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1일:2018.11.08 / 비・20도

통영-고성-사천-삼천포항-삼천포대교-남해

비가 내리는 날씨, 하루종일 비예보가 있어 통영에서 스테이하며 하루를 보낼까 생각하다 오전내 강수량이 미미하여 그냥 달려보기로 했다. 예상에 없던 통영에서의 시간으로 인해 제주도로 넘어가는 일정과 여수에서 보낼 시간들이 빡빡하게 느껴졌다. 일단, 사천(삼천포)까지만 가보자.

이동거리

62.35Km

누적거리

1,452.13Km

이동시간

4시간 59분

누적시간

79시간 26분


고성
삼천포대교
45Km/3시간 30분
17Km/1시간 29분
통영
사천
남해
 
 
1,452Km

 

새벽 6시부터 시작된다는 비예보는 저녁 9시가 조금넘어 투두둑 투두둑 텐트의 지붕을 때려댔다. 급히 짐들을 정리하고 숙소를 잡기위해 통영항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어둠이 내리면 그만큼 더 어두워지는 통영의 거리, 여전히 마음에 들지않는 도시의 침울함이다. 서호시장 건너편 통영여객선 터미널의 주차장을 살펴보고 비를막고 텐트를 칠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5mm가 안되는 빗줄기에 숙소를 찾는다면 더 긴여행에서 수많은 날씨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까 생각하였다. 주차장의 쉼터와 터미널 입구의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터미널 입구의 공간은 턱이 있어 비가 흘러내리지 않고 주위가 막혀있어 비바람도 막을 줄 수 있어 좋았지만 새벽녘 주변 섬으로 출발하는 여객선이 있다면 사람들의 간섭을 받을 것 같았다.


터미널 건너편 소문난 3대 할매김밥집의 불빛이 켜져있는 것을 확인하고 충무김밥 2개를 주문하였다. 점심에 먹은 부실한 충무김밥이 아무래도 이상하여 한번더 먹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새벽에 몇시쯤 여객선이 다녀요?" 통영여객선터미널의 첫배는 4시 30분에 출발하였다. 터미널 입구의 공간에 텐트를 치기에는 사람들의 출입이 있을 것 같아 아쉬웠다. 


터미널 주차장의 지붕이 있는 쉼터에 텐트를 치고 내리는 비는 막았지만, 지면을 타고 빗물이 흘러내리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아침까지 시간당1mm 내외의 강수량을 확인하고 그정도면 지면에 젖어들어 흘러내리지는 않을 것 같다 안심하였다.


다시 먹어본 충무김밥에는 오징어무침이 들어있었지만 꼴뚜기 같은 것이 함께들어 있어 쓴맛이 느껴졌다. "이것도 아닌데.. 아니야"

 

 

이른 아침,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주차장 지면을 적셔놓았을 뿐 다행이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여객터미널에 들려 간단히 세면을 하는사이 내리던 빗줄기는 잠시 멈추었다.


안개에 싸인듯 뿌옇게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고 일기예보를 다시한번 확인하였다. 12시까지 비는 내리지 않고 1~3시부터 5~10mm의 강수예보였다. 어찌됐든 몇시간동안은 비가 내릴 것 같지 않았다.


통영에 머물며 하루를 보낼까 고민하였지만 이틀간 통영에서의 시간이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여수로 향하는 길, 비가 내리기전 사천까지 이동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비가오면 고성읍까지 가서 일찍 쉬자"


 

흐린날의 출근시간, 고성으로 가기위해 원문고개로 향하는 복잡한 도로길. 한두개의 언덕길을 지나야했고, 신경질적인 크락션 소리를 들으며 어수선한 도로를 달려야했다. "여유가 없는 동네인가? 불편한 동네네!"


원문고개를 넘어 고성으로 향하는 14번 국도를 따라 이동하였다. 고성에 들어서며 차츰 줄어들던 차량던 통행량들과 충분한 국도의 갓길은 통영도로의 스트레스를 잊게해주었다.


 

흐리지만 비는 내리지않던 날씨는 고성읍의 경계면을 들어서자 가는 빗방울를 떨어뜨렸다. 아마도 비구름이 고성에서 통영방향으로 이동하는 것 같았다. 조금씩 거세지는 빗속을 20여분 달리고 고성읍내를 얼마 남기지 않고 자전거를 세웠다.


 

신월IC의 고가도로 밑에서 비를 피하며 이내 멈출 것 같지않은 날씨, 길건너편으로 보이던 국밥집에 들려 점심을 해결하며 시간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신호등을 건너 들어선 황소국밥집은 불이 껴진 채 임대문의의 안내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빗속 라이딩에 젖어있던 몸은 자연스레 긴 탄식을 뱉어내었다. "아.."



다행히 옆건물에 간단한 식료품을 함께 파는 낚시마트가 있었다. 따듯한 난로가 놓인 마트안의 온기에 나도 모르게 손을 부벼대었다. "아.. 춥다!"


흐린날씨에 뜻하지 않은 방문객, 비에 젖은 라이딩복장의 낯선 손님에 대한 약간의 놀람과 경계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낚시 용품들이 어수선하게 놓인 매장의 안으로 라면같은 간단한 식료품을 팔고있었다.


컵라면과 구은계란 1줄을 손에들고 컵라면에 부을 뜨거운 물을 찾았다. 생뚱맞은 표정의 여자는 먹고갈 것인지를 묻더니 "물은 따로 안주는데, 저기서 받으세요" 하였다.


난로위에 놓인 커다란 주전자를 가르키자 벽쪽에 놓인 정수기에서 받으라 안내하였다. "뭐가 저리도 불만일까?" 생각하였다.


 

통영에 도착하여 곰장어를 굽던 사내와 한적한 식당안에서 무신경하게 티비와 핸드폰을 하던 성게비빔밥집 종업원 그리고 울쌍을 짓는듯한 표정의 여자까지. "뭔가 퉁명스럽고 신경질적이며 불쾌한 느낌이야."


웃음기없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있는 감정을 누르며 타인을 불편하게 했던 지난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한조각, 꼭 한조각만큼의 여유가 왜그리도 없었을까?" 생각하였다. 


"웃는 사람이 되고싶다."


 

빗줄기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고성읍까지의 거리, 주변의 숙소 등을 검색하였다. 이동을 할 수 없이 비가 계속된다면 폐업을 한 황소국밥집의 계단위나 신월IC의 고가밑에 텐트를 치고 하루를 보낼 생각이였다.


다행히 한시간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빗줄기는 가는 이슬비처럼 주춤하여 가까이 고성읍내까지 이동하기 위해 출발하였다. 고성읍에 도착하여 길을 헤매는 사이 굵은 빗줄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편의점에 들어가 따듯한 커피 한잔으로 젖은 몸을 녹이며 고성에서 머무를 것인지 빗속 라이딩으로 사천까지 갈 것인지 고민하였다. 30여분이 지나도 빗줄기는 잦아들 것 같지 않았다. "몸에 냉기가 오를정도 추위는 없으니 사천까지 가보자."


패니어에 들어있던 우비를 꺼내입고 사천까지 가장 짧은 거리의 33번 국도를 타고 이동하였다. 여행전 천냥마켓에서 구매해둔 고급 땡땡이 우비.

 

 

비를 맞으며 달리는 라이딩이였지만 춥지는 않았다. 오르막과 간간히 이어지는 맞바람속에서 땀을 배출해내지 못하는 비닐 우비탓에 등과 가슴으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헬멧을 때리는 빗줄기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리는 더운 땀방울 그리고 천천히 젖어드는 신발의 축축함을 동시에 느끼며 페달링을 이어갔다.  


 

빗속에 침낭과 텐트가 젖어버리지 않을까 싶어 짐받이의 하단에 비닐봉지를 깔고, 위쪽을 바람막이로 덮어두었다. 여행전 주문해 놓은 렉용 패니어 가방이 늦게 도착하여 사용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상리면 삼거리에서 사천으로 향하는 1016번 지방도로 빠져나왔다. 33번국도의 이동은 차량이 통행이 많지않고 넓은 갓길이 이어져 나름 편안한 이동이였지만 간간히 지나치는 화물차량이나 대형차량으로 자전거가 빨려들어가는 듯 휘청거림의 불편함이 있던터였다. 


 

 

한적한 도로변에 연꽃공원이 있어 잠시 쉬어가라며 자리를 내주었다. 마을앞 논들의 한가운데 펼쳐진 너른 연꽃밭 상리연꽃공원.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오르는 계절이면 그 향과 색깔이 얼마나 고울까 생각하며 연꽃공원의 사이사이 산책로와 연꽃밭 한가운데 올려놓은 정자들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그려보았다. 


"어둠이 찾아든 초여름의 밤, 그윽하게 퍼져오는 연꽃의 향과 짙어져가는 여름의 정취속에서 한없는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도 크게 보기

고성 상리연꽃공원


 

상리면을 지나 1016번 지방도는 비구름이 산을 타고 넘어가는 깊은 산속으로 길을 안내하였다. 비가 멈추고 차량의 통행이 사라진 산길의 고요함과 한껏 깊어진 늦가을의 파스텔빛 얼룩들을 타고넘는 하얀 비구름의 움직임이 시간의 흐름을 멈추어 놓았다. 


 

얼음골공원에서 잠시 휴식하였다. 커다란 저수지와 계곡을 두고 캠핑을 할 수 있는 팬션처럼 보였다.


 

"이렇게 넓은 저수지가 사유지라니. 어쨌든 운치있네."

 

 

 

시간의 멈춤, 적막하고 고요한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산길에서 뜻하지않은 여행의 작은 행복감을 느꼈다.  



사천으로 향하는 낮게 이어지는 1016번 지방도를 따라 사천시에 들어섰다.  


 

 

 

농촌마을의 작은 읍내처럼 낡은 시간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사천시 변두리의 작은 마을들을 지나 사천시로 향하는 길이 경쾌하였다.


 

 

궂은 날씨속, 원했던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하이면의 산길에서 느껴던 마음속 작은 여유가 하루의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삼천포에 왔어."


 

 

 

도착의 기쁨과 함께 허기가 밀려와 삼천포항 주변의 음식특화거리로 이동하였다.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밀집되어 있어 이른 저녁을 해결하고 숙소를 잡기에 편하겠다 생각하였다.


 

 

 

 

먼저 주변 노산공원에 들려 시간의 여유를 부리며 비가 그친 삼천포의 해안을 구경하였다.

 

 

 

 

 

오래된 옛노래가 레코드판의 잡음과 함께 나즈막히 울려퍼지는 노산공원의 해안 테크길.


 

 

 

 

 

 

 

8년전 전국일주를 하며 하룻밤 머물렀던 숙소를 찾았지만 조금 변해버린 거리탓에 그때의 숙소를 찾을 수 없었다. 남해를 힘들게 돌아 해가 떨어진 삼천포대교를 넘어왔을 때 친절하게 맞아주던 좋은 기억이 있던 곳이였는데 아쉬웠다.


몇몇의 회집들이 도로면에 있을 뿐, 음식특화거리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한시간정도 주변을 헤매며 숙소와 음식점을 찾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천천히 저녁이 다가오는 시간, 숙소를 잡기위해 어플을 켜고 저렴한 모텔과 후기등을 살펴보고 두곳에 전화를 걸었다.


체크인 가능시간까지 한시간이 넘게 남아있는 곳은 패쓰. 바로 체크인이 가능한지 묻고 위치를 물으니 삼천포대교 근처라고 안내하며 바로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하여 예약을 하고 통화를 마쳤다.  


 

지도앱을 켜고 숙소의 위치를 확인였다. 삼천포대교 근처의 숙소라 생각했던 숙소는 삼천포대교를 넘어 남해에 위치한 곳이였다. "헉.. 사천이 아니구 남해잖아."


예약을 취소하기 위해 전화를 다시 걸어 위치를 묻다 어차피 내일 넘어갈 곳이니 그냥 가자싶어졌다. "근데, 식사를 못해서요. 주변에 음식점이나 식당은 있지요?"


"네, 바로 가까이 회집이며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습니다." 너무나 경쾌하게 답하시는 여사장님의 목소리에 싱거운 질문을 한 것처럼 머쓱해졌다. 언제 올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거리가 멀어져 1시간 정도는 걸릴 것이다 답해주었다.


 

남해와 사천을 잇는 다리는 삼천포대교, 초양대교, 늑도대교, 창선대교 4개이다. 지난 전국일주때 해가 떨어진 어두운 초행길에 계속 이어지는 대교들을 넘으며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생각났다.


 

  

  

 

 

 

 

자전거 한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자전거길. 패니어에 다리의 난간들이 걸리지 않을까 조심조심 조향을 하며 대교들을 넘었다. "조금만 더 인심을 쓰지."


 

 

  

 

 

 

 

 

 

 

일관성있게 좁은 자전거길. 날이 좋고 무거운 패니어가 없다면 차도로 이동하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았다. 창선대교를 마지막으로 남해군으로 들어섰다.


 

 

창선대교의 주변 바다를 향해 들어선 숙소에 도착하였다. 패니어와 짐들을 숙소의 입구에 내려놓고 안내데스크에서 호출을 하였으나 아무도 없었다. 조금전 전화를 받았던 여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물으니 잠이 일이있어 외부에 나왔다 하였다.


안내데스크에 놓아둔 열쇠를 집어들고 정해준 룸으로 들어갔다.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는 방과 바다를 향해 넓게 트인 전망을 갖춘 아주 좋은 룸이였다.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비에 젖은 옷들과 신발, 모레와 흙이 묻은 패니어들을 순서대로 세척하고 온기가 들어온 방안에 말려두었다.


눅눅해진 침낭과 텐트를 펼쳐놓고 전자기기들을 모두 꺼내어 콘센트에 꽂아두고나니 "꼬르륵" 간절한 배고픔의 울림이 느껴졌다. 아무리 보아도 바다를 향해 서있는 외진 언덕의 숙소 주변에 음식점은 없을 것 같았다.     


 

잠시 멈추었던 비는 기상예보대로 굵은 빗방울로 바뀌어 다시 내리기 시작하였다. 다시 여사장에게 전화를 하였다.


"제가 배가 고파서요. 주변에 식당이 어디에 있어요?"


주변에 식당과 당항 주변의 횟집거리 숙소에서 차로 5분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당연히 차로 올것이라 생각한 주인의 경쾌한 안내는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것이였다. 


"대략 난감이네. 비가내리는 멋진 풍경의 바다와 따듯하고 좋은 잠자리, 더할나위없이 모든것이 좋은데 굶게 생겼구나."


 

지도 크게 보기

바다로 향한 전망이 아름다운 남해 창선도 나폴리모텔


여사장이 오면 횟집까지 태워달라거나 콜택시를 부를 생각으로 룸으로 돌아왔지만,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배고픔은 몇분이 지나지 않아 인내심의 바닥을 드러냈다.


"사장님, 들어오실 때 치킨같은 거라도 사도 주시면 안될까요?"


치킨 배달이 된며 비비큐 치킨을 주문하라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비비큐 치킨이 맛있어요!" 알려준 번호를 전화를 하여 프라이드 치킨을 주문하였다.


"거긴 7Km 거리가 있어서 추가로 배달료가 3,000원입니다." 어디서 배달이 되는지 궁금해졌다.


 

얼마지나지 않아 여사장이 도착하였다며 전화를 주었다. 몇차례의 인간적인(?) 통화로 친숙해진 여사장과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숙박비를 결제하자 어떻게 하냐며 "컵라면이 있는데 그거라도 드릴까요" 하였다.


"아니요. 알려주신 치킨을 시켰어요." 말하고 이내 "네, 컵라면 하나 주시면 좋겠어요." 하였다. 


방그시 웃던 여사장은 현관옆에 세워둔 자전거를 안쪽으로 들어놓으라 말하며 공실로 비어있는 룸앞을 가르켰다.  


 

너무 허기진 탓인지 배달이 된 치킨은 반을 먹지 못하고 남기였다. 하지만 모든게 편하고 좋았다.

 

사진과 여행자료를 정리하며 영화채널에서 방송되는 인터스텔라를 보았다. 티비를 통해 3~4번 방송되는 영화를 본적이 있지만 중간에 잠을 자거나 중간부터 보거나 했었다.


"지금의 모든게 그저 좋다. 정말 좋은 하루였어. 기막힌 반전의 하루.." 


수면용 영화가 아닐텐데 이번에도 역시나 잠들어 버렸다. "미안하다. 머피!" 



 

GPS 정보

 


D+9일 : 2018.11.06 / 여전히 맑음・19도

봉화-진영읍-창원-마산-고성 동해면-거류면-통영 광도면-통영-통영항

이른아침 자욱히 피어오른 봉화의 아침을 맞이하고 노대통령님의 묘역을 참배하였다. 뭉클한 무언가가 아래로부터 울렁거렸다. 소박한 김해의 작은 마을. "감사합니다!" 

이동거리

101.56Km

누적거리

1,338.70Km

이동시간

6시간 44분

누적시간

69시간 15분


창원
고성
27Km/1시간 42분
74Km/5시간 02분
봉화
마산
통영
 
 
1,339Km

 

안개가 내려앉은 봉화마을은 여느 시골의 아침처럼 고요했다. 서리가 내려서인지 결로현상처럼 텐트과 이너텐트 사이에 이슬이 맺혀있었다. 


무심하게 툭툭 텐트를 몇번 쳐보고 텐트를 정리하지 않은 채 마을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봉화마을은 마을의 입구에서 대통령님의 묘역까지는 300미터가 안되는 정말 작은 동네였다. 마을의 초입에 주차장과 안내소가 있고, 중간쯤 둥지휴게소와 봉화장터 그리고 마을의 우측에 생가터와 뒷편의 사저, 묘역으로 이어졌다.


 

 

떠오르는 아침해를 바라보며 큰 기지개를 펴보았다. 시골의 아침은 언제나 하루에 대한 설레임을 불러일으킨다.


 

새벽 잠결에 뭔가 뽀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텐트를 나오니 이쁜 냥이 두녀석이 앉아있었다. 마치 싱거운 다툼을 벌일 후의 연인처럼 보였다. "너희들이였구나!"


 

길을 따라 세곳정도에 헌화를 위한 국화가 무인 판매대위에 놓여져 있다. 


 

 

 

길옆으로 작은 초가집으로 복원된 생가가 보인다.


 

 

 

부엌과 방 2칸짜리 본체와 화장실과 헛간의 별체. 시골에서 자라 익숙한 집모양과 분위기였다.


 

 

 

대통령님 나오세요! 생가터 옆 돌담위 공간. 퇴임 후 이 곳에 나와 방문객들과 짧은 대화들을 나누는던 장소이다. 지금은 대나무가 심어져 있어 사저를 감싸고 있었다. 가끔 유튜브로 보았던 장면들이 머리속에 생각이 났다. 


 

돌담 앞으로 여러개의 의자와 대통령님의 영상이 돌아가는 스크린이 놓여져있었다. 길건너 추모의 집이 보수중이라 이곳에 임시로 마련해 놓았다.


 

사저가 공개되어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 알았다. 아무도 없는 봉화마을에서 현장접수 1번은 할 수 있는데 월, 화요일은 휴관이였다. "어, 오늘이 몇요일이지?"


울산에서도 그렇듯 여행을 하는동안 날짜나 요일개념이 없어졌다. 할 일 없이 핸드폰을 만지는 일도 없고, 뉴스나 최신 정보들을 서핑하지도 않고, 저녁시간의 헛헛함을 채울 누군가를 찾을일도 없어졌다. 그저 오늘은 어디를 갈지, 날씨는 어떤지, 무엇을 먹을건지 하는 단순함밖에 없다.


 

핸드폰의 날짜를 확인하고 오늘이 정기휴일인 화요일임에 아쉬워했다. "아쉽다. 쉽게 할 수 없는 1번인데."


 

 

 

대통령님의 묘역. 방명록을 남기는 곳에 따듯한 아침햇살을 즐기는 잘생긴 냥이 한녀석이 앉아있었다. 


 

 

 

 

 

 

 

 

 

몇걸음 옮기면 모두 볼 수 있는 작은 마을. 마을회관으로 돌아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세면을 한 후 물기가 남아있는 텐트를 닦아내고 정리하였다. 


 

국화 두송이를 집어들고 헌화를 하기위해 다시 묘역으로 향하였다. 방명록에 짧은 감사의 글을 적고 국화 두송이를 헌화하며 긴 감사의 묵념을 하였다.


 

 

 

 

 

 

 

여전히 잘생김을 뽑내며 앉아있던 녀석, 결국엔 근무를 시작하던 경호원에게 쫓겨났다.


 

 

 

추모의 집앞 익숙한 대통령님의 모습으로 포토존이 있었다. "대통령님, 제 자전거랑 한장 찍으세요!"


 

 

 

 

생가터 옆에 위치한 기념품 가게에 들렸다. 작은 내부에 아기자기한 여러가지 기념품들이 전시되고 판매되었다. 


 

 

여행중 사용할 간편한 티셔츠, 캡모자, 작은 수건, 손노트 그리고 카메라에 달아줄 노무현재단의 로고줄을 구매했다. "여행중이신데 무게가 더 늘었네요. 택배로 보내줄 수 있어요. 그럴까요?" 기념샵을 관리하던 여성분이 방긋 웃으며 말하였다.


"그럴까요!" 하며 바로 사용할 물건을 빼보니 티셔츠 한장이 남았다. "하하, 보낼게 없네요."   


 

패니어에 기념품들을 집어넣는 사이 조금전의 관리인분이 말을 걸어왔다. "일산 어디에서 오셨어요?" 고양에서 왔다 대답하니 "그러니까 고양 어디에서.. 일산도 고양이잖아요?" 하였다.


"아, 행신동에서 왔어요." 자신은 가라뫼에서 살다 남편을 따라 내렸왔다며 반가워했다. 믹스커피 밖에 없다며 따듯한 커피 한잔을 내어주었다. 


"믹스커피가 정말 먹고싶었어요. 감사합니다." 


여행에 대해 짧은 대화를 나누고 봉화마을을 떠나 통영으로 향하였다. 아침을 먹고싶었지만 모두가 영업을 하기전이였다.


 

이번 여행중에 꼭 들려보고 싶은 곳은 울릉도, 경주, 통영, 여수, 목포, 군산이였다. 울릉도에서 시간을 아껴 일찍 빠져나온 이유중에 하나는 통영을 일주하는데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봉화마을에서 통영으로 가기위해서는 내륙의 국도를 타고 이동하여야 했다. 꽤 지루한 라이딩이 될 것 같았다.


읍단위의 도시라기에는 제법 크고 복잡한 진영읍에서 첫번째 길헤매임으로 30분이 넘는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봉화마을에서 여유있는 시간을 충분히 보낸터이라 통영까지의 이동시간이 촉박하게 느껴졌다.



단감을 파는 직판장들이 줄이어있던 진영읍을 벗어나 창원으로 향하는 14번 국도를 타고 라이딩 하였다. 창원과 마산지역은 처음와본 도시이다. 차량 통행이 많아 복잡한 도로는 버스와 택시, 신호등과 교차로 등을 신경쓰느라 힘들었다. 


도로변의 인도는 좁게 느껴지고 변변한 자전거길조차 없었다. 큰 도시들의 시내를 관통하는 라이딩은 정말 피곤하고 피하고싶다 생각하였다. 


 

창원역과 멀지않은 마산역을 지나 도로변의 다이소를 보고 자전거를 세웠다. 여행중 에어매트를 대신할 저렴한 매트가 필요했다. 좀더 날씨가 추워지면 바닥의 냉기가 그대로 전해질 것 같았다.


일반적인 매트는 부피가 너무컸고, 등산용 매트는 겨우 엉덩이만 깔고 앉을 수 있는 크기였다. 셀카봉과 카메라 삼각다리를 사들고 쵸코바를 먹으며 30여분을 쉬었다. 


생각해보니 언양시장에서 점심이후 변변한 식사를 못한 것이다. "이래저래 지칠만 하네.."


 

혼잡한 마산시내를 벗어나자 바로 밤밭고갯길과 동전고갯길이 연이어 힘들게 하였다.  동전고개의 큰커브를 돌자 멀리 터널같은 것이 보였다. 설마라는 짧은 탄식과 함께 자전거를 세우고 말았다.


세워둔 자전거의 기울기가 이상하였다. "어, 원래 이렇게 기울어져 있었나." 킥스탠드를 안쪽으로 밀어넣고 자전거을 다시 세우자 툭하고 킥스탠드가 부러져 버렸다. 


 

"튼튼하다고 했는데.. 이게뭐야." 그 자리에 앉아 공구로 킥스탠드를 제거하고 공구를 꺼낸김에 안장의 높이도 조금더 올려 놓았다. 그리고 지난번 안장조절 후 계속 삐걱소리를 내던 안장의 볼트들도 마저 조여놓았다.


"참 게으르다. 공구 하나 꺼내기가 그렇게 싫어서.."


 

동전터널을 지나 2번국도와 합쳐진 도로는 진북터널을 앞두고 자동차전용도로로 변하였다. 10여미터를 거꾸러 끌고와 국도옆으로 난 구도로로 이동하였다. 진영읍의 길헤매임부터 시작되어 뭔가가 자꾸 꼬이는 날이였다.


잔잔한 내리막길이니 다행이다 생각하며 임곡삼거리를 지나 한적한 도로변의 해물칼국수 간판의 식당에서 멈추었다. 오후 2시가 넘은시간 허기졌고 조금 지쳐있었다.

    

 

작은 식당안에서 된장찌개로 보이는 식사를 맛있는 하는 사람을 보고 "저도, 저걸루 주세요." 하였다. 괜찮은 식사였다.


점심을 해결한 후 통영으로 이동하기위해 지도앱을 켜고 지도를 확인했을 때 77번 국도의 교차로를 2Km정도 지나쳐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식후의 든든함탓에 덜하였지만 조금 기운이 빠졌다.


"오늘은 정말 운이 없는 날이네. 어쨌든 밥은 먹었으니 그것으로 됐다."


 

암아교차로로 되돌아와 77번 국도를 조금 이동하자 진해만의 바다가 펼쳐졌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라는 이정표를 보며 내심 포항에서부터 시작된 내륙의 이동과 오늘하루 계속되었던 국도라이딩의 지루함음 달래줄 것이라 기대하였다.


 

잔잔한 진해만의 바다위에 양식장의 부표들이 줄을맞춰 가지런히 떠있었다. 감탄을 불러일으킬만한 특별함은 없었지만 오랜만에 마주한 해안의 고즈넉한 풍경이 좋았다.  


 

창포리의 짧은 해안길이 끝나고 고갯길을 마주하였다. 이제 고갯길을 앞두면 자연스레 자전거를 세우게 된다.


 

창포리의 고개를 넘어 바로 이어진 동진교를 넘어 고성으로 들어섰다. 


 


창포리의 해안면을 복사, 붙여넣기 한듯이 짧은 해안면과 고갯길이 이어졌다. 고갯길 끝에 동해면의 해맞이공원에서 남해의 풍경을 잠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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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동해면의 해맞이공원


 

해맞이공원을 지나자 다시 시작된 고갯길을 넘었다. 연이어 고갯길을 넘는사이 피곤해져갈 때 길가의 오래된 고목들이 잠시 쉬어가라는 듯이 자신들의 품을 내주었다.


 


오래된 고목들이 무리지어 서있는 공간, 지난 오랜세월 마을사람들의 희노애락이 묻여있는 듯 하였다. 고목에 기대어 귀를 기울이면 마치 지난일들의 이야기들을 소곤소곤 들려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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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줏대감 고목들이 서있는 전도마을회관


 

큰 호수와 같은 느낌의 동해면의 안쪽 해안을 돌아, 넓은 평야지대를 가로지르는 거류로를 따라 이동하였다. 4:30분, 통영과는 거리는 아직 20Km가 남았다. 


고성군청과 통영으로 향하는 길이 나뉘어지는 거류면의 당동삼거리에서 편의점에들려 쉬며 일몰까지의 한시간정도 남아있는 시간동안 부지런히 달리면 어둠이 내려앉기전 통영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두개의 큰 고갯길을 더 넘으며 통영으로 향하는 77번 국도는 조금씩 차량이 늘어나기 시작하였고, 50여분을 달려 노산삼거리에서 14번 국도와 합쳐졌다. 조금 더 넉넉해진 14번 국도의 갓길을 달리는 동안 천천히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속도를 내어 달리던 자전거는 통영관광 안내소에서부터 시작되는 원문고개를 만났다. 통영과 거제로 향하는 차량들이 정체되어 붉은 브레이크등이 어지럽게 이어지는 원문고개 1Km 거리를 10여분만에 힘겹게 올랐다.


원문고개를 오르며 약간 풀린듯한 다리는 눈앞에 펼쳐진 통영의 바다와 야경의 감상은 뒤로하고 어여 내려가서 쉬자며 재촉하였다.     


 

다른 도시의 중심지에 비해 협소한 통영시의 무전사거리와 북신사거리를 지나며 크락션을 울려대는 차량들의 틈사이에서 불쾌감이 들었다. 통영항으로 향하는 작은 언덕길을 앞두고 지쳐있던 몸은 자전거를 세우고 신호등 건널목의 한켠에 털석 주저앉았다. 


"일단, 더는 오르고 싶지않다. 시청부근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생각해보자."


에릭스형에게 통영의 맛집을 추천해 달라하였다. 시청방향의 바다장어집과 중앙시장의 쫄복매운탕을 추천하여 가까운 시청부근의 바다 장어집으로 결정하고 시청을 돌아 무전사거리로 향하였다. 


"왜, 외진 언덕빼기에 시청이 있는거야?" 


 

통영항으로 가는 작은 언덕길을 피하려다 더 높은 고갯길의 시청을 찍은 것이다. 불빛조차 희미한 언덕마을을 내려가 제2청사 주변의 곰장어집 유람선을 찾았다. 


몇몇의 곰장어집을 지나쳤지만 유람선의 간판은 보이지 않아 위치를 묻기위해 전화를 걸었다. 손님이 많아 바쁘다는 여자주인은 몇명인지를 묻고, 어디에 있는지를 묻고, 위치를 알려주며 언제 올건지를 물었다.


길가의 좌측코너를 돌자 바로 유람선이 보였다. 산곰장어를 파는 실내 포장마차처럼 보였고 식당 테이블에 몇몇의 손님들이 들어차 있었다. 가게앞에서 불을피워 살아 움직이는 산곰장어를 굽는 남자에게 자전거를 두어도 되는지를 물었다.


모른다며 알아서 하라는 퉁명스런 대답이 돌아왔고, 식사를 할 수 있는냐는 질문에 못알아 들을 사투리 억양으로 안된다는 대답을 다시 퉁명스럽게 하였다.


그런사이 조금전 통화를 했던 여자 사장님이 나오며 자신과 통화를 한 사람이 맞는지를 묻고 가게안으로 안내를 하려하자 남자의 투덜거림이 거세졌다. 계속 불을피워 곰장어를 굽고있다는 불만같은 것을 토해내며 퉁명스런 말투를 이어갔다.


잠시 두 사람이 다투는 것을 보고 순간 민망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제가 조금전에 전화한 사람이 맞아요. 됐습니다. 다음에 올게요." 하였다.   


자신의 불만을 토해내는 남자에게서 나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작은 감정의 불만이나 고민들을 가볍게 웃어넘기지 못하고 볼쌍스런 표정으로 이기적인 감정의 불필요함들을 배설하였던가. 


"그런 모습으로는 아무것도 해소되지 않아. 오히려 내 자신을 어지럽히고 타인에게 상처만을 남길 뿐." 


 

곰장어구이가 먹고 싶어졌다. 유람선의 남자사내가 붉게 피어로은 숯불에 굽고 있던 살아있는 곰장어가 머리속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한편 외면당한 무안함이 반감의 고집처럼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몇몇 바다장어집을 어플을 통해 검색을 하고 통영항의 맛집 두군데를 선택하였다. "결국 통영항을 가야하는구나." 


작은 언덕길을 넘어 중앙시장과 서호시장를 지나는 사이 거리의 분위기는 어둡고 음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통영항 주변의 첫번째 식당은 2층에 위치하고 있어 패쓰하고 윤이상공원의 두번째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먼저 야영을 할 수 있는지 공원을 둘러보고 길 건너편 장어구이집으로 가자 영업이 끝난 것인지 문이 닫혀있었다. 어두운 항구길을 따라 이동하며 항구 건너편 불을 밝힌 몇몇의 간판들외 딱히 아무것도 없었다. 


 

보이는 식당에서 간단하게 성게비빔밥으로 저녁을 해결하였다. 쌉싸름한 성게비빔밥 한그릇은 매력적이였지만 친절함은 느낄 수 없었다. 


 

통영대교의 예쁜 야경과 달리 인적이 없는 어둡고 침침한 도시였다. 통영의 첫느낌은 뭔가 불편하고 불쾌하고 신경질적이며 우울한 느낌이였다. "동양의 나폴리라던데.."


 

야영을 하려다 낯선 도시의 음산한 기운에 눌려 숙소를 잡고 하룻밤 지내기로 했다. 내일 통영일주전 동피랑 벽화마을을 먼저 둘러보기 위해 통영항 부근의 숙소를 선택했다.


"통영. 밝은 하늘색 같은 청량함, 이온음료 포카리스웨트 광고에 나오는 라라라라라라~라라 CM송이 생각나는 도시였는데. 완전 회색빛의 다크한 고담시같잖아."  

 

아침나절 진영읍에서부터 꼬이던 일들이 아주 많았던 고된 하루였다. "내일을 기대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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