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86일 / 맑음 ・ 16도
처이르-볼러
아침에 양고기 만두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한 간져와 아침식사를 하고 12시가 되어 처이르를 떠난다.


이동거리
103Km
누적거리
8,751Km
이동시간
6시간 07분
누적시간
616시간

AH3
AH3
63Km / 3시간 14분
40Km / 2시간 53분
처이르
토브
볼러
 
 
569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8시가 되기 전에 잠에서 깨어 감바를 기다렸지만 어젯밤 가져간 맥주를 다 마시고 잤는지 약속했던 8시까지 탁구장에 오지를 않는다.

바깥쪽에서 문이 잠겨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8시 30분이 되어서야 탁구장 문을 열며 감바가 들어오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서두르는 모습이 출근 시간에 쫓기는 모양이다.

간져와 통화를 하던 감바는 서둘러 간져의 집으로 안내하고 짧은 인사만을 건네고 바람처럼 사라진다.

"감바, 술 조금씩 마셔."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맞이해주는 간져, 웃는 얼굴이 꽤나 귀엽고 호감 가는 인상이다. 감바의 집과 형태가 똑같은 집이지만 젊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 그런지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있다.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간져의 막내딸은 어린이집에 갔는지 보이질 않고, 키가 180Cm는 될 것 같은 14살의 큰 아들과 둘째가 등교 준비를 하고 있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거실이 이어지는 처이르의 아파트 구조.

"신발을 벗어야 하는 거야? 신어야 하는 거야?"

침대가 놓인 안방과 거실 그리고 부엌으로 나누어진 아파트.

안방에서 간져가 건네준 사진첩을 보고 있는 사이 간져는 만두를 만들기 위해 준비를 한다.

간져의 아내는 어릴 때 배구를 했고, 간져는 몽골 씨름을 하던 집안이다.

20살 시절의 간져와 그의 할아버지, 그의 할아버지는 몽골 씨름 챔피언이었나 보다.

"간져, 너 역변한 거니?"

냉장고에서 양고기의 살코기와 기름 부위를 꺼내어.

두꺼운 손으로 제법 능숙하게 칼질을 한다.

180Cm에 가까운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켜 필요한 재료들을 사 오게 하고.

살코기를 잘게 썬 후 적당량의 기름 부위를 썰어 놓는다.

우유를 냄비에 붓고 소금을 약간 넣어 끓이고.

가스 시설이 없는 몽골에서는 전기 렌지를 사용한다.

양파와 다진 마늘을 넣고.

몽골에서 쓰는 향신료와 후추를 뿌리고.

약간의 물을 넣어 잘 버무려 놓는다.

큰 물통을 들고나갔던 큰아들이 물을 가져오고, 몽골에서는 큰 물통을 들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간져, 네 아들은 농구나 배구를 해야 할 것 같아."

"농구를 하고 있어."

또래들에 비해 키가 큰 간져의 아들은 농구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만두 피를 만들기 위해 밀가루를 붓고.

적당히 물을 부어가며 밀가루 반죽을 만든다.

우유가 끓어오르자 국자로 수차례 떠서 붓기를 반복한 후 불을 끈다.

보온병에 우유차를 담아놓고.

밀가루 반죽을 떼어내고.

납작한 만두피를 하나 만들어 놓더니.

반죽의 상태가 좋은지 본격적으로 만두피를 만들어 놓는다.

따듯한 우유차를 한 잔 내어주고.

만두피에 다진 양고기를 넣고 오물오물 만두를 빚는다.

"간져, 너 많이 해봤구나."

처음 떼어낸 밀가루 반죽으로 커다랗게 만두를 빚더니.

두 번째 반죽으로는 조금 작은 만두를 빚어놓는다.

찜통에 빚은 만두들을 올려놓고.

맛있는 냄새가 나도록 만두를 삶는다.

맛있는 냄새가 날 때쯤 찜통의 뚜껑으로 연신 부채질을 하고는.

하나씩 예쁘게 접시에 올려놓는다.

몽골에서 파는 김치와 오이 피클, 케찹과 마요네즈를 꺼내놓고.

한 시간 반 만에 맛있는 양고기만두 식탁이 차려진다.

추르릅, 양고기의 육즙이 흘러내리는 맛있는 양고기만두로 아침 식사를 한다.

양고기만두를 먹는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를 찾던 간져가 반찬통을 꺼내어 만두를 넣고, 오이 피클을 담는다.

"가면서 먹으라고? 아, 이 센스 있는 남자를 어떻게 한다니."

맛있는 아침 식사를 차려준 간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울란바토르를 향해서 출발한다.

12시, 처이르의 입구까지 배웅을 해주는 간져와 포옹을 하고 동남풍이 불어 오늘은 괜찮다는 제스처를 하며 페달을 밟는다.

"야! 바람. 맞바람이 불듯이 강풍으로 밀어야지."

몽골 남부의 바람은 북서풍이 불때 강한 바람이 불어오고, 남동풍이 부는 날에는 살랑살랑거리듯 바람이 잠잠하게 느껴진다.

처이르에 이르며 갓길이 사라며 도로의 상태는 나빠지고, 밑도 끝도 없는 초원의 평지 길은 여전히 계속 이어진다.

"겨우 두 시간이 지났는데 왜 배가 고프지."

이틀 전 감바를 만나며 사두었던 빵을 꺼내어 먹었다. 별 기대 없이 상하기 전에 먹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맛이 좋다.

"도대체 이놈의 땅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일까?"

빵을 먹고 천천히 출발하려는데 뒷바퀴가 주저앉아있다. 잠시 쉬기 위해 갓길로 들어서며 철심 같은 것이 박혔나 보다.

"아놔 몰라. 천천히 쉬어갈 테다."

그동안 너무나 힘들게 했던 맞바람이 불지 않으니 왠지 모를 여유가 생겨난다.

펑크를 정비하고 천천히 길을 따라 이어간다.

아무것도 없는 초원의 길은 계속 이어지고.

평평했던 초원의 길은 이전과는 다른 산의 모양들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것도 맛이 괜찮으려나?"

고비숨베르에서 토브로 넘어가는 경계가 높은 언덕 위로 나타난다.

지도에도 잡히지 않는 작은 식당이 초원 한가운데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고, 간져와의 아침식사로 출발이 늦어져 오늘의 목적지인 바가항가이까지는 도착할 수 없을 것 같다.

조금씩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작은 다리의 난간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잠시 쉬어간다.

"여기에 텐트를 쳐볼까? 장소도 넓고 괜찮은데."

다리 밑으로 나있는 가축들의 이동 통로에 텐트를 칠까 생각하다 포기하고 바가항가이에 이르기 전 도로변에 있는 식당으로 가기 위해 길을 이어간다.

"20km만 더 가볼까. 100km는 채워야지."

일몰이 시작되고 조금씩 체력이 지쳐갈 때쯤 철도변의 작은 마을과 구글맵으로 검색이 되었던 식당이 나타난다.

"지도상에는 저기가 식당인데."

몇몇의 화물 차들이 정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도로변의 식당이 맞는 것 같다.

건초더미와 소를 싣고 있는 한국에서 사용되던 중고 포터 트럭이 식당 앞에 정차되어 있다. 몽골의 승용차는 일본의 도요타를 많이 타는 것 같은데 트럭과 미니 승합차 같은 것은 한국의 중고차량들이 많은 것 같다.

식당 앞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동안 화물차 기사들과 사람들이 나에게 인사를 하며 반갑게 말을 건넨다. 한국말을 하는 사람도 있고, 영어를 하는 사람도 있다.

"몽골 사람들이 회화에 소질이 있나?"

저녁 시간이 되어 식당 안은 조금씩 사람들로 붐비고, 군인으로 보이는 단체 손님들이 메뉴를 고르기를 기다린다.

메뉴 사진들이 있으니 음식을 주문하기가 너무 편하다.

"고기, 고기가 필요해."

면과 밥, 고기, 만두 등의 메뉴들 중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계속 먹어왔던 양고기볶음을 주문한다. 무언가를 추가로 할 것인지 물어보려던 여직원은 이내 고개를 가로젓더니 포기한다.

"이 근처에 호텔이 있나요?"

단체 손님들의 주문이 끝나고 조금 한가해진 틈을 타 카운터의 여직원에게 번역기를 보여주니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 쪽의 계단을 가리킨다.

"아, 여기도 식당과 숙박을 같이 하는구나."

일단 배고픔을 달랜 후 체크인을 할 생각으로 숙박비와 방을 정하지 않고 자리로 돌아온다.

언제나 밥보다 고기의 양이 많은 몽골의 메뉴.

"밥은 왜 이렇게 주는 거야? 최신 트렌드인 거야!"

밥을 모두 먹고 카운터의 여직원에게 다가가 숙박비를 물어보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계산기에 30,000~40,000을 적어서 보여준다.

"방이 여러 개 있는 건가? 요금이 다르네."

객실마다 요금이 다른 것으로 이해하고 방을 볼 수 있는지 제스처로 물어보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X를 그린다.

"방을 보고 결정을 해야지? 방을 보여줘!"

어렵게 번역기를 돌려 방을 보고 싶다는 의사를 보여주니 이번에는 진지한 표정을 한 채 알아듣지 못하는 몽골어로 계속 설명을 한다.

"나 몽골어 못 해!"

여직원의 말이 끝나고 번역기를 보여주는 순간 나와 여직원은 한참 동안 함께 깔깔거리며 웃는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그렇게 설명하면 어떻게 하니? 하하하하하."

여직원과 눈을 마주치며 한참을 웃고 툴가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내용인지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한다.

"툴가야, 여기 작은 식당의 호텔인데 방을 보자고 하니까 안 보여줘."

여직원과 오랫동안 통화를 한 툴가가 여직원의 말을 전해준다.

"형, 거기는 호텔이 아니고 울란바토르 방향으로 30km 정도 가면 호텔이 있다고 해요."

"헐!"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여직원은 식당에서 난데없이 방을 보자고 하니 재미있어 웃었고, 나는 몽골어를 못 알아듣는데 진지하게 설명하는 것이 귀여워서 웃었던 것이다.

어쨌든 한바탕 웃고 나니 기분이 좋아진다. 툴가에게 식당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는지 부탁을 해달라 말한다.

"근처에 아무데나 마음에 드는 곳에 텐트를 치라고 하네요."

"아무데나? 아무데나는 어느 정도의 범위야?"

식당의 앞마당에 짐을 풀고 있으니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다가와 인사를 하고 짧은 대화들을 건넨다. 명함을 주며 여행 경로들을 설명도 해주니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엄지를 치켜세워 주기도 한다.

텐트를 설치하고 식당에서 조금 떨어진 공용 화장실에서 하루의 마무리를 편하게 정리한 후.

텐트로 돌아오니, 식당에 들어설 때부터 관심을 보이던 인상 좋은 아저씨가 그의 와이프와 함께 텐트를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다. 살짝 텐트의 내부를 보여주니 텐트와 안쪽 바닥 등을 만져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는다.

제법 쌀쌀하고 추운 저녁의 날씨, 텐트에 들어가 자료들을 정리하는데 조금 전의 아저씨가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난다. 텐트를 열고 빼꼼히 얼굴을 내미니 자기네 집으로 가서 자자는 제스처를 한다.

"여기 따듯해요."

그의 와이프까지 와서 뭐라고 몽골어를 말하며 텐트가 춥다는 뜻의 표현을 하는 것 같다. 손을 가로저으며 텐트가 따듯해서 괜찮다는 제스처를 계속하고 있으니 아저씨는 나의 손을 만져보고 안 된다는 듯이 집으로 가자는 제스처를 계속한다.

핸드폰으로 자료를 정리하느라 손이 조금 차가워졌을 뿐인데.

"바엘샤, 감사합니다."

마음을 써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하면서 괜찮다는 제스처로 웃고 있으니 아저씨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돌아간다.

아저씨를 따라 몽골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다시 짐들을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과 함께 오랜만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즐거움을 놓칠 수 없다.

"새로운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오늘은 편하게 텐트에서 자고 싶어."

"하루 종일 네가 그리워서 꾹꾹 참았다."

추운 날씨에 자동 냉장이 된 레츠비를 마시니 너무나 좋고 행복하다.

"힝, 몇 개 더 사둘 걸 그랬나."

간져와의 아침 식사, 거친 바람이 없던 한가한 라이딩, 시원하게 깔깔거리며 웃었던 여직원과의 대화 그리고 푸근한 인심을 느끼게 해준 아저씨까지 오늘도 제법 근사한 날이다.


"몽골에서 근처는 도대체 몇 Km의 거리일까?"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85일 / 맑음 ・ 8도
처이르
지난 밤 강풍이 휘몰아치더니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며 쌀쌀해졌다. 바람의 방향은 알 수 없고 울란바토르를 향해서 길을 떠난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8,648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610시간

게르구경
감바탁구장
0Km / 00분
0Km / 00분
처이르
처이르
처이르
 
 
466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강풍으로 정전이 되었던 처이르의 다시 전기가 들어와 있다.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데 창문 밖을 쳐다봐도 바람의 방향을 알 수가 없다.

바람의 방향을 알아보려 숙소 밖으로 나오니 쌀쌀한 겨울의 한기가 느껴진다.

"뭐가 이렇게 추워?"

슘베르의 날씨를 보니 영하의 기온에 찬바람이 불어 체감온도가 -6~-10도 적혀있다.

옷을 다시 챙겨 입고 처이르 초입에 세워진 커다란 석상이 있는 공터로 나간다.

"대체 어디서 불어오는 거야?"

동풍, 울란바토르의 방향으로 측면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온다.

220km가 남아있는 울란바토르, 처이르를 벗어나 숙소나 음식점이 있는 곳까지는 100km 정도가 떨어져 있다.

"120, 130km. 갈 수 있을까?"

여유를 두고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릴지, 조금이라도 울란바토르의 거리를 줄여놓을지 고민하다 매일 이어지고 있는 거센 바람을 예측하기 어려워 그냥 출발하기로 결정한다.

"일단 출발하고 갈 수 없으면 돌아오지 뭐."

처이르를 빠져나가기 전 슈퍼에 들러 빵과 물 등을 사두어야 한다.

몽골 슈퍼에는 이상하게 낱개로 포장된 빵이 없고, 모두 무게가 나가는 대용량 빵들뿐이다.

"한국에서 보름달이나 단팥빵 같은 것도 가져다 놓지."

매장을 두 바퀴나 돌며 적당한 빵을 찾아도 보이질 않고 그럭저럭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빵을 두 개 골라 든다. 간의 포장된 빵이라 빨리 먹지 않으면 변질돼서 버려야 할 것이다.

"한국 사람이세요?"

한국에서 5년 정도 일했다며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서툰 억양이지만 정확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울란바토르에 가고 있어요."

어디를 가는지 묻는 질문에 답하고 반갑다며 짧은 인사를 주고받았다. 계산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이미 계산을 마친 남자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기다리고 있다.

김치 컵라면과 믹스커피를 낱개로 사들고 있던 남자는 슈퍼의 근처에서 탁구장을 운영한다며 시간이 되면 컵라면을 먹고 가라며 제안을 한다.

남자를 따라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한 그의 탁구장으로 따라간다. 슈퍼의 건물에 있을 줄 알았던 그의 탁구장은 아파트 지하를 개조하여 운영되고 있다.

자전거를 묶어두고 지하에 있는 그의 사무실로 들어간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의 지하는 한국의 오래된 빌라들의 지하와 비슷한 느낌이다.

책상과 소파가 놓은 작은 사무실에는 탁구 대회의 입상 사진들과 우승 상금으로 주어졌을 몽골 화폐 모양의 트로피들이 곳곳에 붙어있다.

"탁구 선수이신가? 탁구를 잘 치시나 봐요."

감바(Гамбаа), 52세의 남자는 몽골 처이르에서 경찰 근무를 하며 탁구장과 당구장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10년 전에 한국에서 5년 정도 일을 했었다. 나 한국말 잘 못해."

한국에서 5년 정도 일을 하다 불법 체류로 추방되었다는 감바와는 한국어로 대화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와, 탁구 대회에서 우승을 많이 했네요. 근데 우승 상금이 되게 적네."

이틀 동안 휴무라는 감바는 어제 저녁 친구들과 술을 마셔서 해장을 하기 위해 김치찌개 컵라면을 사러 슈퍼에 들렀던 것이다.

감바의 컵라면을 먹고 얘기를 나누는 사이 처이르에서 하루를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어 감바에게 말했더니 자신의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출발하라고 한다.

"전에 다른 외국인들도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갔어."

감바는 처이르에서 경찰 근무를 하고 있고, 그의 부인이 탁구장을 운영한다고 한다. 탁구장은 어린이들이나 동네 주민들을 가르치는 레슨반 같은 것이 있고, 감바 챔피언스 탁구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낡은 지하실을 개조하여 4개의 구역으로 나뉜 감바의 탁구장은 포켓볼을 칠 수 있는 당구장과 아이들의 레슨구역 그리고 성인들이 이용하는 탁구장으로 되어 있다.

아파트 지하실의 낡고 허름한 시설이지만 규모가 제법 되는 감바의 탁구장이다.

어제 생각했던 대로 오래된 아파트의 1층을 개조하여 은행과 슈퍼 같은 공간이 들어서 있다.

간단한 생필품을 파는 가게가 아파트의 1층을 개조해 들어서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1960년대 러시아에 의해 지어졌다는 감바의 아파트로 간다.

한 층에 세 가구가 입주해 있는 오래된 아파트는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더 낡고 허름하다.

집을 사며 은행의 대출을 받았던 감바는 3개의 방이 있는 건너편 아파트에서 최근에 2개의 방이 있는 이곳으로 이사를 하며 은행의 대출을 상환한다고 한다.

2천만원 정도 하는 감바의 아파트는 욕실과 부엌, 거실 그리고 안방으로 심플하게 나눠진 구조이다. 며칠 전 이사를 하며 집안은 정리가 되지 않은 짐들이 펼쳐져 있다.

"아내가 집 정리를 하라며 울란바토르에 갔는데, 오면 잔소리를 할 거야."

"오늘 쓰레기를 치워도 내일이면 다시 바람에 날려와 의미가 없어."

동네의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비닐봉지와 페트병들을 보며 감바가 말한다. 아파트 단지 내에 쓰레기 분리수거함을 와이프와 함께 자비로 만들었다며 설명을 해준다.

아내와 통화를 하던 감바는 아내의 여동생이 병원에 입원을 했다며 함께 가자고 한다. 도로변에서 지나가는 차를 잡아 무언가를 말하더니 무작정 타라고 한다.

단지 앞에 택시들이 서는 정류장이 있지만 공공버스가 없는 처이르에서 동네를 다니는 차들을 잡아 목적지로 이동하는 것이다. 병원이 있는 건너편 산동네로 이동한다.

감바의 아파트 단지와는 달리 나무판자의 담들에 게르와 단층 집들이 어지럽게 들어선 동네이다.

"예전에 이곳이 게르들이 모여있던 동네이고, 내가 사는 곳은 러시아 애들이 아파트를 지어놓은 동네야."

작은 단층 건물과 2층 건물들로 이루어진 처이르의 병원. 아내의 여동생이 어디가 아픈지 정확히 모르고 있던 감바는 산부인과 병동에서 자신을 부르는 아내를 보고서야 산부인과 병동으로 들어간다.

2층 건물의 산부인과 병동은 입구를 들어서자 접견실 같은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어 병실의 안쪽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아내의 여동생, 처제가 셋째를 가져 제왕절개를 통해 아이를 낳아야 해서 울란바토르에 갔던 아내가 급하게 간병을 하러 돌아온 것이다. 접견실에서 잠시 아내와 이야기를 하던 감바는 옆에 있던 남자와 전화를 주고받더니 가자고 한다.

"아는 사람이에요? 여동생 남편?"

"아니 모르는 사람이야. 내가 전화기가 안돼서 무슨 일이 생기면 나한테 전화해 달라고 했어."

통신 요금을 내지 않았는지 전화를 걸 수 없는 감바가 산부인과에서 처음 만난 남자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전화해달라고 한 것이다.

"뭐. 이 동네의 대인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몽골을 여행하며 히치하이킹을 하듯 지나가는 차량을 잡고 스스럼없이 합승을 하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부탁하고 받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시간 나면 집 정리를 하라고 잔소리를 하네."

병원을 나온 감바는 다시 지나가는 승용차를 잡더니 뭔가를 얘기하고 타라고 한다.

흙바닥 길의 골목을 돌아 작은 마트 앞에서 내린다.

작은 슈퍼에는 생필품보다 술들이 더 많이 진열되어 있다. 감바의 형이 운영하는 작은 슈퍼에서 맥주 한 캔씩을 마시고 집으로는 걸어가자고 한다.

"여기 있네. 징기스!"

"게르가 보고 싶은데."

나무판자로 된 다른 사람의 집의 문을 열고 골목을 가로질러 가던 감바에게 게르가 보고 싶다고 말하니 모두 아는 사람들의 집이라며 게르에 가보자고 한다.

넓은 마당에 게르 한 채가 지어진 집.

양철로 지어놓은 현관을 지나 게르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동그란 게르의 내부는 가구들과 화로, 식탁, 침대 등이 놓여있다. 다섯 명 정도의 가족들이 따듯한 게르 안에서 이방인의 방문을 신기해하며 반갑게 맞이해 준다.

따듯한 우유차를 한 잔 내어주고.

기도를 올리는 곳 같은 작은 공간도 있고.

간단한 조리 기구가 있는 작은 식탁.

그리고 가축의 똥을 말려 연료로 사용하는 화로가 가운데에 놓여있다.

나를 위해 몽골의 음식을 만들어 주겠다며 말린 가축의 똥을 집어넣고 화로의 화력을 높인다.

말린 가축의 똥은 가볍고 냄새가 전혀 나질 않는다.

"초원의 좋은 풀만 먹고 자라서 냄새가 나질 않아."

"아니, 김종훈씨가 여기에서."

멋진 가죽 부추를 신은 아저씨는 한국의 예비군 군복을 입고 있다. 아마도 한국에서 수거되는 한 옷들이 몽골에 넘어오는 모양이다.

가축의 똥을 넣은 화로는 이내 화력이 높아지고.

큰 냄비에 약간의 물과 소금을 뿌린다.

얇게 썰어놓은 양고기와 적당량의 물을 넣고 끓이면 끝.

소변을 보러 넓은 길가에 나와 시원하게 해결을 하고.

군복을 입은 아저씨는 식수를 길러와 집들에 배달을 해주며 조금의 배달비를 받는다고 한다.

나에게 관심이 많은 게르 주인의 동생과 한 컷.

게르의 주인인 형은 오토바이를 수리하느라 바쁘고.

쇼바가 높은 몽골의 오토바이에는 푸른 천들이 묶여 있다.

소변을 보고 온 사이 양고기를 넣은 음식은 팔팔 끓어가고.

작은 그릇에 한 그릇을 가득 담아주고.

몽골의 김치라며 작은 병을 건네준다.

모양으로 보아 소금 같은 것으로 절여놓은 것인데, 국물에 조금 넣고 먹으니 짭조름하고 향긋한 향이 난다.

육수 국물에 빵을 적셔 먹기도 하고.

소금 이외에 아무런 양념이 들어가지 않는 양고기 요리는 마치 쇠고기 뭇국 같은 시원한 맛이 났다. 진한 국물이 속을 따듯하게 해주고 편안하게 해준다.

"야. 이건 완전히 해장용이야."

많이 먹으라며 계속 담아주는 양고기 국물을 세 그릇을 비우고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한국에서는 어떤 일을 했어요?"

"서울에서도 있고, 강원도에서 있고. 공장에서도 일하고 건설 현장에서도 일하고 했어."

10년 전, 감바는 관광비자를 가지고 불법체류를 하면서 5년 정도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을 했다고 한다.

"강원도에서 일할 때는 마음이 아프고 하면 바다에 가서 앉아있고 술도 마시고 했어."

강원도의 공장에서 일하며 3개월치의 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감바는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을 겪었음에도 다시 한국에 가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불법 체류로 추방되어 비자가 나오지 않는 감바는 6월 초에 결정되는 비자 신청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감바는 처이르의 체육행사가 있는지 회의를 하기 위해 잠시 가게를 비우고, 사무실에 앉아 7시에 돌아온다는 감바를 기다린다.

그 사이 어린 친구들이 탁구장으로 들어와 돌아가며 탁구를 치고.

두 번째에 서이는 감바의 첫째 딸은 탁구를 잘 치는지 몽골의 동급생 중 두 번째의 실력이라고 한다.

"감바, 제법 멋진데."

사무실에 앉아 자료들을 정리하는 나에게 탁구장의 아이들이 몰려든다.

너무 많은 질문들을 하는 아이들에게 중국 여행의 동영상과 한국의 영상들을 보여주니 호기심 가득 지켜본다. 옆자리에 앉아 핸드폰의 영상을 관심 있게 보며 수줍게 질문을 건네는 분홍색 여자아이에게 명함을 주니 너무나 좋아하며 친구들에게 자랑을 한다.

남자아이가 나에게 포켓볼을 치자며 제안을 한다. 어떤 포켓볼의 룰로 게임을 하는지 몰라 아무것이나 집어넣고 아이들의 반응을 보니 로우, 하이 볼을 집어넣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알았어. 내가 높은 숫자를 넣으면 되는 거지?"

분홍색 옷을 입은 여자아이의 밝은 치어리딩을 받으며 가볍게 게임을 정리해 주고, 포켓볼 게임을 제안했던 남자아이에게 잘 쳤다며 악수를 해주니 멍하게 서있다.

"내가 요즘 술을 안 먹어서 손떨림이 없다. 임자 잘 못 만났어 너."

꼬마 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노는 사이 회의를 마친 감바가 돌아온다.

"감바, 애들이 뭐라고 하는 거예요?"

"자기들에게도 명함을 달라고 하는데."

아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며 명함을 한 장씩 나눠주고서야 어수선했던 사무실이 조용해진다.

"아내의 엄마가 저녁을 줄 거야. 집으로 가자."

감바의 장모의 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간다. 감바의 장모님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있다.

양고기 국물로 끓인 국수와 빵으로 저녁을 먹고.

"감바, 저녁에 맥주 한잔할까요? 내가 슈퍼에서 맥주를 사서 들어갈게요."

"좋지."

10시까지 영업을 해야 하는 감바는 탁구장으로 들어가고, 슈퍼에 들러 몽골의 큰 페트병에 담긴 맥주 두 통을 사들고 감바의 집으로 간다.

아무리 열쇠를 돌려도 잘 열리지 않는 감바의 현관문. 10분 정도를 낑낑거리며 이리저리 열쇠를 돌리다 어떻게 열린 것인지 모르게 철커덕 문이 열린다.

현관 문을 열자 바로 거실문이 이중 문처럼 붙어있다.

냉장고가 없어 작은 베란다에 맥주를 놓아두고 거실에 앉아 핸드폰으로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으니 감바가 집으로 돌아온다.

"벌써 끝난 거예요?"

"아니, 오늘 여기에서 못 잘 것 같아. 아내의 작은 아버지 식구들이 울란바토르에서 와서 집에서 자야한데."

처제의 출산을 앞두고 울란바토르에서 가족들이 내려왔는지 가게의 사무실에서 자야 한다고 한다.

"아, 괜찮아요. 그럼 가게로 가요."

다시 돌아온 탁구장은 감바 탁구회의 동호회 사람들이 게임을 하고 있다.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탁구를 치는 감바의 공과 라켓을 다루는 실력이 애사롭지 않다.

남자와 여자의 팀으로 나누어 내기 게임을 하며 탁구를 치는 모습들을 구경한다. 제법 실력들이 좋고 즐겁게 떠들면서 운동을 한다.

"한국 사람도 구경만 하지 말고 같이 치자고 하는데?"

"탁구 못 쳐요. 그냥 구경할게요."

다들 실력들이 좋아서 게임이 안될 것도 같고 무엇보다 오른쪽 어깨가 좋지 않아 스윙이 불가능하여 탁구를 칠 수 없다.

핸드폰의 충전기를 가져오기 위해 사무실의 열쇠를 달라고 하니 구석기 시대에 사용했을 법한 열쇠를 건네준다.

"이런 열쇠 지금은 없어."

남자와 여자팀으로 나눠 5,000투그릭의 첫 번째 게임은 여자팀이 이겼고, 이후 7,000투그릭의 두 게임은 남자팀이 이기며 게임이 끝났다.

맥주를 마시며 탁구를 지켜보던 나에게 여자의 팀이 내기에서 진 금액으로 맥주를 추가로 사다 준다.

"이 아저씨는 몽골 씨름을 하는 사람이야."

키가 크지는 않지만 건장한 몸을 가진 남자를 가리키며 감바가 소개를 시켜준다.

간져, 30대 초반의 몽골 씨름을 하며 중고차를 수입해서 판매하는 밝게 웃는 얼굴이 귀여운 남자다.

감바, 간져와 맥주를 마시며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눈다. 통역이 되는 감바가 있으니 너무나 편하고 좋다.

"내일 가기 전에 양고기만두를 해줄게."

간져는 양고기만두를 해주겠다며 아침에 집으로 나를 초대한다.

맥주를 마시고 헤어지던 간져는 당구장에서 포켓볼을 치는 남자들에게 당구 큐를 넘겨받더니 게임을 정리한다.

"오, 간져. 운동 신경이 좋은데."

몽골 씨름을 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있는 것인지, 간져의 등치가 좋아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간져의 스스럼없는 행동에 비해 다른 사람들의 표정들은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아침을 초대해 준 간져와 악수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온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감바는 계속 남은 맥주를 비우자며 술을 권한다.

"오늘 하루 일해서 11,000투그릭을 벌었어. 이건 돈이 아니야."

"그래 감바, 비자가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이번에도 나오지 않으면 다시 몇 년을 기다려야 해."

"혹시 비자가 나와 한국에 들어가게 되면 연락을 줘. 도움을 줄 수는 없지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와줄 사람을 소개해 줄게."

"다른 것은 필요 없어. 일자리 센터 같은 곳에 함께 가서 이야기만 해주면 돼."

"그래, 한국 사람이 같이 가서 말해주면 못되게는 안 할 건데."

처이르에서 경찰 근무를 하는 감바는 한 달에 60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는다고 한다. 몽골의 생활 물가가 중국과 비슷한 것을 감안하면 너무나 적은 월급이다.

한국과 몽골의 환율은 2:1. 한국에 들어가 이삿짐센터나 막노동을 하면 벌 수 있는 300~400만원이면 몽골의 6개월의 급여이다. 90일의 몽골 여행비자로 불법 취업하여 일을 하고 돌아오면 집을 한 채 정도 살 수 있는 금액이니 모두들 한국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자민우드, 조르노크 그리고 처이르에서 만난 바트보르드, 오드바야르, 간볼트, 감바까지 모두들 한국에 가서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

중국 여행이 사람들과의 스킨쉽에 흥미롭고 즐거웠다면 몽골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마음을 무겁고 안타깝게 만든다.

"감바, 이제 그만 마셔. 나 내일 자전거 타고 가야 해."

약간의 취기가 오른 감바를 어렵게 집으로 돌려보내고, 남은 맥주통을 들고 감바는 장모의 집으로 돌아간다.

"밖에서 문을 잠그고 갈 거야. 무서워하지 말고 자."

"응. 지금은 감바가 제일 무서워. 하하하."

날씨가 쌀쌀해지지만 며칠 동안 남동풍이나 남풍이 불어온다.

"내일은 조금 편안한 라이딩이었으면 좋겠다."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84일 / 맑음 ・ 12도
달랑자르갈랑-처이르
연일 계속되는 맞바람의 라이딩으로 지쳐간다. 처이르까지 80km 정도를 남겨두고 있다. "아, 울란바토르가 정말 멀게 느껴진다."

이동거리
78Km
누적거리
8,648Km
이동시간
6시간 20분
누적시간
610시간

AH3
AH3
40Km / 2시간 48분
38Km / 3시간 32분
달랑자르
주계
처이르
 
 
466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중국 남부를 여행하며 매일처럼 쏟아지는 비 때문에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면, 몽골의 아침은 창문을 열고 팔을 내밀어 바람이 부는 방향을 알아보는 것이다.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바람의 방향을 느껴보니 서향의 창문으로 바람이 들이치지 않고 남풍처럼 느껴진다.

"남풍인가? 남풍이야, 동풍이야?"

밖으로 나와 바람을 확인하니 간절히 생각했던 남풍은 아니고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뭐 그럭저럭 이것도 괜찮아. 서북풍만 아니면 돼."

자전거에 패니어들을 모두 장착하고 바로 출발하려다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가 메뉴를 주문한다. 8,000투그릭의 양고기 야채볶음과 밥.

오늘 80km 정도가 남은 처이르까지 갈 것인지, 처이르를 지나 100km 정도를 이동해 울란바토르로 가는 거리를 조금이나마 줄여놓을 것인지를 고민한다.

"바람, 바람이 문제인데. 맞바람만 아니면 100km 정도 이동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식사를 하고 냉장고에 들어있는 생수를 하나 집어 들어 계산을 하려니 1,500투그릭을 달라고 한다. 몽골의 물가가 중국에 비해 그리 싸지 않고 비슷하게 느껴진다.

제대로 된 도시를 가보지 못해 일반 음식점의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지만 호텔들의 음식들은 쓸데없이 모양을 내느라 양이 적고 값이 비싸다는 느낌이다.

오랜만에 타이어에 바람도 넣어보고. 몽골의 거센 바람이 좋은 점은 도로변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깨끗이 날려버린다는 것이다. 덕분에 펑크날 일이 없어 좋다.

8시 30분, 일찍 깨어나 준비를 한 덕분에 아침을 먹고도 평소보다 일찍 라이딩을 시작한다. 몽골의 아침은 바람으로 인해 꽤 쌀쌀하게 느껴진다. 해가 하늘로 올라가는 9시 정도부터 조금씩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는 4월의 날씨이다.

"하악, 오늘도 끝이 없다."

도로의 바람은 북동풍에 가까워 우측 측면의 뒤쪽으로 불어온다. 주행에 저항을 주지 않을 만큼의 바람을 타고 1시간을 달려 보니 20km 남짓의 이동거리가 찍힌다.

"15km씩만 이동할 수 있어도 감지덕지다."

어제 이동하지 못했던 거리를 만회해보려 속도를 붙여볼 생각이었지만 길은 산길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사인샤드에서 아라크까지의 평평했던 초원의 길이 끝나고 처이르로 향하는 길은 산을 오르는 길인가 싶다.

고르도비를 넘어오던 지형들을 복사해 놓은 듯한 산들의 모양이 이어지고 오르막과 짧은 내리막 그리고 오르막이 계속 반복된다.

"길이 좋은 날은 바람이 문제고, 바람이 좋은 날은 길이 힘들게 하는구나. 몽골 너!"

작은 언덕처럼 보이는 초원의 오르막이 모굴처럼 계속 이어진다. 부드러운 능선이 보이는 초원의 산들은 보기와 달리 경사도가 있어 사람을 은근히 지치게 한다.

하나를 넘으면 다음의 능선이 기다리고 있고, 올라가는 거리와 달리 내리막길은 아주 짧게 이어진다.

"중국 황산을 가며 나도 모르게 길들여지던 산길들과 똑같네. 다 알고 있다! 고도를 높여가며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산 위의 초원에는 한 무리의 양떼들이 초원과 도로를 점령하고 있고.

많은 새끼 양들이 올망졸망 어미들을 따라다니거나 젖을 빨고 있다.

"양, 비켜 인마!"

여기저기서 울어대는 양떼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시 쉬어간다.

"사람은 없고 맨날 소, 말, 낙타, 양들하고 대화를 해야 하다니."

양들과의 대화를 끝내고 져지와 장갑을 벗고 길을 출발한다. 한번 시작되면 하루 종일 바뀌지 않던 풍향이 조금씩 정면으로 향하며 오르막길의 경사와 함께 페달링을 무겁게 만든다.

"젠장, 오늘도 시작되었구나!"

도로의 방향과 주변 환경에 따라 좌우로 바뀌며 정면을 향해 바람은 거칠게 불어오고, 이동속도는 시속 10km, 8km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계속되어 이어지는 오르막 능선들 너머로 정말 오랜만에 보는 뾰족한 봉우리의 산이 멀리서 모습을 드러낸다. 길은 산의 주변을 크게 돌아가며 자민우드에서 시작된 고르도비의 경계를 넘어 도비숨베르로 넘어간다.

AH3 도로의 삼거리 또는 사거리의 교차로는 초원으로 들어가는 초입에만 짧은 포장이 되어있고, 초원의 흙길에는 여러 방향으로 지나간 자동차의 흔적들이 어지럽게 만들어져 있다.

"그냥 내가 가는 길이 길이여!"

방향을 잡고 초원을 가로질러 목적지로 향하는 것도 신기하지만 변변한 시멘트 포장길조차 없는 것도 신기하다.

고르도비와 고비숨베르의 경계에 놓인 경찰 초소에서 잠시 쉬어간다. 가끔은 실제로 단속을 해야 경찰 모형을 세운 효과가 나타날 것 같은데 몽골의 도로를 달리며 임의의 장소에서 경찰이 검문을 하거나 단속을 하는 것을 본 적은 없다.

초코파이를 꺼내어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짙은 구름으로 해가 가려지며 쌀쌀해져 벗었던 져지와 장갑을 다시 꺼내어 끼고 출발을 한다.

중국 내몽골의 장베이에서 시작된 초원의 라이딩이 20일째가 넘어가고 있다. 바람, 언덕, 붉은 흙산들과 황금빛 초원 그리고 바람, 바람, 바람이다.

맞바람이 불어오는 초원의 도로에서 가장 힘든 것은 저기 멀리 지평선까지 도로의 선들이 보이는데 좀처럼 그 거리가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르락내리락 사라졌다 보이는 길들의 끝에 검은 도로의 선이 하늘로 올라가 있다.

"바람만 없으면 신나게 질주를 하며 업다운을 즐길 수 있을 텐데."

바람이 불어오면 몇 개의 고개를 넘고 자전거를 눕히기 바쁘다.

"아, 진짜 너무하네!"

평탄한 도로가 이어지다 앳지있게 짧은 언덕을 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참을 오르고 올라야 한다.

"빌어먹을 바람!"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눈이 아파오고 시야가 조금씩 흐려진다. 그리고 어깨는 다시 시큰거리기 시작한다.

핸드폰의 네트워크가 끊긴지는 오래고 비상식으로 넣어두었던 보리빵 같은 것을 꺼내어 먹는다. 자민우드에서 사서 조금 남아있던 베리잼을 찍어 먹는데도 맛이 형편이 없다.

"중국 슈퍼에서 골라 먹던 3위안짜리 빵들이 그립다."

푸석 푸석한 빵을 먹는 듯 버리는 듯 대충 먹고 나머지는 초원에 뿌려버린다.

"그나저나 자전거를 세우는 막대기라도 하나 만들어 볼까."

몇 개의 언덕을 땅만 보며 페달을 밟고, 네트워크가 끊겨 남은 거리를 알 수 없던 처이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들어서 있는 처이르는 생각했던 것보다 커 보인다.

"아파트 단지도 있네!"

판자촌의 모습을 생각했는데 처이르의 초입에는 길게 낮은 아파트의 단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달랑자르갈랑을 출발하며 1시쯤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처이르를 3시 30분이 넘어서야 도착한 것이다.

"쉴 거야. 나 쉴 거야! 못 가!"

도로 양편으로 마을이 갈라져 있는 처이르의 초입에서 어느 쪽으로 들어갈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한다. 구글지도로 호텔을 검색해 보니 양쪽에 사이좋게 하나씩 검색이 된다.

"오른쪽에는 아파트 단지들만 있는 것 같고, 왼쪽은 판자촌인데 병원도 있고 축구장도 있고. 왼쪽이 시의 중심인가?"

툴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하려다 쓸데없는 것으로 귀찮게 하는 것 같아 도로변에 보이는 슈퍼에 들어간다.

우리의 편의점처럼 구색이 제대로 갖추어진 작은 슈퍼이다.

"샌 베노!"

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를 하고 카운터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앉아 흐릿해진 눈을 비비벼 한숨을 내쉰다.

잠시 가게를 둘러보며 핸드폰을 꺼내어 주변에 호텔이 있는지 물으니 아파트 단지 쪽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쪽 뒤편에도 있는데?"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점원에게 어느 곳이 괜찮은지 물으려고 하니 피곤해진다. 다시 의자에 앉아 쉬면서 눈을 비비며 마사지를 해준다.

"오츠랄래, 저기 따뜻한..."

따뜻한 물 한 잔을 달라고 부탁하려는데 점원이 믹스커피를 들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다.

"오, 한국 커피! 나 주는 거야?"

너무 피곤해하며 힘들어하니 안쓰러웠는지 믹스커피를 꺼내어 타준다. 종이컵 가득 물을 담을 믹스커피, 차를 마시는 중국이나 몽골 사람들은 믹스커피에 물을 많이 넣어 묽게 타 마시는 것 같다.

콧물과 함께 목이 건조하여 콜라가 당기지 않고 매장에 다른 음료수가 있는지 찾는 도중 파란색 레츠비를 발견한다.

"유레카! 나의 사랑 레츠비!"

가게의 점원에게 '좋은 호텔'을 번역하여 구글지도로 양쪽의 호텔을 보여주니 아파트 쪽의 호텔을 가리킨다. 그리고 'ATM'을 적어 보여주니 두 사람이 뭔가 얘기를 주고받더니 호텔 쪽에 은행이 있다고 알려준다.

슈퍼의 점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도로를 따라 아파트 단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4층 구조의 아파트에는 호텔이나 은행 그리고 알 수 없는 간판들이 붙어있다.

아파트 1층에 영업을 하는 사무실들이 입주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광고판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렇다.

아파트 초입의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고 구글맵을 따라 호텔로 이동하였다. 몽골에서는 비자나 마스터, 유니온의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는 것 같지만 몽골의 물가를 무시하고 자민우드에서 현금을 조금만 찾아 쓴 탓에 비상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 내에 승용차들의 통행이 빈번하고 슈퍼마켓이나 다른 건물들도 많이 보인다. 운동을 하는 아이들과 단지 내를 걷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젊은 여자에게 호텔의 위치를 묻고 아파트 단지의 끝에 위치한 단층의 작은 건물을 보며 긴가민가 생각하며 길을 따라 들어가니 나를 보던 어떤 여자가 정문을 가리키며 오라고 손짓을 한다.

2, 3층의 호텔 건물을 생각했는데 게스트 하우스처럼 보이는 빨간 벽돌의 단층 건물이다.

마당 한편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게르가 설치되어 있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구색을 갖춘 프런트가 있고 아주머니가 밝게 웃으며 맞이해준다.

"하룻밤에 얼마예요?"

번역기를 돌려 가격을 물으니 계산기에 30,000을 쳐서 보여준다. 40,000투그릭 정도를 생각했는데 의외로 저렴하다. 달랑자르갈랑의 숙소에서 세면시설이 없어 불편했던 기억이 떠올라 방을 볼 수 있는지 제스처를 하자 방으로 안내를 해준다.

단층의 긴 복도에 방들이 나누어져 있고, 작고 오래된 방이지만 나름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는 방과 욕실을 보고 체크인을 한다.

"이거 또 온몸을 사용해서 말해야겠네."

오번역이 되어 의사전달을 할 수 없는 번역기를 포기하고 자전거 사진을 보여주며 방에 넣어둘 수 있는지 제스처 하니 방에는 넣을 수 없다며 엑스자를 표시하고 자전거를 보자며 밖으로 나가더니 호텔의 현관에 놓아두라고 한다.

좁은 현관에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 자리는 잡는데 아주머니의 아들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룸'이라고 하며 자전거를 방에 넣으라고 한다.

"오호. 땡큐!"

간만에 방으로 들어온 자전거, 쑤니터우이치에서 지아오강강이 깨끗하게 물걸레질을 하여 그나마 덜 미안하다.

자전거를 들여놓는 것을 도와주던 아주머니는 먼저 씻으라며 욕실의 온수기를 켜주고 방의 열쇠를 건네주며 나간다.

"아, 간만에 씻어볼까!"

중국제 온수기는 작동이 되는 것 같은데 찬물만 계속 나온다. 온수통에서 미지근한 물들이 새어 나오는 고장 난 온수기로 찬물 샤워를 하고 속옷과 양말을 빨아 라지에이터 위에 말려둔다.

룸이라는 짧은 단어를 말했던 남자에게 영어를 하는지 물으니 못한다고 한다. 밥을 먹는 제스처를 하고 구글지도를 보여주니 조금 생각한 후에 '드림'이라며 숙소를 물어봤던 슈퍼 건너편의 식당을 알려준다.

"걸어가는 거야?"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표정으로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많이 걸어가야 하는데. 어쨌든 밥 먹고 올게요."

도로가 아닌 흙길을 가로질러 가기 위해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고.

외관과는 달리 아파트의 출입문과 통로들은 낡은 모습을 하고 있다.

운동장 같은 경기장을 돌아서.

슈퍼마켓과 식당이 있는 곳으로 찾아간다. 처이르의 초입 도로변에는 이런 식당이 3곳이 있는 것 같다.

깔끔하게 인테리어 되어있는 식당에서.

웨이터 복장을 차려입은 남자에게 메뉴판을 건네받아 메뉴들을 구경하고.

쇠고기와 감자 구이 그리고 밥이 들어간 메뉴를 주문한다.

그리고 웨이터에게 'Амтат'를 보여주며 보드카 메뉴를 보여주니 메뉴판에서 보드카를 추천해 준다.

"50ml?"

보트카의 양을 물어보니 손가락 눈금으로 조금이라고 알려주며 핸드폰으로 숫자 100를 써서 보여준다.

"100ml? 아, 잔 술로 파는구나! Ok!"

잠시 후 예쁜 보드카 병과 술잔을 가져와 보여주고 병을 들어 올려 멋들어지게 한 잔을 따라준다.

"칭기스!"

아주 독하지 않고 은은한 향이 좋은 보드카다.

"한 38도 정도 되는가? 맛 좋네! 기억해 주겠어."

밥과 함께 나온 쇠고기 감자 구이는 제법 맛이 좋았지만 조그만 그릇에 담겨 나온 밥의 양이 문제다.

"중국의 밥 인심이 그립구나. 이 정도로는 부족해!"

16,800투그릭, 한화 8,000원 정도의 양고기 스테이크를 하나 더 주문하고 신호의 강도가 활기찬 식당의 와이파이를 사용하여 오드바야르와 페이스북 메신저 통화를 한다.

라이딩 도중 세 번씩이나 영상통화가 울렸지만 네트워크가 불안정하고 라이딩에 힘이 들어 받지를 못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오드바야르 그리고 그의 아내와 영상통화를 한다.

"오드바야르, 니 처이르! 안녕! 빨리 자! 이제 끊어!"

저녁이 되면서 손님이들이 하나둘 밀려들어온 탓인지 조금 늦게 나온 양고기 스테이크는 너무 많이 익혀진 것 같다.

하지만 레어, 미듐, 웰던 같은 것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고기는 단지 고기일 뿐.

갖은 야채들과 채소들의 과즙과 소스들을 조금씩 찍어, 한국에서도 하지 않던 나이프와 포크질을 부지런히 해가며 맛있게 먹는다.

"바람 탓에 컨디션이 엉망이야. 고기 먹고 힘내야지!"

저녁 시간의 식당은 외식을 하는 가족단위의 손님들로 자리가 가득 찼다.

식사를 하는 동안 업로드를 걸어두었던 사진들이 블로그에 올라가는 동안 통통해진 배를 튕기며 기다리고 있는데, 식당을 배회하던 한 남자가 내 앞자리에 앉더니 접시 위에 남아있는 동그란 양뼈들을 뜯으며 조금 남아있는 소스를 포크로 퍼먹는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야? 넌 누구냐?"

가만히 그의 행동을 지켜보니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걸신이 들린 사람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음식들을 핥아먹는 것이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테이블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저녁식사를 하는 깨끗한 식당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바쁘게 서빙을 하며 움직이는 많은 직원들 중 아무도 그의 행동을 제재하는 사람이 없다.

손을 들어 직원들을 불러 보아도 아무도 응답을 하지 않고 애써 외면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넌 뭐 하는 놈이길래 사람들이 다 피하며 방치하는 거냐?"

큰 소리를 내어 직원들을 부르니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내 쪽을 쳐다보지만 이내 시선들을 피하며 식사를 한다. 재차 직원을 불러 남자를 가리키자 여직원이 마지못해 다가와 남자를 몇 차례 쿡쿡 찌르며 윽박을 하지만 남자는 듣는 시늉도 하지 않고 그릇째 핥아먹을 기세다.

여직원은 포기한 듯이 카운터로 돌아가버리고 남자는 남은 소스를 모두 핥아먹고 다른 가족들이 식사를 하는 자리로 이동한다.

"뭐야? 무소불위의 주인집 아들이라도 되는 거야?"

다른 가족이 있는 식탁에서 식사를 방해하던 남자는 손님들이 먹고 남은 음식 그릇을 비어있는 테이블에 여직원이 갖다 놓으니 그곳에 앉아 남은 음식을 먹으며 술 주정을 하듯 중얼거린다.

"인구가 400배 많은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것을 이곳에서 보네. 아이고 몽골아!"

현금이 있지만 중국에서는 할 수 없었던 카드 결제를 해보고 보드카를 추천해 준 남자 직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식당을 나온다.

호텔로 돌아오니 아주머니가 눈을 마주치며 식사를 잘 하고 왔는지 묻는 듯 쳐다본다.

"Энэ нь амттай байсан. 잘 먹었습니다."

커피 믹스 두 개를 꺼내어 뜨거운 물을 끓여달라 부탁을 하고 하나는 아주머니에게 건네준다.

20일 가까이 거센 바람의 초원을 달리며 컨디션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 같다. 200km가 남은 울란바토르가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자료를 정리하는 동안 거센 바람 소리가 윙윙거리며 창문 틈을 파고든다.

"남풍, 제발 남동풍이 불어줘!"

숙소의 전기가 거센 바람에 정전이 되더니 다시 들어오지 않는다. 전기도, 난방도, 통신도 모두 끊겨버렸다. 거센 서북풍이 불어오면 하루 정도 이곳에 머물러야겠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83일 / 맑음 ・ 18도
조르노크-아라크-달랑자르갈랑
조르노크의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아쉬움 가득 작별을 한다. 여행에서 만남 사람들과 보낸 시간의 즐거움만큼 작별의 아쉬움이 언제나 비례하는 것 같다.


이동거리
56Km
누적거리
8,570Km
이동시간
6시간 42분
누적시간
604시간

AH3
AH3
28Km / 2시간 50분
28Km / 3시간 52분
조르노크
아라크
달랑자르
 
 
388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조르노크에서 보낸 이틀의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많은 것이 열악하고 부족하지만 함께 하는 좋은 사람들이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6시 30분의 알람에 잠이 깨어 모든 알람들을 해제시키고 다시 잠이 든다.

"이런 시간은 조금 더디게 지나가도 좋을 텐데."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린 것처럼 침낭을 벗어나는 인기척에 오초르가 얼굴을 내밀고 인사를 한다.

홍차와 웨하스 과자를 내놓아 그와 함께 아침을 먹는다. 다른 집들과 달리 아내와 떨어져 사는 오초르의 식탁은 전형적인 홀아비들의 식사이다.

침낭과 패니어들을 정리하고 있는 동안 정체불명의 화장품을 맡겨두었던 오드바야르의 아내가 찾아온다.

"이거 아침에 바른 다음 화장을 해 그리고 저녁에 깨끗이 씻어."

화장품의 사용법을 번역기와 제스처로 설명을 해주고 알아들었는지 물으니 알았다며 웃으며 돌아간다.

"에르덴오초르, 나 이제 가야 해! 사진 찍자."

핸드폰 삼각대를 설치하고 오초르의 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둘이 찍고."

"셋이서 찍고."

짐을 싸는 동안 인사를 하기 위해 나온 간볼트의 젊은 아내와도 함께 사진을 찍고 울란바토르에 가면 간볼트에게 전화를 하겠다고 말해둔다.

이틀 동안 점심과 저녁을 대접해 준 고마운 간볼트의 식구들이다.

자전거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어달라는 오초르.

"사진 찍는 거 은근히 좋아하네."

오초르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있는지 둘러보았지만 모두들 작업을 나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조르노크, 안녕!"

오늘 가야 할 처이르는 자민우드, 사인샨드, 처이르, 울란바토르로 이어지는 AH3 도로에 있는 도시 중 하나다. 아직 울란바토르의 모습을 보지 못하여 몽골 도시의 모습이 어떠한지 잘 모르겠지만 사인샨드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조르노크에서 130km 떨어진 처이르. 바람의 방향에 따라 오늘 내 도착할 수도 있고 이틀의 라이딩으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어디, 바람이 어떻게 불어오나?"

북서풍. 조르노크의 북서쪽에 위치한 울란바토르.

"피해 갈 틈 없는 정면 바람이군! 오늘도 완전히 틀렸다."

조르노크에서 보낸 이틀 동안 불지 않던 바람이 라이딩의 시작과 함께 맞바람으로 맞이해준다. 초속 15미터가 넘는 바람들을 맞으며 달려온 탓에 초속 6~7미터의 바람은 산들바람처럼 느껴지지만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영향은 어쩔 수가 없다.

1시간을 달려 속도를 확인해 보니 겨우 10km를 이동할 수 있는 라이딩이다.

"오늘 처이르까지는 절대로 못 가겠네. 80? 70km 정도 이동할 수 있으려나?"

처이르까지 가는 동안 작은 마을 두 곳을 지나쳐야 한다. 이틀 전 오초르와 마트를 가기 위해 들렀던 아라크와 달랑자르갈랑이다. 도시라기보다는 작은 면소재지의 시골 마을에 가깝지만 몽골의 초원에서는 제법 규모가 큰 마을이다.

"달랑자르갈랑이 60km 정도니까, 거기를 지나서 캠핑을 하면 되겠군."

아라크로 향하는 길은 간간이 오르막의 언덕들이 이어지고 12시가 되었을 때 아라크의 검문소를 통과한다.

이틀 전 오초르와 왔을 때 통행료 같은 것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아 톨게이트는 아닌데 정확히 무엇을 검문하는지 모르겠다. 차단기가 내려져있고 차량들이 무언가를 확인받은 후 통과를 한다.

검문소를 통과하면 도로의 좌측으로 아라크의 모습이 보인다.

"점심도 해결할 겸 아라크로 들어가자."

이틀 전 오초르와 왔을 때 그에게 담배라도 몇 갑 사줄 것을 하는 후회가 들어 오초르의 담배를 사고 간단한 점심과 캠핑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마을로 들어간다.

모래밭길의 마을길에 자전거의 바퀴가 빠져 제대로 타고 갈 수가 없다. 자전거를 끌고 오초르와 첫 번째 들렸던 작은 슈퍼를 찾았지만 보이질 않는다.

"어디였지? 시야가 확 트인 곳에서 오줌을 쌌는데."

마을을 한 바퀴 돌고서 초입에 있는 작은 슈퍼를 찾았다.

가게 앞에 RV 차량이 한 대 정차해 있어 가게문이 열려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문이 열쇠로 잠겨있다.

"아, 나는 왜 이런 일에는 꼭 머피가 될까?"

아쉬운 마음에 애꿎은 가게문을 만져보고 나와 초코파이 두 개를 꺼내어 점심을 대신한다.

"오초르에게 담배 한 갑이라도 사주고 싶은데."

초코파이를 먹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모자와 검은 마스크를 한 여자가 가게 앞에서 나를 쳐다본다.

"어. 저기 저번에 오초르.."

버프를 내려 얼굴을 보여주니 금세 알아보며 가게로 들어가자고 한다.

"샌배노!"

대량 포장된 비스킷처럼 딱딱한 빵들을 만지며 배가 고프다는 제스처를 하니 가게 모퉁이의 냉장고에서 소시지들을 보여준다.

"이거 하나도 팔아요?"

냉장고 위의 저울을 가리키더니 소시지 하나를 올려놓고 저울에 적힌 금액을 계산기로 쳐서 다시 보여주는 아주머니.

"중국하고 똑같네. 소시지도 저울에 달아서 파네."

소시지, 콜라 그리고 컵라면을 사들고 오초르에게 줄 담배를 달라고 제스처를 한다. 이틀 전처럼 테이블 밑에서 담배들이 든 가방을 꺼내어 보여준다. 오초르가 좋아하는 몽골 담배 3갑을 달라고 하니 가방을 뒤적이더니 2갑밖에 없다며 웃는다.

담배 가방을 뒤집어 담배들을 테이블에 모두 펼쳐놓고 보아도 오초르가 피던 몽골 담배는 2갑밖에 없다.

오초르가 '몽골'을 외치며 엄지를 세웠던 2,500투그릭의 담배 두 갑까지 합하여 계산을 하고 봉지가 필요한지 묻는 아주머니에게 핸드폰에 있는 오초르의 사진을 보여준다.

"에르덴 오초르, 오초르 알죠?"

오초르의 사진을 보며 생글생글 웃는 아주머니. 아무래도 커피를 들고 있는 오초르의 컨셉 사진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담배 두 갑을 들고 오초르의 사진을 가리키며 오초르에게 전해달라는 제스처를 두어 번 연속으로 하자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방긋 웃는다.

"응. 오초르가 여기 오면 이거 오초르한테 주세요!"

가게 아주머니와 담배, 오초르의 사진을 가리키며 의사를 전달하는 사이 아주머니는 전화기를 꺼내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기에서 오초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아주머니는 스피커폰으로 전환하여 전화기를 건네준다.

"오초르, 나 싸비야!"

"오호, 싸비!"

알아듣지 못하는 몽골어로 여전히 많은 말을 하는 오초르에게 아주머니가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것 같다.

"오초르 빠이! 담배 맡겨놨어. 찾아서 피워!"

나도 오초르처럼 그가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어로 떠들며 말해준다. 그 광경이 재미있는지 계속 웃기만 하던 아주머니는 자기가 잠을 자고 오초르에게 가져다주겠다는 제스처를 한다.

"어. 내일 오초르한테 전해 준다고."

자신이 오초르에게 갖다 준다는 것인지, 오초르가 내일 와서 찾아간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담배는 오초르에게 전해질 것이다. 아마도 담배를 보며 '싸비, 몽골'하며 담배를 피우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을 해결하면 마음이 참 좋고, 왜 그런 것들은 항상 뒤늦게 생각이 나는지 도통 모르겠다.

마을을 빠져나와 다시 AH3 도로에 들어서니 도로변의 초원에서 풀을 뜯던 낙타들이 멀뚱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 소, 말, 양, 사슴 이번에는 낙타의 등장이다.

낙타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그 생김새가 참 신기하면서도 못돼먹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재미있는 동물이다.

"야 몽골 낙타! 나 한국 사람이야."

아라크에서 처이르와 울란바토르까지의 거리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이고.

아라크의 초입에는 크지는 않지만 물이 고여있는 곳이 있어 마을이 생겨난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듯하다.

아라크를 들렸다 나오느라 40분 정도의 시간을 소비했지만 오초르에게 담배 한 갑이라도 선물해 주고 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오후 들어 바람의 방향이 우측으로 살짝 바뀌더니 바람의 세기가 더해간다. 시속 10km 정도를 이동했던 오전과 달리 8km, 5km의 속도로 진행이 느려지고 아라크를 벗어난 도로는 낮은 산들을 여러 차례 넘어가는 길로 바뀐다.

"힘들어. 쉬자."

초원의 풀밭에는 돌아다니는 작은 도마뱀은 보호색에 대한 자신감인지 잘 도망을 가지 않는다. 요리조리 재빠르게 움직이지만 도망치는 거리가 거기서 거기다.

"형 배고프다. 잡아먹기 전에 도망가라."

따듯한 바람이 불어오는 초원에 앉아있으면 눕고 싶은 생각이 들어 쉬는 것이 더 힘들다. 핸드폰을 켜봐도 네트워크는 E자를 보이며 끊겨있고.

20여 분을 쉬고 다시 출발해 보지만 계속 거세지는 바람과 오르막의 산길들이 페달링을 무겁게 한다. 바람을 이기며 조향을 하느라 어깨는 다시 쑤셔오고.

캠핑을 해도 괜찮을 듯한 언덕들과 바위들이 놓인 공간들을 지나자 풍경들은 다시 완전 평면의 평평함을 보여준다.

도로변에서 빠져나와 자전거를 눕히고 패니어를 등지고 눕는다.

"오초르와 차로 달릴 때 보니까 도로 외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던데. 저기 멀리에 텐트를 쳐도 괜찮겠어."

바람만 거세게 불지 않는다면 도로변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텐트를 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른 건초들 사이로 새싹들이 자라고 있다.

"아무래도 오늘은 달랑자르갈랑을 조금 지나서 캠핑을 해야겠다."

17km가 남아있는 달랑자르갈랑을 지나 적당한 위치에 캠핑을 하고 내일 바람의 방향을 봐가며 처이르에 머무를 것인지, 지나칠 것인지 결정할 생각이다.

조금씩 거세지던 바람은 돌풍에 가까운 바람으로 급변하고, 구름이 떠있던 하늘은 희뿌연 모래바람이 지면에서 일어나 온 사방을 뒤덮기 시작한다.

시속 5km가 나오지 않는 무거운 페달링과 휘청거리며 요동치는 핸들바를 지탱하며 얼마 남지 않은 달랑자르갈랑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꾸역꾸역 길을 이어간다.

어쩌면 급작스레 밀려오던 조르노크의 모래폭풍. 그 바람의 시작점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5km, 3km.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 애꿎은 구글맵만을 반복해서 쳐다보지만 달랑자르갈랑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뿌연 모래 먼지 사이로 흐릿하게 달랑자르갈랑의 모습이 보이고 도로변에 커라란 물 웅덩이가 있다. 물웅덩이 주변으로 동물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재미있는 사진 놀이도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 탓에 그다지 재미가 없고.

골재 공장 같은 건물을 중심으로 들어선 마을로 들어가기가 힘들어 보인다.

"여기가 달랑자르갈랑인가?"

진입할 수 없는 흙길을 포기하고 도로를 따라 조금 이동하니 도로변으로 달랑자르갈랑의 모습이 나타난다.

"에휴, 다행이다."

"처이르는 멀었네. 언제 가나."

여전히 적응이 잘 안되는 몽골의 작은 마을의 초입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숨을 고른다.

"어디부터 가서 숙소나 잠잘 곳을 찾아야 하지?"

길 건너편에 위치한 주유소에 들러 숙소가 있는지 물어보고, 숙소가 없다면 주유소 주변에 텐트를 칠 수 있도록 양해를 구해볼 생각이다.

자전거를 끌고 주유소로 향하던 중 거친 바람을 등지고 소변을 보던 남자가 나를 부른다. 이번에도 술을 마신 것 같은 취객의 느낌이 난다.

"부르지 마라. 힘들다!"

몇 차례 나를 향해 소리를 치더니 모르는 척 지나가니 별 반응이 없다.

문이 닫힌 주유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 번역기로 주변에 호텔이 있는지 물으니 바로 길 건너편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킨다.

"아, 저게 호텔이었어?"

화물 차들이 정차를 하거나 떠나는 건물을 음식점으로 생각했는데 숙박도 가능한 모양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프런트와 같은 데스크는 없고 바로 식당의 카운터가 보인다. 식당 안을 두리번거리며 호텔이 맞는지 묻자 카운터의 여직원이 자기에게 말하면 된다는 듯 제스처를 한다.

계산기에 40,000을 찍어서 보여주며 여권을 달라고 한다. 자민우드의 호텔에서도 그랬는데 몽골에서는 여권을 프런트에 보관을 한다.

여권을 받아들고 살펴보더니 새침한 여직원이 놀라는 듯한 이상한 표정과 제스처를 한다.

"왜? 오빠가 아니라서 섭섭해?"

자전거를 실내에 두기 위해 설명을 해야 하는데 난감하다. 호기심이나 적극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여직원과 어렵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옆에서 갑자기 한국어가 들린다.

"한국인이세요?"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다른 여직원이 다가와 한국말을 한다.

"한국말을 할 줄 알아?"

"네, 조금 할 줄 알아요."

프런트의 여직원과 달리 친절하고 상냥하다. 한국어를 하는 여직원에게 자전거를 안으로 들여놓고 싶다고 말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한국어를 잘 못한다고 다시 한번 말한다.

"아니야. 이 정도면 정말 잘하는 거야."

자전거를 식당의 입구에 세워두고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간다. 열쇠 뭉치를 주머니에서 꺼내더니 방의 문을 열고 안내를 해준다.

침대가 두 개 놓은 방은 제법 청소가 잘 되어 있어 괜찮다 싶었는데 방의 느낌이 왠지 낯설다.

"욕실, 욕실이 없잖아."

조르노크에서 생활하며 제대로 씻지 못하고 양치만을 하며 생활한 터라 따듯한 물에 샤워가 하고 싶다.

머리를 감는 제스처를 하며 욕실이 없는지 물으니 아주머니가 웃으며 손을 가로젓고 자신을 따라오라고 한다.

"공용 욕실이라도 있는 거야?"

방 건너편의 화장실 문을 열어 주었지만 화장실과 세면대만이 놓여있다. 아주머니가 부지런한 것인지 방과 복도처럼 화장실도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다.

"없네. 샤워 못하는 거야! 샤워!"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방의 열쇠를 건네주고 계단을 내려가 버린다.

식당으로 내려가니 저녁 시간이라 사람들이 제법 모여든다.

"고기, 고기를 먹어야 해."

고기가 들어간 그림을 가리키며 어느 것이 맛있는지 한국말을 하는 여직원에게 물어본다.

갈비찜 같은 음식과 함께 추가로 주문한 조그만 공깃밥이 나오고.

큼지막한 덩어리의 갈비찜을 크게 썰어 부지런히 먹는다. 조금 질긴 느낌이지만 입속을 가득 채우는 고기의 양이 마음에 든다.

"근데 몽골 사람들이 왜 한국말을 조금씩 하는 거지?"

식사를 하고 식당의 문 앞에 놓아두었던 자전거를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의 난간에 묶어두고 방으로 올라왔다. 세면도구를 챙겨 간단히 얼굴과 발을 씻는 것으로 만족하고.

와이파이도 없는 숙소에서 하루를 정리하는데 오초르의 아내가 페이스북 메신저로 영상통화를 걸어온다.

"헤이, 싸비. 처이르?"

아내가 있는 집으로 간 것인지 오초르는 방에 누워서 통화를 하고, 그의 아내는 마스크 팩을 하고 인사를 한다.

"오초르, 집에 간 거야? 나 달랑자르갈랑이야!"

달랑자르갈랑의 발음을 계속 반복하니 오초르가 알아듣는 눈치고, 내가 처이르까지 잘 갔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어. 이제 자야지. 빨리 끊어! 빠이 빠이!"

말도 안 통하는데 오초르와 그의 아내는 계속 웃으며 몽골말로 무어라 말을 한다.

"알았어! 빨리 자. 하하하"


바람이 계속된다면 80km 정도 남은 처이르까지의 여정도 꽤나 힘이 들 것 같다.

"아무리 이 계절에 북서풍이 어쩔 수 없다 해도 이건 너무 하잖아."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82일 / 맑음 ・ 18도
조르노크
우연히 만나게 된 조르노크의 사람들과 보낸 시간은 너무나 편안하고 즐겁다. 바쁘지 않은 몽골의 여행 일정이 하루를 더 머물며 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 한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8,514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597시간

페인트칠
카드놀이
0Km / 00분
0Km / 00분
조르노크
조르노크
조르노크
 
 
332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

아침에 일어나 오초르에게 하루 더 머무를 것이라 말하니 좋다며 웃는다. 일을 나가는 오초르를 배웅해 주고 집으로 들어와 자료들을 정리하며 휴식한다.

오늘도 여자들은 페인트칠을 하느라 바쁘다.

도로변의 초원에 나가 따듯한 햇볕을 받으며 앉아 시간을 보낸다. 작은 도마뱀 같은 것이 마른 수풀 사이로 빠르게 움직이며 돌아다니고.

"헤이, 싸비!"

멀리 철도변의 창고 지붕에서 도색을 하던 여자들이 손을 흔들며 나를 부른다.

창고 지붕의 처마를 진한 파스텔톤의 붉은색으로 칠하느라 요란하다.

지붕으로 올라가 바닥에 누워 깔깔거리며 수다를 떠는 여자들과 시간을 보내고.

색깔들도 다양하게 이쁘게도 칠한다.

남자들은 무엇을 하는지 어제부터 창고에서 떠나질 않고.

다시 집으로 들어와 쉬고 있으니 오드바야르의 아내 서열러가 들어와 밖으로 나오라고 한다.

"너 이제부터 오빠라고 해. 싸비오빠."

페이스북에 1981년생으로 소개되어 있는 그녀의 프로필을 보여주며 1974를 적어 보여준다.

"싸비 오빠!"

고개를 끄덕이더며 호칭을 따라 하더니 뭐라고 궁시렁거리며 웃는다.

밖으로 나가니 사우나장의 지붕에 사다리를 걸쳐놓고 나보고 페인트칠을 해달라고 한다.

"야, 너는 싸비 오빠라고 하랬지."

싸비 오빠를 부르며 다시 궁시렁거리고, 옆에서 지켜보던 오드바야르의 동생은 웃느라 바쁘다.

"저 위를 칠해달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빨리 올라가라며 사다리를 붙잡는다.

"그래, 너네 둘이 울라 가면 사다리가 휘어지겠다."

사다리에 올라가니 초록색 페인트 통과 장갑을 건네주고 여기저기를 칠하라며 잔소리들을 해대며 웃는다.

"알았어. 사다리 꼭 잡고 있어. 오빠 다치면 안 된다."

지붕의 한 면을 다 칠할 때쯤 점심을 먹기 위해 돌아온 오초르가 나를 부르며 무엇을 하고 있냐는 듯 외치며 빨리 내려오라고 소리친다.

"오초르, 얘네들이 일을 시켜! 혼내줘."

페인트를 칠하고 내려오니 두 명이 지붕을 쳐다보며 '모~, 모~' 거린다.

"모~ 모~"

'아니야'라는 부정적인 뜻 같은데 오드바야르가 쉴 새 없이 쓰는 표현이다.

"모~? 에이 Ok 해줘. 오케이!"

여전히 '모모' 하면서 손가락을 흔들더니 마지못해 Ok를 해주며 웃는다.

점심을 먹자며 오초르는 간볼트의 집으로 들어간다.

페이스북의 친구 등록이 된 오초르의 아내가 함께 있는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여 사진을 찍는데 역시나 오초르는 개구진 장난을 친다.

"오초르, 이게 뭐야! 하하하."

간볼트의 아내는 몽골의 우유차에 만두와 밥을 넣은 음식을 내어준다. 약간 짠듯하지만 부드럽고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한 끼다.

자전거를 타지 않아 배고픔이 없는데 한 그릇을 더 먹으라며 권하여 두 그릇을 맛있게 먹는다.

라면을 더 먹겠느냐는 간볼트의 질문에 시간을 확인하고 4시에 와서 라면을 끓여주겠다고 대답하고 오초르의 집으로 돌아온다.

자료들을 정리하며 쉬는 동안 4시가 되어 패니어에 들어있던 짜장라면을 하나 들고 간볼트의 집으로 간다.

특별한 취사도구가 없이 전기를 이용해 음식을 하는 조르노크의 집들이다.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묻는 간볼트의 아내에게 김치라면 하나만을 달라고 요청한다. 양파와 당근 같은 재료들이 있었지만 괜히 일이 커질 것 같아 그냥 라면만 끓여 먹는 것이 낫겠다 싶다.

물을 끓이는 동안 간볼트의 아내는 고기와 야채들을 썰며 무언가를 준비하느라 바쁘고, 간볼트는 물을 길어오느라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라면 끓이는 법을 배워야지!"

딱히 라면을 끓이는 법에 대해 관심이 없어 보여 물을 끓이고 스프와 라면을 넣으라고만 알려주었다. 스프를 넣은 라면이 끓는 동안 여기저기서 재채기를 하느라 바쁘다.

세 달 가까이 매운 음식을 먹지 않은 탓인지 라면의 냄새가 아주 맵게 느껴진다.

라면을 끓여 간볼트와 아이들에게 조금씩 덜어주니 아이들은 제법 잘 먹는데 간볼트는 별 흥미가 없어 보인다.

"간볼트, 혼자 한국에서 생활하려면 라면을 많이 먹어야 해."

바로 이어 짜장라면을 끓여주며 스프의 용도를 알려주려는데 짜장라면은 생소한지 이번에도 별 관심이 없다.

짜장 라면을 끓여 다시 두 그릇에 담아 주고 먹어보라고 하니 검은색의 짜장라면이 이상한지 냄새부터 맡아보고 면발을 조금 먹어보는 간볼트.

달콤한 짜장라면의 맛이 괜찮았는지 아내에게 먹어보라고 권해주지만 그의 아내는 낯설어 한다. 이번에도 짜장라면의 대부분은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 치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라면이다!"

라면을 끓이는 동안 무언가를 준비하던 간볼트의 아내는 밥과 함께 카레 같은 음식을 내놓는다.

"라면이 아니고 즉석 카레가 있었으면 더 좋았었겠네."

오초르의 집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하는 사이 어디를 나가는지 서열러와 오드바야르의 동생이 옷을 갖춰 입고 놀러 왔다. 오드바야르의 셋째가 아들인 줄 알았는데 치마를 입고 있어서 잠깐 놀랜다.

페이스북을 보며 서열러에게 장난을 치고 있는데 오초르가 한국 로션 팩을 하나 주면서 사용하라고 한다.

"이게 뭐야? 핸드크림? 오초르 나 핸드크림 많아!"

오초르에게 다시 로션 팩을 건네주니 정중하게 선물을 하는 듯 허리를 숙여가며 받아달라고 장난을 친다.

"알았어! 고맙게 쓸게. 근데 이거 핸드크림이 아니고 발에 바르는 로션인데!"

사용 중이던 같은 모양의 로션 팩을 보니 핸드크림이고, 나에게 준 미사용 제품은 발에 바르는 로션이다. 아마도 두 개가 세트인 모양인데 사용하지 않은 것을 선물하려다 보니 발에 바르는 로션을 건네준 것이다.

얼굴이 아니고 발이라며 핀잔을 주며 장난을 치고, 오초르는 그냥 얼굴에 바르라며 개구진 표정을 지어가며 웃고 떠든다.

잠시 후 오드바야르의 아내 서열러가 이상한 크림을 들고 와서 오드바야르와 함께 제품에 대해 물어본다.

"충국?"

"아니 한국 제품인데. 이게 뭐야? 여성용 제품인데."

종이 포장 안에는 A와 C가 적힌 작은 크림로션이 들어있다. 남성용 로션이나 향수도 잘 쓰지 않는 나에게 여성용 화장품을 가져와 사용법을 물어보니 난감할 수밖에 없다.

"보습용인지, 클렌징인지는 모르겠는데 색깔이 원래 이런가?"

브랜드를 검색해도 회사나 제품이 나오질 않고, 사용 설명서는 번역기를 돌린 것인지 사용법을 이해할 수가 없다.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오드바야르와 그의 아내에게 알 수 없는 제품이니 사용하지 말라고 말해주기도 미안한 분위기다.

"내가 알아보고 나중에 알려줄게."

한국의 화장품 회사에 납품하기 위해 연구하고 제조했다는 정체 모를 화장품은 아무리 검색을 해도 사용법을 찾을 수 없다. 이해할 수 없게 쓰여있는 제품 설명서를 성분들까지 살펴보며 안티에이징 제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말 난감하네. 쓰라고 할 수도 없고 쓰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A, B, C 그리고 클렌징이 세트로 되어있는 제품인데 오드바야르는 A와 C만 들어있는 제품을 구했나 보다. 의심스러운 분홍색의 로션을 살짝 찍어 손등에 발라 문지르고 피부 트러블이 일어나는지 확인한다.

오드바야르 부부가 외출을 하는지 크림을 맡겨두고 나가자 오초르가 커피를 마시자고 한다.

"한국 커피? 오초르가 믹스커피 맛을 알아버렸네!"

물을 끓이고 커피를 타 놓으니 커피는 마시지 않고 갑자기 핸드폰을 가리키며 사진을 찍어 달라는 제스처를 한다.

"사진을 찍어 달라고?"

번역기와 함께 이리저리 온몸을 써가며 오초르의 의사를 확인한다. 이유는 어제 만들어준 인스타그램의 프로필 사진이 마음에 안 든다며 멋있게 찍어서 바꿔 달라는 것이다.

"하하하. 알았어. 커피잔 들고 멋있게 마셔봐."

이렇게 찍어보고, 저렇게 찍어보고.

컨셉으로 커피를 마시는 척만 하고 자세를 잡아야 하는데 진짜로 커피를 마시면서 찍는 오초르.

"오초르, 이번에는 저기 창문 쪽에 서서 찍자."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프로필 사진을 찍으며 오초르와 놀고 있으니 간볼트의 아내가 와서 카드게임을 하자고 한다.

간볼트의 아내도 붙잡아서 한 컷을 찍고.

간볼트의 집으로 건너가니 오드바야르의 처남과 처음 보는 이웃 남자가 함께 있다. 방에 앉아 룰도 모르는 몽골의 카드게임을 하는데 카드게임을 하는 모습을 찍고 구경하려던 나까지 게임에 참여시킨다.

"뭐. 어떻게 하는 건데?"

다섯 장씩 나눠들고 시작하는 게임인데 도무지 게임의 줄거리를 알 수가 없다. 다음 사람에게 한 장 또는 여러 장의 카드를 내놓으며 공격과 방어를 하는 것 같은데 족보 같은 것이 있는지 일정한 규칙을 찾기가 힘들다.

툴가에게 문자를 넣어 카드게임의 룰을 물어보니 어떤 게임이냐고 물어본다.

"다섯 장을 주고 시작하는데 알 수가 없다. 바보가 된 기분이야."

"다섯 장으로 하는 카드게임이 많아요. 모식이나 후주르 아니에요?"

간볼트에게 후주르냐고 물어보니 맞다고 한다. 툴가에게 후주르라고 알려주니 간단한 게임의 설명을 해주다 룰이 복잡해서 한 번에 배울 수 없다고 한다.

"아, 그럼 포기!"

한 시간 정도 게임을 하더니 두 남자가 집으로 돌아가고 오초르와 간볼트 부부만이 남는다.

"포커, 포커게임할 줄 알아?"

네 명이 세븐 포커 게임을 하는 동안 오초르는 후주르의 룰처럼 한꺼번에 자신의 패를 바닥에 펼쳐 보이며 뭔가를 외치는 바람에 연신 웃음바다를 만들어 내고.

30분 정도 레이스도 없는 포커 게임을 하다 오초르에게 그만 집으로 가자고 한다. 내일 조르노크를 떠나기 전에 오초르와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오초르의 집으로 돌아와 어제 사놓은 맥주를 마시며 항상 몽골 철자를 틀리게 적어서 이상한 번역을 전달하는 오초르와 떠들며 웃는다.

"이거 봐. 또 틀리게 적었잖아!"

"오호! 허허허허."

오초르에게 아내의 페이스북 메신저로 연락을 하라며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을 설명하고, 그의 아내에게 간단한 메시지와 음성 메시지를 보낸다.

"샌 배노!"

메시지를 받은 오초르의 아내가 갑자기 영상통화를 걸어와 당황하며 전화를 받자 전화는 꺼져버린다. 오초르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으니 옷을 갖춰 입어야 한다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아놔, 옷을 왜 입어? 하하하."

오초르는 종이와 볼펜을 꺼내어 자신의 아내가 1973년생이라고 알려준다.

오초르 아내와 영상통화로 인사를 하고, 그녀는 오초르에게 내가 어디서 잤는지, 무엇을 덮고 잤는지, 어떤 것을 먹었는지 등을 묻는 것 같다. 느낌상으로 오초르에게 손님 대접을 못했다고 잔소리를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영상 통화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셋이서 웃으며 시간을 보낸다.

"오초르, 와이프가 같이 있는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래."

"오홍!"

"이번에는 이상한 표정 하지 마!"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오초르와 약간의 맥주만을 마시고 남은 맥주는 냉장고에 넣어둔다.

"이제 자자. 오초르!"


삼일 동안 오초르, 조르노크의 사람들과 보낸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다.

"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선물해 주는구나. 여행이란 참 좋다!"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81일 / 맑음 ・ 18도
노르조크
거대한 모래폭풍으로 만나게 된 노르조크의 사람들과 함께 한가롭고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8,514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597시간

페친등록
맥주타임
42Km / 2시간 40분
50Km / 4시간 25분
조르노크
아라크
조르노크
 
 
332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쌀쌀한 기운이 들어 새벽녘에 침낭을 꺼내어 덮는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고, 하루하루의 기온이 매일처럼 다르게 느껴지는 몽골이다.

어제의 모래폭풍은 온데간데없고 맑은 하늘에 바람마저 거의 없다.

"정말 알 수가 없는 날씨다."

부스스 깨어있는 나에게 에르덴 오초르가 아침 인사를 하며 아침을 먹으라며 빵을 잘라 놓는다.

어젯밤 불을 끄지 않고 잤다는 제스처에 사방을 둘러봐도 스위치가 없었다며 떠들어대니 방문 앞에 걸려있는 작은 빨래 건조대를 가리킨다.

"그걸 왜 거기에 숨겨놔!"

'아야~'하며 웃고 떠드는 에르덴 오초르.

"오초르, 나 응가!"

애플힙 자세를 취하며 오초르에게 웃어 보이자 '오호~'하며 두루마리 화장지를 건네준다.

집 밖으로 조금 떨어진 재래식 화장실에서 깔끔한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오초르는 일을 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나간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바트보르드처럼 철로를 관리하는 일을 하는 것 같다.

가끔씩 긴 화물칸을 단 기차가 느리게 지나가고.

집 주변을 둘러본다. 네 가구가 함께 사는 집이 창고처럼 보이는 목재 건물들을 하나씩 두고 세 개의 집이 있다.

작은 철탑이 있는 네모난 간물과 농구 코트, 놀이터 그리고 작은 건물 몇 개가 전부다.

오른쪽이 에르덴 오초르의 집, 왼쪽이 오드바야르의 집.

진청색 문이 오초르의 집이고, 하늘색이 오드바야르의 여동생 집이다.

이렇게 한 집에 네 가구가 함께 사는 형태이다.

현관의 나무 문에 숫자들이 적혀있고.

현관 문을 열면 창고처럼 쓰는 작은 공간이 있다.

안쪽 문을 열면 주방이 나오고.

가장 안쪽에 침대가 놓인 방이 있다.

주방에는 세면대와 작은 식탁.

그리고 화로가 하나씩 놓여있다.

"대우 제품이네. 그런데 한글 철자가 이상하다."

오초르가 아침으로 잘라놓고 나간 빵으로 아침을 먹고.

고개를 돌려 한 번 돌아보면 끝나는 집 주변을 구경한다.

기찻길 옆에 창고 같은 작은 사무실이 있고.

러시아와 중국으로 이어지는 몽골의 철도.

사무실에서 무엇을 하는지 그곳에 모두들 모여있다.

기찻길 사고를 예방하는 재미있는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남자들은 창고를 정비하는지 바쁘고, 여자들은 페인트 통을 들고 도색 작업을 하려나 보다.

오초르의 집으로 들어와 그의 컴퓨터를 사용하려는데 자판이 이상하다.

영자 자판에 몽골 자판을 표시해서 사용한다. 영어 알파벳 보다 몽골 알파벳의 숫자가 많은지 숫자키까지 빼곡하게 사용한다.

어제 전화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툴가와 통화를 하고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오드바야르에게 한국의 생활에 대해 설명해 줄 것을 부탁하니 성의껏 설명하겠다며 대답을 해준다.

"한국 생활의 어려움이나 필요한 사항들을 잘 설명해 주면 좋겠다."

12시쯤 돌아온 오초르는 점심을 먹자며 꽁치 통조림 같은 것을 꺼내어 빵과 함께 먹으라고 한다.

"이렇게 먹으라고? 정말?"

생선 통조림은 비리지 않고 단맛이 조금 나는 게 괜찮다.

생선 세 덩어리를 한꺼번에 올려놓고 먹으라는 오초르.

점심을 먹고 오초르는 여기저기 건물들의 설명을 해준다.

작은 송전탑이 있은 건물은 철도의 통제실 같은 곳이었다. 제복을 입은 직원 세 명이 계기판에 앉아 철도의 상황판 같은 것을 주시하고 있다.

오초르의 집 앞에 있는 작은 건물에서는 오드바야르의 아내와 여동생이 페인트칠을 하느라 바쁘다.

안쪽으로 들어가 보라고 하여 가보니 사우나 시설이 되어있는 샤워장이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샤워를 할 수 있는 공용 샤워장, 아직 개장을 안 해서 이용을 못하는 것이 아쉽다.

기찻길 옆 아주 작은 건물은 이곳의 식수와 생활용수를 길러오는 곳이다.

큰 통에 물을 받아 집에 있는 수통에 담아놓는다.

철도를 향해 긴 나무통이 나와있어 비를 받아 사용하나 생각했지만 년 강수량이 미미한 이곳에서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가까이 가보니 수도관 같은 것이 있은 것으로 보아 기차에서 물을 수급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곳에 이외의 건물은 없다. 오초르의 집으로 돌아와 구글 번역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연결해 주기 위해 오초르의 컴퓨터에 한글 자판을 설정한다.

"어디 보자. 대충 설정에 들어가서 언어 설정을 누르고."

"키보드의 언어 설정에서."

"한글을 추가해 주면 되겠지."

다행히 오초르의 컴퓨터는 인터내셔널 버전의 윈도우가 설치되어 있어 별 어려움이 없다.

가끔씩 방에서 자료를 정리하는 나에게 들려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핸드폰의 번역기에 몽골어를 잘 쓰지 못하는 오초르와 사람들에게 구글 번역 사이트의 사용법을 알려주고 자리를 내어준다.

"오초르, 이렇게 해봐."

오전에 보이지 않았던 오드바야르에게 전화기를 달라고 하여 툴가와 통화 연결을 해준다.

"툴가야, 네가 한국에 대해 잘 설명을 해줘."

오초르와 사람들은 핸드폰의 작은 UI만이 불편했던 것이 아니다.

"뭐야. 이 독수리도 아닌 병아리 타법들은?"

몽골 철자의 자판을 찾느라 버벅거리는 것이 나와 별반 다르지 않고 몽골어도 제멋대로 적어 해석이 안된다.

조르노크 사람들은 2G폰도 사용하고 스마트폰도 사용하는데 페이스북의 계정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와이프의 페이스북 계정만 있는 2G폰의 오초르에게 내 소식을 보라며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주고 북마크를 해준다.

"오초르, 계정 프로필에 사진 넣자."

오초르의 사진을 찍어 계정에 넣어주니 방안이 한바탕 웃음바다로 변해버린다.

언제나 유쾌한 에르덴 오초르 계정의 유일한 팔로우가 되었다.

계정을 연결하는 것을 보더니 모두들 자신의 핸드폰을 건네며 페이스북을 연결해 달라고 한다.

"인스타그램 없어?"

온통 이상한 사람들의 친구 등록과 신청으로 만신창이가 된 페이스북보다는 인스타그램의 계정이 연락을 주고받기에 편한데 모두들 페이스북 계정만을 갖고 있다.

인스타그램을 설치해 주려 해도 데이터 속도가 너무 느려 다운을 받을 수도 없다.

네트워크가 잡히는 와이파이의 비번을 물어봐도 자신의 와이파이를 쓰질 않고 데이터 연결을 해서 사용한다.

"아니 멀쩡한 와이파이 놔두고 왜 데이터를 써?"

사람들은 다시 작업을 하러 나가고, 책상에 놓인 핸드폰에 페이스북 계정들을 연결해 준다.


작업 중인 사람들에게 핸드폰을 건네주고 방으로 돌아와 잠시 쉬려고 자리에 누웠다.

잠시 후 방문으로 빼꼼히 얼굴을 내밀던 꼬마 녀석들이 모두 방으로 들어와 쉴 새 없이 질문들을 해댄다.

"아이고, 너희들까지."

어수선하게 방을 헤집어 놓던 꼬마들이 물러가고 여행 자료를 정리하며 잠시 쉰다.

퇴근을 알리며 방에 들어온 오드바야르와 짧은 대화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그의 처남이 큰 딸의 자전거를 고쳐주고 있다.

"오호, 이것은 나의 전공이지!"

자전거의 앞뒤 브레이크를 정비하고 타이어에 공기를 넣어주고 보조바퀴를 알맞게 높이 조정을 해준다.

자전거를 정비하고 있는 모습을 본 오드바야르는 창고에서 바람이 모두 빠진 자전거 두 대를 꺼내온다.

"뭐야? 어디서 나온 것들이야?"

타이어에 공기를 주입하고 체인에 윤활과 함께 변속이 잘 되는지 점검해 준다.

"오드바야르, 이제 네가 펌프질해. 힘들어!"

자전거를 정비하고 여기저기 흙먼지를 날리며 돌아다니는 아이들과 오드바야르.

처음 자전거를 타는 것인지,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흙바닥에서 자전거를 배우는데도 재미있어 한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오초르에게 라면을 먹자고 하니 좋다고 한다.

"오초르, 이거 정말 매워!"

오초르에게 라면이 맵다는 제스처를 하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미있는 표정을 짓는다. 패니어에서 참치캔을 꺼내어 라면에 넣고 조금 남은 참치캔을 오초르에게 주며 먹어보라고 하니 요리조리 살펴보고 조금 먹어본다.

맛있다는 하는 오초르에게 참치 사진을 보여주며 큰 물고기라고 설명해 주었는데 알아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라면을 끓여 오초르와 오드바야르에게 담아주니 매운 국물을 마시고 고개를 저으며 아우성이다. 여행을 하며 매운 음식을 먹지 않은 나에게도 입술이 얼얼한 느낌이 오는데 그들에게 얼마나 매울지 짐작이 간다.

라면을 먹으며 사람들과 한바탕 웃고 떠들어댄 후 오초르는 옷을 갖춰 입더니 차를 타고 어딘가를 가자는 제스처를 한다.

"차 타고 어디를 가자는 거야?"

와이프가 있는 집으로 가자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을 가자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서둘러 움직이는 오초르를 따라 집을 나선다.

버릇처럼 승용차의 오른 편의 문을 열고 타려 운전대가 있다. 멈칫하는 나를 보며 깔깔거리며 웃는 오초르.

몽골의 도로에서 일본 도요타와 현대 소나타 차량을 가장 많이 본 것 같다. 거의 70% 이상이 운전대가 왼쪽에 있는 도요타를 타는 것처럼 보인다.

승용차에 올라 안전벨트가 없는지 물으니 웃으며 없다고 하더니 좌석의 뒤쪽으로 길게 늘어진 안전벨트를 가리킨다. 안전벨트를 맨다는 표현보다는 몸에 두른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헐거워진 안전벨트를 두르고 있으니 처음 보는 젊은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뒷좌석에 앉는다.

"어디를 가는 거지?"

낡은 오초르의 도요타 승용차, 라디오를 듣기 위해 Mp3 같은 조그만 기기를 자동차에 꽂아놓는다.

몽골의 가요처럼 들리는 노래를 틀어놓고 처이르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간다. 30km 떨어져 있는 아라크에 간다고 알려주는 오초르는 신이 난 듯 엑셀레이터를 밟는다.

고작 80km가 나오는 속도계를 가리키며 빨리 간다며 보라는 오초르.

"알았어. 천천히 가!"

평평한 몽골 초원의 지면과 맞닿아 있는 구름 사이로 천천히 해가지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아라크까지 드라이브를 한다.

작은 검문소를 지나며 오초르는 매고 있지 않던 안전밸트를 몸에 두른다. 오초르가 검문소를 향해 얼굴을 빼꼼히 내밀어 눈인사를 하니 내려져있던 차단기가 올라가고.

도로의 왼편으로 보이는 아라크를 향해 도로를 벗어나 아무렇게나 흙길로 들어간다.

"역시, 몽골은 내가 가면 그것이 길인 거야!"

사인샨드와 마찬가지로 흙길의 골목을 두고 나무판자의 담들이 줄지어 이어지는 아라크.

마을 초입의 간판조차 없는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은 슈퍼가 있다.

슈퍼의 입구에 마른 말똥이나 소똥 같은 것이 모아져 있고.

슈퍼의 안쪽에 놓인 화로를 가리키자 소똥으로 연료를 쓴다며 화로를 열어 보여준다.

"한국이나 몽골이나 맛의 비밀은 따로 있구나."

음식을 하는데 다시다를 많이 사용하는지 오초르가 다시다의 발음을 제법 그럴듯하게 하면서 코리아를 외친다.

오초르의 차를 타고 함께 나온 젊은 여자는 작은 슈퍼에서 여러 가지 물건들을 사며 장을 본다. 아마도 젊은 여자를 태워다 주려고 오초르는 아라크에 온 것 같다.

작은 슈퍼에서 장을 보고 아라크의 안쪽으로 들어가니 제대로 된 마트가 나온다. 젊은 여자가 필요한 물건을 사는 동안 슈퍼를 둘러보며 오초르에게 저녁에 술을 마시자고 제스처를 한다.

조르노크를 떠나기 전 오초르와 간단히 술 한 잔을 하려고 보드카를 가리키니 X자를 크게 그리며 안된다고 한다.

"그럼 맥주?"

큰 페트병에 든 맥주 한 통과 카스, 하이트 한 캔씩을 사들고 슈퍼를 나온다.

어둠이 내려앉은 AH3 초원의 도로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고 앞서가는 차량의 브레이크 등만이 빨갛게 흔들거린다. 마주 오는 차량들을 상향등을 켜고 운전을 하는지 왼쪽 조수석에 앉은 나는 눈이 부셔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마주 오는 차량들을 보며 상향등을 껐다 켰다를 반복하며 오초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어두운 도로를 안전하게 운전을 한다.

조르노크로 돌아온 오초르는 젊은 여자의 집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젊은 여자는 오드바야르의 옆집, 그러니까 오초르의 대각선의 집이다.

오초르가 사는 집에는 오초르, 오드바야르, 오드바야르의 여동생 그리고 젊은 여자가 함께 사는 것이다.

들어선 집은 화로를 피워 조금 덥게 느껴지고 남편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방 안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다.

"아이고 이 집도 얘기들이 많네."

6살 정도의 개구져 보이는 남자아이, 4살 정도의 여자아이 그리고 바닥을 기어 다니는 2살 정도의 갓난 아이가 있다.

차와 양고기 그리고 몽골 김치를 내놓는다. 오초르가 칼로 양고기를 뜯어 먹으라며 방법을 알려주고.

육포를 먹는 것처럼 잡내가 없이 괜찮은 맛이 나는 양고기 그리고 몽골식 김치처럼 보이는 김치는 우리의 것과 비슷하면서도 뭔가가 이상한 그런 맛이 난다.

방에서 나온 젊은 남자와 인사를 하고 한국어 공부를 한다는 부부와 함께 맥주를 마신다.

간볼트, 26세의 남자와 그의 아내이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적힌 종이를 가져와 보여주는 그들에게 구글 번역기를 설치해 주고 발음들을 하나씩 읽어 준다.

"어떻게 하면 한국말을 빨리 배울 수 있느냐?"

"나도 몰라. 나도 한국말을 잘 못하는데."

방안의 TV에는 한국 드라마와 오락 프로가 이어지는 채널이 고정되어 있고.

수입이 적어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간볼트와 오랫동안 어렵게 대화를 이어갔다.

"울란바토르에 친구가 있는데, 가서 만나면 너를 도와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전화해 줄게."

오드바야르처럼 툴가와 통화를 시켜주는 것이 편하겠지만 툴가에게 너무 많은 부탁을 하는 것 같아 먼저 얘기를 하고 부탁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간볼트의 아내가 먹기 좋게 발라놓은 양고기를 안주 삼아 큰 페트병의 맥주를 마시며 밤늦도록 이야기가 이어지고, 그의 아내는 라면을 끓여 준다며 몽골 슈퍼에서 흔하게 보이는 김치라면을 끓여준다.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더니 뜨거운 물을 냄비에 붓고 라면과 스프를 넣고 뚜껑을 덮어 놓는 것이다.

"이건 컵라면 먹을 때 이렇게 하는 거지! 내가 내일 라면 끓이는 법을 알려줄게."

제대로 익지 않은 라면을 먹고 12시가 되어서야 오초르의 집으로 돌아온다.

중간에 사라진 오초르는 하이트 맥주를 한 캔 따서 반 정도 마신 후에 코를 골며 자고 있다.

TV와 전등을 꺼주고 자리에 누웠지만 바트보르드, 오드바야르 그리고 간볼트까지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다며 도와달라는 그들의 바람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툴가의 얘기에 따르면 몽골인들이 여행 비자를 받아 90일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건설 현장의 막노동과 이삿짐센터 같은 곳이라고 했다. 열악하고 힘든 노동 환경일 것은 당연할 테고, 여행 비자로 취업을 하는 것이 불법인지라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인데 하는 생각이 먼저 앞선다.

많은 나라들과 사증면제 협약이 되어있는 한국, 하지만 몽골과는 사전 비자를 받아야 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어느 국가의 필요에 의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카자흐스탄을 비롯하여 환경이 비슷할 것으로 생각되는 나라들은 모두 사증면제 협약이 되어있는데 유독 몽골만은 사전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필요한 제도이겠지만 제도가 사람들을 불법의 현장으로 내모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편하고 안전하게 그리고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몽골인들에게 지금의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단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나라?"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80일 / 맑음 ・ 16도
사인샨드-조르노크
190km를 달려온 피곤함이 남아있지만 남풍의 바람이 예보되어 있어 계속 길을 가야한다. 다음의 도시 처이르까지 230km 정도의 거리가 남아있다.


이동거리
100Km
누적거리
8,514Km
이동시간
7시간 24분
누적시간
597시간

AH3
AH3
17Km / 58분
83Km / 6시간 26분
사인샨드
시계
조르노크
 
 
332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묵직한 피곤함, 창문으로 새어들어오는 햇살과 달리 어제의 장거리 라이딩의 피곤함이 남아있다.

하루를 쉴까 고민하다 숙소의 생활보다 초원에서의 캠핑이 하고 싶어진다.

"천천히 라이딩하다 초원에서 텐트를 치고 쉬자. 그게 낫겠어."

숙소를 나와 사인샨드의 마을들을 구경하고 캠핑 음식을 사기 위해 밖으로 나온다.

나무판자의 담과 나무집, 벽돌집 그리고 게르가 뒤섞여 지어진 사인샨드의 주택들.

흙길의 골목들과 마을의 풍경이 너무나 생경하다.

슈퍼에 들어가 간단한 식료품을 구매하고 숙소 근처에 있는 작은 사원을 구경한다.

탑 위로 부처가 모셔져있는 것으로 보아 불교 사원인듯싶다.

몽골은 티벳불교, 라마교를 믿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중국의 사찰 양식이 섞여있는 것이 이색적인 모습이다.

숙소에 돌아와 다른 몽골 사람들이 먹고 있는 아침 메뉴를 주문한다. 바트가 해주었던 음식과 비슷한 볶음면인데 양이 굉장히 많다.

남은 음식을 포장해 달라고 하니 일회용 용기를 가져다주었다. 용기 비용은 별도로 500투그릭을 받는다.

"저녁으로 먹으면 되겠다."

10시 40분, 짐들을 정리하고 남풍이 불어오는 도로를 따라 처이르로 향한다.

AH3 도로를 타기 위해 사인샨드의 높은 언덕길을 자전거를 끌고 오른다.

"넓은 초원을 두고 산언덕에 도시가 자리했을까?"

어제 사인샨드로 들어왔던 길로 돌아가라는 구글맵의 안내를 무시하고 길들을 따라 이동한다. 끈질기게 남쪽으로 돌아가라는 구글맵.

"고덕양보다 더 융통성이 없는 아이구나."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AH3가 이어지는 곳, 사인샨드의 외곽까지 빠져나온다.

경찰의 검문소와 함께 처이르로 향하는 도로가 나타나고, 도로변에서 무언가를 단속하는 멋진 경찰에게 처이르로 가는 길이 맞는지 손가락을 가리켜 물어본다.

남풍의 예보와 달리 약간 측면에서 불어오는 남서풍에 가까운 바람이다.

"바람이 자전거를 잡아당길 수는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네."

해가 떠있는 몽골의 초원은 빠르게 기온이 올라가고 따듯한 봄날의 바람이 불어온다.

한 시간 정도를 달려 언덕에 위치한 사인샨드의 시계에 도착하여 겉옷과 장갑을 벗고 잠시 쉬어간다.

"80km. 천천히 그 정도만 이동하고 초원에서 하룻밤을 보내야지."

가족 모두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사진을 함께 찍는다. 사인샨드의 경계를 알리는 게이트에서 가족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하는 것으로 보아 그들도 이곳이 처음인가 싶다.

"5도 정도만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좋을 것 같은데."

어제보다 조금 더 강해진 바람이 조금씩 측면으로 흐름이 바뀌어 가는 것 같다.

1시, 40km 정도를 이동하고 도로변의 초원으로 내려가 자전거를 눕힌다.

따듯한 바람이 불어오는 초원에 앉아 있으니 시간이 더디게 느껴진다.

괜한 사진들도 찍으며 놀아보고.

통신도 끊겨있는 초원에서 30분이 넘도록 자전거에 기대어 시간을 보낸다.

"좋네."

잠시 언덕을 오르자 러시아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포장도로가 나오고 30cm 정도의 갓길이 이어진다.

"한 30cm만 더 쓰지."

오후 들어 조금씩 거세지는 바람. 시계 방향으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내일은 그 끔찍했던 서풍이 다시 불어오는 건가?"

울란바토르까지 이어지는 도로에는 순찰을 도는 경찰의 모습은 전혀 보이질 않고 가끔씩 모형 간판이 세워져있다.

차량 모양의 간판이나 폐차를 두었던 중국과 달리 납작한 모양의 경찰차 모형이 재미있다.

천천히 도로를 따라 느린 페달링을 하던 중 화물차 한 대가 낮은 크락션을 울리더니 멀리 앞쪽으로 정차를 한다.

차량에서 내려 나를 기다리던 젊은 운전자는 차량에 타라는 손짓을 하며 밝게 웃어준다.

"땡큐!"

그에게 손을 흔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지나쳤다. 응원의 크락션을 작게 울려주며 천천히 지나쳐가는 화물트럭.

"오늘은 초원에서 캠핑을 하고 싶어."

넓은 초원으로 가끔씩 긴 꼬리를 단 기차가 지나가고 바람은 여전하다.

바람막이를 벗고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속도를 내어 달려본다.

몽골의 사람들, 운전자들을 보면 매너가 좋아 보인다. 자전거를 향해 손 인사를 하고, 라이트를 깜박이며 응원을 보내준다. 뒤편에서 크락션을 잘 울리지 않으며, 짧고 작게 울리며 자전거를 피해 멀리 돌아간다.

오른쪽 어깨가 좋질 않다. 쇄골이 부러졌던 곳이 바람을 버티는 핸들링으로 쉬 피로해지고 아파온다.

"쉬었다 가자."

아침 식사 후, 아무것도 먹질 않았다. 힘들지 않은 라이딩 탓에 허기짐도 그다지 느끼지 못하고 달리다 보니 4시가 가까워온다.

다시 도로변 초원으로 내려가 자전거를 눕히고 패니어에 들어있던 카스테라 빵을 꺼내 먹는다. 달달한 빵 안에 시럽이 들어있어 엄청 단 카스테라.

"몽골 사람들은 단 걸 좋아하나?"

자민우드에서 사 먹었던 아이스크림과 마찬가지로 달아도 너무 달다.

하늘을 보고 잠깐 누워있으니 누군가가 다가와 인사를 하는데, 유목민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젊은 남자가 웃으면서 다가온다.

"폼 난다. 이름?"

이름을 물어도 수줍게 웃기만 하며 내 발음을 따라 하는 남자는 이러이르, 높은 쇼바의 오토바이를 몰고 짙은 파스텔톤의 유목민 복장을 한 어린 남자다.

"이러이르, 텐트 칠만한 좋은 곳이 어디야?

네트워크가 끊겨 번역기가 되지 않는 곳에서 텐트의 사진을 보여주며 온갖 몸짓을 해도 그저 말을 따라 하며 웃기만 하는 이러이르.

"아니, 텐트를... 내가 잘못했어. 이 넓은데 아무 데나 치면 되는데."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이러이르는 지나가는 차량들을 향해 손을 들며 히치하이킹을 하는 듯 차량들을 세우려고 한다.

"뭘 하려는 거지?"

간간이 지나치는 몇 대의 차량들이 지나가고.

몇 대의 차량은 정차를 한 후 이르이러와 몇 마디를 나눈 뒤 그냥 떠나간다.

한참 후 5~6명의 남자들이 탄 RV 차량이 정차하고 이러이르와 잠시 대화와 악수를 나누더니 이러이르가 싣고 왔던 무언가를 오토바이에서 내려 차량에 실어준다.

"뭘 파는 건가?"

차량에 탄 사람들과 짧게 인사를 나누며 그들의 행동을 지켜봤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러이르가 사람들과의 거래가 끝나면 그가 사는 게르를 묻고 따라갈 요량으로 기다리는 사이 이러이르는 밝게 웃으며 오토바이를 몰고 순식간에 떠나버린다.

"이러이르, 얌 마! 게르가 어디..."

높은 쇼바를 꿀렁이며 초원을 향해 이리저리 곡선을 그으며 점으로 사라져 버리는 이러이르.

"와, 신나게 달려가는구나."

그가 사는 게르를 안다 해도 초원길을 자전거를 끌고 따라갈 수는 없을 것 같다.

40여 분 앉아있던 자리를 털고 일어나 텐트를 칠 마땅한 곳을 찾으며 도로를 달린다.

고르도비에서 사인샨드로 오는 길들은 초원의 산악지대였나 싶다. 오르막과 내리막에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장소들과 게르 있었던 자리들, 큰 바위들의 주변처럼 텐트를 치기에 적합한 장소들이 있었는데, 사인샨드를 지나 평평한 초원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어떻게 이렇게 납작 눌러놓은 것처럼 평평할까?"

양들이 도로를 건널 수 있게 도로 밑으로 뚫어놓은 통로만 있을 뿐, 사람의 시야를 벗어날 수 있는 곳은커녕 바람을 막을 곳조차 없다.

도로의 주변을 샅샅이 둘러보며 몇 개의 언덕을 넘는 동안 이어지는 모든 풍경들이 똑같다.

수십 분 전 나를 지나쳐간 느린 화물 차량의 실루엣이 멀리서 사라지지 않는 평평한 초원의 풍경.

짐승들이 다니는 시멘트 통로에 텐트를 치고 싶지는 않고, 하염없이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갈 수도 없다.

자전거를 멈추고 약간의 긴 수풀과 낮은 둔턱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

초원의 모래바닥에 자전거의 바퀴가 파묻히고, 여기저기 온통 양과 말들의 발자국과 똥들뿐이다.

낮은 수풀의 둔턱이 바람을 막아주기에 충분했지만 내가 생각한 초원의 캠핑은 이런 똥밭이 아니다.

"여행의 첫 번째 캠핑인데 똥밭은 너무 아니잖아."

한참 고민을 하고 다시 자전거를 끌고 모래밭을 나온다.

동물들이 이동하는 통로의 주변에는 동물의 마른 사체들이 보이고, 도로에서 바라보이던 황금빛 초원은 온통 마른 똥들과 술병 쓰레기가 뒹구는 흙밭이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황금빛 초원에서 별을 바라보며 보드카 한 잔을 마시고 싶다.'라는 들뜬 바람은 그저 그림속에나 존재하나 보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초원의 도로변을 보면 차량들이 초원으로 진입한 흔적들이 많아 도로변 가까이 텐트를 치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그리고 초원에도 수많은 차량의 통행 흔적과 오토바이의 바퀴자국이 어지럽게 남아있어 아무 곳에나 텐트를 치기도 힘들다.

"중국은 좋은 장소가 그리 많아도 캠핑을 못 하게 하여 쓸모가 없더니, 몽골은 이리도 넓은데 캠핑할 곳이 없구나."

조금씩 거세지는 바람과 사람의 시야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숨을 곳이 없다.

좀 더 도로를 따라가던 중 소형 승용차가 크락션을 울리며 뭔가 소리를 치더니 천천히 정차를 한다.

"서지 말고 그냥 가주라."

자전거가 다가가자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네 명의 젊은 남자들이 차에서 내려 주변을 감싼다. 인사를 하고 얼굴들을 마주쳐 보지만 느낌이 좋질 않다.

자전거의 바퀴와 패니어들을 만져보며 이리저리 훑어보는 눈빛들에 호기심이 묻어있지 않고 흔들리는 초점에 불온함이 담겨있다.

울란바토르, 사인샨드 등 몇몇 단어들을 내뱉으며 나와 지나가는 차량들을 번갈아가며 살피는 아이들.

나의 시선을 피하며 눈을 마주치지 않는 남자들을 보며 자전거에서 완전히 내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다.

네 명의 모습을 천천히 살펴보고 차량의 번호도 유심히 머릿속에 넣어둔다.

뚱뚱하고 거들먹거리는 남자, 마르고 가벼워 보이는 남자, 그저 보통의 남자 그리고 작지만 다부져 보이는 남자.

"어, 한국어네. 신민지! 네 이름이야?"

시선을 피하며 담배를 피우는 남자아이들 중 다부진 눈빛을 갖은 남자의 후드티에 한국어가 새겨져있다.

"한국에서 일했어? 한국말 할 줄 알아?"

상대에게 너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그 남자애에게 집중한다.

"저는 한국말을 하는 몽골 사람입니다."

엉거주춤 말을 피하더니 짧은 한국말을 서툴지만 정확하게 구사한다.

"어디 살아? 어떻게 한국말을 배웠어? 만나서 반갑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남자에게 악수를 청하며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 사이 나머지 남자들이 주변을 돌고, 지나가는 차량들을 향해 짓궂은 장난을 치며 히덕거리며 웃는다.

"너 하나만 보면 된다. 이거지."

무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던 남자애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친구들과 차를 타며 손을 흔들고 사라진다.

어제와 오늘, 연이어 겪은 불쾌하고 찝찝한 만남이다.

언어의 소통이 어려워 생길 수 있는 오해일 수도 있고, 몽골인들의 대인을 마주하는 습관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느 쪽이든 유쾌하지가 않다.

서둘러 짐승들의 이동 통로에라도 텐트를 쳐야겠다 싶어 적당한 곳을 찾던 중 멀리 철도길 주변으로 서너 채 들어선 집들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저기가 좋겠다."

멀리 보이던 집들이 가까워지고 진입로가 나올 때쯤 전방으로 보이는 구름의 모양이 기이하다.

고글을 벗고, 해일 장벽처럼 앞을 가로막고 밀려오는 거대한 구름의 움직임을 살펴본다.

"뭐야 저게? 화재 연기도 아니고."

맑은 하늘 아래 시커먼 회색의 무언가가 하늘 가득 밀려온다.

"심상치가 않다."

"몰라. 집으로 들어가자."

4채의 집이 철로변에 들어선 곳으로 들어간다.

승용차와 오토바이 그리고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고.

자동차 타이어를 수리하고 있는 두 명의 남자에게 인사를 하고 잠자는 제스처를 하니 선뜻 고개를 끄덕이며 맞이해준다.

잠시 후 거센 바람이 마을을 덮쳐오고 온몸이 휘청거린다.

타이어를 수리하던 남자들은 서둘러 장비들을 챙기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며 손짓을 하고.

세워둔 자전거를 가리키자 집으로 가지고 들어가라는 제스처를 한다.

다급해지니 어디서 힘이 나는지 무거운 자전거를 들어 작은 집 안으로 넣어두고, 따듯한 차를 내어주는데도 정신이 없다.

"대단한 모래폭풍이다."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남자들은 펑크 난 타이어의 튜브를 탈착하고 작은 펌프로 바람을 넣으며 무엇이 재미있는지 웃고 떠든다.

힘들게 공기를 주입했던 튜브에서는 다시 바람이 새어 나오고 두 남자는 다시 웃으며 장난을 친다.

타이어에서 다시 튜브를 꺼내고 공기를 주입하며 장난을 치며 웃기를 반복하는 두 남자.

그들을 도와 타이어 탈착하는 것을 돕고 펑크가 난 부분을 찾아준다.

손으로 바람이 새는 곳을 찾고 침을 발라 펑크가 난 곳을 찾아 확인하니 두 곳에서 펑크가 나있다.

"여기하고 여기!"

집안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고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가 튜브에 붙은 펑크 패치를 가리키며 내게 있는지 묻는 제스처를 한다.

자전거용 튜브 패치를 보여주니 손사래를 치며 다시 웃음바다가 되고, 파스처럼 큰 자동차용 펑크 패치를 보여준다.

자전거 펑크 패치의 작은 본드를 보더니 손가락을 까딱이며 자신의 본드를 보여주며 본드 튜브를 짜내는데 본드가 안 나온다.

"하하하, 그게 뭐야!"

중국에서 산 본드를 건네주니 놀라는 척 장난을 치는 남자는 튜브에 본드를 바르고 이상한 곳에 펑크 패치를 붙인다.

"여기잖아. 여기!"

내가 볼펜으로 표시해둔 펑크가 난 곳을 가리키며 핀잔을 주자 다시 웃음바다가 되고, 자동차 타이어의 펑크 수리는 끝난다.

나이 든 남자는 다시 나에게 무언가를 묻더니 알아듣지 못하자 천장의 전구를 가리킨다.

"라이트 있냐고?"

패니어에 들어있는 헤드라이트를 보여주니 이번에도 손가락을 까딱이며 자신의 손전등을 보여준다.

커다란 건전지를 넣고 손전등을 켜보는데 불이 들어오지 않는 손전등.

"하하하, 그게 뭐야!"

"차이나! 에에에."

고장이 난 손전등을 가리키며 중국 제품이라며 너스레를 떨며 웃는다.

자전거 라이트를 꺼내어 타이어를 장착하는 것을 도와주고 집으로 들어온다.

집으로 들어와 작은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남자. 손을 씻겠다고 하니 옆에 놓인 물통에서 물을 길어 세면대 위에 있는 물통에 물을 채워준다.

"아, 이렇게 쓰는구나. 수동이네."

"커피? 한국 커피 알아?"

차를 내어주는 남자와 담배를 나눠피며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한다.

"이름? 네르?"

에르덴 오초르(эрдэнэ очир), 몸짓과 표정이 다양하고 유머가 있는 유쾌한 남자이다.

에르덴 오초르와 커피를 마시며 쉬려는데 집으로 한 남자와 여자가 들어와 정신없게 말을 건네며 질문들을 한다.

"술을 마셨나?"

발음이 약간 꼬이는 듯한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고 여자는 자신의 와이프라며 소개를 한다.

오드바야르, 40살이라며 소개를 하던 남자는 에르덴 오초르와 장난을 치며 말을 한다.

"에르덴 오초르, 49살! 모, 모!"

"에르덴 오초르 49살이라고?"

농담인가 싶었는데 앞니가 빠져있는 검게 탄 얼굴의 에르덴 오초르는 49살이 맞는 것 같다.

번역기를 줘가며 한참 동안 어려운 대화를 이어가고 자신들의 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자고 하여 그들을 따라간다.

오드바야르의 집은 에르덴 오초르의 집과 한 건물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건너 방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다.

20평 남짓의 방이 네 개가 있는 작은 단층 집은 각자의 출입문을 달고 나누어져 있는 구조다.

철도변에 4개의 집이 있어 다른 집으로 들어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같은 집의 반대편 문으로 들어가니 조금 낯설고 신기했다.

집안의 구조는 모두 똑같다. 현관처럼 작은 공간이 있고 안쪽 문을 열면 작은 부엌 그리고 안쪽에 넓은 방이 하나 있다.

오드바야르는 세 명의 아이들이 있고, 큰 딸은 9살인데 우리의 12살 정도로 보인다.

한국 드라마 채널이 켜진 방에서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고 오드바야르와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한다.

"나는 한국에 가서 일을 하고 싶다."

"한국은 좋은 나라이지만 복잡한 곳이다. 한국에 가면 똑똑하게 살아야 한다."

한국에 가서 일을 하고 싶다는 오드바야르. 도르고비에서 바트보르드도 같은 말을 한다.

툴가에게 몽골인들이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많이 간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마음 한켠에 걱정스러움이 생겨난다.

만만치 않은 외국 노동자들의 한국 생활을 생각하면 애써 말려보고 싶기도 하지만 선택은 그들의 몫이다.

단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막연한 한국 생활의 기대보다 좀 더 현실적인 정보들을 알려주고 그들의 선택에 있어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것뿐.

"준비를 많이 해서 가라. 그리고 한국에 가게 되면 나에게 연락해."

몽골인들의 한국 생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한국에서 유학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툴가가 구체적인 것들을 잘 설명해 줄 것이라 생각이 든다.

"내일 나의 몽골 친구와 통화하자. 그가 많은 것을 알려줄 거야."

툴가라면 그들에게 필요한 사항들과 한국에서의 경험들을 잘 설명해 줄 것이다.

대단한 것을 얻은 사람처럼 상기되어 감사의 말을 전하는 오드바야르.

페이스북과 메신저를 등록하고 11시가 다 되어 에르덴 오초르의 집으로 돌아온다.

컴퓨터로 캔디크러쉬 사가를 하고 있던 에르덴 오초르, 얼굴이 익숙해지니 동네의 착한 형처럼 그 나이로 보인다.

방에 자리를 깔고 누워 핸드폰을 드려다보는 사이 에르덴 오초르는 코를 골며 잠들어 버린다.

나를 위해 켜두었던 TV를 꺼주고 방의 전등 스위치를 찾는데 보이질 않는다.

부엌과 방의 내부를 훑어보아도 스위치가 보이질 않아 그대로 두고 잠을 잔다.

초원의 캠핑을 생각하며 한가롭게 달리던 라이딩이 기분 좋지 않은 만남을 시작으로 모래폭풍과 함께 정신없이 흘러간 하루다.

여행의 피로와 어려움으로 마음이 내려앉을 때 또다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즐거움을 쌓아간다.

"여행이란 참 알 수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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