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83일 / 맑음 ・ 26도
화천-양구-원통-속초
재희님과 함께 속초로 간다. 광치령과 미시령을 넘어야 하는 100km의 라이딩, 힘든 하루가 될 것 같다.


이동거리
113Km
누적거리
26,871Km
이동시간
8시간 20분
누적시간
2,035시간

 
31번국도
 
미시령옛길
 
 
 
 
 
 
 
65Km / 4시간 35분
 
48Km / 3시간 45분
 
화천
 
원통
 
속초
 
 
502Km
 

 

시골의 조용한 밤, 무언가를 생각할 여유 없이 잠에 빠져들고 알람 소리에 일어난다.

 

"무화과밭이네."

 

10시 출발에 맞춰 서둘러 짐들을 정리하고, 편의점의 수돗가에서 세안을 한다.

 

아침내 주변을 둘러보던 동네 어르신이 편의점 여주인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편의점 여주인은 웃으면서 할아버지의 말을 전해준다.

 

"밭에 누가 텐트를 치고 잔다고 말하시길래 여행하는 사람이라고 했더니 천지에 널린 것이 빈 방인데 왜 밭에서 자느냐고 말하시네요."

 

10시가 조금 넘어 재희님이 도착하고, 아침으로 춘천의 맛집이라며 커다란 만두를 내어놓는다.

 

"기념샷 찍고요."

 

속초로 가는 라이딩이 두 번째라는 재희님, 춘천 자전거의 정기 라이딩인 일명 속초껌 라이딩에 함께 했던 모양이다.

 

"자타고하고 똑같네요. 껌 사러 속초 가기."

 

라이딩 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지만 로드바이크의 재희님이 지루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맞춰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출발과 함께 잠시 내리막이 이어지던 길은 추곡터널을 앞두고 시작부터 오르막이 나타난다. 

 

"아놔, 강원도!"

 

짧은 추곡터널을 지나는 중 재희님은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간다. 아마도 클릿슈즈를 신고 있는 재희님은 거칠게 터널을 지나가는 차량들의 통행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자전거 여행 중 되도록 터널을 지나가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경우들이 있다. 중국을 여행할 때 엄청난 경적을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며 지나치는 중국의 운전자들이 그래도 마음에 들었던 경우가 터널을 통과할 때였다.

 

이상하게 터널을 통과할 때는 중국의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리지도 않았고, 천천히 자전거를 피해서 서행하며 지나치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아니 여행한 국가들 중 한국의 운전자들처럼 형편없는 운전 매너는 영국을 제외하고 만나볼 수 없었다.

 

당일치기로 속초를 가는 재희님을 위해 라이딩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양구까지 가는 도로의 여러 터널을 지나쳐야 해가 지기 전 속초에 도착할 수 있다.

 

추곡터널을 빠져나오고 내리막을 내려온 후 소양호의 옛길로 들어서는 추곡리를 지나친다. 멀리 돌아가는 옛길을 포기하고 수인터널을 통과하기로 계획했지만 터널을 앞두고 재희님은 다시 자전거를 세운다.

 

"힘들어요? 터널이 힘들면 옛길로 돌아가요."

 

"아니 신발을 바꿔 신고 가면.."

 

"안 돼요. 돌아가더라도 안전하게 가요. 옛길로 갑시다."

 

일반적인 터널보다 훨씬 긴 수인터널을 통과하기엔 무리가 있다. 다시 추곡리로 돌아가 소양호의 주변을 돌아가는 옛길을 따라 양구까지 가기로 한다.

 

 

소양호의 외곽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옛길에는 차량의 통행이 거의 없어 편안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며 이어지는 소양호 옛길, 한적한 소양호의 풍경이 한가롭고 편안하다.

 

 

오르막이 이어질 때마다 먼저 앞장을 서던 재희님은 페달의 속도를 맞춰가며 천천히 기다려 준다.

 

"이 길에 끝은 있는 거야?"

 

계속되는 오르내리막에 조금씩 느려지는 페달링, 자전거 쉼터에서 잠시 쉬어간다.

 

자전거의 짐을 나눠 들어주겠다는 재희님에게 패니어가 장착된 자전거를 끌어보라고 하니 무거운 자전거를 세우는 것조차 버거워 보인다.

 

국내 여행을 하는 동안 많은 짐들이 필요하지 않지만 딱히 일정의 계획이 없는 여행이라 세계일주를 할 때의 짐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패니어들이다. 대부분 옷가지들인데 여행을 출발할 때 불필요한 것들을 조금 덜어내었으면 좋았겠다 싶다.

 

양구로 향하는 소양호 옛길은 계속해서 구불구불 이어진다.

 

양구를 지나 광치령을 넘은 후 늦은 점심을 먹으면 좋을 것 같지만 시원한 편의점표 얼음 커피가 간절해진다.

 

"님아, 날 버리고 가지 마오."

 

길었던 소양호 옛길이 끝이 나고 31번 국도는 생각과 달리 양구읍내를 지나치지 않고 외곽으로 돌아간다.

 

"얼음 커피~"

 

양구군청을 지나 작은 고개를 넘는 경로를 무시하고 양구군의 서천 자전거 도로를 찾아 광치령 입구에 도착한다. 초입에 위치한 광치령 주유소에서 자전거를 멈추고 주유소 편의점이 있는지 둘러보지만 편의점은 없다.

 

하천에서 잡은 다슬기 대야에 물을 채우고 있는 남자에게 인사를 하고 그늘에서 잠시 쉬어가도 되는지를 물어본다.

 

주유소 남자는 커피를 주겠다며 사무실로 안내하고, 어지러운 사무실 한편에는 하드테일 엠티비 자전거가 놓여있다.

 

"저도 자전거를 타서 관심이 조금 있네요."

 

약간은 후덥지근한 정오의 날씨 남자는 뜨거운 믹스 커스를 내어준다. 남자의 센스가 아쉽다.

 

건강상의 이유로 자전거를 타고 양구의 파라호 주변을 자주 라이딩한다는 남자는 광치령에 대해 물어보자 무거운 자전거를 타고 올라갈 수 없다며 미시령보다 광치령이 더 힘들다고 한다.

 

지도 앱으로 600미터가 안 되는 해발의 높이, 4km 정도의 거리인데 미시령보다 힘들다는 말이 선뜻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어디쯤이 정상이에요?"

 

"당연히 터널이 나오면 정상이지."

 

"그렇죠. 터널이 나오면 정상이죠."

 

몽골을 비롯하여 산을 넘는 도로에 터널이 없는 국가들을 여행하다 보니 한국의 수많은 터널에 대해 무감각해졌나 보다. 

 

지하수를 끌어 쓴다는 주유소의 수돗물을 온몸에 끼얹으니 상의 위로 하얗게 내려앉은 소금기가 씻겨 내려간다.

 

"아, 시원해."

 

"가 봅시다. 혹시나 내가 광치령을 원킬로 올라가면 다음에 속초 라이딩이 있을 때 주유소에 들러서 그 남자가 광치령을 한 번에 올라갔다고 전해주세요."

 

무거운 자전거로 한 번에 올라갈 수 없다는 남자의 쓸데없는 투지를 불러일으킨다. 

 

주유소를 출발하자 나지막한 경사로 시작된 오르막은 경사도를 더해가며 구불구불 이어진다.

 

속도가 나지 않는 페달링에 재희님은 멀찌감치 앞서가며 도로의 코너를 돌아갈 때마다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가끔씩 뒤를 돌아보며 뒤따라 오는 나를 확인하고는 잠시 기다리며 광치령을 올라간다.

 

40여 분의 오르막이 끝나고 멀리 광치령의 정상인 터널이 보인다. 턱까지 차오른 가쁜 숨, 무거워진 허벅지와 허리 그리고 꼬리뼈까지 욱신거리는 엉덩이의 통증이 조금씩 사그라든다.  

 

"주유소 남자는 미시령을 안 가본 것이 확실해."

 

왼쪽 차선을 막고 내부 공사 중인 터널의 교통통제를 하는 작업자들이 신호가 있을 때까지 잠시 대기를 하라며 안내를 한다. 작업자의 신호에 따라 정차해 있던 4~5대의 차량들을 보내고 뒤따라 터널을 통과한다. 생각보다 긴 터널, 오르막을 오르느라 지쳐있던 터라 앞선 차량들이 터널을 모두 빠져나간 후로도 한참을 혼자서 터널을 내달려야만 했다.

 

 

멀리 터널을 빠져나간 재희님이 뒤를 돌아보면 기다리는 모습이 보이고, 거리가 가까워지자 이내 내리막을 내려간다.

 

"아니 좀 쉬었다..."

 

터널을 빠져나와 갓길에 잠시 자전거를 세우려 하자 건너편 작업자가 빨리 지나가라는 제스처를 한다. 3~4대의 차량이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여 서둘러 통제구간을 빠져나간다.

 

"당신들 때문에 차들이 기다리잖아요!"

 

정차되어 있는 차량들을 지나칠 때쯤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치는 작업자의 소리가 들려온다. 작업자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욕설이 튀어나오려고 한다. 

 

"네네. 수고하세요!"

 

정확히 말하자면 터널 공사로 인해 차량들이 정차를 하고 있는 것이고, 나로 인해 1~2분의 시간이 지체되었을 뿐이다. 자전거가 터널에 진입했다는 것도, 자전거가 차량보다 느리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터인데 너무나 터무니없는 짜증이다.

 

카자흐스탄을 비롯하여 수많은 도로 공사 구간을 지나쳤지만 누구 하나 불편한 기색을 표하지 않았다. 수십 미터가 정체되어 있는 현장에서도 덜컹거리는 노면의 느린 자전거 속도에 맞춰 뒤따라 오고, 안전하게 자전거가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리다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는 모습들이었다.  

 

자전거로 인해 잠시 지체된 차량들의 운전자들은 조금 불편하겠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1~2분의 시간이 그렇게도 불편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쓸데없이 여기까지 올라왔네' 생각하며 웃어주면 그만인 일일 텐데 말이다.

 

신경질적인 작업자에게 짜증 섞인 말대꾸 대신 성의 없는 인사로 싱긋 웃어주며 시원한 내리막을 달려 내려간다. 주유소 남자의 말처럼 12km 정도의 긴 내리막과 평지길은 원통까지 이어진다.

 

시원한 풍경의 북천을 따라 원통을 지나치고 미시령과 한계령이 갈라지는 한계 교차로를 향해서 간다.

 

"조금 쉬어요. 배고프다."

 

잠시 그늘에 앉아 미시령을 오르기 전 허기를 채울 식당을 찾는다.

 

"시원한 냉면이 먹고 싶다."

 

원통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려던 계획은 라이딩 시간이 느려지면서 식사 타임을 놓치고, 북천을 따라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 주변에는 식당이 없다.

 

"왜 식당들은 죄다 반대편에만 있는 거야."

 

한계 교차로의 내설악 휴게소에서 밥을 먹기로 하고 출발을 한다. 하지만 이내 설악휴게소가 나타나자 자연스럽게 휴게소로 들어간다.

 

너무나 한산한 휴게소의 식당에 들어가 메뉴를 살펴보던 중 도토리묵사발이 눈에 들어온다.

 

"시원하게 많이 주세요. 시원하게요!"

 

밥을 먹으며 재희님이 돌아갈 속초-춘천 간 고속버스의 시간을 알아보니 마지막 고속버스의 출발 시간이 8시 반이다.

 

"지금이 4시 반, 미시령 입구까지 20km 정도고 미시령에서 속초까지 20km. 빨리 가도 4시간은 더 가야 하는데."

 

죽을힘을 다해서 가도 8시 반의 막차는 탈 수 없을 것 같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식당을 나가자 로드바이크를 타는 사람들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걸어온다.

 

"얼마나 여행을 하셨어요?"

 

"집 나온 지 한 500일 됐어요." 

 

"그럼, 미시령으로 가 볼까요."

 

용대리로 가는 미시령 옛길은 속초구간 중 가장 좋아하는 코스이다.

 

북천을 따라 이어지는 고원통 계곡의 시원한 물줄기와 조용하고 아늑한 옛길의 정취가 너무나 마음에 든다.

 

당일치기로 속초 라이딩을 함께 한 재희님을 위해서는 몇 분이라도 빨리 속초에 도착해야 하지만 예상되는 시간은 자꾸만 뒤로 멀어지고 있다.

 

 

그에 비해 옛길이 끝나고 미시령 초입까지 이어지는 용대리의 46번 국도는 최악으로 끔찍한 코스다.

 

대부분 맞바람이 불어오는 지루한 국도변의 라이딩은 무거워진 페달을 더욱 무겁게 만들어 버린다. 느린 속도에 맞춰 뒤따라 오던 재희님은 졸리다고 한다.

 

"죽을힘을 다해 가고 있는데 졸리다뇨?"

 

최대한 로드바이크의 속도를 줄이지 않게 하려 페달을 밟아가는 나에게도, 하루 종일 느린 자전거에 맞춰 라이딩을 하는 재희님에게도 쉽지만은 않은 동행이다. 

 

"세상 일이 다 그래. 누군가의 속도에 맞춰 함께 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야."

 

"너와 나도 그랬겠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사랑의 크기보다 속도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6시 40분. 지루한 용대리의 도로가 끝나고 미시령 옛길의 초입에 도착한다.

 

"아, 너덜너덜해진 기분이야."

 

수돗물을 온몸에 끼얹고 잠시 쉬어간다.

 

"출발하면 나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정상까지 쭉 올라가세요. 천천히 따라 갈게요."

 

여행용 자전거를 끌고 미시령을 넘었던 재작년의 일기를 찾아보니 미시령 정상까지 40여 분이 걸린 것 같다. 

 

20여 분의 휴식을 끝내고 미시령을 오른다. 재희님은 출발과 함께 댄싱을 치며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부럽다." 

 

지난 일기에는 정상 1Km를 알리는 이정표에서 자전거를 내렸다고 적혀있다.

 

"정상 1Km 지점까지만 소처럼 가 보자."

 

무거워진 느린 페달링으로 1km 이정표를 지나고 2~300미터쯤 더 지났을 때 자전거에서 내린다.

 

"왜 항상 미시령은 너덜너덜해진 상태에서만 넘는 거야."

 

10미터쯤 자전거를 끌고 가다 끄는 것이 더 힘들어 다시 안장에 오른다.

 

"아주 몇 번 더 오면 원킬하겠어. 그냥!"

 

새로 정비가 된 미시령의 정상에 재희님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오고, 지난번과 비슷하게 40여 분이 지나서 정상에 도착한다.

 

"이번에도 일몰이네."

 

잠시 석양을 바라보니.

 

기다렸다는 듯이 태양이 산등성이 너머로 모습을 감추기 시작한다.

 

"야! 기다려."

 

"에쒸!"

 

 

휴게소가 있던 자리는 전망대로 새롭게 정비가 되어있다.

 

반대편과 달리 속초 방향의 하늘에는 은은한 파스텔톤의 석양이 내려앉아 있다.

 

"좋네."

 

 

바람막이를 챙겨 입고 속초를 향해 내려간다.

 

"무조건 안전하게 조심해서 내려가요."

 

디스크 브레이크가 장착된 여행용 자전거지만 여행용 자전거의 브레이크는 절대로 믿으면 안 된다. 무거운 무게 때문에 브레이크 패드나 슈가 빨리 마모되는 탓에 교체 시기를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고, 내리막 도로에서 속도를 내다보면 무게 때문에 브레이킹이 생각처럼 안 될 때도 있다.

 

또한 급회전 시 패니어의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고, 피로 데미지가 누적된 렉이나 스포크는 언제든 부러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항상 브레이킹을 해가며 제어 가능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시원한 내리막을 달려 울산바위 휴게소에 도착하자 조금씩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후미등과 라이트를 장착하고 속초해변을 향해서 이동한다.

 

8시 40분. 목적지였던 속초해변에 도착한다. 해변의 입구에는 코로나 방역을 위한 소독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담당자들이 출입통제를 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도 돼요?"

 

"텐트 치시려고요?"

 

"아니요. 사진만 찍으려고요."

 

버프를 올려 쓰고 잠시 해변 입구로 들어간다.

 

"왔다!"

 

주변 편의점에 들러 커피와 맥주로 속초 입성을 자축한다.

 

"근데 재희님, 버스가 없어서 어떻게 해요?"

 

재희님은 근처의 카페나 해변에서 밤을 새우고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춘천으로 가겠다고 한다. 아무리 로드바이크를 타고 왔지만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온 지친 몸으로 밤을 새운다는 것이 좋지 않은 생각 같다.

 

"저는 너무 힘들어서 숙소를 잡고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재희님도 그렇게 하시죠?"

 

속초 해변에는 국민여가 캠핑장이 지정되어 있지만 방역관리를 하고 있는 해변의 야영장에서 캠핑을 할 수 없을 것 같고, 광치령과 미시령을 넘어 100km 넘게 달려온 터라 야영보다는 편하게 쉬어야 할 것 같다.

 

"여기 리조텔 같은 것이 있는데 저렴해요. 더블룸이나 큰 방을 잡아서 같이 쉬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아니면 방 두 개를 잡던지요."

 

재희님은 자신은 카페 같은 곳에서 보내면 된다며 숙소를 잡고 쉬라고 한다.

 

지난번 여행처럼 해변의 리조텔 입구에는 중년의 여성들이 호객을 하고 있다.

 

"얼마예요?"

 

"두 명에 5만원요."

 

"혼자 잘 건데요."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중년의 여자와 35,000원에 숙박비를 협상하고 넓은 리조트 방에 자전거를 넣어둔다.

 

9시가 넘으면 음식점들의 영업이 끝나는 속초해변, 지난번에도 실패한 생선구이집은 이번에도 문이 닫혀있고 아바이 순댓국집도 영업이 끝났다고 한다. 재희님과 투다리, 옛날통닭집에서 반주와 함께 저녁을 하고 숙소로 돌아온다.

 

"정말 괜찮겠어요?"

 

한두 차례 상대방의 의견을 물어본 후 타인의 의사에 관여하지 않는 게으른 성격이지만 쌀쌀한 바닷가에서 밤을 새운다는 것이 못내 걱정이 되어 다시 한번 물어본다.

 

"그럼 껌이라도 사요. 껌 사줄게요."

 

하루 종일 고된 동행길을 함께 해준 재희님에게 속초껌으로 감사함을 대신하고.

 

"혹시 너무 힘들면 들어오세요."

 

숙소에 들어가 바로 침대 위로 쓰러진다.

 

 

 

GPS 정보

 후원 : KEB 하나은행/변차섭/415-910665-18507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2일 : 2018.10.30 / 맑음・8도

용문-홍천-신남-인제-용대리-미시령-속초-속초해변

뚝떨어진 기온, 영하로 내려간 아침 기온의 전국일주 이틀째. 국도를 따라 속초로 향하였다. 미시령 고개를 넘을 수 있을지 걱정하였다.

이동거리

145.87Km

누적거리

245.17Km

이동시간

10시간 05분

누적시간

16시간 40분


홍천
미시령
70Km/5시간 01분
75.9Km/5시간 04분
용문
인제
속초
 
 
245Km

 

5시 잠이 깨였다. 이틀간 충분한 잠을 취하지 못했고 어제 비속의 라이딩으로 지쳐있을텐데 그것조차 불면증의 어려움을 이기기는 힘든가보다.


오늘 라이딩할 경로를 정하였다. 용문에서 인제 용대리까지 100Km 거리를 잡고 내일 아침 미시령을 넘을 것이다. 챙겨온 여행용품 중 불필요한 것들을 골라 비워내기로 했다.


파라형이 준 텐트 천막을 비롯하여 캠핑용 간의 의자와 여분의 겨울 옷가지들을 덜어내어 주변 CU편의점에 들려 택배로 발송하였다. 제법 묵직하게 느껴졌던 것들의 무게는 택배기의 저울에 올려놓으니 5Kg정도 나왔다.


택배를 보내고 김밥 한 줄로 아침을 해결하고 속초로 향하였다. 용문 읍내를 벗어나 44번 국도에 들어섰을 때 하얗게 서리가 내린 초겨울의 들녘에서는 아침 햇살을 받은 지열로 인해 모락모락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난 2년, 불면증과 우울증에 힘들어 했었다. 어찌해도 이길수 없는 그 마음의 병으로 인해 제대로 된 아침을 맞이해본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이른 아침 붉게 떠오르는 따스한 태양을 마주하며 그 시간들의 깊이를 가늠하였다. "좋다. 이렇게 살아가보는거야." 


 

44번 국도를 달려 신당고개, 며느리재, 거니고개를 넘어 홍천에 이르렀다. 2개의 지옥같은 터널길과 힘들게 하는 고갯길들의 홍천길. 하루 250Km를 내달리던 미시령 라이딩에서도 힘든줄 몰랐는데.. 그때에 힘들어하던 이들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언젠가 이 길도 국도가 아닌 자전거길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홍천 화양강, 산과 물 그리고 소박한 시골의 풍경이 어우러져 있는 풍경에 잠시 자전거를 멈추었다. 지루한 44번 국도 라이딩에 휴식이 되어준 첫번째 풍경이였다.


 

 

화양강 휴게소의 비빔밥. 딱히 배를 채울만한 메뉴가 없어 양이 많을 것 같은 산채 비빔밥을 주문했다. 시장이 반찬이듯 맛있고 충분히 좋았다.


 

인제를 향하던 중 국도 멀리 낯익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자타고의 미시령 라이딩에서 점심을 먹었던 식당 같았다. "저 곳에서 가을친구 형이 드론을 날리다. 바람에 휩쓸려 군부대로 드론이 떨어져 버렸지."


 

"나는 지금 내 지난 기억들을 쫒아 길을 따르고 있다. 마음속 어딘가 각인되어 기억되는 빛바랜 피상이 아닌 언제나 바라보던 너의 뒷모습이 그 길위에 그려진다. 나와 너는 이 길위에 함께 있다."


 

인제 초입의 조각공원 휴게소. 조각공원이라기 보다는 성기공원이랄까. 온갖 형태의 거시기 모양의 조각들만 잔뜩 세워져 있었다.


 

단풍의 계절이 지난듯 달리는내 보였던 산들의 풍경은 빛이 바랜 오래된 액자같았지만 소양강호의 단풍은 푸른 호수와 어우러져 그저 아름다웠다.



인제 북면에 이르렀을때 설악산의 정상은 눈이 쌓여 하얗게 변해있었다. 초코바 하나를 꺼내물고 "오늘내 넘으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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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면의 민예관광단지 삼거리. 한계령을 넘는 우측의 44번 도로와 미시령을 넘는 좌측의 46번 도로로 나뉘어진다.


 

46호 옛길을 따라 용대리에 도착하였다. "이 길은 언제나 비밀스럽고 좋아. 시간을 벗어나 공간속에 들어서 담겨지는 기분이야." 


일몰시간이 다가오는데 미처 용대리의 바람을 간과하였다. 무심히도 역풍이 불어대는 용대리의 바람길, 페달링의 무거움과 시간의 압박이 찾아들었다. 용대리를 지나며 생각했던 시간보다 30여분이 넘게 늦춰지고 말았다. "5시전에는 미시령 입구에 도착해야 하는데."


 

미시령을 향하기전 황태촌에서 마지막 허기를 보충하였다. 어제 구리 코스모스 정원에서 사두었던 크라미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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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촌 휴게소를 사이에 두고 좌측의 44번 국도는 진부령으로, 직진의 56번 국도는 미시령으로 향한다.


 

황태촌에서 바로 미시령 입구에 다다를줄 알았던 기억이 틀렸다. 다시 한참을 달려야 미시령 옛길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용대리의 바람속에서 지쳐버린 체력은 미시령 입구까지 겨우 힘겹게 페달을 밟았다. 


"60킬로 가까운 자전거를 끌고 미시령을 오를 수 있을까?" 고민하였다.


5시가 넘어 미시령 입구의 민박 슈퍼(미시령계곡캠핑장)에 도착하였다. 10여분간 다리근육을 풀며 미시령을 넘을 것인지 여기서 야영을 할 것인지 생각하였다. 30분 정도면 해가 떨어질 것이고 3키로가 넘는 미시령 고개를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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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령계곡 캠핑장을 지나 미시령 옛길을 오른다.



1시간정도면 정상에 오를 것 같았고, 해가지면 미시령 정상의 어둠속에서 속초를 향해 긴 내리막길을 야간 다운을 해야한다.


"넘자. 그래, 넘어버리자. 까짓것.."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미시령을 올라 정상기점 1Km를 알리는 이정표를 바라보며 자전거를 내렸다. 도저히 소진된 체력으로 페달을 밟기가 힘들었다. 



40여분의 시간. 6시에 이르렀을 때 미시령 정상에 도착하였다. 해는 저물어 옅은 석양만 남아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무서운 바람의 미시령 정상을 휘몰아 쳤고 싸늘한 찬기운이 느껴졌다.


"어쨌든, 올라왔잖아!"


 

서둘러 인증사진만을 찍고, 고글벗어 안경으로 바꿔쓰고, 헬멧에 헤드 랜턴만을 장착한 체 미시령 다운을 시작하였다. 해가 떨어진 미시령은 빠르고 무섭게 어둠이 찾아들었다.


 

무거운 짐과 자전거, 헤드랜턴의 약한 불빛, 구비져 가파른 미시령의 다운길, 간간히 몸을 휘청이게 만드는 강풍과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바람소리들. 속초로 향하는 길게 늘어진 미시령길을 드롭바의 언더를 잡고 브레이킹하며 조심스레 다운하였다.


저멀리 눈에 들어오는 속초의 야경만으로 모든 것이 충분하였다.


산 속의 차가운 기운이 더해져 온몸이 떨리듯 춥게 느껴졌지만 다운의 긴장감으로 모든 것이 백지상태. 안전하게 내려가 휴게소에서 따듯한 커피로 언몸을 녹이고 싶은 마음만이 간절하였다.


"휴게소가 없잖아?" 겨우 미시령을 내려왔을 때, 생각했던 휴게소가 폐쇄되었는지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조금씩 떨려오는 온몸의 냉기. 마저 속초 시내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속초시내에 가까워질수록 도로의 차량의 통행은 빈번해졌다.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갓길을 따라 이동하였다.


 

덜덜거리는 추위를 느끼며 일단 허기부터 채워야 했다. 주변 맛집을 물어 명품해장국 집을 추천 받았으나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영업이 종료되어 그 맛을 볼 수가 없었다. 


더는 거리를 이동할 수 없어 아쉬운데로 한눈에 들어오는 아비이순대국 집으로 들어갔다.


 

따듯한 온돌방에 앉아 절로 새어나오는 "아이구.." 소리와 함께 순대국에 소주 한 잔으로 지친 추위를 달래였다.


든든히 배를 채운 나른해진 피곤한 몸은 야영을 하여야 하는 다음 행위를 지워버렸다. "사람의 깃털처럼 가벼운 간사한 마음이야. 이미 따듯함을 느껴버렸다구. 싫다."


아침부터 추위와 싸웠고, 예상에 없던 오바된 거리 145키로를 달렸고, 미시령을 넘었고, 콧물까지 훌쩍였다. 


편의점에 들려 판피린을 사들고 나올 때, "사장님, 25평, 50인치 티비, 와이파이, 침대... 25,000원"하는 소리가 너무나 선명하게 또박또박 귀속의 달팽이관을 때리고 되돌림표를 받은 울림처럼 반복되었다.


어제의 허름하기 짝이없던 군부대앞 모란장에 비하면 7성급 호텔정도로 느껴지는 곳이 무려 5천원이나 저렴하다니. 넓은 콘도식 모텔에 자전거까지 들어놓고 편하게 쉬었다.


양쪽 허벅지의 근육들이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키듯 떨리고 있는 뻑뻑함을 느끼며.. "거봐, 기어이 오고 말았잖아. 좋다."


숙소내 보이는 콘센트에 온갖 전자기기의 충전기 연결해 놓은 채 온돌의 따듯함에 더해 전기장판의 온도까지 높여놓고 침대속에 몸을 집어넣었다. "이거면 돼.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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