈퍼의 주인이 알려준 식당은 작은 호텔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자전거를 묶어두고 케니지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한때 우리나라의 경양식집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던 케니지의 색소폰 연주는 몽골의 레스토랑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제복을 입은 여직원이 메뉴판을 건네주고, 소고기와 볶음밥이 함께 있는 9,900투그릭의 음식을 주문한다.

"4,500원 정도 하는가? 아주 소고기가 가득가득하네!"

지금껏 몽골에서 먹어 본 소고기들은 마블링 같은 기름 부위가 전혀 없는 살코기들이다. 짭조름한 밥과 소고기 볶음은 탄산음료나 주스와 함께 먹으면 괜찮을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배가 차오르니 게으름과 함께 나른함이 찾아든다.

"여기서 하루 머물다 갈까?"

잠자리의 불편함으로 피곤함이 남아있던 터라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여직원을 불러 숙소의 숙박비를 물어보니 핸드폰에 9,900을 입력한다. 잠자는 제스처를 하며 호텔 쪽을 가리키니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100,000을 입력하여 보여준다.

"헐! 시골 호텔에 뭐가 있길래 50,000원씩이나 하는 거야?"

체체를렉으로 좀 더 이동하여 적당한 곳에 텐트를 치고 시간을 보낼 생각으로 길을 나선다. 게으른 페달링으로 속도가 나질 않고 길을 산악 초원의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

고개를 넘으면 다시 고개가 이어지는 전형적인 산악 초원의 길, 한 시간씩 라이딩과 휴식을 반복하며 지나치는 양들과 소, 말들에게 인사를 하고.

헤드라이트를 깜박이거나 크게 손을 들어 인사하는 운전자들 그리고 유목민의 복장을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사람들에게 손인사를 하며 지루함을 달랜다.

터널이 없는 몽골의 산악 초원은 크게 회전을 하며 하늘을 향해 올라가야만 한다. 오후가 들어서며 바람이 사라지고, 길게 이어지며 반복되는 오르막길은 나지막이 떨어지는 내리막길로 힘든 업힐의 보상을 한다.

업힐과 다운힐의 질주, 푸르게 변해가는 산악 초원과 하늘의 구름을 보며 조금씩 라이딩의 즐거움이 찾아든다.

"정말 오랜만에 바람 없이 달려보네."

"일단 바람막이를 벗고 달려 볼까?"

"뭔가 허전하군."

"저걸.."

"야! 심심한데."

"뛰자!"

초원 한가운데에서 쓸데없는 제자리 뜀박질을 세 차례 정도 하니 다리에 힘이 없다.

"괜히 했어!"

핸들바의 언더를 잡고 내리막과 오르막의 길을 신나게 달리다 보니 초원에서 말을 타고 말들을 몰던 목동이 나를 보며 손을 흔든다. 자전거를 눕히고 초원으로 걸어 들어가니 앳된 얼굴의 목동이 인사를 한다.

풀밭에 덥석 주저 않아 말들을 주시하며 나를 보더니 말의 고삐를 건네주며 뭐라고 말한다.

"말을 타보라고? 나 말 못 타!"

짧은 새싹의 풀들을 뜯어먹느라 건강한 치아를 드러내며 바쁜 말, 몽골의 말들은 크기가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다.

"너 이름이 뭐야? 난 싸비야."

손가락을 가리키며 내 이름을 말하고, 목동을 가리키며 이름을 물어보는데 자꾸만 내 발음을 따라 하면서 웃기만 할 뿐 자기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구글 번역기는 네트워크가 오프라인이 되면서 작동을 하지 않고.

"너, 취니 네르? 타니인가? 타니 네르? 취니, 타니 네르?"

"타르마!"

다섯 번을 타니, 취니 하면서 이름을 물으니 그제서야 이해한 듯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말해준다.

"다르마? 타르마?"

아무리 들어도 몽골의 발음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그냥 타르마라고 부른다.

"타니 게르..?"

게르가 어디인지를 묻고 게르 주변에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잘 번역이 되지 않는 구글 번역기가 오프라인으로 완전히 죽어있다.

"이럴 때 꼭 데이터가 떨어지거나 네트워크가 끊기더라."

혼자서 중얼거리며 게르가 어디인지를 물어볼 방법을 찾는 동안 타르마의 말에서 '바이시떼'라는 말이 들려온다.

"엉. 간다고?"

급하게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니 타르마는 이미 말에 올라 멀리 흩어져 있는 말들을 향해 소리를 치며 달려고 한다.

"타르마, 바이시떼!"

손을 흔들고 떠난 타르마는 멀리까지 흩어져있던 말들을 몰고 와서 도로 건너편으로 말들을 몰아 이동시킨다.

"소들은 시간이 되면 자기들 스스로 집을 찾아오는데 말들은 그냥 아무 데나 이동을 해버려서 목동들이 관리를 해야만 한다."

김병남 선교사의 말처럼 조금 전에 눈앞에서 풀을 뜯고 있던 말들이 타르마와 잠깐 얘기를 나누는 동안 아주 멀리까지 나가있다.

도로 건너편으로 말들을 몰아놓고 타르마 천천히 나를 보며 다가오더니 담배를 달라는 제스처를 한다.

"엉, 담배를 달라고?"

중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타르마는 손과 얼굴이 거칠게 변해있다.

"그래, 이거 펴!"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건네주고 얇은 웃음을 짓는 타르마에게 라이터로 불을 붙여주려 하니 아니라는 듯 담배를 안쪽 주머니에 넣는다.

"지금 안 핀다고? 그래, 그래!"

잠시 머뭇거리던 타르마가 검지 손가락을 펴서 한 개비를 더 달라는 제스처를 한다.

"아, 그래. 하나 더 가져가!"

담배 두 개비를 건네받고 수줍게 웃으며 인사를 하더니 이번에는 양들이 있는 곳으로 말을 몰고 멀리 멀어져 간다.

체체를렉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 야영을 할 생각으로 느긋하게 가다 보니 체체를렉의 거리가 여전히 45km가 남아있다.

"체체를렉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마을이 있던데, 거기까지만 갈까."

오늘의 목적지를 정확히 정하지 않은 게르나 주유소가 있는 적당한 곳까지 갈 생각으로 이동하던 중 김병남 선교사에게 전화가 온다.

"어디까지 가셨어요?"

"체체를렉이 한 45km 정도 남았습니다."

"체체를렉에 가면 외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는데, 그곳에 가보세요. 비싸지 않고 괜찮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여행 경비가 많이 소요될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은 저렴한 도미토리나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해야 한다. 중국을 여행하는 동안은 도미토리의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고 저렴한 빈관들이 많아 굳이 이용을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도미토리의 생활도 경험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스트하우스가 체체를렉 어디에 있는데요?"

"체체를렉에 도착해서 가다 보면 간판이 나와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알 거예요."

외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는 말을 듣고 오늘 체체를렉까지 이동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열심히 달리면 일몰 전에는 도착할 수 있겠는데. 근데 구글지도로 주소라도 찍어주시지 몽골 도시가 아무리 작다고 해도."

여전히 이어지는 끝없는 평지와 하늘로 향하는 오르막 그리고 내리막을 이어가며 빠르게 체체를렉을 향해 페달을 밟는다.

멀리 초원 위로 나무들이 자라 이어지는 실루엣이 보인다. 몽골의 초원에서 나무를 본 것은 처음이다.

체체를렉 이전의 작은 마을 알탄유브(Altan-Ovoo, Алтан-Овоо)의 입구가 나오고.

작은 마을의 뒤편으로 오래된 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서 있다.

"참 신기하네."

나무들이 들어선 숲의 뒤로 제법 크기가 크고 맑은 물이 흐르는 큰 강이다.

"강이 있어서 나무들이 강을 따라 이어지고 있는 거구나."

강을 넘는 작은 다리를 지나 초원의 모습도 변한다. 올록볼록 엠보싱처럼 물기를 잔뜩 먹은 듯 보이는 초원의 모습이 색다르다.

콜라와 물을 마시며 쉬는 동안 지나치는 차량들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거나 경례 같은 제스처를 하며 인사를 해준다.

5시 50분, 22km 정도가 남은 체체를렉까지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이면 넉넉하게 도착할 것 같다.

해가 떨어지는 체체를렉의 방향으로 오묘한 구름 한 덩어리가 보인다. 지면을 향해 무언가를 흩뿌리며 지나가는 거대한 우주선처럼 보인다.

점점 구름에 가까워지고 부드러운 능선을 이어가던 초원의 산등성이들도 오묘한 모양으로 바뀌어 간다.

거대한 기암괴석의 산의 모양을 따라 돌아가는 도로.

바위산을 크게 돌아 나오자 체체를렉의 시계를 알리는 듯한 표지석이 맑은 강물 주변에 설치되어 있다.

"바위와 산, 초원과 물이 만나니 정말 풍경이 예술이네."

차량을 세우고 쉬고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체체를렉을 향하는 길을 서두른다.

바위산을 지나 원을 그리듯 크게 돌아가는 도로에는 갑자기 거센 맞바람이 불어 대기 시작하고 비인지 눈인지 모를 무언가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끝일 났다. 18km 정도는 남았을 텐데."

오후 들어 바람 한 점 없이 조용했던 날씨가 요동을 치며 거센 바람을 안겨준다. 앞으로 전진하기가 너무나 버거운 페달링의 무게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끝없는 고갯길들이 이어진다.

"왜 항상 마무리는 이렇냐고!"

바람을 맞으며 오르막을 오르는 1시간 동안 모든 체력이 소진되고, 마치 콧노래를 부르며 살랑거리던 하루가 너덜너덜해진 느낌이다. 체체를렉의 초입을 알리는 입구에서 사진을 찍는 동안 자전거는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철퍼덕 넘어지고야 만다.

작은 언덕을 넘어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도로를 따라가고.

언덕의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체체를렉의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인샨드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마을의 풍경인데, 푸른 초원과 마을의 배경으로 들어선 멋진 산의 모양 그리고 멀리 이어지는 강의 실루엣들이 어우러지며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일단 체체를렉에 왔는데, 김서방을 어떻게 찾지?"

"주유소가 있는 로터리를 지나서 오른쪽으로 200미터 정도 가면 있어요."

김병남 선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게스트하우스의 정확한 위치를 물어보았지만 여전히 막연하다.

"주유소는 보이는데 로터리는 없고, 오른쪽에는 능선을 따라 집들밖에 없어 보이는데."

마을의 입구에 도착하여 작은 슈퍼에 자전거를 세우고 구글 지도를 검색하니 언덕 너머에 체체를렉의 시내가 들어서 있고, 선교사님이 알려준 게스트하우스가 좋은 리뷰 평점으로 검색이 된다.

"Fair Field Guesthouse."

외국의 자전거 여행자들이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였는지 패니어를 단 자전거 여행자들의 사진도 검색된다.

작은 고개를 넘어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좌우의 언덕으로 집들이 들어서 있고, 왼쪽으로 체체를렉의 시가지들의 모습을 들어낸다.

김병남 선교사가 알려주었던 주유소가 있는 회전 교차로가 보이고.

몇몇 작은 호텔들이 있는 골목을 따라가니 심플한 간판을 걸어놓은 페어필드 게스트하우스가 나타난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체크인을 하려고 2층에 있는 프런트로 올라갔다. 직원들 모두가 영어를 할 수 있어서 짧은 영어로도 간단하게 체크인을 한다.

얼마 정도 머무를 것인지 묻길래 모르겠다며 2~3일 정도라고 하니 그냥 웃으면서 체크인 서류에 이름을 적고 체크인이 끝난다.

게스트하우스에는 마지막으로 3인실 방이 하나 남아 있다. 49,500투그릭의 숙박 요금이라 게스트하우스 치고는 비싸다 생각이 들지만 몽골의 터무니없는 호텔 요금을 생각하면 괜찮게 느껴진다.

자전거를 게스트하우스의 측면에 있는 뒷마당 같은 곳에 묶어 둔다. 여행이 길어지니 이곳저곳이 부러지고 끊어지고 고장이 나기 시작한다.

잘 꾸며지고 정성스럽게 관리하는 게스트하우스처럼 느껴진다.

창가 침대에 자리를 잡고.

공용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식당으로 내려갔지만 빵을 주로 판매하는 곳이라 딱히 먹을만한 것이 없다.

숙소를 나와 주변을 둘러봐도 마땅한 식당이 없고 다시 숙소의 식당으로 들어가 메뉴판을 들고 햄버거를 어렵게 선택한다. 주문을 하려고 여직원에게 다가가니 9시에 영업이 종료라고 하며 안타까운 미소를 보인다.

"안돼! 나 배고파!"

방으로 돌아와 비상식으로 사두었던 작은 빵들을 먹으며 하루를 정리한다.

"배고프다고!"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92일 / 맑음 ・ 16도
차민바즈-룽-카라콜룸
에르딘의 게르 옆에서 편한하게 보낸 야영이였다. 홉스굴까지의 1,000km의 여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동거리
326Km
누적거리
9,251Km
이동시간
7시간 29분
누적시간
640시간

A0301
엘슨타사르하이
85Km / 4시간 00분
241Km / 3시간 29분
차민바즈
카라콜룸
 
 
1,069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기분 좋게 깨인 아침이다. 따듯하게 온도가 올라가는 텐트의 침낭 속에서 게으름을 피우는 여유까지 즐겨본다.

텐트를 정리하는 나에게 에르딘이 양치와 세수를 하라며 게르를 가리킨다.

패니어 정리를 마치고 게르로 들어가니 머리를 감는 에르딘에게 그의 어머니가 따듯한 물을 부어준다.

간의 세면대에서 세안을 끝내자 에르딘의 어머니가 테이블에 놓인 빵을 가리킨다.

몽골 사람들은 빵과 우유차로 아침을 간단히 먹는 모양이다.

몸을 따듯하게 해주는 우유차를 에르딘 가족에게 한 잔씩 받다 보니 세 잔이나 마시게 된다.

식사를 마치고 에르딘과 짧은 인사를 하고 홉스굴로 향하는 길을 출발한다.

주유소에 트럭이 들어와 크락션을 여러 차례 울리는데도 에르딘의 아버지는 뛰어나오지 않고 천천히 주유소로 나와 사무실로 들어간다.

몽골 사람들이 느긋한 것인지, 서비스 마인드가 없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사무실에서 나오는 에르딘의 아버지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니 젊은 여자가 조수석에 타고 있는 트럭의 운전자가 '헤이'하며 소리를 지른다.

"오해하지 마! 네 부인한테 손 흔든 거 아냐."

고개를 올라가자 도로변의 어붜를 돌며 무언가를 뿌리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몽골의 언덕이나 산의 정상에 쌓여있는 어붜.

몽골 사람들은 어붜를 돌며 소원을 빈다고 한다.

말의 머리와 술병, 돈 등 여러 가지 물건들이 돌과 함께 쌓여있다.

언덕을 넘자 작은 마을 나타난다. 지도상에 나타나지 않는 몽골의 마을들.

구글맵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면 이곳에서 쉬었을 텐데. 하지만 에르딘의 주유소도 좋았으니 가볍게 패쓰.

조금씩 바람이 일기 시작하는 도로를 따라 달리고 있는데 승용차 한 대가 도로 한가운데 정차를 하고 나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가까워진 차량을 지나치고 무거워지는 페달링을 이어가는데 정차되어 있던 승용차가 천천히 내 곁으로 다가온다.

"한국분이시네요?"

창문을 내리고 반갑게 인사를 하는 사람은 울란바토르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김병남 선교사이다.

자전거를 세워 눕히고 선교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홉스굴에 가고 있어요."

"아, 이쪽 방향에 칭기스칸이 군대를 모았던 하라쿨룸이라는 옛 수도가 있어요. 그곳을 가보는 것도 좋은데."

70km 정도 떨어진 룽에서 약속이 있다는 김병남 선교사는 카라콜룸과 체체를렉의 경로를 추천하며 룽에서 하룻밤 보낼 수 있는 게르를 소개해 주겠다고 한다.

"카라콜룸과 체체를렉이 첫 번째 여행 경로였는데, 사람들이 홉스굴이 좋다고 해서요."

"홉스굴도 좋긴 한데 호불호가 있더라고요. 여기 사람들은 바다라고 부르는데 우리 동해안에 비하면 그냥 큰 호수에 불과하죠."

홉스굴과 카라콜룸은 자전거로 동시에 지나가기 어려운 동선이다. 몽골 중부의 카라콜룸과 북부의 홉스굴을 잇는 도로가 비포장이거나 엄청난 거리를 돌아가야만 한다.

김병남 선교사가 말하는 룽은 홉스굴로 가는 도로를 30km 정도 지나쳐 가야 한다.

"일단 룽으로 가서 결정을 하자."

4시 정도에 룽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니 그곳에서 미팅을 하고 기다리겠다며 김병남 선교사는 먼저 출발을 한다.

"부지런히 가야겠네. 원근감 놀이는 제대로 해야겠네. 포커스가 안 맞잖아. 실패!"

조금씩 강해지던 바람이 서풍으로 바뀌며 페달링을 무겁게 만들고, 몽골 산악 지대의 초원은 산을 넘는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지겹도록 긴 업힐을 끝내고 어붜가 쌓인 곳에서 잠시 쉬어간다.

어제 먹다 남겨놓은 할배네 치킨 세트의 감자 튀김과 치킨 조각으로 점심을 한다.

"가격도 싼데 두 세트를 사 올걸."

치킨을 먹는 동안 승용차 한 대가 정차하고 건장한 남성 두 명이 내리며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넨다.

발음이 너무나 정확해서 한국 사람인가 생각하는데 영어로 다음 대화들을 이어간다.

여행을 한다며 알려주고 명함을 주니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어붜를 돌던 젊은 남녀에게 뭔가를 설명해 준다.

이내 밝게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일본인 친구들이다.

명함을 주고 짧은 영어로 유쾌한 대화를 나눈다. 성격이 굉장히 낙천적이고 쾌활한 친구들이다.

두 일본인 친구들이 초원을 향해 프리덤을 외치듯 뛰어가고, 덩치가 좋은 두 남자가 맥주를 한 캔 건네준다.

"재팬, 몽골, 코리아!"

몽골 사람으로 보이는 남자가 이곳에서 세 국가의 사람이 만났다며 호쾌하게 웃는다.

초원으로 뛰어갔던 두 친구가 돌아오고 차례차례 인사를 하며 헤어진다.

"Be careful. I'll see your Instagram."

많은 여행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본 사람의 친근한 대화법이다. 상큼한 기운을 갖은 일본의 두 친구가 부럽게 느껴진다.

"오렌지 같은 친구들이네."

아무리 지지고 볶으며 싸워도 가장 가깝고 이해하기 쉬운 나라가 일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다.

세계일주의 경로에 일본은 빠져있다. 딱히 일본에 대한 흥미가 없다기보다 만약, 여행이 끝나고 함께 자전거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일본이 좋겠다 싶어 남겨둔 것이다.

멀지 않고, 위험하지 않고, 불편하지 않고, 어렵지 않은 일본이라면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나 좋은 하늘을 보고, 점심을 먹고, 일본인 친구들과 얘기하는 사이 한 시간이 지나버린다.

만만치 않은 룽까지의 거리와 불어오는 바람에 대한 부담으로 서둘러 자전거를 출발시키는데 이상한 잡음 소리가 들린다.

"아, 밧줄."

할배네 치킨을 꺼내며 다시 묶어두지 않았던 고무 밧줄을 생각하던 찰나 툭하고 밧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스포크에 밧줄의 갈고리가 걸리며 허브에 감긴 줄이 끊어져 버린다.

다행히 스포크에 무리가 가지 않은 것 같다. 여분의 밧줄이 있어 큰 문제는 아니지만 어째 폼이 떨어진다.

바람이 거세지는 도로를 달려 어제 도착하려 했던 주유소를 지나치며 자전거를 세운다.

"아놔, 더럽게 힘드네."

시원하게 오줌을 싸고 시멘트 바닥에 철퍼덕 앉아 있으니 주유소에서 제복을 입은 아저씨가 천천히 다가온다.

똑같이 자리에 앉더니 입담배를 꺼내어 돌돌 마는 아저씨에게 라이터를 빌려주고 알아듣지도 못할 푸념을 해댄다.

"몽골 바람, 쒸 쒸. 아이고, 아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아저씨에게 중국 여행의 영상들도 보여주고 앉아서 쉰다.

몇 개의 고개를 넘으며 주변의 풍경은 더욱 황량하게 변하고 돌풍의 회오리바람이 흙먼지를 날리며 도로와 초원을 휩쓸고 다닌다.

크기도 제각각인 회오리 바람들이 이곳저곳에서 순서도 없이 불규칙적으로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풍경이 장관이다.

"카메라에 잡힐까? 힘든데 멋지기는 하네."

돌풍과 회오리바람을 이기며 룽까지의 거리를 가늠하던 중 김병남 선교사의 승용차가 유턴을 해서 다가온다.

"아이고, 변차섭씨."

룽에서 미팅을 마치고 기다리던 중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여 나에게 돌아온 것이다.

"제가 하라콜룸까지 차로 데려다 드리면 어떨까요. 거기에서 함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요."

여행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김병남 선교사는 하루의 시간이 있어 나와 함께 이야기를 하며 캠핑을 하고 싶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며 나에게 차를 몰고 달려왔을지 그 마음이 헤아려진다.

"그럴까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좋으니까."

체체를렉을 포기하고 홉스굴로 향하던 일정인데, 양쪽을 모두 여행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나쁘지 않다 생각한다.

패니아들을 떼어내고 앞뒤 바퀴를 분리하여 뒷좌석에 자전거를 구겨 넣고 카라콜룸으로 출발한다.

순식간에 룽을 지나치고, 오랜만에 빠른 승용차의 앞자리에 앉으니 현기증이 밀려온다.

에르딘산트를 지나며 산악 초원의 풍경은 남부 사막 초원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파릇파릇 풀들이 자라나고 뾰족하고 기묘한 산봉우리들이 주변을 감싸고 있는 생기 있는 초원의 모습으로 변한다.

자전거로 힘들게 넘어야 하는 굴곡이 심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달리는 동안 선교사님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깐 쉬었다 갈까요?"

알록달록 색들이 칠해진 집들이 모여있는 마을에서 물과 몽골 아이스크림을 먹고.


자전거로 푸른 초원을 달려보고 싶은 마음에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길들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진다.

"바람이 불어 죽을 듯 힘든 길인데, 그냥 지나 치려니 너무나 아쉽네."

많이 보고 눈에 담아 가라는 선교사님의 말이 이해가 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혼자서 보기가 아깝다.

"몽골의 풍경은 카메라에 잘 잡히질 않아요. 내가 보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너무나 아쉬워요."

"이 근처에 사막이 있는데 한 번 가볼래요?"

중국 내몽골의 사막은 둥근 능선 형태의 딱딱한 지반이었는데 몽골의 사막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뾰족한 산봉우리의 산들을 지나고 푸른 초원이 잠깐 끊겨있는 곳에 황금빛의 언덕이 정면으로 나타난다.

"남쪽 고비들처럼 넓지는 않지만 울란바토르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막이라 관광철에 사람들이 많이 다녀가요."

사막 언덕의 밑까지 차를 몰고 갈 수 있어 쉽게 사막의 언덕을 오를 수 있다.

높은 산과 초원의 언덕 사이에 만들어진 작은 사막이지만 그 모양이 제대로 된 사막의 풍경이다.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사막의 모래가 바람에 흩날리며 이동을 하고.

부드러운 모래밭으로 깊숙하게 신발이 들어간다. 엘슨 타사르하이(Элсэн тасархай, Elsen Tasarkhai)

초원을 따라 사막화가 진행되는 것은 안타깝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 속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사막의 아름다운 능선 너머로 병풍처럼 솟아오른 높은 산과 푸른 초원의 부드러운 곡선들 그리고 하늘과 구름.

"저기 보이는 언덕에 조금 있으면 라벤더가 산을 덮고 피어나요. 그 안에 들어가면 라벤더의 향기에 취할 정도야."

"얼마나 아름다울까? 보라색 라벤더의 물결이라니."

사막을 둘러보고 카라콜룸으로 향하는 초원은 거대한 밀밭이 경작되는 평평한 초원이다.

끝이 없는 초원의 밀밭 평야. 20센티가 넘게 자란 중국의 밀밭과는 달리 몽골의 밀밭은 이제 밭을 고르고 파종을 하려는 시기인 것 같다.

"전체를 다 경작을 못하고 일 년씩 번갈아 가며 밀을 심어."

한쪽 편의 평야만이 파종을 위해 준비되어 있고, 한쪽 편의 평야는 초원처럼 방치되어 있는 모양새다.

"아깝게 이 좋은 땅을 놀려요. 너무 넓어서 경작 능력이 없나?"

"러시아가 있을 때는 전체를 경작했는데 지금은 못하는 거지. 아마 씨앗 값이 없어서라도 못할 거야."

"그렇겠네요. 이 넓은 곳에 뿌리려면 씨앗 값도 어마어마하겠다."

끝이 없는 초원의 평야, 칭기스칸의 군대가 집결했다는 카라콜룸의 모습을 그려본다. 웅장하고 두려웠을 야만족으로 불리던 용맹한 군대.

해가 저물기 시작할 무렵 카라콜룸의 시내에 들어선다.

한국 음식 비슷하게 맛이 난다는 식당에 들어가 김치찌개와 소고기 메뉴를 주문하는 선교사님.

선교사님의 말 그대로 비슷한 맛만 나는 묘한 김치찌개다.

한국의 음식을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킨 음식들이다. 제법 그럴듯하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런 맛이랄까.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갑시다."

"맥주 한잔해야죠!"

텐트를 치고 맥주를 한잔하며 이야기를 하고 싶어 슈퍼에 들러 큰 페트병의 맥주와 안주를 사가지고 간다.

뭔가 서두르는 선교사님은 텐트를 치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여러 번 물어본다. 아들과 텐트를 치며 고생한 기억이 있어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야영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금방 쳐요. 한 5분 정도."

체체를렉 방향의 도로를 따라가며 적당한 장소를 찾는다.

"저기가 겨울집 같은데, 한 번 가봅시다."

유목민들이 사용하는 집, 가축들을 집어넣는 축사가 겨울용과 여름용이 따로 있다고 한다.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유목민의 특성으로 겨울 축사는 비어있는 시기인 것이다.

몽골을 여행하며 게르가 설치되었던 흔적의 빈터들은 모두 겨울용 집이었던 것이다.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축사의 뒤편으로 텐트를 설치하고 맥주를 마시며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눈다.

"선교사님이 침낭을 덮으시고, 제가 여름 침낭을 쓸게요."

겨울 바지와 자켓을 껴입고 얇은 여름용 내피를 덮으면 나름 괜찮겠다 생각한다.

"근데 별이 있나?"

담배를 피우기 위해 텐트를 열고 밤하늘을 쳐다보니 하늘 가득 촘촘하게 별들이 박혀있다.

"아... 늘 저렇게 떠있는데 못 보고 산다는 게 억울하네."

한참 동안 남자 둘이서 하늘을 쳐다보며 감상에 빠져든다.

새벽으로 넘어가며 움직임이 없는 몸에서 열기가 빠져나가고 한기가 밀려온다.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거리다 겉옷을 한 겹 더 입고, 침낭을 펼쳐 함께 덮자는 선교사님에게 괜찮다 말하고 잠이 든다.

"몽골이 춥긴 춥네."

고생스러운 잠자리지만 이것 또한 추억이겠지 싶고, 함께 해준 선교사님 덕에 초원에서의 캠핑을 맘편히 할 수 있으니 그럼 됐다 싶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91일 / 맑음 ・ 14도
울란바토르-차민바즈
울란바토르에서의 휴식을 마치고 홉스굴로 가기 위해 출발을 한다. 몽골 중북부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하다.


이동거리
48Km
누적거리
8,925Km
이동시간
6시간 52분
누적시간
633시간

AH3
A3010
20Km / 1시간 57분
28Km / 4시간 55분
울란바토
교차로
차민바즈
 
 
743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9시가 다 되어 식당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는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시작해야 하는데 불행히도 아침 메뉴는 스파게티인 모양이다.

"밥을 먹어야 하는데."

패니어를 정리하고 다음 여정에서 필요한 현금과 비상식을 사기 위해 숙소를 나온다.

몽골은 한국에서 사용하던 중고 미니버스와 포터 같은 화물 트럭을 많이 사용한다.

숙소 옆에 있는 슈퍼마켓에 들러.

낱개로 진공 포장된 빵이 없으니 조금 난감하다.

삼각 김밥을 발견하고 맛이 어떨지 알 수 없어 하나만 집어 든다.

물과 빵 그리고 음료수를 사들고 슈퍼를 나와 현금을 찾기 위해 유니텔 건물의 현금 지급기를 사용해 보았지만 돈을 찾을 수가 없다.

"늘 가던 은행에 가야겠네."

유니텔 건물의 주차장에 자전거들이 세워져 있는데 하나같이 안장들을 빼놓거나 자물쇠로 잠가놓았다. QR레버 방식의 안장을 많이 훔쳐 가는 것인지 자전거를 세워둘 때 안장을 빼놓아야 훔쳐 가지 않는가 보다.

체크아웃을 하고 패니어들을 장착한 후 호텔을 나온다.

호텔 옆에 있는 칭기스칸 광장을 마지막으로 한 바퀴 돌며 돌러본다. 바람에 펄럭이는 몽골의 국기가 맞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저녁 시간 때보다 조금 덜하지만 울란바트로의 시내는 언제나 복잡하다. 갓길이 전혀 없는 울란바트로의 시내를 조심스럽게 빠져나간다.

울란바트로의 시내를 거의 벗어날 때쯤 도로변의 KFC가 눈에 들어온다.

"할배! 반가워요."

중국의 옌칭현을 지나며 마지막으로 햄버거를 먹은 이후 처음 보는 할배네 치킨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마침 몽골에서 이용하던 은행의 ATM 기기가 KFC의 건물 바로 옆에 떡하니 들어서 있다.

일단 ATM 기기에서 현금을 찾고.

몽골의 KFC 매장으로 들어간다. 세계의 소비 물가를 가늠할 수 있는 빅맥 지수가 있다면 나에게는 KFC와 콜라 지수가 있다.

"몽골의 할배네 치킨은 얼마인가?"

"코울슬로도 있네. 이걸 꼭 먹어야 한다고 했는데. 좋아!"

중국과 비슷한 가격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구성이 조금 다르지만 몽골이 훨씬 저렴하다.

햄버거 메뉴들을 패니어에 넣어두고 콜라를 마시며 잠시 쉬어간다.

울란바트로의 시내를 벗어나며 한가해진 도로는 맞바람이 불어온다. 기찻길을 건너는 교차로에서 잠시 길을 지나칠뻔했지만 지도를 확인 길을 잡는다.

"구글양, 일 안 하냐?"

바닥에서 널빤지 같은 차단기가 올라오는 철도 건널목을 건너고.

다르항과 므릉 그리고 카라콜룸의 길이 갈라지는 교차로를 향해 달려간다.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 회전교차로. 직진의 우측 길은 다르항, 좌측의 길은 므릉과 카라콜룸으로 향하는 길이다.

회전 교차로의 중앙에 놓은 묘한 석상에서 잠시 쉰다. 넘어가야 할 넘은 산의 방향에서 무심하게도 바람이 불어온다.

"누구세요? 몽골의 달마상인가?"

소를 타고 있는 석상의 인물 생김새가 굉장히 독특하다.

"얘네 주둥이는 왜 다 더러운 거야?"

바람이 불어오는 회전 교차로에 앉아 있으니 자전거를 끌고 출발하기가 꽤나 귀찮아진다. 베이징의 휴식 이후 첫 번째 라이딩이 그러했듯 오래 쉬고 나면 자전거를 타는 것이 조금은 힘들게 느껴진다.

교차로를 지나 바람이 불어오는 산길을 힘들게 오르니 정상에 울란바트로의 톨게이트가 나온다.

잠시 내려가던 길은 다시 큰 오르막을 앞에 두고 길이 이어지고 느리게 힘이 없는 페달링은 계속된다.

교차로에서부터 겨우 7km 정도를 이동하는데 50분의 시간이 걸렸다. 언덕 위로 어붜가 쌓여져 있고 이멜트(Emeelt, Эмээлт)의 작은 마을이 언덕 아래로 펼쳐진다.

작은 분지와 같은 곳에 넓게 펼쳐진 마을을 향해 내려가지만 멀리 건너편의 산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부담스럽다.

이내 시작된 오르막길의 도로변에는 양의 가죽들이 쌓여져 있고, 마을의 뒤편을 감싸고 있는 산의 중턱까지 무언가가 넓게 널려있다.

양의 가죽을 파는 마을인가 생각하며 천천히 길을 따라가니 양의 가죽과 함께 짙은 갈색의 가죽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말 가죽인가? 아니면 소?"

가죽들이 쌓여있는 마당의 사람들은 신발을 파는 자동차에 모여 신발들을 구경하고 있다. 비리고 역한 냄새가 조금씩 더해진다.

너무나 궁금해서 자전거를 세우고 뭔가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다가간다. 잠시 쳐다보더니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피비린내 같은 역한 냄새가 나는 마당에서 가죽의 털들을 가위로 제거하고 있다.

엄청나게 쌓여있는 가죽들 사이에 가축의 발목들이 보이는데 도무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드럼통 위에 가죽을 올려놓고 털을 제거하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제스처를 하니 무언가 짧게 대답하는데 부정적인 뉘앙스는 아니다.

조심스럽게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니 남자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한다. 여러 번 반복하는 남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보니 카멜, 낙타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낙타? 낙타구나!"

사람들이 하는 작업은 낙타의 가죽에서 털들을 제거하여 큰 포대자루에 담는 일이다.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주변에 앉아 쉬면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찍고 있으니 남자는 손을 들어 포즈를 취해준다. 낯설었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구경하는 나를 보며 서로 무언가 얘기를 주고받으며 웃는다.

남자는 자신의 가위를 건네주며 나에게 털을 잘라 보라고 한다. 그리고 핸드폰을 가리키며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제스처를 한다.

"이거 해도 돼? 이거 이상해!"

"헐. 나 털을 잘라버렸어! 어떡해?"

털을 제거한 가죽들은 바닥에 펼쳐놓고.

곳곳에 커다란 낙타들의 발목들이 널브러져 있다.

"발이 엄청 크네."

사람들의 작업을 구경하는 동안 마스크를 한 젊은 남자가 다가온다.

"Horse!"

"말?"

남자가 손을 가리키는 곳은 여러 명의 남자들이 갈색 가죽들을 화물차에 집어던지며 싣고 있다.

"아, 저쪽은 말가죽이구나."

마을의 뒤편의 산을 덮고 있는 것들을 가리키며 낙타의 가죽인지 물어보니 말의 가죽이라고 대답해 준다.

1톤 포터 트럭에 말의 가죽을 싣는 곳은 비린 냄새가 더욱 역하게 진동을 한다. 잠시 구경을 하다 냄새를 이기지 못하고 낙타의 털을 제거하고 있는 남자에게 돌아온다.

남자는 작업을 하며 허리가 아픈 것인지 허리를 펴고 서서 손등으로 두드리는 행동을 반복해서 한다.

"작업대 같은 것이라도 만들어서 하지. 하루도 아니고 매일처럼 이렇게 어떻게 해."

남자의 허리를 만지며 살짝 두드려 주고, 담배 한 개비를 건네주며 불을 붙여주니 '으으으' 신음소리를 내며 허리를 세운다.

작업을 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길을 이어간다. 건너편 산등성이 가득 말의 가죽들이 널려있고, 가죽을 실은 화물차들이 바쁘게 산의 중턱을 돌아다니고 있다.

이멜트를 벗어나는 산을 오르며 휘파람을 불며 손을 흔드는 사람들과 인사를 했다. 자민우드에서 사인샨드로 향하던 초원에서 휘파람을 불려 나를 붙잡으려 했던 검게 탄 얼굴의 유목민들이 생각난다.

낯선 사람들의 휘파람 소리에 잔뜩 경계를 하며 지나쳐 버렸는데 지금 생각하니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넓은 몽골의 초원에서 사람을 부르거나 가축들을 몰 때 휘파람을 불어 신호를 하는 것이 일상적이겠다 싶다.

꿀렁 꿀렁 오르내리는 몽골 중부의 산길들. 남부 사막 초원의 평평한 길들과는 달리 앞으로 이런 모양의 길들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바람에 날리는 구름의 모양이 솜뭉치를 문질러 놓은 것처럼 비현실적이다.

분위기를 살려보려 속도를 내어 달려봐도 바람 속에서 이내 지쳐버린다.

자전거를 세우고 햄버거와 코울슬로를 꺼내어 늦은 점심을 먹고, 치킨과 감자튀김은 남겨둔다.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들과 하늘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어딘가 머무를 곳이 있다면 한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그런 풍경이다.

겨우 자리를 털고 한 시간을 열심히 달려왔는데 뒤를 돌아보니 한 시간 전 햄버거를 먹었던 언덕이 저 멀리 눈에 들어온다. 급회전을 알리는 이정표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자리에 주저앉는다.

"아 정말, 사람을 허탈하게 만드는 길이다."

마주 오는 차들이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해주고, 잠시 동안 지나다니는 차량들을 향해 손인사를 하며 인사 놀이로 지루함을 달래본다.

5시가 되어가는데 겨우 40km 남짓 이동을 했다.

"아이고 50km만 채우고 적당한 곳에서 텐트를 치자. 오늘은 못 가겠다!"

오르막길이 이어지던 중 길 건너편으로 작은 주유소가 보이고, 주유소의 뒤편으로 게르와 석유 저장고처럼 보이는 커다란 통들이 놓여있다.

"저기가 좋겠네. 게르도 있고 바람도 막을 수 있으니."

자전거를 멈추고 작은 주유소로 들어간다. 주유소의 사무실 벽에 자전거를 기대어 놓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아무도 신경을 안 쓴다.

주유소의 점퍼를 입은 남자를 불러 주변에 텐트를 칠 수 있는지 물어보려니 답답함이 밀려온다. 툴가에게 전화를 걸어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는지 물어봐 달라 부탁하고 몽골어로 문장을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툴가와 통화를 한 남자는 흔쾌하게 게르를 가리키며 주변에 텐트를 치라고 알려준다.

주유소의 작은 사무실에 들어가 젊은 남자와 번역기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네트워크가 잘 잡히지 않은 곳이라 꽤나 어렵게 제스처를 써가며 서로의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카쉬 에르딘, 30세의 에르딘은 배구 선수를 하고 있고 가족들과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유쾌한 성격의 남자다.

에르딘의 게르 옆, 고장이 난 포터 트럭의 측면에 자리를 잡고 땅들을 고르고 있으니 에르딘이 다가와 밥을 먹자는 제스처를 한다.

에르딘을 따라 그의 게르로 들어간다.

"괜히 설레네."

세 개의 침대가 놓인 동그란 게르에는 중년의 남녀가 작은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고, 다른 중년의 여성 한 명이 더 앉아있다. 인사를 하고 들어가 에르딘과 함께 테이블에 놓인 츠이완을 먹는다.

우유차와 함께 정결하게 만들어진 츠이완을 먹으며 테이블에서 무언가를 정리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부모님인지 물어보니 아니라고 한다. 에르딘은 게르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게르에 앉아있던 다른 중년의 여자가 그의 어머니이고 밥을 먹기 위해 게르로 들어온 에르딘과 업무 교대를 한 남자가 그의 아버지이다.

테이블에 앉아 무언가를 정리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주유소와 관련된 정산을 하는 사람들 같다.

에르딘의 게르에는 엄청난 숫자의 배구 메달들이 걸려있다. 생활 스포츠나 아마추어 대회 같은데 몽골에서는 이런 대회가 많이 열리는 것 같다.

게르의 출입문 쪽에 간이 세면대와 세탁기도 있고.

처이르에서 감바와 놀러 갔던 화려한 게르에 비해 소박하지만 구조나 형태는 모두 똑같다.

식사를 하고 텐트를 치는 동안 에르딘은 아식스 스포츠 웨어를 말끔하게 입고 나온다. 그리고 10시에 돌아온다며 울란바토르에 간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의 에르딘이다.

"에르딘 멋진데!"

텐트에 들어와 누워있으니 울란바토르의 5성급 호텔보다 편하고 좋다.

"역시, 내 집이 최고야!"

네트워크가 좋지 않은 곳에서 사진 업로드를 걸어놓으니 업로드 속도가 한 세월이다.

"몰라. 자고 일어나면 되어 있겠지."

밖으로 나가 떨어지는 석양을 잠시 바라보고 침낭 속을 파고든다. 따듯한 침낭의 온기와 푹신한 초원의 흙바닥. 몽골의 체류기간 90일의 시간이 여유롭게 느껴진다.


몽골 사람들이 바다라고 부르는 큰 호수, 홉스굴까지 1,000km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90일 / 맑음 ・ 16도
울란바토르
하루 더 울란바토르에서 쉬기로 한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8,877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626시간

뒹굴뒹굴
데구르르
0Km / 00분
0Km / 00분
숙소
숙소
수라
 
 
695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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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뜻이야?"

오드바야르가 쉴 새 없이 '모, 모' 거리며 손가락으로 표현했던 동작을 툴가에게 물어보니 '모 모'라는 표현은 생각했던 대로 나쁘다는 표현이다.

"손가락은 애들이랑 약속 같은 걸 할 때 쓰는 건데요."

선물을 주겠다며 찾아온 툴가는 초콜릿과 몽골 게르 모양의 작은 모형을 건네준다.

"툴가 고마워! 근데 이게 뭐야?"

"이 안에 가축들의 발목뼈가 들어있어요. 양, 소, 말 그리고 뿔이 길쭉한 뭐였더라.."

예쁜 게르 모형 안에는 우유빛의 뼈들이 들어있고, 몽골에서는 네 개의 뼈를 던져 제각각의 모양이 나오면 운이 좋다는 뜻이라고 한다.

영어 수업이 있는 툴가에게 저녁을 먹자며 수업이 끝나면 호텔로 오라고 말한다.

"이 예쁜 것을 어떻게 안 구기고 돌아다닐 수 있을까?"

호텔에서 자료들을 정리하는 동안 하루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티스토리 블로그의 글들을 네이버로 옮기는 작업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티스토리의 본 글을 복사하여 붙여넣기로 끝나면 좋을 것 같은데 호환이 잘 안되어 일일이 다시 작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네이버, 정말 실망스럽다!"

중국 여행을 했던 자료들로 여행의 동영상을 편집하다 보니 여행 기간 동안의 느낌들이 아련하게 전해진다.

"정말 즐거웠다. 땡큐! 차이나."

9시 30분이 되어 조금 늦게 호텔로 찾아온 툴가와 울란바토르 호텔에서 가까운 한국 음식점 수라를 찾아간다.

"검색해 보니까 여기가 11시까지 영업을 하더라."

울란바트로에는 대학들이 여기저기 많다고 한다. 종합대학은 아니고 단과대학의 형태로 운영되는 것 같다.

"저기도 학교에요."

호텔 건너편의 오래된 석조 건물이 학교라고 알려주고, 컴퍼스가 있는지 물으니 울란바토르의 대학들은 건물만 있다고 한다.

"정말? 재미없네!"

호텔 근처에 한 블록씩의 간격을 두고 여러 개의 대학들이 들어서 있다.

영업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한국 레스토랑 수라에 들어가 삼겹살을 주문한다. 내일부터 다시 시작되는 라이딩이라 고기로 든든하게 배를 채워두고 싶다.

소파에 앉아 삼겹살을 구워 먹을 생각을 하니 정말 어색하고 그렇다. 툴가가 종업원에게 삼겹살을 주문하니 영업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마지막으로 주문을 받는다고 한다.

"몽골 식당들은 왜 이렇게 사람을 조급하게 만드니, 한국은 손님이 나갈 때까지가 영업시간인데. 그치?"

"맞아요!"

삼겹살 3인분을 주문하니 테이블에서 직접 구울 것인지, 주방에서 구워서 가져다줄 것인지를 묻는다.

"삼겹살을 직접 구워야 제맛인데. 귀찮으니까 구워 달라고 하자."

술을 잘 먹지 않는다는 툴가지만 울란바트로에서 먹는 마지막 저녁이라 함께 소주를 마시기로 한다.

"중국에서 먹던 소주는 왠지 이상한 느낌이었는데 몽골은 어떨까?"

몽골의 주류에는 병뚜껑 부분에 미개봉 제품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인지 별도의 라벨이 부착되어 있는 것이 재미있다.

삼겹살이 나오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린 탓에 본 식사도 하기 전인데 소주의 주문을 마지막으로 받겠다고 한다.

"두 병, 아니 세 병 시키자. 남으면 가져가면 되지."

그리고 세 접시에 나눠 담긴 삼겹살이 나온다.

"비주얼을 제법 그럴싸 한데. 일단 야무지게 한 쌈을 해 볼까!"

"고기를 넣고, 쌈장을 조금 넣고 그리고..."

양상추에 고기와 쌈장을 얻으니 더 넣어야 할 무언가가 아무것도 없어 굉장히 어색하다.

"고추나 마늘 같은 것이 있을까?"

툴가가 종업원에게 마늘과 고추가 있는지 물어보니 잠시 후 조금 말라있는 듯 상태가 좋지 않은 마늘이 얇게 썰어져 나온다.

"몽골은 고추를 안 먹어요."

몽골에 있는 한국 사람들이나 한국 관광객들이 주고객이 아닐 테니 너무나 당연한 상차림이다 생각된다. 현지의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변화시키면서, 기본적인 맛을 얼마나 유지시키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일 것이다.

툴가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남은 소주 한 병은 아버지에게 드리라고 했다.

"한국분이세요? 오늘 직원들 회식이 있어서 식당이 조금 시끄럽습니다. 죄송합니다."

식사가 끝나갈 때쯤 한국어를 하시는 분이 양해를 구하며 정중히 인사를 한다. 식당의 매니저로 생각했는데 식당을 나가며 명함을 교환하며 인사를 나눈다.

"궁금한 것이나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연락을 주세요."

"조금 일찍 왔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네요. 잘 먹었습니다."

90일 만에 먹은 삼겹살의 기름맛이 좋다. 툴가와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와 그대로 잠이 든다.


"내일부터 홉스굴을 향해서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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