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2일 / 비 ・ 11도

융신현-차링현

검은 비구름이 다시 내려앉는다. 계림을 향하는 길, 오늘 가야할 차링현까지는 큰 도시가 없이 작은 촌들이 이어진다. 빗속에 90km 이상을 가야하는 날. "비오는 날이 하루, 이틀도 아니구. 가 보자!"  

이동거리

93Km

누적거리

4,172Km

이동시간

6시간 52분

누적시간

279시간


S320소도
S320소도
56Km / 3시간 45분
37Km / 3시간 17분
융신현
가오롱전
차링현
 
 
1,423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 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0-8531-0700/+86-186-1173-0089

 

건물의 안쪽에 위치한 숙소의 방이라 밤새 비가 내리는 것을 느끼지 못하였다. 패니어를 정리하여 1층으로 내려가니 비가 내리는 듯 거리가 뿌옇다.

 

"어떻게 1,000Km를 넘게 내려왔는데 똑같은 날씨들의 연속일까."

 

주섬주섬 레인 팬츠와 땡땡이 우의를 꺼내어 챙겨 입고 차링현으로 출발한다.

 

 

9시 30분 조금 늦은 출발인데 융신현의 아침은 혼잡하고, 융신현으로 이어지는 S320 소도로 역시 시내로 들어가기 위한 차량들과 오토바이들이 길게 정체되어 있다.

 

우리의 바쁜 아침 출근 때가 7~8시라면 이곳은 8~9시 정도인가 보다.

 

 

20여 분 만에 융신현의 시내를 완전히 벗어난다. 검은 구름들이 하늘을 덮고 있지만 아직 비는 내리지는 않고 밤새 내린 비로 인해 젖어있는 노면을 달리느라 자전거와 레인 팬츠는 금세 엉망이 되어버린다.

 

 

 

중국 학교의 모습이 궁금했는데, 지나가는 길에 작은 촌의 소학교가 보여 잠시 쉬어간다. 방학 기간인지 중국의 학교들은 모두 문이 닫혀있다. 시골의 작은 촌마을 학교라 그런지 규모도 작고 심플하다. 특이한 것이 있다면 운동장 측면에 탁구대가 4대 정도 놓여있다.

 

"국기가 탁구라더니 역시 다르구나."

 

 

 

11시가 조금 넘어 길가의 작은 슈퍼에 들러 빵과 콜라를 10위안에 사든다. 중국의 빵들은 맛이 좋다. 여러 가지를 골라 무게를 재어 가격을 정하는 빵들은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빵을 먹는 동안 서너 살쯤의 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여자와 인사를 나누고 슈퍼에 들르던 다른 남자도 태극기를 보더니 한국인이냐며 말을 건다. 엄지를 추켜세우는 젊은 남자와 짧은 대화를 하는 도중 아이를 안은 여자가 영어를 할 줄 아는지 묻는다.

 

좋은 영어 발음을 갖고 있는 여자에게 놀란다.

 

"이건 춘장 발음이 아닌데!"

 

명함을 건네주고 여자와 영어로 대화를 나누며 그동안 궁금했던 길가에 심어져 있는 가로수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I don't know how to call it in English. In China, Guihuashu!"

 

중국의 가로수로 심어져 은은한 향이 좋았던, 풍성하게 우거져 자전거 길을 너무나 예쁘게 만들었던 나무의 이름은 계수화(桂花树)다.

 

 

더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대화를 하는 사이 빗줄기가 시작되어 서둘러 떠나야 한다. 비가 오지 않아 슈퍼에서 벗어놓은 땡땡이 우의를 다시 입고, 고무장갑도 꺼내어 낀다.

 

이틀 전 사용하고 난방기 밑에 말려두었지만 고무장갑의 안쪽이 축축하게 느껴진다.

 

"뒤집어서 말려야 했는데. 괜찮아 조금 있으면 땀이 찰 테니까."

 

 

몇 십초 만에 신발의 안쪽은 저벅저벅한 느낌이 들 정도로 완전히 젖어버린다.

 

 

길은 오르막과 평지가 이어지며 산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비안개가 산을 타고 넘어가며 잠시 소강상태가 이어진다.

 

 

S320 소도로에는 덤프트럭 같은 대형 차량들의 통행이 많다. 잘 정비된 성도에서는 대형 화물 차량을 전혀 볼 수 없어 의아했는데 중국의 화물 차량들은 소도로를 이용하여 운행하는 것인가 싶다.

 

오르막과 평지 그리고 다시 오르막과 짧은 내리막이 계속되는 동안 산들의 봉우리가 낮아져 가는 것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윽고 산장들이 길가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뭔지 모르겠지만 자꾸만 올라가는 기분이다."

 

 

산장들을 지나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동안 천둥과 함께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마침 버스 정류장에 의자가 있어 잠시 비를 피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굵고 거칠어지는 빗줄기다.

 

 

눈앞을 가리는 빗줄기 속에 도로는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어 버린다. 도로의 경사면을 타고 흘러넘치듯 내려오는 흙탕물을 가로지르며 여전히 오르막과 평지가 이어지는 길을 달려간다.

 

화물 차량이 대형 분무기를 뿌리듯 물방울들을 흩날리며 자전거를 지나치고, 속도를 줄이지 않는 매너 없는 중국의 운전자들은 물웅덩이를 지나치며 흙탕물을 시원하게 선사한다.

 

"힘드냐고요? 아주 즐겁습니다!"

 

하굣길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온몸을 적시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흙탕물 속에서 장난을 치는 아이처럼 달리는 동안 시원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언덕길을 올라 작은 마을에 이르니 석상이 멋들어지게 서있다. 이동양, 물론 모르는 사람이다.

 

"중국 명대(明代)의 시인. 비현실적인 창화응수시(唱和應酬詩)가 명의 영락(永樂)·성화(成化)의 시단을 침체하게 했는데 홀로 성당(盛唐)의 시풍을 추구하는 당시(唐詩) 부흥운동의 선구적 존재가 되었다. 주요 저서에는 《회록당집(悔麓堂集)》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동양 [李東陽] (두산백과)"

 

 

"아무리 비가 와도 할 것은 하고."

 

 

 

검색을 해보니 동상과 초상화가 좀 많이 다르다.

 

 

 

이동양의 동상이 있던 마을을 돌아 내려오니 장대비는 이내 멈추고 하늘이 맑아진다. 멀리 구름들 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낸 빛의 실루엣, 태양을 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하루 종일 지나왔던 길들이 모두 이렇다. 평지와 오르막 그리고 평지 같은 오르막 짧은 내리막이 반복된다.

 

 

 

 

"이것을 배추라고 해야 하는지 배추 나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리는 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무작정 길을 따라오다 보니 언제부터인지 하늘이 가깝게 느껴지고 내 위치보다 높은 봉우리가 사라져간다.

 

 

 

"정상에 다 왔을까? 저 코너를 돌면 시원한 내리막의 보상이 주어지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내리막과 평지 그리고 오르막이 몇 십 미터 간격을 두고 계속 이어진다. 뭔지 모르겠지만 느낌상 내려가는 것 같은데 롤러코스터나 모굴을 타는 듯 꿀렁꿀렁 넘어가는 길들이 너무나 힘들다.

 

"S320 소도로, 이상하게 그리고 기분 나쁘게 길들여지는 기분이야."

 

 

빗물을 모아둔 둔 곳에 이런 표지판이 많이 보인다. 생활용수나 농업용수 이외에 그 물을 팔기도 하나 보다.

 

 

오르막과 평지 그리고 내리막과 오르막이 반복되는 이상한 길을 60Km나 달리고 목적지인 차링현을 겨우 5Km 남기고 평지가 나타난다. 하루 종일 첨벙대던 신발 속 발가락 끝이 찌릿하게 아려온다.

 

차링시로 들어가기 전 길가에 멋들어지게 세워진 석상이 눈길을 끈다. 2시간여를 쉬지 않고 달려왔던 터라 잠시 쉬고 싶다.

 

 

"谭思聪,革命烈士,湖南茶陵人。1932年1月3日在江西永新钱市街猪嬖岭战斗中牺牲。1926年秋加入中国共产党。井冈山斗争时期,任茶陵县委书记、特委委员、特委常委。后任赣西南特委委员,湘东独立师政委等。

 

담사총, 혁명열사, 호남다릉인.1932년 1월 3일 강서영 신전시거리 저승령 전투에서 전사했다. 1926년 가을에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다.이오카산 투쟁 시기에는 다링현 당서기, 특위 위원, 특위 상무위원을 지냈다.이후 赣서남특위 위원, 샹둥독립사정위 등을 지냈다. [바이두 사전]"

 

 

"누군지는 모르지만 26살에 생을 마쳤으니 아까운 삶이네."

 

담사총의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한 중국 남자가 주변을 서성이더니 내게 다가와서 한국인이냐며 묻는다. 그렇다고 답변을 하고 인사를 나눈 후 중국어를 못 알아들으니 영어로 대화를 한다.

 

중국 베이징에서 일을 했다는 Davis다. 짧은 대화를 하고 있으니 몸에 한기가 밀려온다.

 

 

데이비스와 위챗 아이디를 교환하고 메시지를 하겠다며 말하고 헤어진다. 오늘 중국에서 영어로 소통이 되는 두 명을 만나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볼 수 있어서 좋다.

 

 

4Km 정도를 남기고 차링현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만난다.

 

 

여느 중국의 도시와 같이 복잡하고 자동차의 크락션 소리가 끊이지 않는 차링시다. 트립닷컴과 고덕지도를 이용해 저렴한 숙소를 고르고 가까이에 있는 숙소로 이동했지만 고덕지도는 막다른 골목으로 안내한 후 자동으로 안내를 종료해 버린다.

 

"분명, 이 근처가 맞는데. 어디에 있는 거야?"

 

20여 분을 그렇게 근처에 있는 빈관을 찾기 위해 헤매다 허름한 골목 가운데 위치한 빈관을 겨우 찾는다.

 

빈관에 들어가니 어두운 내부에 70대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프런트에 앉아있어 몸짓으로 잠을 자겠다는 표시를 하니 알아듣는 눈치다. 가격을 물으니 80위안이고 100위안을 주자 20위안은 내일 가져가라고 한다.

 

"야진?"

 

고개를 끄덕이며 야진하며 따라 한다. 체크인을 한 후 자전거를 가리키며 할머니에게 자전거를 씻는 시늉을 하며 온몸으로 말한다.

 

"할매, 쑤이, 쑤이! 치~~~~~~~!"

 

뭔가를 알아들은 할머니는 밖에 있는 수도가를 알려주며 빗자루를 건네준다.

 

"할매, 하오! 하우!"

 

 

할머니에게 수도꼭지의 열쇠를 달라 하니 열쇠와 바가지를 준다. 패니어와 자전거에 묻은 흙들을 씻어내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좁은 계단을 올라 방으로 들어간다.

 

 

가끔씩 중국의 외부에 있는 수도에는 꼭지가 없고 이렇게 열쇠처럼 생긴 꼭지를 가지고 돌려서 쓴다.

 

 

샤워를 하는 동안 젊은 여자가 방문을 두드리고 주숙등록을 위해 신분증을 달라 요청한다. 비를 맞아 얼어버린 몸을 따듯한 온수로 녹인다. 차가워진 피부를 따갑게 파고들던 샤워기의 물줄기가 천천히 따듯함으로 온몸을 적신다.

 

"아, 좋다!"

 

좌변기가 아닌 화장실의 변기 속으로 자연스럽게 흙물들이 쓸려 내려간다.

 

"이거 괜찮은 시스템이네. 하수구가 막힐 일도 없고."

 

 

주숙등록을 하려던 젊은 여자는 컴퓨터에 익숙지 않은지 등록을 하지 못한다. 밥을 먹어야 하는지 묻더니 무엇을 먹고 싶냐며 묻는다.

 

"肉! 고기!"

 

매운맛이 괜찮냐고 묻고 자기가 식당까지 안내를 하고 밥을 사겠다고 한다.

 

"그래, 일단 가! 취! 취!"

 

역시나 식당에 가는 동안 여자는 내 쪼리에 관심을 두며 춥지 않냐고 물어본다. 나를 본 중국인들은 한결같이 쪼리에 관심이 많다.

 

큰 사거리를 건너 사람들이 북적이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전통적인 식당은 아니고 젊은 사람들이 많이 앉아 누들면과 국수 같은 것을 먹는 식당이고, 식당 안의 바닥에는 냅킨과 포장 비닐들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버려져 있다.

 

"작은 휴지통 같은 걸 놓아두면 될 텐데. 중국은 참 특이해."

 

 

매콤하게 고기를 볶은 밥이 나온다. 20위안짜리라는데 맛이 전혀 느끼하지 않고 깔끔하고 좋다.

 

밥을 먹는 동안 여자의 이름(리우 씬웬, 刘新文)를 묻고 나이를 물으니 동갑내기다.

 

"워먼 쓰 펑이요!"

 

번역기로 여러 가지 짧은 대화를 하고, 노란 배추꽃을 보여주며 무슨 꽃이냐고 물어보니 유채꽃이라고 한다. 입들이 크고 꽃망울이 다른데 이상하다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닌데. 유채꽃!"

 

식사를 마치니 정말로 리우 씬웬이 계산을 해버린다. 식사비를 주려는 제스처를 하자 숙소에 가서 자기에게 달라고 한다.

 

"뭐냐?"

 

숙소에 돌아오니 따듯한 차를 마시며 프런트 앞 작은 테이블에 리우 씬웬의 가족들이 모여있다.

 

"기념으로 한국 돈을 줘!"

 

밥값 대신 기념으로 한국 돈을 달라는 리우 씬웬. 만원, 오천원, 천원을 꺼내놓고 고르라고 하니 자기는 돈의 가치를 몰라서 고르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럼, 마음에 드는 남자를 골라!"

 

모르겠다며 손사래를 치는 그녀에게 만원을 건네준다.

 

"이 사람이 한국말을 만든 사람이야, 세종대왕!"


리우 씬웬 가족들의 많은 질문을 받는 사이 조그만 꼬마가 들어온다. 자기의 아들이라며 9살짜리 리우 위지에(刘奕杰)를 소개한다.


리우 위지에의 많은 질문을 받고 답느라 2시간이 금방 지나가버린다. 9시가 넘어서야 방으로 돌아왔지만 3시간 넘게 난방기가 돌아간 방안은 여전히 냉랭하다.


침낭을 꺼내어 몸을 집어넣고 하루를 정리한다. 콧물로 시작된 감기 기운이 조금 더 심해진 것 같다.


"정말이지 내일만은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21일 / 구름 ・ 10도

지수이현-지안시-지안현-융신현

정말 오랜만에 비가 내리지 않는 아침이다. 새벽에 잠들어 조금 피곤한 상태이지만 하늘을 보니 달리고 싶은 마음이 급하다. 오늘은 제법 먼 거리를 달려야 한다. 지안시를 거쳐 용신현까지 120Km 정도를 라이딩 할 것이다. "비 내리기 전에 빨리 가자!"

이동거리

118Km

누적거리

4,079Km

이동시간

7시간 19분

누적시간

272시간


G105국도
지안현
24Km / 1시간 26분
94Km / 5시간 53분
지수이현
지안시
융신현
 
 
1,330Km

・국가정보
중국, 베이징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현지안전정보
・언어/통화
중국어, 위안(1위안=170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G, 22,800원
・전력전압
▪2구11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 30~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86-10-8531-0700/+86-186-1173-0089

 

새벽에 잠이 들어 8시의 알람에 항복하듯 깨어난다. 콧물을 훌쩍이는 피곤함이 개운하지 않다. 어제 저녁부터 잠잠했던 하늘은 오랜만에 비가 내리지 않는 아침을 보여준다.


날씨를 확인한 후 서둘러 떠나고 싶은 조바심이 생겨난다.


"비가 내리기 전에 떠나야 해!"


간단하게 슈퍼에서 사놓았던 빵 3개로 아침을 대신하고 패니어들을 정리한 후 자전거에 장착하니 뒤쪽 바퀴가 이상하다. 자세히 보니 펑크가 났는지 주저앉아 있다.


"아, 젠장! 이 변덕스러운 날씨에 한시가 급한데."

 

 

 

패니어를 다시 떼어내고 펑크수리를 한다. 유리조각부터 작고 뾰족한 잔돌들까지 타이어 전체에 오목조목 알차게도 박혀있다.


 

펑크패치를 붙이기 위해 꺼내 든 튜브식 본드, 인천 공항에서 빼앗긴 오공 본드 외 튜브식 본드가 2개 중 하나는 모두 사용하고 이제 하나만이 남아있다.


"작은 것 하나로는 부족한데, 빨리 본드를 사야겠네."


 

펑크 정비를 마치고 한숨 쉬고 나니 10시가 다 되어간다. 패니어들을 자전거에 장착하고 방을 나선다.


"아, 여기 2층이었지."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사가 조금 심한 내부 계단을 끌고 내려가야 한다. 아찔하다.


다행히 친절한 주인아저씨가 계단을 내려가는 자전거의 뒷부분을 잡아주어 간신히 내려온다.


 

오늘 가야 할 목적지는 용신현으로 120Km 정도의 거리다. 가까운 지안시를 벗어나면 용신현까지는 큰 도시나 현, 진의 규모가 되는 마을이 없다.


아직 비는 내리지 않지만 하늘은 뿌연 회색빛의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어 언제 다시 비가 쏟아질지 알 수가 없다.


최대한 빨리 용신현 가까이 가고 싶다.


 

 

 

포양호(鄱阳湖)에서 시작되는 장강(赣江)을 넘는 긴 지안대교를 지안시로 진입한다. 아침이라 그런지 지안대교를 넘는 오토바이 행렬이 계속된다.


 

 

 

복잡한 지안시의 중심을 벗어나 은행들의 고층 빌딩이 연이어지는 한적하고 넓은 자전거 도로를 독차지하며 신나게 달린다.


 

"어머 선녀님, 날아가실 것 같아요."


 

지안시에서 지안현까지 쾌적하고 넓은 도로에는 가끔씩 딸기를 파는 노점상이 있을 뿐 너무나 한가롭다.


 

지안현을 지나치며 보게 된 한글로 안내된 공공 화장실 안내판. 중국에는 가끔씩 조금은 생뚱맞은 곳에 한글 안내판들이 있다.


 

펑크로 인해 늦어진 출발과 120Km를 가야 하는 거리가 부담스러워 쉼 없이 부지런히 페달을 밟는다. 핸들바 패니어에 넣어둔 초코바와 소시지를 꺼내어 부족한 열량을 보충하며 페달링을 이어간다. 지안시내를 지나오며 잠시 속도가 늦춰졌지만 빠르게 40km를 삭제한다.


"무슨 자전거 대회에 나온 것도 아닌데, 하지만 비가 올까 봐 무섭다."


 

오늘도 여지없는 직선성애자 녀석들이 나타나고.


 

중국을 여행하며 이런 사각형의 모양에 하나같이 모서리 부분에 계단이 놓인 물을 담아 놓은 곳을 여러 번 보았다. 수영장은 분명 아니고 공공 빨래터라고 하기엔 자리가 빨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물의 깊이가 깊어 보이지 않고 넓이가 그리 넓지도 않고 산소 발생기 같은 장치도 없는 것으로 보아 민물 양식장도 아닌 것 같다.


무엇일까 궁금해하면서도 그냥 지나쳐 버리곤 했는데 이 과수원을 지나면서 저것은 농업용수로 쓰기 위해 비를 받아 저장하는 곳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벽돌이나 시멘트로 각을 잡은 곳도 있고, 논밭 주변에 비슷한 용도로 보이는 곳이나 자연적인 둠벙이나 습지처럼 물이 고여있는 곳이 굉장히 많이 있다.


생각해 보니 중국에서 농업용 수로 같은 것을 본 적이 없다.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상하수도의 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중국에서 농업용 관계 시설이 보편화 되었을리 없으니 비를 담아놓고 생활용수나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해 마을 내에 또는 농지들 곳곳에 저런 시설들을 만들었으리라 생각이 된다.


 

우리는 이미 80년 후반 댐이나 저수지는 물론이고 농업용 수로이나 관정을 뚫어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있기에 지금은 특별한 곳이 아니면 이러한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중국 도로에서 많이 팔고 있는 딸기를 보더라도 모양이나 당도가 많이 떨어진다. 그리고 딸기를 재배하는 하우스를 얼핏 보면 그 재배환경이나 형태가 그리 현대적이지 않고, 농촌의 농지 형태들을 보면 중국의 농업이 아직은 많이 낙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G2, G2 하면서 효율적이지 못하고 인구 수로만 밀어 부치는 거야? 미국보다 10억이나 인구가 많은데 어느 천년에 미국을 넘어서려고."


 

 

중국 아이들의 복장이 중국스럽고 귀엽다. 문제는 저 복장에 앞치마만 두르면 어른들의 복장이 된다는 것이다. 형제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손바닥만 한 물고임에 첨벙거리며 재미있어 한다.


 

 

쉼 없이 내달리던 라이딩에 들녘의 노란 꽃들이 은은한 향기로 코끝을 자극하고 지친 마음을 쓰담쓰담 거린다.


 

위로의 손짓들을 지나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잠시 쉬어간다.


 


유채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노란 배추꽃이다.


 

가로수 옆에 가끔씩 보이는 이름 모를 처음 보는 꽃.



 

아침에 정비했던 뒷바퀴가 괜찮은지 눌러보니 약간 바람이 빠진 것 같아 타이어에 공기를 보충한다.


"오늘 타이어 때문에 고생 좀 하겠네."


비상식으로 넣어두었던 초코파이 중국 버전도 먹어보고, 맛은 똑같은데 크기가 많이 작다.


"변함없는 사랑, 정이라며 정!"


 


무난하고 편안했던 S319 도로를 벗어나 용양전에서 진입한 S314 도로는 산길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지나온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마을 풍경들이다.


일직선을 뻗은 도로가 울퉁불퉁하게 보인다. 10Km에 이르는 직선 도로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존재하며 멀리서 다가오는 차량들이 사라졌다 나타났다는 반복하며 나를 지나친다.


전국 일주를 하며 낙동강 자전거 도로를 일직선을 쭉 뽑아놓은 공무원들의 창의적인 게으름을 칭찬했었는데, 그들의 게으름은 애교에 불과한 것이다.


"이럴 땐 땅만 보고 가야 해."


도로에 시선을 두고 언더바를 잡고 소처럼 페달질을 해대니 새로 닦은 길의 검은 아스팔트가 울렁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언제나 마무리는 오르막이다. 조그마한 슈퍼에서 3위안짜리 펩시 한 병을 사 먹고 지도와 남은 거리를 확인한다.


2시 30분, 용신현까지 45km가 남아있다. 출발하려는 순간 작은 턱을 넘는 뒷바퀴의 물컹한 느낌에 확인을 해보니 말랑할 정도로 바람이 빠져있다.


"어어어, 겨우 한 시간 전에 넣었는데 이게 뭐야."


어쩌면 도착지까지 1시간마다 펌프를 꺼내 바람을 넣는 막노동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힘들게 바람을 넣고 잠시 내리막을 내려오는 도중 도로에 정차되어 있는 흰색 승용차가 보인다. 조심스레 승용차를 피해서 지나치려는 순간 차 안에서 한국말로 나를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벌써 환청이 들리나?"


자전거를 세우고 뒤돌아 보니 운전석에 있는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한국인이세요?"


"네."


"여기서 뭐해?"


자전거로 여행 중이라 말하니 어디를 가느냐고 서툰 한국말을 한다. 처음부터 한국말의 뉘앙스가 이상하여 한국어를 하는 중국인이라 짐작한다.


지도 어플을 찾아 목적지를 알려주려 하자 차에서 내려 내게로 다가온다.


우선 악수를 청하고 반갑다는 인사를 나눈 후 짧은 대화들이 오간다. 제주대학에서 어학당을 다닌다는 중국 학생 석성한군. 방학 기간인지 잠시 집에 왔다며 23일에 다시 들어간다고 한다.


명함을 주고, 여행에 대해 설명을 하고, 반가움의 인사와 서로의 핸드폰에 사진을 담고 하는 사이 차량에 있던 그의 어머니가 무어라 말을 하자 차의 트렁크를 열고 무언가를 뒤적이며 찾는다.


그리고 마라 소스라며 캔맥주 깡통만 한 크기의 용기를 건네준다.


"어떻게 먹어? 밥에 비벼..?"


뜻밖의 선물이고 처음 보는 소스라 어떻게 먹는 것인지를 묻자 매콤하다며 라면 같은 곳에 넣어 먹으면 좋다고 한다.


"고마워, 잘 먹을게!"


전화번호를 물었으나 전화번호가 없어 카카오톡 친구 등록을 하려다 둘 다 실패한다.


"그럼 이것으로 해. 위챗! 중국에서는 이거 쓰잖아."


위챗을 연결하고 성한군은 마지막으로 '화이팅'을 외치며 활짝 웃으며 떠난다. 이 넓은 중국 땅의 외진 시골길에서 뜻밖에 사람을 만난다.


"성한군, 쌩유!"


 


성한군과 작별하고 자전거를 출발하려 하는데 뒷바퀴가 푸석거리는 것이 이상하다. 아래를 보니 이번엔 뒤바퀴가 아예 주저앉아 있다.


"OMG!"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은 생각에 어떻게 뒷바퀴를 뺄까 고민하다 패니어들을 다 떼어내는 것은 너무나 귀찮고 귀찮은 일이라 그냥 눕혀버린다.


"어라. 큐알레버가 저쪽에 있네."


 

다시 자전거를 세워 낑낑대며 큐알레버를 겨우 돌려 풀어 놓고 자전거를 다시 눕힌다.


 

패니어들이 있어 지면에서 떠있는 바퀴를 빼고 타이어를 확인해 보니 작은 철심이 야무지게 박혀있다.


 

철심을 제거하고 타이어 안쪽을 한 바퀴 둘러 확인한 후 펑크 난 곳을 찾아 패치를 붙일 시간이 없어 그냥 새 튜브로 교체해 버린다. 또다시 하염없는 펌프질.


"오늘만 4번째다.".


 

성한군과 만나고 펑크를 수리하느라 40여 분의 시간이 지나버린다. 3시 20분, 남은 거리는 여전히 43km. 부지런히 달리면 6시까지는 용신현에 갈 수 있겠다 싶다.


 

"슈퍼 울트라 캡쏭 모드로 달리자!"


 

장강의 작은 줄기 허수이강을 따라 번개같은 속도 시속 20km로 한 시간을 달려 이제 남은 거리 23Km. 차량 통행이 확연히 줄어든 허수이 강변을 달리자니 마치 호젓한 남한강변을 라이딩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중국 산들은 참 이색적이고 멋지네."


강변의 대나무와 그 위로 소나무가 어우러져 기괴한 모양의 산봉우리까지 이어진다.


 

자연 그대로의 강변과 들녘들, 그리고 노란 배추꽃의 사이사이 삶의 터전들이 자리한 허수이 강변 마을의 풍경은 실로 목가적이고 아름답다.


 

 

저녁 5시. 차량의 통행량에 비해 쓸데없이 넓고 좋은 도로를 달려 용신현의 초입에 들어선다.


 

도심을 겨우 4Km 정도 남긴 도로에서 만난 중국의 소.


"대체 중국이라는 나라는 어디가 끝일까?"


 

중국의 모든 큰 도시들이 그렇듯 높이 올라가는 건물의 공사현장이 보이면 도심이 멀지 않았다는 의미다.


 

 

용신현은 다른 큰 도시들에 비해 조용하고 차분하게 느껴진다. 첫 번째 자전거 가게는 문이 닫혀있고, 사람들은 빨간 초들을 주변 곳곳에 놓아두며 지방 같은 것을 태운다.


 

 

"펑크 본드 메이요?"


한 블록 정도 다음에 있는 두 번째 자전거 가게에 자전거를 세우고 타이어를 가리키며 질문을 하자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한꿔렌?"


"쓰. 워 쓰 한궈렌."


자전거와 패니어를 유심히 살피고 태극기를 보더니 '한국인'이라는 대답에 가게 주변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돼버린다.


 

 

하나, 둘씩 모여들던 사람들이 갑자기 어디에서 나왔는지 질문들을 해댄다. 나중에는 동네 꼬마들까지 모여와서 '영어를 할 줄 아느냐'부터 시작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뭐야. 이 동네 설마 한국사람 처음 봐?"


 

흔쾌하게 답변과 농담을 던지며 장난을 치다 핸드폰으로 숙소를 잡고 있으니 안경을 쓴 여자아이가 묻는다.


"도와줄 것 있어?"


"I'm looking for a place to sleep tonight."


영어가 통할 리가 없다.


"주띠엔?"


다시 아이들에게 수줍은 중국어와 함께 잠자는 제스처를 보여준다.


"주띠엔? 삥구완! 삥구완!"


아이들이 일제히 빈관을 외칠 때 한 젊은 남자가 무리에서 튀어나와 큰 소리로 무언가를 말한다.


"내가 빈관을 한다. 우리 빈관으로 가자!"


스마트폰의 번역기를 건네주니 남자는 빈관을 운영한다며 자전거 가게 바로 옆에 있는 빈관을 가리킨다.


"이거 마치 예수가 된 기분일세."


빈관으로 가는 도중에도 아이들이 계속 따라붙고 빈관까지 함께 들어와 이름을 물어본다.


"My name is Xavi. 워더 한꿔 밍즈 비엔 치에 씨에!"


"비엔 치에 씨에?"


깔깔거리며 웃는 아이들 때문에 빈관의 1층은 아수라장이 된다.


 

빈관에 들어가 가격을 물으니 98위안을 달라고 한다. 보통 100위안에서 150위안 정도의 숙소를 이용해온 터라 저렴하게 느껴진다.


젊은 남자는 자전거를 일층 안쪽에 넣어두고 2층의 방까지 패니어를 함께 옮겨준다.


빈관의 방에는 대리석이 깔린 바닥에 넓은 방 가운데 하우촌에서 보았던 전자식 마작 테이블이 놓여있다.


"중국, 중국은 정말 너무 난해해!"


 

샤워를 마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나오니 빈관의 여사장이 가게 앞 인도에 촘촘하게 촛불들을 켜놓고 있다. 동네 곳곳에 켜진 촛불들.


 

 

 

 

 

 

 

그리고 여전히 대포소리를 내며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폭죽소리. 도시 전체가 자욱하게 폭죽 연기로 감싸인다.


"대체 너희들 언제까지 터트릴 거야?"



자전거 가게 앞에 여전히 모여있는 마을 사람들을 보고 다시 주변으로 몰려들까 하는 걱정이 든다.


"워 헌 어. 취판?"


젊은 사장만 살짝 불러서 조용하게 물어보니 길 건너편 음식점을 알려준다.


 

뭔가 모던해 보이는 음식점, 면을 전문적으로 하는지 몇몇 사람들이 면과 라면 같은 것을 먹고 있다. 볶음밥과 소고기파볶음 같은 것을 주문하고 기다린다.


 

 

"세상에 히터를 튼 중국 음식점이 다 있네!"


 

조금 기다리니 음식이 나온다. 깔끔하고 정갈하게 차려 나온 볶음밥과 고기메뉴.


 

 

 

그리고 고수 향이 나는 국물.


 

중국 특유의 강한 맛이 없고 우리 입맛에 딱 맞을 만큼 좋다. 볶음밥은 우리의 중국집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그런 맛이고, 소고기와 파를 볶은 메뉴는 파기름의 향과 달고 매콤한 맛이 느끼하지 않고 좋다.


그리고 고수향이 나는 육수 국물은 따듯하게 몸을 녹여줄 만큼 최고다.


"해장 딱!"


어느 나라에 가게를 오픈하더라도 누구나 부담 없이 중국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줄 만큼의 좋은 음식이다. 40위안.


 

오늘도 좋은 하루다. 마음의 위로가 되는 좋은 풍경을 보았고, 사람들을 만났고, 좋은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가 오지 않았어!"


조금은 피곤한 날들의 연속이지만 그 피로감마저 좋고 내일이 기다려진다.


왼쪽 콧물이 오른쪽으로 이동했나 보다. 제발 열만 오르지 않으면 좋겠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