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94일 / 흐림 ・ 8도
체체를렉
흐리고 쌀쌀해진 날씨, 하늘에서 싸리눈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동거리
00Km
누적거리
9,362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647시간

뒹굴뒹굴
뒹굴뒹굴
0Km / 00분
0Km / 00분
숙소
수도원
숙소
 
 
1,180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해발 1,600미터의 도시 체체를렉, 쌀쌀해진 아침이다. 어두워진 하늘에서 하나둘씩 진눈깨비가 떨어져 내린다.

"눈이 내리려나 보네."

1층에 있는 카페 겸 식당으로 들어간다. 친철한 웃음을 갖은 어제의 여직원이 방긋 인사를 건넨다.

단품으로 적혀있는 메뉴들을 고르며 배가 많이 고프다고 하니 아침 세트 메뉴를 추천해 준다.

"아마도 오늘 눈이 내릴 거예요. 날씨가 추워요."

하늘을 보고 있는 나에게 여직원이 친절하게 날씨를 알려주며 음식을 가져다준다. 빵을 잘 먹지 않는 나에게 팬케잌과 빵, 베이컨 등의 아침 식사는 어색하고 성에 차지 않는다.

"빵으로 먹는 식사에도 익숙해져야지."

게스트하우스답게 이곳저곳에 여러 나라의 소개 자료 같은 것들이 걸려있고.

"이곳에 산악자전거 투어 같은 것이 있나?"

바위가 있는 산악지역이라 MTB 코스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오후에 시간을 봐서 한 번 가볼까. 체체를렉의 싱글 코스를 타보고 싶네."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던 여행객들이 하나둘 짐들을 들고 빠져나가고, 여행 자료를 정리하다 산책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숙소 뒤편의 바위산에 사찰 같은 것이 있어 올라가 보고 싶어진다.

"저기 올라가면 체체를렉이 한눈에 들어오겠네. 가보자."

학교가 있는 작은 공원에 불상으로 보이는 석상이 놓여있는데 그 모습이 이색적이다.

공원 뒤편에 있는 기와지붕의 오래된 건물이 보인다.

"이곳이 사찰인가?"

자전거를 공원의 난간에 묶어두고 건물로 들어가며 안내 간판을 살펴보니 사찰이 아니고 박물관이다.

몽골의 사자상의 입 부분에는 무엇을 묻히는지 모두가 시커먼 기름 같은 것이 묻어있다.

5,000투그릭 입장권을 사들고.

작은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는데, 뭔가 휑하니 그렇다.

몽골은 알록달록 원색을 많이 사용하고, 문양이나 조각상들의 형상이 강렬하다.

옛 게르의 모형을 봐도 지금의 게르와 별반 다른 것이 없다.

옛 건축물을 전혀 볼 수 없던 몽골에서 유적처럼 남겨진 건물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 같다.

박물관 안에는 과거의 생활 유물들과 종교 관련 유물들 그리고 근현대의 역사 정보들이 3개의 구역으로 나눠져 전시되어 있다.

라마교의 부처상은 느낌이 사뭇 다르고, 종교 관련 조각상들의 마치 악마나 사탄의 형상을 표현한 것처럼 강렬하고 이색적이다.

"마르코 폴로가 서방에 몽골을 알려주기 전, 사람들은 우리는 야만인으로 생각했데요."

울란바토르에 세워진 마르코 폴로의 석상에 대해 물었을 때 툴가가 대답했던 말들이 떠올른다. 토템 신앙을 뿌리에 두고 있는 몽골의 독특하고 이색적인 문화를 엿볼 수 있다.

60년대 체체를렉의 모습을 그린 그림도 보이고, 박물관이 있는 건물과 뒤편의 사원을 제외하고 모두가 사라지고 없는 것 같다.

원나라의 성쇠기 100년간 원나라의 속국으로 지배를 받았던 고려시대의 지도도 보인다.

"외세에 많이도 치이면서 살아온 민족이야.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니 짠하다 짠해!"

거대한 대륙을 정복했던 몽골이 자신들의 글자를 잃어버리고 산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칭기스칸 광장에 있던 조각상의 모형도 보이고.

관람객이 아무도 없는 박물관을 혼자서 구경하고.

박물관의 뒤편의 사원으로 올라간다.

돌산을 배경으로 부처상이 보이는 많은 계단이 보이고.

"무엇을 묻혀놓은 거지. 궁금해지는데."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보이고.

계단의 중앙으로 12간지의 동물들상이 순서대로 놓여있고, 호랑이 조각상 밑에 돌을 하나 올려놓고 계단을 올라간다.

정상의 사원 앞에 커다란 부처상이 세워져 있는데 왠지 우리의 부처상과 너무나 똑같다.

체체를렉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도원의 주변을 둘러보고 부처상의 오른 편에 놓여있는 종을 보기 위해 가까이 가보니 이것은 한국의 종이다.

"세계인류평화 기원의 종. 설마 저 부처상도 한국에서 세워놓은 것인가?"

시내 중심의 좌우 언덕으로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체체를렉의 풍경이 소박하고 아름답다.

산악 초원에도 꽃들이 피기 시작하고, 초원의 능선에 들어서 있는 몽골의 집들에도 익숙해져 간다.

"Are you tourist?"

수도원을 내려오던 중 산 길에서 걸어 내려오던 외국인과 눈이 마주치자 관광객인지를 물어본다. 러시아에서 워킹 여행을 왔다는 그와 인사를 나누고 여행자 명함을 주며 대화를 나눈다.

"Good luck!"

봄과 가을에 짧은 기간 여행을 즐긴다는 러시아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자전거를 세워둔 박물관 앞까지 함께 걸어온다. 러시아 남자는 그의 빠른 영어 발음이 부담스러워질 때쯤 짧은 인사와 악수를 건네고 시크하게 바쁜 걸음으로 걸어가버린다.

"오, 브로. 뭘 좀 아는 녀석이군."

자전거를 타고 체체를렉의 시내를 잠깐 구경하고 몽골 씨름 선수의 석상이 세워진 사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자전거를 탄 초등학생 정도의 꼬마가 인사를 한다.

"안녕. 너 한국 자전거 타는구나."

알톤 자전거를 타고 있는 꼬마에게 자전거 가게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봤지만 모른다고 한다. 숙소에 보았던 트렉 자전거 샵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보이질 않아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의 카페에 걸려있는 트렉 자전거 매장의 약도를 가리키며 어디에 있는지 직원에게 물어보니 한참 동안 포스터를 살펴보더니 울란바토르에 있는 가게라고 알려준다.

"Not here? 아쉽네. 산악코스가 있으면 MTB로 달려보고 싶었는데."

동네 곳곳에 소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체체를렉.

마땅한 음식점을 찾지 못하고 호텔에 있는 음식점으로 들어간다.

높은 테이블과 낮은 소파가 음식을 먹기에 불편한데 내몽골에서부터 이런 구조의 음식점들이 많다.

"내가 짧은 거겠지."

영어를 잘 구사하는 남자는 몽골어로 되어있는 메뉴판 대신 영어 메뉴판이 있다며 책상을 뒤적거린다. 괜찮다며 몽골어 메뉴판을 가지고 와 펼쳐보는 순간 영어 메뉴판이 왜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메뉴들 속에서 김치찌개백반 같은 것이 보이고 제육볶음 같은 메뉴가 보인다.

"난 소고기나 양고기가 먹고 싶은데."

남자에게 메뉴판을 가리키며 돼지고기인지를 묻자 그렇다고 대답하며 매운 양념으로 볶은 음식이라며 소개를 한다.

"제육볶음이네. 이걸로 주세요."

10분 정도가 지나 제육볶음이 나오고, 밥이 없느냐는 질문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가져다주며 두 공기의 밥과 함께 약간의 반찬을 내어주었다. 아마도 2인분의 메뉴인가 싶다.

맵다는 주인 남자의 설명과 달리 내 입에는 아주 달달하게 맛있는 정도다. 국물 떡볶이 정도의 느낌이랄까.

한국에서 이런 음식을 주면 형편없다고 말하겠지만 외국인들이 먹기에는 아주 적절한 맛의 제육볶음이다. 김병남 선교사와 먹었던 김치찌개도 그랬지만 한국 음식의 맛이 조금은 느껴지면서 현지인들이 먹기 편한 게 만들어지는 음식들이다.

중국의 한국 음식점에서 판매되는 한국 음식들이 아주 이상한 형태의 맛이라면, 몽골에서 판매되는 한국 음식들은 고개가 끄덕여지고 이해가 되는 그런 맛이다.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좋은 음식이다."

식당의 남자와 여행에 대해 짧은 이야기를 하며 여행자 명함을 건네주고 나온다. 저녁을 먹는 사이 비가 내렸는지 도로와 땅들이 젖어있다.

슈퍼에 들러 숙소에서 주전부리로 먹을 것들을 골라 담고, 독수리 타법으로 POS기를 사용하는 아주머니 탓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참 느긋하단 말야."

서툰 업무인지 계산을 하기 위한 줄이 길어지지만 짜증을 내는 사람도 없고, 빠르게 계산을 처리해 주려고 허둥거리지도 않는다. 한국에서 이런 상황이라면 귀까지 빨갛게 변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텐데, 카운터의 여자는 너무나 태연하고 느리다.

해발이 높아지면서 진공 포장되어 있는 제품들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다.

아침에는 눈이 내리고 오후 들어 맑아지더니, 저녁에는 잠시 비가 내리고 이내 비현실적인 구름들이 저녁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소들을 주인이 있는 거야?"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 체체를렉이 마음에 든다.

문제라면, 이런 좋은 곳에서는 많은 생각들이 낡은 영사기의 파노라마처럼 찌그덕거리며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때는 미처, 그때는 그저, 아마도, 어쩌면, 그래서.. 그러했는지 모르겠다 등등의 유효 기간도 없이, 순서도 없이 무례하게 파고드는 낡은 감정들.

툭.. 툭.. 툭. 이제는 괜찮은지 묻는 듯 감정의 끝을 건드려 놓고, 이번엔 어떻게 할 것인지 지켜보는 것처럼 빈 시간을 놓아둡니다.


"이번엔 네가 틀렸어. 널 이곳에 놓아두려고 온 거야! 꽤나 힘들 거야. 다시 나를 찾으려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93일 / 맑음 ・ 20도
카라코룸-코톤트-알탄유브-체체를렉
카라코룸에서의 야영을 마치고 체체를렉으로 향한다. 남부의 사막 초원과는 다른 몽골 중부의 푸른 산악 초원을 달린다.

이동거리
111Km
누적거리
9,362Km
이동시간
7시간 12분
누적시간
647시간

에르덴산트
A0602
85Km / 5시간 08분
36Km / 2시간 04분
카라코룸
알탄유브
체체를렉
 
 
1,180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새벽 몽골 초원의 날씨는 생각만큼 쌀쌀하고 추웠고, 깊은 잠에 빠져들지 못하고 가수면에 가까운 잠자리로 새벽까지 뒤척였다. 겹겹이 옷을 껴입고 여름 침낭을 덮었지만 조금씩 한기가 밀려들어 불편한 잠자리를 뒤척이게 만들었다.

새벽 5시가 되어서야 피곤함에 못 이겨 잠에 빠져들고 해가 떠오르며 따듯해진 텐트 안에서 피곤함을 달래며 게으름을 피웠다. 거세게 불던 바람은 사라지고 밤새 귀를 간지럽히는 새들의 지저귐이 즐겁다.

"마른 풀과 새롭게 새싹들이 자라나는 초원의 냄새 그리고 새들의 노랫소리."

"선교사님, 여행 다니며 누구라도 만나려면 침낭이 하나 더 필요하겠어요."

커피를 끓이고 선교사님과 앉아 몽골에 대한 궁금증과 유목 민족의 몽골인들의 이야기로 초원의 아침을 보냈다.

몽골의 초원에서 쑥처럼 자라는 풀은 독초처럼 만지면 쓰라리고 아파서 동물들조차 먹지를 않는다고 한다.

카라코룸(Хархорин)에서 체체를렉(Цэцэрлэг)까지는 120km 정도의 거리이다. 김병남 선교사는 체체를렉으로 가는 길의 초입까지 배웅을 해준다. 체체를렉 100km의 거리를 알리는 이정표에서 차량을 세우고 자전거를 꺼내어 패니어들을 장착한다.

고생스러운 잠자리였지만 함께 추억을 만들어준 선교사님과 포옹을 하며 인사를 하고 체체를렉으로 향한다.

파릇파릇 풀들이 자란 몽골 중부의 초원은 남부의 사막 초원과는 달리 생동감이 느껴진다.

한 시간 정도를 달려 작은 마을 호턴트(Khoton, Хотонт)에 도착한다.

카라코룸에서 이어지는 작은 강줄기가 마을을 돌아가고.

"말이나 양들은 자기 소유를 어떻게 확인하죠?"

넓은 초원을 돌아다니는 가축들의 소유를 어떻게 확인하는지 물었을 때 선교사님은 유목민의 고유 인장이나 인식표를 찍고, 뿔 같은 곳에 각자의 색으로 표시를 한다고 알려주었다.

염소들의 양쪽 뿔에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져있고, 양들은 엉덩이에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져있다.

마을의 초입에도 풀을 뜯는 양들이 가득하고.

"이놈들은 노란색과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져있네."

도로변에 있는 작은 슈퍼에서 물과 오렌지 음료수를 산다. 중국에서 매일처럼 먹었던 콜라가 지겹기도 하고 목이 칼칼하여 콜라보다는 과일음료가 낫겠다 싶다.

계산을 하며 밥을 먹는 제스처를 하며 식당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고 손가락을 가리켜 알려주는 길 건너편의 식당을 확인한다.

슈퍼에서 나와 잠시 쉬고 있으니 조그마한 초등학생이 다가오며 인사를 한다.

"Hi, My name is Sutan!"

수탄과 인사를 하고 가볍게 악수를 청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슈퍼의 여주인이 우리들을 지켜보며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다.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수탄을 다시 불러 사진을 찍는다.

슈퍼의 주인이 알려준 식당은 작은 호텔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자전거를 묶어두고 케니지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한때 우리나라의 경양식집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던 케니지의 색소폰 연주는 몽골의 레스토랑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제복을 입은 여직원이 메뉴판을 건네주고, 소고기와 볶음밥이 함께 있는 9,900투그릭의 음식을 주문한다.

"4,500원 정도 하는가? 아주 소고기가 가득가득하네!"

지금껏 몽골에서 먹어 본 소고기들은 마블링 같은 기름 부위가 전혀 없는 살코기들이다. 짭조름한 밥과 소고기 볶음은 탄산음료나 주스와 함께 먹으면 괜찮을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배가 차오르니 게으름과 함께 나른함이 찾아든다.

"여기서 하루 머물다 갈까?"

잠자리의 불편함으로 피곤함이 남아있던 터라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여직원을 불러 숙소의 숙박비를 물어보니 핸드폰에 9,900을 입력한다. 잠자는 제스처를 하며 호텔 쪽을 가리키니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100,000을 입력하여 보여준다.

"헐! 시골 호텔에 뭐가 있길래 50,000원씩이나 하는 거야?"

체체를렉으로 좀 더 이동하여 적당한 곳에 텐트를 치고 시간을 보낼 생각으로 길을 나선다. 게으른 페달링으로 속도가 나질 않고 길을 산악 초원의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

고개를 넘으면 다시 고개가 이어지는 전형적인 산악 초원의 길, 한 시간씩 라이딩과 휴식을 반복하며 지나치는 양들과 소, 말들에게 인사를 하고.

헤드라이트를 깜박이거나 크게 손을 들어 인사하는 운전자들 그리고 유목민의 복장을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사람들에게 손인사를 하며 지루함을 달랜다.

터널이 없는 몽골의 산악 초원은 크게 회전을 하며 하늘을 향해 올라가야만 한다. 오후가 들어서며 바람이 사라지고, 길게 이어지며 반복되는 오르막길은 나지막이 떨어지는 내리막길로 힘든 업힐의 보상을 한다.

업힐과 다운힐의 질주, 푸르게 변해가는 산악 초원과 하늘의 구름을 보며 조금씩 라이딩의 즐거움이 찾아든다.

"정말 오랜만에 바람 없이 달려보네."

"일단 바람막이를 벗고 달려 볼까?"

"뭔가 허전하군."

"저걸.."

"야! 심심한데."

"뛰자!"

초원 한가운데에서 쓸데없는 제자리 뜀박질을 세 차례 정도 하니 다리에 힘이 없다.

"괜히 했어!"

핸들바의 언더를 잡고 내리막과 오르막의 길을 신나게 달리다 보니 초원에서 말을 타고 말들을 몰던 목동이 나를 보며 손을 흔든다. 자전거를 눕히고 초원으로 걸어 들어가니 앳된 얼굴의 목동이 인사를 한다.

풀밭에 덥석 주저 않아 말들을 주시하며 나를 보더니 말의 고삐를 건네주며 뭐라고 말한다.

"말을 타보라고? 나 말 못 타!"

짧은 새싹의 풀들을 뜯어먹느라 건강한 치아를 드러내며 바쁜 말, 몽골의 말들은 크기가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다.

"너 이름이 뭐야? 난 싸비야."

손가락을 가리키며 내 이름을 말하고, 목동을 가리키며 이름을 물어보는데 자꾸만 내 발음을 따라 하면서 웃기만 할 뿐 자기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구글 번역기는 네트워크가 오프라인이 되면서 작동을 하지 않고.

"너, 취니 네르? 타니인가? 타니 네르? 취니, 타니 네르?"

"타르마!"

다섯 번을 타니, 취니 하면서 이름을 물으니 그제서야 이해한 듯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말해준다.

"다르마? 타르마?"

아무리 들어도 몽골의 발음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그냥 타르마라고 부른다.

"타니 게르..?"

게르가 어디인지를 묻고 게르 주변에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잘 번역이 되지 않는 구글 번역기가 오프라인으로 완전히 죽어있다.

"이럴 때 꼭 데이터가 떨어지거나 네트워크가 끊기더라."

혼자서 중얼거리며 게르가 어디인지를 물어볼 방법을 찾는 동안 타르마의 말에서 '바이시떼'라는 말이 들려온다.

"엉. 간다고?"

급하게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니 타르마는 이미 말에 올라 멀리 흩어져 있는 말들을 향해 소리를 치며 달려고 한다.

"타르마, 바이시떼!"

손을 흔들고 떠난 타르마는 멀리까지 흩어져있던 말들을 몰고 와서 도로 건너편으로 말들을 몰아 이동시킨다.

"소들은 시간이 되면 자기들 스스로 집을 찾아오는데 말들은 그냥 아무 데나 이동을 해버려서 목동들이 관리를 해야만 한다."

김병남 선교사의 말처럼 조금 전에 눈앞에서 풀을 뜯고 있던 말들이 타르마와 잠깐 얘기를 나누는 동안 아주 멀리까지 나가있다.

도로 건너편으로 말들을 몰아놓고 타르마 천천히 나를 보며 다가오더니 담배를 달라는 제스처를 한다.

"엉, 담배를 달라고?"

중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타르마는 손과 얼굴이 거칠게 변해있다.

"그래, 이거 펴!"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건네주고 얇은 웃음을 짓는 타르마에게 라이터로 불을 붙여주려 하니 아니라는 듯 담배를 안쪽 주머니에 넣는다.

"지금 안 핀다고? 그래, 그래!"

잠시 머뭇거리던 타르마가 검지 손가락을 펴서 한 개비를 더 달라는 제스처를 한다.

"아, 그래. 하나 더 가져가!"

담배 두 개비를 건네받고 수줍게 웃으며 인사를 하더니 이번에는 양들이 있는 곳으로 말을 몰고 멀리 멀어져 간다.

체체를렉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 야영을 할 생각으로 느긋하게 가다 보니 체체를렉의 거리가 여전히 45km가 남아있다.

"체체를렉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마을이 있던데, 거기까지만 갈까."

오늘의 목적지를 정확히 정하지 않은 게르나 주유소가 있는 적당한 곳까지 갈 생각으로 이동하던 중 김병남 선교사에게 전화가 온다.

"어디까지 가셨어요?"

"체체를렉이 한 45km 정도 남았습니다."

"체체를렉에 가면 외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는데, 그곳에 가보세요. 비싸지 않고 괜찮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여행 경비가 많이 소요될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은 저렴한 도미토리나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해야 한다. 중국을 여행하는 동안은 도미토리의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고 저렴한 빈관들이 많아 굳이 이용을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도미토리의 생활도 경험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스트하우스가 체체를렉 어디에 있는데요?"

"체체를렉에 도착해서 가다 보면 간판이 나와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알 거예요."

외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는 말을 듣고 오늘 체체를렉까지 이동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열심히 달리면 일몰 전에는 도착할 수 있겠는데. 근데 구글지도로 주소라도 찍어주시지 몽골 도시가 아무리 작다고 해도."

여전히 이어지는 끝없는 평지와 하늘로 향하는 오르막 그리고 내리막을 이어가며 빠르게 체체를렉을 향해 페달을 밟는다.

멀리 초원 위로 나무들이 자라 이어지는 실루엣이 보인다. 몽골의 초원에서 나무를 본 것은 처음이다.

체체를렉 이전의 작은 마을 알탄유브(Altan-Ovoo, Алтан-Овоо)의 입구가 나오고.

작은 마을의 뒤편으로 오래된 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서 있다.

"참 신기하네."

나무들이 들어선 숲의 뒤로 제법 크기가 크고 맑은 물이 흐르는 큰 강이다.

"강이 있어서 나무들이 강을 따라 이어지고 있는 거구나."

강을 넘는 작은 다리를 지나 초원의 모습도 변한다. 올록볼록 엠보싱처럼 물기를 잔뜩 먹은 듯 보이는 초원의 모습이 색다르다.

콜라와 물을 마시며 쉬는 동안 지나치는 차량들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거나 경례 같은 제스처를 하며 인사를 해준다.

5시 50분, 22km 정도가 남은 체체를렉까지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이면 넉넉하게 도착할 것 같다.

해가 떨어지는 체체를렉의 방향으로 오묘한 구름 한 덩어리가 보인다. 지면을 향해 무언가를 흩뿌리며 지나가는 거대한 우주선처럼 보인다.

점점 구름에 가까워지고 부드러운 능선을 이어가던 초원의 산등성이들도 오묘한 모양으로 바뀌어 간다.

거대한 기암괴석의 산의 모양을 따라 돌아가는 도로.

바위산을 크게 돌아 나오자 체체를렉의 시계를 알리는 듯한 표지석이 맑은 강물 주변에 설치되어 있다.

"바위와 산, 초원과 물이 만나니 정말 풍경이 예술이네."

차량을 세우고 쉬고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체체를렉을 향하는 길을 서두른다.

바위산을 지나 원을 그리듯 크게 돌아가는 도로에는 갑자기 거센 맞바람이 불어 대기 시작하고 비인지 눈인지 모를 무언가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끝일 났다. 18km 정도는 남았을 텐데."

오후 들어 바람 한 점 없이 조용했던 날씨가 요동을 치며 거센 바람을 안겨준다. 앞으로 전진하기가 너무나 버거운 페달링의 무게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끝없는 고갯길들이 이어진다.

"왜 항상 마무리는 이렇냐고!"

바람을 맞으며 오르막을 오르는 1시간 동안 모든 체력이 소진되고, 마치 콧노래를 부르며 살랑거리던 하루가 너덜너덜해진 느낌이다. 체체를렉의 초입을 알리는 입구에서 사진을 찍는 동안 자전거는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철퍼덕 넘어지고야 만다.

작은 언덕을 넘어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도로를 따라가고.

언덕의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체체를렉의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인샨드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마을의 풍경인데, 푸른 초원과 마을의 배경으로 들어선 멋진 산의 모양 그리고 멀리 이어지는 강의 실루엣들이 어우러지며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일단 체체를렉에 왔는데, 김서방을 어떻게 찾지?"

"주유소가 있는 로터리를 지나서 오른쪽으로 200미터 정도 가면 있어요."

김병남 선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게스트하우스의 정확한 위치를 물어보았지만 여전히 막연하다.

"주유소는 보이는데 로터리는 없고, 오른쪽에는 능선을 따라 집들밖에 없어 보이는데."

마을의 입구에 도착하여 작은 슈퍼에 자전거를 세우고 구글 지도를 검색하니 언덕 너머에 체체를렉의 시내가 들어서 있고, 선교사님이 알려준 게스트하우스가 좋은 리뷰 평점으로 검색이 된다.

"Fair Field Guesthouse."

외국의 자전거 여행자들이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였는지 패니어를 단 자전거 여행자들의 사진도 검색된다.

작은 고개를 넘어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좌우의 언덕으로 집들이 들어서 있고, 왼쪽으로 체체를렉의 시가지들의 모습을 들어낸다.

김병남 선교사가 알려주었던 주유소가 있는 회전 교차로가 보이고.

몇몇 작은 호텔들이 있는 골목을 따라가니 심플한 간판을 걸어놓은 페어필드 게스트하우스가 나타난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체크인을 하려고 2층에 있는 프런트로 올라갔다. 직원들 모두가 영어를 할 수 있어서 짧은 영어로도 간단하게 체크인을 한다.

얼마 정도 머무를 것인지 묻길래 모르겠다며 2~3일 정도라고 하니 그냥 웃으면서 체크인 서류에 이름을 적고 체크인이 끝난다.

게스트하우스에는 마지막으로 3인실 방이 하나 남아 있다. 49,500투그릭의 숙박 요금이라 게스트하우스 치고는 비싸다 생각이 들지만 몽골의 터무니없는 호텔 요금을 생각하면 괜찮게 느껴진다.

자전거를 게스트하우스의 측면에 있는 뒷마당 같은 곳에 묶어 둔다. 여행이 길어지니 이곳저곳이 부러지고 끊어지고 고장이 나기 시작한다.

잘 꾸며지고 정성스럽게 관리하는 게스트하우스처럼 느껴진다.

창가 침대에 자리를 잡고.

공용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식당으로 내려갔지만 빵을 주로 판매하는 곳이라 딱히 먹을만한 것이 없다.

숙소를 나와 주변을 둘러봐도 마땅한 식당이 없고 다시 숙소의 식당으로 들어가 메뉴판을 들고 햄버거를 어렵게 선택한다. 주문을 하려고 여직원에게 다가가니 9시에 영업이 종료라고 하며 안타까운 미소를 보인다.

"안돼! 나 배고파!"

방으로 돌아와 비상식으로 사두었던 작은 빵들을 먹으며 하루를 정리한다.

"배고프다고!"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92일 / 맑음 ・ 16도
차민바즈-룽-카라콜룸
에르딘의 게르 옆에서 편한하게 보낸 야영이였다. 홉스굴까지의 1,000km의 여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동거리
326Km
누적거리
9,251Km
이동시간
7시간 29분
누적시간
640시간

A0301
엘슨타사르하이
85Km / 4시간 00분
241Km / 3시간 29분
차민바즈
카라콜룸
 
 
1,069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기분 좋게 깨인 아침이다. 따듯하게 온도가 올라가는 텐트의 침낭 속에서 게으름을 피우는 여유까지 즐겨본다.

텐트를 정리하는 나에게 에르딘이 양치와 세수를 하라며 게르를 가리킨다.

패니어 정리를 마치고 게르로 들어가니 머리를 감는 에르딘에게 그의 어머니가 따듯한 물을 부어준다.

간의 세면대에서 세안을 끝내자 에르딘의 어머니가 테이블에 놓인 빵을 가리킨다.

몽골 사람들은 빵과 우유차로 아침을 간단히 먹는 모양이다.

몸을 따듯하게 해주는 우유차를 에르딘 가족에게 한 잔씩 받다 보니 세 잔이나 마시게 된다.

식사를 마치고 에르딘과 짧은 인사를 하고 홉스굴로 향하는 길을 출발한다.

주유소에 트럭이 들어와 크락션을 여러 차례 울리는데도 에르딘의 아버지는 뛰어나오지 않고 천천히 주유소로 나와 사무실로 들어간다.

몽골 사람들이 느긋한 것인지, 서비스 마인드가 없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사무실에서 나오는 에르딘의 아버지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니 젊은 여자가 조수석에 타고 있는 트럭의 운전자가 '헤이'하며 소리를 지른다.

"오해하지 마! 네 부인한테 손 흔든 거 아냐."

고개를 올라가자 도로변의 어붜를 돌며 무언가를 뿌리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몽골의 언덕이나 산의 정상에 쌓여있는 어붜.

몽골 사람들은 어붜를 돌며 소원을 빈다고 한다.

말의 머리와 술병, 돈 등 여러 가지 물건들이 돌과 함께 쌓여있다.

언덕을 넘자 작은 마을 나타난다. 지도상에 나타나지 않는 몽골의 마을들.

구글맵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면 이곳에서 쉬었을 텐데. 하지만 에르딘의 주유소도 좋았으니 가볍게 패쓰.

조금씩 바람이 일기 시작하는 도로를 따라 달리고 있는데 승용차 한 대가 도로 한가운데 정차를 하고 나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가까워진 차량을 지나치고 무거워지는 페달링을 이어가는데 정차되어 있던 승용차가 천천히 내 곁으로 다가온다.

"한국분이시네요?"

창문을 내리고 반갑게 인사를 하는 사람은 울란바토르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김병남 선교사이다.

자전거를 세워 눕히고 선교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홉스굴에 가고 있어요."

"아, 이쪽 방향에 칭기스칸이 군대를 모았던 하라쿨룸이라는 옛 수도가 있어요. 그곳을 가보는 것도 좋은데."

70km 정도 떨어진 룽에서 약속이 있다는 김병남 선교사는 카라콜룸과 체체를렉의 경로를 추천하며 룽에서 하룻밤 보낼 수 있는 게르를 소개해 주겠다고 한다.

"카라콜룸과 체체를렉이 첫 번째 여행 경로였는데, 사람들이 홉스굴이 좋다고 해서요."

"홉스굴도 좋긴 한데 호불호가 있더라고요. 여기 사람들은 바다라고 부르는데 우리 동해안에 비하면 그냥 큰 호수에 불과하죠."

홉스굴과 카라콜룸은 자전거로 동시에 지나가기 어려운 동선이다. 몽골 중부의 카라콜룸과 북부의 홉스굴을 잇는 도로가 비포장이거나 엄청난 거리를 돌아가야만 한다.

김병남 선교사가 말하는 룽은 홉스굴로 가는 도로를 30km 정도 지나쳐 가야 한다.

"일단 룽으로 가서 결정을 하자."

4시 정도에 룽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니 그곳에서 미팅을 하고 기다리겠다며 김병남 선교사는 먼저 출발을 한다.

"부지런히 가야겠네. 원근감 놀이는 제대로 해야겠네. 포커스가 안 맞잖아. 실패!"

조금씩 강해지던 바람이 서풍으로 바뀌며 페달링을 무겁게 만들고, 몽골 산악 지대의 초원은 산을 넘는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지겹도록 긴 업힐을 끝내고 어붜가 쌓인 곳에서 잠시 쉬어간다.

어제 먹다 남겨놓은 할배네 치킨 세트의 감자 튀김과 치킨 조각으로 점심을 한다.

"가격도 싼데 두 세트를 사 올걸."

치킨을 먹는 동안 승용차 한 대가 정차하고 건장한 남성 두 명이 내리며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넨다.

발음이 너무나 정확해서 한국 사람인가 생각하는데 영어로 다음 대화들을 이어간다.

여행을 한다며 알려주고 명함을 주니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어붜를 돌던 젊은 남녀에게 뭔가를 설명해 준다.

이내 밝게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일본인 친구들이다.

명함을 주고 짧은 영어로 유쾌한 대화를 나눈다. 성격이 굉장히 낙천적이고 쾌활한 친구들이다.

두 일본인 친구들이 초원을 향해 프리덤을 외치듯 뛰어가고, 덩치가 좋은 두 남자가 맥주를 한 캔 건네준다.

"재팬, 몽골, 코리아!"

몽골 사람으로 보이는 남자가 이곳에서 세 국가의 사람이 만났다며 호쾌하게 웃는다.

초원으로 뛰어갔던 두 친구가 돌아오고 차례차례 인사를 하며 헤어진다.

"Be careful. I'll see your Instagram."

많은 여행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본 사람의 친근한 대화법이다. 상큼한 기운을 갖은 일본의 두 친구가 부럽게 느껴진다.

"오렌지 같은 친구들이네."

아무리 지지고 볶으며 싸워도 가장 가깝고 이해하기 쉬운 나라가 일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다.

세계일주의 경로에 일본은 빠져있다. 딱히 일본에 대한 흥미가 없다기보다 만약, 여행이 끝나고 함께 자전거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일본이 좋겠다 싶어 남겨둔 것이다.

멀지 않고, 위험하지 않고, 불편하지 않고, 어렵지 않은 일본이라면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나 좋은 하늘을 보고, 점심을 먹고, 일본인 친구들과 얘기하는 사이 한 시간이 지나버린다.

만만치 않은 룽까지의 거리와 불어오는 바람에 대한 부담으로 서둘러 자전거를 출발시키는데 이상한 잡음 소리가 들린다.

"아, 밧줄."

할배네 치킨을 꺼내며 다시 묶어두지 않았던 고무 밧줄을 생각하던 찰나 툭하고 밧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스포크에 밧줄의 갈고리가 걸리며 허브에 감긴 줄이 끊어져 버린다.

다행히 스포크에 무리가 가지 않은 것 같다. 여분의 밧줄이 있어 큰 문제는 아니지만 어째 폼이 떨어진다.

바람이 거세지는 도로를 달려 어제 도착하려 했던 주유소를 지나치며 자전거를 세운다.

"아놔, 더럽게 힘드네."

시원하게 오줌을 싸고 시멘트 바닥에 철퍼덕 앉아 있으니 주유소에서 제복을 입은 아저씨가 천천히 다가온다.

똑같이 자리에 앉더니 입담배를 꺼내어 돌돌 마는 아저씨에게 라이터를 빌려주고 알아듣지도 못할 푸념을 해댄다.

"몽골 바람, 쒸 쒸. 아이고, 아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아저씨에게 중국 여행의 영상들도 보여주고 앉아서 쉰다.

몇 개의 고개를 넘으며 주변의 풍경은 더욱 황량하게 변하고 돌풍의 회오리바람이 흙먼지를 날리며 도로와 초원을 휩쓸고 다닌다.

크기도 제각각인 회오리 바람들이 이곳저곳에서 순서도 없이 불규칙적으로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풍경이 장관이다.

"카메라에 잡힐까? 힘든데 멋지기는 하네."

돌풍과 회오리바람을 이기며 룽까지의 거리를 가늠하던 중 김병남 선교사의 승용차가 유턴을 해서 다가온다.

"아이고, 변차섭씨."

룽에서 미팅을 마치고 기다리던 중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여 나에게 돌아온 것이다.

"제가 하라콜룸까지 차로 데려다 드리면 어떨까요. 거기에서 함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요."

여행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김병남 선교사는 하루의 시간이 있어 나와 함께 이야기를 하며 캠핑을 하고 싶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며 나에게 차를 몰고 달려왔을지 그 마음이 헤아려진다.

"그럴까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좋으니까."

체체를렉을 포기하고 홉스굴로 향하던 일정인데, 양쪽을 모두 여행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나쁘지 않다 생각한다.

패니아들을 떼어내고 앞뒤 바퀴를 분리하여 뒷좌석에 자전거를 구겨 넣고 카라콜룸으로 출발한다.

순식간에 룽을 지나치고, 오랜만에 빠른 승용차의 앞자리에 앉으니 현기증이 밀려온다.

에르딘산트를 지나며 산악 초원의 풍경은 남부 사막 초원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파릇파릇 풀들이 자라나고 뾰족하고 기묘한 산봉우리들이 주변을 감싸고 있는 생기 있는 초원의 모습으로 변한다.

자전거로 힘들게 넘어야 하는 굴곡이 심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달리는 동안 선교사님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깐 쉬었다 갈까요?"

알록달록 색들이 칠해진 집들이 모여있는 마을에서 물과 몽골 아이스크림을 먹고.


자전거로 푸른 초원을 달려보고 싶은 마음에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길들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진다.

"바람이 불어 죽을 듯 힘든 길인데, 그냥 지나 치려니 너무나 아쉽네."

많이 보고 눈에 담아 가라는 선교사님의 말이 이해가 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혼자서 보기가 아깝다.

"몽골의 풍경은 카메라에 잘 잡히질 않아요. 내가 보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너무나 아쉬워요."

"이 근처에 사막이 있는데 한 번 가볼래요?"

중국 내몽골의 사막은 둥근 능선 형태의 딱딱한 지반이었는데 몽골의 사막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뾰족한 산봉우리의 산들을 지나고 푸른 초원이 잠깐 끊겨있는 곳에 황금빛의 언덕이 정면으로 나타난다.

"남쪽 고비들처럼 넓지는 않지만 울란바토르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막이라 관광철에 사람들이 많이 다녀가요."

사막 언덕의 밑까지 차를 몰고 갈 수 있어 쉽게 사막의 언덕을 오를 수 있다.

높은 산과 초원의 언덕 사이에 만들어진 작은 사막이지만 그 모양이 제대로 된 사막의 풍경이다.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사막의 모래가 바람에 흩날리며 이동을 하고.

부드러운 모래밭으로 깊숙하게 신발이 들어간다. 엘슨 타사르하이(Элсэн тасархай, Elsen Tasarkhai)

초원을 따라 사막화가 진행되는 것은 안타깝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 속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사막의 아름다운 능선 너머로 병풍처럼 솟아오른 높은 산과 푸른 초원의 부드러운 곡선들 그리고 하늘과 구름.

"저기 보이는 언덕에 조금 있으면 라벤더가 산을 덮고 피어나요. 그 안에 들어가면 라벤더의 향기에 취할 정도야."

"얼마나 아름다울까? 보라색 라벤더의 물결이라니."

사막을 둘러보고 카라콜룸으로 향하는 초원은 거대한 밀밭이 경작되는 평평한 초원이다.

끝이 없는 초원의 밀밭 평야. 20센티가 넘게 자란 중국의 밀밭과는 달리 몽골의 밀밭은 이제 밭을 고르고 파종을 하려는 시기인 것 같다.

"전체를 다 경작을 못하고 일 년씩 번갈아 가며 밀을 심어."

한쪽 편의 평야만이 파종을 위해 준비되어 있고, 한쪽 편의 평야는 초원처럼 방치되어 있는 모양새다.

"아깝게 이 좋은 땅을 놀려요. 너무 넓어서 경작 능력이 없나?"

"러시아가 있을 때는 전체를 경작했는데 지금은 못하는 거지. 아마 씨앗 값이 없어서라도 못할 거야."

"그렇겠네요. 이 넓은 곳에 뿌리려면 씨앗 값도 어마어마하겠다."

끝이 없는 초원의 평야, 칭기스칸의 군대가 집결했다는 카라콜룸의 모습을 그려본다. 웅장하고 두려웠을 야만족으로 불리던 용맹한 군대.

해가 저물기 시작할 무렵 카라콜룸의 시내에 들어선다.

한국 음식 비슷하게 맛이 난다는 식당에 들어가 김치찌개와 소고기 메뉴를 주문하는 선교사님.

선교사님의 말 그대로 비슷한 맛만 나는 묘한 김치찌개다.

한국의 음식을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킨 음식들이다. 제법 그럴듯하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런 맛이랄까.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갑시다."

"맥주 한잔해야죠!"

텐트를 치고 맥주를 한잔하며 이야기를 하고 싶어 슈퍼에 들러 큰 페트병의 맥주와 안주를 사가지고 간다.

뭔가 서두르는 선교사님은 텐트를 치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여러 번 물어본다. 아들과 텐트를 치며 고생한 기억이 있어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야영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금방 쳐요. 한 5분 정도."

체체를렉 방향의 도로를 따라가며 적당한 장소를 찾는다.

"저기가 겨울집 같은데, 한 번 가봅시다."

유목민들이 사용하는 집, 가축들을 집어넣는 축사가 겨울용과 여름용이 따로 있다고 한다.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유목민의 특성으로 겨울 축사는 비어있는 시기인 것이다.

몽골을 여행하며 게르가 설치되었던 흔적의 빈터들은 모두 겨울용 집이었던 것이다.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축사의 뒤편으로 텐트를 설치하고 맥주를 마시며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눈다.

"선교사님이 침낭을 덮으시고, 제가 여름 침낭을 쓸게요."

겨울 바지와 자켓을 껴입고 얇은 여름용 내피를 덮으면 나름 괜찮겠다 생각한다.

"근데 별이 있나?"

담배를 피우기 위해 텐트를 열고 밤하늘을 쳐다보니 하늘 가득 촘촘하게 별들이 박혀있다.

"아... 늘 저렇게 떠있는데 못 보고 산다는 게 억울하네."

한참 동안 남자 둘이서 하늘을 쳐다보며 감상에 빠져든다.

새벽으로 넘어가며 움직임이 없는 몸에서 열기가 빠져나가고 한기가 밀려온다.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거리다 겉옷을 한 겹 더 입고, 침낭을 펼쳐 함께 덮자는 선교사님에게 괜찮다 말하고 잠이 든다.

"몽골이 춥긴 춥네."

고생스러운 잠자리지만 이것 또한 추억이겠지 싶고, 함께 해준 선교사님 덕에 초원에서의 캠핑을 맘편히 할 수 있으니 그럼 됐다 싶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89일 / 흐림 ・ 10도
울란바토르
울란바토르의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보그드 칸 울루(Bogd Khan Uul)에 데려다 주겠다는 툴가를 기다리며 하루를 보낼 생각이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8,877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626시간

기념풍가게
때밀기
0Km / 00분
0Km / 00분
숙소
우체국
숙소
 
 
695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딱히 울란바토르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도시지만 한국의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울란바토르다.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다 칭기스칸 광장의 옆에 있는 국립 역사 박물관을 구경하기 위해 숙소를 나온다.

찌뿌둥한 하늘이 어두워지는 울란바토르.

칭기스칸 광장을 지나 광장의 측면에 있는 박물관으로 걸어간다.

한두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진다.

"잉, 닫혔네."

일요일이라 개관을 하지 않고 겨울 시즌인 5월까지는 월요일에도 휴무라고 쓰여있다.

"5월 14일이 겨울 시즌이야?"

잠시 시내를 걸어 다니며 구경을 하고 근처에 있는 마리앤마타의 기념품 가게로 간다.

찾고 있던 몽골의 엽서들이 보이고.

지갑이나 가방, 악세사리 같은 다양한 수제품들도 많다.

엽서와 작은 냉장고 자석을 산다.

구름의 모양이 심상치가 않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툴가가 알려주었던 우체국이 보인다.

"호텔 옆이라고 했는데 두 블록은 넘겠다야."

우체국의 안쪽에 우편을 보내는 공간이 있고.

전시되어 있는 엽서들과 우표들을 구경하고.

문이 열려있는 Post Shop에 들어가 엽서를 보낼 수 있는지 물어본다.

"Can I sand post card to korea here?"

시큰둥하게 아무 답변도 없이 여직원은 밖으로 나가버린다.

"뭐야? 나한테 똥이라도 묻었어?"

잠시 후 돌아온 여직원은 1,000투그릭의 우표를 보여주며 계산기에 1,100을 찍어서 보여준다.

"응, 말보다 이게 편하다고!"

엽서를 보내는 방법을 확인하고 호텔로 돌아간다.

순식간에 검붉은 구름이 하늘을 덮어 버리고.

공원에서는 어르신들이 체스를 두고 있다.

옷을 입은 모습도 다르지만 문화도 중국과 차이가 난다.

툴가는 어머니의 일을 도와야 한다며 보그드 칸 울루에 갈 수 없다며 미안해한다.

검붉은 구름의 이상한 구름과 하늘.

"5성급 호텔에서 이 무슨 복에 겨운 호강이야."

백 년 만에 펜 글씨를 써본다. 삐뚤삐뚤 이상해진 필체가 돼버렸다.

"안되네. 어릴 땐 나름 개성 있고 괜찮았는데."

SNS나 전화가 있으니 엽서라는 것이 생각보다 큰 재미가 없다. 별 내용이 없어도 나라들을 여행하다 보면 하나둘씩 보내진 엽서가 좋은 추억이겠지 싶다.

엽서를 보내기 위해 다시 우체국으로 가려니 비가 내리고 있다.

추적추적 오는 듯 마는 듯 떨어지는 비지만 영어도 써볼 겸 호텔의 우산을 빌려봤다. 고작 필요한 말은 '두유 햅 엄브렐라'가 전부지만.

"무려 60년대의 5성급 호텔인데, 재밌잖아."

징기스칸 광장을 지나 우체국에서 엽서를 보내고 돌아오는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산을 쓰지 않고 다닌다.

우산을 쓰고 있는 내가 이상한 것처럼 느껴질 만큼 그냥 비를 맞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일 년 강수량이 적어 그냥 맞고 다니는 것이 편한가?"

호텔에 도착하여 우산을 접는데 잠깐 동안 눈을 의심한다.

"이건 뭐야?"

접은 우산의 표면에 검은 얼룩들이 가득하다. 깨끗한 호텔의 우산이었기에 검은 얼룩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빗물임이 틀림없다.

툴가의 말처럼 울란바토르의 공기가 꽤나 안 좋은 것 같다.

"얘들아, 너네 우산 쓰고 다녀라!"

배가 출출한데 딱히 밥을 먹을 식당을 찾기가 귀찮다. 호텔의 카페에 들어가 커피와 팬케잌 한 조각으로 이른 저녁을 해결한다.

몽골과 중국 여행의 차이점 중에 하나가 먹거리인 것 같다.

음식점이나 길거리 음식이 너무 흔한 중국에 비해 몽골은 그리 다양하지가 않다.

방으로 돌아와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담그고 목욕을 한다. 한국에서 이태리 타월을 세 장 가지고 왔는데, 긴 것도 가져올 걸 그랬나 싶다. 손이 닿지 않는 등 부분이 너무나 아쉽다.

혹시나 욕조의 수챗구멍이 막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쪼르륵 거리며 잘 빠져내려간다.


조금 더 울란바토르에서 쉬고 싶은 생각이 든다.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88일 / 맑음 ・ 18도
울란바토르
한국 식당이 영업을 마쳐 함께 밥을 먹지 못했던 툴가와 점심을 하기로 한다. 오후에 만나 한국식당 연아에 갈 것이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8,877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626시간

뒹굴뒹굴
툴가점심
00Km / 00분
0Km / 00분
숙소
연아식당
숙소
 
 
695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3, 4시 정도에 툴가를 만나 연아에서 밥을 먹자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조식을 먹고.

"이게 제일 맛있네."

호텔 프런트로 내려가 칫솔세트와 물이 없는지 물어보니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한다.

"아니 뭐. 됐다!"

자전거를 놓아둔 창고에서 패니어들을 떼어내 방으로 옮겨놓고 물과 음료수 등을 사기 위해 근처에 있는 슈퍼로 간다.

넓은 지하의 공간이라 규모가 크지만 생각보다 많은 물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패니어를 옮기는데 도와준 직원에게 바카스 같은 음료수를 하나 건네주고 올라온다.

"오호, 욕조가 있다는 말이지."

4시가 되어 툴가가 호텔로 찾아와 함께 어제 저녁에 걸었던 길을 따라 연아식당으로 간다.

"진짜 여기 하늘은 정말 좋다!"

"형, 여기 미세먼지 많아요. 냄새 안 나세요?"

작은 도시에 차량이 많고 석탄을 연료를 사용하는 울란바토르의 공기가 그렇게 좋지는 않은가 보다.

"여기는 해발 1,300미터에 있는 고산 지대라고!"

큰 의미를 알 수 없는 서울의 거리를 지나.

소파가 놓여있는 한국 레스토랑 연아에 들어간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제법 사람들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제육볶음을 주문하니 기본 반찬들이 나오고.

제육볶음이 나온다. 몽골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조금 단맛이 느껴지는 그런 제육볶음이다.

밥을 먹으며 오초르에게 전화를 걸어 툴가의 통역으로 안부도 전하고, 울란바토르에 진출해 있는 CU에 들러.

시원한 얼음 음료수를 마시고.

딱히 쉬며 이야기할 공간이 없는 울란바토르에서 씨유 편의점의 테이블 공간은 사람들로 가득가득하다.

숙소로 돌아온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빨래를 한다. 몽골의 여행 동안 모래바람을 맞고, 울란바토르로 들어오는 흙구덩이 길에서 묻은 누런 먼지들이 계속해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잔다.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87일 / 맑음 ・ 16도
볼러-울란바토르
초원의 캠핑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야영을 해서 기분이 좋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울란바트로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을 떠난다.


이동거리
126Km
누적거리
8,877Km
이동시간
9시간 23분
누적시간
626시간

AH3
AH3
77Km / 5시간 13분
49Km / 4시간 10분
볼러
시계
울란바토
 
 
695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야영을 하면 좋은 것 중에 하나가 일찍 아침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며칠째 아침이 기온이 떨어져 제법 쌀쌀한 날씨이지만 따듯한 침낭 속에서 세상모르게 푹 자고 일어난다.

해발이 높은 몽골의 아침은 지면에 닿아있는 구름 탓에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가 없다.

하루의 굿모닝을 알리고.

몽골의 화장실에는 문이 없는 재래식 화장실이 많다. 처이르에서 길을 가다 가끔 사람이 들어앉아있는 화장실을 지나칠 때면 괜스레 내가 더 미안해진다.

텐트를 정리하고 언 몸을 녹이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가 아침을 주문한다. 어제와 같은 메뉴를 주문하니 이번에는 카운터 옆에 있는 보온병을 가리키며 무언가를 말한다.

"아, 차를 마실 거냐고 묻는 거구나."

식사와 함께 따듯한 우유차를 500투그릭에 추가로 판매하고 있다. 중국의 차가 입안을 정결하게 해주는 느낌이라면 몽골의 우유차는 몸을 따듯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다.

밥을 먹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으니 어젯밤 내 손을 끌며 집으로 가자고 했던 아저씨가 찾아와 인사를 한다. 아마도 추운 날씨에 별 탈 없이 잘 보냈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잘 잤다는 인사의 제스처를 하니 자신의 집으로 가서 밥을 먹고 잠을 잤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듯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따듯하게 관심을 가져준 아저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초원의 작은 식당을 떠난다.

울란바토르까지는 이제 120km 정도가 남아있다. 조금 일찍 라이딩을 시작했고, 어제와 비슷한 느낌의 바람이 불어오니 오후가 조금 넘은 시각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이르까지의 초원에서는 도마뱀이 자주 보였는데, 이곳에서는 작은 햄스터처럼 생긴 귀여운 설치류가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인다. 아주 귀엽게 생긴 녀석인데 가까이 가면 작은 굴속으로 재빠르게 몸을 숨겨버려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이 녀석아, 나와봐!"

안타까운 것은 달리는 내내 도로 위로 로드킬 된 녀석들의 사체가 많다는 것이다.

천천히 이어지는 오르막의 길이지만 바람이 적어 크게 힘이 들지는 않는다.

작은 언덕들을 넘으며 20km 정도를 달리니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도로변을 따라 좌우로 들어선 작은 마을이다.

울란바토르가 가까워지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버스 정류장이 도로변에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울란바토르까지는 버스가 운행되는 모양이다.

많은 수의 양떼들을 게르가 있는 곳으로 몰고 가느라 도로가 막히고.

오토바이를 타고 양떼를 모는 목동과도 손인사를 한다.

출발한지 2시간 35km 정도 지나 어제 도착하려 했던 바가항가이의 교차로 나온다.

바가항가이에 접어들며 갑작스레 바람의 거칠어지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자전거를 밀어주는 뒷바람이다.

"86km 정도면 3시 전에 도착할 수 있겠는데."

높은 언덕의 좌측으로 들어서 있는 바가항가이. 고개를 넘는 동안 뒤쪽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아무런 이유 없이 맞바람으로 돌변하며 미친 듯이 불어댄다.

어렵게 어렵게 언덕을 오르고 길게 이어지는 내리막길에서 자전거가 굴러가지를 않는다.

"뭐야 갑자기!"

두 시간 동안의 평화롭던 라이딩이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해버린다. 바가항가이의 검문소에서 버스에 내려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자전거를 눕혀놓으니 남자가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어디를 가는 거예요?

자민우드에서부터 짧게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고 있다. 울란바토르까지 80km가 남았다며 알려주는 남자에게 명함을 건네주니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순식간에 돌변해 버린 초원의 날씨이다. 5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던 울란바토르의 도착 시간을 짐작할 수 없다.

"아, 80km나 남았는데. 이건 너무 하잖아."

검문소를 지나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을 향해 페달링을 시작한다. 휘청휘청 거리는 자전거를 억지스레 전진시키는데 멀리 주유소의 담벼락에서 누워있던 검은 개가 나를 향해 짖으며 맹렬하게 뛰어온다.

"아! 이 개*********. 오지 마! 오지 말라고!""

50미터가 넘어 보이는 거리를 빠르게 달려온 크고 검은 개는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자전거를 쫓아온다. 바람 때문에 느릿느릿 기어가기도 힘든 상황에 더러운 개가 쫓아오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차량이 지나가 개를 도망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죽을힘을 다해 페달을 밟는다. 한참 동안을 따라오며 짖어대던 개가 떨어지자 다리의 힘이 모두 풀려버린다.

"아! 개*******************************."

휘몰아치는 모래바람 속에 모든 것들이 뿌옇게 변해버린다. 점점 가시거리가 짧아지고 나를 지나치는 차량들은 모랫바람 속으로 사라지고, 저 멀리 모랫바람 속에서 헤드라이트를 켠 차량들이 갑작스레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이리저리 요동을 치며 불어대는 초원의 모래바람에 페달링을 멈추고 만다.

눕혀놓은 자전거의 바퀴는 모래바람에 의해 바쁘게 회전을 하며 돌아가고 있다.

"이런 바람은 뒤에서 불어주면 안 되는 거니?"

갑자기 시작된 모래바람이 잦아들기를, 아니면 도로의 방향이 바뀌기를 바라며 꾸역꾸역 길을 이어간다.

계속 이어지는 언덕과 고개의 오르막길들, 한가롭게 시작되었던 울란바토르의 여정이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잠시 바람을 피할 곳조차 없는 초원의 한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냥 가던 길을 이어가는 것뿐이다.

"저 파란 하늘은 또 뭐야?"

지옥 같은 바람이 불어오는 지상과는 달리 머리 위의 하늘은 미친 듯이 파랗다.

바람으로 인해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사이, 길은 오르막의 산길이 계속 이어진다.

"나를 죽여라. 이놈들아!"

거친 바람과 지나가는 차량들의 돌풍, 갓길조차 없는 좁은 도로.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 아무것도 보이질 않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높은 산등성이가 눈높이에 맞춰질 때쯤 자전거를 멈춰 세운다.

"에이 **!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

어제 아침 간져가 싸준 양고기만두를 꺼내어 바람을 등지고 길바닥에 퍼질러 앉는다.

"죽어도 밥은 먹고 죽어야겠다."

식어있는 만두지만 간져가 센스 있게 넣어둔 오이 피클과 함께 먹으니 그런대로 제법 맛이 좋다. 누렇게 변해버린 풍경 위로 솜뭉치를 문질러 놓은 듯 떠있는 구름들을 보며 만두를 먹는다.

시원한 오이 피클을 먹는 사이 세 개 정도 남은 양고기의 반찬통이 돌풍으로 엎어져 데구루루 초원을 향해 굴러가 버린다.

"#$%#^#$#%$%#^#$%#."

바람 때문에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꽤나 높이 올라온 느낌에 산들샘 GPS를 켜보니 1,650미터까지 올라왔다. 울란바토르에서부터 시작되는 몽골 중부의 산악지형을 예상했지만 초원이 시작되던 중국 내몽골의 장베이을 넘던 환경과 너무나 비슷한 모양이다.

"죽겠네. 저기 좀 더 올라가야 할 것 같은데."

휘청거리며 기어가는 자전거를 향해 지나가는 차량들은 스카프를 흔들거나 연이어 손인사를 하며 응원을 보낸다. 애써 답례를 하기 위해 잠깐 핸들바에서 손을 떼면 미친 듯이 휘청거리는 자전거.

"힘들어. 응원하지 마!"

"제발 저것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고개를 넘으며 이유 없이, 갑자기, 불현듯 바람이 사라지기만을 바랐지만.

그럴 일은 없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쭉 내려가 주기를 바랐지만.

그럴 일은 여전히 없다.

소들마저 자리에 앉아 바람을 피하는데, 할 일 없는 여행자만이 쓸데없이 페달질을 하며 바람을 이기고 있다.

도무지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 산등성이의 도로에 질리듯 자전거를 멈춰 세운다.

"언제 끝낼 거야?"

알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길을 확인하기 위해 어붜가 쌓아진 언덕 위로 올라가 본다.

거센 바람에 몸이 휘청이게 만드는 언덕의 위에서 주변을 둘러본다. 뿌옇게 사라지는 도로는 분명 내리막길이고, 저 멀리 풍력 발전기의 실루엣이 보인다.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도로를 지나던 차량에서 한 남자가 내리더니 어붜가 쌓인 언덕으로 뛰어 올라온다.

"그렇게 급한 거야?"

산등성이 쪽에 세워진 어붜를 향해 급하게 달려가던 남자는 어붜를 몇 바퀴 돌더니, 내 쪽으로 달려와 이쪽의 어붜를 정신이 뛰어다닌다.

돌풍과 바람소리, 모래와 흙먼지, 양떼와 말떼들 그리고 어붜 주변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사람까지 정말 혼을 쏙 빼놓는 느낌이다.

경사가 제법 가파르게 떨어지는 도로를 브레이킹을 하며 조심스럽게 내려온다. 지나가는 차량이 만드는 돌풍에 자전거가 휩쓸리는 것이 무엇보다 걱정이 된다.

"내리막조차 브레이킹을 하며 가야 하다니."

말들의 한가로움과는 달리 변속기마저 트러블을 일으키며 변속이 원활하지 않고.

급경사의 구간이 지나고 나지막이 떨어지는 내리막이 이어진다. 상태가 좋지 않은 도로를 살펴 가며 브레이크를 풀고 속도를 내어본다.

"프리덤!"

산을 돌며 좌측으로 크게 휘어지던 내리막은 그것으로 끝이 나고, 정면의 맞바람이 소떼와 함께 가던 길을 멈춰 세운다.

"저기 저 언덕은 또 뭐야?"

소들의 사체들과 쓰레기들의 뒹구는 언덕을 다시 넘고, 토브를 지나 울란바토르의 경계에 도착한다.

준모드와 울란바토르의 갈림길, 직진을 하여 울란바토르로 가야 하지만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2시 30분. 여유롭던 아침 시간에 생각했던 울란바토르의 도착 시간인데 아직도 45km가 남았고, 끔찍한 바람은 계속 불어오고 있다.

"힝, 앞으로 4시간은 족히 걸릴 거야."

발걸음이 떨이지지 않는 누런 풍경을 향해 기어 들어간다. 울란바토르의 톨게이트가 나오고 톨게이트의 직원이 나를 보며 인사를 하고 차단기를 올려준다.

저 멀리 다시 보이는 산의 실루엣이 어질어질하다. 엄청난 수의 묘지들이 들어선 산등성이를 돌아 오르락내리락 짧은 언덕들이 이어지더니.

울란바트로의 위성도시 날라흐(Nalaikh)가 뿌연 먼지 사이로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울란바트로와 날라흐의 갈림길의 회전교차로에서 길을 확인하고.

맞바람이 불어오는 울란바트로의 방향의 서쪽을 향해 언덕을 오른다.

"울란바트로는 내일 갈까? 쉬고 싶다."

언덕을 지나 울란바트로에 가까워지니 하늘의 색이 조금은 맑아지는 듯하고.

"어, 한국 식당!"

몸이 지치고 힘드니 자전거가 알아서 식당으로 끌려들어 가는 기분이다.

"화장실이 어디예요?"

3시 40분, 울란바토르까지 30km가 남아있는 거리가 부담스럽지만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무작정 메뉴판을 집어 들고.

"모르겠다. 김치찌개 한 그릇 먹고 가자!"

"90일 만에 너를 본다!"

한국 일반 음식점의 맛과 똑같은 김치찌개의 맛이다.

든든하게 두 그릇을 비워놓고.

한국말을 잘 하지만 한국인은 아닌 식당의 매니저에게 울란바토르에 코리안 타운이 있는지 물어보니 별도로 모여있는 곳은 없고 시내 여러 곳에 한국인이 산다고 말해준다.

밥을 먹느라 한 시간이 지나버렸지만 오랜만에 김치찌개를 먹었으니 그것으로 만족.

주유소가 있는 삼거리로 나오니 도로를 공사하는지 길이 막혀있다. 할 수 없이 공사장 옆으로 차들이 다니는 비포장길을 따라가다 보니 임시 도로라기보다는 그냥 초원의 흙길이다.

쉴 새 없이 오가며 먼지를 날리는 차량들의 틈에 끼어 털털거리는 비포장길을 자카르타 랠리를 하듯 요란스럽게 따라간다. 대책이 없는 먼지 구덩이의 흙길을 정신없이 가다 보니 나로 인해 차량의 흐름이 둔해지니 마주 오던 화물트럭의 운전자가 아직 공사를 하고 있지 않은 좌측의 도로를 가리키며 빠져나가라는 듯이 안내를 해준다.

도로와 가장 근접해 있는 구간에서 자전거를 끌고 도로로 빠져나온다.

"하루 종일 먼지를 뒤집어쓰는구나."

흙먼지를 날리는 복잡한 비포장길을 빠져나와 혼자 도로를 독차지했지만 한가로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다시 흙먼지 속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요동을 치는 비포장길을 정신없이 따라간다.

무려 한 시간 동안을 흙구덩이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공사가 시작되는 지점에 이르러 도로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너덜너덜해진 느낌이다.

그 사이 미친 듯이 불어오던 모래바람은 사라지고 거짓말처럼 하늘이 고요하다.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울란바토르의 외곽을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지나친다.

멀리 북쪽의 산등성이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게르와 판자집들이 이색적이다.

낡고 허름한 외곽의 시내를 지나자 포장도로의 상태가 좋아지며 아름다운 툴강의 모습이 나타난다. 강을 따라 촘촘하게 들어선 수변의 나무들이 어색할 만큼 아름답다.

"세상에 몽골에서 처음으로 나무를 보는 거야."

울란바트로의 시내에 접어들며 좁은 2차선 도로는 차량들로 혼잡하다.

복잡한 차들 사이로 두 군데의 원형 교차로를 통과하고.

칭기스칸 광장으로 향하는 도심의 도로는 완전히 정체되어 자전거가 지나갈 수조차 없다.

"아니 무슨 차들이 이렇게 많지!"

인도로 올라가 자전거를 끌고 칭기스칸 광장으로 걸어간다.

"마르코 폴로 형님은 이곳에 왜 서 있는 거지?"

7시, 11시간의 험난한 라이딩 끝에 목적지인 칭기스칸 광장에 도착한다.

넓고 한적한 광장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산책을 하는 칭기스칸 광장. 중국의 광장과는 전혀 다른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형, 나 왔어!"

광장의 정면에 웅장하게 놓여있는 칭기스칸의 석상.

계단 위로 더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지만 중국의 베이징처럼 부자연스러운 제재는 하지 않는다.

한적한 광장을 둘러보고 툴가에게 전화를 걸어 울란바토르의 도착을 알려준다.

"툴가야, 형 왔다! 같이 저녁 먹자."

수업을 듣는다는 툴가는 9시에 수업을 마치고 호텔이 있는 곳으로 오겠다고 한다.

"아이고, 칭기스칸이고 나발이고 완전히 너덜너덜해졌어!"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이곳의 하늘은 왜 이렇게 좋은 거야?"

광장에 누워 오랜만에 트립닷컴을 켜고 숙소를 검색한다. 많은 호텔들이 검색되는데 의외로 숙박비들이 비싸다. 5~6만원 정도의 숙박료들인데 일반 몽골의 작은 호텔에 가려니 자민우드에서부터 시작된 거친 바람의 시달림에 편하게 쉬고 싶은 생각이 먼저 앞선다.

"씻고 싶고, 먹고 싶고 편하게 자고 싶다!"

100미터조차 움직이기가 싫어진다. 가격을 포기하고 가장 가까운 울란바토르 호텔을 찾아 들어간다. 클래식한 분위기의 호텔에 들어가 호텔 바우처를 보여주며 체크인을 하고 자전거를 보관할 장소를 물으니 프런트의 직원은 걱정하지 말라며 안내를 한다.

호텔 직원을 불러 자전거를 짐 보관 창고에 넣어주고 방까지 짐들을 올려다 놓는다. 클래식한 호텔에서 볼 수 있는 당연한 서비스지만 왠지 이런 서비스들은 불편하다.

"그냥 내가 들고 가도 되는데."

호텔의 가장 작은방에 들어가 아무리 둘러봐도 칫솔 세트도 없고 물도 없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툴가를 기다린다.

9시가 넘어 호텔로 찾아온 툴가를 만나고 주변에 한국 식당이 있는지 물었다. 오는 도중 김치찌개를 먹어서인지 허기짐보다는 쓴 소주 한 잔이 생각난다.

"연아라는 한국 식당이 있데요."

주변에 한국 식당이 있는지 친구에게 통화를 해 물어본 툴가는 연아라는 한국 식당으로 가자고 한다. 2km 정도 떨어진 식당까지 그동안의 소식들을 이야기하며 길을 걸어간다.

10시, 서울의 거리를 지나 찾아들어간 연아(Yuna) 식당은 영업이 끝났다며 안내한다. 몽골의 대부분의 식당들은 10시를 전후로 영업을 마치는 모양이다.

하는 수없이 길 건너편에 있는 술집으로 들어간다.

"툴가, 너 먹고 싶은 것을 시켜. 나는 밥보다는 술이 조금 마시고 싶다. 사람들이 칭기스를 먹으래."

면 요리와 치킨을 시키고 보드카를 달라며 주문을 하던 툴가가 오랫동안 직원과 대화를 한다.

"왜? 칭기스 없데?"

"아니요. 오늘은 술을 팔 수가 없데요. 12시가 지나서 술을 마실 수 있다는데요."

"아니, 왜? 왜?"

"모르겠어요. 금요일이라 술을 안 판다고 하는데요."

평상시 손님들이 많다던 술집은 무슨 이유인지 술을 팔 수 없다고 하고 손님들도 없다.

"힝!"

맛있는 한국 음식도, 간절한 술 한 잔도 마시지 못했지만 몽골의 여행 동안 여러 가지로 도와준 툴가와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다.

조르노크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주며 간볼트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니 흔쾌히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하는 툴가.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다던 사람들은 내가 느꼈던 간절함과는 달리 툴가와의 통화에는 적극적이지 않다.

"혹시라도 전화가 오면 잘 설명해 주면 좋겠고, 자신들이 적극적이지 않으면 어떻게 도와줄 방법은 없지 뭐."

하고 싶은 바람이나 직면해 있는 문제들을 앞에 두고 고민에만 몰두하며 투정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고 싶으면 하면 되고,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면 된다.

삶을 살며 수많은 선택과 결정들을 해야만 하고, 선택으로 인한 과정들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 결과에 의한 또 다른 선택과 결정들 끊임없이 해야만 한다. 세상에 잘 된, 잘못된 선택이란 없다. 단지 선택에 의한 과정에 얼마나 충실했는지의 문제일 뿐.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86일 / 맑음 ・ 16도
처이르-볼러
아침에 양고기 만두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한 간져와 아침식사를 하고 12시가 되어 처이르를 떠난다.


이동거리
103Km
누적거리
8,751Km
이동시간
6시간 07분
누적시간
616시간

AH3
AH3
63Km / 3시간 14분
40Km / 2시간 53분
처이르
토브
볼러
 
 
569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8시가 되기 전에 잠에서 깨어 감바를 기다렸지만 어젯밤 가져간 맥주를 다 마시고 잤는지 약속했던 8시까지 탁구장에 오지를 않는다.

바깥쪽에서 문이 잠겨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8시 30분이 되어서야 탁구장 문을 열며 감바가 들어오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서두르는 모습이 출근 시간에 쫓기는 모양이다.

간져와 통화를 하던 감바는 서둘러 간져의 집으로 안내하고 짧은 인사만을 건네고 바람처럼 사라진다.

"감바, 술 조금씩 마셔."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맞이해주는 간져, 웃는 얼굴이 꽤나 귀엽고 호감 가는 인상이다. 감바의 집과 형태가 똑같은 집이지만 젊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 그런지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있다.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간져의 막내딸은 어린이집에 갔는지 보이질 않고, 키가 180Cm는 될 것 같은 14살의 큰 아들과 둘째가 등교 준비를 하고 있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거실이 이어지는 처이르의 아파트 구조.

"신발을 벗어야 하는 거야? 신어야 하는 거야?"

침대가 놓인 안방과 거실 그리고 부엌으로 나누어진 아파트.

안방에서 간져가 건네준 사진첩을 보고 있는 사이 간져는 만두를 만들기 위해 준비를 한다.

간져의 아내는 어릴 때 배구를 했고, 간져는 몽골 씨름을 하던 집안이다.

20살 시절의 간져와 그의 할아버지, 그의 할아버지는 몽골 씨름 챔피언이었나 보다.

"간져, 너 역변한 거니?"

냉장고에서 양고기의 살코기와 기름 부위를 꺼내어.

두꺼운 손으로 제법 능숙하게 칼질을 한다.

180Cm에 가까운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켜 필요한 재료들을 사 오게 하고.

살코기를 잘게 썬 후 적당량의 기름 부위를 썰어 놓는다.

우유를 냄비에 붓고 소금을 약간 넣어 끓이고.

가스 시설이 없는 몽골에서는 전기 렌지를 사용한다.

양파와 다진 마늘을 넣고.

몽골에서 쓰는 향신료와 후추를 뿌리고.

약간의 물을 넣어 잘 버무려 놓는다.

큰 물통을 들고나갔던 큰아들이 물을 가져오고, 몽골에서는 큰 물통을 들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간져, 네 아들은 농구나 배구를 해야 할 것 같아."

"농구를 하고 있어."

또래들에 비해 키가 큰 간져의 아들은 농구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만두 피를 만들기 위해 밀가루를 붓고.

적당히 물을 부어가며 밀가루 반죽을 만든다.

우유가 끓어오르자 국자로 수차례 떠서 붓기를 반복한 후 불을 끈다.

보온병에 우유차를 담아놓고.

밀가루 반죽을 떼어내고.

납작한 만두피를 하나 만들어 놓더니.

반죽의 상태가 좋은지 본격적으로 만두피를 만들어 놓는다.

따듯한 우유차를 한 잔 내어주고.

만두피에 다진 양고기를 넣고 오물오물 만두를 빚는다.

"간져, 너 많이 해봤구나."

처음 떼어낸 밀가루 반죽으로 커다랗게 만두를 빚더니.

두 번째 반죽으로는 조금 작은 만두를 빚어놓는다.

찜통에 빚은 만두들을 올려놓고.

맛있는 냄새가 나도록 만두를 삶는다.

맛있는 냄새가 날 때쯤 찜통의 뚜껑으로 연신 부채질을 하고는.

하나씩 예쁘게 접시에 올려놓는다.

몽골에서 파는 김치와 오이 피클, 케찹과 마요네즈를 꺼내놓고.

한 시간 반 만에 맛있는 양고기만두 식탁이 차려진다.

추르릅, 양고기의 육즙이 흘러내리는 맛있는 양고기만두로 아침 식사를 한다.

양고기만두를 먹는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를 찾던 간져가 반찬통을 꺼내어 만두를 넣고, 오이 피클을 담는다.

"가면서 먹으라고? 아, 이 센스 있는 남자를 어떻게 한다니."

맛있는 아침 식사를 차려준 간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울란바토르를 향해서 출발한다.

12시, 처이르의 입구까지 배웅을 해주는 간져와 포옹을 하고 동남풍이 불어 오늘은 괜찮다는 제스처를 하며 페달을 밟는다.

"야! 바람. 맞바람이 불듯이 강풍으로 밀어야지."

몽골 남부의 바람은 북서풍이 불때 강한 바람이 불어오고, 남동풍이 부는 날에는 살랑살랑거리듯 바람이 잠잠하게 느껴진다.

처이르에 이르며 갓길이 사라며 도로의 상태는 나빠지고, 밑도 끝도 없는 초원의 평지 길은 여전히 계속 이어진다.

"겨우 두 시간이 지났는데 왜 배가 고프지."

이틀 전 감바를 만나며 사두었던 빵을 꺼내어 먹었다. 별 기대 없이 상하기 전에 먹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맛이 좋다.

"도대체 이놈의 땅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일까?"

빵을 먹고 천천히 출발하려는데 뒷바퀴가 주저앉아있다. 잠시 쉬기 위해 갓길로 들어서며 철심 같은 것이 박혔나 보다.

"아놔 몰라. 천천히 쉬어갈 테다."

그동안 너무나 힘들게 했던 맞바람이 불지 않으니 왠지 모를 여유가 생겨난다.

펑크를 정비하고 천천히 길을 따라 이어간다.

아무것도 없는 초원의 길은 계속 이어지고.

평평했던 초원의 길은 이전과는 다른 산의 모양들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것도 맛이 괜찮으려나?"

고비숨베르에서 토브로 넘어가는 경계가 높은 언덕 위로 나타난다.

지도에도 잡히지 않는 작은 식당이 초원 한가운데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고, 간져와의 아침식사로 출발이 늦어져 오늘의 목적지인 바가항가이까지는 도착할 수 없을 것 같다.

조금씩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작은 다리의 난간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잠시 쉬어간다.

"여기에 텐트를 쳐볼까? 장소도 넓고 괜찮은데."

다리 밑으로 나있는 가축들의 이동 통로에 텐트를 칠까 생각하다 포기하고 바가항가이에 이르기 전 도로변에 있는 식당으로 가기 위해 길을 이어간다.

"20km만 더 가볼까. 100km는 채워야지."

일몰이 시작되고 조금씩 체력이 지쳐갈 때쯤 철도변의 작은 마을과 구글맵으로 검색이 되었던 식당이 나타난다.

"지도상에는 저기가 식당인데."

몇몇의 화물 차들이 정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도로변의 식당이 맞는 것 같다.

건초더미와 소를 싣고 있는 한국에서 사용되던 중고 포터 트럭이 식당 앞에 정차되어 있다. 몽골의 승용차는 일본의 도요타를 많이 타는 것 같은데 트럭과 미니 승합차 같은 것은 한국의 중고차량들이 많은 것 같다.

식당 앞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동안 화물차 기사들과 사람들이 나에게 인사를 하며 반갑게 말을 건넨다. 한국말을 하는 사람도 있고, 영어를 하는 사람도 있다.

"몽골 사람들이 회화에 소질이 있나?"

저녁 시간이 되어 식당 안은 조금씩 사람들로 붐비고, 군인으로 보이는 단체 손님들이 메뉴를 고르기를 기다린다.

메뉴 사진들이 있으니 음식을 주문하기가 너무 편하다.

"고기, 고기가 필요해."

면과 밥, 고기, 만두 등의 메뉴들 중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계속 먹어왔던 양고기볶음을 주문한다. 무언가를 추가로 할 것인지 물어보려던 여직원은 이내 고개를 가로젓더니 포기한다.

"이 근처에 호텔이 있나요?"

단체 손님들의 주문이 끝나고 조금 한가해진 틈을 타 카운터의 여직원에게 번역기를 보여주니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 쪽의 계단을 가리킨다.

"아, 여기도 식당과 숙박을 같이 하는구나."

일단 배고픔을 달랜 후 체크인을 할 생각으로 숙박비와 방을 정하지 않고 자리로 돌아온다.

언제나 밥보다 고기의 양이 많은 몽골의 메뉴.

"밥은 왜 이렇게 주는 거야? 최신 트렌드인 거야!"

밥을 모두 먹고 카운터의 여직원에게 다가가 숙박비를 물어보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계산기에 30,000~40,000을 적어서 보여준다.

"방이 여러 개 있는 건가? 요금이 다르네."

객실마다 요금이 다른 것으로 이해하고 방을 볼 수 있는지 제스처로 물어보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X를 그린다.

"방을 보고 결정을 해야지? 방을 보여줘!"

어렵게 번역기를 돌려 방을 보고 싶다는 의사를 보여주니 이번에는 진지한 표정을 한 채 알아듣지 못하는 몽골어로 계속 설명을 한다.

"나 몽골어 못 해!"

여직원의 말이 끝나고 번역기를 보여주는 순간 나와 여직원은 한참 동안 함께 깔깔거리며 웃는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그렇게 설명하면 어떻게 하니? 하하하하하."

여직원과 눈을 마주치며 한참을 웃고 툴가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내용인지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한다.

"툴가야, 여기 작은 식당의 호텔인데 방을 보자고 하니까 안 보여줘."

여직원과 오랫동안 통화를 한 툴가가 여직원의 말을 전해준다.

"형, 거기는 호텔이 아니고 울란바토르 방향으로 30km 정도 가면 호텔이 있다고 해요."

"헐!"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여직원은 식당에서 난데없이 방을 보자고 하니 재미있어 웃었고, 나는 몽골어를 못 알아듣는데 진지하게 설명하는 것이 귀여워서 웃었던 것이다.

어쨌든 한바탕 웃고 나니 기분이 좋아진다. 툴가에게 식당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는지 부탁을 해달라 말한다.

"근처에 아무데나 마음에 드는 곳에 텐트를 치라고 하네요."

"아무데나? 아무데나는 어느 정도의 범위야?"

식당의 앞마당에 짐을 풀고 있으니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다가와 인사를 하고 짧은 대화들을 건넨다. 명함을 주며 여행 경로들을 설명도 해주니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엄지를 치켜세워 주기도 한다.

텐트를 설치하고 식당에서 조금 떨어진 공용 화장실에서 하루의 마무리를 편하게 정리한 후.

텐트로 돌아오니, 식당에 들어설 때부터 관심을 보이던 인상 좋은 아저씨가 그의 와이프와 함께 텐트를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다. 살짝 텐트의 내부를 보여주니 텐트와 안쪽 바닥 등을 만져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는다.

제법 쌀쌀하고 추운 저녁의 날씨, 텐트에 들어가 자료들을 정리하는데 조금 전의 아저씨가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난다. 텐트를 열고 빼꼼히 얼굴을 내미니 자기네 집으로 가서 자자는 제스처를 한다.

"여기 따듯해요."

그의 와이프까지 와서 뭐라고 몽골어를 말하며 텐트가 춥다는 뜻의 표현을 하는 것 같다. 손을 가로저으며 텐트가 따듯해서 괜찮다는 제스처를 계속하고 있으니 아저씨는 나의 손을 만져보고 안 된다는 듯이 집으로 가자는 제스처를 계속한다.

핸드폰으로 자료를 정리하느라 손이 조금 차가워졌을 뿐인데.

"바엘샤, 감사합니다."

마음을 써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하면서 괜찮다는 제스처로 웃고 있으니 아저씨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돌아간다.

아저씨를 따라 몽골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다시 짐들을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과 함께 오랜만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즐거움을 놓칠 수 없다.

"새로운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오늘은 편하게 텐트에서 자고 싶어."

"하루 종일 네가 그리워서 꾹꾹 참았다."

추운 날씨에 자동 냉장이 된 레츠비를 마시니 너무나 좋고 행복하다.

"힝, 몇 개 더 사둘 걸 그랬나."

간져와의 아침 식사, 거친 바람이 없던 한가한 라이딩, 시원하게 깔깔거리며 웃었던 여직원과의 대화 그리고 푸근한 인심을 느끼게 해준 아저씨까지 오늘도 제법 근사한 날이다.


"몽골에서 근처는 도대체 몇 Km의 거리일까?"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84일 / 맑음 ・ 12도
달랑자르갈랑-처이르
연일 계속되는 맞바람의 라이딩으로 지쳐간다. 처이르까지 80km 정도를 남겨두고 있다. "아, 울란바토르가 정말 멀게 느껴진다."

이동거리
78Km
누적거리
8,648Km
이동시간
6시간 20분
누적시간
610시간

AH3
AH3
40Km / 2시간 48분
38Km / 3시간 32분
달랑자르
주계
처이르
 
 
466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중국 남부를 여행하며 매일처럼 쏟아지는 비 때문에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면, 몽골의 아침은 창문을 열고 팔을 내밀어 바람이 부는 방향을 알아보는 것이다.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바람의 방향을 느껴보니 서향의 창문으로 바람이 들이치지 않고 남풍처럼 느껴진다.

"남풍인가? 남풍이야, 동풍이야?"

밖으로 나와 바람을 확인하니 간절히 생각했던 남풍은 아니고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뭐 그럭저럭 이것도 괜찮아. 서북풍만 아니면 돼."

자전거에 패니어들을 모두 장착하고 바로 출발하려다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가 메뉴를 주문한다. 8,000투그릭의 양고기 야채볶음과 밥.

오늘 80km 정도가 남은 처이르까지 갈 것인지, 처이르를 지나 100km 정도를 이동해 울란바토르로 가는 거리를 조금이나마 줄여놓을 것인지를 고민한다.

"바람, 바람이 문제인데. 맞바람만 아니면 100km 정도 이동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식사를 하고 냉장고에 들어있는 생수를 하나 집어 들어 계산을 하려니 1,500투그릭을 달라고 한다. 몽골의 물가가 중국에 비해 그리 싸지 않고 비슷하게 느껴진다.

제대로 된 도시를 가보지 못해 일반 음식점의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지만 호텔들의 음식들은 쓸데없이 모양을 내느라 양이 적고 값이 비싸다는 느낌이다.

오랜만에 타이어에 바람도 넣어보고. 몽골의 거센 바람이 좋은 점은 도로변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깨끗이 날려버린다는 것이다. 덕분에 펑크날 일이 없어 좋다.

8시 30분, 일찍 깨어나 준비를 한 덕분에 아침을 먹고도 평소보다 일찍 라이딩을 시작한다. 몽골의 아침은 바람으로 인해 꽤 쌀쌀하게 느껴진다. 해가 하늘로 올라가는 9시 정도부터 조금씩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는 4월의 날씨이다.

"하악, 오늘도 끝이 없다."

도로의 바람은 북동풍에 가까워 우측 측면의 뒤쪽으로 불어온다. 주행에 저항을 주지 않을 만큼의 바람을 타고 1시간을 달려 보니 20km 남짓의 이동거리가 찍힌다.

"15km씩만 이동할 수 있어도 감지덕지다."

어제 이동하지 못했던 거리를 만회해보려 속도를 붙여볼 생각이었지만 길은 산길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사인샤드에서 아라크까지의 평평했던 초원의 길이 끝나고 처이르로 향하는 길은 산을 오르는 길인가 싶다.

고르도비를 넘어오던 지형들을 복사해 놓은 듯한 산들의 모양이 이어지고 오르막과 짧은 내리막 그리고 오르막이 계속 반복된다.

"길이 좋은 날은 바람이 문제고, 바람이 좋은 날은 길이 힘들게 하는구나. 몽골 너!"

작은 언덕처럼 보이는 초원의 오르막이 모굴처럼 계속 이어진다. 부드러운 능선이 보이는 초원의 산들은 보기와 달리 경사도가 있어 사람을 은근히 지치게 한다.

하나를 넘으면 다음의 능선이 기다리고 있고, 올라가는 거리와 달리 내리막길은 아주 짧게 이어진다.

"중국 황산을 가며 나도 모르게 길들여지던 산길들과 똑같네. 다 알고 있다! 고도를 높여가며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산 위의 초원에는 한 무리의 양떼들이 초원과 도로를 점령하고 있고.

많은 새끼 양들이 올망졸망 어미들을 따라다니거나 젖을 빨고 있다.

"양, 비켜 인마!"

여기저기서 울어대는 양떼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시 쉬어간다.

"사람은 없고 맨날 소, 말, 낙타, 양들하고 대화를 해야 하다니."

양들과의 대화를 끝내고 져지와 장갑을 벗고 길을 출발한다. 한번 시작되면 하루 종일 바뀌지 않던 풍향이 조금씩 정면으로 향하며 오르막길의 경사와 함께 페달링을 무겁게 만든다.

"젠장, 오늘도 시작되었구나!"

도로의 방향과 주변 환경에 따라 좌우로 바뀌며 정면을 향해 바람은 거칠게 불어오고, 이동속도는 시속 10km, 8km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계속되어 이어지는 오르막 능선들 너머로 정말 오랜만에 보는 뾰족한 봉우리의 산이 멀리서 모습을 드러낸다. 길은 산의 주변을 크게 돌아가며 자민우드에서 시작된 고르도비의 경계를 넘어 도비숨베르로 넘어간다.

AH3 도로의 삼거리 또는 사거리의 교차로는 초원으로 들어가는 초입에만 짧은 포장이 되어있고, 초원의 흙길에는 여러 방향으로 지나간 자동차의 흔적들이 어지럽게 만들어져 있다.

"그냥 내가 가는 길이 길이여!"

방향을 잡고 초원을 가로질러 목적지로 향하는 것도 신기하지만 변변한 시멘트 포장길조차 없는 것도 신기하다.

고르도비와 고비숨베르의 경계에 놓인 경찰 초소에서 잠시 쉬어간다. 가끔은 실제로 단속을 해야 경찰 모형을 세운 효과가 나타날 것 같은데 몽골의 도로를 달리며 임의의 장소에서 경찰이 검문을 하거나 단속을 하는 것을 본 적은 없다.

초코파이를 꺼내어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짙은 구름으로 해가 가려지며 쌀쌀해져 벗었던 져지와 장갑을 다시 꺼내어 끼고 출발을 한다.

중국 내몽골의 장베이에서 시작된 초원의 라이딩이 20일째가 넘어가고 있다. 바람, 언덕, 붉은 흙산들과 황금빛 초원 그리고 바람, 바람, 바람이다.

맞바람이 불어오는 초원의 도로에서 가장 힘든 것은 저기 멀리 지평선까지 도로의 선들이 보이는데 좀처럼 그 거리가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르락내리락 사라졌다 보이는 길들의 끝에 검은 도로의 선이 하늘로 올라가 있다.

"바람만 없으면 신나게 질주를 하며 업다운을 즐길 수 있을 텐데."

바람이 불어오면 몇 개의 고개를 넘고 자전거를 눕히기 바쁘다.

"아, 진짜 너무하네!"

평탄한 도로가 이어지다 앳지있게 짧은 언덕을 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참을 오르고 올라야 한다.

"빌어먹을 바람!"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눈이 아파오고 시야가 조금씩 흐려진다. 그리고 어깨는 다시 시큰거리기 시작한다.

핸드폰의 네트워크가 끊긴지는 오래고 비상식으로 넣어두었던 보리빵 같은 것을 꺼내어 먹는다. 자민우드에서 사서 조금 남아있던 베리잼을 찍어 먹는데도 맛이 형편이 없다.

"중국 슈퍼에서 골라 먹던 3위안짜리 빵들이 그립다."

푸석 푸석한 빵을 먹는 듯 버리는 듯 대충 먹고 나머지는 초원에 뿌려버린다.

"그나저나 자전거를 세우는 막대기라도 하나 만들어 볼까."

몇 개의 언덕을 땅만 보며 페달을 밟고, 네트워크가 끊겨 남은 거리를 알 수 없던 처이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들어서 있는 처이르는 생각했던 것보다 커 보인다.

"아파트 단지도 있네!"

판자촌의 모습을 생각했는데 처이르의 초입에는 길게 낮은 아파트의 단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달랑자르갈랑을 출발하며 1시쯤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처이르를 3시 30분이 넘어서야 도착한 것이다.

"쉴 거야. 나 쉴 거야! 못 가!"

도로 양편으로 마을이 갈라져 있는 처이르의 초입에서 어느 쪽으로 들어갈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한다. 구글지도로 호텔을 검색해 보니 양쪽에 사이좋게 하나씩 검색이 된다.

"오른쪽에는 아파트 단지들만 있는 것 같고, 왼쪽은 판자촌인데 병원도 있고 축구장도 있고. 왼쪽이 시의 중심인가?"

툴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하려다 쓸데없는 것으로 귀찮게 하는 것 같아 도로변에 보이는 슈퍼에 들어간다.

우리의 편의점처럼 구색이 제대로 갖추어진 작은 슈퍼이다.

"샌 베노!"

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를 하고 카운터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앉아 흐릿해진 눈을 비비벼 한숨을 내쉰다.

잠시 가게를 둘러보며 핸드폰을 꺼내어 주변에 호텔이 있는지 물으니 아파트 단지 쪽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쪽 뒤편에도 있는데?"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점원에게 어느 곳이 괜찮은지 물으려고 하니 피곤해진다. 다시 의자에 앉아 쉬면서 눈을 비비며 마사지를 해준다.

"오츠랄래, 저기 따뜻한..."

따뜻한 물 한 잔을 달라고 부탁하려는데 점원이 믹스커피를 들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다.

"오, 한국 커피! 나 주는 거야?"

너무 피곤해하며 힘들어하니 안쓰러웠는지 믹스커피를 꺼내어 타준다. 종이컵 가득 물을 담을 믹스커피, 차를 마시는 중국이나 몽골 사람들은 믹스커피에 물을 많이 넣어 묽게 타 마시는 것 같다.

콧물과 함께 목이 건조하여 콜라가 당기지 않고 매장에 다른 음료수가 있는지 찾는 도중 파란색 레츠비를 발견한다.

"유레카! 나의 사랑 레츠비!"

가게의 점원에게 '좋은 호텔'을 번역하여 구글지도로 양쪽의 호텔을 보여주니 아파트 쪽의 호텔을 가리킨다. 그리고 'ATM'을 적어 보여주니 두 사람이 뭔가 얘기를 주고받더니 호텔 쪽에 은행이 있다고 알려준다.

슈퍼의 점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도로를 따라 아파트 단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4층 구조의 아파트에는 호텔이나 은행 그리고 알 수 없는 간판들이 붙어있다.

아파트 1층에 영업을 하는 사무실들이 입주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광고판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렇다.

아파트 초입의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고 구글맵을 따라 호텔로 이동하였다. 몽골에서는 비자나 마스터, 유니온의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는 것 같지만 몽골의 물가를 무시하고 자민우드에서 현금을 조금만 찾아 쓴 탓에 비상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 내에 승용차들의 통행이 빈번하고 슈퍼마켓이나 다른 건물들도 많이 보인다. 운동을 하는 아이들과 단지 내를 걷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젊은 여자에게 호텔의 위치를 묻고 아파트 단지의 끝에 위치한 단층의 작은 건물을 보며 긴가민가 생각하며 길을 따라 들어가니 나를 보던 어떤 여자가 정문을 가리키며 오라고 손짓을 한다.

2, 3층의 호텔 건물을 생각했는데 게스트 하우스처럼 보이는 빨간 벽돌의 단층 건물이다.

마당 한편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게르가 설치되어 있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구색을 갖춘 프런트가 있고 아주머니가 밝게 웃으며 맞이해준다.

"하룻밤에 얼마예요?"

번역기를 돌려 가격을 물으니 계산기에 30,000을 쳐서 보여준다. 40,000투그릭 정도를 생각했는데 의외로 저렴하다. 달랑자르갈랑의 숙소에서 세면시설이 없어 불편했던 기억이 떠올라 방을 볼 수 있는지 제스처를 하자 방으로 안내를 해준다.

단층의 긴 복도에 방들이 나누어져 있고, 작고 오래된 방이지만 나름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는 방과 욕실을 보고 체크인을 한다.

"이거 또 온몸을 사용해서 말해야겠네."

오번역이 되어 의사전달을 할 수 없는 번역기를 포기하고 자전거 사진을 보여주며 방에 넣어둘 수 있는지 제스처 하니 방에는 넣을 수 없다며 엑스자를 표시하고 자전거를 보자며 밖으로 나가더니 호텔의 현관에 놓아두라고 한다.

좁은 현관에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 자리는 잡는데 아주머니의 아들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룸'이라고 하며 자전거를 방에 넣으라고 한다.

"오호. 땡큐!"

간만에 방으로 들어온 자전거, 쑤니터우이치에서 지아오강강이 깨끗하게 물걸레질을 하여 그나마 덜 미안하다.

자전거를 들여놓는 것을 도와주던 아주머니는 먼저 씻으라며 욕실의 온수기를 켜주고 방의 열쇠를 건네주며 나간다.

"아, 간만에 씻어볼까!"

중국제 온수기는 작동이 되는 것 같은데 찬물만 계속 나온다. 온수통에서 미지근한 물들이 새어 나오는 고장 난 온수기로 찬물 샤워를 하고 속옷과 양말을 빨아 라지에이터 위에 말려둔다.

룸이라는 짧은 단어를 말했던 남자에게 영어를 하는지 물으니 못한다고 한다. 밥을 먹는 제스처를 하고 구글지도를 보여주니 조금 생각한 후에 '드림'이라며 숙소를 물어봤던 슈퍼 건너편의 식당을 알려준다.

"걸어가는 거야?"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표정으로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많이 걸어가야 하는데. 어쨌든 밥 먹고 올게요."

도로가 아닌 흙길을 가로질러 가기 위해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고.

외관과는 달리 아파트의 출입문과 통로들은 낡은 모습을 하고 있다.

운동장 같은 경기장을 돌아서.

슈퍼마켓과 식당이 있는 곳으로 찾아간다. 처이르의 초입 도로변에는 이런 식당이 3곳이 있는 것 같다.

깔끔하게 인테리어 되어있는 식당에서.

웨이터 복장을 차려입은 남자에게 메뉴판을 건네받아 메뉴들을 구경하고.

쇠고기와 감자 구이 그리고 밥이 들어간 메뉴를 주문한다.

그리고 웨이터에게 'Амтат'를 보여주며 보드카 메뉴를 보여주니 메뉴판에서 보드카를 추천해 준다.

"50ml?"

보트카의 양을 물어보니 손가락 눈금으로 조금이라고 알려주며 핸드폰으로 숫자 100를 써서 보여준다.

"100ml? 아, 잔 술로 파는구나! Ok!"

잠시 후 예쁜 보드카 병과 술잔을 가져와 보여주고 병을 들어 올려 멋들어지게 한 잔을 따라준다.

"칭기스!"

아주 독하지 않고 은은한 향이 좋은 보드카다.

"한 38도 정도 되는가? 맛 좋네! 기억해 주겠어."

밥과 함께 나온 쇠고기 감자 구이는 제법 맛이 좋았지만 조그만 그릇에 담겨 나온 밥의 양이 문제다.

"중국의 밥 인심이 그립구나. 이 정도로는 부족해!"

16,800투그릭, 한화 8,000원 정도의 양고기 스테이크를 하나 더 주문하고 신호의 강도가 활기찬 식당의 와이파이를 사용하여 오드바야르와 페이스북 메신저 통화를 한다.

라이딩 도중 세 번씩이나 영상통화가 울렸지만 네트워크가 불안정하고 라이딩에 힘이 들어 받지를 못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오드바야르 그리고 그의 아내와 영상통화를 한다.

"오드바야르, 니 처이르! 안녕! 빨리 자! 이제 끊어!"

저녁이 되면서 손님이들이 하나둘 밀려들어온 탓인지 조금 늦게 나온 양고기 스테이크는 너무 많이 익혀진 것 같다.

하지만 레어, 미듐, 웰던 같은 것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고기는 단지 고기일 뿐.

갖은 야채들과 채소들의 과즙과 소스들을 조금씩 찍어, 한국에서도 하지 않던 나이프와 포크질을 부지런히 해가며 맛있게 먹는다.

"바람 탓에 컨디션이 엉망이야. 고기 먹고 힘내야지!"

저녁 시간의 식당은 외식을 하는 가족단위의 손님들로 자리가 가득 찼다.

식사를 하는 동안 업로드를 걸어두었던 사진들이 블로그에 올라가는 동안 통통해진 배를 튕기며 기다리고 있는데, 식당을 배회하던 한 남자가 내 앞자리에 앉더니 접시 위에 남아있는 동그란 양뼈들을 뜯으며 조금 남아있는 소스를 포크로 퍼먹는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야? 넌 누구냐?"

가만히 그의 행동을 지켜보니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걸신이 들린 사람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음식들을 핥아먹는 것이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테이블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저녁식사를 하는 깨끗한 식당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바쁘게 서빙을 하며 움직이는 많은 직원들 중 아무도 그의 행동을 제재하는 사람이 없다.

손을 들어 직원들을 불러 보아도 아무도 응답을 하지 않고 애써 외면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넌 뭐 하는 놈이길래 사람들이 다 피하며 방치하는 거냐?"

큰 소리를 내어 직원들을 부르니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내 쪽을 쳐다보지만 이내 시선들을 피하며 식사를 한다. 재차 직원을 불러 남자를 가리키자 여직원이 마지못해 다가와 남자를 몇 차례 쿡쿡 찌르며 윽박을 하지만 남자는 듣는 시늉도 하지 않고 그릇째 핥아먹을 기세다.

여직원은 포기한 듯이 카운터로 돌아가버리고 남자는 남은 소스를 모두 핥아먹고 다른 가족들이 식사를 하는 자리로 이동한다.

"뭐야? 무소불위의 주인집 아들이라도 되는 거야?"

다른 가족이 있는 식탁에서 식사를 방해하던 남자는 손님들이 먹고 남은 음식 그릇을 비어있는 테이블에 여직원이 갖다 놓으니 그곳에 앉아 남은 음식을 먹으며 술 주정을 하듯 중얼거린다.

"인구가 400배 많은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것을 이곳에서 보네. 아이고 몽골아!"

현금이 있지만 중국에서는 할 수 없었던 카드 결제를 해보고 보드카를 추천해 준 남자 직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식당을 나온다.

호텔로 돌아오니 아주머니가 눈을 마주치며 식사를 잘 하고 왔는지 묻는 듯 쳐다본다.

"Энэ нь амттай байсан. 잘 먹었습니다."

커피 믹스 두 개를 꺼내어 뜨거운 물을 끓여달라 부탁을 하고 하나는 아주머니에게 건네준다.

20일 가까이 거센 바람의 초원을 달리며 컨디션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 같다. 200km가 남은 울란바토르가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자료를 정리하는 동안 거센 바람 소리가 윙윙거리며 창문 틈을 파고든다.

"남풍, 제발 남동풍이 불어줘!"

숙소의 전기가 거센 바람에 정전이 되더니 다시 들어오지 않는다. 전기도, 난방도, 통신도 모두 끊겨버렸다. 거센 서북풍이 불어오면 하루 정도 이곳에 머물러야겠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83일 / 맑음 ・ 18도
조르노크-아라크-달랑자르갈랑
조르노크의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아쉬움 가득 작별을 한다. 여행에서 만남 사람들과 보낸 시간의 즐거움만큼 작별의 아쉬움이 언제나 비례하는 것 같다.


이동거리
56Km
누적거리
8,570Km
이동시간
6시간 42분
누적시간
604시간

AH3
AH3
28Km / 2시간 50분
28Km / 3시간 52분
조르노크
아라크
달랑자르
 
 
388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조르노크에서 보낸 이틀의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많은 것이 열악하고 부족하지만 함께 하는 좋은 사람들이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6시 30분의 알람에 잠이 깨어 모든 알람들을 해제시키고 다시 잠이 든다.

"이런 시간은 조금 더디게 지나가도 좋을 텐데."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린 것처럼 침낭을 벗어나는 인기척에 오초르가 얼굴을 내밀고 인사를 한다.

홍차와 웨하스 과자를 내놓아 그와 함께 아침을 먹는다. 다른 집들과 달리 아내와 떨어져 사는 오초르의 식탁은 전형적인 홀아비들의 식사이다.

침낭과 패니어들을 정리하고 있는 동안 정체불명의 화장품을 맡겨두었던 오드바야르의 아내가 찾아온다.

"이거 아침에 바른 다음 화장을 해 그리고 저녁에 깨끗이 씻어."

화장품의 사용법을 번역기와 제스처로 설명을 해주고 알아들었는지 물으니 알았다며 웃으며 돌아간다.

"에르덴오초르, 나 이제 가야 해! 사진 찍자."

핸드폰 삼각대를 설치하고 오초르의 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둘이 찍고."

"셋이서 찍고."

짐을 싸는 동안 인사를 하기 위해 나온 간볼트의 젊은 아내와도 함께 사진을 찍고 울란바토르에 가면 간볼트에게 전화를 하겠다고 말해둔다.

이틀 동안 점심과 저녁을 대접해 준 고마운 간볼트의 식구들이다.

자전거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어달라는 오초르.

"사진 찍는 거 은근히 좋아하네."

오초르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있는지 둘러보았지만 모두들 작업을 나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조르노크, 안녕!"

오늘 가야 할 처이르는 자민우드, 사인샨드, 처이르, 울란바토르로 이어지는 AH3 도로에 있는 도시 중 하나다. 아직 울란바토르의 모습을 보지 못하여 몽골 도시의 모습이 어떠한지 잘 모르겠지만 사인샨드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조르노크에서 130km 떨어진 처이르. 바람의 방향에 따라 오늘 내 도착할 수도 있고 이틀의 라이딩으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어디, 바람이 어떻게 불어오나?"

북서풍. 조르노크의 북서쪽에 위치한 울란바토르.

"피해 갈 틈 없는 정면 바람이군! 오늘도 완전히 틀렸다."

조르노크에서 보낸 이틀 동안 불지 않던 바람이 라이딩의 시작과 함께 맞바람으로 맞이해준다. 초속 15미터가 넘는 바람들을 맞으며 달려온 탓에 초속 6~7미터의 바람은 산들바람처럼 느껴지지만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영향은 어쩔 수가 없다.

1시간을 달려 속도를 확인해 보니 겨우 10km를 이동할 수 있는 라이딩이다.

"오늘 처이르까지는 절대로 못 가겠네. 80? 70km 정도 이동할 수 있으려나?"

처이르까지 가는 동안 작은 마을 두 곳을 지나쳐야 한다. 이틀 전 오초르와 마트를 가기 위해 들렀던 아라크와 달랑자르갈랑이다. 도시라기보다는 작은 면소재지의 시골 마을에 가깝지만 몽골의 초원에서는 제법 규모가 큰 마을이다.

"달랑자르갈랑이 60km 정도니까, 거기를 지나서 캠핑을 하면 되겠군."

아라크로 향하는 길은 간간이 오르막의 언덕들이 이어지고 12시가 되었을 때 아라크의 검문소를 통과한다.

이틀 전 오초르와 왔을 때 통행료 같은 것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아 톨게이트는 아닌데 정확히 무엇을 검문하는지 모르겠다. 차단기가 내려져있고 차량들이 무언가를 확인받은 후 통과를 한다.

검문소를 통과하면 도로의 좌측으로 아라크의 모습이 보인다.

"점심도 해결할 겸 아라크로 들어가자."

이틀 전 오초르와 왔을 때 그에게 담배라도 몇 갑 사줄 것을 하는 후회가 들어 오초르의 담배를 사고 간단한 점심과 캠핑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마을로 들어간다.

모래밭길의 마을길에 자전거의 바퀴가 빠져 제대로 타고 갈 수가 없다. 자전거를 끌고 오초르와 첫 번째 들렸던 작은 슈퍼를 찾았지만 보이질 않는다.

"어디였지? 시야가 확 트인 곳에서 오줌을 쌌는데."

마을을 한 바퀴 돌고서 초입에 있는 작은 슈퍼를 찾았다.

가게 앞에 RV 차량이 한 대 정차해 있어 가게문이 열려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문이 열쇠로 잠겨있다.

"아, 나는 왜 이런 일에는 꼭 머피가 될까?"

아쉬운 마음에 애꿎은 가게문을 만져보고 나와 초코파이 두 개를 꺼내어 점심을 대신한다.

"오초르에게 담배 한 갑이라도 사주고 싶은데."

초코파이를 먹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모자와 검은 마스크를 한 여자가 가게 앞에서 나를 쳐다본다.

"어. 저기 저번에 오초르.."

버프를 내려 얼굴을 보여주니 금세 알아보며 가게로 들어가자고 한다.

"샌배노!"

대량 포장된 비스킷처럼 딱딱한 빵들을 만지며 배가 고프다는 제스처를 하니 가게 모퉁이의 냉장고에서 소시지들을 보여준다.

"이거 하나도 팔아요?"

냉장고 위의 저울을 가리키더니 소시지 하나를 올려놓고 저울에 적힌 금액을 계산기로 쳐서 다시 보여주는 아주머니.

"중국하고 똑같네. 소시지도 저울에 달아서 파네."

소시지, 콜라 그리고 컵라면을 사들고 오초르에게 줄 담배를 달라고 제스처를 한다. 이틀 전처럼 테이블 밑에서 담배들이 든 가방을 꺼내어 보여준다. 오초르가 좋아하는 몽골 담배 3갑을 달라고 하니 가방을 뒤적이더니 2갑밖에 없다며 웃는다.

담배 가방을 뒤집어 담배들을 테이블에 모두 펼쳐놓고 보아도 오초르가 피던 몽골 담배는 2갑밖에 없다.

오초르가 '몽골'을 외치며 엄지를 세웠던 2,500투그릭의 담배 두 갑까지 합하여 계산을 하고 봉지가 필요한지 묻는 아주머니에게 핸드폰에 있는 오초르의 사진을 보여준다.

"에르덴 오초르, 오초르 알죠?"

오초르의 사진을 보며 생글생글 웃는 아주머니. 아무래도 커피를 들고 있는 오초르의 컨셉 사진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담배 두 갑을 들고 오초르의 사진을 가리키며 오초르에게 전해달라는 제스처를 두어 번 연속으로 하자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방긋 웃는다.

"응. 오초르가 여기 오면 이거 오초르한테 주세요!"

가게 아주머니와 담배, 오초르의 사진을 가리키며 의사를 전달하는 사이 아주머니는 전화기를 꺼내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기에서 오초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아주머니는 스피커폰으로 전환하여 전화기를 건네준다.

"오초르, 나 싸비야!"

"오호, 싸비!"

알아듣지 못하는 몽골어로 여전히 많은 말을 하는 오초르에게 아주머니가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것 같다.

"오초르 빠이! 담배 맡겨놨어. 찾아서 피워!"

나도 오초르처럼 그가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어로 떠들며 말해준다. 그 광경이 재미있는지 계속 웃기만 하던 아주머니는 자기가 잠을 자고 오초르에게 가져다주겠다는 제스처를 한다.

"어. 내일 오초르한테 전해 준다고."

자신이 오초르에게 갖다 준다는 것인지, 오초르가 내일 와서 찾아간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담배는 오초르에게 전해질 것이다. 아마도 담배를 보며 '싸비, 몽골'하며 담배를 피우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을 해결하면 마음이 참 좋고, 왜 그런 것들은 항상 뒤늦게 생각이 나는지 도통 모르겠다.

마을을 빠져나와 다시 AH3 도로에 들어서니 도로변의 초원에서 풀을 뜯던 낙타들이 멀뚱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 소, 말, 양, 사슴 이번에는 낙타의 등장이다.

낙타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그 생김새가 참 신기하면서도 못돼먹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재미있는 동물이다.

"야 몽골 낙타! 나 한국 사람이야."

아라크에서 처이르와 울란바토르까지의 거리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이고.

아라크의 초입에는 크지는 않지만 물이 고여있는 곳이 있어 마을이 생겨난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듯하다.

아라크를 들렸다 나오느라 40분 정도의 시간을 소비했지만 오초르에게 담배 한 갑이라도 선물해 주고 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오후 들어 바람의 방향이 우측으로 살짝 바뀌더니 바람의 세기가 더해간다. 시속 10km 정도를 이동했던 오전과 달리 8km, 5km의 속도로 진행이 느려지고 아라크를 벗어난 도로는 낮은 산들을 여러 차례 넘어가는 길로 바뀐다.

"힘들어. 쉬자."

초원의 풀밭에는 돌아다니는 작은 도마뱀은 보호색에 대한 자신감인지 잘 도망을 가지 않는다. 요리조리 재빠르게 움직이지만 도망치는 거리가 거기서 거기다.

"형 배고프다. 잡아먹기 전에 도망가라."

따듯한 바람이 불어오는 초원에 앉아있으면 눕고 싶은 생각이 들어 쉬는 것이 더 힘들다. 핸드폰을 켜봐도 네트워크는 E자를 보이며 끊겨있고.

20여 분을 쉬고 다시 출발해 보지만 계속 거세지는 바람과 오르막의 산길들이 페달링을 무겁게 한다. 바람을 이기며 조향을 하느라 어깨는 다시 쑤셔오고.

캠핑을 해도 괜찮을 듯한 언덕들과 바위들이 놓인 공간들을 지나자 풍경들은 다시 완전 평면의 평평함을 보여준다.

도로변에서 빠져나와 자전거를 눕히고 패니어를 등지고 눕는다.

"오초르와 차로 달릴 때 보니까 도로 외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던데. 저기 멀리에 텐트를 쳐도 괜찮겠어."

바람만 거세게 불지 않는다면 도로변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텐트를 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른 건초들 사이로 새싹들이 자라고 있다.

"아무래도 오늘은 달랑자르갈랑을 조금 지나서 캠핑을 해야겠다."

17km가 남아있는 달랑자르갈랑을 지나 적당한 위치에 캠핑을 하고 내일 바람의 방향을 봐가며 처이르에 머무를 것인지, 지나칠 것인지 결정할 생각이다.

조금씩 거세지던 바람은 돌풍에 가까운 바람으로 급변하고, 구름이 떠있던 하늘은 희뿌연 모래바람이 지면에서 일어나 온 사방을 뒤덮기 시작한다.

시속 5km가 나오지 않는 무거운 페달링과 휘청거리며 요동치는 핸들바를 지탱하며 얼마 남지 않은 달랑자르갈랑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꾸역꾸역 길을 이어간다.

어쩌면 급작스레 밀려오던 조르노크의 모래폭풍. 그 바람의 시작점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5km, 3km.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 애꿎은 구글맵만을 반복해서 쳐다보지만 달랑자르갈랑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뿌연 모래 먼지 사이로 흐릿하게 달랑자르갈랑의 모습이 보이고 도로변에 커라란 물 웅덩이가 있다. 물웅덩이 주변으로 동물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재미있는 사진 놀이도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 탓에 그다지 재미가 없고.

골재 공장 같은 건물을 중심으로 들어선 마을로 들어가기가 힘들어 보인다.

"여기가 달랑자르갈랑인가?"

진입할 수 없는 흙길을 포기하고 도로를 따라 조금 이동하니 도로변으로 달랑자르갈랑의 모습이 나타난다.

"에휴, 다행이다."

"처이르는 멀었네. 언제 가나."

여전히 적응이 잘 안되는 몽골의 작은 마을의 초입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숨을 고른다.

"어디부터 가서 숙소나 잠잘 곳을 찾아야 하지?"

길 건너편에 위치한 주유소에 들러 숙소가 있는지 물어보고, 숙소가 없다면 주유소 주변에 텐트를 칠 수 있도록 양해를 구해볼 생각이다.

자전거를 끌고 주유소로 향하던 중 거친 바람을 등지고 소변을 보던 남자가 나를 부른다. 이번에도 술을 마신 것 같은 취객의 느낌이 난다.

"부르지 마라. 힘들다!"

몇 차례 나를 향해 소리를 치더니 모르는 척 지나가니 별 반응이 없다.

문이 닫힌 주유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 번역기로 주변에 호텔이 있는지 물으니 바로 길 건너편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킨다.

"아, 저게 호텔이었어?"

화물 차들이 정차를 하거나 떠나는 건물을 음식점으로 생각했는데 숙박도 가능한 모양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프런트와 같은 데스크는 없고 바로 식당의 카운터가 보인다. 식당 안을 두리번거리며 호텔이 맞는지 묻자 카운터의 여직원이 자기에게 말하면 된다는 듯 제스처를 한다.

계산기에 40,000을 찍어서 보여주며 여권을 달라고 한다. 자민우드의 호텔에서도 그랬는데 몽골에서는 여권을 프런트에 보관을 한다.

여권을 받아들고 살펴보더니 새침한 여직원이 놀라는 듯한 이상한 표정과 제스처를 한다.

"왜? 오빠가 아니라서 섭섭해?"

자전거를 실내에 두기 위해 설명을 해야 하는데 난감하다. 호기심이나 적극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여직원과 어렵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옆에서 갑자기 한국어가 들린다.

"한국인이세요?"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다른 여직원이 다가와 한국말을 한다.

"한국말을 할 줄 알아?"

"네, 조금 할 줄 알아요."

프런트의 여직원과 달리 친절하고 상냥하다. 한국어를 하는 여직원에게 자전거를 안으로 들여놓고 싶다고 말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한국어를 잘 못한다고 다시 한번 말한다.

"아니야. 이 정도면 정말 잘하는 거야."

자전거를 식당의 입구에 세워두고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간다. 열쇠 뭉치를 주머니에서 꺼내더니 방의 문을 열고 안내를 해준다.

침대가 두 개 놓은 방은 제법 청소가 잘 되어 있어 괜찮다 싶었는데 방의 느낌이 왠지 낯설다.

"욕실, 욕실이 없잖아."

조르노크에서 생활하며 제대로 씻지 못하고 양치만을 하며 생활한 터라 따듯한 물에 샤워가 하고 싶다.

머리를 감는 제스처를 하며 욕실이 없는지 물으니 아주머니가 웃으며 손을 가로젓고 자신을 따라오라고 한다.

"공용 욕실이라도 있는 거야?"

방 건너편의 화장실 문을 열어 주었지만 화장실과 세면대만이 놓여있다. 아주머니가 부지런한 것인지 방과 복도처럼 화장실도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다.

"없네. 샤워 못하는 거야! 샤워!"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방의 열쇠를 건네주고 계단을 내려가 버린다.

식당으로 내려가니 저녁 시간이라 사람들이 제법 모여든다.

"고기, 고기를 먹어야 해."

고기가 들어간 그림을 가리키며 어느 것이 맛있는지 한국말을 하는 여직원에게 물어본다.

갈비찜 같은 음식과 함께 추가로 주문한 조그만 공깃밥이 나오고.

큼지막한 덩어리의 갈비찜을 크게 썰어 부지런히 먹는다. 조금 질긴 느낌이지만 입속을 가득 채우는 고기의 양이 마음에 든다.

"근데 몽골 사람들이 왜 한국말을 조금씩 하는 거지?"

식사를 하고 식당의 문 앞에 놓아두었던 자전거를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의 난간에 묶어두고 방으로 올라왔다. 세면도구를 챙겨 간단히 얼굴과 발을 씻는 것으로 만족하고.

와이파이도 없는 숙소에서 하루를 정리하는데 오초르의 아내가 페이스북 메신저로 영상통화를 걸어온다.

"헤이, 싸비. 처이르?"

아내가 있는 집으로 간 것인지 오초르는 방에 누워서 통화를 하고, 그의 아내는 마스크 팩을 하고 인사를 한다.

"오초르, 집에 간 거야? 나 달랑자르갈랑이야!"

달랑자르갈랑의 발음을 계속 반복하니 오초르가 알아듣는 눈치고, 내가 처이르까지 잘 갔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어. 이제 자야지. 빨리 끊어! 빠이 빠이!"

말도 안 통하는데 오초르와 그의 아내는 계속 웃으며 몽골말로 무어라 말을 한다.

"알았어! 빨리 자. 하하하"


바람이 계속된다면 80km 정도 남은 처이르까지의 여정도 꽤나 힘이 들 것 같다.

"아무리 이 계절에 북서풍이 어쩔 수 없다 해도 이건 너무 하잖아."




Trak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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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81일 / 맑음 ・ 18도
노르조크
거대한 모래폭풍으로 만나게 된 노르조크의 사람들과 함께 한가롭고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8,514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597시간

페친등록
맥주타임
42Km / 2시간 40분
50Km / 4시간 25분
조르노크
아라크
조르노크
 
 
332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쌀쌀한 기운이 들어 새벽녘에 침낭을 꺼내어 덮는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고, 하루하루의 기온이 매일처럼 다르게 느껴지는 몽골이다.

어제의 모래폭풍은 온데간데없고 맑은 하늘에 바람마저 거의 없다.

"정말 알 수가 없는 날씨다."

부스스 깨어있는 나에게 에르덴 오초르가 아침 인사를 하며 아침을 먹으라며 빵을 잘라 놓는다.

어젯밤 불을 끄지 않고 잤다는 제스처에 사방을 둘러봐도 스위치가 없었다며 떠들어대니 방문 앞에 걸려있는 작은 빨래 건조대를 가리킨다.

"그걸 왜 거기에 숨겨놔!"

'아야~'하며 웃고 떠드는 에르덴 오초르.

"오초르, 나 응가!"

애플힙 자세를 취하며 오초르에게 웃어 보이자 '오호~'하며 두루마리 화장지를 건네준다.

집 밖으로 조금 떨어진 재래식 화장실에서 깔끔한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오초르는 일을 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나간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바트보르드처럼 철로를 관리하는 일을 하는 것 같다.

가끔씩 긴 화물칸을 단 기차가 느리게 지나가고.

집 주변을 둘러본다. 네 가구가 함께 사는 집이 창고처럼 보이는 목재 건물들을 하나씩 두고 세 개의 집이 있다.

작은 철탑이 있는 네모난 간물과 농구 코트, 놀이터 그리고 작은 건물 몇 개가 전부다.

오른쪽이 에르덴 오초르의 집, 왼쪽이 오드바야르의 집.

진청색 문이 오초르의 집이고, 하늘색이 오드바야르의 여동생 집이다.

이렇게 한 집에 네 가구가 함께 사는 형태이다.

현관의 나무 문에 숫자들이 적혀있고.

현관 문을 열면 창고처럼 쓰는 작은 공간이 있다.

안쪽 문을 열면 주방이 나오고.

가장 안쪽에 침대가 놓인 방이 있다.

주방에는 세면대와 작은 식탁.

그리고 화로가 하나씩 놓여있다.

"대우 제품이네. 그런데 한글 철자가 이상하다."

오초르가 아침으로 잘라놓고 나간 빵으로 아침을 먹고.

고개를 돌려 한 번 돌아보면 끝나는 집 주변을 구경한다.

기찻길 옆에 창고 같은 작은 사무실이 있고.

러시아와 중국으로 이어지는 몽골의 철도.

사무실에서 무엇을 하는지 그곳에 모두들 모여있다.

기찻길 사고를 예방하는 재미있는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남자들은 창고를 정비하는지 바쁘고, 여자들은 페인트 통을 들고 도색 작업을 하려나 보다.

오초르의 집으로 들어와 그의 컴퓨터를 사용하려는데 자판이 이상하다.

영자 자판에 몽골 자판을 표시해서 사용한다. 영어 알파벳 보다 몽골 알파벳의 숫자가 많은지 숫자키까지 빼곡하게 사용한다.

어제 전화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툴가와 통화를 하고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오드바야르에게 한국의 생활에 대해 설명해 줄 것을 부탁하니 성의껏 설명하겠다며 대답을 해준다.

"한국 생활의 어려움이나 필요한 사항들을 잘 설명해 주면 좋겠다."

12시쯤 돌아온 오초르는 점심을 먹자며 꽁치 통조림 같은 것을 꺼내어 빵과 함께 먹으라고 한다.

"이렇게 먹으라고? 정말?"

생선 통조림은 비리지 않고 단맛이 조금 나는 게 괜찮다.

생선 세 덩어리를 한꺼번에 올려놓고 먹으라는 오초르.

점심을 먹고 오초르는 여기저기 건물들의 설명을 해준다.

작은 송전탑이 있은 건물은 철도의 통제실 같은 곳이었다. 제복을 입은 직원 세 명이 계기판에 앉아 철도의 상황판 같은 것을 주시하고 있다.

오초르의 집 앞에 있는 작은 건물에서는 오드바야르의 아내와 여동생이 페인트칠을 하느라 바쁘다.

안쪽으로 들어가 보라고 하여 가보니 사우나 시설이 되어있는 샤워장이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샤워를 할 수 있는 공용 샤워장, 아직 개장을 안 해서 이용을 못하는 것이 아쉽다.

기찻길 옆 아주 작은 건물은 이곳의 식수와 생활용수를 길러오는 곳이다.

큰 통에 물을 받아 집에 있는 수통에 담아놓는다.

철도를 향해 긴 나무통이 나와있어 비를 받아 사용하나 생각했지만 년 강수량이 미미한 이곳에서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가까이 가보니 수도관 같은 것이 있은 것으로 보아 기차에서 물을 수급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곳에 이외의 건물은 없다. 오초르의 집으로 돌아와 구글 번역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연결해 주기 위해 오초르의 컴퓨터에 한글 자판을 설정한다.

"어디 보자. 대충 설정에 들어가서 언어 설정을 누르고."

"키보드의 언어 설정에서."

"한글을 추가해 주면 되겠지."

다행히 오초르의 컴퓨터는 인터내셔널 버전의 윈도우가 설치되어 있어 별 어려움이 없다.

가끔씩 방에서 자료를 정리하는 나에게 들려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핸드폰의 번역기에 몽골어를 잘 쓰지 못하는 오초르와 사람들에게 구글 번역 사이트의 사용법을 알려주고 자리를 내어준다.

"오초르, 이렇게 해봐."

오전에 보이지 않았던 오드바야르에게 전화기를 달라고 하여 툴가와 통화 연결을 해준다.

"툴가야, 네가 한국에 대해 잘 설명을 해줘."

오초르와 사람들은 핸드폰의 작은 UI만이 불편했던 것이 아니다.

"뭐야. 이 독수리도 아닌 병아리 타법들은?"

몽골 철자의 자판을 찾느라 버벅거리는 것이 나와 별반 다르지 않고 몽골어도 제멋대로 적어 해석이 안된다.

조르노크 사람들은 2G폰도 사용하고 스마트폰도 사용하는데 페이스북의 계정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와이프의 페이스북 계정만 있는 2G폰의 오초르에게 내 소식을 보라며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주고 북마크를 해준다.

"오초르, 계정 프로필에 사진 넣자."

오초르의 사진을 찍어 계정에 넣어주니 방안이 한바탕 웃음바다로 변해버린다.

언제나 유쾌한 에르덴 오초르 계정의 유일한 팔로우가 되었다.

계정을 연결하는 것을 보더니 모두들 자신의 핸드폰을 건네며 페이스북을 연결해 달라고 한다.

"인스타그램 없어?"

온통 이상한 사람들의 친구 등록과 신청으로 만신창이가 된 페이스북보다는 인스타그램의 계정이 연락을 주고받기에 편한데 모두들 페이스북 계정만을 갖고 있다.

인스타그램을 설치해 주려 해도 데이터 속도가 너무 느려 다운을 받을 수도 없다.

네트워크가 잡히는 와이파이의 비번을 물어봐도 자신의 와이파이를 쓰질 않고 데이터 연결을 해서 사용한다.

"아니 멀쩡한 와이파이 놔두고 왜 데이터를 써?"

사람들은 다시 작업을 하러 나가고, 책상에 놓인 핸드폰에 페이스북 계정들을 연결해 준다.


작업 중인 사람들에게 핸드폰을 건네주고 방으로 돌아와 잠시 쉬려고 자리에 누웠다.

잠시 후 방문으로 빼꼼히 얼굴을 내밀던 꼬마 녀석들이 모두 방으로 들어와 쉴 새 없이 질문들을 해댄다.

"아이고, 너희들까지."

어수선하게 방을 헤집어 놓던 꼬마들이 물러가고 여행 자료를 정리하며 잠시 쉰다.

퇴근을 알리며 방에 들어온 오드바야르와 짧은 대화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그의 처남이 큰 딸의 자전거를 고쳐주고 있다.

"오호, 이것은 나의 전공이지!"

자전거의 앞뒤 브레이크를 정비하고 타이어에 공기를 넣어주고 보조바퀴를 알맞게 높이 조정을 해준다.

자전거를 정비하고 있는 모습을 본 오드바야르는 창고에서 바람이 모두 빠진 자전거 두 대를 꺼내온다.

"뭐야? 어디서 나온 것들이야?"

타이어에 공기를 주입하고 체인에 윤활과 함께 변속이 잘 되는지 점검해 준다.

"오드바야르, 이제 네가 펌프질해. 힘들어!"

자전거를 정비하고 여기저기 흙먼지를 날리며 돌아다니는 아이들과 오드바야르.

처음 자전거를 타는 것인지,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흙바닥에서 자전거를 배우는데도 재미있어 한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오초르에게 라면을 먹자고 하니 좋다고 한다.

"오초르, 이거 정말 매워!"

오초르에게 라면이 맵다는 제스처를 하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미있는 표정을 짓는다. 패니어에서 참치캔을 꺼내어 라면에 넣고 조금 남은 참치캔을 오초르에게 주며 먹어보라고 하니 요리조리 살펴보고 조금 먹어본다.

맛있다는 하는 오초르에게 참치 사진을 보여주며 큰 물고기라고 설명해 주었는데 알아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라면을 끓여 오초르와 오드바야르에게 담아주니 매운 국물을 마시고 고개를 저으며 아우성이다. 여행을 하며 매운 음식을 먹지 않은 나에게도 입술이 얼얼한 느낌이 오는데 그들에게 얼마나 매울지 짐작이 간다.

라면을 먹으며 사람들과 한바탕 웃고 떠들어댄 후 오초르는 옷을 갖춰 입더니 차를 타고 어딘가를 가자는 제스처를 한다.

"차 타고 어디를 가자는 거야?"

와이프가 있는 집으로 가자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을 가자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서둘러 움직이는 오초르를 따라 집을 나선다.

버릇처럼 승용차의 오른 편의 문을 열고 타려 운전대가 있다. 멈칫하는 나를 보며 깔깔거리며 웃는 오초르.

몽골의 도로에서 일본 도요타와 현대 소나타 차량을 가장 많이 본 것 같다. 거의 70% 이상이 운전대가 왼쪽에 있는 도요타를 타는 것처럼 보인다.

승용차에 올라 안전벨트가 없는지 물으니 웃으며 없다고 하더니 좌석의 뒤쪽으로 길게 늘어진 안전벨트를 가리킨다. 안전벨트를 맨다는 표현보다는 몸에 두른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헐거워진 안전벨트를 두르고 있으니 처음 보는 젊은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뒷좌석에 앉는다.

"어디를 가는 거지?"

낡은 오초르의 도요타 승용차, 라디오를 듣기 위해 Mp3 같은 조그만 기기를 자동차에 꽂아놓는다.

몽골의 가요처럼 들리는 노래를 틀어놓고 처이르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간다. 30km 떨어져 있는 아라크에 간다고 알려주는 오초르는 신이 난 듯 엑셀레이터를 밟는다.

고작 80km가 나오는 속도계를 가리키며 빨리 간다며 보라는 오초르.

"알았어. 천천히 가!"

평평한 몽골 초원의 지면과 맞닿아 있는 구름 사이로 천천히 해가지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아라크까지 드라이브를 한다.

작은 검문소를 지나며 오초르는 매고 있지 않던 안전밸트를 몸에 두른다. 오초르가 검문소를 향해 얼굴을 빼꼼히 내밀어 눈인사를 하니 내려져있던 차단기가 올라가고.

도로의 왼편으로 보이는 아라크를 향해 도로를 벗어나 아무렇게나 흙길로 들어간다.

"역시, 몽골은 내가 가면 그것이 길인 거야!"

사인샨드와 마찬가지로 흙길의 골목을 두고 나무판자의 담들이 줄지어 이어지는 아라크.

마을 초입의 간판조차 없는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은 슈퍼가 있다.

슈퍼의 입구에 마른 말똥이나 소똥 같은 것이 모아져 있고.

슈퍼의 안쪽에 놓인 화로를 가리키자 소똥으로 연료를 쓴다며 화로를 열어 보여준다.

"한국이나 몽골이나 맛의 비밀은 따로 있구나."

음식을 하는데 다시다를 많이 사용하는지 오초르가 다시다의 발음을 제법 그럴듯하게 하면서 코리아를 외친다.

오초르의 차를 타고 함께 나온 젊은 여자는 작은 슈퍼에서 여러 가지 물건들을 사며 장을 본다. 아마도 젊은 여자를 태워다 주려고 오초르는 아라크에 온 것 같다.

작은 슈퍼에서 장을 보고 아라크의 안쪽으로 들어가니 제대로 된 마트가 나온다. 젊은 여자가 필요한 물건을 사는 동안 슈퍼를 둘러보며 오초르에게 저녁에 술을 마시자고 제스처를 한다.

조르노크를 떠나기 전 오초르와 간단히 술 한 잔을 하려고 보드카를 가리키니 X자를 크게 그리며 안된다고 한다.

"그럼 맥주?"

큰 페트병에 든 맥주 한 통과 카스, 하이트 한 캔씩을 사들고 슈퍼를 나온다.

어둠이 내려앉은 AH3 초원의 도로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고 앞서가는 차량의 브레이크 등만이 빨갛게 흔들거린다. 마주 오는 차량들을 상향등을 켜고 운전을 하는지 왼쪽 조수석에 앉은 나는 눈이 부셔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마주 오는 차량들을 보며 상향등을 껐다 켰다를 반복하며 오초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어두운 도로를 안전하게 운전을 한다.

조르노크로 돌아온 오초르는 젊은 여자의 집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젊은 여자는 오드바야르의 옆집, 그러니까 오초르의 대각선의 집이다.

오초르가 사는 집에는 오초르, 오드바야르, 오드바야르의 여동생 그리고 젊은 여자가 함께 사는 것이다.

들어선 집은 화로를 피워 조금 덥게 느껴지고 남편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방 안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다.

"아이고 이 집도 얘기들이 많네."

6살 정도의 개구져 보이는 남자아이, 4살 정도의 여자아이 그리고 바닥을 기어 다니는 2살 정도의 갓난 아이가 있다.

차와 양고기 그리고 몽골 김치를 내놓는다. 오초르가 칼로 양고기를 뜯어 먹으라며 방법을 알려주고.

육포를 먹는 것처럼 잡내가 없이 괜찮은 맛이 나는 양고기 그리고 몽골식 김치처럼 보이는 김치는 우리의 것과 비슷하면서도 뭔가가 이상한 그런 맛이 난다.

방에서 나온 젊은 남자와 인사를 하고 한국어 공부를 한다는 부부와 함께 맥주를 마신다.

간볼트, 26세의 남자와 그의 아내이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적힌 종이를 가져와 보여주는 그들에게 구글 번역기를 설치해 주고 발음들을 하나씩 읽어 준다.

"어떻게 하면 한국말을 빨리 배울 수 있느냐?"

"나도 몰라. 나도 한국말을 잘 못하는데."

방안의 TV에는 한국 드라마와 오락 프로가 이어지는 채널이 고정되어 있고.

수입이 적어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간볼트와 오랫동안 어렵게 대화를 이어갔다.

"울란바토르에 친구가 있는데, 가서 만나면 너를 도와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전화해 줄게."

오드바야르처럼 툴가와 통화를 시켜주는 것이 편하겠지만 툴가에게 너무 많은 부탁을 하는 것 같아 먼저 얘기를 하고 부탁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간볼트의 아내가 먹기 좋게 발라놓은 양고기를 안주 삼아 큰 페트병의 맥주를 마시며 밤늦도록 이야기가 이어지고, 그의 아내는 라면을 끓여 준다며 몽골 슈퍼에서 흔하게 보이는 김치라면을 끓여준다.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더니 뜨거운 물을 냄비에 붓고 라면과 스프를 넣고 뚜껑을 덮어 놓는 것이다.

"이건 컵라면 먹을 때 이렇게 하는 거지! 내가 내일 라면 끓이는 법을 알려줄게."

제대로 익지 않은 라면을 먹고 12시가 되어서야 오초르의 집으로 돌아온다.

중간에 사라진 오초르는 하이트 맥주를 한 캔 따서 반 정도 마신 후에 코를 골며 자고 있다.

TV와 전등을 꺼주고 자리에 누웠지만 바트보르드, 오드바야르 그리고 간볼트까지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다며 도와달라는 그들의 바람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툴가의 얘기에 따르면 몽골인들이 여행 비자를 받아 90일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건설 현장의 막노동과 이삿짐센터 같은 곳이라고 했다. 열악하고 힘든 노동 환경일 것은 당연할 테고, 여행 비자로 취업을 하는 것이 불법인지라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인데 하는 생각이 먼저 앞선다.

많은 나라들과 사증면제 협약이 되어있는 한국, 하지만 몽골과는 사전 비자를 받아야 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어느 국가의 필요에 의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카자흐스탄을 비롯하여 환경이 비슷할 것으로 생각되는 나라들은 모두 사증면제 협약이 되어있는데 유독 몽골만은 사전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필요한 제도이겠지만 제도가 사람들을 불법의 현장으로 내모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편하고 안전하게 그리고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몽골인들에게 지금의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단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나라?"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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