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15일 / 맑음 ・ 36도
언양
언양의 작천정 계곡에서 하루를 쉬어간다. 작천정 계곡의 시원한 물줄기가 정말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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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천정
 
작천정
 
작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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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림이 계속된다. 아무래도 몹쓸 불면증이 다시 시작되려는 모양이다.

새벽 5시, 4시간 정도의 불편한 잠에 깨어 텐트 밖을 내다보니 아침 일출의 붉은빛이 예쁘다.

"더 자야 하는데."

"이러면 반칙이지!"

어쩔 수 없이 텐트 밖으로 나가 해가 떠오르는 아침을 맞이한다.

"감미롭다."

조용한 작천정 계곡의 아침이 시작된다.

1.5km 떨어진 공중 화장실에서 굿모닝을 알리고, 그늘이 없는 지금의 캠핑 자리를 옮기기 위해 청암사 주변을 살펴본다.

넓적 바위와 풍부한 계곡물 그리고 그늘이 진 시원한 자리가 많지만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너무 시끄럽겠다."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한 계곡, 멀리 그늘이 있는 자리로 의자를 옮기고 여행 자료들을 정리한다.

한 가족이 파라솔을 펴고 텐트 주변에 자리를 잡는다.

"파라솔도 챙겨 다녀야 하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작은 그늘도 사라져 버리고, 의자를 계곡 물속으로 옮기고 자리를 잡는다. 축축하게 젖어오는 엉덩이의 시원함이 생각보다 좋다.

"그냥 들어가자."

허리까지 차오르는 계곡 물속으로 들어가.

온몸을 계곡물에 담근다.

잠수와 허우적거림의 반복,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의 더위가 사라진다.

의자를 계곡물에 완전히 담그고 의자에 앉아 자료를 정리한다.

"무릉도원이 따로 있나!"

한가롭던 계곡물에 작은 꼬마 남매가 찾아와 물장구를 친다. 평온하던 나의 시간은 녀석들에 의해 순식간에 깨져나가고.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니 어느새 수많은 텐트와 그늘막이 세워져 있다.

"뭐야? 몽골족이 와서 울고 가겠네."

천국 같았던 계곡물 자리를 아이들에게 양보하고.

10시, 한없이 조용했던 계곡은 아이들을 데리고 온 피서객들로 가득 찬다.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의 식당으로 들어가 1인분 메뉴가 있는지 물어본다.

상냥함이 묻어있는 말투와 미소의 부부다. 거친 말투와 사투리, 외향적 제스처 그리고 외지인을 바라보는 의문의 시선, 가끔씩 마주하게 되는 이 지역의 낯섦에 정서적인 거리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기대 없이 건네는 질문에 친근하고 부드럽게 대답하는 부부를 보며 깜짝 놀라고 만다.

정갈한 음식, 흠잡을 것이 없는 정성스러운 상차림이다.

저녁에 다시 찾아오기 위해 영업시간을 묻고, 두 공기의 밥으로 모든 접시를 깨끗하게 비운다.

의자를 들고 그늘을 찾아서, 사람들을 피해서 유목민처럼 계곡 주변을 돌아다닌다.

햇볕을 피할 곳이 더는 없어 계곡물이 흘러 들어오는 통로에 의자를 놓고 자리를 잡는다.

오후가 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계곡으로 찾아와 산책로까지 텐트와 그늘막이 세워진다. 대부분이 유아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의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인데, 코로나 감염자가 다시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래도 괜찮은지 걱정이 된다.

친구들이나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이 시기의 아이들을 기르는 동안 답답할 정도로 맹목적인 행동들을 보인다. 아이로 인한 과잉된 자기애는 편협된 사고와 지독하게 이기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저 유난스러운 별꼴일 뿐!"

이미 아이들로 가득 찬 작은 계곡물에 자신의 아이를 끌고 들어가 물놀이를 시켜주는 젊은 부부들을 보며 '만약에'라는 쓸데없는 질문을 해본다.

"만약에 그 물놀이에서 아이에게 잘못된 일이 벌어지면 어쩔 건데?"

나라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더라도 한가한 장소와 시간을 선택해서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물놀이를 할 수 있게 했을 것 같다.

누구나 쉽게 찾아올 수 있는 도시 근교의 계곡,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 뻔한 주말의 오후, 어린아이를 사람들로 가득한 물속에 놓아두고 '아이, 예뻐라'를 반복하고 싶은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게 게으른 거야. 이기적인 거고 별꼴인 거지!"

글을 쓰는 동안 잠자리 한 마리가 날아와 내 어깨가 제 집인 것처럼 편하게 내려앉는다.

"뉘신지요?"

그리고 이내 무릎에 앉아 한참을 쉬었다 날아간다.

오후 3시, 계곡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각, 계곡물에 두어 번 잠수를 하고 돌아온다.

그늘을 찾아서, 사람을 피해서 이동하는 유목민의 생활은 계속되고.

물장구를 치던 아이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그 자리에 20대 초반의 사내아이들이 비집고 들어온다.

특별한 무엇이 없는 무규칙의 제멋대로에 즐거움, 정말 일차원적인 단순한 즐거움은 역시 브로맨스다.

한없이 더울 것 같았던 하늘의 기운이 바뀌어 간다.

길냥이 한 마리가 주변을 배회하며 자꾸만 울어댄다.

"님은 또 뉘신지요?"

이리저리 자리를 이동하며 글을 정리하는 동안.

계곡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끝까지 '한 번만'을 외치며 물속에서 나오지 않는 아이들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빠져나간 한적한 시간,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새로운 사람들은 짧게 남은 오후의 계곡을 아이에게 선물한다.

점심을 먹었던 식당에 들러 저녁 식사를 예약하며 보조 배터리를 충전한다. 여전히 친절하고 편안한 미소의 부부다.

"넉넉하게 준비해 둘게요."

7시, 모든 사람들이 사라지고 계곡은 다시 혼자만의 독차지가 된다.

식당에 들러 예약한 메뉴를 받아온다. 2인분이 기본인 메뉴인데 1인분의 주문을 밥과 반찬 그리고 야채까지 알뜰하게 담아 주신다.

"넉넉하게 담았어요. 맛있게 드세요."

텐트로 돌아와 정갈하게 담긴 반찬과 두루치기로 저녁을 먹고.

어둠이 내려앉은 계곡을 독차지하고, 모든 것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적당히 시원한 계곡물, 허우적거리며 수영을 하고 잠수를 하며 물장난을 친다.

"다시 돌아온 나만의 시간이다."

길고 긴, 너무나 길었던 하루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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