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55일 / 맑음 ・ 24도
에르덴부릉-보라트
만년설이 쌓여있는 2,600미터의 산을 넘어 울기로 향한다. 수직고도 1,300미터를 올라가야 하는 험난한 길이다.


이동거리
77Km
누적거리
10,716Km
이동시간
8시간 55분
누적시간
772시간

AH3
AH3
59Km / 7시간 00분
18Km / 1시간 55분
에르보
정상
보라트
 
 
2,534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새벽까지 거센 바람은 계속되었다.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짐들을 정리하고 9시가 되자 거짓말처럼 바람이 사라진다.

식당에서 어제와 같은 식사를 하는 동안 옆 테이블 앉아있던 일본인 노신사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식당으로 들어온 중국인은 내게 중국 사람인지를 물어본다.

"암 코리안. 서롱고스. 한궈렌"

동시에 세 국가의 말로 답변을 한다. 멀리 만년설이 쌓여있은 관광지가 있어 투어링을 하는 외국인들이 있나 보다.

만년설이 쌓여있는 2,600미터의 Tsast Ula을 넘어 120km 떨어진 톨보까지 가야 한다.

그동안 2,500미터가 넘는 많은 산들을 넘었지만 오늘은 1,200미터의 높이를 한꺼번에 넘어가야 한다.

"꽤 힘들 거야. 그래도 만년설의 산이 궁금하네. 출발!"

멀리 만년설이 쌓인 산의 정상이 보이고 길은 산을 향해 이어진다. 적당히 좋은 날씨와 바람이다.

도로변에 물을 뿌리는 살수차의 작업자가 코리아를 외치며 손인사를 해준다. 중국도, 몽골도 사막화에 대한 걱정들이 있고, 방지 노력들이 눈물겹다.

특히나 몽골은 주변국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몽골의 정치 시스템은 아직까지 많이 후져 보인다.

도로변에 잠시 쉬며 주변의 둘러보며 생각에 잠겨있을 때 노란색의 오토바이가 정차를 하고 말을 건넨다.

혼다의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하는 일본인은 일본 특유의 억양으로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며 말을 한다.

울기를 지나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으로 간다는 아저씨는 유쾌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다.

쓰고이, 간바떼, 아리가또 등의 감탄사와 응원의 말들을 연신 말하고는 구뜨럭을 외치며 손을 흔들고 사라진다.

"아리가또, 오지산!"

조금씩 경사를 더해가며 산으로 들어간다.

산에서 흘러오는 계곡물에 세수와 양치를 하고.

빈 생수통에 씻는 용도로 사용할 물을 담는다.

서서히 오르막의 길들이 이어진다.

도로변에 허름한 음식점이 보였지만 패쓰하고 얼룩덜룩한 검은 무늬의 산들을 따라 천천히 페달을 밟아간다.

조금씩 더워지는 기온은 건조한 숨막힘으로, 그리고 강한 햇볕은 옷을 뚫고 따갑게 파고든다.

조금씩 페달링이 느려져 갈 때쯤 지겹도록 휘어지는 도로의 끝에 짚차 한 대가 정차되어 있고,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뙤약볕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듯 내 쪽을 응시하고 있다.

"차가 고장 났나?"

부부로 보이는 남녀와 중고생 또래의 두 여자아이 그리고 4~5살 정도 되는 남자아이의 조그만 손에는 작은 콜라와 생수를 들려있다.

잠시 자전거를 세우라는 손짓을 하더니 남자아이가 생수와 콜라를 수줍게 건네준다.

"오, 바에르사!"

한국의 노래와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여자아이는 한국에 꼭 가고 싶다며 영어로 말을 하고, 몽골의 자연이 어떠냐며 물어본다.

"하늘, 산, 구름, 별. 몽골의 자연은 너무나 아름답고 경이로워. 그리고 너도 꼭 한국에 가보기를 바란다."

사진을 찍고 출발하려던 남자는 차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더니 건네주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떠나간다.

열심히 손을 흔들며 밝게 웃는 여자아이들, 여유가 있고 즐거운 가족의 분위기다.

일본인 아저씨와 몽골 가족의 연이은 만남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조금 더 길을 달린 후 도로변에서 점심을 한다.

시원한 생수와 콜라 그리고 헙드를 떠날 때 유나 선생님이 챙겨준 주먹밥.

하루가 지났지만 꽤 맛있는 점심이다. 점심을 먹는 도중 오토바이가 멈춰 서더니 두 명의 젊은 남자가 다가와 옆에 앉는다.

"얘들아, 밥 먹을 때는 좀 지나가주면 안 될까?"

몽골어로 무언가를 묻더니 모기퇴치제를 달라는 제스처를 한다.

"안 돼. 한 번은 뿌려줄 수 있어."

밥 먹는 것을 민망하게 지켜보더니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진다.

작은 식당이 있는 곳을 지나고 크게 우회전을 하던 도로는 본격적을 산을 향해 올라간다.

"근데, 저 앞에 보이는 불안한 느낌의 흙먼지는 뭐지?"

멀리 오르막의 끝에서 차량들이 흙먼지를 날리며 제멋대로 산길을 내려오는 것이다. 현재의 고도는 1,900미터, 앞으로 700미터나 더 올라가야 한다.

"설마 잠깐 공사 중인 것이겠지? 설마!"

차량들이 도로를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내려오는 모습들을 주시하며 쉬는 동안 말을 타고 한 젊은 남자가 다가온다.

"말 걸기 전에 빨리 가야지."

아니나 다를까 말을 탄 목동이 출발을 하려는 나를 불러 세우더니 리어 패니어에 꼽혀있던 콜라를 가리키며 달라고 한다.

"뭐?"

이번에는 콜라를 마시는 시늉과 함께 꼴깍 꼴깍 소리까지 내가며 달라고 한다.

"이 염치도 없는 놈. 편하게 말을 타고 다니면서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의 음료를 뺏어 먹고 싶냐."

단호하게 거절을 하고 자전거를 출발시키니 굵은 목소리를 내며 한 번 더 나를 부른다.

"됐어. 눈치까지 없는 놈."

몽골어가 된다면 아마도 '그 말을 주면 콜라를 줄게'라고 했을 것 같다.

역시나 도로는 막혀있고 양옆으로 차들이 만들어 놓은 흙길이 어지럽게 나있다.

"제발 짧게 끝내자."

바람과는 달리 산의 정상으로 가는 길은 끝없이 공사 중이고, 어지럽게 그려진 흙길을 골라가며 힘들게 페달을 밟는다.

"몽골아, 너에는 왜 꼭 산의 꼭대기에서만 이런다니."

거센 흙먼지를 날리며 화물차와 버스들이 지나다니고, 흙먼지를 피해 차들이 다니지 않는 길을 따라가면 호기심이 많은 운전자들이 나를 따라 오가며 흙먼지를 날려댄다.

"아오, 길도 많은데 꼭 옆으로 와서 먼지를 날린다니. 자전거에 짐 싣고 쓸데없이 산에 올라가는 사람 처음 봐?"

산을 향해 경사가 더 해지는 길도 끝이 없다. 그리고 산을 오를수록 거센 바람이 불어온다.

"이런 길로 600미터 이상을 더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지?"

늘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는 것인지 흙길의 바닥면이 반들반들 깨끗하다.

3km의 거리를 이동하고 쉬어가기를 반복하고, 자전거를 타고 끌기를 반복한다.

"야기, 울기까지 거의 아스팔트라며."

몽골 사람들의 '거의'는 대체 어느 정도를 표현하는 단어일까.

"교장 선생님이면 뭐해. 결국 야기도 몽골 사람이었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거리를 부질없는 핸드폰만 쳐다보며 자전거를 끌고, 끌며 기어간다.

산의 정상에 올라온 듯 평탄한 지형이 나오고 멀리 크림 토핑을 올려놓은 것 같은 산의 꼭대기 만이 살짝 시야에 들어온다.

"에씨, 멋진 장관도 없고. 근데 왜 아직 300미터가 남은 거야?"

짧은 내리막길 너머로 다른 봉우리를 향해 크게 좌회전을 하며 길이 사라진다.

"저기가 끝인 모양인데, 이제 골반까지 뒤틀린 듯 아프다."

"고작 이 정도야? 만년설의 장관은 어딨어?"

언제 패니어에 들어갔는지 모를 사탕을 꺼내 먹고.

"에씨, 발!"

산의 정상을 향해 부지런히 자전거를 끌러 보지만.

2미터, 3미터를 이동하기가 힘들다.

겨우 오르고 올라 도착한 정상에는 휑하니 아무것도 없고.

심지어 어붜조차도 없다.

멀리 반대편에서 화물차들만이 뿌연 먼지를 휘날리며 느리게 느리게 기어 올라온다.

"몇 미터야? 2,516미터? 100미터는 어디 갔어?"

"분명 여기가 정상인데!"

사라진 100미터로 인해 뭔가 불안한 예감이 든다.

흙먼지를 온몸에 뒤집어쓰며 요란스러운 내리막을 내려가고, 땅이 평평해질 때쯤 자리에 서서 고도를 확인한다.

"족히 4시간을 기어올라 온 것 같은데 겨우 100미터 내려오고 끝난 거야?"

계속되던 흙길은 끝내 자갈밭으로 변하여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어 버리고.

헛된 바람에 대한 포기와 체념의 득도를 깨우칠 때쯤 몽골 사람의 '거의'라는 표현에 부합되는 '잠시'의 도로 공사 구간이 끝난다.

"도로에 흙이 쌓여있는 곳에서 잠깐만 돌아가면 거의 아스팔트야. 울기까지 길 좋아!"

울기까지의 도로 상황을 물었을 때 야기는 새로 생긴 도로에 대한 자부심을 표하듯 밝게 웃으며 말했었다.

"야기, 고마워. 오늘 거의 죽을뻔했어."

하지만 불안하다. 산을 내려온 150미터까지 해서, 사라진 250미터는 어디에 있을까 궁금하다.

"GPS가 장난으로 농담을 할 일도 없고."

해는 저물어 가고 톨보까지는 너무나 길이 멀다.

야영을 할 게르를 찾으며 도로를 따라간다.

하루 종일 산길을 오르고, 끌었던 골반과 종아리가 뻣뻣하게 굳으며 약간의 경련이 일어나고.

도로를 따라 멀리 만년설의 풍경이 펼쳐지지만 체력은 떨어지고 페달링은 한없이 무겁다.

그리고 어둠과 함께 사라졌던 250미터의 오르막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이런 거였어!"

더는 갈 수도 없고, 가고 싶지도 않다.

도로변 멀리 몇몇 채의 게르를 지나치고, 최대한 가까운 곳의 게르를 찾다가 핸드폰의 메시지 알람이 울리는 곳에서 자전거를 던지듯 눕혀버린다.

"못 가, 안 가!"

새로 생긴 도로는 초원과의 경계에 굵은 돌들을 깔아 하수로를 만들고 있다. 차들이나 오토바이가 들어갈 수 없게 흙을 파놓은 다른 곳과는 다르게 완전히 분리를 시켜 차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로변에 퍼질러 앉아 있으니 돌들을 깨서 모양을 잡고 하수로를 만들던 세 명의 남자가 작업이 끝난 듯 내 쪽으로 다가온다.

꼼작도 할 수 없고, 산에서 먹은 콜라와 단 사탕 때문인지 내장까지 저려온다.

"게르 옆에 텐트 좀 치고.."

번역기를 보여주기도 전에 게르를 가리키며 가자고 한다.

깊은 높이의 돌로 만든 하수로는 아니지만 패니어들을 떼고 옮기는 것이 끔찍하다.

재차 게르를 가리키는 남자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는 제스처를 하며 뜻을 알아들었다는 '오케이'만을 반복한다.

노란 렉팩을 떼어내고 돗자리와 수면매트를 떼어내고 있으니, 안 되겠다는 듯 두 명의 남자가 하수로를 건너오더니 패니어를 단 자전거를 번쩍 들고 건너편으로 옮겨버린다.

"햐. 땡큐! 바에르사!"

게르 옆에 텐트를 치겠다고 말했지만 게르 안으로 들어와라고 한다. 게르에는 중년의 부부와 20대 초중반의 남매 그리고 비슷한 또래의 남자가 있다.

게르를 둘러보며 앉아있으니 여자아이가 '워시 페이스'라며 영어를 한다. 주전자로 따듯한 물을 부어주어 간단하게 세안을 하고.

저녁으로 고릴테슐을 내어주어 허기를 채우며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네트워크가 잡히질 않아 번역기를 사용할 수 없었지만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조금의 영어를 할 수 있어 소통은 할 수 있다.

만년설의 산들에 둘러싸인 보라트에서 도로의 하수로 작업을 하고 있는 디리우칸과 아이마랄 남매의 게르이다.

남매의 엄마는 머리에 두건 같은 것을 착용하고 있고, 아빠는 40대 중반처럼 보인다. 디리우칸은 착하게 잘 생겼고, 아이마랄은 상냥하고 잘 웃는다. 카자크 사람처럼 보이는 외모인데 아마도 방학이라 부모님의 게르에 와있는 모양이다.

잠시 게르 주변의 남자들이 큰 맥주를 들고 와 이야기를 하며 가끔씩 맥주를 따라주고 이야기를 나눈 후 돌아간다.

자전거를 게르 안쪽으로 집어넣고, 침낭을 꺼내어 게르에서 잠이 든다.

"야기, 야기..."



Trak 정보

GPS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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