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일 / 맑음 ・ 10도

인천공항-상하이 푸동

마지막 날까지 정리가 되지 않은 짐들과 감정들, 끝내 잠들지 못하고 공항으로 향한다. 감정과 감정의 뒤섞임들이 메스꺼운 울렁거림을 만들어 놓는다.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이제부터 모든 것들이 생소한 처음의 경험들일 것이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2,785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173시간


아시아나항공
콜밴택시
810Km / 2시간 10분
12Km / 15분
인천공항
푸동공항
샹위안
 
 
0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 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0-8531-0700/+86-186-1173-0089

 

모멘텀 :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거나 바꾸는 장면.​


그저 의미 없는 온라인 서핑에서 자전거로 세계를 여행하는 20대 중반 여자아이의 홈페이지로 흘러들어 갔다. 검색했던 키워드가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멍한 손길로 링크와 링크를 타고 이어지던 무미한 일상의 킬링타임이었다.


여자아이의 바람들과 세계를 여행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부러운 마음보다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거운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하루, 또 하루를 보냈다. 

나는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고대하다 : 몹시 기다리다.


​겹겹이 둘러싸인 산들을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 호기심 가득 바라보았던 미래에 대한 막연함은 그 산들 너머의 무엇이었다. 친구들이 하나, 둘 그 산들을 오르며 어른이 되었음을 자랑삼는 동안, 단 한 번도 그 산들을 오르거나 넘기를 시도하지 않았다.


​사실 확인에 대한 싱거움 또는 소멸될 상상의 부재가 두려웠는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그 산들을 오르지 않음으로써 여전히 유지되는 막연함은 때론 상상의 즐거움이었다.


언젠가 그 산들을 넘을 것이다 바람 하였다.


여행 : 떠나다.


이제부터 나는 내 삶을 향해 홀로 걸어가야 한다. 돌아올 수 있을까 아니면 돌아와야 할 이유 같은 것이 있을까. 두렵고 슬프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이라면 해야 하고,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떠난다. 두렵고 슬프지만 슬프지 않게 삶을 향해 걸어갈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긴 밤을 보낸다. 더는 잠이 오질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싫어했던 불확실성의 불쾌함 속으로 걸어들어 간다.



머릿속이 멍한 상태에서 약속한 7시가 가까워진다. 부랴부랴 짐들을 싣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한다. 무언가 대단히 중요한 무언가를 빠뜨리고 가는 기분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마저 버리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남겨두지 못한 것이 아쉬운 것일까."



8시가 조금 넘어 공항에 도착한다. 쿵! 하고 마음속 깊이 박혀있던 무언가가 감정의 바닥을 내리친다. 8개월 전의 결정을 후회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끝내 말하지 못한는 것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것이다.


"이렇게 힘이 없는 여행자가 또 있을까."



항공사의 티켓팅 장소에서 4개의 패니어들을 커다란 하나의 가방에 담아 수화물 가방을 만들고, 전자기기들의 배터리와 중요 소지품 그리고 노트북을 작은 패니어에 담아 기내 휴대용 가방을 만든다.



너무나 무거운 짐들, 추가 요금이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만 짐을 덜어내야 한다면 최악일 것이다.



자전거 박스의 무게를 재던 직원이 놀라며 말한다. 


"박스에 자전거만 들어있는 것이 맞아요?" "아니요. 몇 가지 더 집어넣었어요."


23Kg 무게 제한을 채우고 추가요금이 부과될 가방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그리고 자전거의 완충제 대용으로 은박 돗자리와 침낭 깔판 같은 것을 넣어 두었다.


여행용 자전거를 기본적으로 무겁게 만들어진다. 크로몰리 바디와 무거운 휠셋 그리고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저렴하고 일반적인 부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신형 트렉 5100 자전거는 기계식 브레이크 버전으로 생산되어 스펙상에는 15Kg 정도로 나와있지만 18Kg 정도 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당연히 23Kg을 훌쩍 넘어 버린다. 하지만 여기는 한국, 항공사는 아시아나 그러므로 우리에겐 만능 치트키 같은 '유도리'라는 융통성이 있다. 


"다음부터는 이렇게 하시면 안 돼요. 이번에는 23Kg으로 처리해 드릴게요."


처음부터 이렇게 해 줄 것이라 능글맞게 예상했지만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넘어갈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든다.



다음은 패니어 4개를 한 묶음으로 만든 수화물 가방을 올려놓으니 미안함마저 들게 만드는 민망한 무게 43Kg이 딱! 


"어. 잠시만. 23+43에 기내용 가방이 노트북까지 8Kg은 족히 나갈 건데. 왜 이렇게 무거워졌지?"


80,000원의 추가 요금이 나온다. 아마도 정상적으로 해야 한다면 짐을 덜어내야 했을 것이다.



자전거 박스의 별도의 대형 수화물로 맡겨야 한다. 대형 수화물 창구에 가서 검사를 맡기고 환전을 하기 위해 옆쪽에 위치한 신한은행 창구에 들린다.


환전을 위해 체크카드를 건네자 이체한도가 부족하다고 안내한다. 해외에서 카드 분실을 대비해 일일 사용한도를 책정해 놓은 것이 문제가 되었다. 계좌이체로 환전을 마치고 정신줄을 놓아버린다.


환전을 하는 동안 수화물 창구의 직원이 수화물 중 본드가 있어 빼내야 한다고 안내한다. 펑크패치의 절대 강자 돼지표 오공본드를 버려야 한다니 난감한다. 휴대용 펑크패치에 들어있는 튜브식 작은 본드가 2개 정도 더 있지만 그것으로 얼마를 버틸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여행 중 본드를 구매해야 하는 숙제가 주어진다.



일단 본드만을 빼내는 작은 출혈만으로 무사히 수화물은 통과한다. 수화물과 환전을 마치고 중국에서 사용할 유심칩을 찾기 위해 미리 구매해둔 심박스의 공항 배포처를 찾아야 한다.


중국 현지에서 유심을 바로 구매하여 사용하려 했지만 한 가지라도 번거로운 일을 줄이고 싶어, 여러 유심 중 30일 4G 제공 후 기간과 사용량을 충전할 수 있는 차이나 유니콤 유심칩을 공항수령의 방식으로 미리 주문해 두었다.


심박스에서 주문한 유심칩은 공항에서 수령하면 되고, 수령처는 공항 지하 1층에 위치한 KTX 일반열차 게이트 옆 트레블스토어다.


"지하 1층이면 한 칸만 내려가면 되네?" 


"여기 3층이야!"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를 탄 기억이 없는데 3층이라니 당황스럽다.



1층에 내려가 공항 밖으로 나간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트레블스토어 박스, 전화를 걸어 위치를 물었으나 지하 1층 KTX 게이트로 오라는 답변을 계속한다.


"공항을 등지고 KTX 게이트가 어디에 있는데요?" 


여전히 지하 1층 KTX 게이트로 오라는 답변만을 한다. KTX 게이트가 어디 있는지 묻는데 KTX 게이트로 오라는 답변이 정상적인 것인지 약간 짜증이 난다.


어렵게 KTX 출구를 찾아 지하 1층의 게이트 옆 트레블 스토어에서 유심침을 받아들고 공항으로 서둘러 되돌아간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조급하고 정신이 없다.


11시 출발 여정에 왜 8시까지 공항에 가야 하는지 그제서야 알 것 같다. 


"그렇구나!"



공항 3층으로 돌아오니 9시 40여 분이 된다. 탑승시간이 10시 20분이니 조금 쉬었으면 했지만 해외여행을 해보지 못한 여행 초보자의 헛된 바람이다. 출국심사를 하는 시간 같은 것이 머릿속에 있을 리 없다.


"이제 탑승해야 해."


머릿속이 컴컴해진다. 시간이 정지된 듯 무언가를 생각해 내야 하지만 아무런 생각도, 말도 떠오르질 않는다. 그저 '이건 아닌데. 아니잖아.'만을 반복적으로 되뇔 뿐이다.


아프다. 어떤 것인지 모르겠고 어딘지도 모르겠지만 아리고 아프다.



공항에서 분주했던 정신에 주머니 속 두 개의 라이터를 버리는 것을 깜박한 것 외에 기내 휴대품으로 가져간 가방은 아무런 문제 없이 출국심사를 통과한다. 라이터 한 개는 휴대 가방에 들어있으니 두 개는 버려야 한다.


출국심사 바로 직전 휴대전화가 울린다. 


"신한은행인데요. 고객님 환전 시 계좌이체하셨는데 제가 카드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출국 게이트 알려주시면 제가 가져다드리겠습니다."



깊은 한숨과 탄식이 절로 새어 나온다.


10시가 되어 출국심사를 끝내고 탑승 게이트로 이동하고 게이트 앞에서 체크카드를 건네받는다. 입맛이 없었지만 김밥 한 줄을 욱여넣고 길게 담배 한 모금을 태운다.


"멘탈을 정리해야 해. 정신 차리자."


탑승 시간까지 10여 분이 남아있어 해외 로밍을 신청한다. 한중일 패스 상품 5일/2G/25,000원. 유심칩이 불량일 경우를 대비해야 했고 5일 정도의 시간이면 그 기간에 발생할 돌발 상황에 충분히 대처할 능력이 생겼으리라 생각한다.


해외 로밍을 신청하고 SKT를 해지하기 위해 114에 전화를 건다. 


"해외에 장기여행을 가게 돼서 전화를 해지 하고 싶어요. 해외 로밍이 끝나는 4일 후에 해지를 해주세요."


대리점을 직접 방문하여야 해지를 해준다는 답변과 함께 불가피한 경우이니 필요서류를 보내주면 해지를 시켜주겠다 한다. 그런데 설 연휴에 업무를 하지 않아 7일이나 1일에 해지를 한다고 한다. 


"아.. 아까운 이틀의 로밍 비용."


비행기가 이륙하고 잠시 잠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허사다. 출입국 신고서를 받아 작성하다 보니 출국 신고서에 내용들을 적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피곤하다."


입국 신고서는 이름과 여권번호, 비자번호, 비자발급지, 입국항공기편, 숙소주소, 여행목적 등을 간단히 영문으로 적어내면 되는 간단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고기 덮밥과 빵이 기내식이 나온다. 너무나 맛있게 식사를 하는 옆 좌석의 여자를 보며 조금 우습다 생각한다. 입맛이 없어 손이 가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채워 넣고 빵은 비상식으로 패니어에 담아 놓는다.



한국과 상하이는 1시간의 시차가 있어 10시 50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12시 정도에 상하이 푸동공항에 착륙한다. 흐리고 비가 내리는 상하이 공항, 우중충한 날씨만큼 기분 또한 그러하다.


사람들을 따라 입국장으로 들어서자 외국인과 중국인을 분리하는 안내판이 보인다. 입국 심사대로 가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현금인출기 같은 곳에 손가락들을 올려놓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지문 채취가 있다는 기내방송이 생각난다. 먼저 여권을 스캔하면 안내 언어가 한국어로 바뀌고 검지를 제외한 4개의 손가락을 왼쪽 한 번, 오른쪽 한 번 그리고 양쪽의 엄지를 모아 한 번 이렇게 스캐너에 찍으면 된다.



지문 채취가 끝나면 OK 표시된 종이가 프린트된다. 


"끝인가? 되게 싱겁네."



사람들이 줄지어 있는 곳으로 따라 이동하니 검사대 같은 곳에 정체되어 대기하고 있다. 무언지는 모르지만 아는 척, 심드렁한 표정으로 줄을 따라간다. 


"잡지도 부르지도 말아라. 제발 부르지 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통과하는데 검사관이 나를 사이드로 불러낸다. 


"젠장, 부르지 말라니까"


여권을 요구하고 항공권을 달라 요구하더니 갑자기 꼬챙이를 들고 혓바닥 밑으로 넣으라고 한다. 그제서야 체온을 재는 검사대라는 것을 깨닫는다. 수하물의 무게를 줄이려고 동계 복장을 완벽하게 갖추고 검사대까지 오는 긴 거리를 무거운 패니어를 들고 걸어온 터라 땀이 나고 더웠다.


온도계를 확인한 검사원이 어디가 아프냐고 묻기에 아니라고 하며 조성모의 노래 다짐 안무처럼 방풍 자켓의 앞섬을 시니컬하게 펄럭였더니 'OK!'를 한다. 상하이 날씨는 서울보다 8~10도 정도 높으니 비행기로 상하이에 갈 일이 있으면 옷차림을 조금 가볍게 하고 가는 것이 좋았겠다 싶다.


입국 검사대에 대기하고 심사를 받는다. 여권을 제출하고 조금 기다리니 다시 왼손의 4개 손가락을 스캔하라고 한다. 


"왼손, 참 좋아하네. 난 좌파니까 문제없을 거야." 


하지만 검지를 제외한 4개 손가락을 바들바들 거리며 스캔을 한다. 어쨌든 무사통과!


대형 화물로 보내진 자전거 박스는 담당자로 보이는 남자가 카트에 미리 실어 놓았고, 다음으로 수하물로 보낸 패니어 묶음들을 찾는다. 한쪽 측면이 이미 너덜하게 찢어져 버린 패니어 묶음 대형 백. 튼튼하다고 대답했던 남대문 시장의 아저씨가 야속하다. 


"중국에 세탁소 같은 곳이 있으면 꿰매야겠다."


중국 공항의 카트는 일반 슈퍼의 카트만큼 정도로 작다. 자전거 박스를 놓고 패니어 묶음 백을 올려놓으니 카트가 기우뚱거리며 굴러간다.


"명색이 대륙인데, 쫌!"


카트를 밀고 수하물을 검사하는 곳으로 이동하여 줄지어 서있으니 커다란 자전거 박스가 사람들 사이에서 걸리적거리며 여간 민폐가 아니다. 기다리며 수한물들을 검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검사원에 의해 거의 투척과 다름없이 수하물 검색기에 집어 던져지고 있다.


"아, 이거 정말 곤란하게 생겼네."


짐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 생각하는 순간, 느리게 종종걸음으로 순서를 대기하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다른 검사라인이 생겼나 생각하며 사람들이 움직이는 방향을 보니 검사대를 무시하고 우르르 몰려 나가는 것이다.


아무래도 검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으니 직원이 통로를 열어버린 것 같다. 


"빙고!"


혹시나 사람들이 몰려 나가는 것을 직원들이 다시 통제할지도 모르니 서둘러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 빠르게 검사대를 지나친다. 


"역시, 중국이야!"


입국장을 빠져나오며 나도 모르는 긴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오고 어서 빨리 공항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자전거를 조립할 적당한 장소를 찾기 위해 도로가 있는 1층으로 내려간다.


현재의 위치는 2층,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찾아 넓은 공항을 돌아다녔지만 모두 다 소형 엘리베이터들뿐이다. 


"중국은 무엇이든 다 크고 넓다고 하던데 아닌가 보다."


자전거 박스를 세로로 다시 세우고 문이 닫힌 엘리베이터에 너비를 대보니 겨우 몇 센티 차이로 들어갈 수 있는 사이즈다. 사람들이 몰리는 지역을 벗어나 조금 한가한 곳의 엘리베이터를 찾아 1터미널 가까이에서 1층으로 내려간다.


요리조리 낑낑거리며 겨우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온 1층은 여전히 도로 지면의 위층이다. 


"지하 1층이 도로면인가?"


어렵사리 지하 1층으로 내려가니 이번엔 지면이 머리 높이 위로 있다. 


"도대체 무엇이냐? 이 이상한 구조물의 정체는."


어쩔 수 없이 다시 2터미널로 돌아와 엘리베이터를 독차지하기 위해 꽤 오래 기다리고. 


"1층도, 지하 1층도 아니면 지하 2층이겠지."


지하 2층에 내리니 넓은 주차장이 나오고 자전거를 조립하라는 듯 쓰레기통 옆에 넓은 공간이 있다. 시계를 보니 1시 30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도로로 내려오느라 조금 시간을 소비했지만 30여 분 정도 자전거를 조립하면 35Km 거리의 상하이 숙소까지 넉넉하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괜찮겠다 싶다.


하지만 머지않아 끔찍하고 눈물겨운 푸동 공항의 표류기가 펼쳐질 줄은 꿈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다.



분해된 자전거를 펼쳐놓고 차분하게 재조립을 하는 동안 청소 직원이 다가와 박스를 가져가겠다 하여 'Yes!'라고 하니 이번에는 나의 고급진 레어템 슬리핑 매트리스도 가져가겠다며 자꾸 집어 드는 것이다. 


"No!"


박스를 어딘가에 두고 돌아온 청소 직원이 다시 한번 매트리스를 향해 중국어로 뭐라 말하며 집어 든다. 자전거를 잡고 육각렌치를 들고 있던 중이라 그 얄미운 손을 어찌 가로막을 수가 없다.


"No! No! No! No! Nooooooooo! 부쓰! 부쓰! 부쓰! 쩌거 쓰 워 더 깔..판!!!!!"


다급한 상황이 오니 고등학교 때 배웠던 중국어가 느닷없이 튀어나온다. 머릿속 어딘가에 지워지다 만 잔여 파일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젠장, 깔판. 깔판이라니..." 


어쨌든 청소 직원은 멋쩍은 웃음을 보이더니 다시는 오지 않았다.




자전거를 조립하고 패니어를 장착하니 2시가 된다. 흐뭇한 만족감의 미소를 보이며 시험 삼아 주행을 해본 순간 균형이 맞지 않는 패니어의 무게 때문에 핸들이 미친 듯이 좌우로 출렁거린다.


"큰일인데. 일단 이 빌어먹을 공항을 먼저 벗어나고 균형을 맞춰보자."


자전거를 끌고 주차장의 출입구 쪽으로 걸어가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다급히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4-5살쯤 보이는 여자아이가 내 장갑을 집어 들고 나에게 달려오고 있다.


"오~ 땡큐!" 


아이는 장갑만을 건네고 무표정하게 휙 돌아서 엄마에게 뛰어가 버렸다. 


"씨에, 씨에 할 걸 그랬나."


다시 휘청이는 자전거를 끌고 주차장의 출입구로 향하였으나 차단기가 내려져 있어 지나갈 수 없다.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도로의 상황을 보니 인도가 없고 차량들이 고속으로 주행을 하며 지나가고 있다.


고덕지도 어플을 실행시키고 안내하는 경로가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런 길로 어떻게 가라는 거지? 헤이, 고덕양!"



여행을 위해 기본적인 지도 앱인 구글맵과 오프라인 지도 앱인 맵스미를 준비했다. 그리고 구글 서비스가 차단되어 있는 중국 여행을 위해 중국지도 어플인 고덕지도와 바이두지도를 추가로 준비해 두었다.


두어 차례 다른 길이 있는지 지하 2층 주차장을 방황하고 다시 차단기가 내려진 곳으로 돌아와 제복을 입은 안내자에게 길을 물어본다.


"하이웨이, 하이웨이!"


제복을 입은 직원은 고속도로라 자전거로 갈 수 없다고 한다.


중국인의 영어 발음은 우리의 된장 발음과는 또 다른 춘장 발음이다. 구글 번역기와 영어로 말을 해보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있는 맥도날드 로고를 보더니 맥도날드가 맛있다고 엉뚱한 말을 한다. 


"확, 그냥!"



깊은 빡침과 함께 처음 자전거를 조립했던 곳으로 돌아와 먼저 예원 근처의 숙소를 취소하고 트립닷컴(Trip.com)을 통해 공항 근처 5Km 정도에 있는 숙소를 다시 예약한다. 


"자전거를 못 타면 끌고서라도 간다. 두 시간 정도면 되겠지."


아무것도 못하고 한 시간이 지나버린다. 고덕지도를 다시 확인하고 하이웨이를 지나 일반 도로로 연결되는 지점으로 가기 위해 공항 터미널을 다시 올라간다. 자전거 전체를 다시 분해할 수는 없어 앞, 뒤 바퀴만을 제거하고 준비해 온 자전거 백에 구겨 넣는다. 자전거를 넣었다기보다는 자전거에 가방을 걸쳐놓은 모양이다.


"2/3는 가렸는데 뭐라 하지는 않겠지? 중국이잖아!"


카트 위에 패니어들을 깔고 그 위에 자전거를 올려놓고 카트 핸드바와 자전거 핸들바를 동시에 붙잡고 2층으로 올라가 제1터미널 방향으로 이동한다. 다행히 그것을 문제 삼는 사람은 없다.


고덕지도를 따라 1공항의 끝 지점에 도착하여 공항 직원에게 도로가 보이는 아래층으로 어떻게 가는지 물었으나 기본적인 영어가 안되니 대화가 안된다. 자꾸만 다시 검사대를 지나 1층으로 내려가라며 검사대가 있는 곳을 가리킨다.


"공항 근무자라면 기본적인 영어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냐. 더 나쁜 건 눈치도 없네. 젠장"


1터미널의 반대 방향으로 다시 카트를 끌고 이동하여 엘리베이터를 찾고 좁은 엘리베이터 속에서 중국인들과 부대끼며 지하 2층과 1층 사이를 온다 간다 방황을 한다.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공항의 구조에 고덕지도와 바이두지도를 번갈아 가며 확인했지만 두 지도 모두 현재의 위치가 틀려 도움은커녕 멘붕의 가속도에 불을 붙일 뿐이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그리고 주저앉아 지도를 확인하는 사이 2시간이 훌쩍 지나버리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저기 저 도로만 내려가면 될 것 같은데."


다시 터미널로 돌아가 영화 터미널의 톰 행크스가 되어야 하나 생각하다 마지막으로 지하 1층을 확인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자전거를 구겨 넣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간다. 여전히 머리 위쪽으로 도로가 있다. 


"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이놈들아!"



완전히 정신줄을 놓아버린 채 카트를 끌고 톰 행크스가 되기 위해 직진을 하다 보니 머리 높이의 도로로 올라가는 좁은 경사로가 보인다. 


"이런 거였어. 아... 이런 오렌지 십자군 새빨간 새우 젓깔!"


그제서야 푸동공항의 구조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2층 출입국, 1층 지상주차장, 지하 1층 도로와 이어진 반지하 주차장, 지하 2층 지하주차장 구조다.


방황의 끝이 왔음을 예감하고 도로에 오르기 전 담배 한 대를 문다. 하지만 자전거를 끌고 도로에 올라서자 마지막 카운터펀치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리 봐도 고덕지도가 가리키는 역방향으로 차들이 일방통행을 하고 있다. 


"고덕양, 너 지금 역주행으로 저기를 지나가라는 거야?"



5시 30분, 해는 떨어져 버리고 어둠이 천천히 내려앉는다. 


"톰 아저씨가 되어야겠어." 


터미널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 신호등을 건너는 순간 주차되어 있는 픽업트럭 한 대가 눈에 들어온다.


돈을 줘서라도 트럭에 자전거를 싣고 호텔로 가고 싶은 요량에 픽업트럭 주변에 앉아있는 여성에게 말을 건넨다.


"Is this your car?" 


위아래로 나를 훑어만 본다. 


픽업트럭을 가리키며 '쩌거 쓰 니더마?' 물으니 손을 좌우로 흔들더니 자리를 떠나버린다.


터미널의 입구와 픽업트럭을 번갈아 바라보며 트럭의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조금 전의 여성이 다가온다. 


이제 회화따위는 필요 없다. 


구글 번역기를 키고 중국어로 번역한 뒤, 중국어가 맞는지 다시 한글로 역번역하며 사정을 설명하고, 할 수 있는 최대의 과장된 몸짓으로 도움을 줄 것을 요청한다.


"공항에 4시간이나 갇혀있다. 저 길로 자전거를 타고 갈 수가 없다." 


그리고 자전거와 패니어를 가리키며 애원의 눈빛을 보낸다.


"뚜오, 뚜오, 타이 뚜~~~~오!"


여자는 짐들을 확인하더니 혼잣말을 한 후 기다리라는 손짓을 하고, 잠시 후 유니폼을 입은 남자를 데리고 온다. 


"I have to go, g~~~~~~~~~~o! this, this!!!"


고덕지도로 예약한 호텔을 가리키며 목적지를 말하니 여자와 남자는 한참 동안 서로 상의를 한다. 고맙게도 처음에 만난 여자가 남자에게 무언가 강한 어투로 도와주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돌아와 '택시!'라고 답을 한다. 


"택시를 타라고?"


조금 어리둥절해서 다시 짐들을 가리키며 '뚜오!'라고 말하자 남자를 따라가라며 가리킨다. 남자 직원을 따라 신호등을 건너간 곳은 콜밴 택시를 부르는 안내소다. 


"콜밴이라는 것이 있었어?"


콜밴 택시를 타본 적이 없으니 머릿속에 그런 방법이 생각날 일이 없다. 친절한 여자 직원이 방긋 웃으며 호텔 주소와 짐들을 확인하더니 240위안을 달라고 한다. 생각할 것도 없이 택시비를 내니 기다렸다는 듯이 콜밴 한 대가 안내소 옆으로 멋지게 들어온다.


"뭐, 이렇게 될 것이라고 각본이라도 짜놨어?"


짐들을 실기 위해 여자 직원이 자전거를 든다. 


"No, No! It's Heavy!" 


"With together!"


자전거가 무겁다고 알려주고 자전거의 한쪽을 들어올리니 천사 같은 미소를 보이며 씩씩하게 자전거를 들어 올려 콜밴의 뒤쪽에 실어주고 나머지 패니어들도 하나둘씩 나누어 실어 준다.


"씨에 씨에, 쌩유 쌩유 쌩유"



넓은 콜밴에 호사스럽게 혼자 탑승하여 크고 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필 이리도 여행하기가 어려운 중국을 첫 번째 여행지로 선택했나. 어쨌든 액땜 한번 제대로 했어. 앞으로 잘 되겠지."


10여 분이 조금 넘어 콜밴은 목적지인 상위안 호텔이 도착한다. 공항 근처의 조금은 외진 지역에 위치한 호텔로 문을 열고 들어서자 중국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가득한다.


체크인을 하는 동안 공항에서 있었던 일들을 구글 번역기로 설명을 하니 밝은 얼굴의 여직원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여준다. 


"우리가 내일 너를 공항까지 픽업해 주어야 하니?"


"픽업?"


호텔 주차장에 콜밴 차량이 한 대 주차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이 호텔의 공항 픽업 서비스를 하는 차량인가 보다. 넋을 놓고 할 말이 없다. 


"No!"



주숙등록이 끝나고 룸키를 건네준다. 8101호, 이층 건물인데 8층 번호를 찍혀있어 8층 이냐며 묻자 일층에 있다며 방을 안내해 준다. 모든 방들에 8자가 앞에 붙어있어 8의 숫자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독특한 표시 방법이다.


간단히 샤워만을 하고 주변에 음식점을 추천해 달라고 하였으나 역시나 대화하는 것이 어렵다. 


"내 발음도 이상하고, 네 발음도 이상하니 서로 힘들다. 그만하자."



밖으로 나오자 호텔의 옆으로 몇몇 음식점들과 슈퍼처럼 보이는 조금은 허름한 가게들이 보인다. 슈퍼처럼 보이는 곳에 테이블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들어가 밥을 먹는 시늉을 하니 빠른 중국어 속에 치킨이라는 단어가 들린다.


치킨인지 한 번 더 묻고 그것을 주문하고 얼마나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온다. 아마도 이 집에서 가장 빠르고 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메뉴인 듯하다.



닭다리, 계란, 청경채, 두부조림 같은 것 그리고 밥. 메뉴판에 나와있는 13위안짜리 음식과 젓가락 한 벌. 


"그런데 물은 안 주는가?"



그다지 먹기에 불편하지 않았지만 또한 그다지 맛있지도 않다. 허기를 채운 것으로 만족하고 무엇보다 물이 마시고 싶다. 


"초시, 이게 슈퍼라는 뜻인가 보다."




호텔로 돌아와 패니어에 담긴 짐들을 풀어헤친다. 짐들을 균형에 맞게 패니어에 옮겨 담고 불필요한 것들의 몇몇 가지들을 버릴 생각이다. 프런트에 가서 짐들을 버려야 하는데 어떻게 버리는지 묻자 왜 짐을 버리려고 하는지 묻는다.


"너무 무거워서 내가 죽을 거야" 


방긋 웃더니 프런트로 가져오면 버리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한다.



당장은 필요 없는 옷가지들과 무거운 핫팩, 양말 그리고 전혜린의 책등을 덜어내고 각각의 패니어에 무게를 맞춰 골고루 분산시킨다.


핸들바 패니어에는 중요한 물품들과 카메라, 프론트 패니어에는 자주 꺼내 쓰면서 무게가 가벼운 것들, 리어 패니어에는 옷가지들과 무거운 물품들 그리고 렉팩에는 텐트와 침구류, 라이딩 도중 환복할 수 있는 옷가지와 물품들을 넣는다. 라이딩 중 쉽게 오픈할 수 있는 것이 핸들바 패니어, 프론트 패니어, 렉팩 순서이고 리어 패니어는 물건을 꺼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현금들과 카드들을 나누어 넣고 비상금도 은밀한 곳에 나누어 숨겨둔다. 현금 인출용 카드, 구매용 카드, 예비 카드, 비상용 카드 그리고 사용할 현금과 예비 현금, 비상금을 가지고 다닐 것이다.



짐과 돈을 정리하고 전자기기들을 충전하기 위해 만코 어댑터를 꺼낸다. 중국의 콘센트는 주로 납작한 3구와 동그랗고 얇은 2구를 사용한다. 만코 어댑터의 3종류의 지원 콘센트 중 EU버전을 꺼내어 2구짜리 콘센트에 꼽으면 된다.




2구 콘센트에 EU버전 만코 어댑터를 꽂고 다시 멀리 어댑터를 꼽고 사용할 충전기의 어댑터를 꽂으면 충전 준비 끝.



노트북과 보조배터리, 카메라와 액션캠 그리고 두 개의 핸드폰에 충전을 걸고 침대에 누웠다. 정말 고단하고 정신없던 하루다.



조금은 쌀쌀한 중국의 주점에 누워 앞으로 겪어야 할 많은 일들이 막연하다 생각한다. 


"어제 달리기만 하면 돼. 씩씩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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