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41일 / 맑음
벨기에 콕세이더-프랑스 뒹케르크-영국 도버
유럽 쉥겐기간의 압박과 피로감을 피해 잠시 영국을 여행할 생각이다. 프랑스의 뒹케르크에서 페리를 타고 영국의 도버로 간다.


이동거리
102Km
누적거리
21,558Km
이동시간
8시간 13분
누적시간
1,603시간

 
프랑스국경
 
페리
 
 
 
 
 
 
 
38Km / 4시간13분
 
64Km / 4시간 00분
 
콕세이더
 
뒹케르크
 
도버
 
 
102Km
 
 

・국가정보 
영국, 런던
・여행경보 
-
・언어/통화 
영어, 파운드(1파운드=1,550원)
・예방접종 
-
・유심칩 
쓰리심
・전력전압 
◦2구220
・비자정보 
무사증18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44-78-7650-6895

 

따듯한 아침, 따듯한 침낭 속이 너무나 좋다. 사납게 불어오던 어제의 바람은 사라지고 고요한 파도 소리만이 들려온다.

"매일 이런 아침이라면 좋을 텐데."

누이에게 문제들을 해결할 도움들을 부탁하고 짐들을 정리한다.

프랑스 국경을 살짝 넘어 됭케르크에서 페리를 타고 영국의 도버로 갈 것이다. 됭케르크 항구까지 30km 정도의 거리, 시간의 여유가 있어 게으름을 피운다.

구글맵으로 경로를 검색하니 해안가의 모래사장으로 경로가 잡힌다.

"해안가에 자전거 도로가 있나?"

모래바닥의 산책로로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니 해안가를 따라 자전거 도로가 보인다.

"정말 넓네!"

바다의 백사장과 해안의 산책로에는 아침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걷고 싶은 풍경이네."

벤치에 앉아 연한 파스텔톤의 바다를 바라보며, 어지러웠던 며칠간의 마음을 달래 본다.

"여행을 떠나려 했던 지난 마음들과 발걸음이 고맙다."

 

"그럼, 프랑스와 영국으로 가 볼까!"

해안의 언덕으로 이어지던 도로가 사라져 자전거를 끌고 모래사장으로 내려간다. 해안가 쪽의 땅바닥은 조금 딱딱한 편이지만 패니어를 단 자전거의 무게로는 자전거를 타고 갈 수가 없다.

해안가를 걷는 사람들과 함께 엠티비를 타고 바닷가 근처를 질주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바다 위를 달리는 기분이겠네."

모래사장을 벗어나기 위해 구글맵이 가리키는 산책로로 빠져나가야 하지만 부드러운 모래가 두껍게 쌓여있어 산책로로 빠져나가는 것도 힘이 든다.

"구글맵을 믿은 내가 바보지."

해안가의 산책로를 벗어나면 이내 도로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길은 푹신푹신 모래가 덮인 오솔길로 이어진다.

몇 걸음을 옮기고 쉬기를 반복하지만 지도로 보이는 산책로의 거리가 끔찍할 만큼 길다.

"설마, 계속 이런 길?"

설마 그런 길은 계속되고,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 뜨겁게 열기가 올라오는 몸과 가쁜 숨소리 그리고 힘이 빠지며 갈지자로 풀려가는 다리, 3km 정도의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한 시간이 넘도록 모래밭 끌바를 하고 있다.

"구글, 너 죽어!"

한 시간 만에 하루의 기운이 모두 소진된 느낌이다. 산책길의 입구까지 계속되던 스펀지처럼 푹신한 길이 끝을 보인다.

 

자전거를 끌고 왔던 산책로는 벨기에와 프랑스의 국경 라인이다. 과거의 국경 검문였을 건물은 작은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아침부터 생고생이네."

14번째 나라 프랑스에 들어선다. 거리의 이정표와 상점들의 간판들도 국경을 지나며 프랑스어로 모두 바뀐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바나나로 허기를 채운다. 프랑스의 자전거 도로는 벨기에 보다 좋지 않고, 이마저도 가끔씩 사라진다.

차도를 따라 조심스럽게 길을 이어가던 중 작은 마을 사거리의 정지 신호등에 속도를 줄인다. 정차된 차량의 옆으로 동양인 외모의 여자가 미소를 지으며 종종걸음으로 다가온다.

"한국분이세요? 저는 프랑스의 한국인이에요."

서툰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한 여자는 2km 정도의 거리에 살고 있다며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며 집으로 초대를 한다.

웃는 얼굴을 갖은 사람, 핀란드에서 만난 아희처럼 미소가 예쁜 사람이다.

알려준 주소로 찾아가니 여자와 그녀의 동생이 도로변에서 기다리고 있다. 도로에서 가까운 집으로 걸어가니 그녀의 어머니는 전기밥솥을 들고 짧은 한국어로 밝은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밥 먹어!"

유쾌하고 편안한 제스처가 따듯한 느낌이다. 그녀의 할아버지와 인사를 하고 차고에 자전거를 넣어둔다.

얼굴이 고운 할머니, 사촌 남자와 인사를 하고 여행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부드러운 발음의 프랑스어가 가족들 사이로 오간다.

"왜 여행을 해요?"

"프랑스에 에펠탑이 정말 있는지 보려고 왔어요."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만나게 된 레오니의 가족이다. 건축을 공부하는 레오니는 교환학생으로 서울대에서 공부를 하고, 한국어를 배운 지 3년이 되었다고 한다.

여행을 하며 바라보고 있는 것들 중에 하나는 집과 건물 그리고 공간의 구조들이고, 한국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공부하고 싶은 것이 도시재생이나 공동체의 구성 같은 것이다.

레오니의 가족과 함께 할머니께서 준비하신 식사를 한다.

"오, 프랑스 가정식!"

접시들과 나이프, 포크들이 놓여있고 빵과 음식들이 식탁 위에 올려진다.

"어떻게 먹는 거지?"

"한국은 한꺼번에 먹는데, 여기는 야채를 먼저 먹어요."

첫 번째 접시에 당근채을 담아 먹는다. 당근만 따로 먹는다는 것이 재미있다. 러시아 사람들이 샐러드를 먼저 먹는 것처럼 식욕을 북돋아주고 속을 편안하게 해 준다.

할머니께서 요리한 고기를 접시에 담아준다.

"오, 고기!"

"불고기, 한국의 불기기야!"

빵과 고기, 감자, 콩 그리고 치즈가 접시 위에 담긴다.

레오니의 통역으로 가족들과 대화를 하며 즐거운 식사를 한다.

"고기. 프랑스 식단이 좋아!"

할아버지 부부, 어머니, 레오니의 자매를 만난 것은 커다란 행운 같다. 따듯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내 안으로 스며드는 느낌이다.

"레오니 가족을 만나려고, 모래밭에서 고생을 했나 보다."

가족들은 사촌의 생일 파티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고, 여러 가지 선물을 전해준다.

"저녁에 밥 먹어!"

어머니께서는 저녁에 먹으라며 밥과 김치 그리고 조각김을 담아준다.

"피에로예요."

레오니 자매는 피에로의 인형과 과자를 건네주고, 할머니께서는 여행을 잘 하라며 프랑스의 비쥬를 해주며 프랑스어를 가르쳐준다.

"Merci!"

"메시!"

가족들의 환대에 감사의 인사를 하고 즐겁게 사진을 찍는다.

"레오니, 이름이 어려워. 안나는 쉬운데."

"레오니는 사자야. 라이언! 레오니가 케냐에서 태어나서."

"아, 쉽네. 레오니!"

La vie est le meme que le choix entre la naissance et la mort.

"삶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선택의 과정이다."

레오니에게 명함을 한 장 더 건네주고, 명함의 뒷 면에 적어놓은 샤르트르의 말을 알려준다.

"실은, 프랑스에 쟝 폴 샤르트르를 만나러 왔어!"

구글맵에 저장된 파리에 있는 샤르트르의 묘역을 가리키며 프랑스에 여행을 온 이유를 알려준다.

"샤르트르와 보브아르를 정말 좋아합니다."

차를 타고 떠나는 가족들과 손인사를 하고, 출발을 하려던 안나가 다시 달려와 작은 천고리를 건네준다.

"물고기예요."

"고마워. 패니어에 달아야겠다."

할 수 있다면 레오니 가족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쉥겐 기간이 너무 남아있질 않다. 아쉽다.

"또 만날 날이 있겠지."

1시 반, 아쉬운 발걸음으로 됭케르크로 향한다.

그동안 어지러웠던 마음이 레오니 가족들의 미소와 함께 사그라든다.

"정말 행운이었어!"

벨기에의 자전거 도로보다 더 나쁜 자전거 도로지만 집과 거리의 풍경은 벨기에보다 매력적이다.

"만약, 십 년 전 프랑스에 왔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2009년 5월, 허망하게 바라봐야 했던 뉴스 속보의 충격과 슬픔은 지루했던 삶의 방향성을 바꿔놓았다. 사표를 내던지고 오랜 시간 동안 바라 왔던 프랑스로 떠나고 싶었었다.

"글쎄, 그때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지금처럼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내 안의 바람들을 미루었던 시간의 주저함은 예상하지 못한 뼈아픈 시간의 늪으로 끌어당겼다. 10년, 고통스러웠던 그 시간은 아이러니하지만 현재의 나를 이곳으로 올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때처럼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도, 갈증도 사라지고 잃어버렸지만 상관이 없다.

"달라졌을까?"

삶이 달라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런 의미 없는 가정일 뿐이다.

"대신 너와의 시간이 없었겠지."

"웃는 얼굴, 그 웃음을 마주했음에 후회는 없다."

됭케르크의 외곽에 있는 항구에 도착한다.

익숙한 시스템이라 쉽게 길을 찾아가고.

첫 번째 게이트에서 페리의 승선권을 구매하고, 두 번째 게이트에서 출국 스탬프를 받는다.

특별한 질문이나 절차는 없었고, 여권을 건네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의 서툰 한국어를 하면서 유쾌하게 스템프를 찍어준다.

게이트가 다시 나온다.

"영국 보더 게이트네."

영국을 무사증으로 입국하기 위해서는 호텔의 바우처나 은행 잔고 확인서 등이 필요하지만 준비를 하지 않고 그냥 왔다.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는 심사관은 여행에 대해서 물어본다.

"조금만 천천히 말해주세요."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 거야?"

"글쎄요. 1년 후에 자전거 타고 돌아갈 거예요."

"뭐?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자전거 타고 왔어요?"

"뭐? 비행기 안 타고?"

"네. 1년 동안 자전거 타고 왔어요."

"왜? 너 미쳤어?"

"그냥 세상이 보고 싶었어요."

심사관은 가족과 직업, 돈이 있는지 물어본다. 가족과 직업은 없고 돈은 충분히 있다고 말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어디서 머무를 건데?"

"런던에 가서 호스텔에서 머무를 거예요."

"오늘은?"

"도버요."

"넌 미친 것 같아. 영국에서 6개월 동안만 머무를 수 있어. 좋은 여행 해!"

"안 미쳤다니까! 땡큐!"

넓은 승선장에는 대기줄 별로 많은 차량들이 정차하고 있다.

"두 시간이나 남았네."

2시간 텀으로 운영되는 됭케르크-도버 간의 여객선은 도버까지 2시간이 소요되지만 프랑스와 시차가 1시간이 나기 때문에 6시에 출발하는 페리는 7시에 도버에 도착한다.

다행히 여객선의 터미널이 있어서 실내로 들어가 몸을 녹일 수 있다.

"네 자리는 여기."

안나가 준 천고리를 패니어에 달고, 대기줄에 서 있으니 젊은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도요타 짚으로 몽골까지 여행을 했다는 남자와 짧은 대화를 하는 사이 안내 직원이 다가와 표를 확인하고 앞으로 가라고 안내한다.

승선을 위해 첫 번째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하선하는 차량들이 빠져나간 후 첫 번째로 승선을 한 후 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객실로 올라간다.

내부 객실은 카페와 오락실 등이 들어서 있다.

"아무데나 앉아도 돼요?"

카페의 테이블처럼 보이는 공간에 앉아도 되는지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딱히 지정좌석이나 룸이 없는 여객선이라 승객들의 휴식 장소가 카페의 공간인 모양이다.

바쁘게 오느라 메시지를 보내지 못한 레오니에게 감사의 메세지를 보낸다.

레오니가 준 피에로는 투병 중인 숙모 마리가 직접 만든 인형이라며 나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 그녀에게 큰 즐거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사연이 있는 있는 녀석이 나에게 왔네."

"피에로는 이탈리아 코메디아 델아트의 캐릭터이다. 그는 시인이고, 인위적이고 피상적인 관계와는 거리가 먼,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하는 몽상가이다."

"피에로와 함께 여행할게요. 피에로를 만든 마리의 정성처럼 그녀 건강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것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어요. 감사합니다."

웃는 얼굴의 우는 남자 피에로가 나에게 왔다.

"두 눈가에 핏물이 흘러와 웃음을 짓고 나 춤추네. 내 맘 안에 나도 몰래 새겼던 상처가 이렇게 번져가며 나 애타게 너를 찾는데."

웃는 얼굴의 우는 남자 피에로 그리고 웃는 얼굴의 레오니.

 

"피에로, 지금부터 나와 함께 여행하자."

8시, 배는 도버항에 가까이 다가선다.

"시간을 다시 맞춰야겠네."

페리가 항구로 들어서는 것을 기다리는 사이 한 남자가 테이블로 다가온다. 승선 전 주차장에서 만났던 남자다.

올리버는 런던에서 머무를 곳이 있는지 묻더니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한다. 올리버의 주소를 받고 왓츠앱을 연결한 후 런던에서 보자며 인사를 나눈다.

7시 반, 도버항에 입항한 페리의 하선을 기다리고 마지막으로 배에서 내린다.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레드라인으로 그려진 자전거 도로를 따라 항구를 벗어난다.

"왔다. 유나이티드 킹덤!"

어둠이 내려앉은 도버항의 풍경은 거대한 절벽이다.

"거대한 천혜의 요새 같네."

야영지로 생각했던 항구 주변의 절벽길은 난데없이 계단으로 이어진다.

"구글, 너 오늘 왜 이런다니?"

패니어를 분리하고 계단을 올랐지만 얼마 가지 않아 다시 계단이 이어진다.

계단을 포기하고 어두운 오솔길을 따라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고, 끝없는 언덕의 풀숲을 헤쳐가며 자전거를 끌고 오른다.

"길을 잃어버렸네."

아침 모래밭은 끌바로 시작하여 저녁 산속 풀숲의 끌바로 마무리한 하루다.

숨이 가슴까지 차오르고 산의 정상 부근에서 해안가로 가는 것을 포기한다.

"바람도 세차고, 더는 못 간다."

경사가 진 언덕 위에 텐트를 펼치는데 또다시 폴대가 부러진다. 지난번 부러진 폴대의 다른 편 폴대다.

"뭐, 이미 경험한 것들은 놀랍지도 않다."

임시조치의 방법을 터득한 터라 그냥 텐트를 치고, 레오니의 어머니가 싸준 밥으로 허기를 달랜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밥과 김치가 정말 맛있다.

반대편 산등성이에 도버성이 밝게 빛난다.

15번째 나라, 영국에 도착했다. 6개월의 체류기간이 있어 조금 천천히 이동하며 피로를 풀어갈 생각이다.

그동안 쉥겐 기간의 압박에 쫓기며 보냈던 피로가 조금이나마 풀렸으면 좋겠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340일 / 흐림
커호브-이에페르-콕세이더
카드복제로 인한 인출사고의 스트레스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잊어야 한다. 잊어야 해!"


이동거리
97Km
누적거리
21,456Km
이동시간
7시간 40분
누적시간
1,595시간

 
N8도로
 
N8도로
 
 
 
 
 
 
 
57Km / 4시간 20분
 
40Km / 3시간 20분
 
커호브
 
이에페르
 
콕세이더
 
 
253Km
 
 

・국가정보 
벨기에, 뷔르셀
・여행경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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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프랑스어, 유로(1파운드=1,2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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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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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675-5777

 

새벽, 평상시와 다른 한기가 느껴져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깬다.

"왜 이렇게 춥지?"

비에 젖었던 텐트가 낮아진 기온으로 모두 얼어있다.

카드가 복제되어 결제액 인출이 된 금액들을 확인하니 월터의 한 달치 급여 정도가 빠져나갔다.

"아, 빌어먹을 너무 많이 빠져나갔다."

스웨덴에서 잃어버린 핸드폰의 영향이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핸드폰 본인인증이 필요한 금융권의 결제 알람 서비스와 부정 사용이 의심되는 해외 결제를 알려주는 카드사의 카카오톡 알림을 받을 수 없으니 현금이 빠져나가는 것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빌어먹을 유럽!"

복제된 카드의 해외결제을 정지하고, 큰 의미는 없겠지만 부정사용 이의제기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이틀 동안 누나와 연락이 닿질 않는다.

"모든 것이 귀찮아 진다."

아침도 거르고 침낭 속에서 허망스러운 마음을 추스른다.

"갈 길도 먼데, 힘 빠지네."

억지스럽게 몸을 일으키고 짐들을 정리한다. 싸늘한 날씨에 얼어붙은 장비들을 정리하려니 손가락이 찢어질 듯이 시리다.

"아, 씨@#&₩#@₩₩_###@@!"

어젯밤 목초지로 들어오며 진흙밭에 빠진 앞바퀴에 진흙이 엉겨 붙어 엉망이고, 패니어에도 진흙들이 범벅이다.

얼어붙은 텐트와 엉망이 된 패니어들을 대충 자전거에 장착하고 출발을 한다.

에스꼬강을 따라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 20km 거리의 코르트레이크로 향한다.

"이럴 땐 고기가 필요해. 고기!"

화를 풀어줄 고기도 없다. 생각해 보면 러시아는 유럽에 비해 화려하지는 않을지 모르겠지만 여행을 하기에 정말 매력적인 나라인 것 같다.

"웃자. 웃어!"

"경험은 대머리가 된 다음에 선물로 받은 빗처럼 때늦은 선물이다." -벨기에 속담 중에서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몰두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다.

"저것들은 왜 항상 반대 방향이야. 쌍!"

됭케르크까지 120km 정도의 거리, 페달링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이런 날에 뒷바람이라도 불어주면 좋으련만 아침부터 차가운 바람이 가난해진 마음을 더 시리게 만든다.

아침을 거른 탓에 허기가 밀려오며 페달링이 힘들다. 바나나를 꺼내어 먹어봐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11시 반, 힘겨운 페달링으로 겨우 맥도널드에 도착하고 자동주문을 하려니 카드 결제만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 카드까지 복제되면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유럽에 들어와 두 장의 여행용 카드가 무용지물이 됐다. 남은 한 장의 카드와 비상용 카드만이 남아있어 한 장의 카드마저 정지를 시키면 더 여행을 할 수가 없다.

길거리에 설치된 ATM 기기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유럽의 관광도시에서 사용하는 카드들은 어디서 복제가 되는지 피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앞으로 은행에서 현금인출 외엔 카드는 절대 안 쓴다."

떨리는 손으로 카드결제를 하니 결제 용지와 함께 출력되어야 할 오더지가 출력이 되질 않는다.

"에잇, 신발 깔창!"

카운터로 가서 오더지가 안 나왔다고 말하니 주문기에 테이블 번호를 입력했으면 됐다며 테이블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정상적이지 않은 것들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다.

안경 렌즈에 스크래치가 났는지 시야가 흐렸는데, 확인해 보니 눈동자 위치의 부분에 스크래치가 나있다.

"아,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한 거야!"

카드가 없는 통장으로 모든 현금을 이체하려니 핸드폰 본인인증을 하라고 한다.

"아, 쌍!"

수로를 따라 길을 이어간다. 마르지 않은 신발 속의 양말이 쩍쩍 달라붙는 느낌이 싫다.

"잊자. 잊어!"

벤치에 앉아 마음을 다스린다.

"아무래도 정신 승리가 필요해.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멋진 풍경들을 보며 건강하게 다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운이야. 액땜이다 생각하자!"

뭔가 많이 부족하다.

"큰 출혈의 댓가로 모니카 벨루치나 샤를리즈 테론과 데이트를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제발!"

그리고.

"이 도둑놈들아! 너희들에게 피의 저주가 죽을 때까지.. 가난한 여행자의 한이 서린 저주다!"

 

수로의 길이 끝나고 작은 타운 메넨을 지나간다.

"오늘 됭케르크까지 갈 수는 없고, 어디까지 갈까?"

어제의 비로 인해 이동거리가 짧아지고, 힘이 들어가지 않던 오전의 페달링으로 120km를 오늘 이동하기는 불가능하다.

지도를 검색하고 프랑스 국경 근처의 해수욕장으로 목적지를 변경한다.

"그래도 100km네. 부지런히 가야겠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네."

오후 들어 하늘은 맑아지고, 비가 내리며 떨어졌던 기온도 다시 회복이 된다.

정신승리 후,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었지만 가끔씩 불편한 무언가가 머릿속을 한 번씩 뒤집어 놓고.

길은 계속해서 작은 마을들과 타운들을 지나친다.

"오늘따라 사람이 많이 그립네."

"그립다. 잠시 기댈 수 있는 어깨와 따듯한 체온이."

4시, 국경의 마을까지 30km가 남았다.

"일몰까지 길어야 한 시간 반인데, 빠듯하다."

어두워지기 전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속도를 내어보지만 이내 허기가 지며 지쳐가고, 하늘에서는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정말 싫다. 비.."

최대한 거리를 줄이기 위해 페달을 밟는 사이 왼쪽 하늘이 눈부시게 밝아진다.

"뭐냐! 여기는 비 오는데."

낮게 깔린 구름 밑으로 해가 떨어지며 지평선을 사이에 두고 일몰의 붉은빛이 물든다.

마지막 석양빛만이 남은 시각, 해변의 마을까지 5km 정도가 남았다.

작은 타운의 하늘에는 박쥐인지 철새인지 알 수 없는 새들이 요란하게 날아다닌다. 바닷속 작은 물고기 떼들의 움직임처럼 방향성 없이 이리저리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것이 철새들의 움직임은 아닌 것 같다.

라디오를 들으니 올해의 컬러가 클래식 블루라고 한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을 때 볼 수 있는 짙푸른 하늘빛이 클래식 블루이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 천천히 이동을 하던 중 목적지 마을을 5미터 정도 남기고 차량 한 대가 황급하게 옆으로 다가온다.

"뭐야?"

조수석에 앉은 남자가 손짓을 하며 뭔가를 말하려고 한다.

"뭐? 왜? 뭔대?"

건드리면 터져버릴 듯한 눈빛으로 차량을 확인하니 경찰차다.

"왜 그러세요?"

"자전거 라이트 없어?"

암스테르담에서는 라이트가 없으면 벌금을 문다는 월터의 설명이 떠오른다. 최대한 공손하고 어리숙하게 라이트가 없다고 대답하자 라이트가 없으면 도로에서 위험하다며 다그치듯 말을 한다.

"미안해요. 저기까지만 가면 돼."

"조심해서 가고, 좋은 여행 해."

경찰은 회전 신호등 건너는 것을 에스코트해주고 떠나간다.

"쉥겐 기간이 초과될 유럽에서 메뚜기를 할 때는 라이트하고 후미등을 챙겨야겠군."

도착한 해변 마을은 작지만 생각 외로 불빛이 화려하고 쇼핑몰과 레스토랑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넓고 긴 백사장이 있는 해변이라 아마도 여름철 휴양지가 아닌가 싶다.

백사장에도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이 놓인 모습이 신기하다. 슈퍼마켓에서 소시지를 사고 야영지를 찾아 해변을 따라간다.

너무나 깔끔하고 잘 정비된 해변이라 텐트를 칠 공간이 없고, 바닷바람이 거세어 해변에 텐트를 칠 수가 없다.

프랑스 국경 방향으로 이동을 하고, 마을의 외곽에서 텐트를 칠만한 장소를 겨우 찾았다.

너무 허기가 지고 진이 빠진 탓에 음식을 먹지 못하고, 침낭에 누워 몸의 컨디션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심신이 모두 지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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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339일 / 비
브뤼셀-커호브
뒤늦게 확인한 카드복제의 인출 문제로 맥이 빠지는 하루, 지겨운 겨울비가 내린다. 영국으로 가기 위해 프랑스의 됭케르크로 가야 한다.


이동거리
77Km
누적거리
21,359Km
이동시간
5시간 52분
누적시간
1,587시간

 
N9도로
 
N46도로
 
 
 
 
 
 
 
29Km / 2시간 00분
 
48Km / 3시간 52분
 
브뤼셀
 
알스트
 
커호브
 
 
156Km
 
 

・국가정보 
벨기에, 뷔르셀
・여행경보 
-
・언어/통화 
독일어/프랑스어, 유로(1파운드=1,250원)
・예방접종 
-
・유심칩 
보다폰
・전력전압 
◦2구220
・비자정보 
무사증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32-2-675-5777

 

저녁 일찍 잠들어 오랜만에 단잠에 빠져들었다.

"잠이 부족했던 건가?"

첫 번째 알람에 잠이 깨고 바로 식당으로 내려가 아침을 한다.

"비가 내리겠다."

암스테르담부터 며칠 동안 좋았던 날씨가 다시 흐리기 시작한다.

"비가 끝난 줄 알았더니."

싸늘한 아침,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씨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출발과 함께 레인 팬츠를 꺼내 입고 브뤼셀의 시내를 벗어난다. 복잡한 골목길의 구시가지를 벗어나자 도로는 심플해지고, 자전거 도로를 따라 쉽게 시 외곽으로 빠져나간다.

어젯밤 상담문의를 남겼던 은행으로부터 답변이 왔지만 카드사가 분사가 되어 카드사로 다시 문의를 하라는 답변이다.

하나카드의 어플을 설치하고 카드의 결제 내역을 확인하니 생각보다 많은 금액이 빠져나간 것 같다. 상담시간이 끝나 문의글을 남기고 됭케르크를 향해 출발한다.

"이미 벌어진 일, 고민해봐야 힘만 빠진다."

"겨울비는 정말 익숙해지지가 않네."

초여름의 비처럼 내리는 날씨에 천천히 젖어 들어 간다.

축축해지는 신발과 함께 손등이 시려온다.

다행히 네덜란드 국경의 자전거 도로보다 프랑스 방향의 자전거 도로는 상태가 괜찮은 편이다.

"오늘도 다 젖어버렸다."

영국의 더버로 향하는 길은 프랑스의 국경을 조금 넘어 됭케르크에서 페리를 타고 도버해협을 넘는 것이다.

도버해협을 넘는 페리는 됭케르크와 칼레 두 곳의 항구가 있는데, 서로 멀지 않은 거리지만 브뤼셀에서는 됭케르크가 조금 가깝다.

브뤼셀에서 됭케르크까지 200km 정도의 거리, 이틀 동안의 라이딩으로 도착하여 저녁에 출발하는 페리를 타고 도버해협을 건널 생각이다.

"내일까지 도착할 수 있으려나?"

됭케르크까지의 일정이 불확실하여 페리 예약은 하지 않고 항구에 도착해서 표를 구할 것이다.

오늘의 목적지로 생각했던 코르트레이크를 20km 정도 남기고 흐린 날씨의 어둠이 일찍 내려앉는다.

"오늘은 여기까지."

빗물에 젖어 첨벙거리는 신발 속의 발이 얼어붙은 느낌이다.

도로변 슈퍼마켓으로 들어가 저녁거리를 사고.

언 몸을 녹이며 주변의 야영지를 검색한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작은 에스꼬강이 있어 강변에 텐트를 치면 좋을 것 같다.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가다 수로와 같은 강변에는 텐트를 칠 공간이 없다.

주변의 목초지로 들어가려다 자전거와 신발이 진흙밭에 빠져 고생을 하고, 길을 돌아가 목초지에 텐트를 펼친다.

바로 침낭을 꺼내어 한기가 시작된 몸을 녹인다.

조용한 밤, 밝은 반달이 떠있다.

"내일은 맑았으면 좋겠다."

120km 정도가 남은 됭케르크까지 내일 도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카카오톡도, 카드복제의 문제도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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