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9일 / 맑음 ・ 12도
고르도비-사이샨드
기다리던 동풍이 불어온다. 이틀간 함께했던 바트바르드와 작별을 하고 사인샨드로 떠난다.


이동거리
187Km
누적거리
8,414Km
이동시간
9시간 37분
누적시간
590시간

AH3
AH3
74Km / 3시간 26분
113Km / 6시간 11분
고르도비
갈림길
사인샨드
 
 
232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기온이 많이 떨어진 몽골의 아침이다. 아침에 깨어 바람의 바람을 확인하니 일기예보대로 동풍이 불어온다.

"또, 길을 가야겠네."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는 바트에게 동풍이 불어온다며 제스처를 하니 휘파람을 불며 그렇다고 알려준다.

"바트, 나 이제 가야 해."

패니어들을 정리하고 바트가 침대에 꽂아두었던 태극기를 챙겨들고 대신 작은 태극기 하나를 건네주니 가방에 넣어둔다. 23~24일에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휴일이라며 집으로 가져갈 생각인가 보다.

패니어들을 꺼내어 하나씩 자전거에 장착하는 동안 바트도 일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바트의 늙은 개에게도 인사를 하고.

"바트, 사진 한 장 찍고 가자."

다치지 말고 건강하라며 인사를 하고 악수와 가벼운 포옹으로 작별의 아쉬움을 달랜다.

뒤쪽에서 밀어주는 바람을 맞으며 한결 가벼워진 페달링으로 190km 떨어진 몽골의 두 번째 도시 사인샨드를 향해서 떠난다.

몽골 유목민의 복장으로 말을 타며 양을 모는 아저씨를 만나 사진을 찍으니 손가락으로 양떼들을 가리킨다.

사진을 찍은 핸드폰에 관심이 있는지 뭔가를 물었지만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그냥 웃으며 인사만을 하고 길을 이어간다.

자민우드에서 만난 툴가에게 몽골이 위험한지 물어봤을 때, 특별히 위험하지는 않지만 시골 같은 곳에는 카메라나 스마트폰 같은 것이 없어 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을 준다면 바꿀 생각은 있는데, 지금은 딱히 말이 필요가 없네."

한 시간 정도를 길게 뻗은 초원의 도로를 달리고 잠시 쉬어간다. 평균 20km의 속도가 나는 편안한 라이딩이다.

자민우드에서 사인샨드로 가는 길은 아마도 산악지대가 아닌가 싶다.

끝없이 길게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지나간다.

바트가 챙겨놓은 차를 마시고.

"언제 챙겨놓은 거야? 자, 본격적으로 달려 볼까?"

몽골 여행의 혹독한 신고식을 거센 바람으로 맞이해주었으니 오늘은 몽골의 초원을 거침없이 달려볼 생각이다.

붉은 흙의 초원과 산들의 고개를 넘고, 낮은 경사로 길게 떨어지는 내리막길을 시원하게 달려간다.

주로 물류를 운반하는 화물 차량들이 오가고 승합차와 승용차들이 간간이 지나치지만 통행량이 많지 않은 AH3 도로.

지나가는 차량들은 가끔씩 차량을 세워 인사를 하기도 하고, 헤드라이트를 깜박이며 손인사를 전하기도 한다. 갓길이 없어 조금은 불안했던 도로 라이딩이었는데 지나치는 차량들의 매너들이 생각과 달리 좋다.

높은 초원 지대에도 물이 고여이는 오아시스 같은 곳도 있고 붉은 흙산들과 아무것도 없는 넓은 초원의 길은 계속 이어진다.

신나게 핸들바의 언더를 잡고 달리던 중, 초원 한가운데 지어진 낡은 나무집 앞에서 두 명의 남자가 짐 같은 것을 옆에 두고 도로변에 서서 히치하이킹을 하듯 차량들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인다.

유목민 복장을 한 검은 얼굴의 남자들이 나를 향해서도 휘파람을 불며 자전거를 세우라는 제스처를 한다. 그들을 쳐다보며 도로를 넓게 돌아 피해 질주를 하니 큰 소리를 쳐댄다.

몽골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몽골인들에 대한 낯섦이 아직은 그들과 부대끼며 인사를 나눌 마음의 여유를 주질 않는다. 이국적인 생김새의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만큼 그들 또한 외국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이 있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초원의 한가운데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그들과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

자민우드에서 사인샨드로 가는 길은 두 갈래의 길로 나뉜다. 구글맵의 지도상으로 보면 작은 마을 두 곳이 있는 오른쪽 길과 아무것도 없는 왼쪽 길이 있다.

Burdene Bulag(Бүрдэнэ Булаг) 야생 동물 보호구역 부근에서 길이 나뉘어지는데, 툴가에게 물어봤을 때 자신들을 에르덴이 있는 마을의 도로를 타고 울란바트로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3시간을 달려 갈림길의 부근에 도착한다.

바람이 부는 언덕을 오르니 왼편으로 돌들을 쌓아올리고 푸른 천들을 걸어놓은 탑들이 보인다.

중앙에 큰 돌무더기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작은 돌탑들이 쌓아져있고 푸른 천들이 바람에 휘날린다.

몽골 유목민들이 소원을 기원하는 장소일 듯싶다. 잠시 쉬며 간단히 점심을 먹기 위해 돌탑이 있는 곳으로 자전거를 타고 들어간다.

돌탑에는 자동차 핸들커버 같은 것도 여기저기 걸려있고.

바람을 피해 자전거를 세워두고.

바트와 나눠먹고 남은 빵과 잼으로 점심을 대신한다.

"어느 방향으로 가지? 그래도 마을이 있는 길로 가는 것이 편하겠지?"

바람을 등지고 온 탓에 생각보다 빠르게 67km 정도를 이동했다. 사인샨드까지는 여전히 100km가 넘게 남았지만 진행속도를 봐서는 오늘 사인샨드까지 갈 수도 있겠다 싶다.

빵을 먹고 중앙의 큰 돌탑을 둘러보니 돈과 술, 담배 같은 제물들을 받쳤던 흔적들이 보인다.

화물차 모양의 장난감이 놓여있는 것으로 보아 돌들과 함께 쌓여있는 핸들바 커버가 쓰레기를 올린 것이 아니고 안전운행 같은 것을 비는 상징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바트의 오토바이에도 묶여있던 푸른 천. 중국의 차량들이 사이드 미러나 바퀴 같은 곳에 붉은색 천들을 묶어 놓고 행운이나 복을 기원한다면 몽골에서는 푸른색의 천이 그것을 대신하는 것 같다.

하늘과 초원 그리고 바람 이외에 아무것도 없는 초원의 길.

가끔씩 풀을 뜯는 양떼들만이 있을 뿐.

15km 남짓의 거리에 있어야 할 갈림길을 보이지 않고 계속 길이 이어진다.

"길을 지나쳤나?"

언덕을 오르는 길에 자전거를 세우고 구글지도를 검색해 보니 현재의 위치가 갈림길을 지나 도로변에 아무것도 없는 왼쪽의 도로에 진입해 있다. 신나게 내리막길을 달려오기는 했지만 갈림길의 이정표나 도로를 지나친 기억이 없다.

"뭐야? 초원이라 GPS 위치를 정확하게 못 잡는 건가?"

아무리 초원이라도 GPS의 위치 정보가 터무니없이 틀릴 일은 없다. 지금까지 지나쳐왔던 갈림길들을 보면 AH3 도로를 두고 좌우로 갈라지는 길의 초입에만 포장이 되어있고 초원의 흙길을 향해 자동차의 바퀴자국들만 어지럽게 남아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길을 돌아가려니 맞바람이 불어오는 뒤편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모르겠다. 그냥 가보자."

언덕을 오르니 멀리 작은 주유소가 보이고 이정표와 함께 아스팔트 포장의 갈림길이 나온다. 도로가 새로 만들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구글지도의 갈림길과는 거리의 차이가 제법 있다.

에르덴의 마을이 있는 길과 아무것도 없는 AH3 도로의 사이에서 잠시 고민을 하다 작은 경찰 초소가 있는 AH3 도로를 타고 사인샨드까지 이동하기로 결정한다.

"1시 남은 거리 100km, 5시간이면 충분하겠네. 달려보자."

구글맵의 지도를 위성으로 보아도 아무것도 없는 100km의 도로이고, 자민우드에서 툴가에게 물었을 때 그의 가족들 역시 아무것도 없다고 알려주었던 구간이다.

오르고 내리는 산길들을 넘어가고, 마치 물감을 풀어 휘저어 놓은 것 같은 구름들을 바라보며.

어디가 끝인지도 모를 길을 따라간다.

"집 발견!"

도로변에 세워진 게르 한 채를 보며 잠시 쉬어간다.

아무것도 없다.

3시간을 달리는 동안 정말 아무것도 없다.

5시가 가까워지며 붉은빛의 흙산들이 사라지고 황금빛의 초원이 이어진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없다.

조금씩 라이딩의 속도가 쳐져만 가고 체력이 떨어진다. 중국의 작은 도로변 마을을 지나치며 쉽게 먹을 수 있었던 면 요리들이 먹고 싶어진다.

사인샨드에 가까워지며 내리막과 평지 그리고 작은 언덕을 넘는 길들이 반복되며 페달링이 느려지고 지쳐간다.

지나치는 차량들에서는 창문을 열고 말을 걸어오거나 정차를 하고 자전거를 세우는 사람들이 인사를 하고 가끔씩 짧은 한국말로 한국 사람인지를 묻는다.

그냥 손인사를 하며 지나쳐 주면 좋을 것 같은데 굳이 자전거를 세우고 알아듣지 못하는 몽골말로 계속 말을 걸어온다.

어떤 모습으로 사인샨드가 모습을 드러낼지 궁금해진다. 중국의 도시들은 시내 중심을 4~5km 정도 남기고 갑작스레 도시의 모습으로 변하며 나타난다.

몇 차례 젊은 남자들이 탄 승용차들이 자전거를 세우며 관심을 드러내고, 오토바이를 탄 부부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사이 승용차 한 대가 천천히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건넨다.

인사를 하고 길을 이어가는 나를 따라오며 계속 몽골말을 떠들어 자전거를 세웠다. 한국 사람인지 묻는 질문에 한국인이라 대답을 했는데 다시 일본인이냐며 묻는다.

"I'm korean!"

횡설수설 떠드는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니 피부가 트고 각질이 올라온 양 볼이 붉게 물든 것이 술에 취해있는 것 같다.

"형이 지금 힘들다. 그냥 가라!"

무언가 강한 어조로 시비를 거는 듯 몽골말을 하는데 위압감이나 두려움이 들기보다 피곤함이 밀려든다.

"술 먹었으면 집에 가서 자. 낼 속 쓰려. 인마!"

그냥 무시하고 사인샨드를 외치며 자전거를 출발한다. 10미터 정도를 앞서가다 차량을 먼저 보내고 가려고 기다리는데 갓길에 정차를 했던 차량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놔, 신경 쓰이게 하네."

술 취한 남자의 있을지 모를 행패가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음주운전의 차량으로 안한 사고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거리를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자전거를 세워 뒤를 돌아보며 기다려도 차량이 지나가질 않는다.

천천히 일몰이 시작되며 어두워지는데 술에 취한 남자로 인해 신경이 쓰여 마음이 불편하다. 갓길을 따라가며 뒤편에서 오는 차량들의 소리에 자전거를 먼저 세우고 확인하기를 반복하며 짜증과 함께 피곤함이 쌓여간다.

"아, 이놈의 도로에는 왜 경찰도 한 명 없는 거야?

어쩔 수 없이 떨어진 체력으로 속도를 내어 달리며 뒤편의 차량들을 신경을 써가며 가는 수밖에.

사안샨드의 도착을 알리는 5km를 남기고 도로변으로 주유소가 나타나고 높은 언덕길이 나타난다.

사인샨드로 들어가는 왼편의 도로를 따라 언덕길을 오른다.

"왜 항상 마지막은 약속이나 한 듯이 오르막 길들일까?"

힘들게 언덕길을 오르니 멀리 산등성이 위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의 모습이 보인다.

"넓은 평지를 놔두고 왜 산등성이에 도시가 있는 거야."

시 외곽의 작은 변전소를 지나 점점 가까워지는 사인샨드의 모습은 산동네의 판자촌처럼 보인다. 도시의 모습을 생각했던 기대와 달리 펼쳐진 사인샨드의 모습은 조금 충격적이다.

도로변의 집들은 나무 널판의 담 너머로 벽돌집과 게르, 흙집들이 섞여있고 골목길은 모두 흙길이다. 구글맵은 흙길의 집들이 있는 곳으로 길을 안내하는데 낯설고 황망한 풍경의 골목으로 자전거를 타고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포장된 도로를 따라 호텔이 있는 방향으로 마을을 돌아간다. 작은 아파트와 문이 굳게 닫힌 가게들을 구경하며 천천히 마을을 지나쳐 간다.

호텔들과 마켓들이 모여있는 삼거리에 이르러 작은 공원에서 자전거를 멈춰 세운다.

갓난 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부부와 인사를 하고 나서야 알 수 없는 마음의 안도감이 생긴다. 젊은 부부의 편안하고 친절한 눈웃음이 마음에 들었을까 몽골의 여행을 시작하며 가지고 있던 마음속의 막연함과 답답함들이 한순간 녹아 내려간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막연함이 부정적인 선입견으로 두려움을 만들고, 두려움의 거북함이 불안한 마음의 무게를 만들었나 싶다.

"여기도 이렇게 사람들이 사는 곳일 뿐인데."

몽골, 사인샨드 그리고 사람들. 무언가를 애써 받아들인다는 느낌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서야 몽골의 여행이 시작되었나 보다."

공원에서 놀고 있는 아이에게 한국의 인사법을 가르쳐주며 장난을 치고 주변의 숙소를 검색한다.

트립닷컴이나 부킹닷컴에는 어떤 숙소도 잡히질 않고, 구글맵을 통해 사인샨드의 호텔들을 검색한다. 생각보다 많은 호텔들이 구글지도에 표시가 되지만 가격정보는커녕 호텔의 기본 정보도 부족하다.

"어, 이건 불고기 백반 같은 건가?"

몇 개의 후기가 있는 호텔 중에 한국 음식이 나와있는 사진을 보고 공원 주변의 호텔들을 포기하고 조금 떨어져 있는 호텔로 찾아간다. 문이 닫혀있는 2층 건물의 호텔로 들어가서 잠을 잘 수 있는지를 제스처를 하며 물어본다.

멀뚱하게 나를 쳐다보는 프런트의 아주머니와 잠시 스톱 모션이 걸린 것처럼 난감해하는 사이 뒤쪽에 있는 젊은 남자가 한국말로 한국인인지를 묻는다.

자민우드의 호텔에서, 사인샨드로 오는 도로에서 그리고 이곳에서도 짧은 한국말을 하는 몽골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어렵게 찾은 몽골의 회화 어플로 숙박비를 물어보니 프런트의 아주머니가 전혀 응대를 하지 못한다. 한국말을 했던 남자가 영어를 할 줄 아는지 묻더니 잠시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하고 젊은 여자를 데리고 왔다.

키가 큰 이국적인 외모의 여자는 기본적인 영어를 구사한다. 숙박비와 와이파이가 있는지를 묻고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는지 물어보려 하는데 몸이 피곤하고 힘드니 머릿속에 영어가 뒤죽박죽 섞여 횡설수설이다.

"Sorry. i'm tired. Today, I rode a bicycle for 200km."

자전거는 호텔 옆에 있는 세차장의 안쪽에 열쇠를 걸어 놓아두고 젊은 남자의 도움을 받아 짐들을 방으로 옮겨놓는다.

샤워도 미루고 식당으로 들어가 여직원의 도움을 받아 저녁을 시킨다. 돼지고기볶음 같은 것인데 밥 2인분이 기본으로 들어있는 메뉴다.

조그만 그릇에 담겨있는 밥의 양은 부족했지만 8,000원 정도 하는 고기의 양이 많고 넉넉하여 괜찮다.

"역시 사람은 고기를 먹어야 해. 미안해 바트."

야채들을 섞어 볶은 돼지고기는 달달하니 제법 우리의 음식과 비슷한 맛이 나서 괜찮다. 하지만 쌀밥은 푸석함이란.

중국도 그랬지만 아직까지 쌀밥은 우리나라의 밥이 제일 맛있는 것 같다.

툴가와 여직원에게 간단한 몽골어를 알려달라 부탁하여 배워봐도 발음이 굉장히 어렵다.

"안녕하세요, 얼마예요, 감사합니다, 저기요, 다음에 봐요, 잘 먹었습니다 같은 것만 알려줘 봐."

짧은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여직원에게 근처에 한국인이 사는지 물으니 사인샨드에는 살지 않고 울란바토르에 한국인인 많이 산다고 알려주고, 구글지도에 있는 호텔의 한국 음식을 보여주니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답하며 웃는다.

"낚였어?"

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는데 뜨거운 물이 나오질 않는다. 프런트로 내려가 설명을 하자니 그것이 더 피곤할 것 같아 찬물로 간단히 샤워를 하고 만다.

자민우드와 사인샨드의 호텔을 보면 몽골의 호텔은 대충 40,000~60,000투그릭 정도의 숙박료를 받는 것 같다. 하지만 중국의 시설에 비하면 부족한 부분들이 많아 비싸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강한 모래바람으로 맞이해준 몽골에게 시원한 라이딩으로 대답해 준 하루다. 너무나 피곤하지만 짧은 한국말을 잘 하고, 자전거 여행자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해주는 몽골인들이 궁금해진다.


"됐어. 일단 자자!"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78일 / 맑음 ・ 11도
도르고비
어제의 서풍에 이어 오늘은 거센 북서풍의 맞바람이 불어온다. 가는길을 마저 멈추고 바트보르드의 집에서 하루를 더 머무른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8,227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580시간

개와의대화
일만해?
0Km / 00분
0Km / 00분
도르고비
도르고비
도르고비
 
 
45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기차의 기적 소리와 거센 바람 소리를 들으며 새벽에 잠시 깨었다 이내 잠들었다.

"오늘도 틀렸네. 잠이나 푹 자자."

딱히 불편할 것 없는 잠자리다. 다시 잠이 깨어 바람을 확인하러 밖에 나가니 예보대로 강한 북서풍이 거칠게 불어온다.

"바트, 응가는 어디서 해?"

기찻길 옆으로 용도를 알 수 없는 돌담들이 쌓여있는 곳을 가리킨다.

북쪽으로 쌓여있는 돌담을 골라 자리를 잡고 광활한 초원에 수줍은 엉덩이를 까 보인다.

"거름을 뿌렸으니 풀들이 잘 자라겠어."

방에 누워 핸드폰으로 자료들을 정리하는 동안 바트는 바쁘게 오토바이를 몰고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수첩에 무언가를 적는 바트, 빼곡하게 점검 일지 같은 것을 채워 넣는다.

"바트, 커피 한 잔 마실까? 한국 커피."

물을 끓이고 대접에 커피를 따라 놓으니 바트는 다시 나가봐야 한다며 집을 나간다.

햇볕이 따듯한 문 앞에 앉아 늙은 개와 대화를 시도한다.

"너, 그러면 안 돼. 성격 나빠진다."

간간이 느린 기차만이 더 느린 초원의 시간 속을 지나가고.

12시가 넘어 돌아와 그릇에 가득 물을 부어 커피를 마시는 바트에게 점심을 먹자며 빵과 잼을 내놓는다.

하나씩의 빵으로 점심을 대신하니 뭔가가 허전하다.

"역시, 난 고기를 먹어야 해."

바트에게 저녁을 사줄 겸 자민우드로 가서 저녁을 먹자고 한다.

"일을 해야 해서 나는 못 간다."

번역이 잘못된 것인지 더 확인하기 위해 툴가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을 먹자고 의사를 전달했지만 일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한다.

"무슨 일을 하루 종일 하는 거야? 어쩔 수 없네."

택시를 부르면 온다고 해서 자민우드로 나가 고기를 사주려고 했는데 아쉽다.

"내일은 남풍이 불어온대, 그러면 나는 가야 해."

"내일은 남풍, 다음날은 남동풍이 분다. 이틀 동안 사인샨드로 가기가 수월할 거야."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하며 무언가를 하나씩 준비하던 바트가 저녁을 먹으라며 부른다.

밀가루 면에 감자와 고기를 넣고 볶은 요리다.

"цуйван, 초이완"

맛있다고 하니 웃으며 이름을 알려준다.

"여행이 끝나면 책을 쓰고 싶다."

"너는 여행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라."

여행 전,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 세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공허한 일상의 헛된 푸념이 아닌 정말 하고 싶고,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세 가지.

세상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고,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리고 돌아올 수 있다면 남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

"너의 이야기도 쓸 거야."

핸드폰을 달라고 하더니 긴 장문의 글을 여전히 제멋대로 그린다.

"나는 결혼을 해서 부인과 아들을 위해 기찻길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내 큰 소년은 몸이 부러진 나쁜 사람이다."

"아들이 아프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의 몸을 가리킨다.

"아, 네가 여기저기 다치면서도 열심히 일했다고."

리즈후이와 장강변에 앉아 시간을 보내며 스무 살의 옛 기억이 조용한 어둠 사이로 찾아들었는데.

이 드넓은 황무지의 외딴 집에 바트보르드와 앉아 있으니 무거운 삶은 무게가 침묵처럼 가라앉는다.

"바트, 세 번째 바람은 그저 그런 푸념일지도 몰라. 아직 나는 누구를 위해 사는 방법을 모르겠다."

"더는 서툴고 어설프게 살고 싶지 않아."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야 한다면, 돌아가고 싶어지면... If.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77일 / 맑음 ・ 12도
자민우드-도르고비
몽골의 국경을 넘어 자민우드에서의 이틀간 휴식을 마치고 몽골의 여행을 시작한다. "자, 떠나 볼까!"


이동거리
30Km
누적거리
8,227Km
이동시간
4시간 06분
누적시간
580시간

AH3
AH3
14Km / 1시간 46분
16Km / 2시간 20분
자민우드
시계
고르도비
 
 
45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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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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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6-9911-4119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과 바람이 좋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바람이 불어온다.

"오늘 바람 꽤나 불겠네."

정리된 패니어들을 하나씩 프런트로 내려놓고 체크아웃을 준비한다.

"나와 함께 세상을 여행하자!"

아침 영업을 준비하는 식당에 들어가 파인애플 치킨을 주문하니 시간이 조금 걸려 메뉴가 나온다.

"언제 이런 아침을 또 먹겠니."

숙소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자민우드의 기차역으로 간다.

흙먼지 바람이 일어나는 기차역 광장에 앉아 잠시 시간을 보내며 구글지도와 맵스미를 켜서 경로를 확인한다.

"의미가 있나? 길이 하나뿐인데."

수입 담배와 음료를 파는 아주머니에게 필라멘트 한 개피를 300투그릭을 주고 사서 피운다.

"여기 봐. 사진 찍게요."

11시 15분, 광장의 아주머니와 사진을 찍고 자민우드를 떠난다.

자민우드의 외곽으로 빠져나오는 AH3번 도로를 타고 사인샨드 방향으로 향한다.

자민우드의 초입에서부터 거센 바람이 자전거를 밀어낸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는 기차의 기지창 같은 곳에서 길이 막히고 흙길을 향해 좌회전을 알리는 구글맵.

"구글양은 한국어를 존댓말로 배웠나 보다."

양 갈래의 길에서 차들은 양쪽으로 모두 진입하여 들어간다.

"모르면 오른쪽!"

짧은 흙길이 끝나고 회전 교차로를 지나자 사인샨드와 차이르 그리고 울란바토르의 거리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거친 사막의 바람에 몸이 휘청거리고.

영화에서나 보았던 모래바람이 도로와 주변의 풍경을 휩쓸며 흙먼지 가득한 황량함을 만들어낸다.

모래 폭풍 속으로 달려들어 간다. 좁은 갓길마저 사라진 도로에서 바람에 휩쓸리며 휘청거리는 핸들을 조향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초속 16미터의 바람은 이런 느낌이군."

바람에 날리는 모래가 핸들바를 잡고 있는 손등에 부딪히며 따갑게 피부를 파고든다. 돌풍과 함께 순간순간 도로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무거운 페달링과 멈춰 섬 그리고 바람 속 끌바를 반복하며 자민우드의 톨게이트에 도착한다.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데 마치 100km 이상을 달려온 듯 피곤함이 밀려든다.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구나."

톨게이트 사무실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의자에 앉아 잠시 쉬어간다.

"1시간 반 동안 겨우 10km 밖에 못 왔는데."

자전거에 올라타기조차 힘든 강풍 속에 톨게이트를 지난 도로의 갓길은 포장이 되지 않은 흙길이다.

바람에 의해 흙길로 밀려났다 도로로 진입하기를 반복한다.

차량들의 통행이 많지 않아 다행이지만 가끔씩 지나치는 차량들로 인해 바람의 흐름이 요동치며 차량 쪽으로 자전거가 빨려 들어간다.

몇 차례 휘청거리며 넘어질듯한 자전거를 갖갖으로 조향하며 큰 숨을 쉬어본다.

"끌고 가야 하나?"

자전거에서 내려 10여 분을 갓길을 따라 끌어보지만 그것조차 쉽지가 않다.

약간의 오르막길의 끝에 자민우드의 시계로 보이는 조형물을 향해 페달을 밟아보지만 마주 오는 화물차량이 일으키는 돌풍에 다시 한 번 크게 휘청거리며 자전거를 세우고 만다.

톨게이트에서 3km 남짓 이동하는데 30분이 넘게 소요됐다.

"아, 정말 대단한 바람이다."

낙타 모양을 한 조형물 밑에서 바람을 피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14km 왔네. 자민우드로 돌아갈까?"

날씨 정보를 확인하며 진행 일정을 고민해 본다.

오늘은 서풍, 내일 북서풍. 울란바토르까지 북서 방향으로 사선을 그으며 올라가는 이동경로에 오늘은 측면 쪽, 그리고 내일은 정면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내일은 더 심하잖아. 달라질 게 없네!"

"여기에 텐트를 치고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릴까?"

상황이 나빠지면 자민우드까지 쉽게 돌아갈 수 있는 곳에 야영을 할까 생각했지만 100km가 넘게 남아있는 첫 번째 도시까지 거리가 부담스럽다.

"오늘 50km 정도만 이동을 해보자."

1시 40분, 30분이 넘도록 고민을 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더욱 거세지는 바람을 이기며 페달을 밟는다. 차량이 지나치면 갓길로 들어가 자전거를 세우고, 마주 오는 화물 차량을 확인하면 미리 자전거에서 내려 고개를 숙이고 돌풍을 견뎌내며 가다 서기를 무한 반복한다.

정면과 측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바람막이의 옷자락과 태극기가 찢어질 듯이 펄럭거린다.

자전거를 세우고 서있기조차 힘든 강풍과 모래바람.

3시, 8km 남짓 이동을 하고 자동차 휴식 공간이 마련된 사거리의 측면으로 몇 채의 벽돌집들과 게르가 지어진 첫 번째 마을이 보인다.

무작정 도로를 벗어나 게르가 있는 곳에 자전거를 세우고 햇볕이 드는 곳에 주저앉는다.

바람에 휩쓸리며 세워둔 자전거가 한차례 슬로 모션처럼 넘어지고, 심한 바람이 불지만 기온은 따듯하여 패니어에 넣어둔 콜라 맛은 미지근하다.

"게르가 있는 안쪽에 텐트를 치면 좋겠는데."

잠시 쉬는 동안 사람의 인기척이 전혀 없다.

"5시까지만 가보자."

끝이 보이질 않는 도로 위로 오로지 거친 바람 소리와 돌풍의 흙먼지만이 자욱하다.

바람을 맞는 왼쪽 눈이 아파오고 핸들을 지탱하느라 오른쪽 어깨가 다시 쑤셔온다.

길은 난데없이 오르막이 길게 이어지며 휘어진다.

"아무것도 없는 초원에 왜 곡선으로 도로를 만들어."

오르막의 끝에서 쉴 생각으로 오기 있게 페달링을 해보지만 건너편 도로로 화물차들이 연이어 내려온다.

고개를 숙이고 차량들이 만들고 지나가는 돌풍을 온몸으로 버텨낸다.

오르막의 끝에 예쁜 이정표가 보이고 언덕 너머로 작은 집 한 채가 보인다.

"안 되겠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무작정 집이 있는 곳으로 자전거를 끌고 가는 갑자기 늙은 개 한 마리가 나를 향해 사납게 짖으며 천천히 다가온다.

"아, 젠장. 여기서도 개야!"

잠시 개를 보며 서있자 집에서 사람이 나와 나를 보며 괜찮다고 손짓을 한다.

개의 주인이 다가와 개를 쫓아내고 집으로 가자며 안내를 해준다.

기찻길의 주변, 초원 한가운데 지어진 집 한 채.

자전거를 세워놓고 앉아있으니 집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화로가 놓인 주방과 침대와 TV가 전부인 집에 들어서자 남자는 서둘러 차를 준비해 내어준다.

"충꾹? 한꾹?"

"한국에서 왔어."

"꼬레아, 으응!"

남자가 내어준 차를 마시며 바람이 많이 불어 힘들다는 제스처를 하고, 번역기로도 의사 전달이 힘든 몽골어를 여러 차례 검색을 하며 반복한다.

"Би энд унтаж болох уу?"

하룻밤 머무를 수 있는지 물으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쉬어가라는 제스처를 한다.

"마을 이름?"

"Дорноговь."

도르노고비, 동쪽 언덕이라는 뜻 같은데 사인샨드에서 197km 떨어진 곳이라며 알려준다.

"이름?"

"Батболд."

바트보르드, 48살이라며 여러 차례 발음을 따라 해도 몽골어는 너무 어려워 잘 모르겠다.

자신은 결혼을 해서 아내가 있다며 소개를 하는데 스마트폰에 익숙치 않은 바트가 번역기에 몽골어로 그림을 그리듯 무작정 필기를 하니 번역이 제대로 될 일이 없다.

결혼, 27, 큰 여자 27, 23, 14.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번역기에 나열된다.

"27살 아내가 있다는 건가? 27명의 아내가 있다는 건가?"

짧고 굵게 염장을 지르더니 나에게 소개를 해달라는 제스처를 한다.

"46, 결혼 안 했어."

나이를 숫자로 적어주니 자기가 2살이 많다며 손가락으로 2를 표시한다.

"응 맞아! 왜, 형이라고 불러줘?"

빵 같은 것을 테이블 밑에서 꺼내는데 벽돌처럼 딱딱하다.

"이거 먹으라고 너무 딱딱해서 못 먹어. 이걸 어떻게 먹어?"

잠시 후 바트는 딱딱한 빵을 한 조각 부신 후 '왈왈'거리며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키고 나간다.

아마도 개에게 주는 먹이인가 싶기도 하고.

자신이 말아서 태우던 종이 담배를 피워 보라며 주었는데 종이 타는 맛 이외에 별 맛은 없다.

패니어들을 떼어내 집안으로 집어넣고 자전거를 가리키니 그냥 두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것도 없는 초원 한가운데에서 바보 같은 질문이다.

"그래, 여기 아무도 없네. 아무것도 없어! 하하하."

나를 향해 사납게 짖어대던 늙은 개는 꼬리를 내리고 얌전해졌다.

"아, 얄미워. 저걸 확!"

몽골의 달력에도 12간지의 그림들이 날짜마다 그려져 있고.

바트는 삼성의 2G 핸드폰을 사용한다.

침대에서 쉬는 바트와 대화를 하려 해도 그냥 난감 그 자체이다.

"툴가에게 전화를 해볼까?"

툴가에게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했다. 전후 사정을 짧게 알려주고 바트가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봐달라 부탁한다.

바트가 많은 말을 하며 한참 동안 통화를 한다.

"기차역에서 일을 하는데, 한국에 가면 일자리 같은 것을 소개해 달래요."

기찻길 부근에서 철로 관리 같은 것을 하는가 보다.

툴가에게 고맙다고 전해달라 부탁을 하고 툴가와 통화를 마친다.

바트와 몽골, 중국 담배를 나눠피며 번역기로 어렵게 소통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저녁을 먹자며 당근과 말린 고기를 넣은 볶음면을 한 그릇 내어주었다. 중국에서 먹었던 맛과 별 차이가 없는 맛이다.

"툴가, 몽골이 혹시 일부다처제야?"

궁금했던 것을 툴가의 카톡으로 물어본다.

"여기 춥지?"

"이제 따듯해지는 계절이라 지금은 괜찮다."

패니어의 무게를 차지하던 방풍자켓과 여름 옷들을 꺼내어 조심스레 바트에게 건네준다.

"일할 때 입어."

무례한 행동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바트가 기분 좋게 받아주어 마음이 놓인다.

겨울 비니와 양말을 하나씩 꺼내어 주고, 핫팩들을 꺼내어 사용법을 설명해 준다.

붙이는 핫팩을 뜯어 비비고 흔들어도 바로 열기가 올라오지 않아 애를 먹고.

"너무 오래돼서 안 되나? 하여튼 이렇게 쓰면 돼."

TV를 가리키자 DVD 씨디를 보여주며 '마르코'라고 알려준다.

"보여줘 봐."

DVD를 틀더니 류시원이 표지 모델로 그려진 씨디를 보이며 '한꾹'이라고 한다.

"류시원, 모르는 영화인데."

TV에서는 장 끌로드 반담의 오래된 영화가 나온다.

"완담!"

바트가 반담을 가리키며 액션 장면을 흉내 낸다.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바트의 침대 옆에 돗자리와 쿠션을 깔고 자리를 잡았다. 77일 동안 여행하며 두 번째 써보는 것이다.

몽골은 외화들을 모두 성우들이 더빙을 한다. 숙소에서도 한국 드라마가 더빙되어 방송이 되었는데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장 끌로드 반담의 영화가 끝나고 다른 DVD를 틀려는 바트에게 한국을 말하니 류시원의 씨디를 넣어 주었다. DVD 플레이어에 씨디를 넣으며 왼손목에 붙여 놓았던 핫팩이 따듯하고 좋다며 엄지를 치켜 세운다.

오토바이을 타다 넘어져서 골절이 되었던 팔목을 보여주는 바트에게 날씨가 추울 때 핫팩을 붙이라고 제스처로 알려준다.

등장인물 소개를 하는 멘트에 출연 배우들의 이름을 따라 하는 바트.

"류시원, 박지윤, 김민수."

혼자 이곳에서 일하며 수없이 반복해서 DVD를 보았나 보다.

류시원이 이종 격투기 선수로 나오는 드라마 같은 것이었다. 검색을 해보니 2012년 채널A에서 방송되던 로맨틱 코미디 '굿바이 마눌'이라는 드라마다.

종편이 개국하던 초기에 많은 돈을 써가며 만들었던 드라마들 가운데 하나인가 보다.

드라마도, 류시원도 관심이 없고 더욱이 종편의 채널들은 모두 리모컨에서 삭제해 버리니 알 리가 없다.

"빌어먹을 명박이 작품이네."

순찰을 나가는지 복장들을 갖춰 입던 바트는 입담배를 말아 태우고.

많이 보았을 드라마를 재미있게 시청한다.

"너, 이 자식!"

천천히 해가 져물어 가는데 바람은 여전하다.

"몽골은 한국과 문화가 비슷해요."

툴가에게서 카톡의 메세지가 왔다. 아마도 결혼을 해서 가족들이 있다는 말을 한 것 같다.

핸드폰으로 사진들을 정리하는 내 옆으로 순찰에서 돌아온 바트가 나란히 눕는다.

"이것 봐. 중국이야."

여행 중 촬영한 중국의 동영상들을 보여주며 하나씩 소개를 해준다.

"여기가 황산, 계림, 용척제전, 장가계, 천안문, 자금성."

관심있게 영상들을 보며 웃기도 하고, 엄지를 세우기도 하고, 천안문을 보며 모택동이라며 손가락을 가리키기도 하더니 침대 밑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어 보여준다.

빨간색 옷을 입은 여자가 바트의 아내 아츠제르깔, 파란색 몽골 복장의 아이가 14살 아들 오끔마타르이다. 그리고 나머지 세명이 누구인지 알려주는데 알 수가 없다.

"나는 없어."

"여자를 취해라!"

저녁을 먹자는 바트에게 라면이 있다며 끓여 먹자고 한다. 물을 끓여 매운 라면을 준비하고.

바트가 종이를 꺼내더니 볼펜으로 그림을 그린다.

제법 솜씨 좋게 말과 산양, 양들의 그림을 그리며 동물들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고 이름들을 적어 알려준다.

그리고 자신의 사인과 핸드폰 번호를 적더니.

나에게 선물을 하며 악수를 청한다.

"나 주는 거야? 와, 감사합니다. 땡큐!"

그 사이 라면이 끓어 나는 라면을 그릇에 담고, 바트는 몸에 좋다며 우유를 그릇에 따른다.

라면을 먹던 바트가 너무 매워하며 오만 인상을 쓴다. 생각해보니 그들에게 신라면은 엄청나게 매운 음식이다.

패니어에서 작은 소세지를 꺼내어 바트에게 주고, 빵과 잼을 꺼내어 먹으라고 한다.

먹다 남은 보드카를 바트에게 주고 건배를 하며 저녁을 먹는다.

번역기를 달라는 바트에게 핸드폰을 주니 여전히 투박한 손으로 마구 적는다.

"тийм байна хангалуун байна надад гоё дурсамжуудаа биан дедор Солонгос найзтай ..лан. чинадад сСолонгос мана би чамайг дурсах болно Сайхан дурсамжулах болно.н надад он этуэт мангасилгонконг доллар байтал - Би Манга,хдавсгарт цуглу’ллаг юм."

번역기된 문장안에 한국 친구, 좋은 추억, 너무 기뻐, 기억할게 등의 글들로 보아 나와 함께해서 즐겁고 기억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지갑에서 1달러와 1자오를 꺼내어 기념으로 선물을 해준다.


"후원해 주는 거야? 땡큐, 바트!"


바트와 즐겁게 식사를 하고 밖에 나가 초원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달이 밝아 별들이 반짝이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올려다보는 밤하늘이다.

머리위의 북두칠성을 보고 있으니 바트가 자신의 팔뚝을 가리킨다.

바트의 팔에는 여러 개의 작은 타투가 그려져있다. 북두칠성이 팔뚝에 그려져있고, 말도 있고, 작은 글씨들도 새겨져 있다.

바트가 이불 하나를 내어주었고, 바트는 상의를 벗고 잠을 잔다.

"오, 나랑 비슷한 취향이네."

불빛이 꺼진 캄캄한 방, 불어오는 초원의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다.


"모든 조명을 켜두고 홀로 잠드는 호텔보다 좋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76일 / 맑음 ・ 20도
자민우드
하루를 더 자민우드에서 쉬며 캠핑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준비하기로 한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8,197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576시간

주유소
슈퍼마켓
00Km / 00분
00Km / 00분
숙소
자민우드
숙소
 
 
15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아침에 일찍 잠이 깨어 믹스커피 한 잔을 들고 숙소 밖으로 나온다. 프런트에는 어제의 여직원이 아닌 중년의 여자가 앉아있다. 바람이 조금 잦아들었는지 햇살이 좋은 아침이다.

프런트의 여직원에게 하루 더 머무를 것이라 말하니 바로 이해하고 알아듣는다. 어제의 눈치 없던 직원과 달리 업무에 능숙하고 친절하다.

"와이파이가 잘 되는 방으로 주세요."

여러 번 번역기를 돌려도 제대로 된 몽골어가 검색되지 않는다. 어렵게 비슷한 뉘앙스의 번역을 보여주니 뜻을 이해했는지 번역기에 알았다는 몽골어를 써준다.

"휘발유는 주유소에서 파나요?"

한 번 더 가솔린을 번역해서 보여주고 구글 지도를 보여주며 국경 근처의 주유소를 가리키니 맞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몽골어가 문제가 아니었어. 이건 눈치와 센스의 문제야!" 

어제 숙소에 와 의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여직원과 대화하느라 힘들었는데 이 직원이 있었으면 훨씬 편했겠다 생각이 든다.

전산이 없이 꼼꼼하게 노트 필기를 하는 자민우드의 숙소, 마치 몽골어가 복잡한 수학 공식처럼 보인다.

방으로 올가와 버너의 연료통을 들고 바로 내려온다. 숙소 입구에 세워둔 자전거를 끌고 도로로 나와 페달을 밟으니 핸들이 요란하게 흔들거린다.

이내 가벼운 핸들에 적응을 하고 천천히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국경이 있는 주유소로 도로를 따라간다. 

몽골도 중국처럼 80, 92, 95의 숫자를 붙여 휘발유를 판매한다. 80번은 디젤이고 92와 95는 가솔린인데 차이는 아직도 모르겠다.

자전거를 세우고 사무실에 있는 직원과 눈을 마주치며 연료통과 함께 번역기로 가솔린을 보여준다. 약간 의아해하며 안된다는 X 표시를 두 팔로 표시를 하는 남자 직원에게 자전거 여행 중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버너로 음식을 하는 사진을 보여준다.

뜻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지만 계속 안된다는 의사 표현을 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가솔린을 팔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작은 버너 연료통만큼은 팔 수가 없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10리터의 커다란 연료통을 가져오더니 그곳에 가솔린을 받아 버너의 연료통에 넣으라고 제스처를 한다. 

"얼마에요? 1리터만 주세요."

핸드폰을 주니 2,000의 숫자를 적어준다. 1리터에 900원 정도의 가격이니 중국과 휘발유 가격은 비슷한 것 같다.

주유소의 직원에게 2,000투그릭를 주니 주유기 측면에 붙어있는 곳에 숫자를 누르고 큰 휘발유통에 휘발유를 넣어준다.

버너의 연료통에 부으라는 제스처를 하며 주유소 건물의 측면 모래밭으로 안내해주며 양동이을 건네준다.

"브로, 남자는 함부로 흘리지 않아. 걱정 마!"

필요한 만큼만 연료통에 휘발유를 담은 후 남은 휘발유는 직원에게 돌려준다. 무려 75일 동안 사지 못했던 가솔린을 몽골에 넘어와 쉽게 산다.

"됐다. 버너의 연료도 샀고." 

돌아오는 길 자민우드 초입에 있는 작은 공원의 탑도 구경하고.

숙소에 돌아와 여직원에게 빨간 연료통을 들어 보이니 빙긋 웃는다.

"이제 남은 위안화를 환전해 볼까."

중국에서 사용하고 남은 위안화는 505.5위안이 남아있다. 8만원 정도의 금액이니 어제 ATM에서 찾아 쓴 투그릭과 합치면 울란바토르까지 사용하기에 충분할 것 같다.

숙소 앞에 있는 은행에 들어가니 아침부터 사람들이 북적이며 은행 업무를 보고 있다. 가장 측면의 여직원에게 번역기를 보여주며 환전하는 곳을 물어보니 다행히 한 사람만이 창구에 서서 업무를 보고 있는 한가한 창구이다.

"번호표 같은 게 설마 있나?"

주위를 둘러봐도 번호표 같은 것은 보이질 않고 은행 창구에도 딱히 순번을 알리는 숫자들이 보이질 않는다.

환전 창구로 가 바닥에 그려진 안내선에 서서 차례 기다린다.

"뭐라고 쓰여있는 걸까? 여기서 대기? 가까이 오지 마시오? 줄을 서시오?"

어느새 익숙해진 위안화. 남은 0.5위안은 기념으로 넣어두고 505위안을 환전할 것이다.

한 사람밖에 없어 빨리 환전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은행 직원은 계속해서 지폐를 세는 카운터기를 돌리며 오른쪽과 왼쪽의 카운터기를 모두 사용해 무언가를 처리하느라 바쁘다. 아무래도 지폐의 종류가 많고 금액에 따른 지폐의 숫자가 많아 반복적으로 카운터기를 돌려야 하는 것 같다.

"야, 이 동네는 돈 세느라 하루가 다 가겠네."  

20분 넘게 돌아가는 카운터기의 숫자들만을 구경하는 사이 내 뒤로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지폐 확인이 끝나고 내 차례가 돌아온다.

위안화를 보여주며 환전을 하고 싶다고 하니 환전 신청서 같은 것을 건네준다. 환전할 금액과 이름을 적으라 알려주고 뒤에서 기다리던 아주머니가 서명을 하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고참으로 보이는 여직원을 부르더니 무언가를 상의하고 내 핸드폰을 가리키며 무언가를 적으라고 한다.

"핸드폰 번호를 적으라고?"

몽골 유심을 사며 핸드폰 번호가 생겼기 때문에 유심카드를 확인하고 당당하게 핸드폰 번호를 적어주었더니 재미있는 듯 쳐다보는 사람들.

한 다발의 투그릭을 건네줄 거라 생각했는데 환전 영수증을 주고.

처음보는 돈들을 조금 건네준다.

"금액이 맞나? 왜 이렇게 조금 주지. 만수르가 되고 싶었는데, 실망스럽게."

20,000투그릭, 10,000투그릭, 5,000투그릭, 1,000투그릭 그리고 잔돈들까지 해서 1위안당 391투그릭으로 환전을 해준다.

"무슨 지폐가 이렇게 많아. 주체할 수가 없네."

숙소로 돌아오니 여직원이 다른 방 키를 흔들며 나를 부른다. 와이파이를 확인하라며 함께 올라가자는 제스처를 해서 그녀를 따라 3층으로 올라간다.

공유기가 붙어있는 복도의 첫 번째 방을 내어주며 와이파이를 확인하라고 안내를 한다. 활기차게 모든 안테나를 채우고 있는 와이파이를 확인하고 OK 표시를 해준다.

4층으로 올라와 짐들을 나눠 들어주고 3층으로 방을 옮긴다. 

점심을 먹기 위해 고글을 벗고 안경을 찾는데 안경이 보이질 않는다. 방을 옮기며 꼼꼼하게 남겨둔 물건이 없나 확인을 했는데 안경을 빠뜨리고 온 모양이다. 

다른 방을 청소하는 직원에게 안경을 놓고 왔다는 제스처를 하며 '안경'이라고 한국말을 하니 한국말로 대답을 한다.

"한국말을 하시네요?"

"네, 조금 할 줄 알아요."

"405호에 안경을 놓고 왔나 봐요."

"알았어요."

작은 도시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자민우드다. 

식당으로 내려가니 어제의 여직원은 보이지 않고 그녀가 추천해 주었던 세 번째 메뉴 스팀 비프를 주문한다. 감자와 함께 모양 좋게 나온 음식은 제법 괜찮았지만 어제의 파인애플 치킨보다는 조금 맛이 덜하다.

몽골 숙소에서는 물은 큰 물통을 통째로 준다.

캠핑을 대비해 무거운 무게를 감내하며 들고 다녔던 고용량 보조 배터리도 충전을 시켜 놓고 음식들을 사기 위해 기차역 앞의 마트로 간다.

2중으로 되어있는 나무 문이 항상 닫혀있는 자민우드의 마트.

장바구니를 들고 무엇이 있나 천천히 매장을 둘러본다.

다양한 종류의 소시지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뾰족구두 신사화처럼 생긴 동물의 특수 부위도 통째로 있다.

"이게 대체 어느 부위인 거야? 혓바닥인가, 턱인가?"

매장 곳곳에서 한국 제품들을 쉽게 찾을 수 있고.

박카스와 레츠비 그리고 뽀로로 음료수까지 있다.

일단 두툼한 햄과 빵 그리고 잼을 사들고.

아무리 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몽골의 즉석 식품도 무게가 가벼워 하나 사둔다.

과자와 쵸콜릿 등을 조금 골라 담고 계산대로 가 어떻게 계산을 하나 궁금했는데 우리와 똑같이 바코드를 찍으며 쉽게 계산을 한다. 단지 카운터의 책상 서랍에 엄청난 양의 지폐들이 꽂혀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계산을 끝내고 마트 내에 있는 문구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골라 사 먹었는데 엄청나게 달아서 먹느라 힘들다. 

마트 2층에는 미용실과 화장품 가게 그리고 옷 가게 같은 것이 있고 분위기는 우리와 거의 흡사하다.

숙소에 돌아와 저녁으로 먹으려던 파인애플 치킨을 포기하고 매운 컵라면으로 출출한 배를 채웠다. 몽골에서 파는 매운 컵라면에는 중국처럼 플라스틱 포크가 들어있다.

조금 나른한 기분이 들어 잠을 잘까 생각하다 내일부터 시작될 몽골 라이딩을 위해 짐들을 재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양치와 세수를 하려고 칫솔세트를 열어보니 세트 상자에 세면도구가 모두 들어있다.

숙소에 들어와 비누와 샴푸를 찾아도 없어 가지고 다니던 세면도구를 사용했는데 이곳에 한꺼번에 들어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빗은 중국이나 여기나 필수품이구나."

패니어의 짐들을 풀어 헤치며 중국 남부의 빗속을 달리게 도와주었던 6위안짜리 고무장갑을 버린다.

"잘 썼다. 당분간 비 맞을 일이 없으니 여기까지."

패니어의 짐들을 가지런히 펼쳐놓고 중국의 우중 라이딩에 맞춰져 있던 짐들을 캠핑에 적합하게 재분배한다.

렉 패니어에 들어있던 옷들과 잡동사니들을 빼내고 침구류와 취사도구들을 넣고 캠핑용 식량으로 채워 넣고.

취사도구들이 빠져나간 프런트 패니어에 노트북을 옮겨 담고.

노트북이 빠져나간 리어 패니어에는 겨울옷들을 넣어 둔다.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리어 패니어를 뒤적이며 물건들을 꺼내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

많은 짐들이 어떻게 패니어에 다 들어가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짐들을 풀어헤치고 나니 마음은 개운한데 몸이 피곤해진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몽골의 초원과 사막, 높은 고산지대와 드넓은 호수를 향해 달려보자. 밤하늘을 보며 캠핑도 해보고..  

"몽골, 너를 보여줘!"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75일 / 맑음 ・ 16도
중국 얼롄하오터-몽골 자민우드
중국과 몽골의 국경을 넘어 몽골 자민우드로 향한다.

이동거리
15Km
누적거리
8,197Km
이동시간
1시간 24분
누적시간
576시간

전개로
AH3
8Km / 35분
7Km / 49분
얼롄하오터
중몽국경
자민우드
 
 
15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일찍 잠에서 깨었다. 위챗을 교환했던 몽골 남자에게서는 아무런 답변이 없다.

"오늘 몽골로 넘어가자!"

식당으로 내려가니 오늘은 사람들이 제법 붐빈다. 어제 먹었던 볶음밥이 없어 간단한 빵들과 볶음면으로 식사를 한다.

패니어와 짐들을 하나씩 체크해가며 빠뜨린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1층 프런트로 내려갔다. 왕칭옌은 출근 전인지 모습이 보이질 않고 이틀간 여러 가지 신경을 써준 숙소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다.

"혼자서 다니는 거야? 애인이나 부인이 없어?"

"메이요! 한국에 여자가 없는데 중국에도 여자가 없네. 중국에 여자가 없어서 이제 몽골로 가는 거야."

직원들과 농담을 하며 작별 인사를 하고.

"중국에서 만난 모든 이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고마워 중국!"

숙소를 나와 공룡공원의 건너편 얼롄하오터 이우샹마오청(二连浩特义乌商贸城)으로 간다.

자전거를 끌고 승합차와 짚차들이 있는 주차장으로 가니 '멍구'를 외치며 사람들이 다가온다.

"취 멍구, 뚸 샤오 첸?"

국경을 넘는 차량의 비용을 묻는데 대답은 하지 않고 자전거를 끌고 차로 가자고만 한다. 아저씨의 차는 짚차가 아닌 승합차다.

"알았어. 얼마야?"

자전거를 바닥에 눕혀버리고 가격을 확인하니 자전거를 살피더니 100위안을 달라고 한다. 손사래를 치며 비싸다고 말하니 사람만 가면 60위안인데 자전거를 실어야 하니 100위안을 줘야 한다고 한다.

"빠스! 나 돈 없어. 빠스!"

주머니에 들어있는 돈을 탈탈 털어 보여주며 80위안에 가자고 하니 못 간다며 손사래를 치더니 이내 자전거를 실으라 차로 안내한다. 숙소를 나오며 잔돈들을 모아 주머니에 80위안만을 담고 나머지는 자민우드에서 환전을 하기 위해 패니어에 넣어두었었다.

다른 여행자들을 보면 50~150위안을 내고 국경을 넘는 것 같지만 그들과 가격을 두고 흥정을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80위안도 비싸게 느껴지지만 66위안의 기차 비용을 생각하면 적당하다 생각한다.

다음의 여행자들을 위해 바가지를 써가며 비용을 지불할 생각도 없고, 야박하게 몇 천 원의 가격을 흥정하느라 실랑이를 하고 싶지도 않다. 안전하게 국경을 넘는 것이 최우선이고 나에게 80위안은 그 정도의 댓가로 충분하다 생각한다.

70위안으로 양고기를 사 먹었기 때문에 더 낼 돈도 없다.

패니어들을 떼어내 차곡차곡 차량의 안쪽에 집어넣고 자전거를 싣고.

"아저씨 사진이나 같이 찍어요!"

뭔가 서두르는 아저씨를 잡아 사진을 찍는데 자꾸 고개를 돌린다.

"50위안까지 깎으려다 만 거예요. 80위안이면 적당히 좋구만."

서둘러 탑승하라는 아저씨의 재촉에 못 이겨 승합차에 오르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아저씨는 마땅한 손님들이 보이질 않는지 광장 앞을 출발한다. 손님은 동행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아이와 할머니 그리고 나.

공룡공원을 지나 지내길을 돌던 차량은 다시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에서 차량을 세운다. 가족으로 보이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짐들을 싣고 차량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이내 북적북적해진 승합차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

"한국 사람! 같이 사진 찍어요."

흔들거리는 차량 안에서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자 하니 모두들 거부감 없이 흔쾌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어준다.

각자가 붉은색의 몽골 여권을 손에 들고 있어 몽골 여권을 보여달라고 한다.

중국, 한국, 미국 등의 출입국 스탬프가 빼곡하게 찍혀있는 여권을 보여주며 각 나라들의 스탬프들을 설명해 준다.

"우와, 많이도 다녔네! 뭐 하러 간 거예요?"

번역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구글 번역기를 여러 번 검색하여 보여준다.

"여행요."

앞자리에 앉아 무릎을 맞대고 있던 젊은 남자아이가 한국말로 짧게 대답을 한다. 스치듯 들려온 한국말이 낯설게 느껴지고 방금 전 한국말로 답변을 한 남자아이를 쳐다본다.

"한국말인데. 한국말 할 줄 알아?"

툴가, 한국 이름이 대원이라는 젊은 아이는 수원 아주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는 몽골의 학생이다. 5년 정도 어학원과 대학을 다니며 수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지금은 휴학 중이라서 몽골에 와 있다고 한다.

몽골의 여행의 막연한 시작과 함께 행운처럼 찾아든 회색 후드티를 둘러쓴 이쁘게 잘 생긴 툴가와의 만남이다.

"툴가, 잘 생겨서 한국에서 인기가 많겠다."

"한국에 친구가 많지는 않아요."

이삿짐센터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하느라 충분히 즐겨야 할 청춘의 시간이 여유롭지만은 않은 듯싶다. 나 또한 그러한 시간을 보내왔고 지금의 젊은이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을 살아가지만, 보석처럼 빛나는 20대의 시간을 현실의 삶에 묶여 즐기지 못한다는 것이 슬프고 안쓰럽다.

"툴가한테 잘 보여야겠다. 툴가에게는 많은 기회가 열려있을 테니까."

네트워크가 끊기기 전에 툴가의 전화번호와 페이스북 등 연락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받아 놓고.

툴가와 대화를 하는 사이 승합차는 무지개 아치가 있는 중국의 국경에 이르렀다. 출입국 사무소가 있는 출입구에서 보안 요원들에게 여권을 보여주고 통과한 후 승합차에서 내린다.

승합차는 손님들을 내리고 오른 편에 있는 차량 출입구로 들어가고 우리들은 정면에 보이는 중국 출입국 사무소로 걸어간다.

무지개 아치를 지나서.

얼롄하오터의 출입국 사무소에 들어간다.

출국 심사대가 있는 곳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고 특별히 꼼꼼하게 체크하지 않는 것 같은 검문대를 통과한다.

"아, 나는 출국카드 작성해야지."

툴가의 가족들은 바로 출국 심사대로 가서 줄을 서서 대기하고 그들을 따라가던 중 출국카드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 생각난다.

"어디 보자. 이름, 여권번호, 생년월일, 성명, 국가명, 서명 그리고 차량번호?"

차량번호를 공란으로 비워두고 사람들의 뒤편에 서서 출국심사 사진을 찍으니 보안요원이 다가오며 핸드폰을 가리킨다.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눈치 빠르게 핸드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지운 후 보안요원에게 보여준다.

"Ok? 땡큐!"

다른 요원들과 달리 싱글싱글 웃으며 안내를 해주는 사람이라 기분 좋게 마무리가 된다.

출국카드를 작성하는 사이 사람들이 줄을 서 툴가네 식구들과 떨어져 서있으니 툴가의 식구들이 자기네 쪽으로 오라며 손짓을 한다.

"툴가, 차량 번호는 어떻게 적었어?"

툴가도 잘 모른다하여 툴가의 출입국 카드에 적힌 차량번호를 적었다. 특별히 중요한 사항이 아닌 것 같다.

별문제 없이 출국 스탬프가 찍히고 심사대의 중앙에 놓인 단추들에서 서비스를 평가해달라는 한국어 안내 멘트가 나온다.

"생각 같아선 울상을 짓고 있는 스마일 맨을 눌러주고 싶은데 참는다."

툴가네 식구 중 한 명이 두리번거리다 출국 심사의 순서를 잠시 놓친 사이 큰소리의 호통을 치며 부르던 출국 심사원이다.

"좀 웃으면서 친절하게 해라. 촤식아!"

출입국 사무소를 나오니 승합차의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고, 핸드폰의 네트워크가 E자를 보이며 끊겨있다.

"헤이, 코리안!"

퉁명스럽게 나를 부르며 요금을 달라고 한다.

"아직도 삐쳐있는 거야? 80위안 많이 받은 거잖아. 웃어 아저씨!"

출입국 사무소의 반대편으로 나와 기다리던 승합차에 올라타고 여권에는 중국 여행이 끝났음을 알리는 출국 스탬프가 찍혀있다.

"비와 산길, 황사와 주숙등록, 고산의 초원과 바람.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그럼 됐다!"

국경을 넘기 전 출국 스탬프가 찍힌 여권을 보안요원들에게 다시 보여주고 승합차는 몽골의 국경으로 넘어간다.

몽골의 지역에 이르러 이번에는 군복을 입은 몽골 보안 요원들에게 여권을 보여주고.

작은 몽골의 출입국 사무소에 도착하여 다시 차량에서 내린다.

"이번에는 입국심사!"

2개의 입국 심사대가 있는 몽골의 입국 심사대에 사람들이 서 있고 툴가네 식구들을 따라가던 중 입국 카드를 작성하고 있는 중국인들을 보인다.

"툴가, 난 입국 카드를 써야 하는데. 입국 신고서가 어디에 있지?"

입국 신고서의 서류함에는 종이 쓰레기만 있고 아무것도 없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입국 심사원에게 건네받은 입국 신고서를 툴가에게 건네받고 입국 신고서를 작성한다.

"이름, 생년월일, 성명, 국가, 여권번호, 비자유형, 비자번호, 입국일, 서명 그리고 주소? 핸드폰?"

툴가가 자기의 집 주소를 적어 넣고 나머지 모르는 항목들을 공란을 비워둔다. 문제없이 입국 심사가 끝나고 몽골의 입국 스탬프가 찍힌다.

입국 심사대를 나오면 사무실과 은행 ATM 기기들이 놓여있다. 건물이 작다 보니 그 이외의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

출입국 사무소를 나오니 승합차의 아저씨가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 알려준다. 무서운 모래바람이 흙먼지를 날리며 불어온다. 사람들이 들어가는 작은 건물로 들어가 보니 조그마한 매점이 있다.

잠시 후 바쁘게 서두르는 아저씨의 재촉으로 승합차에 오르고 툴가의 친척은 여권을 잘 넣어두라며 바람막이의 포켓을 가리킨다.

몽골 출입국 사무소의 출입문을 통과하며 입국 스템프가 찍힌 여권을 보안요원들에게 보여준다.

"이거 언제까지 보여줘야 하는 거야?"

"이제 다 끝났어요!"

몽골의 출입국 사무소를 빠져나와 툴가네 식구들은 자신들의 차량이 주차된 곳에서 짐들을 내리고 옮기느라 정신이 없다. 천천히 해도 될법한데 매서운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뭐가 그리 급한지 재촉을 하는 승합차의 아저씨 때문에 더 정신이 없다.

"툴가네 식구들하고 사진을 한 장 찍어야 하는데."

짐을 옮기느라 바쁜 툴가를 불러 사진을 찍고 연락을 하겠다 인사를 나눈다.

"헤이! 코리안!"

"아저씨 알았어. 사진 찍고 갈게! 왜 소리를 치고 그래."

툴가네 식구들과 헤어지고 승합차는 자민우드로 향한다.

몇 분 후 모래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자민우드에 도착하고 도로변에 자전거와 짐을 내려준다.

"아저씨! 땡큐!"

듣는 둥 마는 둥 퉁명스레 인사를 하며 떠나는 승합차 아저씨.

자전거에 패니어들을 장착하고 난 후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생소한 자민우드의 풍경을 보며 어색한 낯설음을 가라앉힌다.

"아이고 또 막막하다!"

습관적으로 고덕지도를 실행시키고 닫은 후 구글 지도를 실행시킨다. 위치를 정확히 잡지 못하지만 지도상 자민우드의 기차역 부근인가 싶다. 10미터 정도 자전거를 끌고 가니 넓은 주차장에 승객을 태우려는 승용차들로 가득하고 주차장 넘어 오래된 자민우드의 역사가 나온다.

자민우드의 기차역 광장은 오가는 사람도 없이 휑하니 비어있다.

"일단 여기가 기차역이고."

기차역을 빠져나와 오른 편에 있는 경찰서의 건물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숙소를 검색한다.

"일단 숙소를 잡고, 유심을 교체하고, 환전을 하면 되는 거지."

트립닷컴과 부킹닷컴에는 호텔이 검색되지 않고, 구글지도를 검색하여 호텔의 아이콘을 찾는다.

"현금과 온라인이 끊겨있으니 비싸더라도 알려진 호텔로 가보자!"

현재 위치가 부정확하게 나오는 구글 지도를 보며 자민우드의 역사를 기준으로 건물들을 파악한 후 내 위치를 확인한다.

"저쯤에 호텔이 하나 있겠네."

경찰서 밖에 나와 대화를 하는 경찰관에게 호텔의 위치를 한 번 더 정확하게 확인하고 호텔을 찾아 이동한다. 단순한 자민우드의 길을 따라가는데 호텔의 모습과 길이 잘 보이질 않는다. 모래가 잔뜩 쌓여있는 흙길의 골목을 갸우뚱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니 내가 찾던 호텔이 나온다.

모래가 쌓여있는 골목길과 허름한 집들 사이에 위치해 있는 호텔의 정문은 두꺼워 보이는 철문이 닫혀있다.

"열려 있는 거야?"

문을 열고 들어가니 외관과는 달리 깨끗한 실내에 프런트가 보인다. 투숙이 가능한지를 묻고 와이파이가 되는지를 물으니 방들의 가격표가 적힌 종이 노트를 보여준다. 120,000투그릭, 100,000투그릭, 60,000투그릭.

"알았어. 환전은 어디서 해?"

중국 돈을 보여주며 환전을 하는 제스처를 해도 전혀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야, 이거 몽골 큰일 났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도 없고 60,000투그릭이 적힌 노트만을 자꾸 보여준다.

"중국 돈밖에 없어. 중국 돈 받아?"

곁에서 이 관경을 지켜보던 젊은 여자가 노트에 '1위안=370투그릭'이라고 적어 보여준다. 핸드폰 환율기를 확인하니 1위안이 390투그릭 정도 하는 것 같다.

"이 누나, 여기서 달러 장사를 하려고 하네."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속아주는 게 편하다. 200위안을 주고 숙소비를 결제하고 잔돈을 받아든다.

자전거를 안에 들여놓을 수 없다 하여 호텔 정문의 난간에 묶어두고 프런트 직원과 짐을 나눠들고 4층으로 올라간다.

"정말 자전거 1층에 넣어두면 안 돼? 밖이 안전해?"

안전하다며 손가락으로 OK 모양을 만들며 싱겁게 웃는다.

숙소의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회화 어플을 뒤적거려 '환전은 어디서 해요?'를 찾아 보여줬더니 이번에는 잘 알아들었지만 몽골어로 설명을 해준다.

구글 지도를 보여주며 위치를 알려달라고 해도 지도앱으로 잘 찾지를 못하고 은행 표시가 되어있는 아이콘을 가리키니 그제서야 맞다고 한다. 은행은 숙소의 골목을 나오면 바로 건너편에 있다.

중국의 남은 위안화를 투그릭으로 환전하기 위해 은행에 들렀지만 ATM 기기가 있는 창구만이 열려있고 은행의 사무실은 닫혀있다. 경비원으로 보이는 아저씨에게 환전하는 곳을 물으니 위쪽으로 돌아가라는 제스처를 한다.

작은 은행 건물을 한 바퀴 돌았지만 출입구는 없고 점심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이상하다 생각하며 다른 은행들이 있던 자민우드 기차역으로 나간다.

넓은 광장에 작은 간이역처럼 오래된 자민우드의 기차역.

기차역 앞에 ATM 기기에도 사람들이 붐비고 한가한 역전의 광장을 보며 그제서야 오늘이 일요일임을 깨달았다. 여행을 하다 보니 요일의 개념이 완전히 사라진다.

어쨌든 숙소의 결제를 위안화로 해두어 특별하게 큰돈이 필요하지 않아 급할 것은 없다. 자민우드의 역사를 돌아 기차는 타는 곳을 구경한다.

겨우 10km 정도를 넘어왔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느낌의 건물들과 분위기가 느껴진다.

"마트인가?"

사람들의 출입이 빈번한 가게의 두꺼운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 본다.

"슈퍼네!"

웬만해서는 문을 닫지 않는, 문이 없다는 표현이 맞는 중국과 달리 이곳의 모든 상점은 두꺼운 문들이 굳게 닫혀있다. 한자로 된 중국 상점들의 간판을 읽지 않아도 무엇을 하는 집인지 바로 알 수 있지만 내부가 보이지 않는 이곳은 도무지 어떤 가게인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양의 슈퍼마켓이다. 중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냉장 시설을 갖춘 슈퍼마켓이 여간 어색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제품이 엄청 많구나. 내일 캠핑을 할 장을 봐야겠다."

슈퍼를 잠시 둘러보고 몽골의 통신회사인 유니텔, G모바일, 스카이텔의 스티커가 붙어있는 가게로 들어간다. 편의점 같은 작은 가게인데 핸드폰의 소모품들도 함께 팔고 있다.

핸드폰을 가리키며 유심카드를 말하자 바로 알아듣고 모빌콤과 유니텔의 유심을 보여준다.

"모빌콤 20,000투그릭 5G, 유니텔 10,000투그릭 데이터 메이요!"

"데이터가 없어?"

툴가의 가족에서 몽골에서 네트워크가 좋은 통신회사를 물었을 때 유니텔이 시골에서도 잘 터진다고 알려주어 유니텔의 유심을 사서 쓸려고 했었는데 데이터가 없다고 한다.

"데이터가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이지?"

"아 몰라. 망해도 5,000원이야. 유니텔로 줘."

숙소비를 결제하고 남은 잔돈으로 10,000투그릭을 주며 핸드폰 번호가 부여되어 있는 유니텔 유심을 구매한다.

중국 여행 기간 동안 수고한 차이나유니콤의 유심을 제거하고.

몽골의 유니텔 유심으로 교체한 후.

핸드폰을 재부팅하고 PIN번호를 입력하라는 메시지 창에 유심카드에 적힌 핀 번호를 입력한다.

"이건 뭐라지?"

핸드폰에 데이터 네트워크가 잡히질 않는다.

"APN 설정 같은 것이 또 있는가? 일단 툴가에게 전화를 해서 번호도 알려주고 물어보자."

75일 만에 생긴 핸드폰 번호로 툴가에게 전화를 걸어 전화 번호를 알려주고 데이터 없이 통화만 되는 유심카드가 있는지 물오본다. 유심 연결과 함께 날아든 통신회사의 메시지를 보여주며 무슨 내용인지를 파악해도 데이터 연결은 되지 않는다.

문자로 툴가와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데이터가 안되다 보니 그림 파일 전송이 되질 않는다.

"형, 따로 4G 사요."

툴가에게 위챗을 쓰는지 물었지만 위챗은 쓰지 않고 카톡이 있다고 한다. 툴가의 카톡을 등록하고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숙소로 돌아와 툴가에게 유심칩 카드를 보내준다.

"이건 통화만 되는 건가?"

"네 이것은 안돼요!"

"힝!"

"가게에 가서 데이터를 따로 구매할 수 있는지 물어보세요."

근처의 유니텔 통신사의 매장이 있는지 숙소의 여직원에게 물어봤지만 눈치가 전혀 없는 여직원은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할뿐더러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보느라 바쁘다.

"일단 다시 가게로 가보자."

갖고 있는 현금이 없어 은행의 ATM 서비스로 들어갔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붐빈다. 3개의 기기 중 양쪽의 기기는 사람들이 쓰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기기가 이상이 있는 모양이다.

가끔 카드를 잡아먹는 ATM 기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중국에서도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기를 기다렸다 사용했었다. 영어 서비스가 되는 ATM 기기에서 50,000투그릭을 찾아서 기차역의 편의점으로 다시 찾아간다.

기차역의 주차장은 오전에 비해 차량들이 많이 빠져나가 있고.

편의점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갑자기 붐빈다.

일단 펩시 콜라 하나를 사들고 결제하려니 가격을 말하려던 여주인은 나를 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계산기에 1,500을 눌러 보여준다.

몽골의 물가는 환율과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우리 물가의 0.45 정도의 수준이니 쉽게 절반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툴가에게 데이터를 구매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을 몽골어로 적어달라고 하니 영자로 몽골어를 적어 보내준다.

"몽골도 영자로 글자를 치니?"

"영자로도 쓸 수 있어요."

중국처럼 몽골도 발음들을 영자로 쳐서 메시지를 보내고 읽을 수 있는가 보다.

잠시 한가해진 틈을 타 툴가가 적어준 메시지를 아주머니에게 보여주니 핸드폰을 달라고 한다. 핸드폰을 주니 문자창을 열고 뭔가를 하려고 한다. 툴가에게 답장을 하려나 보다 생각하며 툴가의 전화번호를 눌러주니 귀찮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문자를 보낸 후 나에게 보여준다.

"이것은 내가 숙소에서 해봤던 것인데!"

몽골 유니텔의 유심의 사용 현황을 알아보는 방법인데 숙소에서 네이버를 검색해 설명대로 해서 데이터가 없는 유심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1423번에 문자 메시지 Help를 보내면 유니텔의 데이터 사용에 따른 가격표들이 나온다. 그리고 자신의 해당 상품을 적어 보내고 세 번째로 On 메시지를 보내면 현재 가입되어 있는 통신 상품의 현황이 보여준다.

"아, 이게 가격표였구나."

캠핑을 하며 데이터 테더링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용량이 많으면 좋을 것 같아 30일 50G의 상품을 가리키며 50,000투그릭을 아주머니에게 준다.



핸드폰 번호를 물어 유심카드에 적힌 번호를 보여주니 작은 단말기에 뭔가를 열심히 입력하고, 핸드폰으로 1432로 문자들을 보내자 데이터가 연결되었다는 문자가 날아든다.

"몽골은 이렇게 유심을 충전해서 사용하는구나."

그냥 우리의 교통카드 충전하듯이 통신사 데이터를 충전할 수 있는 가게에 들어가 요금만 지불하면 충전이 된다.

"됐다. 숙소도 잡았고, 돈도 찾아봤고, 핸드폰도 연결을 해놨으니 이제 밥이나 먹자."

숙소 앞 ATM 서비스로 다시 돌아가서 당분간 사용할 현금을 다시 찾았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ATM 서비스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들어온다.

영어 서비스로 차분하게 기기의 안내를 살펴 가며 10만원 정도의 현금을 찾는다.

우리처럼 카드가 먼저 나오고.

5,000투그릭 지폐의 돈이 나오는데 돈다발이 나온다. 마치 10만원을 5천원권으로 찾는 기분이다.

"왠지 낯설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군!"

숙소로 돌아오는 골목 단층의 흙집들과 모래 바닥 그리고 매운 컵라면 쓰레기까지.

호텔의 1층에 위치한 식당으로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간다.

깨끗한 실내가 마음에 들고 짧은 영어가 되는 발랄하고 귀여운 몽골 여자아이가 주문을 받는다.

"What do you recommend here?"

영어를 받아 몽골어로 번역하던 여자는 아시안 수프와 파인애플 치킨 그리고 스팀 비프를 생글생글 웃으며 추천해 주었다. 생기가 있고 좋은 기운을 갖은 사람이다.

양이 얼마만큼인지를 몰라 세 가지를 모두 달라고 한다.

"Three meals?"

"Is it a lot of food to eat alone?"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시안 수프와 파인애플 치킨을 추천한다.

"그래, 그렇게 줘!"

커피를 마실 건지를 묻더니 밀크 커피 한 잔을 내어주고 뭐가 좋은지 깔깔거리며 웃는다.

잠시 후 음식들이 하나씩 테이블 위에 올려지고.

에피타이저의 수프가 나올 줄 알았는데 커다란 닭고기 국이 나왔다. 제법 맛이 나는 국물인데 찰진 흰밥이 먹고 싶어진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국물 요리네."

곧이어 잘 구워진 파인애플과 치킨이 올려진 메인 메뉴가 나오고 입맛이 군침으로 요동을 친다. 샐러드와 감자, 잘 구어진 치킨과 맛있는 소스를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먹고 있으니 마치 중국을 떠나온 지 몇십 년이 지난듯한 느낌이다.

닭고기 국물까지 깔끔하게 비워주고 식사를 마친다.

계산을 하려니 여자아이가 잘 안되는 영어 발음으로 가격을 알려주려고 한다.

"그냥 숫자를 적어줘."

워낙 금액들의 숫자가 크다 보니 이상한 느낌이 들지만 쉽게 나누기 2를 해서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고마워."

한국말로 인사를 하는 아이에게 '고마워'의 발음을 알려주고 웃으면서 식당을 나온다. 언어에 대한 감각과 재미를 알고 있는 여자 아이다.

몽골의 콘센트는 중국과 다르지 않다. 220V 전압을 사용하고 둥근 모양과 일자 모양 그리고 삼지창 모양의 콘센트를 사용한다.

나무로 된 방문은 열쇠를 사용해서 잠그고.

중국의 비와 흙먼지들 때문에 여러 차례 고생을 하고 패니어에서 고이 잠자고 있던 U락을 꺼내어 자전거를 한 번 더 묶어둔다. 전기 오토바이를 타는 중국에서는 자전거 분실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몽골의 분위기는 잘 모르니 일단 안전하게 잠가둔다.

숙소에 쉬면서 자료들을 정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와이파이가 너무 약해 사진을 업로드 시키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복도의 마지막 방이라 와이파이가 잘 잡히질 않는다.

"이것까지는 올리고 자야 해. 내일부터 초원에서 사진을 업로드하는 것이 쉽지가 않아."

천천히 어둠이 내려앉고 높은 건물이 하나도 없는 자민우드의 석양을 보고 있으니 시간의 흐름이 여유롭다 느껴진다.

4, 5분이면 될 사진의 업로드 시간이 6시간이 넘게 걸렸다. 12시가 넘어서야 업로드가 끝나고 하루를 정리한다.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첫날부터 뜻하지 않은 좋은 친구를 만나 편안하게 국경을 넘고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다. 낯선 여행길에서 크던 작던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고마운 일이다.

"땡큐, 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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