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16일 / 맑음 ・ 36도
언양-양산-밀양
시원한 작천정 계곡을 떠나 양산으로 향한다. "밀양으로 갈까 아니면 김해로 갈까?"


이동거리
66Km
누적거리
27,435Km
이동시간
6시간 36분
누적시간
2,091시간

 
35번국도
 
낙동강길
 
 
 
 
 
 
 
36Km / 3시간 00분
 
30Km / 3시간 36분
 
언양
 
양산
 
밀양
 
 
1,036Km
 

 

7시, 작천정 계곡은 아침 햇볕으로 더워진다. 아침의 달콤한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는 아주 매정하고 지독한 날씨다.

짐들을 정리하며 젖은 옷들을 햇볕에 말리고.

사람들이 사라진 계곡에는 놓고 간 물건들과 버려진 쓰레기들이 많다. 신발, 물안경, 안경, 모자, 휴대용 선풍기, 머리띠 그리고 아이들의 고무튜브까지 잃어버리고 버려진 물건들이 놓여있다.

"애들은 안 잃고 데려갔으니 다행이네."

주인을 잃은 고무튜브와 잠시 놀아주고.

사람들로 뿌옇게 변했던 물은 다시 깨끗하게 변해있다.

텐트가 마르는 동안.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조금이나마 주워 담는다. 커다란 비닐봉지가 금세 가득해진다.

"너희들은 어쩐다니?"

바위 위에 올려놓으면 물놀이를 온 사람들이 사용할 것 같기도 하다.

텐트가 마르고, 짐들을 정리하는 동안 한두 가족이 계곡으로 찾아든다. 주말이 지나서인지 어제와는 달리 한산하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8명 정도가 한가득 짐을 들고 온다. 산책로를 그늘막 텐트로 모두 막고서 자리를 잡더니 바위 위로 다가와 말을 건넨다.

"아저씨, 여기 써도 돼요?"

"응, 놀아요."

예쁘장한 여자아이는 함께 온 친구들에게 자리를 옮기라며 말한다.

"어린애들이 뭘 이렇게 바리바리 싸들고 왔지?"

물속으로 들간 아이들의 대화에 비속어가 난무한다.

"아 씨발, 존나 차가워. 개새끼야!"

누군가 물을 뿌린 것도 아니고, 혼자서 물속으로 들어가 발을 담근 여자 아이가 소리를 친다.

"..."

욕이라는 것도 앞뒤 맥락이 있는 것인데, 아이들의 비속어들은 찰진 맛도 없거니와 문장의 앞뒤에 난데없이 붙어야 할 이유도 딱히 없어 보인다.

바위 위에 놓아둔 고무튜브는 욕만 하는 아이들의 차지가 된다.

"내 조카가 아닌 것을 다행으로 알아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도로변으로 자전거를 끌고 간다. 산책로를 막고 텐트를 친 사람들 때문에 가는 길이 쉽지 않다.

"응, 좋아요?"

서너 살 정도의 아이에게 존댓말을 쓰며 대화를 하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대화의 70%가 욕설인 아이들의 모습과 오버랩되며 씁쓸한 생각이 든다.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찾아갔지만 문이 닫혀있다.

"9시 연다고 했는데."

아침을 먹으며 배터리를 충전하려 했던 계획이 틀어진다.

넓적 바위가 좋았던 청암사 앞의 계곡으로 내려온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몸이나 담가보고 가자."

버프를 벗지 않고 바위를 타고 쏟아지는 계곡 물속으로 들어간다.

평일의 오전 시간이라 그런대로 덜 붐비는 자리다.

"우리 점프하자."

세 명의 아이들은 끊임없이 점프를 한 뒤 물속에서 첨벙 댄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자."

"이건 자연 미끄럼틀!"

바위틈 사이에 앉아보고 싶은데 물살이 제법 거칠다.

"청암사 주변이 제일 좋네."

아이들을 피해 바위 위쪽의 계곡에 몸을 뉘인다.

"시원하다."

"하루 더 있을까?"

사람들이 빠져나가면 청암사 주변에서 야영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계속해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바로 포기한다.

양산으로 가기 위해 헬멧과 버프를 고쳐 쓰고 있는데 로드바이크를 끌고 온 남녀가 인사를 한다.

선화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는 사람들인지 밝게 인사하며 여행에 대해 묻는다. 남녀 커플과 사진을 찍고, 양산으로 간다는 말에 분홍색 라이딩 복장이 잘 어울리는 여자는 자신들도 양산의 내원사 계곡에 간다고 한다.

"내원사요?"

"네. 거기도 좋아요. 여기랑 비슷해요."

지도를 검색하니 통도사를 지나 가까운 거리에 내원사 계곡이 있다. 통도사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고 내원사 계곡에서 야영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

"가자, 내원사로!"

"허걱!"

양산으로 가는 35번 국도를 들어서기 바로 직전 자전거가 막혀있다. 길을 돌아가 국도로 접어든다.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언양 주변의 높은 산들 위로 구름 안개가 내려앉아 있다.

"운치 있네. 근데 알프스까지는."

한국의 베네치아, 한국의 몽마르뜨와 같은 '한국의 무엇'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의 알프스라면 외국인들이 언양의 풍경을 보며 알프스를 떠올려야 하는 몫일 뿐이지, 굳이 머나먼 남의 나라 풍경을 빗대어 사용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쉽게 알프스를 못 가봤지만 적어도 프랑스의 간월재라는 표현은 프랑스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은 잊혀지고, 간혹 예전의 명칭이 생각나면 헛웃음이 먼저 새어 나오는 '부곡 하와이'의 느낌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는 명칭이 많을 건데."

양산의 양산천 자전거 도로를 만나기 전까지 국도를 따라 이동해야 한다. 한국의 운전자들과 함께 달려야 하는 국도 라이딩은 정말 좋아하지 않는 코스다.

갓뚜기의 연구시설에서 통영사가 있는 하북면으로 들어간다.

"덥다. 가을아, 어서 와줘."

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 통도사의 매표소가 보인다.

"시원한 커피 아니 밥부터 아니 냉면이 좋을까? 그래 밀면 좋다."

연탄구이 고기가 맛보기로 함께 나온다는 밀면을 주문한다.

음식을 기다리는 사이 한적한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리던 어르신이 서빙을 하는 남자에게 질문을 한다.

"섬머 타임인가 봐?"

"네?"

쌍시옷 발음이 안 되는 경상도 사투리도 귀엽지만 썸머타임이냐며 묻는 할아버지의 질문이 난데없다.

서빙을 하는 남자가 어리둥절 쳐다보자 할아버지는 가게에 왜 손님이 없냐며 말하고는 시계를 쳐다보신다.

"12시네. 12시부터 1시까지 서머타임이야?"

친구분들 앞에서 외국물을 드셔 본 경험을 자랑삼으려 그러신 것인지 브레이크 타임을 서머타임이라고 착각하신 듯하다.

"할아버지, 귀여우신데요. 식당에서 말 수 좀 줄이시면."

식사를 하시는 내내 하노이 회담이며 김정일, 트럼프에 대한 이야기를 거짓 뉴스 수준으로 지인들에게 떠드신다.

"할아버지 마음대로 믿으셔도 좋은데요. 제발 말 수 좀."

고기와 함께 먹는 밀면은 생각보다 맛이 좋다. 내원사 계곡으로 가기 전 2시간 정도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통도사로 간다.

보행자용 매표소로 향하던 중 매표소에서 차량들을 안내하던 남자가 급하게 나에게 달려온다.

"자전거는 못 들어갑니다."

"왜 자전거가 못 들어가요?"

"원래 오토바이하고 자전거는 못 들어가게 되어있어요!"

"네?"

매표소의 안내판에는 자전서 출입금지 표시가 되어있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 있으니 자전거를 매표소에 놓고 걸어가라며 안내하는 남자에게 사찰까지 거리를 물으니 2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어이가 없다. 매표소를 통과하면 바로 사찰의 경내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차량들이 들어가는 주차장까지 자전거가 들어갈 수 없다는 이해할 수 없다.

수많은 해외의 여행지를 다녔지만 차량이 들어가는 곳에 자전거가 통제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도보 이외에 다른 교통수단이 통제된 경우는 있지만 대부분 도보처럼 자전거를 통제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된 거 아니야? 어이없어서 안 간다."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사찰을 둘러보려는 계획을 포기한다.

"이유 없는 삥발이까지는 어찌 이해하겠는데, 땡중들 너무 편하게 장사한다."

분이 나서 씩씩거리며 내원사 계곡으로 달려간다. 통도사보다는 규모가 작은 사찰이니 경내를 구경하고 계곡에서 캠핑을 할 생각이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는 차량들로 길게 정체가 되고, 도로변 인도에는 음식을 파는 테이블들과 사람들이 가득하다.

주차난으로 차량들이 정체되어 있나 생각하며 반대편 차선을 이용해 꽉 막힌 차량들을 지나쳐 가니.

내원사의 매표소가 나오고 출입통제 안내판이 커다랗게 세워져 있다.

"자전거가 잡상인 취급을 당하다니. 젠장!"

다시 길을 내려온다. 정체된 차량들의 줄은 더 길게 이어지고 있다.

내원사 계곡에서 캠핑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잠깐만 놀다 양산으로 가자."

울퉁불퉁한 바위 주변으로 몸을 담글 수 있는 괜찮은 장소가 있다.

"역시 나이를 떠나서."

"단순한 것은 브로맨스다."

시원한 계곡물에 앉아있으니.

사찰의 입구에서 출입금지를 당한 화도 함께 식어간다.

작천정 계곡이 넓적 바위와 계곡물의 풍부함이 좋다면 내원사 계곡은 계곡이 길고 주변에 음식점들이 많아 편할 것 같다. 차량들과 음식점들로 조금 혼잡하지만 예전처럼 계곡까지 내려와 평상을 놓고 영업을 하는 것 같지 않아서 다행이다.

물놀이와 휴식이 필요하면 작천정 계곡이, 식도락을 함께 즐기려면 내원사 계곡이 좋을 것 같다.

흠뻑 젖은 옷과 몸은 뜨거운 오후의 더위에 금세 말라버린다.

큰 어려움 없이 양산시의 초입에 들어서고 양산천의 자전거 도로가 시작된다.

"문제는 땡볕이야."

천변을 가로 넘는 다리의 밑을 제외하면 그늘이 거의 없는 양산천의 자전거 도로를 따라간다.

아마도 낙동강 자전거 도로의 상황도 비슷했던 기억이다.

"오늘은 양산천 하구 뚝방길은 싫다. 죽어도!"

양산천을 따라 낙동강까지 이어지며 멀리 돌아가는 자전거 도로를 벗어나 시내를 가로질러 물금역으로 간다.

더위는 어쩔 수 없지만 낙동강 자전거길로 진입하는 거리는 많이 줄일 수 있다.

시원하게 냉방이 잘 되는 물금역 안으로 들어가 열기를 식힌다. 한국의 공공시설들은 정말 최고다.

"기차 타고 서울로 가고 싶네."

물금역에서 낙동강 자전거 도로로 진입한다.

항상 감탄이 나오는 한국의 나무테크 길을 달리고.

지루한 자전거 도로만큼 더 지루하게 흘러가는 낙동강이다. 한강과 달리 낙동강은 물살의 흐름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고여있는 호수처럼 느껴지고 물의 색감도 왠지 탁하게 보인다.

갈증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쯤 공원의 푸드트럭이 보인다. 양산을 벗어나가 전 음료와 간식을 먹을 수 있는 마지막 장소이다.

식혜와 믹스커피를 고민하다. 믹스커피를 선택하고.

쉼터 의자에 드러눕는다. 하루 종일 차가운 음료수를 마시다 보니 목구멍이 칼칼하다.

김해로 넘어가기 전 삼량진 생태 공원에서 야영을 할 생각을 출발한다.

지루한 섬진강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뒤에서 따라오시던 어르신은 어느 순간 보이질 않는다.

밀양시의 경계를 넘고.

가끔씩 토사가 쌓여있던 자전거 도로는 폭우로 인해 침수되어 엉망으로 망가진 도로로 변한다.

"돌아가는 길이 있어 다행인데, 저 경사는 어떻게 할 거야?"

땀으로 미끌거리던 고무신발이 시멘트 경사길에서 벗겨진다. 햇볕에 달궈진 길의 뜨거움에 폴짝거리며 자전거를 옮긴 후 가출한 신발들을 되찾는다.

"아놔, 고무 신발!"

우회 도로에서 내려다 보이는 자전거 도로에는 세상의 모든 쓰레기들이 다 모여있는 것 같다.

"치우는 것도 일이겠다."

침수된 구간은 짧게 끝났지만 삼랑진 습지공원으로 이어지는 길과 풍경은 엉망이다.

"캠핑할 수 있는 거야?"

오늘의 야영지로 생각했던 곳에서 캠핑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며 길을 따라가는 동안 길은 다시 출입이 통제된다.

기찻길 옆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삼랑진읍으로 돌아간다.

"이 벚꽃길 예쁘네. 자전거 도로를 이 길로 이어지게 설계했으면 더 좋았겠네."

여름날의 무더위가 느껴지는 풍경의 삼량진에 들어선다. 바쁘게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엔진 소리와 매캐하게 뿜어대는 매연의 열기가 숨이 막힌다.

돼지국밥과 꼼장어구이를 놓고 저녁 메뉴를 고민하다 비싼 꼼장어구이를 선택했지만 휴업일인지 문이 닫혀있다.

"이러면 곤란한데."

돼지국밥집은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도로변으로 되돌아 나와 삼량진 시장에 음식점이 있을까 싶어 찾아가던 중 슈퍼마켓 입구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냉풍기 자람이 자전거를 세운다.

잠시 문 앞에 서서 바람을 쐬고 있으니 처음처럼 시원한 느낌은 떨어진다.

"몰라, 안으로 들어가자."

구매 목적 없이 들어간 슈퍼마켓에서 넋이 나간 좀비처럼 매장을 돌아다니다 냉동고에 쌓여있는 폴라포를 발견한다.

눈으로만 봐도 그 맛과 시원함이 느껴지는 보랏빛 얼음 알갱이들이다.

폴라포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다시 슈퍼마켓에 들어가 폴라포 하나를 더 사고, 저녁으로 삼계탕 팩을 사서 먹을까 생각했지만 더운 날씨에 텐트 안에서 삼계탕은 무리인 것 같다.

삼랑진 거리를 배회하다 시장으로 들어간다. 작고 썰렁한 시장 골목에는 몇 군데의 음식점들이 있고, 고민 끝에 도토리묵밥을 파는 허름한 가게에 들어갔지만 영업이 끝났다고 한다.

"아, 시원한 것이 먹고 싶은데."

길 건너 돼지국밥집을 외면하고, 마을을 벗어나는 길에 위치한 순두부집으로 찾아갔지만 '금일 휴업'의 안내판이 붙어있다.

"오늘 이 동네 왜 이래?"

식당을 포기하고 마을 끝에 있는 편의점으로 가는 도중 보이던 중국집도 휴일이다.

"젠장, 오늘은 아침부터 계속 거절만 당하네."

작천정 계곡의 식당에서부터 통도사, 내원사 그리고 삼랑진의 식당들까지 아주 운이 괴팍한 날이다.

중국집 옆에 있는 허름한 식당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식사를 할 수 있는지 물으니 텅 빈 식당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여주인은 심드렁한 말투로 그렇다고 한다.

솔직하게 식당의 음식 맛보다는 밖에 설치된 수돗가를 사용하고 싶었다.

다슬기탕을 주문하고, 한참 후 나온 음식들은 나쁘지 않다. 음식 쟁반을 내려놓으며 무언가를 설명하는 여자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세상 귀찮다는 표정의 여자에게 작은 접시에 담긴 노란색 가루를 가리키며 콩가루를 넣어먹는지 물어본다.

"콩가루가 아니고요, 들깨가루라예."

"네에."

먹고 나면 녹색의 슈렉이 되어버릴 것 같은 담백하고 시원한 다슬기탕이다.

반찬으로 나온 콩잎 무침과 매운 고추튀각이 인상적이고 괜찮은 음식 솜씨다. 세상 귀찮은 표정의 주인에게 세상 귀찮은 손님은 떨어진 밑반찬과 추가의 밥을 더 달라고 요청하지 않는다.

"귀찮은 게으름은 내가 전문입니다."

말을 건네기가 미안한 여주인에게 수돗가에서 씻어도 되는지를 묻지 않고 그냥 가려고 하니 여주인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온다.

"여관에서 자고 갑니까, 그냥 갑니까?"

아마도 길 건너편의 오래된 여관을 함께 운영하거나 식당과 관련이 있는 곳인가 보다.

여주인에게 세상 귀찮은 표정과 말투로 들릴 듯 말 듯 '그냥 간다'라고 속삭이며 웃어주었다.

뜻하지 않게 든든하게 배를 채우니 편의점에서 살 것이 없다. 환타 한 병을 사서 나와 생태공원의 주차장으로 간다.

침수의 흔적은 보이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생태공원의 상태가 좋다. 이곳 사람들이 노지 캠핑을 한다는 주차장으로 간다.

캠핑을 하는 서너 대의 차량들이 보인다.

자전거 도로로 올라가서.

화장실의 상태도 확인하니 꽤나 깨끗하다.

무엇보다 화장실 옆에 설치되어 있는 수도시설이 마음에 든다. 아마도 화장실을 청소할 때 사용하는 수도시설인 것 같은데 시원한 물도 잘 나온다.

"와, 씻을 수 있다!"

일단 세수를 하고 발과 팔의 땀을 씻어내고.

다리 밑으로 돌아와 교각 사이에 텐트를 펼친다. 아침해가 어느 방향에서 뜨던 교각이 그늘을 만들어 줄 것 같다.

캠핑을 하던 사람들도 모두 떠나고 조용한 밤이다. 수돗가로 나가서 시원한 물에 샤워를 하고 나니 개운하고 좋다.

"내일은 어디로 가지? 밀양? 김해?"

오늘도 쉽게 잠들디 못하고 새벽까지 뒤척인다.



 

 

GPS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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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615일 / 맑음 ・ 36도
언양
언양의 작천정 계곡에서 하루를 쉬어간다. 작천정 계곡의 시원한 물줄기가 정말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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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천정
 
작천정
 
작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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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림이 계속된다. 아무래도 몹쓸 불면증이 다시 시작되려는 모양이다.

새벽 5시, 4시간 정도의 불편한 잠에 깨어 텐트 밖을 내다보니 아침 일출의 붉은빛이 예쁘다.

"더 자야 하는데."

"이러면 반칙이지!"

어쩔 수 없이 텐트 밖으로 나가 해가 떠오르는 아침을 맞이한다.

"감미롭다."

조용한 작천정 계곡의 아침이 시작된다.

1.5km 떨어진 공중 화장실에서 굿모닝을 알리고, 그늘이 없는 지금의 캠핑 자리를 옮기기 위해 청암사 주변을 살펴본다.

넓적 바위와 풍부한 계곡물 그리고 그늘이 진 시원한 자리가 많지만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너무 시끄럽겠다."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한 계곡, 멀리 그늘이 있는 자리로 의자를 옮기고 여행 자료들을 정리한다.

한 가족이 파라솔을 펴고 텐트 주변에 자리를 잡는다.

"파라솔도 챙겨 다녀야 하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작은 그늘도 사라져 버리고, 의자를 계곡 물속으로 옮기고 자리를 잡는다. 축축하게 젖어오는 엉덩이의 시원함이 생각보다 좋다.

"그냥 들어가자."

허리까지 차오르는 계곡 물속으로 들어가.

온몸을 계곡물에 담근다.

잠수와 허우적거림의 반복,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의 더위가 사라진다.

의자를 계곡물에 완전히 담그고 의자에 앉아 자료를 정리한다.

"무릉도원이 따로 있나!"

한가롭던 계곡물에 작은 꼬마 남매가 찾아와 물장구를 친다. 평온하던 나의 시간은 녀석들에 의해 순식간에 깨져나가고.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니 어느새 수많은 텐트와 그늘막이 세워져 있다.

"뭐야? 몽골족이 와서 울고 가겠네."

천국 같았던 계곡물 자리를 아이들에게 양보하고.

10시, 한없이 조용했던 계곡은 아이들을 데리고 온 피서객들로 가득 찬다.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의 식당으로 들어가 1인분 메뉴가 있는지 물어본다.

상냥함이 묻어있는 말투와 미소의 부부다. 거친 말투와 사투리, 외향적 제스처 그리고 외지인을 바라보는 의문의 시선, 가끔씩 마주하게 되는 이 지역의 낯섦에 정서적인 거리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기대 없이 건네는 질문에 친근하고 부드럽게 대답하는 부부를 보며 깜짝 놀라고 만다.

정갈한 음식, 흠잡을 것이 없는 정성스러운 상차림이다.

저녁에 다시 찾아오기 위해 영업시간을 묻고, 두 공기의 밥으로 모든 접시를 깨끗하게 비운다.

의자를 들고 그늘을 찾아서, 사람들을 피해서 유목민처럼 계곡 주변을 돌아다닌다.

햇볕을 피할 곳이 더는 없어 계곡물이 흘러 들어오는 통로에 의자를 놓고 자리를 잡는다.

오후가 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계곡으로 찾아와 산책로까지 텐트와 그늘막이 세워진다. 대부분이 유아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의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인데, 코로나 감염자가 다시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래도 괜찮은지 걱정이 된다.

친구들이나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이 시기의 아이들을 기르는 동안 답답할 정도로 맹목적인 행동들을 보인다. 아이로 인한 과잉된 자기애는 편협된 사고와 지독하게 이기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저 유난스러운 별꼴일 뿐!"

이미 아이들로 가득 찬 작은 계곡물에 자신의 아이를 끌고 들어가 물놀이를 시켜주는 젊은 부부들을 보며 '만약에'라는 쓸데없는 질문을 해본다.

"만약에 그 물놀이에서 아이에게 잘못된 일이 벌어지면 어쩔 건데?"

나라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더라도 한가한 장소와 시간을 선택해서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물놀이를 할 수 있게 했을 것 같다.

누구나 쉽게 찾아올 수 있는 도시 근교의 계곡,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 뻔한 주말의 오후, 어린아이를 사람들로 가득한 물속에 놓아두고 '아이, 예뻐라'를 반복하고 싶은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게 게으른 거야. 이기적인 거고 별꼴인 거지!"

글을 쓰는 동안 잠자리 한 마리가 날아와 내 어깨가 제 집인 것처럼 편하게 내려앉는다.

"뉘신지요?"

그리고 이내 무릎에 앉아 한참을 쉬었다 날아간다.

오후 3시, 계곡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각, 계곡물에 두어 번 잠수를 하고 돌아온다.

그늘을 찾아서, 사람을 피해서 이동하는 유목민의 생활은 계속되고.

물장구를 치던 아이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그 자리에 20대 초반의 사내아이들이 비집고 들어온다.

특별한 무엇이 없는 무규칙의 제멋대로에 즐거움, 정말 일차원적인 단순한 즐거움은 역시 브로맨스다.

한없이 더울 것 같았던 하늘의 기운이 바뀌어 간다.

길냥이 한 마리가 주변을 배회하며 자꾸만 울어댄다.

"님은 또 뉘신지요?"

이리저리 자리를 이동하며 글을 정리하는 동안.

계곡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끝까지 '한 번만'을 외치며 물속에서 나오지 않는 아이들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빠져나간 한적한 시간,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새로운 사람들은 짧게 남은 오후의 계곡을 아이에게 선물한다.

점심을 먹었던 식당에 들러 저녁 식사를 예약하며 보조 배터리를 충전한다. 여전히 친절하고 편안한 미소의 부부다.

"넉넉하게 준비해 둘게요."

7시, 모든 사람들이 사라지고 계곡은 다시 혼자만의 독차지가 된다.

식당에 들러 예약한 메뉴를 받아온다. 2인분이 기본인 메뉴인데 1인분의 주문을 밥과 반찬 그리고 야채까지 알뜰하게 담아 주신다.

"넉넉하게 담았어요. 맛있게 드세요."

텐트로 돌아와 정갈하게 담긴 반찬과 두루치기로 저녁을 먹고.

어둠이 내려앉은 계곡을 독차지하고, 모든 것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적당히 시원한 계곡물, 허우적거리며 수영을 하고 잠수를 하며 물장난을 친다.

"다시 돌아온 나만의 시간이다."

길고 긴, 너무나 길었던 하루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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