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11. 10:53 / 찬란한 하늘빛・34도
능곡-한강자전거길-광화문-삼청동-인사동-서대문-홍제천-능곡

우울해져버린 토요일 아침. 무작정 자전거를 끌고 나섰다. 어디로 가볼까?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지 않은가.

이동거리 49.5Km 이동시간 4시간 26분

광화문/삼청동
서대문/홍제천
27Km/2시간 29분
22.5Km/1시간 53분
능곡
인사동
능곡

・동호회명
자타고
・활동지역
고양, 일산, 파주, 운정
・회원정보
5,000여명
・정기모임
화/수/목/금
・번개모임
평일/주말
・모임구분
도로/산악
・홈페이지

 

배제되고 소외되어 멀어져가는 느낌처럼 두렵고 아픈 것은 없는 것 같다. 존재로서의 기억이 흐릿해지고 잊혀지는, 부정되는 것 같은 서글픔.

 

길을 나섰다. 어디로 향할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그래, 노란리본이 필요해. 단지, 씩씩함이 필요한거야."

 

광화문에 들려 여행기간 자전거에 달아줄 노란리본을 받고, 삼청동에 들려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 인사동에 들려 카메라의 스트랩으로 사용할 가죽끈같은 것을 찾고, 점심을 먹은 후 서대문에 들려 독립문과 서대문수형소를 보고, 홍제천으로 해서 돌아오자 생각하였다.

 

마포대교에서 들어가는 입구를 이번에도 헤맨다. 여긴 항상 어려워. 두번째 입구라구..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때 서너번 들렸고, 이후 처음이였다. 세월호 천막에 들려 스텔라데이지호와 세월호진상규명에 대한 서명도 하고, 수줍게 후원금도 넣어보고, 노란리본공작소에서 노란 리본도 받았다.

 

 

 

 

자전거에 달라며 커다란 리본을 주셨다. 리본달고 어디서 나쁜짓은 절대로 못할 것 같은 크기의 커다란. 여행용 자전거에 딱이네.

 

 

라파엘 나달보다 더 체력이 좋을 것 같은 아이들. "얘, 물을 먹지는 말어"

 

 

가훈을 만들어주는 행사장. 뭔가 대개 진지하다. 어릴때 우리집 가훈은 무엇이였나 생각하였다. 80년대 시골의 집집마다 똑같은 액자에 성실, 근면, 정직 이런 단어들의 가훈이 걸려있었던 것 같은데.  

 

뭐가됐든 부모님께 가훈을 따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없고, 언제나 짧은 물음은 "밥은 먹었냐?"였다.

 

 

 

큰 형님들도 뵙고. "하늘이 정말 좋다."

 

 

 

무궁화 관련 행사가 있는지 각 지역에서 올라온 화분들이 가득했다. 무궁화의 종류가 이리 많을 줄이야.

 

 

 

광화문을 지나 삼청동으로 향하였다. 한복을 차려입은 내외국인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한복을 입은 모습이 좋았다라기보다 이 더운 땡볕에서 한복을 겹쳐입고도 즐거워하는, 충만한 그들의 웃음이 좋았다.  

 

삼청동길을 따라가며 길게 늘어진 자동차의 행렬이 더운 날씨보다 더 숨막히게 만들었다. 1층에 자리했던 카페들이 모두 사라지고, 중국 관광객을 실은 버스들의 행렬. 볼 것없이 인사동으로 이동했다.

 

 

"3개에 5,000원이야. 안돼. 안돼. 3개에.." 샤워타월같은 것을 자꾸 더 집어드는 외국인에게 3개 5,000원이라 적은 메모를 가르키며 조급하게 소리치는 아주머니. 물건을 팔고 싶은 마음과 손해 보지않겠다는 마음의 내적갈등.

 

말을 못 알아들어서, 물건을 자꾸 더 집어서 짜증내는 것이 아니였다. 단지 안 사고 가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조급함의 하이 톤.

"사라구. 3개만 집어들고. 5,000원은 내고"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마지막으로 온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김점선 작가의 기념품 가게에서 작품 엽서 몇개를 샀던 것 같다.

나는 그녀의 작품을 무척 좋아했었다. 그녀의 웃는 그림들은 늘 기분좋게 만들어 주었다. 

 

넥타이를 고쳐메는 거울옆에 꽂아두고 해피한 하루에 대해 주문을 걸었고, 사무실 책상 파티션에 클립하여 답답한 직장생활의 울분을 달래였다.

투병생활 끝에 사망하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그 아쉬움에 소주 한 잔과 그녀의 자서전을 사들었던 기억이 있다.

 

김점선에 대한 기억의 끝에 "2009년. 실로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해였구나." 생각하였다.

 

천상병 시인의 카페 귀천은 사라졌나보다. 20년도 넘은 해이니 그럴만도 하지. 어쩌면 지난번 인사동에 왔을 때에도 똑같은 아쉬움의 중얼거림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스치는 바람에 맑은 소리가 발걸음을 붙잡았다. "좋다. 청아함!" 자전거에 달고 싶은 충동에 둘러보았으나 마땅한 것도 없거니와 저걸 달았다가는 청아함이 지옥의 종소리로 변할 것이 분명하였다.

 

 

종로거리에 다다랐을 때, 그만 돌아가려고 했다. 변해버린 것, 특히 아무런 특색없이 달라져버린 것들에 대해 추억할 것도 없고 흥미또한 없다.

외국인이 없을 뿐 이런 거리는 동네마다 하나쯤 있지않은가. 어디가 근본인지 모를 로데오거리, 카페골목, 맛집거리 등등 하여.

 

담배 한대가 궁금하여 "저기는 꼭 담배를 피워야하는 자리야"를 찾던 중 대나무숲을 배경으로 바위와 나무들 사이 이리저리 자리 잡아놓은 음식점이 눈에 띄였다.

 

조금 출출했고, 담배가 궁금했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간절했고, 야외라 자전거를 놓기에도 좋았다. "빙고!"

 

 

내가 지금 동남아시아 어느 국가에 있는 것인지, 2018년 서울 한복판에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지만, 일단 맥주 한병과 짬뽕 하나를 주문했다.

중국사람인지 동남아 사람인지 모를 아주머니가 "써~ㄴ부~ㄹ" 하였다.

 

선불 7,500원. 밥값보다 맥주 한병값이 더 비싸다니..

 

 

시원한 맥주 한 잔. 넌 정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맛이야.

 

 

 

당황스러웠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에게 저 홍합무더기는 그저 젓가락으로 걸러내야 하는 장애물일 뿐이다.

 

 

큰 기대 없었기에 큰 실망도 없다. 딱! 가격만큼이랄까. 국물은 조금 텁텁했지만 괜찮았다.

시원한 그늘에,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실 수 있었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히 좋았다.

 

 

귀에 익숙한 음악이 청명하고 부드럽게 들려왔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주제곡인건 확실한데, 월령공주인지 천공의 성 라퓨타인지 생각이 안났다. 바람계곡 나우시카인가..

 

자리에 서서 잠시 소리를 들었다. 기분 좋아지는 맑은 소리였다.

 

 

2년째 집을 떠나 여행중이라는 터키 맨. 손재주가 있는지 구슬 팔찌를 만들어 팔고 있었다. 5,000원. 터키의 눈이 들어간 팔찌라나..

음악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뭔가를 조각하는 재주가 있으면 여행경비의 부담을 줄일 수도, 더 많은 자연스런 대화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부러움이 들었다.

 

작업을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과 정성어린 미소의 반응을 보이던 소녀의 모습이 행복해보였다. 터키맨이 잘 생겨서인지 팔찌에 대한 기대감인지 알 수는 없지만.. 행복한 웃음을 지을 줄 아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대학시절 집이였던 불광동과 학교사이를 매일처럼 지나치던 곳인데, 처음 와봤다. 생각보다 잘 정돈되어 있었고, 작았다.

 

 

 

 

 

위패들이 모셔진 독립관. 소박하기보다는 너무 작았다. 털보의 말을 빌리자면 "너무 작어.. 씨발!"이라고나 할까.

박정희 기념사업 따위에 사용되는 수백억이 생각났고, 광화문 주한미국대사관 옆에서 성조기를 들고 시위하던 자들이 떠올랐다. 먹먹함이 있다.

 

 

생각없이 들렀는데 곧 8.15 광복절이구나 생각하였다. 학생으로 보이는 친구가 방명록에 무엇을 쓸까 고민하는 동안 먼저 분향을 하고 잠시 묵념하였다.

 

"감사드립니다." 짧은 방명록을 남겼고, 한참을 고민하던 여학생은 무엇을 적었나 보았다. "..희생으로 잘 살게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바로 옆,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들렸다. 자전거때문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다. 자전거는 다 좋은데 이렇게 안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해야할 때가 아쉽다.

 

여행할 때는 와이어, U락, 쇠사슬이라도 써서 묶어놓고 보고 싶고, 걷고 싶은 것들은 다 할 것이다. 

 

 

 

 

홍제천을 달려 난지공원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커다란 노란리본을 얻었고, 잊고있던 김점선을 기억해 냈다. 또한 반 강제적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한 것 이후 해야할 일을 하나쯤은 더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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