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9일 / 비 ・ 10도
구이린 : 형산공원-일월쌍탑-정강왕성
황산을 출발하여 1,200km의 거리를 달려온 여정의 끝에 구이린에 도착했다. 휴식을 취하며 비가 내리는구이린을 둘러본다.


이동거리
18Km
누적거리
4,663Km
이동시간
5시간 20분
누적시간
316시간

 
도로
 
도로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형상공원
 
일월쌍탑
 
정강왕성
 
 
1,848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86-1173-0089

 



오전 10시, 라이딩이 없어 늦잠을 자며 게으름을 피운다. 조금은 가벼워진 몸과 일주일 동안 괴롭히던 감기 기운은 차츰 괜찮아지는 것 같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 계림을 둘러보기에 무리는 없지만 비로 인해 계림의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생겨난다.

12시쯤 메시지를 준다는 컴퓨터 수리점의 연락을 받고 나갈까 하다 어찌 되겠지 싶은 마음으로 밖으로 나간다.

세수를 마치고 나오며 자전거의 타이어를 순서대로 눌러보니 뒷바퀴가 주저앉아있다.

"이제는 일일 일빵이네. 귀찮다, 다녀와서 고치자."

프런트로 내려와 직원에게 계림의 관광지들이 즐겨찾기 되어있는 고덕지도를 보여주며 물어본다.

"나리 하오 마?"

직원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정강왕성과 형산공원을 가리키며 추천을 한다.

"쩌리 최고 하오?"

"하오!"

무슨 말인지 나오는 대로 뱉는 중국어인데 모두들 잘 알아 듣는다. 먼저 숙소에서 가까운 형산공원을 가기 위해 버스노선을 검색하고 버스 번호와 버스비 2위안이 맞는지를 확인하고 숙소를 나온다.

숙소 앞 음식점, 오리와 닭을 좁은 철창에 가둬두고 키우는 것인지 아니면 식재료인지는 모르겠다.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는 오토바이들을 지나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간다.

버스 노선을 재차 확인하고 있으니 16번 버스가 바로 도착한다.

2위안을 요금함에 넣고 빈자리에 앉는다. 좌석의 방향이 측면이나 거꾸로 되어있는 것을 제외하면 우리의 버스와 별반 다르지 않다.

버스는 이강을 넘는 다리를 건너 4정거장을 지난 후 형산공원 입구에 도착한다. 내리려고 보니 하차벨이 따로 없고 뒷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도로에서 첫 번째 보이는 매표소에 들어가 관광 안내 팜플렛을 서너 장 뽑아 들여다봐도 잘 모르겠다.

직원에게 티켓을 달라 하니 공원의 안쪽을 가리키며 그곳으로 가라고 안내한다. 알고 보니 이강 유람선 티켓을 파는 곳이다.

조금씩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한다.

"숙소에서 우산을 빌려올 것을 그랬나?"

평상시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이 귀찮아 웬만해서는 우산을 안 쓰고 다니는 편인데도 중국에서 매일 비를 맞다 보니 조금은 끔찍하게 느껴진다.

매표소는 형산공원 입구의 바로 측면에 있다.

우리 동네가 아니니 관광지도는 한눈에 안 들어 오고.

요금표는 왜 이리도 복잡한지.

"일단 형산은 55위안이네. 비싸네!"

매표소에 100위안을 넣어주니 안내원이 무어라 자꾸 말한다. 우리창에 다른 곳과 합쳐진 입장료들이 안내되어 있는 것을 보니 1+1을 살 것인지 묻는 것 같다.

"상산, 우쓰우!"

알아들었는지 잔돈과 입장권을 내어준다.

"그럼 가볼까? 나 기대 많이 하고 있다!"

코끼리 산이라 그런지 코끼리 조각상들만 여기저기 놓인 입구를 지나 오른 편에 위치한 운봉사에 들어간다.

일층은 커다란 옥바위를 가운데 둔 옥으로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생뚱맞지만 꽤 비싸다.

이층에는 누군지 모르는 흉상과 각종 화포나 창 같은 오래된 병기들이 전시되어 있고.

중국의 조각상들은 대체로 정교하고 멋지다.

"조각상은 이렇게 잘 만드는데 현대적 상징물들은 왜 그렇게도 기괴한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휙 돌아 나온 운봉사의 측면 바위산 절벽 가운데 부처님께서 자리 잡고 계시고.

소원을 비는 붉은 리본들이 보인다. 종처럼 보이는 것에 도교적인 민간신들이 그려져 있고 중앙에는 부처가 자리 잡고 있다.

"리본은 돈을 내고 다는가? 왠지 여기저기서 돈 냄새가."

형산을 오르는 경사진 계단을 오르니 이강을 중심으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계림의 풍경들에 마음이 조금씩 흔들린다.

첫 계단을 오르고 좌측으로 동굴 같은 곳이 있어 들어가 보니 이강의 반대편 전망이 나온다.

"설마, 이 돌산을 뚫어버린 거야?"

형산의 정산에서 계림을 한눈에 보기 위해 계단을 오른다. 가파르지만 높지 않은 산이라 쉽게 오를 수 있다.

항아리처럼 생긴 보현탑.

보현탑 앞에서 계림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비가 그친 하늘과 구름, 자연스러운 이강의 흐름과 그 모든 것들을 겹겹으로 둘러싸고 있는 뾰족한 봉우리의 산들이 아름답다.

형산의 정상에 오르기 전 기념품 가게에서 눈에 띈 초코파이.

"유사 중국 제품 먹어봤는데 널 따라올 수는 없는 것 같더라. 전처럼 양 좀 늘려봐."

병풍처럼 둘러진 기이한 산들 때문인지 도시가 참 예쁘다 생각이 든다. 멋진 풍경을 뒤로하고 내려가려니 자꾸만 한 번 더 눈 속에 담아고 싶어 뒤돌아 보게 된다.

조심스레 물기가 묻은 좁은 돌계단을 내려와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절벽 가운데가 뻥 뚫린 곳이 나온다.

크기는 크지 않지만 아치형 돔처럼 일부로 깎아놓은 듯 매끄러운 구멍이 나있다.

형산을 돌아 건너편 공원으로 건너가며 왜 코끼리산일까 궁금증이 들었는데 건너편 공원에서 바라보니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누가 봐도 코끼리네."

공원에는 나무 뗏목과 대나무 뗏목이 서너 척 놓여있고 가마우지로 기념촬영을 해주고 요금을 받고 있다.

"물고기를 잡아먹지도 못하고 빼앗기더니, 이제는 사진 모델로 투잡을 뛰는구나. 불쌍한 것."

공원은 깨끗하고 유독 키스를 하는 조각상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가볍게 산책하기에 아늑하고 좋은 공간으로 느껴진다.

형산공원을 빠져나와 건너편으로 이어진 일월쌍탑공원으로 걸어간다. 마치 열대우림 같은 울창한 가로수들이 인상적이다.

호숫가에 세워진 일월쌍탑. 계림 사진들을 보면 야경이 화려하고 매력적이다.

일월쌍탑을 구경하는 사이 컴퓨터 수리점으로부터 위챗 메시지가 온다.

"메인보드가 인식이 안되어 수리할 수 없습니다. 유감입니다."

메시지를 확인하고 다리에 힘이 빠지듯 실망스럽고 머릿속이 멍해진다.

"다른 건 차치하고 사진자료들, 여행 기록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중국인데, 할 수 없는 것도 너무 많다.

때마침 찬숙이 여행 전 소개해 준 중국에 사는 친구 태경씨가 위챗으로 연결된다. 짧은 통화로 정확한 고장 내역을 알고 싶다고 전하고 수리점에 전화를 해달라 부탁을 한다.

컴퓨터 수리점과 통화한 태경씨의 대답은 같은 제품의 모델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행을 위해 장만한 트윙글 요가1 노트북의 사망선고다. 여행을 위해서는 값싼 노트북 보다는 수리가 가능한 유명 브랜드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것에 마음을 쓰는 것만큼 쓸데없는 것도 없다. 일단은 즐겁게 구경이나 하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차선책을 찾아보기로 하고 정강왕성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간다.

우리의 로데오 거리처럼 음식점들과 쇼핑샵들이 이어지는 거리가 나온다. 조금씩 출출함이 찾아든 시간인데 식당들의 차림표를 보니 가격이 비싼 편이다.

사람들이 꽤 붐비는 가게를 둘러보니 드디어 그분들이 등장하신다.

한쪽에 살아있는 전갈들이 꿈틀거리고.

굼벵이, 번데기, 귀뚜라미, 전갈, 지네, 매미 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까지 꼬치에 곱게 꽂혀있다.

"기름에 운동화를 튀겨도 맛있다고는 하더라만."

좀 더 걸어가 열심히 맷돌에 갈고 있는 옥수수빵을 사 먹는다. 4개에 10위안.

약간 밋밋한 맛인데 자극적이지 않고 따듯하니 먹을수록 빠져든다.

정강왕성을 보며 걸어가니 어제 계림에 도착했을 때 오토바이 행렬들과 지나왔던 길이다. 계림 시내의 관광지들은 걸으며 구경하기에 적당한 것 같다.

시내 한가운데 불쑥 솟아오른 돌기둥 같은 돌산을 보고 따라가면 정강왕성이 나온다.

오래된 고목들 사이로 노란색 정강왕성의 정문이 나온다.

티켓을 사려고 매표소를 보니 단체관람과 개인관람의 매표소가 따로 있다. 개인 매표소에서 입장료의 가격을 보고 놀란다.

"100위안? 아니 뭐 대단한 것이 있길래 이렇게 비싸?"

몸값 도도한 입장료에 그냥 돌아갈까 하다 우뚝 솟아오른 돌산에서 바라본 계림의 모습이 궁금하다.

"까짓것 저렴한 숙소에서 한 삼일 묵으면 되지 뭐."

정강왕성의 입구에서 안내원은 번호표와 이어폰 그리고 담뱃갑만 한 정체 모를 기기를 건네준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기념품인가?"

일단 주니까 받아들고 가려니 뒤에서 나를 부른 뒤 중국말로 빠르게 떠들어 댄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그래?"

영어를 하는지 묻더니 난데없이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한다.

"I don't have a phone number."

그리고 한 번 더 전화번호를 요구하기에 없다고 말하니 조용히 내게 주었던 이어폰과 검은 기기를 뺏어가며 번호표를 목에 걸라는 제스처를 한다.

"별 싱거운 놈이 다 있네."

깔끔하게 정리된 왕성 내부를 앞서가던 관광객 무리를 따라 걸어간다.

첫 번째 보이는 건물 앞에서 사람들이 멈춰 서더니 빨간색 패딩을 입은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뭔가를 이해한 듯이 고개들을 끄덕인다.

사람들은 모두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다. 그때서야 정문에서 주었던 이어폰과 이상한 기기가 안내원의 해설을 듣기 위한 도구였음을 깨닫는다.

핸드폰 번호는 기기를 반납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나 보다.

"에쉬, 아무 번호나 적어줄 걸."

첫 번째 건물의 문이 열리고 짧은 안내원의 설명 후 벽면에 돌산에 대한 영상물이 3D로 재현된다.

영화의 인트로 장면처럼 잘 만들어진 영상이다. 대충 느낌상으로 BC 몇 년 전 돌산이 우뚝 솟아나고 이곳에 정강왕부가 들어섰다는 내용인듯싶다.

"뻥은 역시 대륙의 뻥이 실감나지."

통로에는 박물관처럼 왕부의 유물들과 역사 그리고 독수봉에 관련된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다음 방에서는 피라미드 모양의 유리화면에 입체영상으로 왕부의 건물들이 소개되고.

역대 정강왕부의 왕들의 세대표.

그리고 세 번째 방으로 이동한다. 특이한 것은 방마다 문이 닫혀있다가 안내원의 설명이 끝나면 챕터가 바뀌듯 문이 열리고 방으로 입장을 한다.

세 번째 방은 실내가 어둡고 여러 개의 원형 테이블 위로 복자 형상의 틀과 빗솔, 붉은 인주 같은 것이 묻어있는 주머니 그리고 볼펜 한 자루가 놓여있다.

"도장을 찍는 건가?"

의문의 사내가 옛 복장을 하고 나타나 벽면에 절을 하며 어떤 의식 같은 행위를 한다.

"기대되는데. 뭘 하려는 거지?"

절을 마친 의복의 남자는 돌아서서 종이를 복자의 틀 밑에 깔고 빗솔로 열심히 두드린다.

"하하하. 난 또 뭐라고."

순간 헛웃음이 터져 나와 크게 박장대소할뻔했다.

눈치껏 남들처럼 빗솔로 때린 후 인주를 묻힌 주머니로 툭툭툭. 그리고 마무리 서명.

복자를 종이에 찍은 후 기념으로 가져가려 하니 방에 있던 안내원들이 그냥 놓고 가라고 한다.

"뭐야. 어린이 체험학습도 아니고."

복자는 정강왕부의 문양인가 싶다.

첫 번째 건물의 관람이 끝나고 독수봉으로 이동한다.

관람 프로그램이 알차게 준비되어 있는 것이 비싼 입장료의 이유인가 보다.

곳곳에 새겨진 글귀들과 문양에 대해 긴 설명들이 이어지고.

조그만 입구 앞에 서서 오랫동안 뭔가를 설명한다.

"설마 독수봉을 터널로 오르는 거야?"

쓸데없는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어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문이 열리자 콩닥콩닥 마음에 이는 흥분감이 느껴진다.

"뭐야? 뭔데?"

예상대로 터널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입장하며 카메라와 핸드폰을 동시에 들고 터널 안쪽을 휙 둘러보는 순간, 그동안 나긋하고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가던 안내원이 사진을 찍지 말라 제재를 한다.

"드라마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정전이 되는 날벼락."

사람들이 동굴 내부에 노란 리본을 잔뜩 매달아 놓고 벽을 향해 연신 절을 하고 있다. 안내원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설명을 하는 사이 기념으로 한 컷만 몰래 찍고.

제멋대로인 중국인들도 안 하는데 이유가 있겠지 싶어 그냥 눈으로 구경을 한다.

동굴 내 첫 번째 공간에 모형의 제물이 올려져 있고 석상 하나가 놓여있다. 안내원의 설명이 끝나자 함께 관람을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두 손을 머리에 올리고 석상을 향해 절들을 해댄다.

그리고 동굴 천장 곳곳의 글귀들을 안내원이 레이저 포인터로 하나씩 가리키면 그곳을 향해서도 절들을 해댄다.

절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고 그들의 행동을 바라보는 것은 신기하고 흥미롭다.

"뭐야? 뭔데 절을 하는 거야?"  

동굴의 안쪽으로 더 이동하니 동굴의 벽면에 생년으로 보이는 숫자들이 적혀있고 정교한 인물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너무나 독특하고 인상적인 조각들이라 사진을 찍고 싶지만 겨우 참는다.

"너네 말 잘 안 듣잖아. 아무나 한 명이라도 찍어봐. 못 이긴 척 같이할 생각은 있는데."

짧은 설명이 끝나고 사람들이 노란 리본을 하나씩 바구니에서 꺼내들고 벽면의 그림들을 찾아간다.

"자기 생년을 찾아가 리본을 걸고 기도를 하라는 말이겠지?"

눈치 빠르게 리본을 들고 1974 숫자를 찾으니 약간 무섭게 생긴 대장군의 그림이 조각돼 있고 2034의 숫자가 함께 적혀있다.

리본을 걸고 다른 사람들처럼 손을 이마에 모으고 절을 하며 기도를 드린다. 기도를 마친 사람들의 표정이 굉장히 밝게 느껴진다.

그리고 동굴의 더 안쪽으로 이동하니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환한 조명과 함께 동굴 속 기념품 가게가 나오고, 동굴 벽에 새겨졌던 조강상들의 탁본들과 정강왕부의 문양들로 만든 족자나 액세사리로 만든 것들을 팔고 있다.

안내원의 신호가 떨어지자 준비되었다는 듯 여러 명의 판매원들이 일제히 관광객들에게 달려든다.

"잘나가다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이야!"

기념품들의 가격은 족자의 완성도에 비해 꽤 비싸 보인다. 1미터 남짓의 탁본 족자가 대충 3,000위안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안내원은 아주 오랫동안 다음 진행을 하지 않고 20여 분이 지나고서야 동굴 밖으로 이동한다.

독수봉을 오르는 계단이 나왔지만 그냥 지나쳐 다른 건물로 들어간다.

관복을 입은 사람들의 재현극을 잠깐 보여주더니 재현극이 끝나자 관광객들이 노란 종이를 받아 한 평 남짓 되는 방으로 들어간다.

"옛날 감옥인가?"

사람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으니 안내자들이 출구를 가리키며 뭐라 쌀쌀맞게 말한다.

"구박한다고 갈 사람이 아니다. 신경 꺼!"

작은방 안에서 사람들이 깔깔거리며 붓으로 뭔가를 적다. 젊은 여자가 노란 종이에 이름을 적고 자신을 지켜보던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며 핸드폰을 건넨다.

사진을 찍어주니 아리가또 하며 인사를 한다.

"are you Japanese?"

어디서 왔는지 묻기에 한국인이라 하니 함께 온 사람들에게 한궈렌이라며 알려준다.

작은방에서 나온 사람들과 옆 건물로 이동하니 김광규처럼 생긴 남자가 뭔가를 낭독하고 호명된 두 관광객에게 붉은 복장을 입혀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작은방들은 감옥이 아니고 시험을 치르던 공간이다. 며칠씩 좁은 공간에서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고 한다.

김광규에게 불려나와 의복을 입은 사람들은 시험에 합격하여 관직에 등용된 사람들인 것이다.

모두가 웃으며 정강왕성의 관람 에피소드들을 만들며 즐거워 한다.

다시 팬시 제품들이 놓인 기념품 샵으로 강제 이동되고.

건물을 벗어나니 사람들이 이어폰과 기기를 안내원에게 반납하고, 길게 이어진 외부의 기념품 가게들 사이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보니 복자의 노란 종이들 떡하고 걸려있다.

"이런 거야? 그래서 못 가져가게 한 거야?"

내 이름이 서명된 것을 가리키자 10위안을 달라고 하며 액자 같은 것들을 소개하며 가격들을 알려준다.

"액자는 됐고요."

독수봉에서 바라보는 계림의 풍경이 궁금하여 독수봉을 오르는 계단으로 걸어간다.

가파르게 꺾여 올라가는 돌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비가 그치며 더 선명하게 주변의 산들과 도시의 모습이 한눈에 펼쳐진다.

독수봉을 내려오는 계단은 빗물에 젖어있어 아슬아슬했다. 한 계단씩 난간의 사슬을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와야 했다.

독수봉을 내려와 숙소로 돌아갈 버스 노선을 검색하고 정문의 반대편에 있는 출구로 나온다.

동서남북 모두에 출입구가 있는 것 같다.

버스비를 내기 위해 3위안 콜라를 사서 잔돈을 마련하고 잠시 정류장에서 기다리니 100번 이층 버스가 도착한다.

"오호, 이층 버스는 처음이야."

맨 앞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많아 뒤쪽에 있는 좌석에 앉는다. 이층 버스는 처음이라 안에서 내려다 보니 사람들이 작게 보일 정도로 시야가 높은 것 같다.

2위안, 350원 정도니 대중교통이 참 저렴하다.

숙소 근처 정류장에 내려 컴퓨터 수리점으로 걸어간다. 소학교 학생들이 하교를 하며 반 전체가 줄을 서 모여있더니 뭔가 구호를 외치고 일제히 교문을 나선다.

컴퓨터 수리점에 들러 접수증을 주고 노트북을 되돌려 받는다.

"중국의 다른 곳에서도 고칠 수 없을까요?"

손사래를 치며 불가능할 것이라고 대답을 한다.

망가진 노트북을 들고 나오며 신제품을 파는 레노바 매장의 전시 제품을 보고 있으니 어린 여직원이 말을 건넨다. 노트북의 가격을 물어보니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이다.

"근데 윈도우 한글로 설치 가능해?"

말이 안 통하는 한국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노트북 판매에 대한 기대감으로 정성스럽게 설명을 하던 여자는 당황스러워한다.

"나는 한국어 버전을 사용해야 해."

주변의 직원들에게 질문을 하며 한글 버전을 설치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하며 웃는 여자에게 한글 버전을 보여달라고 하니 얼굴이 빨개지며 웃는다.

"에이, 안 되는구나."

30분 넘게 웃고 떠들던 상냥한 여자도 한글 버전의 난관 앞에서 빨개진 얼굴로 웃으며 포기한다. 정성스럽고 친절하게 응대를 해준 여자에게 감사를 표하고 전자상가를 나온다.

중국의 어린 친구들, 특히 여성들은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은지 모두들 수줍어하며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 같다.

그런데 중국의 노트북 자판에는 영자만 적혀있다.

"영자로 어떻게 중국어를 쓰지?"

쇼핑몰에 가서 저녁을 먹을까 생각하다 숙소 근처의 음식점에 들어간다. 여자 주인은 어리둥절 조금 당황한 기색이고 주방에 들어가 남편을 불러낸다.

글자로 된 메뉴판을 들고 난감해 하고 있으니 어린 여자애가 호기심을 갖고 다가와 말을 건넨다.

탄링팡(谭玲芳), 15살 여자아이는 어디서 배웠는지 '네, 아니요, 맞아요' 등의 한국어를 한다.

"이 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뭐야?"

탄링팡은 주저 없이 50위안짜리 메뉴를 가리킨다.

"효녀네. 장사를 할 줄 알아!"

세 명의 어린 동생들의 공부를 도와주던 탄링팡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중국어의 단어 입력 방법을 알아보려고 그녀를 불러 물어본다.

"탄링팡,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보내봐."

생뚱맞은 요구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그녀에게 글자를 써보라고 재촉한다.

"니 하오 마, 니 하오 마를 써봐."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이폰의 자판을 열더니 영문으로 ni hao ma를 치니 중국어로 자동 변환 된다.

"오호, 이렇게 쓰는구나. 영문으로 치면 그 발음의 한자들이 뜨고 그중에 맞는 글자를 선택하는구나."

부수의 조합과 많은 획의 한자를 어떻게 입력하는지, 영자 자판만 있는 노트북에 어떻게 한자를 쓰는지 궁금했었는데 궁금증이 해결된다. 간간이 한자를 핸드폰 화면에 필기하여 메시지를 작성하는 것은 보았지만 자판으로 입력하는 것은 처음 본다.

탄링팡과 대화하는 사이 음식이 나온다. 진한 중국식 향신료에 머리부터 발까지 알차게 들어간 오리고기다.

강한맛의 소스와 총각무를 썰어 넣은 것 같은 크기의 생강의 맛이 조금 먹기에 불편하지만 그동안 중국음식에 적응이 된 것인지 그럭저럭 밥과 함께 잘 먹는다.

아마도 이전 같았으면 한 젓가락하고 그만 먹었을 것 같다.

"오리잖아, 뺏어서라도 먹으라던 오리!"

먹을게 전혀 없는 아니면 먹는 법을 알 수 없는 물갈퀴 발만을 남기고, 밥 두 접시를 해치운다.

든든해진 배를 튕기며 숙소에 돌아와 바람이 빠진 뒷바퀴의 튜브와 여분의 튜브를 돼지표 펑크패치로 붙여 정비한다.

23C 얇은 튜브에 무거운 무게까지 더해지니 붙여두었던 곳의 고무패치가 제대로 붙지 않는 모양이다.

노트북 없이 여행 자료를 어떻게 정리할까 고민하다, 급한 대로 티스토리 앱을 사용해 사진과 텍스트를 정리하기로 한다.

"번거롭고 시간이 좀 들겠지만 이렇게라도 정리를 해놔야지."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28일 / 비 ・ 10도
싱안현-링촨현-계림시
계속 이어지는 흐린 날씨, 비가 다시 내릴 것 같다. 얼마 남지않은 계림으로 향한다. "드디어 계림이다."

이동거리
68Km
누적거리
4,615Km
이동시간
4시간 44분
누적시간
311시간

G322
G322
47Km / 2시간 23분
21Km / 2시간 21분
싱안현
링촨현
계림시
 
 
1,866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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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허름한 빈관에서의 하룻밤, 피곤이 풀리지 않고 남아있다.

어젯밤부터 부팅이 되질 않는 노트북은 메인보드나 파워가 고장이 난 것인지 수상하다. 멍하게 잠이 덜 깬 정신으로 재부팅을 해보지만 여전히 먹통이다.

계림에 도착하면 데이비스가 알려준 갑천하전뇌성(甲天下电脑城)에 들러 컴퓨터 수리부터 해야겠다.

"없는 것이 없는 중국인데 고칠 수 있겠지."

10시가 되기 전, 조금 늦게 출발을 한다. 다시 흐리고 어두워진 하늘이다.

작은 시내를 벗어나 계림에 가까워질수록 주변 산들의 모양새가 심상치 않다.

한 시간쯤 지나 수상하던 바람은 툭툭 빗방울을 떨어뜨린다. 도로변 한적한 식당으로 아침도 해결할 겸 들어간다.

메뉴가 한 가지뿐이니 주문도 편하다.

"이거 야요!"

주문과 함께 이내 음식을 내어주며 앞쪽에 놓인 양념들을 넣으라고 알려준다.

"뭘 알아야 넣지."

이것저것 조금씩 넣고 뚝딱 한 그릇을 비워낸다. 시원한 국물과 간간이 씹히는 땅콩의 고소함이 좋다.

잘 먹었다 인사를 하고 가격을 물으니 6위안, 저렴하다는 말도 아깝고 착해도 너무 착한 가격이다.

우의를 챙겨 입고 천천히 빗속으로 들어간다. 어제 무리를 해서 많은 거리를 이동해 놓아 조금은 편안하다 싶다.

중국의 기름값은 휘발유가 대충 리터당 5위안 정도 하나보다.

계림에 인접한 링촨현부터 시작된 시내길은 계림시까지 계속 이어진다.

울창한 계화수에 작은 홍등을 달아놓으니 길이 너무나 예쁘다. 가던 길의 걸음을 바로 멈춰 세운다.

링촨현을 벗어날 때쯤 길가의 자전거 샵을 발견하고 유턴을 해 가게 앞으로 다가간다.

"자전거 가게를 찾기가 정말 힘드네."

대부분 아동용 자전거들을 파는 것 같은 가게에 풀리를 가리키며 부품이 있는지 물어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볍게 물어본 것인데 어두운 가게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부품이 없다는 듯 큰소리를 내며 정색을 한다.

"없으면 빙긋 웃으며 없다고 하면 될 것을."

중국 사람들은 약간 이상한 성향이 있는데, 마치 어르신들이나 식당의 아주머니들처럼 없거나 모르는 것에 대해 역정을 내듯 정색을 한다.

마주하기 싶지 않은 경계심의 눈빛들은 언제 봐도 너무나 싫다.

"자전거 가게에서 생선구이를 찾은 것도 아닌데."

계림시에 들어서며 높게 치솟은 건물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건물들이 이어지고.

도심으로 들어갈수록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사람들의 수도 그만큼씩 늘어난다.


계림 초입의 유산 공원에서 비를 피하며 갑천하전뇌성의 위치를 다시 확인하며 전자상가 주변의 호스텔을 확인한다.

"어렵게 계림에 왔는데 컴퓨터 수리가 우선이라니."

전자상가가 있는 곳까지 경로를 정하고 리강 주변의 풍경을 구경하기로 한다.

성벽을 따라가며 리강의 산책로를 따라간다. 유명 관광지의 명성처럼 계림의 풍경들은 남다르다.

푸보산 공원(伏波山公园)의 오묘한 모습이 나타나고 조금 욕심을 내어 산책로를 따라 리강의 풍경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산책로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더니.

"망했다."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산책로에서 험난한 계단을 마주한다. 어쩔 수 없이 무거운 자전거를 들고 한 칸씩 오르고 있으니 산책을 하던 아저씨가 자전거를 들어주며 도와준다.

"씨에 씨에."

묘한 동굴을 지나.

다행히 밖으로 빠져나온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기암괴석들이 우뚝 우뚝 솟아있는 계림이다.

중국 여행을 생각하며 왜 계림에 오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계림의 풍경을 보니 이유 같은 것은 몰라도 될 것 같다.

더욱 풍성해진 것 같은 계화수의 가로수 길을 지나고.

리강을 건너는 다리에 도착한다.

다리 밑에서 비를 피하며 전자상가 주변의 호스텔을 예약한다.

"그나저나 다리를 어떻게 건너야 하는 거야?"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대로를 따라 멀리 있는 신호등에서 길을 건넌 후 돌아와야 한다.

정교한 목조건물의 회전 교차로를 돌아.

"고성이야? 호텔이야?"

메뚜기 떼처럼 뭔가 징그러운 면도 있는 오토바이의 행렬이지만 커다란 대로를 유턴하기 위해 우회전을 하는 오토바이 행렬의 흐름을 따라 이동한다. 직진 신호에 좌회전을 함께하는 위험한 중국에서 대로에서 오토바이 행렬을 따라 좌회전을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아무리 양보를 안 하는 중국의 운전자들도 오토바이 행렬이 시작되면 차량을 멈출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도심의 오토바이 행렬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은 한 그들만의 규칙이 있는 것처럼 흐름이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대로를 따라 리강을 건너는 다리로 돌아오는 동안 오토바이 행렬의 흐림에 뒤를 따라가며 수월하게 도착하고, 계림시를 둘러싸고 있는 뾰족하게 솟은 산들의 풍경을 바라보며 다리를 건넌다.

"저기는 유명한 공원인가?"

관광객들이 줄을 서 대기하고 있는 공원의 매표소를 지나치며 내일 들러보기로 한다.

작은 골목에 있는 깨끗한 주점에 도착한다. 젊은 여직원들이 근무를 하는 주점이라 여권과 바우처만으로 쉽게 체크인이 끝난다.

모던한 인테리어로 잘 꾸며진 주점이지만 자전거를 방에 두어도 괜찮은지 물으니 흔쾌하게 허락을 한다.

샤워를 하며 빨래를 하고, 자전거와 패니에 묻은 흙들을 씻어낸다. 샤워를 하는 것보다 빨래를 하는 시간이 더 소요되고, 자전거와 패니어를 씻어내는 시간은 더 오래 걸린다. 그리고 흙으로 엉망이 된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시간은 더더욱 오래 걸린다.

신발과 방풍 자켓만을 세탁하여 난방기 주변에 걸어두고 고장 난 컴퓨터를 들고 밖으로 나온다.

숙소에서 5분 정도 떨어진 쇼핑몰에 도착했지만 거대한 건물의 외관을 보고 막막한 생각이 먼저 앞선다.

각종 음식점들과 다양한 가게들이 들어서 있는 쇼핑몰은 넓은 광장처럼 느껴진다.

정신줄을 놓아버리게 만드는 음식점들을 살펴보고.

KFC로 들어가 헤매고 넓은 쇼핑몰에서 길 읽은 아이처럼 방황을 한다. 계속해서 지도앱을 확인해도 현재 위치는 이미 전자상가 위를 거닐고 있는데 도무지 전자상가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대체 어디냐고?"

방황의 끝에 쇼핑몰 밖으로 나오니 전자상가로 올라가는 외부의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커다란 쇼핑몰에 함께 있는 전자상가인데 출입구의 구조가 이상하다. 정말 알 수가 없는 중국 건물의 구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자상가가 있는 층에서 내리니 분위기는 우리의 전자상가와 비슷하다. 온갖 세상의 모든 전자기기들의 판매와 수리 그리고 바가지를 씌울 것 같은 친절한 미소들이 난무한다.

미로처럼 들어서 있는 각종 전자 매장과 수리점들 사이에서 데이비스가 알려준 컴퓨터 수리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에게 컴퓨터 수리점의 이름을 보여주며 위치를 물어 도움을 청한다.

전자상가에서 일을 하는 젊은 여자의 도움으로 찾고 있던 컴퓨터 수리점까지 안내를 받고, 노트북의 수리 접수를 한다.

"노트북 부팅이 안된다."

젊은 담당 직원은 차분하게 접수를 하고 노트북의 전원 어댑터가 없는지 묻는다. 전원코드의 굵기가 조금 얇은 중국의 전기 콘센트지만 전자상가에서 기본적인 전원 어댑터가 없을지는 생각을 못 했다.

숙소로 돌아와 노트북의 전원 어댑터를 들고 수리점으로 돌아가니 수리점에 있는 어댑터로 이미 점검을 했는지 접수증을 건네주며 내일 오후에 다시 오라고 안내한다.

"피니쉬? 수리가 가능할 것 같아?"

"글쎄, 분해를 해서 살펴봐야 알 것 같다. 내일 전화를 줄게."

전자상가의 컴퓨터 매장에서 노트북들을 구경한다. 최악의 상황이면 새 노트북을 구매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담장 여직원과 눈이 마주치고 발걸음이 붙잡힌다.

노트북의 가격을 물어보니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이다.

"근데 윈도우 한글로 설치 가능해?"

말이 안 통하는 한국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노트북 판매에 대한 기대감으로 정성스럽게 설명을 하던 여자는 당황스러워한다.

"나는 한국어 버전을 사용해야 해."

주변의 직원들에게 질문을 하며 한글 버전을 설치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하며 웃는 여자에게 한글 버전을 보여달라고 하니 얼굴이 빨개지며 웃는다.

"에이, 안 되는구나."

30분 넘게 웃고 떠들던 상냥한 여자도 한글 버전의 난관 앞에서 끝내 웃으며 포기한다. 정성스럽고 친절하게 응대를 해준 여자에게 감사를 표하고 전자상가를 나온다.

"일단 중국 노트북 가격을 알았으니 됐다."

쇼핑몰을 방황하며 잘못 들어갔던 KFC에서 햄버거를 사들고.

많은 음식점들이 들어선 코너를 지나다 재미있는 음식점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춘다.

"13위안 자조....찬? 자조찬이 뭐야?"

한자를 검색해보니 쯔주찬(自助餐)이 뷔페다.

"빙고! 18가지 반찬 13위안 뷔페!

생각할 것도 없이 식당으로 들어간다.

여행을 하며 좋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훨씬 이롭고 좋다.

"이 정도면 천국이지!"

일단 입맛을 확인하는 수줍은 맛보기로 한 판을 비우고.

음식들의 재료와 맛이 확인되면.

입맛에 맞는 것들을 푸짐하게 담아 한 판을 더 비우고.

"한 판 더 할까?"

든든하게 배가 채워지면 잃어버렸던 이성을 수습하고 맛있는 디저트 하나를 사서 끝을 낸다.

숙소로 돌아와 물에 담가놓았던 옷들을 세탁한다. 광시성의 흙먼지 가득했던 회색빛의 마을들을 지나오며 더러워진 옷들에서는 끝도 없이 누런 흙탕물이 빠져나온다.

8시가 넘어가고 출출함이 찾아든다. KFC에서 사 온 햄버거를 해치웠지만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주변에 한국 식품점이 없나?"

믹스커피가 먹고 싶은 마음에 쓸데없이 검색을 하고, 고장 난 노트북으로 널널해진 저녁 시간의 공백은 하릴없이 밖으로 나가게 만든다.

컴컴하고 어두운 저녁거리를 걸어 한국 식품을 파는 슈퍼마켓에 도착한다.

"커피 딱! 하지만 100개 짜리.."

"믹스 커피 작은 거 없어요?"

한국어를 잘 하는 중국인처럼 느껴지는 여자는 100개 수량의 큰 박스만 있다며 믹스커피 한 잔을 타서 준다.

빈 손이 심심하여 돼지바 하나를 집어 들고, 쓸데없이 김치가 생각나 총각김치와 소주 한 병을 사서 돌아온다.

겨우 10여 분을 걷는 동안 흐물흐물 녹아버린 돼지바를 먹고.

총각김치에 소주를 마신다. 피곤에 쌓인 노곤함을 풀어볼 생각이었는데 소주도, 김치도 한국에서 먹던 맛이 안 난다.

"비 오는 날에 이 정도면 고급진데. 이상하게 맛이 없네!"

"내가 정말 이 조합의 맛을 좋아했었나?"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도 어쩌면 게으른 자기 착각의 일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입맛이 변했나 보지 뭐."

내일은 계림의 풍경을 산책하며 둘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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