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16일 / 맑음 ・ 12도
차간아르칸-알타이
150km가 남은 알타이까지의 산길, 간쑤크의 도움을 받아 차량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도저히 자전거로 갈 수 없는 험한 산길이다.


이동거리
157Km
누적거리
10,128Km
이동시간
5시간 15분
누적시간
716시간

산넘고물건너
비포장길
112Km / 4시간 02분
45Km / 1시간 13분
차간느
타이시르
알타이
 
 
1,946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간쑤크의 가족들, 침대에 누워 게으름을 피우는 동안 아이들이 서로 장난을 치며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간쑤크와 바야르는 소의 젖을 짜느라 바쁘다. 어미의 젖을 물고 있는 송아지를 떼어내고 부드러운 손동작으로 양동이에 젖을 짜는 바야르.

초원의 소들은 건강한 것인지 쇠똥의 크기가 두꺼운 밀가루 반죽 같다.

양치를 하기 위해 자전거에 놓아둔 생수를 꺼내니 물이 얼어있다. 5월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여전히 바람이 차고 밤의 기온이 낮다.

게르 옆에 놓인 채찍을 보고 자전거 스탠드로 사용할 막대기가 생각난다.

"쓸만한 나무가 없네."

바야르가 우유차를 내어주고.

조금 전 짜낸 소의 젖을 채에 거른 후 화로 위에 올려놓는다.

간쑤크에게 자전거를 세울 긴 막대기가 필요하다 말하니 장대처럼 긴 채찍을 주고, 톱으로 필요한 만큼 잘라 쓰라고 한다.

Y자 모양이면 더 좋겠지만 자전거를 세우는데 문제는 없다.

"됐다. 자전거 스탠드 겸 못된 개들의 응징용 작대기."

포터 트럭으로 알타이까지 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간쑤크는 게르에 놀러 왔던 남자의 SUV에 자전거를 실으라며 제스처를 한다.

남자는 자전거를 가져오며 몇 차례 타보려고 하지만 좌우로 흔들리는 자전거를 주체하지 못한다.

"말 타는 것보다 어렵지?"

패니어를 떼어내고 간쑤크에게 타보라고 하니 아이처럼 이리저리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닌다.

패니어들을 차량에 싣고.

앞 바퀴를 탈착한 자전거를 승용차에 넣는다.

"알타이까지 가는 것만 남았네."

바야르는 양고기의 살코기와 비계를 썰어 끓이고.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밀가루 반죽으로 면을 만든다.

양고기 국물에 면을 넣고.

몽골에서 초이완과 함께 주식으로 먹는 양고기 국수.

케찹을 뿌려서 먹기도 하는데 나는 그냥 먹는 것이 더 단백하고 좋다.

바야르가 자꾸 더 먹으라며 권해서 세 그릇을 비운다.

소의 뿔로 만든 젖병이다. 모유를 먹이는 몽골에서 아이에게 쓸 일은 없고, 어린 가축에게 젖을 먹일 때 사용할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뿔의 안쪽을 긁어내고 끝부분에 젖꼭지를 달아 만든 것이 기발하다.

식사가 끝나자 간쑤크는 알타이로 가자며 서두른다. 150km의 흙길이니 자동차로 간다 해도 꽤 거리가 멀다.

나를 데려다주고 차간느까지 돌아오면 300km가 훌쩍 넘는 거리이니,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짐들을 챙기고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모로 신경을 써준 바야르와 사진을 찍고, 게르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인사를 한다.

간쑤크와 둘이 알타이로 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간쑤크는 뒷자리에 타고 남자가 운전을 한다.

"간쑤크, 네가 앞에 앉아. 네가 크잖아."

덩치가 좋은 간쑤크에게 조수석을 양보했지만, 자전거 핸들이 뒷자리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비좁은 자리에 큰 덩치를 구겨 넣는다.

간쑤크의 게르를 떠난 승용차는 생각했던 대로 모래 바닥의 흙길을 이리저리 피해 가며 알타이로 향한다.

언덕들과 강물을 위아래 좌우로 요동을 치며 지나가고.

자갈과 돌들을 피해 달리지만 시속 30km의 속도가 나질 않는다.

"산악자전거라면 모를까 패니어를 단 자전거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길이네."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나름 괜찮은 길을 골라 승용차를 몰고, 가끔씩 차량을 세우고 망원경을 꺼내어 말들이 있는 곳을 관찰하며 간쑤크와 남자는 무언가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말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만나 반갑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쉬기도 한다.

수킬로미터씩 떨어져 지내는 사람들이라 반갑게 인사를 하며 대화를 하는 것이 편하고 즐거워 보인다.

간쑤크와 남자는 교대로 운전을 하며 흙길을 따라간다.

쉴 새 없이 핸들을 조작하고 브레이크와 악셀을 밟아야 하니 운전이 피곤하기도 할 것 같다.

"근데, 몽골에는 운전면허 같은 것이 있나?"

신호등도 교차로도 없는, 심지어 길도 없는 몽골에서 운전면허를 어떻게 따는지 궁금해진다.

산들을 하나씩 넘어가며 멀리 보이는 다음 산까지 구불구불 휘어진 흙길을 느릿느릿 달려간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는 날에 볼 수 있는 구름떼들만이 둥실거리며 하늘을 떠다니고.

햇볕을 받아 더워지는 차 안의 온도와 달리 제법 거센 찬바람이 불고 있는 날씨다.

한참을 달리던 승용차는 다시 사람들을 만나 정차를 하고, 간쑤크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짧은 대화들을 나눈다.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는 한국인에 대해 설명을 했는지 한 남자가 다가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농담의 제스처를 한다.

남자는 말의 뒤쪽을 두드리며 말을 타고 가자며 웃는다.

도로조차 없어 사람의 통행이 빈번하지 않으니 사람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많다. 아마도 이런 모습이 유목민족 몽골인의 참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멀리 떨어져 지내는 사람은 물론이고 낯선 사람에게조차 안부를 묻고 스스럼없이 대화를 하는 사람들.

언제나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산들을 넘고 넓은 평원이 이어지는 동안 하늘의 구름은 솜뭉치를 펼쳐놓은 것처럼 빼곡하게 하늘을 채우고 있다.

가끔씩 몽골의 비현실적인 구름의 풍경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질 정도이다.

"정말 어떻게 해야 널 담아 갈 수 있을까?"

11시에 차간느를 출발하여 두 시간 동안 50km를 이동한다. 몇 채의 게르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는 초원의 흙길.

"정말 세상에서 가장 무의미한 이정표 중에 하나일 거다."

뒷자리에서 누워 잠을 자던 남자와 간쑤크는 다시 운전을 교대하고.

간쑤크에 비해 와일드한 운전을 하던 남자가 돌멩이가 차체를 튕기는 소리와 함께 승용차를 세운다.

뭔가 분주한 느낌이 들어 차에서 내려 들여다보니 앞바퀴가 펑크가 났다.

"어, 너네 스페어타이어는 있는 거야?"

차량의 화물칸 밑부분에서 스페어타이어를 꺼내고 타이어를 교체하는 것을 도와준다.

타이어를 장착하던 간쑤크의 모자가 바람에 날려 날아간다. 모자를 쫓아 50미터 정도를 죽어라 뜀박질을 하고 간쑤크에게 모자를 돌려준다.

산의 능산을 타고 달리던 차량은 2시 30분이 되어 작은 마을에 도착한다.

하라콜룸, 체체를렉, 울리아스타이로 이어지던 푸르고 아름답던 몽골 중부의 마을과 달리 황량한 사막의 풍경이 느껴지는 마을이다.

"다시 남부의 사막지대로 왔구나."

간쑤크를 따라 작은 슈퍼로 들어가 빵과 음료수를 사들고 계산을 한다.

"내가 살게!"

간쑤크가 집어 든 작은 카스테라 빵. 빵을 먹으며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펴고 맛을 물어보는 간쑤크에게 엄지를 들어 '샌'이라고 말하지만 몽골의 빵은 정말 너무 달다.

"모! 모! 난 중국 빵이 더 좋아!"

남자가 고른 것은 보리식빵과 생선 통조림이다. 처이르에서 오초르가 챙겨주던 점심식사 메뉴다. 그냥 빵에 얹어서 함께 먹으면 비리지 않고 단맛이 난다.

아직도 알타이까지 50km나 남았다. 작은 마을 타이시르를 지나면서 사라졌던 비포장도로가 이틀 만에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간쑤크와 남자는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대신 옆으로 나있는 초원의 흙길을 따라 승용차를 운전한다.

몽골의 비포장도로는 정말 최악의 길이다.

알타이에 가까워지며 아스팔트 포장을 위해 준비를 하는지 비포장도로가 매끈하게 이어진다.

돌들이 잘게 분쇄되고 평탄하게 작업된 비포장도로가 몽골 남부의 포장도로를 만나며 300km 넘게 이어지던 흙길과 비포장도로가 드디어 끝이 난다.

"아! 얼마 만에 아스팔트 길이냐!"

몽골의 도로는 울란바토르에서 국경이 있는 울기까지 남부와 북부의 포장도로(하이웨이)가 동서로 이어져있다. 울란바토르, 바양홍고르, 알타이, 헙드로 이어지는 남부 도로와 볼강, 므릉, 울란곰, 헙드로 이어지는 북부 도로이다.

북부 도로를 타고 울기로 향하던 길을 김병남 선교사님을 만나며 중부의 하라콜룸, 체체를렉, 호르고, 토승쳉겔을 따라 이동했고 중부의 포장도로는 끝이 났다.

북쪽의 울란곰과 남쪽의 알타이 중 몽골인의 '아스팔트'라는 잘못된 설명으로 울리아스타이와 알타이까지 이어지는 산길과 흙길을 넘어온 것이다.

"아스팔트!"

비단길을 미끄러지듯 내달려 알타이에 도착한다. 차간느를 출발하여 5시간 만에 도착한 것이다.

알타이도 제법 큰 마을이지만 중부의 마을들보다는 처이르나 사인샨드의 모습에 가깝게 느껴진다.

눈이 쌓인 높은 산을 배경으로 사막과 같은 푸석한 초원의 모습이다.

알타이 중심으로 들어와 칸뱅크에 들러 간쑤크에게 20만 투그릭을 찾아준다.

일주일 정도의 생활비지만 하루 종일 달려온 끔찍한 초원의 길을 생각하면 적당하다 생각한다. 자전거로 이동했다면 최소 일주일 정도 소요되고, 무엇보다 몸과 자전거가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이다.

은행 앞에서 자전거와 짐들을 꺼내어 정리를 하는데 자전거의 프론트 렉을 고정하는 볼트들이 모두 느슨하게 풀어져있다.

3일 동안 비포장도로와 산길을 달리며 요동치는 흔들거림과 충격으로 조금씩 풀어져 버린 것이다.

육각렌치를 꺼내어 볼트들을 다시 조이고, 패니어를 장착한다.

"간쑤크, 밥 먹고 가! 나랑 밥 먹고 집에 가!"

알타이에 와서 지인들에게 통화를 하는지 바쁜 두 사람에게 밥을 먹고 가라며 주변의 식당을 검색하여 이동한다.

첫 번째 레스토랑은 폐업을 했는지, 영업을 끝냈는지 문이 닫혀있다. 그사이 간쑤크의 지인으로 보이는 남자를 만나고, 그가 알려주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친절하게 대해주는 여자 주인과 주변 사람들과 달리 간쑤크의 지인인 남자는 뭔가 불만에 찬 표정으로 나를 대한다.

간쑤크와 밥을 먹으며 마지막으로 고마운 마음들을 전달하며 이야기하고 싶은데, 자꾸 끼어들며 철자도 똑바로 쓰지 못하면서 핸드폰을 달라고 한다.

핸드폰을 주면 엉뚱한 단어를 써놓거나 쓰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앱들을 눌러대는 남자.

"도시가 그렇게 힘들면 욕심내지 말고 다시 초원으로 돌아가. 촤식아!"

불만 가득 불쾌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남자는 핸드폰을 달라고 하더니 '가라', '집에 가라' 등의 단어를 적어놓고 헙드로 바로 가라며 보기 싫은 표정으로 말과 제스처를 해댄다.

"술 먹었나? 네가 뭔데 가라 마라야!"

간쑤크와 함께 운전을 하고 온 남자와의 헤어짐이 아쉬웠지만 정말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얼굴의 남자다.

간쑤크의 게르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하루 종일 차를 타고 오면서도 늘 웃고, 장난스러운 제스처를 하며 소통을 하던 사람들의 표정이 좋질 않고 빨리 서두르는 모양이다.

간쑤크와 남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간쑤크 일행이 떠나고, 상냥한 식당 아주머니 그리고 옆 가게의 아주머니와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나니 찝찝했던 기분이 전환된다.

식당의 아주머니와 옆 가게의 아주머니에게 하룻밤 신세를 져볼까 생각하다 포기하고 숙소를 검색한다.

제법 깨끗한 호텔이 25,000원 정도의 숙박료를 받는 것 같다.

"편하게 이틀만 쉬고 울기까지 가자."

찾아간 호텔은 깨끗한 건물에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숙박비를 내고 자전거는 1층에 있는 큰 연회장 같은 곳에 넣어준다.

샤워를 하고 호텔 뒤편에 있는 라마교 사원처럼 생긴 공원에 올라간다.

알타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지만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지던 중부의 마을들과 달리 별 감흥이 없다.

"그냥 황량하네."

슈퍼에 들러 먹을 것들을 사 오고.

과일이 정말 귀하지만 부실하다.

"딱 봐도 중국 과일이네."

숙소로 돌아와 레스토랑이 몇 시까지 하는지 알아보니 12시까지 영업을 한다고 한다.

"좋아!"

그럼, 일단 너부터.

자전거 유라시아 횡단을 하고 있는 위너님과 카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낸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하여 연변과 길림을 거쳐 북경으로 향하고 있는 위너님은 내몽골과 몽골의 경로가 나와 비슷하다.

그에게 몽골 여행에 대한 정보들을 주고, 청춘의 도전과 여행을 응원해 주었다.

그보다 일찍 여행을 시작하고, 더 긴 여행을 계획하고 있지만 언제나 그들의 선택과 행동이 부럽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하고 싶은 것과 포기해야 하는 것 등등을 가늠하며 답이 없는 고민 속에 허우적거리다 그것을 핑계 삼아 모든 것들을 미뤄두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남들처럼.

하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누구나 그때의 시간들이 그러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나처럼 그때의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리고 현재의 지금이 또 다른 그때라는 것을.

지금은 나처럼.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바라고 행하길 바란다.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할 것을 잘 구분하는 사람이길 원하지 않는다. 너의 삶을 규정할 수 있는 존재나 시스템은 그 어디에도 없다. 너 자신조차도.

할 수 없다 생각한 것에 대해 스스로 왜 그것을 할 수 없다 생각하는지 의문하고, 할 수 있다 생각하면 할 수 없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진심을 다하여 간절히 바라며 행하였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삼촌이 정현에게

10시가 넘어 식당으로 내려갔다. 한국 음식의 메뉴가 있지만 당연히 패쓰.

"네가 제일 잘 만드는 메뉴?"

이것저것 모르는 메뉴들을 고민하는 것보다 가장 잘 하는 메뉴가 무엇인지 묻는 것이 빠르다.

생글하게 웃는 여직원은 파인애플 치킨과 고기 메뉴 같은 것을 가리킨다.

"몽골 호텔 레스토랑에는 정해진 매뉴얼이라도 있는 거야?"

울리아스타이에서부터 입맛을 돋우던 치킨을 주문한다. 자민우드, 울리아스타이 그리고 알타이. 이곳의 음식 솜씨가 가장 좋은 것 같다. 12,900투그릭.

"내일까지 고기만 먹을 거야."

데이터 만수르가 되어 오랜만에 다스뵈이다를 몰아 보며 시시덕거리다 보니 몽골 마을의 야경을 다 구경하게 된다.

"울란바토르 말고 야경은 처음이네."

멀고 험난한 길을 빙빙 돌아왔지만 하라콜룸, 체체를렉, 호르고, 토승쳉겔 마지막으로 울리아스타이까지 아름다웠던 몽골 중부의 마을들을 지날 수 있어서 만족한다.

"힘들었지만 멋지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아쓰발..트 너 그러면 안 돼!"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113, 114일 / 맑음, 비 ・ 10도
울리아스타이
깨끗하게 맑은 날씨 그리고 비가 내리며 다시 바람이 분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9,925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704시간

뒹굴뒹굴
고기고기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숙소
숙소
숙소
 
 
1,743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피곤함이 묵직하게 몸을 짓누른다. 계단을 오르는 허벅지가 뻐근한 것이 오늘 떠나기엔 무리다.

호텔의 조식은 빵과 계란 후라이 그리고 소시지 몇 개가 전부다. 간단하게 먹기 좋은 메뉴지만 순식간에 사라진 아침을 먹고 나니 더 배가 고파진다.

"툴가에게 전화했어?"

생글생글 잘 웃던 주방 직원은 조금 어두운 낯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가지 마! 여기가 좋아. 한국 생활은 어려워. 여기가 샌이야!"

툴가가 어떤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보증금과 비행기표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내일 여행을 위해 교차로의 큰 슈퍼에 들러 식량들과 음료들을 준비한다.

최소 3일 분의 비상식으로 컵라면과 컵밥 그리고 봉지 육개장, 스팸 등을 사두었다. 큰 슈퍼라 한국의 제품들이 제법 진열되어 있다.

부지런히 먹어 두어야 한다. 호텔보다 음식 맛이 좋았던 피쉬아이 카페에서 어제 먹었던 쇠고기 메뉴를 시키고, 약간의 잡내와 느끼함을 없애려 맥주를 시킨다.

몽골은 맥주가 정말 싸다. 큰 맥주캔이 900~1,000원 정도의 가격이다.

여전히 앙증맞은 밥 한 덩어리를 주는 식당. 쇠고기를 먹으면서 툴가가 했던 말이 떠올라 피식 웃고 만다.

"몽골 사람들은 좋은 고기를 많이 먹는데 빨리 죽어요."

야채라고는 감자와 당근만을 주로 먹는 몽골 사람들, 최근 들어 샐러드나 야채를 조금씩 먹는다지만 아주 많이 먹어야 할 듯싶다.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늦게까지 자고 호텔의 식당에서 계란 후라이를 덮은 쇠고기를 다시 먹고.

주방 직원에게 계산을 하며 징기스의 초상과 100투그릭의 초상이 누군지 물어보니 징기스라고 한다.

"징기스? 무슨 돈을 청년 징기스, 장년 징기스 이렇게 그려서 넣냐?"

징기스가 맞다는 주방 직원의 말이 이상하여 프런트 직원에게 물어보니 다른 사람의 이름을 알려준다.

"그렇지? 하여튼 뭘 물어보기가 무섭다."

몽골 여행 전 지아오강강은 몽골 사람들은 사람을 잘 속인다며 조심하라 알려주었는데, 생각해보면 사람을 속인다는 것보다 틀린 내용을 잘 알려준다는 쪽에 가까운 것 같다.

"그냥 모른다고 해 줘!"


자료들을 정리하며 잠이 들었지만 하루 정도 더 쉬며 체력을 보충해야 할 것 같다.




어제 저녁부터 짙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더니 아침에 약간의 비가 내린다. 11시가 가까워지며 프런트 직원이 방문을 두드리며 무언가를 말한다.

호텔의 프런트 직원이 몇 명인지 날마다 얼굴이 바뀐다. 변장을 한 것이 아니라면 하루 근무를 하고 이틀을 쉬는 모양이다.

이틀치의 숙박료를 주고 번역기로 '어제, 오늘'을 적어 보여주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참 잘 웃는 사람들인데."

"5월 23일이네. 부끄럽지 않게 살자!"

자전거를 꺼내어 다리의 상태를 체크할 겸 마을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한다. 제법 피로가 많이 풀린 것 같다.

마을의 시장에 들러 구경을 했지만 차량의 트렁크에 물건을 담아 파는 노점상들이 많고 특별히 색다른 것이 없다.

"역시 시장 구경은 중국이야."

피쉬아이 카페에서 큰맘 먹고 6,000원 짜리 쇠고기 스테이크를 시키니 안된다고 한다.

계속 먹어왔던 쇠고기보다 다른 것이 먹고 싶다.

"이건 닭고기인가?"

자민우드에서 먹었던 파인애플 치킨 같은 것이 있어 메뉴에 적힌 글자를 입력해 보니 닭고기 넓적다리라고 뜬다.

"뭔 닭고기가 쇠고기 보다 비싸냐?"

구워진 닭고기의 비주얼에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부드럽고 좋다.

"내일 한 번 더 먹고 출발할까?"

오랜만에 먹은 닭고기가 입맛을 돋운다.

돌아오며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서 프런트와 주방 직원에게 주니 환하게 웃는다.

"500원 짜린데. 난 250원 짜리야!"

8시가 되어 식당으로 내려간다. 프런트 직원도, 주방 직원도 아이스크림의 효과만큼 밝게 눈웃음을 짓는다.

"네가 제일 잘 만드는 음식?"

쇠고기 대신 가장 자신 있는 메뉴를 달라고 하니 잠시 고민을 하더니 8,000투그릭의 메뉴를 가리키며 자신 있는 표정을 짓는다.

"좋아!"

"맵게 해줄까?"

"좋아!"

주방에서 부지런히 뭔가를 만들더니 오이향이 향긋하게 풍기는 묘한 메뉴를 가져온다.

"오! 비주얼 좋고, 냄새 좋고!"

쌍엄지를 치켜세워 주니 생글 웃으며 어깨가 올라간다.

소고기 덮밥 같은 것인데 잡내도 적고 괜찮다.

"오호, 좀 하는데!"

여직원은 생글생글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간다.

따듯한 물의 욕조에 몸을 푹 담가보려 했는데 뜨거운 물은 욕조가 차기 전에 끊겨 버린다.

전기온수기라 용량에 한계가 있나 보다. 반신욕으로 만족하며 다리의 근육들을 풀어준다.

"출발 준비는 된 것 같고, 힘든 여정이겠지만 알타이까지 가 볼까."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112일 / 맑음 ・ 14도
울리아스타이
비포장도로의 산길을 따라 해발 2,400미터를 오르고 울리아스타이로 향한다.

이동거리
24Km
누적거리
9,925Km
이동시간
3시간 00분
누적시간
704시간

강가에서
라마교사원
15Km / 1시간 41분
9Km / 1시간 19분
게르
시계
울리아
 
 
1,743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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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온몸이 쑤신다. 따듯하게 온도가 올라가는 텐트 안에서 비비적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텐트 밖으로 나오니 소의 젖을 짜는 디미르의 가족들이 인사를 한다. 따듯한 햇볕을 쬐며 앉아 있으니 디미르의 아버지가 다가와 손 세정제와 물을 가져다준다.

"울리아스타이 22km!"

울리아스타이가 22km이고, 알타이가 200km가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려준 남자는 식사를 하자며 제스처를 한다.

식빵을 내어주고.

직접 만든 치즈를 얇게 썰어 주고.

빵에 올려 함께 먹으라 알려준다.

그리고 직접 만든 요거트와 백설탕을 주며 비벼서 먹으라 알려준다.

부드러운 요거트는 너무나 신선하고 맛이 좋다.

바구니에서 작은 사과도 하나를 건네준 그와 번역기 없이 사진들과 제스처로 어렵게 대화를 이어간다.

디미르의 아버지는 유머가 있는 유쾌한 남자다. 익살스런 표정으로 장난스러운 농담들을 하는 그와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디미르와 그의 아내가 게르 안으로 들어온다.

"몇 살이야?"

"나스? 내 나이?"

나이를 묻는 몇 번의 질문을 받고 핸드폰에 나이를 적어 보여주니 모두가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친다.

"맞아! 1974."

생년을 적어주니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더니 핸드폰을 가져가 1970을 적으며 손가락 네 개를 펴 보인다.

"50? 형이네!"

남자는 자기는 못한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아무것도 아닌 서로의 나이를 알려주며 그의 가족들과 웃으며 시간을 보낸다.

"아무래도 몽골에서는 열 살 정도 줄여야겠어!"

밖으로 나간 가족들은 양과 염소를 몰아가는데, 채찍을 이용해 새끼들만을 따로 분리한다.

"새끼들에게 표시를 하려고 하나? 아직 뿔이 없는데."

어린 새끼들만이 분리되어 바위산에 남아있고 어미들과 다른 양들은 '음메' 소리를 내며 건너편 산을 지나 천천히 이동을 한다.

남자는 새끼 한 마리를 안고 와서 게르 옆에 묶어 둔다.

"네가 오늘의 볼모구나!"

양과 염소들이 집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하는 것인지, 새끼들이 초원에서 떨어져 죽을까 봐 관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양을 치기 위해 준비를 하던 남자는 오토바이의 뒤에 자전거를 묶고 가자며 농담을 하고, 말을 끌고 오더니 안장에 올라가 보라며 말을 잡고 웃는다.

"노, 노!"

말을 타본 적이 없어 괜찮다는 사양을 하니 재차 말을 타보라며 손을 이끈다.

몽골의 말은 서양의 말에 비해 조금 작지만 안장에 올라간 높이는 제법 높게 느껴지고, 살아있는 동물의 등에 올라가 있으니 미안한 생각이 먼저 든다.

디미르는 핸드폰을 달라고 하더니 말을 타고 있는 사진을 찍어주고, 고삐를 끌어 게르 한 바퀴를 돌게 도와준다.

디미르의 아버지는 경쾌하게 인사를 하고 멀리 떨어진 양들을 향해 신나게 말을 타고 사라진다. 곧이어 디미르도 오토바이에 뭔가를 준비하고 아버지처럼 경쾌한 인사를 하고 멀리 사라진다.



볼모로 잡힌 새끼 염소의 친구들이 바위산을 내려와 함께 게르 주변에 모여들고.

텐트에 들어가 잠시 누워 잠을 더 잘까 고민하다 침낭과 텐트를 정리한다.

"어차피 갈 길, 울리아스타이에 가서 쉬자."

네트워크가 끊겨있어 울리아스타이의 숙소나 식당들이 어느 정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도상에 펼쳐진 마을의 규모가 체체를렉보다 큰 마을인 것 같다.

텐트를 정리하는 동안 디미르의 엄마가 나와 울리아스타이에 가서 쉬라는 듯 잠을 자는 제스처를 하며 웃는다.

그녀도 유쾌하게 인사를 전하며 손을 흔든다. 성격이 정말 유쾌한 가족들이다.

도로, 흙바닥의 비포장도로로 나와 잠시 이동을 하니 도로변에서 디미르의 아버지가 그곳에서 양들을 살피고 있다.

"형! 사진 찍자."

고맙다는 인사와 악수를 나누니 핸드폰을 장 챙기라는 제스처를 하며 웃는다.

"바에르사! 바이시떼!"

덜컹거리는 도로를 천천히 따라가지만 흔들거리는 머리와 엉덩이가 아프다.

오토바이 한 대가 천천히 나의 속도에 맞추더니 젊은 남자가 함께 가자며 웃는다.

"암 슬로!"

비포장도로에서 벗어나 초원의 흙길로 빠져나와 따라가 본다.

"사람들이 멀쩡한 도로를 두고 흙길을 왜 달리는지 알겠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와 달리 이리저리 기울어진 길이지만 덜컹거리지 않고 좋다.

13km를 달리고 넓게 펼쳐진 강줄기를 만나 자전거를 세운다. 어제 넘었던 산의 작은 계곡이 울리아스타이에 가까워지며 넓은 하천으로 변한다.

따듯한 햇살,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과 시원한 물소리, 푸른 하늘과 초원의 높은 산들.

강물에 얼굴과 손을 씻어내고.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네."

자전거에 기대어 오랫동안 시간을 보낸다.



몽골의 어려운 여행 환경에 지쳐있을 때면 언제나 이렇게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운 풍경과 넉넉한 시간을 내어준다.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울리아스타이의 경계를 알리는 언덕을 오른다.

8km 정도가 남은 울리아스타이의 모습이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강과 산으로 둘러싸인 모습이 체체를렉만큼 소박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길을 달려 울리아스타이의 톨게이트를 지나고.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울리아스타이.

"아스팔트네!"

마을에 들어서며 이어진 포장도로, 마치 고급 리무진을 타고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조용하다.

몽골의 다른 마을들처럼 길게 이어진 골목을 집들이 이어지고.

"다 왔다."

구글맵을 보며 버스 정류장에 앉아 쉬었다. 지나왔던 다른 마을과는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작은 산 위로 라마교의 사원이 보이고.

산을 돌아 마주한 회전 교차로.

차량들과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교차로에서 음식점과 숙소를 검색한다.

"마을이 제법 큰데, 있겠지?"

크게 네 개의 구역으로 나눠진 울리아스타이의 중심지는 회전 교차로가 있는 부근인 것 같다.

슈퍼와 시장, 호텔과 레스토랑이 교차로의 우측으로 들어서 있다.

"별점이 있나?"

몇 곳의 레스토랑 중에서 리뷰가 가장 많은 식당 피쉬아이 카페로 들어간다.

제법 구색이 갖춰진 레스토랑에 들어가 메뉴판을 우선 집어 들고.

"고기를 줘!"

8,900투그릭 하는 소고기 메뉴를 주문하고.

앙증맞게 접시에 올려진 밥을 추가로 주문하니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밥보다 소고기가 더 싸냐."

2층에 호텔을 같이 하는 식당에서 계산을 하며 숙박비를 물어본다.

"60,000투그릭."

몽골은 이상하게 호텔의 숙박료가 비싸다. 화장실이 있는지 물어보고 방을 볼 수 있는지 물어보니 여권을 달라고 한다.

"방을 보여줘!"

계속해서 여권을 달라는 눈치 없는 여직원과 답답해하고 있으니 짧은 영어를 하는 다른 여직원이 다가와 안내를 해준다.

두 개의 침대와 화장실이 있는 방을 확인하고, 근처에 새로 생긴 호텔을 보고 오겠다 말하고 식당을 나온다.

구글맵을 따라 허름한 아파트 단지로 들어간 곳에는 새로 지어진 호텔 모양의 건물이 보이질 않고, 주위를 빙빙 돌다 길가에 서있던 남자에게 길을 물어본다.

"자브칸 호텔?"

남자는 잠시 구글맵을 확인하더니 라마교 사원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한다. 두어 차례 자브칸 호텔이 맞는지 물어도 맞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20미터쯤 남자가 알려준 방향으로 이동하니 구글맵의 호텔 위치와 반대 방향으로 멀어진다.

다시 길을 가는 여자에게 호텔의 위치를 물어보니 남자를 만났던 곳을 가리킨다.

"아, 정말!"

몽골 사람들은 이상하게 길을 물어보면 모두 맞다고 알려주는 것이 문제다. 차라리 모른다고 하면 편할 것 같은데.

아파트 건물에 붙어 지어진 건물에 호텔의 간판이 걸려있는데 러시아어 표기라 읽을 수가 없다.

지나가는 남학생을 붙잡고 간판을 가리키며 자브칸인지 물어보니 맞다고 한다.

"아, 이건 설마 예상 못 했다."

새로 지어 깨끗하고 조요한 호텔, 입구에서 마주친 직원들과 얘기를 하고 방을 확인한다.

60,000투그릭의 숙박비가 너무 부담스럽지만 일단 지친 몸을 추스르고 싶다.

안쪽 현관에 놓아두라던 자전거는 여행을 설명하니 지하에 있는 창고에 넣어준다.

그리고 세 명의 여직원들과 짐을 나눠들고 방으로 올라간다. 세 명의 직원은 이 호텔의 전 직원이다. 카운터, 식당 그리고 세탁 담당자.

샤워도 미루고 먹을 수 있는 요깃거리를 찾아 아파트 슈퍼로 간다.

아파트 1층으로 들어가 마트의 현관을 찾아도 모두 문이 잠겨있고, 두 차례 아파트 입구를 들락거리며 확인을 해도 문이 안 보인다.

"슈퍼마켓?"

계단을 내려오는 남자에게 슈퍼마켓을 물어봐도 생뚱맞게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한국인이세요?"

한국말로 물어보는 남자와 아파트를 나와 1층 벽에 붙은 슈퍼마켓의 간판을 가리키니 아파트 지하의 계단을 가리킨다.

"아. 할 말 없다."

싱겁다는 듯 웃으며 가는 남자.

"슈퍼마켓 정도의 영어는 알아 들어야지!"

작은 슈퍼에서 음료수와 과자, 빵 등을 사들고.

일단 너부터.

호텔에 돌아오니 식사를 언제 할 것인지 자꾸 물어본다. 시계를 보여주며 8시를 가리키니 고개를 흔들며 7시 내려오라고 안내를 한다.

"알았어!"

따듯한 물에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눕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으니 산 위에 있던 라마교 사원이 궁금해진다.

"아무것도 안 할 건데. 궁금하다!"

핸드폰만 챙겨들고 사원이 있는 산 자브흘란트 톨고이(жавхлант толгой)로 걸어간다.

따듯한 오후의 햇볕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울리아스타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라마교 사원에 올른다.

바위산 위로 들어선 라마교 사원.

고승들의 사리탑 같은 것이 세워져 있고.

라마교의 부처상, 조각상들은 정말 강렬하다.

라마교와 토템 사상의 영향을 받는 몽골은, 공산화 과정에서 사원들을 철폐시키며 문화유산들이 많이 남아있질 않다.

개방 이후 라마교의 사원들이 새로 정비되어 관리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르나 몽골인들의 집에는 기도를 올리는 작은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다. 중국의 도교사상이 중국인들의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몽골의 라마교 역시 몽골인들 삶의 밑바탕인 듯싶다.

"이런 자연과 함께 살던 사람들이 자본의 허기짐에 매일 술만 먹고 있으니."

울리아스타이는 사원과 강을 중심으로 북쪽의 마을과.

남쪽의 마을이 나눠져 있다.

산 위의 전경을 구경하고 내려가려던 순간 산 위 정자의 난간에 기대어 하늘을 보고 있는 소년이 보인다.

소년은 하늘을 바라보고, 나는 소년을 바라본다.

"오초르(пүрэв очир), 11살의 소년은 어떤 세상을 바라보고, 어떤 꿈을 꿀까?"

그와 함께 바람이 불어오는 산의 정상에서 하늘과 울리아스타이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겹겹이 둘러싸인 산들을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 호기심 가득 바라보았던, 미래에 대한 막연함은 그 산들 너머의 무엇이었다. 하나둘 그 산들을 오르며 어른이 되었음을 자랑삼는 동안, 단 한 번도 그 산들을 오르거나 넘기를 시도하지 않았다.

사실 인식에 대한 실망 또는 확인된 사실의 부재에 대한 허무함 같은 것들이 두려웠는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그 산들을 오르지 않음으로써 여전히 유지되는 막연한 상상들은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산들을 넘을 것이다 바라였다."

나는 지금 그 산들 너머의 무엇을 확인하기 위해 길 위에 서있다.

오초르와 함께 하늘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는 어느새 떠나버리고, 중년의 검은 남자가 바위에 앉아 오랜 시간을 보낸다.

"아직 그 산들을 넘어가질 못했나? 아니면 산 너머에 무언가를 잃어버린 건가?"

오초르와 남자, 남자와 오초르.

나와 나, 그리고 나와 나.

"오초르, 언젠가 산 너머의 무언가를 확인하길 바라."

오랜 시간을 보내고 산을 내려온다.

울리아스타이는 유난히 분위기가 밝고 시간의 흐름이 느리게 느껴질 만큼 여유롭다.

특별히 세련된 마을도 아니며.

부유하지도 않지만 몽골의 여느 마을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8시가 다 되어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이번엔 계란 후라이를 덮은 쇠고기다. 점심에 먹었던 식당에 비해 잡내가 조금 진하게 난다.

"고기면 돼!"

밥을 모두 먹자 프런트 직원이 다가와 아침을 언제 먹을지 물어본다. 조식이 제공되는 모양이다.

중국의 숙소라면 조식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있을 텐데 식문화가 빈약한 몽골에서는 별 기대가 없다.

"9시!"

프런트 직원과 식당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핸드폰을 달라고 한다. 그리고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조르노크와 처이르에서 듣고 오랜만에 듣는 말이다.

잘 모르겠다고 말하려다 날 쳐다보고 있는 두 명의 눈빛을 보니 안쓰럽기까지 하다.

"툴가야, 잘 설명해줘!"

툴가에게 부탁을 하고, 전화번호를 받은 여직원은 오드바야르처럼 흥분하며 좋아한다.

"툴가가 좋은 얘기 안 해줄 것 같은데."

9시가 넘어도 해가 떨어지지 않고.

쑤니터우이치의 우장징, 대구 아저씨와 위챗으로 소식을 주고받는다. 대구 아저씨는 얼마 전 얼롄하오터까지 자전거로 라이딩을 했는지 GPS 기록을 보여줬고, 우장징은 전에 말했던 일본 여행을 갔고, 지아오강강은 사람들과 초원에 잔디를 심는 행사에 다녀왔다 한다.

9시 30분이 넘어서 일몰이 시작된다. 이러다 몽골 국경인 울기에 가면 10시에 일몰이 시작되는 건 아닐까 싶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몽골을 지나왔지만 추위와 바람, 산길 그리고 부족했던 음식 등으로 체력이 많이 떨어졌나 보다.

"쉬었다 가자."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106일 / 눈 ・ 5도
이흐울-토승쳉겔
변화무쌍한 날씨 탓에 조금은 지쳐있다. 울란곰까지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길을 나선다.

이동거리
43Km
누적거리
9,729Km
이동시간
3시간 43분
누적시간
685시간

A0603
A0603
36Km / 2시간 56분
9Km / 47분
이흐울
힘들어
토승쳉겔
 
 
1,547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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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곰까지 600km 정도의 거리가 남았다. 작은 식당의 넓은 간의 침대에서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어 어제의 피로가 많이 사라진듯하다.

정말 얄궂은 몽골의 날씨이다.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지독했던 어제의 날씨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화창하고 밝다.

"이곳에서 하루 정도 머무를까?"

술을 팔지 않는 작은 식당은 깔끔하고 음식 맛도 괜찮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으니 그것보다 좋은 것이 없는 것 같다.

다음 목적지를 정하기 위해 구글맵을 확인하니 토승쳉겔(Tosontsengel,Тосонцэнгэл)을 거쳐 넘루그(Numrug, Нөмрөг)까지 150km 정도의 거리다. 토승쳉겔에서 넘루그까지 100km 정도의 거리에 작은 마을조차 지도상에 보이질 않는다. 날씨와 바람을 생각하면 하루에 가기에는 어려운 거리다.

"토승쳉겔까지 가서 거리를 줄여놔야겠네."

침낭과 패니어를 정리하고 기분 나쁜 마찰음을 내던 앞브레이크를 정비하며 어제 저녁으로 먹었던 만둣국을 주문한다. 몽골의 작은 식당들은 화로로 음식을 하기 때문에 음식을 만드는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린다.

20분이 조금 넘어 만둣국이 나오고 따듯한 우유차와 함께 든든하게 아침을 해결한다. 만둣국을 먹고 있으니 여자 주인은 육수를 한 그릇 가득 담아내어준다. 제법 음식 솜씨가 좋은 가게이다.

몽골 여행의 어려운 일들 중 하나는 음식인 것 같다. 식문화가 다양하지 않은 몽골에서 변변하게 먹을 음식을 찾기가 힘들고, 제대로 된 식당을 찾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와 같다.

느긋하게 준비를 하고 아침을 먹으니 10시 30분이 되어 출발을 한다.

작은 바람만이 느껴지는 화창한 날씨다.

강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를 가볍게 달려간다. 등쪽으로 떨어지는 따듯한 햇볕이 이내 몸을 덥히고, 라이딩의 가벼움은 140km 거리의 넘루그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욕심을 만들어 낸다.

"무리겠지? 날씨가 너무 아까운데, 이런 날 많이 이동을 해야 하는데."

어제 타르바가태(Tarvagatai, Тарвагатай)를 넘은 이후 펼쳐지는 풍경은 초원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산악지대의 모습에 가깝다. 뾰족뾰족하게 솟은 산봉우리들과 바위, 돌 산들이 겹겹이 늘어서 있다.

이흐울을 6~7km 정도 벗어나니 다시 통신은 완전히 끊겨버리고 화창했던 하늘을 두꺼운 회색 구름으로 뒤덮여 있다.

다시 조금씩 바람이 일며 이흐울의 따듯함과는 다른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풍부한 강줄기는 멋들어진 곡선을 그리며 계속 이어지고, 바람과 함께 진눈깨비가 조금씩 날리기 시작한다. 토승쳉겔 방향의 하늘이 어둡게 변해있고 눈을 흩뿌리는 듯한 풍경이다.

강물을 따라 휘어지고 작은 언덕들이 연이어지는 길에서 쉽게 지쳐간다. 아무래도 어제의 피로가 쌓여있는 것 같다. 멋들어진 바위들이 솟아오른 산 밑에서 잠시 쉬어간다.

"40km 정도조차 쉽게 보내주질 않는구나."

좌우로 불어오며 진눈깨비를 휘날리는 바람을 맞으며 느릿느릿 도로를 따라가다 내 앞에서 멈춰 선 오토바이를 탄 젊은 남자를 만난다. 울란바토르에 간다는 남자와 인사를 하고 뭔가 대화를 이어가려 해도 네트워크가 끊겨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사진을 찍자고 하니 흔쾌하게 헬멧을 벗고 포즈를 취한다. 헬멧을 벗으니 보라색으로 염색을 하여 멋은 낸 청년이다.

멋쟁이 남자와 짧은 만남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연이어지는 오르막과 거세지는 바람이 자전거를 다시 멈춰 세운다.

"얼마큼 온 거지? 15km, 20km 정도 남았나?"

나무가 자라지 않는 산등성이에도 작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있어 산들이 표범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다. 바닥에 주저앉아 잠시 쉬고 있으니 한기가 밀려든다.

"가자. 3시 정도면 도착할 수 있겠지 뭐."

해발 2,500미터의 타르바가태 산을 넘고 1,500미터의 이흐울까지 갑작스레 고도가 떨어지더니,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는 듯 페달링을 힘들게 한다.

언덕과 언덕으로 이러지던 길의 큰 고개를 오르니 바람이 잦아들며 하늘빛이 밝게 변하고 도로의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 도로가 이어진다.

15km 이상은 더 가야 할 것으로 생각했던 토승쳉겔의 모습이 직전 도로의 끝에 보이기 시작한다.

"오호, 다 왔다!"

고갯길의 내리막을 달려 길은 눈앞에 보이는 토승쳉겔의 방향으로 이어지질 않고 우회전을 하며 높은 언덕길 위로 마을의 입구가 보인다.

"왜? 왜 좋은 길을 놔두고 빙 돌아 언덕으로 올라가는 거야?"

"정말 올라가기가 싫어진다."

2시가 조금 넘어 토승쳉겔에 도착한다. 언덕 밑으로 제법 많은 집들이 넓게 들어서 있는 마을이다.

"호텔! 씻을 수 있을까?"

체체를렉의 페어필드에서 마지막으로 샤워를 하고 10일 가까이 양치만을 하며 살았다. 두건을 쓰고 다니는 머리에서 쉰 냄새가 나기 시작하던 참이다.

마을 초입의 언덕에 올라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는 사이 토승쳉겔의 하늘이 변하며 눈을 휘날리고 있다.

마을 초입에 여러 개의 주유소들이 연이어지고, 주유소의 마당에서부터 짖어대며 쫓아오던 개를 향해 계란만한 돌멩이를 주워 던진다.

"가! 이 개******!"

추워진 날씨, 구글 지도를 확인하며 마을 초입에 보았던 스카이라인 호텔을 찾아 마을의 중심으로 이동한다. 여러 개의 슈퍼마켓이 보이고 몇몇의 식당들도 보이는 도로변에 옷과 신발들을 파는 노점상들의 모습도 보인다.

흙바닥의 골목길을 빙빙 돌아 스카이라인 호텔에 도착하자 때마침 승용차에서 내리던 중년의 여자가 나를 유심히 쳐다보며 호텔의 문을 열어준다.

"호텔 맞지?"

호텔의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는 짧은 영어를 할 수 있어 대화를 하는데 어렵지 않다. 하루나 이틀쯤 머무를 것이라 대답하고 25,000투그릭의 숙박료를 확인한다.

1층에 있는 샤워실, 자전거를 놓아둘 장소 등을 안내해 주고 2층으로 올라가 방을 정해준다.

"이건 40,000투그릭!"

여러 개의 낡은 방문을 열어보며 빈 방을 찾더니 침대가 2개 놓인 방은 40,000투그릭이라고 중얼거린다.

낡은 침대가 놓인 방의 열쇠를 건네주고 2층에 있는 화장실의 위치를 알려주고 여주인은 그냥 내려간다.

복도의 끝에 있는 화장실에는 좌변기가 놓여있고 나름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다.

"이 정도면 특급호텔이야!"

1층에 있는 샤워장에도 낡은 샤워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따듯한 온수가 나올지는 모르겠다.

"찬물이면 어때. 씻을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복도 옆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넓은 주방에서 3명의 여자들과 함께 빵을 만들어 굽고 있는 여주인에게 식사를 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 오늘은 레스토랑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호텔을 나와 음식점과 슈퍼가 있던 거리로 나간다. 몽골의 마을에는 가라오케나 디스코텍 같은 것이 음식점보다 많은 것 같다.

"참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네."

슈퍼마켓에 들러 저녁에 먹을 빵과 음료수, 과자 같은 것을 조금 사 들고 나와 길 건너편의 음식점으로 걸어간다.

음식들의 메뉴 사진이 걸려있는 건물 앞에는 옷을 파는 노점상들이 내리는 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고, 가게의 문은 닫혀있다.

"가만. 느낌상 한국 음식을 파는 가게 같은데!"

서롱고스라고 쓰인 익숙한 글자가 보이고 자세히 보니 한국의 음식들의 사진이다. 제육볶음의 사진이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어 버린다.

"왜 이런 운은 없는 것일까? 내일 다시 와봐야지."

진눈깨비의 눈바람이 더 거세지고, 대형 버스에서 내린 한무리의 사람들이 들어가는 식당으로 따라 들어간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카운터에서 사람들의 주문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한 남자가 테이블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자리에 앉는다.

"나도 이것으로 먹어야지."

음식의 사진을 찍고 카운터로 가서 핸드폰을 보여주니 종이에 글씨를 쓴 오더지를 주방으로 건네준다.

양고기의 잡내가 조금 있었지만 아주 맛있게 허기를 달랜다.

"역시 고기를 먹어야 해."

진눈깨비는 어느새 우박으로 변하여 정신없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슈퍼도 아니고 병원도 아닌데 사람들의 출입이 빈번한 건물이 궁금하여 들어가 본다.

핸드폰 가게들과 주류가게, 꽃집 그리고 2층에는 옷가게들이 들어선 일명 몽골의 쇼핑몰 건물이다.

가게들을 둘러보면 나와 눈이 마주친 젊은 꽃집의 여자가 나를 부른다.

"서롱고스!"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가게를 둘러보는 동안 웃는 얼굴로 나를 지켜본다. 몽골에서 꽃집을, 그리고 붉은 장미를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콩알만한 우박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은행에 들러 약간의 현금을 찾고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의 직원들은 여전히 빵을 굽느라 바쁘다.

넓게 밀가루 반죽을 펴서, 버터를 바르고, 설탕을 뿌린 후 돌돌 말아 자르고 오븐에 넣으면 끝이다.

따듯한 물과 컵을 구하러 내려갔는데 구워낸 빵을 2개 건네준다. 그냥 밀가루 빵 맛이다.

슈퍼에서 사온 박카스를 마시고 누워있으니 누군가 방문을 두드린다.

전구가 없던 방에 전구를 끼워 넣기 위해 남자 직원이 서있다.

전구를 끼워 넣고.

불을 켜는데 남자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 스위치가 있는 벽을 확인하니 스위치가 없고 전선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아니, 딱히 불은 없어도 되는데 저걸 어떻게 끄지?"

"간만에 씻어 볼까?"

감바의 집 현관을 여느라 20분 정도를 낑낑댔던 기억이 난다. 몽골의 문들은 자물쇠가 딸깍딸깍 두 번이 걸린다.

1층에 있는 샤워실에는 보기와 달리 따듯한 물이 잘 나온다. 오랜만에 머리를 감느라 중국 호텔에서 가져온 작은 샴푸통을 다 비운다.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울란바토르의 테를지의 리조트에 취직을 했다는 김병남 선교사님과 오랫동안 통화를 한다. 한국 사업가가 운영하는 리조트에 관리인으로 취직을 했는데 새롭게 일을 하려다 보니 약간은 피곤한 모양이다.

리즈후이에게 위챗 메시지가 와서 번역기를 돌려가며 오랫동안 메시지를 주고받고, 휴가를 받아 아내에게 갔다는 오초르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잠을 자는지 답장이 없다.

"이 침대 시트는 어디에 있는 첼시 호텔이냐?"

데이터 만수르가 되어 CBS 라디오를 들으며 별 기대 없이 카톡으로 사연을 쓰고 신청곡을 보내본다. 카톡 메시지를 보내고 시계를 확인하니 8시 50분이 넘어간다.

"끝날 때가 됐네. 괜히 보냈네!"

김현주의 행복한 동행, 방송이 끝나는 마지막 광고가 끝나고 클로징 멘트를 하던 김현주가 나의 사연을 읽어준다.

"멀리 몽골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는 변차섭씨가... "

"헐!"

아쉽게 마지막으로 급하게 신청된 노래라 이상은의 노래는 중간에 끊겨버렸지만 뜻밖의 즐거움이다. 12시가 가까워지며 창밖으로 거칠게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다. 아무래도 내일 길을 떠나긴 틀린 것 같다. CBS 음악 FM은 저작권의 문제 때문에 다시 듣기가 제공되지 않는 모양이다. 온갖 곳을 검색하고 유튜브, 팟캐스트 등등을 뒤적여봐도 다시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자전거 세계 일주 106일째, 중국을 거쳐 몽골의 초원을 달리고 있어요. 아무것도 없는 끝없는 몽골의 넓은 초원을 홀로 달리는 것이 가끔 외롭지만... 저의 눈을 통해 함께 세상을 보고 있을 그녀와 듣고 싶네요. 항상 그녀의 삶이 행복하기를.."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93일 / 맑음 ・ 20도
카라코룸-코톤트-알탄유브-체체를렉
카라코룸에서의 야영을 마치고 체체를렉으로 향한다. 남부의 사막 초원과는 다른 몽골 중부의 푸른 산악 초원을 달린다.

이동거리
111Km
누적거리
9,362Km
이동시간
7시간 12분
누적시간
647시간

에르덴산트
A0602
85Km / 5시간 08분
36Km / 2시간 04분
카라코룸
알탄유브
체체를렉
 
 
1,180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새벽 몽골 초원의 날씨는 생각만큼 쌀쌀하고 추웠고, 깊은 잠에 빠져들지 못하고 가수면에 가까운 잠자리로 새벽까지 뒤척였다. 겹겹이 옷을 껴입고 여름 침낭을 덮었지만 조금씩 한기가 밀려들어 불편한 잠자리를 뒤척이게 만들었다.

새벽 5시가 되어서야 피곤함에 못 이겨 잠에 빠져들고 해가 떠오르며 따듯해진 텐트 안에서 피곤함을 달래며 게으름을 피웠다. 거세게 불던 바람은 사라지고 밤새 귀를 간지럽히는 새들의 지저귐이 즐겁다.

"마른 풀과 새롭게 새싹들이 자라나는 초원의 냄새 그리고 새들의 노랫소리."

"선교사님, 여행 다니며 누구라도 만나려면 침낭이 하나 더 필요하겠어요."

커피를 끓이고 선교사님과 앉아 몽골에 대한 궁금증과 유목 민족의 몽골인들의 이야기로 초원의 아침을 보냈다.

몽골의 초원에서 쑥처럼 자라는 풀은 독초처럼 만지면 쓰라리고 아파서 동물들조차 먹지를 않는다고 한다.

카라코룸(Хархорин)에서 체체를렉(Цэцэрлэг)까지는 120km 정도의 거리이다. 김병남 선교사는 체체를렉으로 가는 길의 초입까지 배웅을 해준다. 체체를렉 100km의 거리를 알리는 이정표에서 차량을 세우고 자전거를 꺼내어 패니어들을 장착한다.

고생스러운 잠자리였지만 함께 추억을 만들어준 선교사님과 포옹을 하며 인사를 하고 체체를렉으로 향한다.

파릇파릇 풀들이 자란 몽골 중부의 초원은 남부의 사막 초원과는 달리 생동감이 느껴진다.

한 시간 정도를 달려 작은 마을 호턴트(Khoton, Хотонт)에 도착한다.

카라코룸에서 이어지는 작은 강줄기가 마을을 돌아가고.

"말이나 양들은 자기 소유를 어떻게 확인하죠?"

넓은 초원을 돌아다니는 가축들의 소유를 어떻게 확인하는지 물었을 때 선교사님은 유목민의 고유 인장이나 인식표를 찍고, 뿔 같은 곳에 각자의 색으로 표시를 한다고 알려주었다.

염소들의 양쪽 뿔에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져있고, 양들은 엉덩이에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져있다.

마을의 초입에도 풀을 뜯는 양들이 가득하고.

"이놈들은 노란색과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져있네."

도로변에 있는 작은 슈퍼에서 물과 오렌지 음료수를 산다. 중국에서 매일처럼 먹었던 콜라가 지겹기도 하고 목이 칼칼하여 콜라보다는 과일음료가 낫겠다 싶다.

계산을 하며 밥을 먹는 제스처를 하며 식당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고 손가락을 가리켜 알려주는 길 건너편의 식당을 확인한다.

슈퍼에서 나와 잠시 쉬고 있으니 조그마한 초등학생이 다가오며 인사를 한다.

"Hi, My name is Sutan!"

수탄과 인사를 하고 가볍게 악수를 청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슈퍼의 여주인이 우리들을 지켜보며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다.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수탄을 다시 불러 사진을 찍는다.

슈퍼의 주인이 알려준 식당은 작은 호텔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자전거를 묶어두고 케니지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한때 우리나라의 경양식집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던 케니지의 색소폰 연주는 몽골의 레스토랑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제복을 입은 여직원이 메뉴판을 건네주고, 소고기와 볶음밥이 함께 있는 9,900투그릭의 음식을 주문한다.

"4,500원 정도 하는가? 아주 소고기가 가득가득하네!"

지금껏 몽골에서 먹어 본 소고기들은 마블링 같은 기름 부위가 전혀 없는 살코기들이다. 짭조름한 밥과 소고기 볶음은 탄산음료나 주스와 함께 먹으면 괜찮을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배가 차오르니 게으름과 함께 나른함이 찾아든다.

"여기서 하루 머물다 갈까?"

잠자리의 불편함으로 피곤함이 남아있던 터라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여직원을 불러 숙소의 숙박비를 물어보니 핸드폰에 9,900을 입력한다. 잠자는 제스처를 하며 호텔 쪽을 가리키니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100,000을 입력하여 보여준다.

"헐! 시골 호텔에 뭐가 있길래 50,000원씩이나 하는 거야?"

체체를렉으로 좀 더 이동하여 적당한 곳에 텐트를 치고 시간을 보낼 생각으로 길을 나선다. 게으른 페달링으로 속도가 나질 않고 길을 산악 초원의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

고개를 넘으면 다시 고개가 이어지는 전형적인 산악 초원의 길, 한 시간씩 라이딩과 휴식을 반복하며 지나치는 양들과 소, 말들에게 인사를 하고.

헤드라이트를 깜박이거나 크게 손을 들어 인사하는 운전자들 그리고 유목민의 복장을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사람들에게 손인사를 하며 지루함을 달랜다.

터널이 없는 몽골의 산악 초원은 크게 회전을 하며 하늘을 향해 올라가야만 한다. 오후가 들어서며 바람이 사라지고, 길게 이어지며 반복되는 오르막길은 나지막이 떨어지는 내리막길로 힘든 업힐의 보상을 한다.

업힐과 다운힐의 질주, 푸르게 변해가는 산악 초원과 하늘의 구름을 보며 조금씩 라이딩의 즐거움이 찾아든다.

"정말 오랜만에 바람 없이 달려보네."

"일단 바람막이를 벗고 달려 볼까?"

"뭔가 허전하군."

"저걸.."

"야! 심심한데."

"뛰자!"

초원 한가운데에서 쓸데없는 제자리 뜀박질을 세 차례 정도 하니 다리에 힘이 없다.

"괜히 했어!"

핸들바의 언더를 잡고 내리막과 오르막의 길을 신나게 달리다 보니 초원에서 말을 타고 말들을 몰던 목동이 나를 보며 손을 흔든다. 자전거를 눕히고 초원으로 걸어 들어가니 앳된 얼굴의 목동이 인사를 한다.

풀밭에 덥석 주저 않아 말들을 주시하며 나를 보더니 말의 고삐를 건네주며 뭐라고 말한다.

"말을 타보라고? 나 말 못 타!"

짧은 새싹의 풀들을 뜯어먹느라 건강한 치아를 드러내며 바쁜 말, 몽골의 말들은 크기가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다.

"너 이름이 뭐야? 난 싸비야."

손가락을 가리키며 내 이름을 말하고, 목동을 가리키며 이름을 물어보는데 자꾸만 내 발음을 따라 하면서 웃기만 할 뿐 자기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구글 번역기는 네트워크가 오프라인이 되면서 작동을 하지 않고.

"너, 취니 네르? 타니인가? 타니 네르? 취니, 타니 네르?"

"타르마!"

다섯 번을 타니, 취니 하면서 이름을 물으니 그제서야 이해한 듯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말해준다.

"다르마? 타르마?"

아무리 들어도 몽골의 발음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그냥 타르마라고 부른다.

"타니 게르..?"

게르가 어디인지를 묻고 게르 주변에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잘 번역이 되지 않는 구글 번역기가 오프라인으로 완전히 죽어있다.

"이럴 때 꼭 데이터가 떨어지거나 네트워크가 끊기더라."

혼자서 중얼거리며 게르가 어디인지를 물어볼 방법을 찾는 동안 타르마의 말에서 '바이시떼'라는 말이 들려온다.

"엉. 간다고?"

급하게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니 타르마는 이미 말에 올라 멀리 흩어져 있는 말들을 향해 소리를 치며 달려고 한다.

"타르마, 바이시떼!"

손을 흔들고 떠난 타르마는 멀리까지 흩어져있던 말들을 몰고 와서 도로 건너편으로 말들을 몰아 이동시킨다.

"소들은 시간이 되면 자기들 스스로 집을 찾아오는데 말들은 그냥 아무 데나 이동을 해버려서 목동들이 관리를 해야만 한다."

김병남 선교사의 말처럼 조금 전에 눈앞에서 풀을 뜯고 있던 말들이 타르마와 잠깐 얘기를 나누는 동안 아주 멀리까지 나가있다.

도로 건너편으로 말들을 몰아놓고 타르마 천천히 나를 보며 다가오더니 담배를 달라는 제스처를 한다.

"엉, 담배를 달라고?"

중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타르마는 손과 얼굴이 거칠게 변해있다.

"그래, 이거 펴!"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건네주고 얇은 웃음을 짓는 타르마에게 라이터로 불을 붙여주려 하니 아니라는 듯 담배를 안쪽 주머니에 넣는다.

"지금 안 핀다고? 그래, 그래!"

잠시 머뭇거리던 타르마가 검지 손가락을 펴서 한 개비를 더 달라는 제스처를 한다.

"아, 그래. 하나 더 가져가!"

담배 두 개비를 건네받고 수줍게 웃으며 인사를 하더니 이번에는 양들이 있는 곳으로 말을 몰고 멀리 멀어져 간다.

체체를렉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 야영을 할 생각으로 느긋하게 가다 보니 체체를렉의 거리가 여전히 45km가 남아있다.

"체체를렉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마을이 있던데, 거기까지만 갈까."

오늘의 목적지를 정확히 정하지 않은 게르나 주유소가 있는 적당한 곳까지 갈 생각으로 이동하던 중 김병남 선교사에게 전화가 온다.

"어디까지 가셨어요?"

"체체를렉이 한 45km 정도 남았습니다."

"체체를렉에 가면 외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는데, 그곳에 가보세요. 비싸지 않고 괜찮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여행 경비가 많이 소요될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은 저렴한 도미토리나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해야 한다. 중국을 여행하는 동안은 도미토리의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고 저렴한 빈관들이 많아 굳이 이용을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도미토리의 생활도 경험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스트하우스가 체체를렉 어디에 있는데요?"

"체체를렉에 도착해서 가다 보면 간판이 나와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알 거예요."

외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는 말을 듣고 오늘 체체를렉까지 이동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열심히 달리면 일몰 전에는 도착할 수 있겠는데. 근데 구글지도로 주소라도 찍어주시지 몽골 도시가 아무리 작다고 해도."

여전히 이어지는 끝없는 평지와 하늘로 향하는 오르막 그리고 내리막을 이어가며 빠르게 체체를렉을 향해 페달을 밟는다.

멀리 초원 위로 나무들이 자라 이어지는 실루엣이 보인다. 몽골의 초원에서 나무를 본 것은 처음이다.

체체를렉 이전의 작은 마을 알탄유브(Altan-Ovoo, Алтан-Овоо)의 입구가 나오고.

작은 마을의 뒤편으로 오래된 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서 있다.

"참 신기하네."

나무들이 들어선 숲의 뒤로 제법 크기가 크고 맑은 물이 흐르는 큰 강이다.

"강이 있어서 나무들이 강을 따라 이어지고 있는 거구나."

강을 넘는 작은 다리를 지나 초원의 모습도 변한다. 올록볼록 엠보싱처럼 물기를 잔뜩 먹은 듯 보이는 초원의 모습이 색다르다.

콜라와 물을 마시며 쉬는 동안 지나치는 차량들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거나 경례 같은 제스처를 하며 인사를 해준다.

5시 50분, 22km 정도가 남은 체체를렉까지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이면 넉넉하게 도착할 것 같다.

해가 떨어지는 체체를렉의 방향으로 오묘한 구름 한 덩어리가 보인다. 지면을 향해 무언가를 흩뿌리며 지나가는 거대한 우주선처럼 보인다.

점점 구름에 가까워지고 부드러운 능선을 이어가던 초원의 산등성이들도 오묘한 모양으로 바뀌어 간다.

거대한 기암괴석의 산의 모양을 따라 돌아가는 도로.

바위산을 크게 돌아 나오자 체체를렉의 시계를 알리는 듯한 표지석이 맑은 강물 주변에 설치되어 있다.

"바위와 산, 초원과 물이 만나니 정말 풍경이 예술이네."

차량을 세우고 쉬고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체체를렉을 향하는 길을 서두른다.

바위산을 지나 원을 그리듯 크게 돌아가는 도로에는 갑자기 거센 맞바람이 불어 대기 시작하고 비인지 눈인지 모를 무언가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끝일 났다. 18km 정도는 남았을 텐데."

오후 들어 바람 한 점 없이 조용했던 날씨가 요동을 치며 거센 바람을 안겨준다. 앞으로 전진하기가 너무나 버거운 페달링의 무게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끝없는 고갯길들이 이어진다.

"왜 항상 마무리는 이렇냐고!"

바람을 맞으며 오르막을 오르는 1시간 동안 모든 체력이 소진되고, 마치 콧노래를 부르며 살랑거리던 하루가 너덜너덜해진 느낌이다. 체체를렉의 초입을 알리는 입구에서 사진을 찍는 동안 자전거는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철퍼덕 넘어지고야 만다.

작은 언덕을 넘어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도로를 따라가고.

언덕의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체체를렉의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인샨드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마을의 풍경인데, 푸른 초원과 마을의 배경으로 들어선 멋진 산의 모양 그리고 멀리 이어지는 강의 실루엣들이 어우러지며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일단 체체를렉에 왔는데, 김서방을 어떻게 찾지?"

"주유소가 있는 로터리를 지나서 오른쪽으로 200미터 정도 가면 있어요."

김병남 선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게스트하우스의 정확한 위치를 물어보았지만 여전히 막연하다.

"주유소는 보이는데 로터리는 없고, 오른쪽에는 능선을 따라 집들밖에 없어 보이는데."

마을의 입구에 도착하여 작은 슈퍼에 자전거를 세우고 구글 지도를 검색하니 언덕 너머에 체체를렉의 시내가 들어서 있고, 선교사님이 알려준 게스트하우스가 좋은 리뷰 평점으로 검색이 된다.

"Fair Field Guesthouse."

외국의 자전거 여행자들이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였는지 패니어를 단 자전거 여행자들의 사진도 검색된다.

작은 고개를 넘어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좌우의 언덕으로 집들이 들어서 있고, 왼쪽으로 체체를렉의 시가지들의 모습을 들어낸다.

김병남 선교사가 알려주었던 주유소가 있는 회전 교차로가 보이고.

몇몇 작은 호텔들이 있는 골목을 따라가니 심플한 간판을 걸어놓은 페어필드 게스트하우스가 나타난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체크인을 하려고 2층에 있는 프런트로 올라갔다. 직원들 모두가 영어를 할 수 있어서 짧은 영어로도 간단하게 체크인을 한다.

얼마 정도 머무를 것인지 묻길래 모르겠다며 2~3일 정도라고 하니 그냥 웃으면서 체크인 서류에 이름을 적고 체크인이 끝난다.

게스트하우스에는 마지막으로 3인실 방이 하나 남아 있다. 49,500투그릭의 숙박 요금이라 게스트하우스 치고는 비싸다 생각이 들지만 몽골의 터무니없는 호텔 요금을 생각하면 괜찮게 느껴진다.

자전거를 게스트하우스의 측면에 있는 뒷마당 같은 곳에 묶어 둔다. 여행이 길어지니 이곳저곳이 부러지고 끊어지고 고장이 나기 시작한다.

잘 꾸며지고 정성스럽게 관리하는 게스트하우스처럼 느껴진다.

창가 침대에 자리를 잡고.

공용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식당으로 내려갔지만 빵을 주로 판매하는 곳이라 딱히 먹을만한 것이 없다.

숙소를 나와 주변을 둘러봐도 마땅한 식당이 없고 다시 숙소의 식당으로 들어가 메뉴판을 들고 햄버거를 어렵게 선택한다. 주문을 하려고 여직원에게 다가가니 9시에 영업이 종료라고 하며 안타까운 미소를 보인다.

"안돼! 나 배고파!"

방으로 돌아와 비상식으로 사두었던 작은 빵들을 먹으며 하루를 정리한다.

"배고프다고!"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89일 / 흐림 ・ 10도
울란바토르
울란바토르의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보그드 칸 울루(Bogd Khan Uul)에 데려다 주겠다는 툴가를 기다리며 하루를 보낼 생각이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8,877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626시간

기념풍가게
때밀기
0Km / 00분
0Km / 00분
숙소
우체국
숙소
 
 
695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딱히 울란바토르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도시지만 한국의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울란바토르다.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다 칭기스칸 광장의 옆에 있는 국립 역사 박물관을 구경하기 위해 숙소를 나온다.

찌뿌둥한 하늘이 어두워지는 울란바토르.

칭기스칸 광장을 지나 광장의 측면에 있는 박물관으로 걸어간다.

한두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진다.

"잉, 닫혔네."

일요일이라 개관을 하지 않고 겨울 시즌인 5월까지는 월요일에도 휴무라고 쓰여있다.

"5월 14일이 겨울 시즌이야?"

잠시 시내를 걸어 다니며 구경을 하고 근처에 있는 마리앤마타의 기념품 가게로 간다.

찾고 있던 몽골의 엽서들이 보이고.

지갑이나 가방, 악세사리 같은 다양한 수제품들도 많다.

엽서와 작은 냉장고 자석을 산다.

구름의 모양이 심상치가 않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툴가가 알려주었던 우체국이 보인다.

"호텔 옆이라고 했는데 두 블록은 넘겠다야."

우체국의 안쪽에 우편을 보내는 공간이 있고.

전시되어 있는 엽서들과 우표들을 구경하고.

문이 열려있는 Post Shop에 들어가 엽서를 보낼 수 있는지 물어본다.

"Can I sand post card to korea here?"

시큰둥하게 아무 답변도 없이 여직원은 밖으로 나가버린다.

"뭐야? 나한테 똥이라도 묻었어?"

잠시 후 돌아온 여직원은 1,000투그릭의 우표를 보여주며 계산기에 1,100을 찍어서 보여준다.

"응, 말보다 이게 편하다고!"

엽서를 보내는 방법을 확인하고 호텔로 돌아간다.

순식간에 검붉은 구름이 하늘을 덮어 버리고.

공원에서는 어르신들이 체스를 두고 있다.

옷을 입은 모습도 다르지만 문화도 중국과 차이가 난다.

툴가는 어머니의 일을 도와야 한다며 보그드 칸 울루에 갈 수 없다며 미안해한다.

검붉은 구름의 이상한 구름과 하늘.

"5성급 호텔에서 이 무슨 복에 겨운 호강이야."

백 년 만에 펜 글씨를 써본다. 삐뚤삐뚤 이상해진 필체가 돼버렸다.

"안되네. 어릴 땐 나름 개성 있고 괜찮았는데."

SNS나 전화가 있으니 엽서라는 것이 생각보다 큰 재미가 없다. 별 내용이 없어도 나라들을 여행하다 보면 하나둘씩 보내진 엽서가 좋은 추억이겠지 싶다.

엽서를 보내기 위해 다시 우체국으로 가려니 비가 내리고 있다.

추적추적 오는 듯 마는 듯 떨어지는 비지만 영어도 써볼 겸 호텔의 우산을 빌려봤다. 고작 필요한 말은 '두유 햅 엄브렐라'가 전부지만.

"무려 60년대의 5성급 호텔인데, 재밌잖아."

징기스칸 광장을 지나 우체국에서 엽서를 보내고 돌아오는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산을 쓰지 않고 다닌다.

우산을 쓰고 있는 내가 이상한 것처럼 느껴질 만큼 그냥 비를 맞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일 년 강수량이 적어 그냥 맞고 다니는 것이 편한가?"

호텔에 도착하여 우산을 접는데 잠깐 동안 눈을 의심한다.

"이건 뭐야?"

접은 우산의 표면에 검은 얼룩들이 가득하다. 깨끗한 호텔의 우산이었기에 검은 얼룩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빗물임이 틀림없다.

툴가의 말처럼 울란바토르의 공기가 꽤나 안 좋은 것 같다.

"얘들아, 너네 우산 쓰고 다녀라!"

배가 출출한데 딱히 밥을 먹을 식당을 찾기가 귀찮다. 호텔의 카페에 들어가 커피와 팬케잌 한 조각으로 이른 저녁을 해결한다.

몽골과 중국 여행의 차이점 중에 하나가 먹거리인 것 같다.

음식점이나 길거리 음식이 너무 흔한 중국에 비해 몽골은 그리 다양하지가 않다.

방으로 돌아와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담그고 목욕을 한다. 한국에서 이태리 타월을 세 장 가지고 왔는데, 긴 것도 가져올 걸 그랬나 싶다. 손이 닿지 않는 등 부분이 너무나 아쉽다.

혹시나 욕조의 수챗구멍이 막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쪼르륵 거리며 잘 빠져내려간다.


조금 더 울란바토르에서 쉬고 싶은 생각이 든다.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88일 / 맑음 ・ 18도
울란바토르
한국 식당이 영업을 마쳐 함께 밥을 먹지 못했던 툴가와 점심을 하기로 한다. 오후에 만나 한국식당 연아에 갈 것이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8,877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626시간

뒹굴뒹굴
툴가점심
00Km / 00분
0Km / 00분
숙소
연아식당
숙소
 
 
695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3, 4시 정도에 툴가를 만나 연아에서 밥을 먹자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조식을 먹고.

"이게 제일 맛있네."

호텔 프런트로 내려가 칫솔세트와 물이 없는지 물어보니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한다.

"아니 뭐. 됐다!"

자전거를 놓아둔 창고에서 패니어들을 떼어내 방으로 옮겨놓고 물과 음료수 등을 사기 위해 근처에 있는 슈퍼로 간다.

넓은 지하의 공간이라 규모가 크지만 생각보다 많은 물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패니어를 옮기는데 도와준 직원에게 바카스 같은 음료수를 하나 건네주고 올라온다.

"오호, 욕조가 있다는 말이지."

4시가 되어 툴가가 호텔로 찾아와 함께 어제 저녁에 걸었던 길을 따라 연아식당으로 간다.

"진짜 여기 하늘은 정말 좋다!"

"형, 여기 미세먼지 많아요. 냄새 안 나세요?"

작은 도시에 차량이 많고 석탄을 연료를 사용하는 울란바토르의 공기가 그렇게 좋지는 않은가 보다.

"여기는 해발 1,300미터에 있는 고산 지대라고!"

큰 의미를 알 수 없는 서울의 거리를 지나.

소파가 놓여있는 한국 레스토랑 연아에 들어간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제법 사람들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제육볶음을 주문하니 기본 반찬들이 나오고.

제육볶음이 나온다. 몽골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조금 단맛이 느껴지는 그런 제육볶음이다.

밥을 먹으며 오초르에게 전화를 걸어 툴가의 통역으로 안부도 전하고, 울란바토르에 진출해 있는 CU에 들러.

시원한 얼음 음료수를 마시고.

딱히 쉬며 이야기할 공간이 없는 울란바토르에서 씨유 편의점의 테이블 공간은 사람들로 가득가득하다.

숙소로 돌아온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빨래를 한다. 몽골의 여행 동안 모래바람을 맞고, 울란바토르로 들어오는 흙구덩이 길에서 묻은 누런 먼지들이 계속해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잔다.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87일 / 맑음 ・ 16도
볼러-울란바토르
초원의 캠핑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야영을 해서 기분이 좋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울란바트로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을 떠난다.


이동거리
126Km
누적거리
8,877Km
이동시간
9시간 23분
누적시간
626시간

AH3
AH3
77Km / 5시간 13분
49Km / 4시간 10분
볼러
시계
울란바토
 
 
695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야영을 하면 좋은 것 중에 하나가 일찍 아침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며칠째 아침이 기온이 떨어져 제법 쌀쌀한 날씨이지만 따듯한 침낭 속에서 세상모르게 푹 자고 일어난다.

해발이 높은 몽골의 아침은 지면에 닿아있는 구름 탓에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가 없다.

하루의 굿모닝을 알리고.

몽골의 화장실에는 문이 없는 재래식 화장실이 많다. 처이르에서 길을 가다 가끔 사람이 들어앉아있는 화장실을 지나칠 때면 괜스레 내가 더 미안해진다.

텐트를 정리하고 언 몸을 녹이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가 아침을 주문한다. 어제와 같은 메뉴를 주문하니 이번에는 카운터 옆에 있는 보온병을 가리키며 무언가를 말한다.

"아, 차를 마실 거냐고 묻는 거구나."

식사와 함께 따듯한 우유차를 500투그릭에 추가로 판매하고 있다. 중국의 차가 입안을 정결하게 해주는 느낌이라면 몽골의 우유차는 몸을 따듯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다.

밥을 먹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으니 어젯밤 내 손을 끌며 집으로 가자고 했던 아저씨가 찾아와 인사를 한다. 아마도 추운 날씨에 별 탈 없이 잘 보냈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잘 잤다는 인사의 제스처를 하니 자신의 집으로 가서 밥을 먹고 잠을 잤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듯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따듯하게 관심을 가져준 아저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초원의 작은 식당을 떠난다.

울란바토르까지는 이제 120km 정도가 남아있다. 조금 일찍 라이딩을 시작했고, 어제와 비슷한 느낌의 바람이 불어오니 오후가 조금 넘은 시각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이르까지의 초원에서는 도마뱀이 자주 보였는데, 이곳에서는 작은 햄스터처럼 생긴 귀여운 설치류가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인다. 아주 귀엽게 생긴 녀석인데 가까이 가면 작은 굴속으로 재빠르게 몸을 숨겨버려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이 녀석아, 나와봐!"

안타까운 것은 달리는 내내 도로 위로 로드킬 된 녀석들의 사체가 많다는 것이다.

천천히 이어지는 오르막의 길이지만 바람이 적어 크게 힘이 들지는 않는다.

작은 언덕들을 넘으며 20km 정도를 달리니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도로변을 따라 좌우로 들어선 작은 마을이다.

울란바토르가 가까워지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버스 정류장이 도로변에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울란바토르까지는 버스가 운행되는 모양이다.

많은 수의 양떼들을 게르가 있는 곳으로 몰고 가느라 도로가 막히고.

오토바이를 타고 양떼를 모는 목동과도 손인사를 한다.

출발한지 2시간 35km 정도 지나 어제 도착하려 했던 바가항가이의 교차로 나온다.

바가항가이에 접어들며 갑작스레 바람의 거칠어지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자전거를 밀어주는 뒷바람이다.

"86km 정도면 3시 전에 도착할 수 있겠는데."

높은 언덕의 좌측으로 들어서 있는 바가항가이. 고개를 넘는 동안 뒤쪽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아무런 이유 없이 맞바람으로 돌변하며 미친 듯이 불어댄다.

어렵게 어렵게 언덕을 오르고 길게 이어지는 내리막길에서 자전거가 굴러가지를 않는다.

"뭐야 갑자기!"

두 시간 동안의 평화롭던 라이딩이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해버린다. 바가항가이의 검문소에서 버스에 내려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자전거를 눕혀놓으니 남자가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어디를 가는 거예요?

자민우드에서부터 짧게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고 있다. 울란바토르까지 80km가 남았다며 알려주는 남자에게 명함을 건네주니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순식간에 돌변해 버린 초원의 날씨이다. 5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던 울란바토르의 도착 시간을 짐작할 수 없다.

"아, 80km나 남았는데. 이건 너무 하잖아."

검문소를 지나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을 향해 페달링을 시작한다. 휘청휘청 거리는 자전거를 억지스레 전진시키는데 멀리 주유소의 담벼락에서 누워있던 검은 개가 나를 향해 짖으며 맹렬하게 뛰어온다.

"아! 이 개*********. 오지 마! 오지 말라고!""

50미터가 넘어 보이는 거리를 빠르게 달려온 크고 검은 개는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자전거를 쫓아온다. 바람 때문에 느릿느릿 기어가기도 힘든 상황에 더러운 개가 쫓아오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차량이 지나가 개를 도망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죽을힘을 다해 페달을 밟는다. 한참 동안을 따라오며 짖어대던 개가 떨어지자 다리의 힘이 모두 풀려버린다.

"아! 개*******************************."

휘몰아치는 모래바람 속에 모든 것들이 뿌옇게 변해버린다. 점점 가시거리가 짧아지고 나를 지나치는 차량들은 모랫바람 속으로 사라지고, 저 멀리 모랫바람 속에서 헤드라이트를 켠 차량들이 갑작스레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이리저리 요동을 치며 불어대는 초원의 모래바람에 페달링을 멈추고 만다.

눕혀놓은 자전거의 바퀴는 모래바람에 의해 바쁘게 회전을 하며 돌아가고 있다.

"이런 바람은 뒤에서 불어주면 안 되는 거니?"

갑자기 시작된 모래바람이 잦아들기를, 아니면 도로의 방향이 바뀌기를 바라며 꾸역꾸역 길을 이어간다.

계속 이어지는 언덕과 고개의 오르막길들, 한가롭게 시작되었던 울란바토르의 여정이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잠시 바람을 피할 곳조차 없는 초원의 한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냥 가던 길을 이어가는 것뿐이다.

"저 파란 하늘은 또 뭐야?"

지옥 같은 바람이 불어오는 지상과는 달리 머리 위의 하늘은 미친 듯이 파랗다.

바람으로 인해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사이, 길은 오르막의 산길이 계속 이어진다.

"나를 죽여라. 이놈들아!"

거친 바람과 지나가는 차량들의 돌풍, 갓길조차 없는 좁은 도로.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 아무것도 보이질 않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높은 산등성이가 눈높이에 맞춰질 때쯤 자전거를 멈춰 세운다.

"에이 **!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

어제 아침 간져가 싸준 양고기만두를 꺼내어 바람을 등지고 길바닥에 퍼질러 앉는다.

"죽어도 밥은 먹고 죽어야겠다."

식어있는 만두지만 간져가 센스 있게 넣어둔 오이 피클과 함께 먹으니 그런대로 제법 맛이 좋다. 누렇게 변해버린 풍경 위로 솜뭉치를 문질러 놓은 듯 떠있는 구름들을 보며 만두를 먹는다.

시원한 오이 피클을 먹는 사이 세 개 정도 남은 양고기의 반찬통이 돌풍으로 엎어져 데구루루 초원을 향해 굴러가 버린다.

"#$%#^#$#%$%#^#$%#."

바람 때문에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꽤나 높이 올라온 느낌에 산들샘 GPS를 켜보니 1,650미터까지 올라왔다. 울란바토르에서부터 시작되는 몽골 중부의 산악지형을 예상했지만 초원이 시작되던 중국 내몽골의 장베이을 넘던 환경과 너무나 비슷한 모양이다.

"죽겠네. 저기 좀 더 올라가야 할 것 같은데."

휘청거리며 기어가는 자전거를 향해 지나가는 차량들은 스카프를 흔들거나 연이어 손인사를 하며 응원을 보낸다. 애써 답례를 하기 위해 잠깐 핸들바에서 손을 떼면 미친 듯이 휘청거리는 자전거.

"힘들어. 응원하지 마!"

"제발 저것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고개를 넘으며 이유 없이, 갑자기, 불현듯 바람이 사라지기만을 바랐지만.

그럴 일은 없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쭉 내려가 주기를 바랐지만.

그럴 일은 여전히 없다.

소들마저 자리에 앉아 바람을 피하는데, 할 일 없는 여행자만이 쓸데없이 페달질을 하며 바람을 이기고 있다.

도무지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 산등성이의 도로에 질리듯 자전거를 멈춰 세운다.

"언제 끝낼 거야?"

알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길을 확인하기 위해 어붜가 쌓아진 언덕 위로 올라가 본다.

거센 바람에 몸이 휘청이게 만드는 언덕의 위에서 주변을 둘러본다. 뿌옇게 사라지는 도로는 분명 내리막길이고, 저 멀리 풍력 발전기의 실루엣이 보인다.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도로를 지나던 차량에서 한 남자가 내리더니 어붜가 쌓인 언덕으로 뛰어 올라온다.

"그렇게 급한 거야?"

산등성이 쪽에 세워진 어붜를 향해 급하게 달려가던 남자는 어붜를 몇 바퀴 돌더니, 내 쪽으로 달려와 이쪽의 어붜를 정신이 뛰어다닌다.

돌풍과 바람소리, 모래와 흙먼지, 양떼와 말떼들 그리고 어붜 주변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사람까지 정말 혼을 쏙 빼놓는 느낌이다.

경사가 제법 가파르게 떨어지는 도로를 브레이킹을 하며 조심스럽게 내려온다. 지나가는 차량이 만드는 돌풍에 자전거가 휩쓸리는 것이 무엇보다 걱정이 된다.

"내리막조차 브레이킹을 하며 가야 하다니."

말들의 한가로움과는 달리 변속기마저 트러블을 일으키며 변속이 원활하지 않고.

급경사의 구간이 지나고 나지막이 떨어지는 내리막이 이어진다. 상태가 좋지 않은 도로를 살펴 가며 브레이크를 풀고 속도를 내어본다.

"프리덤!"

산을 돌며 좌측으로 크게 휘어지던 내리막은 그것으로 끝이 나고, 정면의 맞바람이 소떼와 함께 가던 길을 멈춰 세운다.

"저기 저 언덕은 또 뭐야?"

소들의 사체들과 쓰레기들의 뒹구는 언덕을 다시 넘고, 토브를 지나 울란바토르의 경계에 도착한다.

준모드와 울란바토르의 갈림길, 직진을 하여 울란바토르로 가야 하지만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2시 30분. 여유롭던 아침 시간에 생각했던 울란바토르의 도착 시간인데 아직도 45km가 남았고, 끔찍한 바람은 계속 불어오고 있다.

"힝, 앞으로 4시간은 족히 걸릴 거야."

발걸음이 떨이지지 않는 누런 풍경을 향해 기어 들어간다. 울란바토르의 톨게이트가 나오고 톨게이트의 직원이 나를 보며 인사를 하고 차단기를 올려준다.

저 멀리 다시 보이는 산의 실루엣이 어질어질하다. 엄청난 수의 묘지들이 들어선 산등성이를 돌아 오르락내리락 짧은 언덕들이 이어지더니.

울란바트로의 위성도시 날라흐(Nalaikh)가 뿌연 먼지 사이로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울란바트로와 날라흐의 갈림길의 회전교차로에서 길을 확인하고.

맞바람이 불어오는 울란바트로의 방향의 서쪽을 향해 언덕을 오른다.

"울란바트로는 내일 갈까? 쉬고 싶다."

언덕을 지나 울란바트로에 가까워지니 하늘의 색이 조금은 맑아지는 듯하고.

"어, 한국 식당!"

몸이 지치고 힘드니 자전거가 알아서 식당으로 끌려들어 가는 기분이다.

"화장실이 어디예요?"

3시 40분, 울란바토르까지 30km가 남아있는 거리가 부담스럽지만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무작정 메뉴판을 집어 들고.

"모르겠다. 김치찌개 한 그릇 먹고 가자!"

"90일 만에 너를 본다!"

한국 일반 음식점의 맛과 똑같은 김치찌개의 맛이다.

든든하게 두 그릇을 비워놓고.

한국말을 잘 하지만 한국인은 아닌 식당의 매니저에게 울란바토르에 코리안 타운이 있는지 물어보니 별도로 모여있는 곳은 없고 시내 여러 곳에 한국인이 산다고 말해준다.

밥을 먹느라 한 시간이 지나버렸지만 오랜만에 김치찌개를 먹었으니 그것으로 만족.

주유소가 있는 삼거리로 나오니 도로를 공사하는지 길이 막혀있다. 할 수 없이 공사장 옆으로 차들이 다니는 비포장길을 따라가다 보니 임시 도로라기보다는 그냥 초원의 흙길이다.

쉴 새 없이 오가며 먼지를 날리는 차량들의 틈에 끼어 털털거리는 비포장길을 자카르타 랠리를 하듯 요란스럽게 따라간다. 대책이 없는 먼지 구덩이의 흙길을 정신없이 가다 보니 나로 인해 차량의 흐름이 둔해지니 마주 오던 화물트럭의 운전자가 아직 공사를 하고 있지 않은 좌측의 도로를 가리키며 빠져나가라는 듯이 안내를 해준다.

도로와 가장 근접해 있는 구간에서 자전거를 끌고 도로로 빠져나온다.

"하루 종일 먼지를 뒤집어쓰는구나."

흙먼지를 날리는 복잡한 비포장길을 빠져나와 혼자 도로를 독차지했지만 한가로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다시 흙먼지 속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요동을 치는 비포장길을 정신없이 따라간다.

무려 한 시간 동안을 흙구덩이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공사가 시작되는 지점에 이르러 도로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너덜너덜해진 느낌이다.

그 사이 미친 듯이 불어오던 모래바람은 사라지고 거짓말처럼 하늘이 고요하다.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울란바토르의 외곽을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지나친다.

멀리 북쪽의 산등성이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게르와 판자집들이 이색적이다.

낡고 허름한 외곽의 시내를 지나자 포장도로의 상태가 좋아지며 아름다운 툴강의 모습이 나타난다. 강을 따라 촘촘하게 들어선 수변의 나무들이 어색할 만큼 아름답다.

"세상에 몽골에서 처음으로 나무를 보는 거야."

울란바트로의 시내에 접어들며 좁은 2차선 도로는 차량들로 혼잡하다.

복잡한 차들 사이로 두 군데의 원형 교차로를 통과하고.

칭기스칸 광장으로 향하는 도심의 도로는 완전히 정체되어 자전거가 지나갈 수조차 없다.

"아니 무슨 차들이 이렇게 많지!"

인도로 올라가 자전거를 끌고 칭기스칸 광장으로 걸어간다.

"마르코 폴로 형님은 이곳에 왜 서 있는 거지?"

7시, 11시간의 험난한 라이딩 끝에 목적지인 칭기스칸 광장에 도착한다.

넓고 한적한 광장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산책을 하는 칭기스칸 광장. 중국의 광장과는 전혀 다른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형, 나 왔어!"

광장의 정면에 웅장하게 놓여있는 칭기스칸의 석상.

계단 위로 더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지만 중국의 베이징처럼 부자연스러운 제재는 하지 않는다.

한적한 광장을 둘러보고 툴가에게 전화를 걸어 울란바토르의 도착을 알려준다.

"툴가야, 형 왔다! 같이 저녁 먹자."

수업을 듣는다는 툴가는 9시에 수업을 마치고 호텔이 있는 곳으로 오겠다고 한다.

"아이고, 칭기스칸이고 나발이고 완전히 너덜너덜해졌어!"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이곳의 하늘은 왜 이렇게 좋은 거야?"

광장에 누워 오랜만에 트립닷컴을 켜고 숙소를 검색한다. 많은 호텔들이 검색되는데 의외로 숙박비들이 비싸다. 5~6만원 정도의 숙박료들인데 일반 몽골의 작은 호텔에 가려니 자민우드에서부터 시작된 거친 바람의 시달림에 편하게 쉬고 싶은 생각이 먼저 앞선다.

"씻고 싶고, 먹고 싶고 편하게 자고 싶다!"

100미터조차 움직이기가 싫어진다. 가격을 포기하고 가장 가까운 울란바토르 호텔을 찾아 들어간다. 클래식한 분위기의 호텔에 들어가 호텔 바우처를 보여주며 체크인을 하고 자전거를 보관할 장소를 물으니 프런트의 직원은 걱정하지 말라며 안내를 한다.

호텔 직원을 불러 자전거를 짐 보관 창고에 넣어주고 방까지 짐들을 올려다 놓는다. 클래식한 호텔에서 볼 수 있는 당연한 서비스지만 왠지 이런 서비스들은 불편하다.

"그냥 내가 들고 가도 되는데."

호텔의 가장 작은방에 들어가 아무리 둘러봐도 칫솔 세트도 없고 물도 없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툴가를 기다린다.

9시가 넘어 호텔로 찾아온 툴가를 만나고 주변에 한국 식당이 있는지 물었다. 오는 도중 김치찌개를 먹어서인지 허기짐보다는 쓴 소주 한 잔이 생각난다.

"연아라는 한국 식당이 있데요."

주변에 한국 식당이 있는지 친구에게 통화를 해 물어본 툴가는 연아라는 한국 식당으로 가자고 한다. 2km 정도 떨어진 식당까지 그동안의 소식들을 이야기하며 길을 걸어간다.

10시, 서울의 거리를 지나 찾아들어간 연아(Yuna) 식당은 영업이 끝났다며 안내한다. 몽골의 대부분의 식당들은 10시를 전후로 영업을 마치는 모양이다.

하는 수없이 길 건너편에 있는 술집으로 들어간다.

"툴가, 너 먹고 싶은 것을 시켜. 나는 밥보다는 술이 조금 마시고 싶다. 사람들이 칭기스를 먹으래."

면 요리와 치킨을 시키고 보드카를 달라며 주문을 하던 툴가가 오랫동안 직원과 대화를 한다.

"왜? 칭기스 없데?"

"아니요. 오늘은 술을 팔 수가 없데요. 12시가 지나서 술을 마실 수 있다는데요."

"아니, 왜? 왜?"

"모르겠어요. 금요일이라 술을 안 판다고 하는데요."

평상시 손님들이 많다던 술집은 무슨 이유인지 술을 팔 수 없다고 하고 손님들도 없다.

"힝!"

맛있는 한국 음식도, 간절한 술 한 잔도 마시지 못했지만 몽골의 여행 동안 여러 가지로 도와준 툴가와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다.

조르노크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주며 간볼트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니 흔쾌히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하는 툴가.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다던 사람들은 내가 느꼈던 간절함과는 달리 툴가와의 통화에는 적극적이지 않다.

"혹시라도 전화가 오면 잘 설명해 주면 좋겠고, 자신들이 적극적이지 않으면 어떻게 도와줄 방법은 없지 뭐."

하고 싶은 바람이나 직면해 있는 문제들을 앞에 두고 고민에만 몰두하며 투정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고 싶으면 하면 되고,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면 된다.

삶을 살며 수많은 선택과 결정들을 해야만 하고, 선택으로 인한 과정들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 결과에 의한 또 다른 선택과 결정들 끊임없이 해야만 한다. 세상에 잘 된, 잘못된 선택이란 없다. 단지 선택에 의한 과정에 얼마나 충실했는지의 문제일 뿐.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84일 / 맑음 ・ 12도
달랑자르갈랑-처이르
연일 계속되는 맞바람의 라이딩으로 지쳐간다. 처이르까지 80km 정도를 남겨두고 있다. "아, 울란바토르가 정말 멀게 느껴진다."

이동거리
78Km
누적거리
8,648Km
이동시간
6시간 20분
누적시간
610시간

AH3
AH3
40Km / 2시간 48분
38Km / 3시간 32분
달랑자르
주계
처이르
 
 
466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중국 남부를 여행하며 매일처럼 쏟아지는 비 때문에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면, 몽골의 아침은 창문을 열고 팔을 내밀어 바람이 부는 방향을 알아보는 것이다.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바람의 방향을 느껴보니 서향의 창문으로 바람이 들이치지 않고 남풍처럼 느껴진다.

"남풍인가? 남풍이야, 동풍이야?"

밖으로 나와 바람을 확인하니 간절히 생각했던 남풍은 아니고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뭐 그럭저럭 이것도 괜찮아. 서북풍만 아니면 돼."

자전거에 패니어들을 모두 장착하고 바로 출발하려다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가 메뉴를 주문한다. 8,000투그릭의 양고기 야채볶음과 밥.

오늘 80km 정도가 남은 처이르까지 갈 것인지, 처이르를 지나 100km 정도를 이동해 울란바토르로 가는 거리를 조금이나마 줄여놓을 것인지를 고민한다.

"바람, 바람이 문제인데. 맞바람만 아니면 100km 정도 이동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식사를 하고 냉장고에 들어있는 생수를 하나 집어 들어 계산을 하려니 1,500투그릭을 달라고 한다. 몽골의 물가가 중국에 비해 그리 싸지 않고 비슷하게 느껴진다.

제대로 된 도시를 가보지 못해 일반 음식점의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지만 호텔들의 음식들은 쓸데없이 모양을 내느라 양이 적고 값이 비싸다는 느낌이다.

오랜만에 타이어에 바람도 넣어보고. 몽골의 거센 바람이 좋은 점은 도로변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깨끗이 날려버린다는 것이다. 덕분에 펑크날 일이 없어 좋다.

8시 30분, 일찍 깨어나 준비를 한 덕분에 아침을 먹고도 평소보다 일찍 라이딩을 시작한다. 몽골의 아침은 바람으로 인해 꽤 쌀쌀하게 느껴진다. 해가 하늘로 올라가는 9시 정도부터 조금씩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는 4월의 날씨이다.

"하악, 오늘도 끝이 없다."

도로의 바람은 북동풍에 가까워 우측 측면의 뒤쪽으로 불어온다. 주행에 저항을 주지 않을 만큼의 바람을 타고 1시간을 달려 보니 20km 남짓의 이동거리가 찍힌다.

"15km씩만 이동할 수 있어도 감지덕지다."

어제 이동하지 못했던 거리를 만회해보려 속도를 붙여볼 생각이었지만 길은 산길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사인샤드에서 아라크까지의 평평했던 초원의 길이 끝나고 처이르로 향하는 길은 산을 오르는 길인가 싶다.

고르도비를 넘어오던 지형들을 복사해 놓은 듯한 산들의 모양이 이어지고 오르막과 짧은 내리막 그리고 오르막이 계속 반복된다.

"길이 좋은 날은 바람이 문제고, 바람이 좋은 날은 길이 힘들게 하는구나. 몽골 너!"

작은 언덕처럼 보이는 초원의 오르막이 모굴처럼 계속 이어진다. 부드러운 능선이 보이는 초원의 산들은 보기와 달리 경사도가 있어 사람을 은근히 지치게 한다.

하나를 넘으면 다음의 능선이 기다리고 있고, 올라가는 거리와 달리 내리막길은 아주 짧게 이어진다.

"중국 황산을 가며 나도 모르게 길들여지던 산길들과 똑같네. 다 알고 있다! 고도를 높여가며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산 위의 초원에는 한 무리의 양떼들이 초원과 도로를 점령하고 있고.

많은 새끼 양들이 올망졸망 어미들을 따라다니거나 젖을 빨고 있다.

"양, 비켜 인마!"

여기저기서 울어대는 양떼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시 쉬어간다.

"사람은 없고 맨날 소, 말, 낙타, 양들하고 대화를 해야 하다니."

양들과의 대화를 끝내고 져지와 장갑을 벗고 길을 출발한다. 한번 시작되면 하루 종일 바뀌지 않던 풍향이 조금씩 정면으로 향하며 오르막길의 경사와 함께 페달링을 무겁게 만든다.

"젠장, 오늘도 시작되었구나!"

도로의 방향과 주변 환경에 따라 좌우로 바뀌며 정면을 향해 바람은 거칠게 불어오고, 이동속도는 시속 10km, 8km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계속되어 이어지는 오르막 능선들 너머로 정말 오랜만에 보는 뾰족한 봉우리의 산이 멀리서 모습을 드러낸다. 길은 산의 주변을 크게 돌아가며 자민우드에서 시작된 고르도비의 경계를 넘어 도비숨베르로 넘어간다.

AH3 도로의 삼거리 또는 사거리의 교차로는 초원으로 들어가는 초입에만 짧은 포장이 되어있고, 초원의 흙길에는 여러 방향으로 지나간 자동차의 흔적들이 어지럽게 만들어져 있다.

"그냥 내가 가는 길이 길이여!"

방향을 잡고 초원을 가로질러 목적지로 향하는 것도 신기하지만 변변한 시멘트 포장길조차 없는 것도 신기하다.

고르도비와 고비숨베르의 경계에 놓인 경찰 초소에서 잠시 쉬어간다. 가끔은 실제로 단속을 해야 경찰 모형을 세운 효과가 나타날 것 같은데 몽골의 도로를 달리며 임의의 장소에서 경찰이 검문을 하거나 단속을 하는 것을 본 적은 없다.

초코파이를 꺼내어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짙은 구름으로 해가 가려지며 쌀쌀해져 벗었던 져지와 장갑을 다시 꺼내어 끼고 출발을 한다.

중국 내몽골의 장베이에서 시작된 초원의 라이딩이 20일째가 넘어가고 있다. 바람, 언덕, 붉은 흙산들과 황금빛 초원 그리고 바람, 바람, 바람이다.

맞바람이 불어오는 초원의 도로에서 가장 힘든 것은 저기 멀리 지평선까지 도로의 선들이 보이는데 좀처럼 그 거리가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르락내리락 사라졌다 보이는 길들의 끝에 검은 도로의 선이 하늘로 올라가 있다.

"바람만 없으면 신나게 질주를 하며 업다운을 즐길 수 있을 텐데."

바람이 불어오면 몇 개의 고개를 넘고 자전거를 눕히기 바쁘다.

"아, 진짜 너무하네!"

평탄한 도로가 이어지다 앳지있게 짧은 언덕을 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참을 오르고 올라야 한다.

"빌어먹을 바람!"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눈이 아파오고 시야가 조금씩 흐려진다. 그리고 어깨는 다시 시큰거리기 시작한다.

핸드폰의 네트워크가 끊긴지는 오래고 비상식으로 넣어두었던 보리빵 같은 것을 꺼내어 먹는다. 자민우드에서 사서 조금 남아있던 베리잼을 찍어 먹는데도 맛이 형편이 없다.

"중국 슈퍼에서 골라 먹던 3위안짜리 빵들이 그립다."

푸석 푸석한 빵을 먹는 듯 버리는 듯 대충 먹고 나머지는 초원에 뿌려버린다.

"그나저나 자전거를 세우는 막대기라도 하나 만들어 볼까."

몇 개의 언덕을 땅만 보며 페달을 밟고, 네트워크가 끊겨 남은 거리를 알 수 없던 처이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들어서 있는 처이르는 생각했던 것보다 커 보인다.

"아파트 단지도 있네!"

판자촌의 모습을 생각했는데 처이르의 초입에는 길게 낮은 아파트의 단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달랑자르갈랑을 출발하며 1시쯤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처이르를 3시 30분이 넘어서야 도착한 것이다.

"쉴 거야. 나 쉴 거야! 못 가!"

도로 양편으로 마을이 갈라져 있는 처이르의 초입에서 어느 쪽으로 들어갈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한다. 구글지도로 호텔을 검색해 보니 양쪽에 사이좋게 하나씩 검색이 된다.

"오른쪽에는 아파트 단지들만 있는 것 같고, 왼쪽은 판자촌인데 병원도 있고 축구장도 있고. 왼쪽이 시의 중심인가?"

툴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하려다 쓸데없는 것으로 귀찮게 하는 것 같아 도로변에 보이는 슈퍼에 들어간다.

우리의 편의점처럼 구색이 제대로 갖추어진 작은 슈퍼이다.

"샌 베노!"

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를 하고 카운터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앉아 흐릿해진 눈을 비비벼 한숨을 내쉰다.

잠시 가게를 둘러보며 핸드폰을 꺼내어 주변에 호텔이 있는지 물으니 아파트 단지 쪽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쪽 뒤편에도 있는데?"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점원에게 어느 곳이 괜찮은지 물으려고 하니 피곤해진다. 다시 의자에 앉아 쉬면서 눈을 비비며 마사지를 해준다.

"오츠랄래, 저기 따뜻한..."

따뜻한 물 한 잔을 달라고 부탁하려는데 점원이 믹스커피를 들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다.

"오, 한국 커피! 나 주는 거야?"

너무 피곤해하며 힘들어하니 안쓰러웠는지 믹스커피를 꺼내어 타준다. 종이컵 가득 물을 담을 믹스커피, 차를 마시는 중국이나 몽골 사람들은 믹스커피에 물을 많이 넣어 묽게 타 마시는 것 같다.

콧물과 함께 목이 건조하여 콜라가 당기지 않고 매장에 다른 음료수가 있는지 찾는 도중 파란색 레츠비를 발견한다.

"유레카! 나의 사랑 레츠비!"

가게의 점원에게 '좋은 호텔'을 번역하여 구글지도로 양쪽의 호텔을 보여주니 아파트 쪽의 호텔을 가리킨다. 그리고 'ATM'을 적어 보여주니 두 사람이 뭔가 얘기를 주고받더니 호텔 쪽에 은행이 있다고 알려준다.

슈퍼의 점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도로를 따라 아파트 단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4층 구조의 아파트에는 호텔이나 은행 그리고 알 수 없는 간판들이 붙어있다.

아파트 1층에 영업을 하는 사무실들이 입주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광고판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렇다.

아파트 초입의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고 구글맵을 따라 호텔로 이동하였다. 몽골에서는 비자나 마스터, 유니온의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는 것 같지만 몽골의 물가를 무시하고 자민우드에서 현금을 조금만 찾아 쓴 탓에 비상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 내에 승용차들의 통행이 빈번하고 슈퍼마켓이나 다른 건물들도 많이 보인다. 운동을 하는 아이들과 단지 내를 걷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젊은 여자에게 호텔의 위치를 묻고 아파트 단지의 끝에 위치한 단층의 작은 건물을 보며 긴가민가 생각하며 길을 따라 들어가니 나를 보던 어떤 여자가 정문을 가리키며 오라고 손짓을 한다.

2, 3층의 호텔 건물을 생각했는데 게스트 하우스처럼 보이는 빨간 벽돌의 단층 건물이다.

마당 한편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게르가 설치되어 있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구색을 갖춘 프런트가 있고 아주머니가 밝게 웃으며 맞이해준다.

"하룻밤에 얼마예요?"

번역기를 돌려 가격을 물으니 계산기에 30,000을 쳐서 보여준다. 40,000투그릭 정도를 생각했는데 의외로 저렴하다. 달랑자르갈랑의 숙소에서 세면시설이 없어 불편했던 기억이 떠올라 방을 볼 수 있는지 제스처를 하자 방으로 안내를 해준다.

단층의 긴 복도에 방들이 나누어져 있고, 작고 오래된 방이지만 나름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는 방과 욕실을 보고 체크인을 한다.

"이거 또 온몸을 사용해서 말해야겠네."

오번역이 되어 의사전달을 할 수 없는 번역기를 포기하고 자전거 사진을 보여주며 방에 넣어둘 수 있는지 제스처 하니 방에는 넣을 수 없다며 엑스자를 표시하고 자전거를 보자며 밖으로 나가더니 호텔의 현관에 놓아두라고 한다.

좁은 현관에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 자리는 잡는데 아주머니의 아들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룸'이라고 하며 자전거를 방에 넣으라고 한다.

"오호. 땡큐!"

간만에 방으로 들어온 자전거, 쑤니터우이치에서 지아오강강이 깨끗하게 물걸레질을 하여 그나마 덜 미안하다.

자전거를 들여놓는 것을 도와주던 아주머니는 먼저 씻으라며 욕실의 온수기를 켜주고 방의 열쇠를 건네주며 나간다.

"아, 간만에 씻어볼까!"

중국제 온수기는 작동이 되는 것 같은데 찬물만 계속 나온다. 온수통에서 미지근한 물들이 새어 나오는 고장 난 온수기로 찬물 샤워를 하고 속옷과 양말을 빨아 라지에이터 위에 말려둔다.

룸이라는 짧은 단어를 말했던 남자에게 영어를 하는지 물으니 못한다고 한다. 밥을 먹는 제스처를 하고 구글지도를 보여주니 조금 생각한 후에 '드림'이라며 숙소를 물어봤던 슈퍼 건너편의 식당을 알려준다.

"걸어가는 거야?"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표정으로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많이 걸어가야 하는데. 어쨌든 밥 먹고 올게요."

도로가 아닌 흙길을 가로질러 가기 위해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고.

외관과는 달리 아파트의 출입문과 통로들은 낡은 모습을 하고 있다.

운동장 같은 경기장을 돌아서.

슈퍼마켓과 식당이 있는 곳으로 찾아간다. 처이르의 초입 도로변에는 이런 식당이 3곳이 있는 것 같다.

깔끔하게 인테리어 되어있는 식당에서.

웨이터 복장을 차려입은 남자에게 메뉴판을 건네받아 메뉴들을 구경하고.

쇠고기와 감자 구이 그리고 밥이 들어간 메뉴를 주문한다.

그리고 웨이터에게 'Амтат'를 보여주며 보드카 메뉴를 보여주니 메뉴판에서 보드카를 추천해 준다.

"50ml?"

보트카의 양을 물어보니 손가락 눈금으로 조금이라고 알려주며 핸드폰으로 숫자 100를 써서 보여준다.

"100ml? 아, 잔 술로 파는구나! Ok!"

잠시 후 예쁜 보드카 병과 술잔을 가져와 보여주고 병을 들어 올려 멋들어지게 한 잔을 따라준다.

"칭기스!"

아주 독하지 않고 은은한 향이 좋은 보드카다.

"한 38도 정도 되는가? 맛 좋네! 기억해 주겠어."

밥과 함께 나온 쇠고기 감자 구이는 제법 맛이 좋았지만 조그만 그릇에 담겨 나온 밥의 양이 문제다.

"중국의 밥 인심이 그립구나. 이 정도로는 부족해!"

16,800투그릭, 한화 8,000원 정도의 양고기 스테이크를 하나 더 주문하고 신호의 강도가 활기찬 식당의 와이파이를 사용하여 오드바야르와 페이스북 메신저 통화를 한다.

라이딩 도중 세 번씩이나 영상통화가 울렸지만 네트워크가 불안정하고 라이딩에 힘이 들어 받지를 못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오드바야르 그리고 그의 아내와 영상통화를 한다.

"오드바야르, 니 처이르! 안녕! 빨리 자! 이제 끊어!"

저녁이 되면서 손님이들이 하나둘 밀려들어온 탓인지 조금 늦게 나온 양고기 스테이크는 너무 많이 익혀진 것 같다.

하지만 레어, 미듐, 웰던 같은 것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고기는 단지 고기일 뿐.

갖은 야채들과 채소들의 과즙과 소스들을 조금씩 찍어, 한국에서도 하지 않던 나이프와 포크질을 부지런히 해가며 맛있게 먹는다.

"바람 탓에 컨디션이 엉망이야. 고기 먹고 힘내야지!"

저녁 시간의 식당은 외식을 하는 가족단위의 손님들로 자리가 가득 찼다.

식사를 하는 동안 업로드를 걸어두었던 사진들이 블로그에 올라가는 동안 통통해진 배를 튕기며 기다리고 있는데, 식당을 배회하던 한 남자가 내 앞자리에 앉더니 접시 위에 남아있는 동그란 양뼈들을 뜯으며 조금 남아있는 소스를 포크로 퍼먹는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야? 넌 누구냐?"

가만히 그의 행동을 지켜보니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걸신이 들린 사람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음식들을 핥아먹는 것이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테이블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저녁식사를 하는 깨끗한 식당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바쁘게 서빙을 하며 움직이는 많은 직원들 중 아무도 그의 행동을 제재하는 사람이 없다.

손을 들어 직원들을 불러 보아도 아무도 응답을 하지 않고 애써 외면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넌 뭐 하는 놈이길래 사람들이 다 피하며 방치하는 거냐?"

큰 소리를 내어 직원들을 부르니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내 쪽을 쳐다보지만 이내 시선들을 피하며 식사를 한다. 재차 직원을 불러 남자를 가리키자 여직원이 마지못해 다가와 남자를 몇 차례 쿡쿡 찌르며 윽박을 하지만 남자는 듣는 시늉도 하지 않고 그릇째 핥아먹을 기세다.

여직원은 포기한 듯이 카운터로 돌아가버리고 남자는 남은 소스를 모두 핥아먹고 다른 가족들이 식사를 하는 자리로 이동한다.

"뭐야? 무소불위의 주인집 아들이라도 되는 거야?"

다른 가족이 있는 식탁에서 식사를 방해하던 남자는 손님들이 먹고 남은 음식 그릇을 비어있는 테이블에 여직원이 갖다 놓으니 그곳에 앉아 남은 음식을 먹으며 술 주정을 하듯 중얼거린다.

"인구가 400배 많은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것을 이곳에서 보네. 아이고 몽골아!"

현금이 있지만 중국에서는 할 수 없었던 카드 결제를 해보고 보드카를 추천해 준 남자 직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식당을 나온다.

호텔로 돌아오니 아주머니가 눈을 마주치며 식사를 잘 하고 왔는지 묻는 듯 쳐다본다.

"Энэ нь амттай байсан. 잘 먹었습니다."

커피 믹스 두 개를 꺼내어 뜨거운 물을 끓여달라 부탁을 하고 하나는 아주머니에게 건네준다.

20일 가까이 거센 바람의 초원을 달리며 컨디션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 같다. 200km가 남은 울란바토르가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자료를 정리하는 동안 거센 바람 소리가 윙윙거리며 창문 틈을 파고든다.

"남풍, 제발 남동풍이 불어줘!"

숙소의 전기가 거센 바람에 정전이 되더니 다시 들어오지 않는다. 전기도, 난방도, 통신도 모두 끊겨버렸다. 거센 서북풍이 불어오면 하루 정도 이곳에 머물러야겠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83일 / 맑음 ・ 18도
조르노크-아라크-달랑자르갈랑
조르노크의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아쉬움 가득 작별을 한다. 여행에서 만남 사람들과 보낸 시간의 즐거움만큼 작별의 아쉬움이 언제나 비례하는 것 같다.


이동거리
56Km
누적거리
8,570Km
이동시간
6시간 42분
누적시간
604시간

AH3
AH3
28Km / 2시간 50분
28Km / 3시간 52분
조르노크
아라크
달랑자르
 
 
388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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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구220, ◦2구220
・비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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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노크에서 보낸 이틀의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많은 것이 열악하고 부족하지만 함께 하는 좋은 사람들이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6시 30분의 알람에 잠이 깨어 모든 알람들을 해제시키고 다시 잠이 든다.

"이런 시간은 조금 더디게 지나가도 좋을 텐데."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린 것처럼 침낭을 벗어나는 인기척에 오초르가 얼굴을 내밀고 인사를 한다.

홍차와 웨하스 과자를 내놓아 그와 함께 아침을 먹는다. 다른 집들과 달리 아내와 떨어져 사는 오초르의 식탁은 전형적인 홀아비들의 식사이다.

침낭과 패니어들을 정리하고 있는 동안 정체불명의 화장품을 맡겨두었던 오드바야르의 아내가 찾아온다.

"이거 아침에 바른 다음 화장을 해 그리고 저녁에 깨끗이 씻어."

화장품의 사용법을 번역기와 제스처로 설명을 해주고 알아들었는지 물으니 알았다며 웃으며 돌아간다.

"에르덴오초르, 나 이제 가야 해! 사진 찍자."

핸드폰 삼각대를 설치하고 오초르의 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둘이 찍고."

"셋이서 찍고."

짐을 싸는 동안 인사를 하기 위해 나온 간볼트의 젊은 아내와도 함께 사진을 찍고 울란바토르에 가면 간볼트에게 전화를 하겠다고 말해둔다.

이틀 동안 점심과 저녁을 대접해 준 고마운 간볼트의 식구들이다.

자전거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어달라는 오초르.

"사진 찍는 거 은근히 좋아하네."

오초르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있는지 둘러보았지만 모두들 작업을 나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조르노크, 안녕!"

오늘 가야 할 처이르는 자민우드, 사인샨드, 처이르, 울란바토르로 이어지는 AH3 도로에 있는 도시 중 하나다. 아직 울란바토르의 모습을 보지 못하여 몽골 도시의 모습이 어떠한지 잘 모르겠지만 사인샨드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조르노크에서 130km 떨어진 처이르. 바람의 방향에 따라 오늘 내 도착할 수도 있고 이틀의 라이딩으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

"어디, 바람이 어떻게 불어오나?"

북서풍. 조르노크의 북서쪽에 위치한 울란바토르.

"피해 갈 틈 없는 정면 바람이군! 오늘도 완전히 틀렸다."

조르노크에서 보낸 이틀 동안 불지 않던 바람이 라이딩의 시작과 함께 맞바람으로 맞이해준다. 초속 15미터가 넘는 바람들을 맞으며 달려온 탓에 초속 6~7미터의 바람은 산들바람처럼 느껴지지만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영향은 어쩔 수가 없다.

1시간을 달려 속도를 확인해 보니 겨우 10km를 이동할 수 있는 라이딩이다.

"오늘 처이르까지는 절대로 못 가겠네. 80? 70km 정도 이동할 수 있으려나?"

처이르까지 가는 동안 작은 마을 두 곳을 지나쳐야 한다. 이틀 전 오초르와 마트를 가기 위해 들렀던 아라크와 달랑자르갈랑이다. 도시라기보다는 작은 면소재지의 시골 마을에 가깝지만 몽골의 초원에서는 제법 규모가 큰 마을이다.

"달랑자르갈랑이 60km 정도니까, 거기를 지나서 캠핑을 하면 되겠군."

아라크로 향하는 길은 간간이 오르막의 언덕들이 이어지고 12시가 되었을 때 아라크의 검문소를 통과한다.

이틀 전 오초르와 왔을 때 통행료 같은 것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아 톨게이트는 아닌데 정확히 무엇을 검문하는지 모르겠다. 차단기가 내려져있고 차량들이 무언가를 확인받은 후 통과를 한다.

검문소를 통과하면 도로의 좌측으로 아라크의 모습이 보인다.

"점심도 해결할 겸 아라크로 들어가자."

이틀 전 오초르와 왔을 때 그에게 담배라도 몇 갑 사줄 것을 하는 후회가 들어 오초르의 담배를 사고 간단한 점심과 캠핑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마을로 들어간다.

모래밭길의 마을길에 자전거의 바퀴가 빠져 제대로 타고 갈 수가 없다. 자전거를 끌고 오초르와 첫 번째 들렸던 작은 슈퍼를 찾았지만 보이질 않는다.

"어디였지? 시야가 확 트인 곳에서 오줌을 쌌는데."

마을을 한 바퀴 돌고서 초입에 있는 작은 슈퍼를 찾았다.

가게 앞에 RV 차량이 한 대 정차해 있어 가게문이 열려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문이 열쇠로 잠겨있다.

"아, 나는 왜 이런 일에는 꼭 머피가 될까?"

아쉬운 마음에 애꿎은 가게문을 만져보고 나와 초코파이 두 개를 꺼내어 점심을 대신한다.

"오초르에게 담배 한 갑이라도 사주고 싶은데."

초코파이를 먹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모자와 검은 마스크를 한 여자가 가게 앞에서 나를 쳐다본다.

"어. 저기 저번에 오초르.."

버프를 내려 얼굴을 보여주니 금세 알아보며 가게로 들어가자고 한다.

"샌배노!"

대량 포장된 비스킷처럼 딱딱한 빵들을 만지며 배가 고프다는 제스처를 하니 가게 모퉁이의 냉장고에서 소시지들을 보여준다.

"이거 하나도 팔아요?"

냉장고 위의 저울을 가리키더니 소시지 하나를 올려놓고 저울에 적힌 금액을 계산기로 쳐서 다시 보여주는 아주머니.

"중국하고 똑같네. 소시지도 저울에 달아서 파네."

소시지, 콜라 그리고 컵라면을 사들고 오초르에게 줄 담배를 달라고 제스처를 한다. 이틀 전처럼 테이블 밑에서 담배들이 든 가방을 꺼내어 보여준다. 오초르가 좋아하는 몽골 담배 3갑을 달라고 하니 가방을 뒤적이더니 2갑밖에 없다며 웃는다.

담배 가방을 뒤집어 담배들을 테이블에 모두 펼쳐놓고 보아도 오초르가 피던 몽골 담배는 2갑밖에 없다.

오초르가 '몽골'을 외치며 엄지를 세웠던 2,500투그릭의 담배 두 갑까지 합하여 계산을 하고 봉지가 필요한지 묻는 아주머니에게 핸드폰에 있는 오초르의 사진을 보여준다.

"에르덴 오초르, 오초르 알죠?"

오초르의 사진을 보며 생글생글 웃는 아주머니. 아무래도 커피를 들고 있는 오초르의 컨셉 사진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담배 두 갑을 들고 오초르의 사진을 가리키며 오초르에게 전해달라는 제스처를 두어 번 연속으로 하자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방긋 웃는다.

"응. 오초르가 여기 오면 이거 오초르한테 주세요!"

가게 아주머니와 담배, 오초르의 사진을 가리키며 의사를 전달하는 사이 아주머니는 전화기를 꺼내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기에서 오초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아주머니는 스피커폰으로 전환하여 전화기를 건네준다.

"오초르, 나 싸비야!"

"오호, 싸비!"

알아듣지 못하는 몽골어로 여전히 많은 말을 하는 오초르에게 아주머니가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것 같다.

"오초르 빠이! 담배 맡겨놨어. 찾아서 피워!"

나도 오초르처럼 그가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어로 떠들며 말해준다. 그 광경이 재미있는지 계속 웃기만 하던 아주머니는 자기가 잠을 자고 오초르에게 가져다주겠다는 제스처를 한다.

"어. 내일 오초르한테 전해 준다고."

자신이 오초르에게 갖다 준다는 것인지, 오초르가 내일 와서 찾아간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담배는 오초르에게 전해질 것이다. 아마도 담배를 보며 '싸비, 몽골'하며 담배를 피우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을 해결하면 마음이 참 좋고, 왜 그런 것들은 항상 뒤늦게 생각이 나는지 도통 모르겠다.

마을을 빠져나와 다시 AH3 도로에 들어서니 도로변의 초원에서 풀을 뜯던 낙타들이 멀뚱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 소, 말, 양, 사슴 이번에는 낙타의 등장이다.

낙타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그 생김새가 참 신기하면서도 못돼먹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재미있는 동물이다.

"야 몽골 낙타! 나 한국 사람이야."

아라크에서 처이르와 울란바토르까지의 거리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이고.

아라크의 초입에는 크지는 않지만 물이 고여있는 곳이 있어 마을이 생겨난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듯하다.

아라크를 들렸다 나오느라 40분 정도의 시간을 소비했지만 오초르에게 담배 한 갑이라도 선물해 주고 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오후 들어 바람의 방향이 우측으로 살짝 바뀌더니 바람의 세기가 더해간다. 시속 10km 정도를 이동했던 오전과 달리 8km, 5km의 속도로 진행이 느려지고 아라크를 벗어난 도로는 낮은 산들을 여러 차례 넘어가는 길로 바뀐다.

"힘들어. 쉬자."

초원의 풀밭에는 돌아다니는 작은 도마뱀은 보호색에 대한 자신감인지 잘 도망을 가지 않는다. 요리조리 재빠르게 움직이지만 도망치는 거리가 거기서 거기다.

"형 배고프다. 잡아먹기 전에 도망가라."

따듯한 바람이 불어오는 초원에 앉아있으면 눕고 싶은 생각이 들어 쉬는 것이 더 힘들다. 핸드폰을 켜봐도 네트워크는 E자를 보이며 끊겨있고.

20여 분을 쉬고 다시 출발해 보지만 계속 거세지는 바람과 오르막의 산길들이 페달링을 무겁게 한다. 바람을 이기며 조향을 하느라 어깨는 다시 쑤셔오고.

캠핑을 해도 괜찮을 듯한 언덕들과 바위들이 놓인 공간들을 지나자 풍경들은 다시 완전 평면의 평평함을 보여준다.

도로변에서 빠져나와 자전거를 눕히고 패니어를 등지고 눕는다.

"오초르와 차로 달릴 때 보니까 도로 외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던데. 저기 멀리에 텐트를 쳐도 괜찮겠어."

바람만 거세게 불지 않는다면 도로변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텐트를 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른 건초들 사이로 새싹들이 자라고 있다.

"아무래도 오늘은 달랑자르갈랑을 조금 지나서 캠핑을 해야겠다."

17km가 남아있는 달랑자르갈랑을 지나 적당한 위치에 캠핑을 하고 내일 바람의 방향을 봐가며 처이르에 머무를 것인지, 지나칠 것인지 결정할 생각이다.

조금씩 거세지던 바람은 돌풍에 가까운 바람으로 급변하고, 구름이 떠있던 하늘은 희뿌연 모래바람이 지면에서 일어나 온 사방을 뒤덮기 시작한다.

시속 5km가 나오지 않는 무거운 페달링과 휘청거리며 요동치는 핸들바를 지탱하며 얼마 남지 않은 달랑자르갈랑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꾸역꾸역 길을 이어간다.

어쩌면 급작스레 밀려오던 조르노크의 모래폭풍. 그 바람의 시작점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5km, 3km.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 애꿎은 구글맵만을 반복해서 쳐다보지만 달랑자르갈랑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뿌연 모래 먼지 사이로 흐릿하게 달랑자르갈랑의 모습이 보이고 도로변에 커라란 물 웅덩이가 있다. 물웅덩이 주변으로 동물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재미있는 사진 놀이도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 탓에 그다지 재미가 없고.

골재 공장 같은 건물을 중심으로 들어선 마을로 들어가기가 힘들어 보인다.

"여기가 달랑자르갈랑인가?"

진입할 수 없는 흙길을 포기하고 도로를 따라 조금 이동하니 도로변으로 달랑자르갈랑의 모습이 나타난다.

"에휴, 다행이다."

"처이르는 멀었네. 언제 가나."

여전히 적응이 잘 안되는 몽골의 작은 마을의 초입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숨을 고른다.

"어디부터 가서 숙소나 잠잘 곳을 찾아야 하지?"

길 건너편에 위치한 주유소에 들러 숙소가 있는지 물어보고, 숙소가 없다면 주유소 주변에 텐트를 칠 수 있도록 양해를 구해볼 생각이다.

자전거를 끌고 주유소로 향하던 중 거친 바람을 등지고 소변을 보던 남자가 나를 부른다. 이번에도 술을 마신 것 같은 취객의 느낌이 난다.

"부르지 마라. 힘들다!"

몇 차례 나를 향해 소리를 치더니 모르는 척 지나가니 별 반응이 없다.

문이 닫힌 주유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 번역기로 주변에 호텔이 있는지 물으니 바로 길 건너편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킨다.

"아, 저게 호텔이었어?"

화물 차들이 정차를 하거나 떠나는 건물을 음식점으로 생각했는데 숙박도 가능한 모양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프런트와 같은 데스크는 없고 바로 식당의 카운터가 보인다. 식당 안을 두리번거리며 호텔이 맞는지 묻자 카운터의 여직원이 자기에게 말하면 된다는 듯 제스처를 한다.

계산기에 40,000을 찍어서 보여주며 여권을 달라고 한다. 자민우드의 호텔에서도 그랬는데 몽골에서는 여권을 프런트에 보관을 한다.

여권을 받아들고 살펴보더니 새침한 여직원이 놀라는 듯한 이상한 표정과 제스처를 한다.

"왜? 오빠가 아니라서 섭섭해?"

자전거를 실내에 두기 위해 설명을 해야 하는데 난감하다. 호기심이나 적극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여직원과 어렵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옆에서 갑자기 한국어가 들린다.

"한국인이세요?"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다른 여직원이 다가와 한국말을 한다.

"한국말을 할 줄 알아?"

"네, 조금 할 줄 알아요."

프런트의 여직원과 달리 친절하고 상냥하다. 한국어를 하는 여직원에게 자전거를 안으로 들여놓고 싶다고 말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한국어를 잘 못한다고 다시 한번 말한다.

"아니야. 이 정도면 정말 잘하는 거야."

자전거를 식당의 입구에 세워두고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간다. 열쇠 뭉치를 주머니에서 꺼내더니 방의 문을 열고 안내를 해준다.

침대가 두 개 놓은 방은 제법 청소가 잘 되어 있어 괜찮다 싶었는데 방의 느낌이 왠지 낯설다.

"욕실, 욕실이 없잖아."

조르노크에서 생활하며 제대로 씻지 못하고 양치만을 하며 생활한 터라 따듯한 물에 샤워가 하고 싶다.

머리를 감는 제스처를 하며 욕실이 없는지 물으니 아주머니가 웃으며 손을 가로젓고 자신을 따라오라고 한다.

"공용 욕실이라도 있는 거야?"

방 건너편의 화장실 문을 열어 주었지만 화장실과 세면대만이 놓여있다. 아주머니가 부지런한 것인지 방과 복도처럼 화장실도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다.

"없네. 샤워 못하는 거야! 샤워!"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방의 열쇠를 건네주고 계단을 내려가 버린다.

식당으로 내려가니 저녁 시간이라 사람들이 제법 모여든다.

"고기, 고기를 먹어야 해."

고기가 들어간 그림을 가리키며 어느 것이 맛있는지 한국말을 하는 여직원에게 물어본다.

갈비찜 같은 음식과 함께 추가로 주문한 조그만 공깃밥이 나오고.

큼지막한 덩어리의 갈비찜을 크게 썰어 부지런히 먹는다. 조금 질긴 느낌이지만 입속을 가득 채우는 고기의 양이 마음에 든다.

"근데 몽골 사람들이 왜 한국말을 조금씩 하는 거지?"

식사를 하고 식당의 문 앞에 놓아두었던 자전거를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의 난간에 묶어두고 방으로 올라왔다. 세면도구를 챙겨 간단히 얼굴과 발을 씻는 것으로 만족하고.

와이파이도 없는 숙소에서 하루를 정리하는데 오초르의 아내가 페이스북 메신저로 영상통화를 걸어온다.

"헤이, 싸비. 처이르?"

아내가 있는 집으로 간 것인지 오초르는 방에 누워서 통화를 하고, 그의 아내는 마스크 팩을 하고 인사를 한다.

"오초르, 집에 간 거야? 나 달랑자르갈랑이야!"

달랑자르갈랑의 발음을 계속 반복하니 오초르가 알아듣는 눈치고, 내가 처이르까지 잘 갔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어. 이제 자야지. 빨리 끊어! 빠이 빠이!"

말도 안 통하는데 오초르와 그의 아내는 계속 웃으며 몽골말로 무어라 말을 한다.

"알았어! 빨리 자. 하하하"


바람이 계속된다면 80km 정도 남은 처이르까지의 여정도 꽤나 힘이 들 것 같다.

"아무리 이 계절에 북서풍이 어쩔 수 없다 해도 이건 너무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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