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3일 / 맑음 ・ 4도
호르고
계속 이어지는 쌀쌀하고 차가운 날씨다. 돌아오지 않는 서동고의 가족으로 인해 하루를 더 호르고에 머문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9,530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667시간

사간느호수
가출
00Km / 00분
0Km / 00분
서동고집
화산
호텔
 
 
1,348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12시에 돌아온다는 서동고의 가족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타국의 이방인에게 집을 맡기고 소식조차 없는 몽골인들의 정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열쇠를 맡기고 갔는데, 돌아올때까지 못 가잖아!"

화로에 불을 피우기 위해 장작을 패고, 허리가 아파보이는 마뜨가를 위해 넉넉하게 장작을 마련해 놓는다. 가축의 똥들을 모아 연료로 사용하는 남부의 몽골과 달리 나무가 자라는 지역이라 장작을 쓰는데, 산의 한 면에만 자라는 나무들로 집집마다의 연료 수요가 되는지 궁금하다.

"하루 종일 뭘 하지?"

이틀째 보이질 않는 뱀바에게 연락을 해달라 선교사님에게 부탁을 하였으나 뱀바는 출산을 한 아내에게 가 있어 화산에 데려가줄 수 없다고 한다.

변변한 식사를 하지 못한 탓에 고기가 먹고 싶어져, 호텔들과 마트가 있는 거리로 나간다.

슈퍼와 레스토랑 그리고 호텔이 있는 건물의 슈퍼로 들어가니 제법 구색을 갖춘 슈퍼이다.

"믹스커피 빙고!"

슈퍼의 옆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전에 먹었던 양고기볶음 요리가 있는지 사진을 보여주며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5,000투그릭이라 알려주는 직원에게 식사를 달라고 요청하고, 한참을 기다려 나온 음식은 그 비주얼이 사뭇 다르다.

"뭐야. 밥에 케찹 찍어놓은 것만 같잖아!"

어쨌든 밥과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한 접시를 더 주문하여 깨끗하게 비워낸다.

밥을 먹고 호텔 건물 옆에 있는 작은 가게가 무엇인지 두리번거리며 쳐다보니 가게 안에 있는 젊은 여자가 나를 쳐다보며 손짓을 한다.

"얘네들은 눈만 마주치면 무조건 오라고 하네."

작은 가게는 의자나 액자 같은 생활 용품들을 파는 곳이다. 예쁘게 생긴 젊은 여자와 인사를 하고 번역기로 대화를 하려니 난감함이 밀려 든다. 구글 번역기에 몽골 자판을 설치하고 여자에게 건네준다.

"화산에 가고 싶다. 어떻게 가야 하니? 도와줘!"

이름을 물어보고 번역기로 화산에 가 보고 싶다 말하니 젊은 사람답게 스마트폰을 익숙하게 사용한다. 잠시 기다리라고 제스처를 한 안냐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한다.

"가이드가 올 거야!"

화산에 가겠다는 나를 데려다 줄 가이드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다. 잠시 후 오토바이를 몰고 키가 큰 젊은 남자가 들어와 영어로 인사를 한다. 세기는 안냐의 남편이라며 자신을 소개하고 사간느 호수에 자신의 리조트가 있다며 알려준다.

"그래! 사간느 호수에도 가 보고 싶은데. 내일 너의 리조트에 갈 수 있어?"

여름에 리조트를 운영하며 호숫가에서 생활한다는 세기와 함께 호르고 화산을 오르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간다. 고글과 카메라를 가져가기 위해 서동고의 집에 잠시 들리고.

"사비, 오늘 사간느 호수와 호르고 화산을 가자! 30,000투그릭 어때?"

"좋아! 그렇게 하자!"

호르고 화산에서 5km 떨어져 있다는 사간느 호수와 호르고 화산을 안내하는데 가이드 비용으로 30,000투그릭을 주기로 한다. 선글라스를 가지고 가야한다며 세기의 집에 잠시 들리고, 세기와 안냐의 어린 아이를 만난다. 

"너 정말 이쁘게 생겼구나!"

선글라스를 챙기고 집을 출발한 세기는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자며 주유소로 들어간다. 주유소에 도착하여 아무리 크락션을 울려도 나오지 않던 직원은 도로 건너편에서 천천히 걸어 나타난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몽골 사람들의 게으름이다.

10,000투그릭을 주유한 세기는 나에게 주유비를 내라고 말한다. 

"야! 기름은 네가 넣어야지! 그래, 못 갈 것 같던 화산에 가는데 형이 넣어줄게." 

울퉁불퉁한 흙길, 정확히 말하면 길이 아닌 산길과 초원의 길을 달려 호르고 화산을 지나친다. 호르고 마을에서 보이던 검고 둥글하게 생긴 산이 화산이다.

"사간느 호수에 먼저 가자!"

용암이 흐르며 만들어진 현무암 지대를 지나 큰 언덕을 오르니 얼음이 얼어있는 사간느 호수가 눈 앞에 펼쳐진다.

"웰컴투 마이 게스트하우스!" 

잔잔하게 바람이 불어오는 사간느 호수에는 사람들이 쌓아올린 검은 현무암의 돌탑들이 가득하고.

몽골에서 처음 보는 넓은 호수의 풍경은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기분이다.

"정말 오랜만에 물을 본다. 바다가 보고 싶다!"

여름 시즌에 관광객들이 많이 온다는 사간느 호수에는 음식점과 슈퍼 그리고 작은 리조트들이 들어서 있다.

"여름에 이곳에서 선텐도 하고, 수영도 하고, 낚시도 한다."

아주 작은 모래사장을 가리키며 세기는 유쾌하고 즐겁게 대화를 이어간다. 

"물을 마셔도 돼! 아주 깨끗한 물이야."

세기의 게스트하우스는 나무집과 게르가 한 채씩 들어서 있고, 주변의 다른 펜션들은 게르 모양의 숙소들과 나무집들이 여러 채 들어서 있다. 세기는 이제막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소양호 정도의 호수지만 몽골의 내륙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큰 호수라 세기에게는 애착이 가는 장소인듯 싶다. 몽골 사람들이 홉스굴 호수를 보며 왜 바다라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될 것 같다.

"세기, 이리 와!"

세기의 오토바이를 타고 길이 아닌 초원의 산길을 따라 다시 호르고 화산이 있는 입구에 도착한다. 몇몇의 관광객들도 차를 가지고 화산의 입구까지 도착해 있다. 

화산의 입구에는 여름에 운영된다는 음식점들의 간의 테이블들이 허름하게 설치되어 있고.

현무암의 자갈들이 펼쳐져있는 길을 따라 산을 올라간다.

세기와 지나쳐 왔던 넓은 용암지대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고. 

잠시 후 산을 오르는 자갈길은 시멘트 계단으로 이어진다.

큰 숨을 몰아쉬던 세기가 잠시 쉬며 사진을 찍어주고.

조금 더 산을 오르니 뭔가 시야가 왜곡되어 착시현상처럼 느껴지는 화산의 분화구가 나타난다. 화산의 입구에서 채 10여 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다. 

분화구의 규모가 크거나 넓지는 않지만 쉽게 걸어서 올라올 수 있는 호르고의 휴화산.

몇몇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즐겁게 기념촬영을 하고있고.

처음 보는 화산의 풍경은 생경하고 이색적이다.

"넓은 백두산의 천지나 활화산에 가면 어떤 느낌일까?"

"아이슬란드나 솔로몬제도 부근에 활화산이 있다는데 가보고 싶네."

몽골의 관광지라는 곳을 가 보면 조금 실망스런 부분이 없지않다. 불현듯 펼쳐져 감탄을 불러 일으키는 중국의 자연과는 달리 주변에 펼쳐져 있는 초원과 아름다운 산들의 곡선 그리고 하늘과 구름의 어우러짐 등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갖은 몽골이라 그런 것 같다.  

초도트쏨의 협곡, 사간느 호수 그리고 호르고의 화산까지도 그저 초원의 일부분으로 느껴질 뿐, 감탄을 자아낼만큼의 절경은 아닌 것 같다. 

"역시 몽골은 초원이네!"

화산을 내려가자고 하니 신이나서 휘파람을 부는 세기를 보며 그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몽골이 얼마나 대단한 것들을 갖고 있는지를 세기는 알까?"

선교사님의 말처럼 대자연을 품고 있고, 수많은 광물 자원을 갖은 인구수 300만명의 몽골이 이처럼 못 사는 것도 정말 어렵고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화산을 내려오는 초입에서 캠핑카를 세워두고 뭔가를 하는 외국인 부부를 만난다. 4개월 동안 터키와 이란, 카자흐스탄 등을 거쳐 몽골에 왔다는 프랑스의 노부부다.

작은 캠핑카를 타고 짧게 각 대륙들을 여행하는 프랑스 부부는 몽골에서 러시아를 거쳐 다시 프랑스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명함을 건네주고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 남자는 지도를 꺼내들고 펼쳐보이며 우수아이아에서 멕시코로 이어지는 길들을 추천해준다.

"이 길은 정말 환상적이야! 너의 루트는 잊어버리고 이 길로 가라. 정말이야! 판타스틱!"

남미 대륙의 끝자락 우수아이아에서 아르헨티나를 거쳐 브라질과 파라과이로 이어지는 코스는 재미가 없다며 칠레의 고산지대를 따라 칠로에섬과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길을 추천해 준다.

"나는 자전거라고!"

"너의 루트는 잊어버려!"

여러 번 칠레의 길을 따라 여행을 하라고 알려주는 프랑스 부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여행이 끝나고 시간이 다시 주어진다면 그 때는 누군가와 함께 작은 캠핑카를 타고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 꿈이다.

"세기! You can do it. With your wipe."

듣는지 마는지 세기는 자전거는 느리다며 오토바이를 사라고 웃으며 떠들어 댄다. 짧은 가이드를 하며 용돈을 번 하루가 무척이나 신이난 모양이다. 

안냐의 가게로 돌아와 세기에게 맥주를, 안냐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맥주 한 캔을 시원하게 마신다.

"보이!"

맥주를 마시는 동안 아이를 데려온 세기는 자신의 아이를 가리키며 남자애라고 알려준다.

"여자 아니였어?"

자세히 보니 안냐와 많이 닮은 남자 아이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려는 안냐에게 인사를 하고 가려니 세기가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조르노크에서도 그랬지만 몽골의 젊은 여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가슴을 내밀고 아이에게 젖을 물린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젊은 여자가 가슴을 까고 젖을 물리는 모습이 낯부끄러운지라 피해주려고 했던 것인데. 

세기네 가족과 헤어지고 서동고의 집으로 걸어가는 중 승용차가 멈춰서며 차량 안에서 오도덕이 밝게 인사를 한다. 언제나 가슴팍에 술병을 숨기고 있는 오도덕은 술병을 꺼내들고 능글맞게 웃으며 서동고의 집으로 가자고 한다.

서동고의 집에 도착하니 대문이 약간 열려있어 사람들이 돌아왔나 보다. 내가 열쇠를 가지고 있어 서둘러 집으로 들어가니 처음보는 중년의 남자가 술에 취해 햇볕이 드는 현관에 기대어 앉아 있다.

"누구신지?"

잠시 그 사람의 곁에 앉아 햇볕을 쬐는 동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술에 취한 마뜨가의 아내를 부축하며 집으로 들어온다. 열쇠가 잠겨있어 다른 집에서 있었던 모양이다. 

마뜨가의 아내를 침대에 눕혀논 여자들은 아침에 잘라놓은 장작들을 가져와 능숙한 손길로 잘게 잘라낸 뒤 쉽게 불을 피운다.

"아, 저렇게 하는 거구나."

술이 취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몽골말로 계속해서 말을 걸어와 불편하게 만든다.

"정말 너희들 대책이 없다!" 

패니어를 정리하고 호텔에 가서 쉬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다. 

"나 호텔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돌아올게."

잠시 후 들어와 침대에 쓰러진 마뜨가에게 번역기를 보여주니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화로에 장작들을 더 넣어주고 한 무더기의 장작을 화로 옆에 놓아둔다. 그리고 도끼질을 하여 장작들을 충분하게 쌓아두고 서동고의 집을 빠져나온다.

아침을 먹었던 호텔을 지나 건물의 모양이 조금 괜찮은 곳을 들어갔지만 호텔의 직원을 찾을 수가 없다. 1층에 있는 슈퍼에 들어가 호텔에 대해 물으니 슈퍼의 여자가 전화를 걸어 호텔의 직원과 통화를 했지만 오랫동안 기다려도 나타나질 않는다.

다시 짐들을 들고 아침을 먹었던 식당으로 들어가니 여기저기 옷가지와 장신구들을 펼쳐놓고 물건을 팔고 있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야?"

중국에서 물건들을 가져와 팔고있는 보따리 장수 같다. 

내일 떠나며 서동고에게 선물할 예쁜 모자를 5,000투그릭에 사들고.

아침을 먹었던 식당의 종업원에게 가장 맛있는 메뉴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니 무언가 번역기에 적는데 철자가 틀렸는지 뜻을 알 수가 없다.

"그래, 이것으로 줘!"

한참 후에 나온 음식은 아침에 먹었던 메뉴와 같은 양고기볶음이다.

"아놔! 정말 센스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하하하하."

아침과 마찬가지로 한 접시를 더 시켜 배를 채우고, 호텔을 가리키며 숙박비를 물어보니 25,000을 적어서 보여준다.

"20,000투그릭이라고 하던데. 아냐?"

식당의 여자가 호텔을 왔다갔다하며 가격을 조정하는 사이 퇴근을 하던 안냐가 어깨를 두드리며 인사를 한다.

"사람들이 너무 술을 많이 마신다. 오늘은 호텔에서 잘려고 해."

안냐는 자신이 아는 곳이 있다며 15,000을 적어 보여주고 따라오라고 한다. 안냐가 데려간 곳은 다름아닌 식당 옆에 있는 슈퍼다. 

오늘 아침부터 묵뚝뚝하게 말을 건네는 아저씨와 몸짓으로 농담을 하던 슈퍼에서 호텔을 같이 운영하는 모양이다. 

"아저씨, 히뜨웨?"

"20,000투그릭!"

"아니 이 동네는 무슨 숙박비가 고무줄이야?"

안냐는 2층에 있는 방을 안내해 주고 인사를 하며 돌아간다. 나무로 짠 작은 침대와 나무 테이블이 전부인 호르고의 호텔.

"화장실은 어디에 있는 거야?"

호텔의 화장실은 뒷마당에 재래식 화장실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슈퍼의 아저씨에게 내일 아침 오픈 시간을 물어보니 8시라고 알려준다.

출발 전 사용기간이 끝나는 핸드폰의 데이터를 충전하고, 필요한 것들을 구매하면 될 것 같다.


"내일은 정말 이곳을 떠나야겠다!"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101일, 102일 / 흐림
호르고
호르고에 도착하여 뱀바의 도움으로 서동고의 집에서 휴식을 취한다. 5월인데 눈이 내려 수북하게 쌓인 날,  호르고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동거리
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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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3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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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시간

나혼로집에
난로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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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고
호르고
호르고
 
 
1,34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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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웠던 지난밤이 지나고 호르고의 아침이 하얀 눈과 함께 시작된다.

"어제 날씨가 그렇게 짓궂더니 눈이 내리려고 그랬나 보네."

8시가 조금 넘어 슈퍼에 들렀지만 문이 닫혀있다. 중국에서는 수도꼭지를 떼서 가지고 다니는데 몽골에서는 문의 손잡이를 떼서 다니나 보다.

조금씩 굵어지던 눈은 이내 함박눈으로 변하여 펑펑 쏟아져 내린다.

등교를 하는 아이들만이 바쁘게 움직이는 호르고.

서동고의 집으로 돌아와 침대로 다시 기어들어 간다.

"어제 몇 시까지 마신 거예요?"

시계를 보여주며 침대와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새벽 6시의 시간을 가리킨다.

"으으."

어제 남은 음식으로 아침을 챙겨주어 아침을 먹고 있으니 소파에서 구겨져 잠자고 있던 사이흐른아(сайхнаа)가 일어나 어디선가 술병을 찾아들고 자리에 앉는다.

"아침부터 또 마셔?"

빙긋이 웃으며 건네는 술잔을 손사래를 치며 거부한다.

유치원에 가는 서동고를 데려다주기 위해 두 부부가 집을 나가며 담배를 사다 주겠다며 2,000투그릭을 달라고 한다.

그 사이 사이흐른아는 자신의 큰 등치를 다시 소파에 구겨 넣고.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점심이 가까워지자 이번에는 오도덕이 큰 술병을 들고 문으로 들어온다.

"도대체 너희들의 정체는 무엇이냐?"

아무런 안주도 없이 술을 따라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건네고, 술잔을 받아 아무런 거부감도 없이 그냥 마신다.

"뭐라도 먹으면서 마셔라."

언제나 엄지손가락만을 치켜세우며 웃는 오도덕을 피해 가며 작은방을 돌아다니는 동안 한 무리의 여자들이 집으로 들어온다.

병원에서 일을 한다는 여자들 중 사이흐른아의 아내는 몇 차례 타박을 주고 그를 데려간다.

서동고의 엄마가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고기를 녹이는 동안 깡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위해 안주거리라도 사다 주려 슈퍼에 나간다.

과자와 과일주스 그리고 컵라면을 사 오는 동안 오도덕은 작은 테이블에 뒤집어져 누워있다.

"아이고, 이 대책 없는 사람들!"

점심으로 양고기 국밥을 먹고 허리를 꺾어 누워있는 오도덕을 바닥에 눕혀놓는다.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낮잠을 잔다.

푸르스름 해가 진 저녁까지 뱀바는 보이질 않고 두 차례 전화가 왔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다.

"이 정도면 화산에 올라가기 힘들겠다."

눈은 하루 종일 내리고 멈추기를 반복한다.





다시 새벽에 눈이 내려 세상이 하얗다. 오늘도 화산 구경은 틀린 것 같고 날씨마저 너무나 추워진다.

어제 사다 놓은 컵라면은 귀여운 서동고가 아침으로 맛있게 먹었고, 양고기 죽으로 아침을 먹는다.

"고기가 심하게 당기는데."

눈이 쌓인 마당에 빗자루질도 해보고.

슈퍼에 나가 서동고가 먹을 수 있는 초코파이와 과일주스를 사다 주었다.

패니어에 넣어두었던 조끼와 방풍자켓 그리고 겨울용 버프를 꺼내어 방한 준비를 하고.

서동고의 가족은 무슨 행사가 있는지 새 옷을 꺼내 입고 바쁘게 준비를 한다.

잠을 자라며 제스처를 하는 서동고의 부부, 번역기를 줘도 오초르처럼 이상한 말들만 적어놓으니 아무 소용이 없다.

집의 열쇠를 받고 동네를 둘러보기 위해 걸어 다닌다.

"감바가 자랑하던 열쇠보다 더 독특하네."

구글 지도와 달리 몇몇 호텔들이 거리에 있지만 모양새가 어떤 기대를 하기 어렵다.

"양고기 볶음을 파는 음식점이 없나?"

하나뿐인 도로를 따라 걸어도 음식점은 보이질 않고, 호텔에 있는 작은 식당에 들어갔지만 역시나 생각했던 그런 모습이다.

"meat, potato, soup"

소고기와 감자튀김 그리고 수프를 생각했던 요리는 양고기에 감자를 넣은 국물에 식빵을 곁들인 음식이다.

"이건 서동고네 집의 식사와 별 차이가 없잖아."

세상 천지에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심심한 입을 달래러 슈퍼에 나가 아이들과 장난을 치고.

눈이 그치고 맑게 변한 하늘과 주변의 풍경을 구경하고.

"내일은 떠날 수 있을까?"

그럭저럭 편하게 보내고 있지만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없으니 너무나 지루하다.

"몽골 여행은 정말 어렵구나."

차가워지는 방안을 덥히기 위해 화로에 불을 붙여 본다.

"고무에 불을 붙여서 태우던데."

일차 시도 실패.

이차 시도 실패.

대문을 비집고 들어와 풀을 뜯는 말들을 쫓아내고.

이번에는 창고에 있는 장작을 도끼로 패서 잘게 조각낸다.

작게 조각난 나무들을 제대로 쌓고, 고무도 큼직하게 잘라 불을 붙인다.

이번엔 성공!

저녁으로 패니어에 들어있는 컵라면을 먹기 위해 물도 끓여보고.

찌그러지고 구겨진 컵라면으로 저녁을 해결.

"어째 한국에서 있을 때보다 컵라면을 더 먹는 거지?"

몽골 사람들은 컵라면을 좋아하는 것 같다. 조리 기구나 주방을 보면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라면을 좋아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만 한편 게을러 보이는 성향 때문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가 십 년처럼 느껴진다. 12시쯤에 돌아온다는 서동고의 가족은 정말로 12시가 넘어서 돌아올 것 같다.

난데없는 이런 상황은 뭘까? 몽골 사람들의 성향은 참으로 오묘하고 독특하다.

"내일은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100일 / 지독한 바람 ・ 8도
초도트쏨-호르고
30km가 남아있는 휴화산의 호르고로 간다. 처음 보게 될 화산의 모습이 궁금하다.


이동거리
33Km
누적거리
9,930Km
이동시간
5시간 56분
누적시간
667시간

A0603
A0603
21Km / 3시간 31분
12Km / 2시간 25분
초도트쏨
울고싶다
호르고
 
 
1,348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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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사람들이 오가며 부릉거리는 오토바이와 승용차 소리에 잠을 여러 번 깨었다. 이곳 사람들은 밤을 즐긴다는 것보다 할 일이 없어 싸돌아다닌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체체를렉에서도 느꼈지만 몽골 사람들은 밤과 낮의 모습이 너무나 다르게 느껴진다. 평온해 보이는 낮과 달리 밤의 모습은 왠지 불완전하고 위험해 보인다. 어쩌면 밤에 노느라 낮에는 힘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편하게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피곤한 아침이다. 초원을 바라보며 시원하게 굿모닝을 알릴 수 있는 것이 몽골 여행의 색다른 즐거움일지 모른다.

제법 강한 바람이 불어와 텐트를 정리하는데 꽤 애를 먹었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30km 정도 떨어져 있는 호르고에 되도록 일찍 도착해서 쉬고 싶은 마음이다.

가볍게 라이딩하여 12시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던 생각은 출발과 함께 멀리 사라진다.

귀를 시끄럽게 울려대는 바람 소리와 함께 엄청난 맞바람이 0도의 비껴남도 없이 좌우 정면에서 정신없이 불어온다.

자전거를 멈춰 세워버리는 바람 앞에 20분도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이 너덜너덜 해진다.

"정말 징그럽게도 불어온다."

끝이 없는 직선 도로와 페달을 밟을 수 없는 지독한 맞바람을 맞으며 한 시간 동안 겨우 5km 남짓을 이동한다.

선택의 여지가 아무것도 없다. 호르고까지 어떻게든 가야만 한다.

평지를 지나 길게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나오고 채 몇 미터를 오르지 못하고 자전거에서 내리고 만다.

"씨** 몽골 너무하네. 끌고 간다. 끌고 가!"

불어오는 바람을 서서 견디며 끌며 오르막을 오른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고, 신발을 질질 끌며 걷기도 힘든 상황의 연속. 갑자기 승용차 한 대가 뒤쪽으로 붙으며 정차를 한다.

창문을 내리는 사람은 식당의 여자이다. 식당을 출발하며 인사를 못하고 떠난 마음에 반가운 인사를 하니 약간 주저하는 듯 멈칫거리더니 뭔가를 반복해서 떠들어 댄다.

느낌상 돈의 단위를 말하는 숫자처럼 들려 핸드폰으로 적어달라 하니 식당의 남자가 2G폰을 조작하며 16,000을 적어 보여준다.

어제 저녁으로 먹었던 츠이완의 값을 달라는 것 같은데 터무니없는 금액이다.

"그래, 먹고 떨어져라. 다툴 정신도 없다."

어제 먹은 달달한 한국 소주 값이다 생각하며 돈을 주고, 차를 타라는 제스처를 하는 남자에게 주먹 감자를 먹여주고 싶었지만 참는다.

조금씩 몽골 사람들에게 적응이 되고 친숙해지려던 참이데 아직 멀었나 보다.

"몽골인들은 사람을 잘 속인다. 많은 물건값을 요구하니 최대한 깎아라."

수니터우기에서 지아오강강이 해주었던 조언이 생각난다.

바람 탓에 기진맥진 해지고, 무엇보다 식당 여자의 마지막 모습 때문에 기분이 순식간에 나빠진다.

"에잇 **! 똥 밟았네."

기운이 빠진 탓에 움직이기도, 쉬기도 귀찮아지고 여행의 피로만이 밀려온다.

마치 중국 여행에서 방이 더러워졌다며 청소비를 달라던 호텔을 빠져나올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

힘든 여정의 피로와 환경들 보다 사람들에게 지치는 것이 훨씬 더 힘든 것 같다. 공통된 것은 모두가 잔돈푼의 욕심을 얼굴에 붙이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 얼굴들을 마주하면 구역질이 난다.

평지에서조차 자전거를 끌며 1미터, 2미터를 이동하고 쉬기를 반복한다.

1시, 호르고까지 12km가 남았다. 평속 5km 정도의 속도이니 2시간은 더 가야만 한다.

바람으로 인해 눈은 충혈되고 조금씩 시야가 흐려진다.

"아까 욕해서 죄송해요. 몽골 너무 좋아요."

지독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하늘은 왜 이리도 멋지고 좋은지 모르겠다.

정말 가혹하리만큼 힘든 몽골의 여행 환경인데 몽골이 품고 있는 자연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좋은 하늘을 감상할 여유조차 주질 않는 바람이지만 흙바닥에 주저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뭐, 어쨌든 두 시간이면 충분하잖아."

지나가는 트럭이라도 있으면 잡고 싶은 심정으로 1미터씩, 1미터씩 끌며 걸어간다.

12, 11, 10, 9, 8. 호르고를 앞두고 강을 건너는 작은 다리의 밑으로 족히 1미터가 넘을 것 같은 두께의 얼음이 얼어있다.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바람에 밀려 무거운 자전거가 넘어지려 한다.

퍼드득 거리며 날아갈 듯한 태극기에서 이상한 쇠의 마찰음이 나는 것 같다.

흔들리는 자전거를 잡고 사진을 찍기도 힘들어지고, 끝없이 올라가는 언덕의 끝으로 호르고 초입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마을을 향해 무겁고 더디게 걸음을 옮겨간다.

드문드문 이어지는 도로변의 집들을 지나며 마을의 중심이 나오기를 바랐지만 아무것도 나오질 않는다.

자전거를 세우고 지도를 확인해도 근처에 있어야 할 진입 도로가 보이질 않고.

마지못해 도로변의 호텔과 식당을 순서대로 들어가 봐도 너무나 허름하고 구색조차 갖춰지질 않았다.

"그래도 몽골의 관광 랜드마크는 될 텐데, 너무 없잖아?"

마을 초입에 있었던 게스트하우스 겸 레스토랑으로 길을 돌아갔지만 폐업을 했는지 출입구마다 합판이 덧대어져 막혀있다.

"없다. 없어도 너무 없어! 배고파! 쉬고 싶다고!"

다시 길을 돌아가 들어가 보았던 호텔과 식당을 다시 찾아가 보았지만 휴식을 취하거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이제는 제대로 앞이도 보이질 않을 만큼 시야가 흐려지고 구글맵이 가리키는 안내를 따라 흙길을 따라간다.

"이게 마을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길이야?"

멀리 마을의 나무판자 담들이 보이고, 넓은 공터에서는 사람들이 가축의 똥을 모아 담고 있다.

좌우로 나눠진 골목들을 따라 집들이 이어져 있고, 슈퍼처럼 보이는 곳의 문을 열고 무작정 들어간다.

이제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없는 문이 닫힌 몽골의 가게는 무작정 열어보고 확인한다. 생각대로 작은 슈퍼다.

"일단, 맥주 하나 주세요."

맥주를 마시며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여자와 어디서부터 대화를 시작할까 고민을 한다.

"잠! 식당!"

잠 자는 시늉과 음식을 먹는 제스처를 해도 그저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여자는 핸드폰으로 주변에 호텔이 있는지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가게에서 놀고 있는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에게 구글 지도를 보여주며 호텔과 레스토랑이 있는지 물어보니 손가락을 가리키며 호텔이 있는 장소를 알려준다.

"역시 어린애들이 영특하군."

일단 호텔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아이들과 장난을 치다 가게로 들어오는 젊은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샌 베노!"

남자에게 인사를 하고 악수를 청하니 웃으면서 인사를 한다.

"난 싸비. 넌 이름이 뭐야? 타니 네르?"

이름을 알려주는 남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자 남자는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준다.

뱀바(Бямбаа), 1975년생의 생글생글 잘 웃는 남자이다.

뱀바와 웃으면서 얘기를 나누는 동안 호텔이 아닌 그의 집에서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선교사님과 툴가에게 전화를 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고 할 수 없이 감바에게 전화를 걸어 내용을 설명했지만 그동안 한국어 실력이 다시 줄어버렸는지 잘 이해를 하지 못한다.

남자에게 전화를 주고 감바와 통화를 하게 해주었더니 한참 동안 심각하게 통화를 한다.

"감바, 뭐라고 했어?"

텐트를 치고 자는 것을 잘 모르는 감바는 뱀바에게 게르에서 잘 수 있게 도와주고 식사도 제공해 주라고 얘기를 한 모양이다. 말이 많은 감바의 성향으로 뱀바에게 여러 가지 설교를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뱀바와 슈퍼를 나와 그의 오토바이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간다. 그의 집은 마당에 한 채의 게르가 설치되어 있는 집이다.

게르 안에는 중학생 정도의 애들과 여러 명의 사람들이 있다. 각자에게 인사를 하고 컵라면을 먹는 동안 뱀바를 보드카 술병을 들고 신이 난 듯 웃으며 돌아다니고.

여러 명의 사람들이 차례대로 뱀바의 게르에 찾아 들어와 정신이 하나도 없다. 뱀바의 친구들과 예쁘장한 꼬마를 데리고 온 노부부 그리고 잘 생긴 고등학생 정도의 아이들까지 뱀바의 게르가 북적이며 정신이 없다.

"아이고, 정신이야. 너희들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거야?"

예쁜 여자아이를 데리고 온 노부부는 50세와 46세의 부부고, 손녀로 보았던 아이는 그들의 딸이다.

"헉, 46세라고?"

"뱀바, 저 여자 정말 46세야? 그럼 친구잖아!"

"응, 군복을 입은 애는 44살, 여자의 엄마는 46살. 내 친구들이야!"

오토바이를 타다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졌다는 남자는 목발을 짚으며 술병을 가지고 다니며 술을 마신다. 뱀바의 친구인데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자꾸만 귀찮게 불러대는 남자.

"형 힘들다. 부르지 말어! 너 술 먹으면 뼈 안 붙어!"

조금 후에 목발을 한 남자의 형이자 여자아이 아빠의 친구인 오도덕(49)이 37세의 부인과 게르 안으로 들어와 다시 난장 법석이 되고.

어렵게 어렵게 그들의 관계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마뜨가(50)와 그의 아내(46) 그리고 예쁜 여자이이, 오도덕(49)과 그의 아내(37) 그리고 동생(44), 그리고 뱀바의 친구들.

술에 취한 듯 힘이 없는 마뜨가는 핸드폰의 번역기에 이상한 글자들만을 적어주며 보여주고, 안쪽 주머니에서 술병을 꺼내어 사람들에게 술잔을 따라주는 오도덕은 나를 향해 연신 OK만을 외쳐댄다.

마뜨가는 나를 보며 자꾸만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제스처를 하고, 뱀바는 어딘가 정신없이 사라졌다 새 술병을 들고 생글생글 웃으며 나타난다. 이유를 알 수 없어 김병남 선교사님께 전화를 걸어 고마움을 전하고 이유를 설명 받는다.

뱀바가 아이를 낳아서 와이프가 있는 병원으로 내일 가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마뜨가의 집에서 잠을 재워 달라며 나를 부탁했던 것이고, 그 소식을 들은 마뜨가의 친구인 오도덕의 가족들이 구경을 하러 온 것이다.

예쁜 여자아이와 친구라고 생각하기엔 존댓말이 절로 나오는 마뜨가의 아내, 힘없이 느릿느릿 말을 하고 행동하는 마뜨가와 그의 친구 오도덕, 오도덕의 젊은 아내와 뱀바가 마뜨가의 집으로 이동을 한다.

마뜨가의 집은 단층의 벽돌집이다. 집의 현관인 창고에 넣어두고 작은 침대를 나에게 내어준다.

그리고 마뜨가와 오도덕, 뱀바는 또 어디서 사 왔는지 새 보드카를 꺼내어 술을 마시고 있다. 느릿느릿 술잔을 따라 상대방에게 건네주고 무언가 대화를 하며 술잔을 받아 아무런 안주도 없이 술을 마신다.

그 사이 마뜨가의 아내는 장작불을 피우고 밀가루 반죽으로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침대에 앉아 꼬마 아이와 놀고 있는 사이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하던 곳에서 소란이 일어난다.

오도덕의 아내에게 술을 권하는 뱀바와 술잔을 거부하며 피해 다니는 오도덕의 아내가 이리저리 방안을 돌아다니느라 시끄럽다. 마지못해 술잔을 받아들고 약간을 마신 후 술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오도덕의 아내.

그런데 갑자기 그 모습을 본 오도덕이 화를 내며 술병을 집어던져 깨뜨리고 뱀바에게 주먹을 날린다. 그리고 그의 아내에게 주먹질을 하는 것이다.

"헉, 너네들 뭐 하는 거야?"

한순간 집안이 아수라장이 되고, 주먹으로 얼굴을 맞았던 뱀바가 천천히 일어나며 오도덕에게 주먹을 날리며 무언가를 떠들어 댄다. 마뜨가의 아내와 오도덕의 아내가 어렵게 두 사람을 뜯어말리고, 두 사람의 몸싸움에 얼굴을 맞았는지 마뜨가의 코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다.

오도덕과 뱀바 그리고 오도덕의 아내가 집 밖으로 나가고 마뜨가의 코피를 지혈하며 깨진 술병의 유리조각을 치우는 동안 오도덕과 뱀바는 밖에서 서로 멱살을 잡고 주먹을 교환하고 있다.

"야, 이 사람들 답이 없는 사람들이네!"

한참 후에 오도덕과 뱀바는 어깨동무를 하고 집으로 들어온다. 얼굴에 상처가 난 뱀바와 주먹에 상처가 난 오도덕은 서로 뭔가를 말하며 화해를 한 모양이다. 그리고 이유 없이 맞아 코피가 난 마뜨가는 휴지로 코를 막고 소파에 앉아 있다.

"너희들, 너희들 정체가 무엇이냐?"

마뜨가와 오도덕 그리고 뱀바는 자리를 잡고 술을 따라 나긋하게 대화들을 하며 다시 술을 마신다. 계속 술을 권하는 오도덕을 피해 다니다 분위기를 바꿔주기 위해 그들과 자리를 함께 한다.

그 사이 저녁을 준비하던 마뜨가의 아내가 양고기 국수를 내어주고.

"깡술을 마시면 안 돼! 아니 이렇게 좋은 안주가 있는데 같이 먹어야지!"

자리를 잡고 그들과 앉아 대화를 하는 사이 분위기는 좋아지고, 농담을 하며 제스처와 스킨쉽으로 웃고 떠든다.

"툴가야, 몽골 사람들은 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툴가에게 문자를 보내고, 다시 술을 사러 나가는 뱀바를 잡아 계속 깡술을 먹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안주가 될만한 것을 사주려고 뱀바를 따라간다.

오토바이를 타고 꿀렁꿀렁 흙길을 달려 문이 열린 슈퍼를 찾아 마을의 이곳저곳을 들렸지만 열려있는 슈퍼가 없다.

"무슨 동네에 슈퍼가 이렇게 많아!"

슈퍼를 찾아온 동네를 돌아다니던 뱀바는 도로변의 식당으로 들어가고, 술을 사려는 뱀바 대신해 술과 몽골식 만두를 주문하고 돈을 낸다.

"내가 살게. 근데 술 마실 거면 만두랑 같이 먹어라."

양만두가 나오는 동안 한 잔씩의 술잔을 비우자 그곳에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마뜨가와 오도덕이 포터 트럭을 몰고 식당으로 들어온다.

"정말 너희들의 정체가 무엇이냐?"

마침 주문한 만두가 나와서 마뜨가의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꿀렁꿀렁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오며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 버리고, 마뜨가의 집으로 돌아와 몇 잔의 술을 마시며 떠들며 웃는다.

"뱀바! 내 모자가 날아가 버렸어. 내일 찾아와! 노란 모자야."

피곤함 때문에 침대에 누워 먼저 잠이 들고, 잠든 지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뱀바는 잠자는 나를 깨워 모자를 씌워준다. 잠결에 뱀바를 안고 고맙다고 중얼거리며 다시 잠이 든다.

생각해 보니 조명도 없는 그 어두운 곳에서 바람에 날아간 모자를 어떻게 찾아왔는지 궁금하다.


술을 마시며 느닷없이 주먹질을 하고, 이내 화끈하게 화해를 하는 이상한 몽골의 사람들 그리고 바람에 날아간 이방인의 모자를 찾아주려 어두운 동네를 뒤적이며 돌아다녔을 친철한 몽골의 사람들.


"야! 너네들 정체가 뭐야?"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99일 / 맑음 ・ 6도
동궈이-소도트쏨
호르고를 향해 가는 길, 동궈이 바른자야의 게르에서 야영을 하고 호르고로 떠난다. 90km 정도의 거리가 남았다.


이동거리
57Km
누적거리
9,497Km
이동시간
5시간 56분
누적시간
661시간

A0603
A0603
42Km / 2시간 40분
50Km / 4시간 25분
동궈이
바수이전
협곡
 
 
1,315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저녁 늦게까지 오토바이와 승용차들이 바른자야의 집을 드나들었지만 피곤함 탓인지 이내 잠이 들었다.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이겠지만 날씨가 계속 추어지는 것 같다.

패니어를 정리하고 야영자리를 흔쾌하게 제공해 준 바른자야의 식구들에게 바른자야의 과자와 아빠의 맥주를 사주기 위해 언덕 위의 슈퍼로 간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슈퍼의 문이 닫혀 있어 그냥 돌아와야 온다.

언제나 시크한 바른자야의 아빠와 짧게 인사를 하고 동궈이를 출발한다.

어제와 달리 맞바람이 조금씩 강해지고 동궈이를 벗어나자마자 시작되는 오르막길에 페달링이 느려져간다.

"왜 계속 올라가는 거지?"

몽골에 와서 태극기가 잠잠한 날이 없다.

한 시간 동안 느리게 오르막을 오르고 도로변에 앉아 작은 빵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호르고에서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북향의 산에만 나무가 자르는 몽골의 산악지대는 볼 때마다 신기하다.

"여행자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모험가, 수도승 아니면 그저 그런 방랑자?"

오르막길과 맞바람은 계속 이어지고.

오르막의 반복 끝에 멀리 비포장도로처럼 보이는 길이 산을 향해 굽어지며 올라간다.

"어떻게 타고 갈 수가 없는 길이네."

자전거를 끌며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사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남자가 나를 보며 오토바이의 뒤쪽에 묶여있는 밧줄을 가리키며 웃는다.

"바에르사!"

손을 가로저으며 도움을 주려는 남자에게 방긋 웃어준다.

흙길의 산을 넘어 조심스럽게 다운을 하니 길은 다시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왜 산을 넘는 길들은 포장도로가 끊기지? 여기도 돈을 빼먹는 놈이 있나?"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던 오르막길의 끝이 보인다. 멀리 눈이 쌓인 높은 산들의 실루엣과 길게 이어진 하천의 강물들이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햇빛에 반사된다.

"어쨌든 풍경은 참 좋네!"

멀리 얼어붙은 하천을 바라보며 빵과 음료수로 점심을 한다. 이틀 동안 끊겨있었던 통신이 근처의 작은 마을 틸(Teel, Тээл)에 가까워지며 작은 안테나를 반짝이며 연결되어 있다.

"벌써 1시인데, 아직도 50km가 더 남았네."

도로변의 작은 마을을 지나며 제대로 된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처럼 생긴 곳에 들어갔지만 문이 닫혀 있다.

평탄한 길이 이어지지만 바람 때문에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한 시간을 달려 다시 작은 마을의 모습이 나타난다.

"밥을 먹어야 해. 식당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화물차들이 정차되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데 작은 집 앞에 있던 노인이 나를 향해 손짓을 하며 부른다.

"코리아? 문재인!"

할아버지의 집에 자전거를 세우고 쳐다보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한다.

"오! 할배 문파야?"

할아버지를 보고 밥을 먹는 제스처를 하며 화물차들이 정차되어 있는 곳을 가리키니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할아버지의 집에는 할머니와 손녀로 보이는 아이가 있다.

자리에 앉아 숨을 돌리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뜨거운 물과 함께 커피와 설탕을 내어준다.

오래된 몽골 지도를 가져와 지명들을 읽어주며 현재의 위치를 확인시켜 주는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름이 뭐예요? 네르?"

느린 걸음으로 볼펜과 종이를 가져온 뒤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준다.

"할배, 어려워서 나는 못 읽겠네."

빵을 가져오고 쌀을 가져와 보여주는 할아버지에게 손사래로 거절을 하고 사진을 찍는다.

"할배,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할배, 웃어야지. 웃어봐요!"

할아버지의 집에서 따듯한 커피를 마시고 다시 길을 출발한다.

"아이고 언제 가나!"

마을의 끝을 벗어나자 맑은 물소리와 함께 김병남 선교사님이 말했던 협곡 같은 곳이 나타난다.

마치 제주도의 어느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처럼 검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이색적인 협곡의 모양이다.

"가다 보면 그랜드캐니언 같은 협곡이 나와요. 나는 그곳이 정말 좋더라고요."

김병남 선교사가 그랜드캐니언과 비교하며 말했던 곳인가 싶다.

"선교사님도 참! 뭐 어쨌든 해발 2,000미터의 초원에서 보는 멋진 풍경이네."

도로를 따라 협곡의 모습은 계속 이어지고 도로와 멀어지기 전에 안쪽으로 들어가 풍경을 구경하고 싶어진다.

"내가 또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이다. 들어가자!"

도로를 벗어나 50미터 정도 자전거를 끌고 협곡 쪽으로 들어간다.

생각보다 꽤 깊은 높이로 파여진 자연 협곡이다.

거의 변함이 없는 초원의 풍경 속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협곡의 모습은 신기하고 낯선 풍경이다.

협곡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며 풍경을 감상하다 이곳에서 야영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여기 어디서 텐트를 쳐도 괜찮겠는데."

도로와 떨어져 있고, 도로를 이동하는 차량도 별로 없고, 바위와 언덕으로 가려져 있는 장소라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해도 좋을 것 같다.

"아 좋은데, 통신도 느리지만 연결이 되고."

1시간 가까이 협곡의 주변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며 야영에 대한 고민을 하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조금만 더 이동하기로 결정한다.

"그래도 60km는 채워야겠지!"

천천히 길을 따라 이동하는 사이 주변의 풍경은 현무암 지반의 독특한 지형으로 변하고, 나무가 자란 숲길로 이어진다.

"몽골의 숲길은 이런 느낌이구나."

오래된 침엽수들 사이로 풀들을 뜯는 말들이 지나다니고, 제법 울창하게 들어선 숲을 보니 늑대도 살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숲길의 끝에 타리안트의 경계를 알리는 구조물이 나오고.

멋진 협곡이 구부러진 언덕 위로 리조트처럼 보이는 작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몽골 하나로 투어 여행사? 한국 여행사 리조트인가?"

"일단 가보자!"

한국인 여행객들이 있을지 모를 리조트를 향해 무작정 자전거를 끌고 들어간다. 협곡의 끝에 조성된 리조트는 작은 나무 펜션과 게르들이 들어서 있다.

"코리아?"

나를 보고 밖으로 나온 여자들에게 리조트가 한국 여행사의 리조트인지를 물으니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는 인적감이 없는 펜션과 게르를 가리키며 잠을 자는 제스처를 한다.

"나 여기서 잠을 자도 돼?"

여자는 손을 가로저으며 리조트의 위쪽 도로변에 있는 몇 채의 게르를 가리키며 밥을 먹는 시늉과 잠을 자는 제스처를 한다. 아마도 여행 시즌이 아니라 리조트가 운영되고 있지 않는 모양이다.

리조트의 여자가 가리킨 도로변의 게르로 올라가니 한 여자가 나를 보며 반갑게 손짓을 하며 반겨주고, 게르의 옆 공간을 가리키며 텐트를 치라는 듯 안내를 한다.

도로변의 작은 식당으로 보이는 곳에 자전거를 세우고, 여자는 식당 내부를 페인트칠을 하는 중이라며 알려준다.

"식당 내부 인테리어를 하나 보네."

여자를 따라 들어간 게르에는 식당을 공사하는 인부처럼 보이는 사내들이 4명 정도가 침대에서 쉬고 있다.

"소주!"

게르의 테이블에 앉아 반갑게 인사를 하던 남자는 '소주'를 반복적으로 말하며 참이슬 병을 보여주며 나에게 술을 따라준다.

"뭐야? 참이슬이네. 한국 제품이잖아!"

남자가 안주도 없이 큰 사발에 마시고 있는 참이슬은 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가정용 소주다.

"소주! 소주 좋아? 보드카를 마셔야지! 몽골 보드카!"

"몽골 보드카 모! 모!"

남자는 연신 소주를 외치며 엄지를 치켜세우고, 몽골의 보드카는 나쁘다며 새끼손가락을 아래로 향하며 모모를 외친다.

그 사이 여자는 소금을 뿌린 냄비에 감자를 넣고 볶는다.

약간의 물과 함께 고기를 넣고.

몽골의 조미료 같은 것을 뿌리고.

밀가루 국수를 푸짐하게 집어넣고.

끓인다. 몽골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초이완을 만드는 것이다.

바구니에 가득 담겨있는 작은 빵을 먹으라고 권하며 소주를 따라주는 남자의 잔에 손사래를 치며 밖으로 나온다.

"안 돼! 빈속에 소주를 마시면 속 쓰려. 초이완하고 같이 먹어야지."

공사 중인 가게의 주변에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참이슬 박스가 여러 개 놓여있다.

잠시 후 음식이 나오고 남자가 건네준 소주와 함께 맛있게 저녁을 먹는다.

텐트를 치는 것을 구경하는 남자에게 패니어에 들어있던 관절염 진통제를 몇 개 건네준다. 소주를 마시며 팔목과 어깨에 소염제 같은 로션을 바르며 아프다는 제스처를 했던 남자다.

"여기 아플 때 한 알씩 먹어!"

남자에게 진통제를 주는 것을 본 여자가 다가와 '에취! 에취!'하며 감기약이 있는지 물어보며 산만한 덩치로 아양을 떤다.

"없어! 그냥 이거나 써!"

먹지 않는 진통제는 몇 알 준다 해서 큰 문제는 없지만, 감기약은 누구에게 나눠줄 만큼 넉넉하지 않다. 뭔가를 바라는 여자에게 오초르가 주었던 쓰다 남은 핸드크림을 건네준다.

우리나라 개그맨을 닮은듯한 인상의 남자와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내고.

나를 향해 짖지도 않고 잘 따르는 이상한 몽골 개와 협곡으로 산책을 나간다.

협곡의 주변에는 동물의 뼈들이 잔뜩 흩어져 있다.

"늑대가 먹은 거 아냐?"

"쫓아오는 개들을 때리려면 이거라도 들고 다녀볼까."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을 보니 언젠가부터 소의 생김새가 야크처럼 생겼다.

"할미꽃인가?"

게르와 조금 떨어진 곳에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고, 몽골 초원의 화장실을 보면 바람이 주로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알 수 있는 것 같다.

해가 지기 시작하여 길 건너편 돌바위가 있는 작은 산에 올라간다.

멀리 협곡의 모습이 보이고.

내일 지나가야 할 서쪽으로 길게 뻗은 도로도 보인다.

그리고 초원의 일몰이 시작된다.

"초원의 아름다운 석양을.."

"내 손에 담아.."

"너에게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찬 바람과 함께 구름 사이로 떨어지는 아름다운 석양빛이다.

찬 바람이 불어오는 산을 내려와 불리해지면 벌러덩 누워버리는 개와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내고.

초저녁 무렵 빠르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우렁차게 짖어대는 개들의 소리와 텐트 가까지 지나가는 소들의 움직임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깬다.

요란하게 지나다니는 오토바이 소리와 게르에서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는 밤늦게까지 계속되고, 하늘에는 별들이 빼곡하게 박혀있다. 핸드폰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어보지만 블랙 화면만이 찍힌다.

카메라를 꺼내어 별을 찍는 연습을 하고 싶지만 너무 추워서 귀찮다.

자정이 넘어 다시 잠이 든다. 호르고까지 30km 정도가 남아있어, 아침 일찍 출발하면 점심 이전에 도착하여 편안하게 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왜 밤늦게까지 싸돌아다니는 거야? 딱히 할 것도 없는 이곳에서!"



Trak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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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98일 / 흐림 뒤 맑음 ・ 8도
체체를렉-동궈이
아름다운 도시 체체를렉을 떠나 휴화산이 있는 호르고를 향해서 떠난다. 편안하고 자유로웠던 체체를렉의 시간이 그리워질 거야.


이동거리
78Km
누적거리
9,440Km
이동시간
7시간 34분
누적시간
655시간

S320소도
X006길
42Km / 2시간 40분
50Km / 4시간 25분
체체를렉
바수이전
동궈이
 
 
1,258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5일간 머물렀던 체체를렉을 떠나는 날이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둘러본 것은 아니지만 조용하고 조용한 이 도시가 너무나 마음에 든다.

몽골 여행의 피로를 씻어내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날들이다.

미국식 아침식사는 심플하고 좋지만 배고픈 여행자에겐 뭔가 허전하다.

짐들을 정리하고 친절하게 대해준 몇몇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페어필드를 떠난다. 휴화산이 있는 호르고까지 170km 정도의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슈퍼에 들러 물과 빵 그리고 간단한 먹거리들을 사 든다.

"박카스도 한 병 마셔 볼까?"

페어필드의 숙박비를 결제하고 나니 당분간 사용할 현금이 떨어졌다. 다행히 슈퍼의 바로 옆에 ATM 기기가 놓여있어 은행을 찾아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던다. 물가에 비해 돈의 가치가 떨어지니 몽골에서는 현금 지급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칸 뱅크인가?"

자민우드에서 처음 이용했던 은행인데 뭐라고 읽는지 모르겠다. 느낌상 칸 뱅크인 것 같은데, 어쨌든 영어 서비스가 되는 ATM 기기라서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체체를렉의 서쪽 마을을 돌아 고개를 넘어가는 오르막이 이어진다. 이틀 동안 조금의 눈이 내리며 쌀쌀해졌지만 라이딩을 하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다. 산등성이를 타고 알록달록 양철지붕의 집들이 모여있는 도시의 모습이 이색적이고 마음에 든다.

"안녕. 체체를렉!"

체체를렉을 둘러싸고 있는 돌산 불간울(Bulgan Uul, Булган Уул ДГ)을 넘기 전 작은 톨게이트가 나오고, 그 너머로 흙길로 된 산 길이 이어진다.

"시작부터 이상한 기운이 감도네."

페어필드에서 만난 한국인 교사에게 호르고까지의 도로 상태가 좋다고 들었는데 시작부터 흙바닥의 산 길이다. 몽골의 표현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산을 따라 듬성듬성 자라고 있지만 체체를렉의 경계를 넘어서며 몽골에서 나무를 볼 수 있다.

"나무가 자라는 것이 신기하다니. 별스럽다."

흙길에 미끄러지는 바퀴를 어렵사리 밟아가는데 저 멀리 높은 경사도의 오르막이 보인다.

그리고 따듯하게 등을 달구던 날씨가 갑자기 변하면서 세찬 바람과 함께 빗방울이 떨어진다.

"진짜, 갑자기 왜? 왜 이러는 거야."

정상에서부터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자전거에서 내려 흙길을 끌고 간다.

그렇게 20여 분동안 자전거를 끌고 볼간울을 넘는 고개의 정상에 도착한다. 해발 1,970미터의 체체를렉을 넘는 볼간울의 고갯길.

고개의 정상에 돌을 쌓아놓은 어붜 대신하여 큰 바위들의 주변에 기도의 흔적들이 놓여있다.

멀리 체체를렉의 하늘에는 검은 비구름과 함께 비가 내리고 있고, 하늘에선 커다란 천둥소리가 요란해진다.

체체를렉에서 쉬는 동안 하루에도 몇 차례씩 날씨가 변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급변하는 몽골 고산의 기후가 생소하고 낯설다.

검은 구름에 휩싸여 있는 체체를렉과는 달리 반대편의 하늘은 고요하고 맑다.

흙길에 미끄러지는 자전거를 브레이킹하며 털털거리는 자전거를 어렵게 제어한다.

"젠장, 어렵게 끌고 올라왔는데 내리막의 보상도 없네."

볼간울 너머 체체를렉의 건너편은 몇 분 전의 궂은 날씨가 이상하리만큼 평화롭고 바람마저 없다.

내리막의 끝에서 포장도로는 다시 이어진다. 오늘 어쩌면 이런 도로의 상황을 수차례 만날지도 모르겠다.

나무들이 자라는 숲이 있어서인지 이곳에는 햄스터보다 큰 다람쥐 같은 것이 도로변을 돌아다닌다. 동남부의 햄스터들처럼 재빠르게 몸을 숨겨버려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바람이 사라진 평온한 도로에는 멋진 구름들만이 둥실둥실 하늘을 채우고 있고.

평평한 도로는 끝이 없이 구부러지며 이어진다. 체체를렉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확인하기 위해 GPS를 켜보니 산들샘 GPS가 먹통이다. 다시 재부팅을 하고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는지를 확인한 후 길을 이어간다.

넓은 초원 한가운데 생뚱맞게 놓여있는 비석과 대리석 테이블이 있는 곳에서 잠시 쉬어간다.

무덤의 비석인지 기도를 하기 위한 공간인지는 모르겠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노란 꽃들이 초원을 뒤덮을 준비를 하고 있고.

무엇보다 몽골의 초원, 부드러운 산의 능선들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하늘과 구름의 움직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잠시 고개를 돌리면 순식간에 변해있는 구름의 모양들이 신기하다.

평탄하게 이어지는 도로에서 한가로운 페달링으로 풍경들을 감상하며 게으르게 길을 이어간다. Zaankhushuu(Заанхошуу)가 시작되는 마을의 초입을 지나 길게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간다.

지루한 업힐이 계속 이어지고 거대한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어버린다. 해를 가리고 있는 검은 구름을 지나면 언제나 그렇듯 바람이 불어온다.

산 길이 이어지며 핸드폰의 네트워크마저 완전히 끊겨버린다.

새끼 양을 데리고 다니는 녀석들은 자동차가 지나가도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앞서 지나가던 자동차가 갑자기 뛰어든 새끼 양을 피하느라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휘청거린다.

빠른 자동차가 지나가도 꿈적하지 않던 녀석들은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빠르게 도망가 버린다. 이상한 녀석들이다.

체체를렉을 지나며 차량의 통행마저 뜸해진 겹겹의 산들을 오르고 또 오른다.

멀리 고산의 초원에 얼어있는 얼음은 녹지 않고 햇볕을 받아 반짝거리고.

도로변의 남쪽의 산(북향)에만 나무가 자라는 고산의 초원이다.

"몽골의 숲은 북향이나 음지에만 형성이 되어 있어서, 예전에는 그것을 보고 방향을 잡았다고 하네요."

김병남 선교사의 말처럼 따듯한 남향의 양지에는 초원의 풀들이 자라고, 북향의 산등성이에는 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나저나 저 구부러지는 고갯길은 어떻게 할 거야!"

지나온 길 위로 비를 뿌리듯 흐릿하게 하늘로 올라가는 구름들이 보인다. 처음 중국의 고산 초원과 몽골에 왔을 때, 카메라에 찍힌 구름들의 사진이 솜뭉치로 문지른 듯 흐릿하게 뭉개진 것이 카메라의 렌즈에 이물질이 묻어 그런 줄 알았다.

카메라 렌즈를 닦고 사진을 찍어도 똑같은 모양의 구름들, 바람에 흩날리며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가며 구름을 만드는 모양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글을 쓰고 하늘을 보면 지면에서 올라가는 구름의 모양들이 신비롭게 보인다.

"몰라. 밥이나 먹고 가자."

슈퍼에서 사온 빵과 음료수로 점심을 먹는 동안 수없이 모양을 바꾸며 움직이는 구름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의 푹신해 보이는 구름이 너무나 좋다.

느릿느릿 산 길을 오르고.

언제나 몽골 초원의 정상에서 볼 수 있는 어붜가 쌓여있다.

나무가 자라는 곳이라 어붜도 나무를 쌓아 세워놓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사고가 많이 나는지 언제나 어붜에는 목발들이 많이 놓여있다.

길은 다시 오르막의 산길로 구부러지며 이어지고.

끝날 것 같지 않던 산길은 해발 1,997미터의 정상을 찍고 내려간다.

저녁이 가까워지며 조금씩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내리막길을 달려 만난 도로변의 작은 식당과 몇 채의 집 앞에서 잠시 고민에 빠진다.

"오늘 여기까지만 탈까? 식당에서 밥을 먹고 게르 주변에 텐트를 치면 좋을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 5시가 가까워져 간다. 라이딩을 마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고 통신조차 되지 않아 조금만 더 길을 가보기로 결정한다.

"꼭 중국의 변발처럼, 누가 깎아놓은 것처럼 나무들이 자라네."

초원에서 말을 타며 휘파람을 부는 목동들과 손인사를 하며 평탄한 초원의 길을 달린다. 6시까지만 달리겠다는 생각으로 시계를 확인하니 이미 6시가 넘어 7시를 향해 분침이 움직이고 있다. 내리막이 시작되던 작은 식당의 앞에서 6시의 시간을 5시로 잘 못 본 것이다.

"어쩐지, 적당한 장소가 나오면 거기까지만 움직이자."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해가 저물기 시작하며 조금씩 마음이 조급해진다. 평평한 길을 달리던 중 초원에서 움직이는 검은 가축과 눈이 마주쳤다. 족히 4~50미터는 떨어져 있을 것 같은 곳에서 그 눔이 나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한다.

"아. 오지 마. 개**********!"

쓰레기들이 놓여있는 웅덩이 같은 곳을 배회하던 검은 개가 이빨을 드러내며 빠르게 자전거를 향해 달려든다. 또다시 개와의 단거리 경주를 하듯 미친 듯이 페달을 밟고 남아있던 체력도 완전히 바닥이 난다.

"아오. 짝대기를 하나 장만하던지, 짱돌을 들고 다니든지 해야지."

조금씩 해가 저무는 동안 멀리 작은 벽돌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도로를 빠져나와 몇몇 사람들이 차에서 짐들을 옮기고 있는 작은 식당으로 갔지만 문이 닫혀있는 집은 사람의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집 주변에 텐트를 칠만한 좋은 공간이 있지만 썩 마음이 내키질 않고.

짧은 고갯길을 돌아 나오니 저 멀리 석양빛을 반사시키는 양철지붕 같은 것이 보인다.

"집 같은데, 3~4채 정도. 5~6km만 가면 되겠는데."

몇 채의 집이 모여있는 것 같은 곳을 향해 마지막 힘을 다해 달려간다. 5~6km 정도 될 것 같았던 거리는 좀처럼 줄어들지를 않고 30분이 넘게 흐릿한 집들의 실루엣을 바라보며 달려간다.

무려 10km 정도의 거리를 달려 도착한 동궈이 마을.

"몽골에 가면 눈이 좋아진다고 하더니, 어떻게 10km 떨어진 작은 집이 눈에 보였던 거야?"

멀리서 보였던 양철 지붕의 집은 생각했던 그대로의 모습이다. 집을 지나 도로변으로 작은 주유소와 몇 채의 집들이 들어서 있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어떻게 저렇게 먼 곳에서 이곳이 보였지?"

식당이 있는지 찾기 위해 도로를 따라가다 마주 오던 오토바이를 탄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샌 배노!"

남자에게 인사를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오토바이의 남자가 언덕 위에 있는 집을 가리킨다.

"저기에 가라고?"

어리둥절하게 서 있으니 언덕을 오르던 오토바이가 멈춰 서더니 다시 나를 향해 작은 간판이 붙어있는 집을 가리킨다.

"몰라. 일단 가 보자!"

언덕을 올라가 보니 그곳은 식당이 아니고 작은 슈퍼다.

슈퍼에 들어가 주변에 식당이 있는지 물어보려 해도 핸드폰에 네트워크가 잡히질 않는다. 난감해하며 한숨을 돌리고 있으니 중년의 아주머니가 가게를 닫아야 한다며 나가라고 한다.

"아니, 왜 문을 닫아. 음료수라도 하나 살게."

슈퍼 아주머니에게 겨우 오렌지 음료수 하나를 사들고 가게를 나오니 다른 남자와 얘기를 나누던 오토바이의 남자가 나에게 다가온다. 툴가가 적어준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메시지를 보여주니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

시큰둥하게 반응을 하는 남자의 표정을 이해하기 어려워 정확한 의사 전달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김병남 선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해보려 했지만 전화기마저 먹통이다.

"내 핸드폰이 안돼! 너, 취 핸드폰 있어?"

온갖 제스처로 표현을 해도 시큰둥하게 주유소가 있는 길 건너편 방향의 게르를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인다.

"저기가 네 집이야? 저기로 가자고?"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의 남자를 따라 게르가 있는 곳으로 간다. 내가 이해한 내용이 맞는지 주저주저하고 있으니 빨리 오라며 손짓을 하는 남자.

남자를 따라 들어간 게르에는 어린아이 둘과 남자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와 서너 명의 남자들이 앉아 있다. 고글과 헬멧을 벗고 인사를 하니 침대에 앉으라며 안내를 하고 우유차를 내어준다.

그리고 부셔놓은 과자 가루 같은 것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 와 나에게 먹으라고 한다. 무엇인지 몰라 약간을 집어먹으니 남자는 바구니를 처음 놓여있던 곳에 놓아둔다.

"몽골 집에 방문하면 의식적으로 먹는 그런 건가?"

게르의 기둥에 걸어놓은 2G 폰을 보여주며 사용하라 제스처를 해서, 남자의 전화기로 김병남 선교사와 통화를 한다.

"여기 호르고 가는 도중에 게르에 들어왔는데 하룻밤 신세를 지겠다고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김병남 선교사와 통화를 한 남자는 여전히 시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 않은 듯 자리에 앉아 맥주를 따라 살짝 입을 갖다 댄다. 그리고 사람들과 무언가 대화를 하던 남자는 맥주잔을 채우고 상대에게 건네주고, 잔을 받은 남자는 살짝 입을 갖다 대듯 한 모금만 마시고 다시 남자에게 건네준다.

이번에는 집을 들어서는 남자에게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마지막으로 그의 아내에게도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무엇을 하는 거지? 느낌상 마지막 차례는 난데?"

게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던 중 아니나 다를까 남자는 다시 맥주잔을 채워 나에게 준다.

"이걸 어떻게? 어떻게 하는 거야? 마셔? 전부? 내가 전부 마시라고?"

나의 제스처를 보며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 우유차와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것을 내어주고, 잔을 돌려 마신 술을 주는 것이 몽골의 손님을 맞이하는 풍습인가 생각한다.

쇼바가 높은 오토바이를 타는 몽골의 유목민들.

항상 작은 가죽 가방을 옆에 차고 있고.

가방 안에는 망원경이 들어있다.

다섯살짜리 꼬마 바른자야의 집에서 하룻밤을 신세진다.

바른자야에게는 어린 젖먹이 여동생이 하나 있고.

숲이 있는 곳이라 겨울철에는 늑대 사냥을 했던 모양이다.

맛있는 요거트까지 얻어먹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양 떼들의 사이에.

텐트를 친다. 텐트를 보고 손을 잡고 끌고 들어가 게르의 침대에서 잠을 자라는 남자의 권유에 정중히 감사의 인사만을 하고 텐트로 돌아온다. 김병남 선교사님의 말에 따르면 몽골 사람들은 의사표현이 직설적이고 확실하다고 한다.

텐트에서 자겠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고 그 후로 의견을 물어보거나 권유하지 않는다.

바른자야에게 남은 초콜릿을 건네주기 위해 게르로 들어간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바른자야의 젊은 엄마는 나에게 양고기 볶음밥을 한 그릇 건네준다. 양고기 향이 퍼지는 볶음밥은 꽤나 괜찮은 맛이다.

텐트에서 잠을 자는 동안 늦은 시간까지 오토바이들이 게르를 들렀다 간다. 몽골 사람들은 조금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체체를렉에서도 새벽까지 나이트클럽이나 노래방 같은 곳에서 시끄럽게 울려대는 음악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밤하늘의 별을 조금 쳐다보고 싶지만 너무 춥다. 바람과 산길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초원의 라이딩이 그리 쉽지만은 않지만 조금씩 몽골의 사람들에게 익숙해져 간다.

완전히 통신이 끊겨버린 밤, 그냥 자는 것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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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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