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03일 / 맑음 ・ 29도
봉평해변-울진-후포항
봉평해변에서의 편안했던 휴식을 끝내고 포항으로 가기 위해 출발한다. 후포항까지 라이딩을 하고 한마음 대게수산에서 저녁을 먹을 생각이다.


이동거리
57Km
누적거리
27,141Km
이동시간
5시간 16분
누적시간
2,063시간

 
동해안길
 
동해안길
 
 
 
 
 
 
 
30Km / 2시간 30분
 
27Km / 2시간 46분
 
죽변항
 
사동리
 
후포항
 
 
772Km
 

 

새벽 1시 28도, 바람 한점 없는 열대야 같은 더위에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피곤함에 쓰러진다.

텐트를 벗어나 야외의 평상에서 잠을 자니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더위가 조금은 덜하지만 문제는 모기들이다.

피곤함에 잠든 상태에서도 모기에게 물린 곳의 따가운 간지러움에 잠에서 깨고 만다.

"에쉬!"

새벽 2시, 어쩔 수 없이 다시 텐트 속으로 들어가 더위가 사그라들기를 바라며 잠이 든다.

아침 10시, 잠을 잔 것인지 모를 정도로 피곤하다.

"아, 컨디션 최악이다."

바로 텐트를 정리한다. 목적지인 후포항까지 50km 정도의 거리, 꽤나 힘든 하루가 될 것 같다.

텐트를 정리하고 있으니 피서를 온 한 가족이 다가와 떠날 것인지를 묻고는 내 텐트 자리에 자신들의 텐트를 치겠다고 한다.

맥반석 계란 두 개를 선물로 받고, 텐트 자리를 내어준다.

"밥을 먹고 갈까?"

후포항의 한마음 수산에서 저녁을 먹을 계획이라 점심 타임이 애매하다. 굿모닝 뷔페에 가서 아침을 먹고 출발할까 생각하다 속이 거북하여 그냥 출발하기로 한다.

중간에 허기가 지면 아무것이나 먹으면 되고, 맥반석 계란 두 개가 생겼으니 아쉬운 대로 계란으로 해결해도 그만이다.

이틀 동안 도움을 준 강작가님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남기고 출발한다.

자전거 도로는 울진군의 외곽을 따라 이어지고.

"나무테크 길은 참 잘 만들어."

울진군을 벗어나는 한적한 자전거 도로는 다시 해안가를 향해 이어진다.

컨디션 탓인지, 밥을 안 먹어서 힘이 없는 것인지 지나치는 편안한 풍경과 달리 페달링이 지루하다.

"이것을 넘으라고 이렇게 빙돌려서 안내했군."

해안가 끝에 만들어진 울진군 은어 다리, 조형물이 마음에 든다.

"예쁘네."

은어 다리를 건너 소나무가 조경된 엑스포 공원을 지나 왕피천을 따라 빙글 돌아간다. 천변에 조성된 공원의 솔밭 캠핑장이 너무 좋다. 무료로 운영되는 공공시설 같다.

망양정 해변에서 기성망양 해변으로 이어지는 울진 해안도로의 바닷가 작은 어촌의 풍경들은 소박하고 평화롭다.

작은 이름 없는 해변들의 조용함, 관광지 해변들의 번잡스러움과 이유모를 거부감이 없는 고즈넉함이 좋다.

"바다가 보이는 풍경에서 살아야 한다면 이곳 어딘가에 정착을 해도 좋겠다."

기성망양 해변을 앞두고 작은 방파제 옆 해변으로 내려간다.

"쉬었다 가자."

"계란도 먹고."

밀려드는 파도에 발을 담그고 시간을 보내다.

백사장에 깔린 조약돌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들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언가 기념할 수 있는 선물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작은 조약돌들을 모아 본다.

구체적이진 않지만 괜찮은 아이디어가 흐릿하게 떠오른다.

조약돌 밭에 앉아 돌들을 고르는 동안 흐리던 하늘이 뜨겁게 바뀌어 간다. 한 시간이 넘도록 해변에 앉아 돌들을 고르고.

"여기는 폭염인가?"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는 중부지방과 달리 한여름 습한 무더위가 느껴진다.

출발 전 내비게이션은 후포항까지 2개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고 안내했는데, 기성망양 해변을 벗어난 도로는 갑작스러운 경사도로 첫 번째 터널을 향해 올라간다.

"괜히 돌들을 담았나?"

묵직해진 자전거를 끌고 거친 숨을 토해낸다.

 

작은 마을 사동리를 지나고, 한 가족 정도의 사람들이 작은 해변을 독차지하고 있다.

"이런 곳이 좋은데. 왜 바글바글 시끄러운 해변에 모여드는 거야?"

카페나 편의점, 모텔이나 펜션 같은 편의시설을 포기하면 꽤나 멋지고 조용한 곳에서 해변을 독차지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사동리를 지나자 바로 두 번째 터널이 나타나고.

"그러니까 사동리는 고개와 고개 사이에 위치한 숨겨진 장소인 거야?"

매번 느끼지만 우리나라의 고개들은 정말 힘들고 지친다.

고개를 내려오자 다시 작은 고개가 나타나고, 지쳐가는 페달링에 생각 없이 가다 보니 느낌이 이상하다.

"이 길이 아닌가 봐."

다시 해안으로 이어지는 길, 봉산리와 구산리로 이어지는 어촌의 풍경이 좋다.

"이런 집은 얼마나 하지?"

낡은 어촌의 집, 외형은 그대로 두고 내부만을 편리하게 개조하고, 돌담을 쌓고, 마당은 콘크리트를 제거하고 잔디와 꽃밭을, 뒷마당은 텃밭과 정원 그리고 장독대, 창고는 서재와 다실로 만들면 좋겠다.

"감나무도 한 그루 심을까? 이글의 러시아 반야는 어디다 만들지?"

어촌 마을의 오래된 빈 집들을 눈여겨보며 천천히 길을 이어간다. 좋은 느낌의 공간과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문어군, 돈 좀 빌려줘라."

농촌이든, 어촌이든 시골을 지나칠 때 마주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부모님이 생각난다.

붉은 고추를 말리거나, 정자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홀로 평상에 앉아 있거나, 텃밭의 잡초를 뽑거나, 농기구를 들고 길을 걷거나 그 모든 실루엣에 그들의 모습이 투영되어 지나쳐 간다.

생각과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 동안 평평해진 해안길은 목적지인 후포항에 다다른다.

"왔네."

경쾌하지는 않았지만 좋은 시간이었다.

허기짐이 밀려온다.

후포항의 수산물 시장에 위치한 한마음 대게 수산으로 찾아간다.

"어, 가게가 바뀌었네. 맞나?"

상호는 맞는데 건물이 새롭다. 자전거를 세우고 들어서니 눈에 익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8년의 단골집이지만 처음 만나게 된 사장님이 보인다.

나를 몰라보는 가게의 식구들과 잠시 이야기를 하니 세계여행 전 전국일주를 하며 들렸던 기억들을 떠올려 내며 반갑게 맞이해 준다.

홍게가 잡히는 시즌이 아니라 러시아산 대게만을 판매하고 있다.

대게 한 마리와 식사를 주문하고.

"시즌이 아니니 아쉽지만."

"역시 이 탕이 최고야!"

이모님의 비법이라던 대게탕은 여전히 대박이다.

모든 음식을 깨끗하게 비우고.

"일단, 나는 잘 먹었는데."

최근에 가격이 두 배가 올랐다는 러시아산 대게, 아쉽지만 포항에 가서 좀 더 저렴한 가격의 도매집을 찾아봐야겠다.

인사를 나눈 뒤 후포해변으로 간다. 해변의 솔밭에 여러 개의 텐트들이 자리 잡고 있지만 혼잡한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다.

적당한 곳에 텐트를 펼치고, 수돗가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땀들을 씻어낸다.

텐트로 돌아오니 하늘이 번쩍거리더니 빗방울들이 떨어진다. 지나가는 소나기 정도라 시원해서 좋겠다 싶다.

밤의 열기를 가라앉히고 비는 멈춘다. 많은 텐트들이 해변에 설치되어 있지만 밀려드는 파도 소리뿐, 너무나 조용하고 좋은 밤이다.

"오늘은 편하게 잘 수 있겠다."


 

 

GPS 정보

 

 후원 : KEB 하나은행/변차섭/415-910665-18507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602일 / 비 ・ 28도
죽변 봉평해변
봉평해변에서 하루를 쉬어간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27,084Km
이동시간
0시간 0분
누적시간
2,057시간

 
샤워
 
갯바위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죽변
 
죽변
 
죽변
 
 
715Km
 

 

몇 차례의 뒤척임, 억지스레 잠을 떨쳐내려 애를 쓴다.

폭우로 인해 잠들지 못했던 어제의 피로가 대단했나 보다.

한산한 아침의 바닷가, 부모의 손을 이끌고 나온듯한 꼬마는 수영을 하고, 모래 장난을 하느라 바쁘다. 밥을 먹으러 가자는 부모의 제안은 그저 공허한 울림처럼 사라져 버린다.

아침을 먹을 생각으로 어제 만난 여행작가가 알려준 굿모닝 뷔페에 들렸지만 11시 반에 오픈을 한다고 한다.

텐트로 돌아오면 다른 식당에 들어갔지만 물회와 매운탕만이 가능하다 하여 그냥 돌아온다.

산산하게 불어오던 바람이 멈추고 갑작스레 기온이 올라가는 느낌이다.

"그늘로 이동할까."

귀찮은 일이지만 소나무가 있는 그늘로 텐트를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몇 차례 왕복을 하며 텐트와 짐들을 옮기고 나니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기다렸어?"

텐트로 들어가 누워 있으니 한 남자가 말을 걸어온다. 어제 만났던 여행작가다.

"왜 전화가 안 돼요?"

어젯밤 비가 와서 걱정을 했다는 강작가님은 샤워를 했는지 물어본다. 폭우 속에서 비를 맞고, 더위에 땀을 흘리고서 마땅히 씻지를 못해 끕끕했던 차인데 샤워를 하러 가자고 한다.

작가님은 투숙하고 있는 펜션으로 앞장을 서고.

오전에 투숙객이 빠져나간 방의 샤워실을 안내해준다.

"아, 살 것 같다."

샤워를 끝내고 작가님을 찾았지만 보이질 않고, 아침을 먹으러 다시 굿모닝 뷔페로 간다.

한산한 뷔페식당, 6천원의 식대를 지불하고.

보리밥과 반찬들을 담는다. 고추장에 비벼먹어도 최고일 것 같은 나물 반찬들의 구성이지만 귀찮아서 그냥 배불리 두 그릇을 해치운다.

"집밥 같은 것이 먹고 싶었나?"

한국에 돌아와 많은 맛있는 음식들을 먹었지만 특별한 만족스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화정산의 쌈밥집과 여행 중 먹었던 백반집에서 '정말 잘 먹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회나 고기, 족발 같은 즐겨 먹던 음식이 아니라 나물 반찬들과 함께 먹는 집밥 같은 음식이 먹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부풀어 오른 배를 통통 튕기며 텐트로 돌아간다.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날씨지만 샤워를 한 상쾌함과 배부른 포만감이 그저 만족스러울 뿐이다.

텐트로 돌아가는 중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하니 도로의 반대편에서 강작가님이 손을 흔들고 있다.

"어디 갔다 와요?"

"굿모닝요!"

"아, 맛있게 먹었어요? 내가 텐트에 탕수육이랑 만두를 놓고 왔어요. 먹어요."

"감사합니다."

작가님이 놓아둔 탕수육은 저녁으로 먹어야겠다.

텐트에 누워있으니 나른한 졸음이 밀려온다. 어느새 비는 멈추고 바닷가에는 아이들과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든다.

졸음도 털어낼 겸 바닷가로 나가서.

이리저리 걸어다닌다.

사람들과 아이들이 무언가를 잡느라 바쁘다.

"너냐?"

보말과 작은 조개가 많다며 신이 난 아이들.

갯바위 틈 사이로 게의 모습도 보이고.

'야, 다 보이거든!"

"심심한데 잡아볼까."

갯바위를 걸어가며 보말들을 채집하고.

"삶아서 먹으려면 다섯 신발은 잡아야겠네."

한 신발을 채우고 갯바위에 보말과 갯고둥을 풀어놓으니 움직임이 수상하다.

"이 건 보말인데."

"넌?"

빠르게 움직이는 보말 껍데기들, 잡은 보말의 1/3은 작은 소라게들이다.

녀석들과 한참 동안 장난을 치고, 모두 갯바위에 풀어준다.

라면에 넣고 끓여 먹을까 생각했지만 굳이.

"오, 왕 쪼리!"

텐트로 돌아와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며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먼바다에 비가 내리는지 구름의 움직임이 경이롭다.

"그럼, 발!"

"오늘 하늘은 수묵화네."

몽골의 구름에 비하면 뭔가 소박하지만.

"저기 비 내리네."

"제가... 깨진 컵 같아요. 남에게 상처를 주고, 이제 아무것도 담지 못하는 그런 존재 같아요."

"금이 가고 깨지더라도 나는 나대로 오롯이 살아가려 해."

-어른을 위한 동화 '컵 이야기' 중에서

 

 "뭐 하세요?"

해 질 무렵 하늘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작가님이 낚싯대를 들고 텐트를 지나쳐간다.

"낚시 가세요? 구경할게요."

루어 낚시를 하러 가는 작가님을 따라 방파제로 간다.

함께 가는 어르신에게 루어 낚시를 가르쳐 주는 작가님이다.

"이렇게요!"

루어 낚시 초보인 어르신도.

작가님도 한 마리씩 고기를 낚아낸다.

핑크색 물고기.

"성대."

포항에 도착한 영선 형님은 어서 포항으로 내려오라고 메시지를 보내온다.

낚시에 대한 호기심은 하늘과 바다의 풍경 속에서 사라진다.

"나도 깨진 유리병 같다."

"물리적 시간을 이탈할 수 있다면."

"나는 너에게로 가게 될까."

 "아니면..."

문득, 현재의 내가 시간 속의 나를 궁금해한다.

 

 

 

 후원 : KEB 하나은행/변차섭/415-910665-18507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601일 / 맑음 ・ 28도
삼척-울진
새벽까지 이어진 폭우로 인해 전쟁 같은 밤을 보내고, 편히 휴식할 곳을 찾아 죽변항으로 간다.


이동거리
21Km
누적거리
27,084Km
이동시간
2시간 35분
누적시간
2,057시간

 
동해안길
 
동해안길
 
 
 
 
 
 
 
7Km / 50분
 
14Km / 1시간 45분
 
고포항
 
북면
 
죽변항
 
 
685Km
 

 

밤부터 조금씩 내리던 비는 일기예보와 달리 그 기세를 더해간다.

"무슨 일기예보가 실시간을 바뀌냐!"

10시에 비가 멈춘다는 날씨 예보는 아침까지 비 모양으로 바뀌어 가고, 최대 10미리의 시간당 강수량은 40으로 증가한다.

"너희를 믿은 내가 바보다."

새벽 3시, 더욱 거세지는 빗줄기는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고, 끝내 텐트를 옮기기로 결정한다.

저녁에 봐 두었던 도로변 정자로 가기 위해 패니어와 짐들을 하나씩 꺼내어 도로변으로 옮기고, 자전거를 끌고 정자로 가니 정자에는 이미 작은 텐트 하나가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늦었네. 살짝만 가장자리에 쳤으면 두 개도 들어가겠는데."

쏟아지는 빗속에서 어쩔 수 없이 정자 옆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비에 젖은 텐트를 거의 끌다시피 들고 와 정류장 안쪽으로 집어넣는다.

"투둑."

부실한 폴대 두 개가 부러져 나간다.

새벽 4시 반, 텐트의 내부는 이미 빗물이 가득 차있다. 손으로 빗물을 쓸어내고 망연스레 앉아 시간을 보낸다.

"괜히 옮겼나? 처음부터 정자에 텐트를 쳤어야 했나? 정자에서 비박을 하는 게 좋을까?"

5시가 넘어가고 날이 밝아온다. 에어매트에 바람을 넣고, 비에 젖은 옷들을 벗고 부드러운 속침낭 속으로 들어간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이 아늑함은 뭐지?"

정류장의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잦아들고, 피곤함에 바로 잠이 든다.

10시 반, 조금씩 더워지는 텐트의 온도에 잠에서 깬다. 느낌상 날밤을 뜬 눈으로 샌 기분이다.

엉망으로 젖은 텐트를 꺼내어 햇볕에 말려두고.

출출한 허기를 달래기 위해 마을을 둘러보지만 작은 슈퍼마켓은 없고, 마을 내부에 넓은 정자가 두 개가 더 있다는 것만 확인한다.

어제 해변에 텐트를 치기 전 마을을 조금이라도 둘러봤어야 했는데, 게으름에 캠핑의 기본을 잠시 잊어버렸다.

"어서 말라라."

피곤함에 이동을 하고 싶지 않지만 딱히 음식을 구할 곳이 없어 움직여야 한다.

하룻밤 사이 녹이 슨 체인에 윤활을 하고 마을을 빠져나간다.

"너 참 얄궂다."

마을의 초입에 울진군의 경계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고.

길은 긴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시작부터 이게 뭐야? 나한테 왜 이래!"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지는 자전거를 끌고 고개를 오른다.

몇 개의 작은 마을들을 지나치는 동안 작은 슈퍼마켓도 찾기가 힘들고.

쉽게 지쳐버린 페달링으로 겨우 죽변항에 도착한다.

"힘든 20km다."

10년 만에 다시 온 죽변항, 배 고프다.

죽변항 입구의 식당가로 들어가.

생선구이 집으로 들어간다.

심각하게 제육볶음 같은 고기가 당기지만 오는 동안 두 군데의 식당에서 퇴짜를 맞았다.

"왜 제육볶음은 2인분부터야!"

인상이 좋고 여자가 상냥하게 응대를 해준다. 공깃밥 두 그릇을 해치우고.

죽변항을 잠시 구경한다.

항구 주변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대게를 파는 가게들만이 바쁘게 움직이고.

야영지로 생각한 봉평 해변으로 간다.

도착한 봉평 해변의 캠핑장은 텐트들로 가득하고, 캠핑장도 유료로 운영되고 있다.

피곤함에 유료 캠핑장이라도 들어가고 싶지만 다닥다닥 텐트들이 붙어있는 캠핑장은 끔찍하다.

편의점에 앉아 잠시 주변을 검색하고, 해안가 끝에 있는 방파제 주변의 해변에 캠핑 공간이 있을 것 같다.

봉평 해변의 끝자락, 방파제를 가운데에 두고 작은 모래사장이 있다.

언덕 위에 작은 민박집과 펜션이 있고.

해변에는 몇 개의 그늘막과 텐트들이 자리 잡고 있다.

"오케이. 빙고!"

다른 텐트들과 멀리 떨어진 방파제 가까이에 텐트를 펼친다.

"자전거 여행을 하시나 봐요."

낚싯대를 든 중년의 남자가 말을 걸어온다. 자신도 전국일주를 여러 차례 했다는 남자는 여행작가라며 자신을 소개한다.

60세라는 남자는 어릴 때부터 세계 50여 개 나라를 여행했다고 한다. 남자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들고 있는 낚싯대에 대해 물어본다.

여행을 하며 낚시를 해봤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 낚시에 대해 관심이 많다.

루어 낚싯대에 대한 궁금증들에 대해 묻고, 남자의 여행담을 듣는다.

꽤나 유쾌하고 즐거운 남자다.

방파제에 올라 바다를 구경하고.

텐트로 돌아와.

바닷물에 들어가 발을 담근다.

"아, 정말 긴 하루다."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실루엣 좋네. 부럽다!"

저녁을 간단히 해결하고 텐트에 들어가 누우니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러지 마라!"

날씨를 확인하니 비예보가 전혀 없다.

"믿어본다. 피곤하고 귀찮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폭죽들이 계속 터진다.

멀리 안쪽으로 들어온 것이 다행이다 싶다.

"대체 저녁에는 뭘 하다가 이 시간에 나와서 볼품도 없는 폭죽을 쏴 대냐!"

 
피곤할수록 잠들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불행히도 오늘이 그렇다.

"젠장!"

 

 

 

GPS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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