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6일 / 눈 ・ 5도
이흐울-토승쳉겔
변화무쌍한 날씨 탓에 조금은 지쳐있다. 울란곰까지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길을 나선다.

이동거리
43Km
누적거리
9,729Km
이동시간
3시간 43분
누적시간
685시간

A0603
A0603
36Km / 2시간 56분
9Km / 47분
이흐울
힘들어
토승쳉겔
 
 
1,547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울란곰까지 600km 정도의 거리가 남았다. 작은 식당의 넓은 간의 침대에서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어 어제의 피로가 많이 사라진듯하다.

정말 얄궂은 몽골의 날씨이다.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지독했던 어제의 날씨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화창하고 밝다.

"이곳에서 하루 정도 머무를까?"

술을 팔지 않는 작은 식당은 깔끔하고 음식 맛도 괜찮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으니 그것보다 좋은 것이 없는 것 같다.

다음 목적지를 정하기 위해 구글맵을 확인하니 토승쳉겔(Tosontsengel,Тосонцэнгэл)을 거쳐 넘루그(Numrug, Нөмрөг)까지 150km 정도의 거리다. 토승쳉겔에서 넘루그까지 100km 정도의 거리에 작은 마을조차 지도상에 보이질 않는다. 날씨와 바람을 생각하면 하루에 가기에는 어려운 거리다.

"토승쳉겔까지 가서 거리를 줄여놔야겠네."

침낭과 패니어를 정리하고 기분 나쁜 마찰음을 내던 앞브레이크를 정비하며 어제 저녁으로 먹었던 만둣국을 주문한다. 몽골의 작은 식당들은 화로로 음식을 하기 때문에 음식을 만드는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린다.

20분이 조금 넘어 만둣국이 나오고 따듯한 우유차와 함께 든든하게 아침을 해결한다. 만둣국을 먹고 있으니 여자 주인은 육수를 한 그릇 가득 담아내어준다. 제법 음식 솜씨가 좋은 가게이다.

몽골 여행의 어려운 일들 중 하나는 음식인 것 같다. 식문화가 다양하지 않은 몽골에서 변변하게 먹을 음식을 찾기가 힘들고, 제대로 된 식당을 찾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와 같다.

느긋하게 준비를 하고 아침을 먹으니 10시 30분이 되어 출발을 한다.

작은 바람만이 느껴지는 화창한 날씨다.

강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를 가볍게 달려간다. 등쪽으로 떨어지는 따듯한 햇볕이 이내 몸을 덥히고, 라이딩의 가벼움은 140km 거리의 넘루그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욕심을 만들어 낸다.

"무리겠지? 날씨가 너무 아까운데, 이런 날 많이 이동을 해야 하는데."

어제 타르바가태(Tarvagatai, Тарвагатай)를 넘은 이후 펼쳐지는 풍경은 초원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산악지대의 모습에 가깝다. 뾰족뾰족하게 솟은 산봉우리들과 바위, 돌 산들이 겹겹이 늘어서 있다.

이흐울을 6~7km 정도 벗어나니 다시 통신은 완전히 끊겨버리고 화창했던 하늘을 두꺼운 회색 구름으로 뒤덮여 있다.

다시 조금씩 바람이 일며 이흐울의 따듯함과는 다른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풍부한 강줄기는 멋들어진 곡선을 그리며 계속 이어지고, 바람과 함께 진눈깨비가 조금씩 날리기 시작한다. 토승쳉겔 방향의 하늘이 어둡게 변해있고 눈을 흩뿌리는 듯한 풍경이다.

강물을 따라 휘어지고 작은 언덕들이 연이어지는 길에서 쉽게 지쳐간다. 아무래도 어제의 피로가 쌓여있는 것 같다. 멋들어진 바위들이 솟아오른 산 밑에서 잠시 쉬어간다.

"40km 정도조차 쉽게 보내주질 않는구나."

좌우로 불어오며 진눈깨비를 휘날리는 바람을 맞으며 느릿느릿 도로를 따라가다 내 앞에서 멈춰 선 오토바이를 탄 젊은 남자를 만난다. 울란바토르에 간다는 남자와 인사를 하고 뭔가 대화를 이어가려 해도 네트워크가 끊겨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사진을 찍자고 하니 흔쾌하게 헬멧을 벗고 포즈를 취한다. 헬멧을 벗으니 보라색으로 염색을 하여 멋은 낸 청년이다.

멋쟁이 남자와 짧은 만남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연이어지는 오르막과 거세지는 바람이 자전거를 다시 멈춰 세운다.

"얼마큼 온 거지? 15km, 20km 정도 남았나?"

나무가 자라지 않는 산등성이에도 작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있어 산들이 표범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다. 바닥에 주저앉아 잠시 쉬고 있으니 한기가 밀려든다.

"가자. 3시 정도면 도착할 수 있겠지 뭐."

해발 2,500미터의 타르바가태 산을 넘고 1,500미터의 이흐울까지 갑작스레 고도가 떨어지더니,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는 듯 페달링을 힘들게 한다.

언덕과 언덕으로 이러지던 길의 큰 고개를 오르니 바람이 잦아들며 하늘빛이 밝게 변하고 도로의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 도로가 이어진다.

15km 이상은 더 가야 할 것으로 생각했던 토승쳉겔의 모습이 직전 도로의 끝에 보이기 시작한다.

"오호, 다 왔다!"

고갯길의 내리막을 달려 길은 눈앞에 보이는 토승쳉겔의 방향으로 이어지질 않고 우회전을 하며 높은 언덕길 위로 마을의 입구가 보인다.

"왜? 왜 좋은 길을 놔두고 빙 돌아 언덕으로 올라가는 거야?"

"정말 올라가기가 싫어진다."

2시가 조금 넘어 토승쳉겔에 도착한다. 언덕 밑으로 제법 많은 집들이 넓게 들어서 있는 마을이다.

"호텔! 씻을 수 있을까?"

체체를렉의 페어필드에서 마지막으로 샤워를 하고 10일 가까이 양치만을 하며 살았다. 두건을 쓰고 다니는 머리에서 쉰 냄새가 나기 시작하던 참이다.

마을 초입의 언덕에 올라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는 사이 토승쳉겔의 하늘이 변하며 눈을 휘날리고 있다.

마을 초입에 여러 개의 주유소들이 연이어지고, 주유소의 마당에서부터 짖어대며 쫓아오던 개를 향해 계란만한 돌멩이를 주워 던진다.

"가! 이 개******!"

추워진 날씨, 구글 지도를 확인하며 마을 초입에 보았던 스카이라인 호텔을 찾아 마을의 중심으로 이동한다. 여러 개의 슈퍼마켓이 보이고 몇몇의 식당들도 보이는 도로변에 옷과 신발들을 파는 노점상들의 모습도 보인다.

흙바닥의 골목길을 빙빙 돌아 스카이라인 호텔에 도착하자 때마침 승용차에서 내리던 중년의 여자가 나를 유심히 쳐다보며 호텔의 문을 열어준다.

"호텔 맞지?"

호텔의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는 짧은 영어를 할 수 있어 대화를 하는데 어렵지 않다. 하루나 이틀쯤 머무를 것이라 대답하고 25,000투그릭의 숙박료를 확인한다.

1층에 있는 샤워실, 자전거를 놓아둘 장소 등을 안내해 주고 2층으로 올라가 방을 정해준다.

"이건 40,000투그릭!"

여러 개의 낡은 방문을 열어보며 빈 방을 찾더니 침대가 2개 놓인 방은 40,000투그릭이라고 중얼거린다.

낡은 침대가 놓인 방의 열쇠를 건네주고 2층에 있는 화장실의 위치를 알려주고 여주인은 그냥 내려간다.

복도의 끝에 있는 화장실에는 좌변기가 놓여있고 나름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다.

"이 정도면 특급호텔이야!"

1층에 있는 샤워장에도 낡은 샤워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따듯한 온수가 나올지는 모르겠다.

"찬물이면 어때. 씻을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복도 옆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넓은 주방에서 3명의 여자들과 함께 빵을 만들어 굽고 있는 여주인에게 식사를 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 오늘은 레스토랑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호텔을 나와 음식점과 슈퍼가 있던 거리로 나간다. 몽골의 마을에는 가라오케나 디스코텍 같은 것이 음식점보다 많은 것 같다.

"참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네."

슈퍼마켓에 들러 저녁에 먹을 빵과 음료수, 과자 같은 것을 조금 사 들고 나와 길 건너편의 음식점으로 걸어간다.

음식들의 메뉴 사진이 걸려있는 건물 앞에는 옷을 파는 노점상들이 내리는 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고, 가게의 문은 닫혀있다.

"가만. 느낌상 한국 음식을 파는 가게 같은데!"

서롱고스라고 쓰인 익숙한 글자가 보이고 자세히 보니 한국의 음식들의 사진이다. 제육볶음의 사진이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어 버린다.

"왜 이런 운은 없는 것일까? 내일 다시 와봐야지."

진눈깨비의 눈바람이 더 거세지고, 대형 버스에서 내린 한무리의 사람들이 들어가는 식당으로 따라 들어간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카운터에서 사람들의 주문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한 남자가 테이블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자리에 앉는다.

"나도 이것으로 먹어야지."

음식의 사진을 찍고 카운터로 가서 핸드폰을 보여주니 종이에 글씨를 쓴 오더지를 주방으로 건네준다.

양고기의 잡내가 조금 있었지만 아주 맛있게 허기를 달랜다.

"역시 고기를 먹어야 해."

진눈깨비는 어느새 우박으로 변하여 정신없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슈퍼도 아니고 병원도 아닌데 사람들의 출입이 빈번한 건물이 궁금하여 들어가 본다.

핸드폰 가게들과 주류가게, 꽃집 그리고 2층에는 옷가게들이 들어선 일명 몽골의 쇼핑몰 건물이다.

가게들을 둘러보면 나와 눈이 마주친 젊은 꽃집의 여자가 나를 부른다.

"서롱고스!"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가게를 둘러보는 동안 웃는 얼굴로 나를 지켜본다. 몽골에서 꽃집을, 그리고 붉은 장미를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콩알만한 우박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은행에 들러 약간의 현금을 찾고 숙소로 돌아온다.

숙소의 직원들은 여전히 빵을 굽느라 바쁘다.

넓게 밀가루 반죽을 펴서, 버터를 바르고, 설탕을 뿌린 후 돌돌 말아 자르고 오븐에 넣으면 끝이다.

따듯한 물과 컵을 구하러 내려갔는데 구워낸 빵을 2개 건네준다. 그냥 밀가루 빵 맛이다.

슈퍼에서 사온 박카스를 마시고 누워있으니 누군가 방문을 두드린다.

전구가 없던 방에 전구를 끼워 넣기 위해 남자 직원이 서있다.

전구를 끼워 넣고.

불을 켜는데 남자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 스위치가 있는 벽을 확인하니 스위치가 없고 전선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아니, 딱히 불은 없어도 되는데 저걸 어떻게 끄지?"

"간만에 씻어 볼까?"

감바의 집 현관을 여느라 20분 정도를 낑낑댔던 기억이 난다. 몽골의 문들은 자물쇠가 딸깍딸깍 두 번이 걸린다.

1층에 있는 샤워실에는 보기와 달리 따듯한 물이 잘 나온다. 오랜만에 머리를 감느라 중국 호텔에서 가져온 작은 샴푸통을 다 비운다.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울란바토르의 테를지의 리조트에 취직을 했다는 김병남 선교사님과 오랫동안 통화를 한다. 한국 사업가가 운영하는 리조트에 관리인으로 취직을 했는데 새롭게 일을 하려다 보니 약간은 피곤한 모양이다.

리즈후이에게 위챗 메시지가 와서 번역기를 돌려가며 오랫동안 메시지를 주고받고, 휴가를 받아 아내에게 갔다는 오초르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잠을 자는지 답장이 없다.

"이 침대 시트는 어디에 있는 첼시 호텔이냐?"

데이터 만수르가 되어 CBS 라디오를 들으며 별 기대 없이 카톡으로 사연을 쓰고 신청곡을 보내본다. 카톡 메시지를 보내고 시계를 확인하니 8시 50분이 넘어간다.

"끝날 때가 됐네. 괜히 보냈네!"

김현주의 행복한 동행, 방송이 끝나는 마지막 광고가 끝나고 클로징 멘트를 하던 김현주가 나의 사연을 읽어준다.

"멀리 몽골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는 변차섭씨가... "

"헐!"

아쉽게 마지막으로 급하게 신청된 노래라 이상은의 노래는 중간에 끊겨버렸지만 뜻밖의 즐거움이다. 12시가 가까워지며 창밖으로 거칠게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다. 아무래도 내일 길을 떠나긴 틀린 것 같다. CBS 음악 FM은 저작권의 문제 때문에 다시 듣기가 제공되지 않는 모양이다. 온갖 곳을 검색하고 유튜브, 팟캐스트 등등을 뒤적여봐도 다시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자전거 세계 일주 106일째, 중국을 거쳐 몽골의 초원을 달리고 있어요. 아무것도 없는 끝없는 몽골의 넓은 초원을 홀로 달리는 것이 가끔 외롭지만... 저의 눈을 통해 함께 세상을 보고 있을 그녀와 듣고 싶네요. 항상 그녀의 삶이 행복하기를.."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104일 / 맑음 ・ 4도
호르고-아브갈대
즐거웠고, 한가로웠고 그리고 불편하기도 했던 호르고를 떠나 울란곰을 향해서 출발한다.

이동거리
62Km
누적거리
9,592Km
이동시간
6시간 51분
누적시간
674시간

A0603
A0603
42Km / 2시간 40분
50Km / 4시간 25분
호르고
타리안트
아브갈대
 
 
1,410Km

・국가정보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몽골어, 투그릭(1투그릭=0.4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50G, 25,000원
・전력전압
▪3구220, ◦2구220
・비자정보
사전비자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976-9911-4119

 

일찍 잠든 탓에 아침 일찍 깨어났다. 여전히 쌀쌀한 날씨이고 바람이 불어오지만 오늘은 호르고를 떠나고 싶다.

뒷마당에 있는 화장실에서 혹시나 핸드폰이 떨어질까 불안해하며 꼭 쥔 두 손에 힘을 주고, 1층에 있는 간이 세면대에서 양치만을 한다. 체체를렉을 떠나 제대로 씻어본 적이 없다. 양말 속 두 발바닥이 화석처럼 굳어가는 느낌이다.

"어디서 쉰 냄새가 나는 거지?"

자민우드에서 충전했던 데이터의 사용 기한 오늘 밤 자정으로 끝나기 때문에 데이터를 충전하고 비상식을 조금 사서 서동고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8시에 문을 연다는 슈퍼는 30분이 지나도 열리지 않고, 9시가 다 되어서야 문이 열린다.

"특별히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아줌마! 데이터 충전해야 하는데."

몽골에서는 데이터를 '다타'라고 인간적인 발음으로 읽는 것 같다. 핸드폰을 보여주며 '다타'를 연신 외쳐대니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G모바일의 충전기를 보여준다.

"유니텔. 유니텔이야!"

슈퍼 아주머니는 무뚝뚝한 슈퍼 아저씨를 불러오고 유니텔 통신의 태블릿을 꺼내어 보여준다.

"여기 봐. 15기가 30일 32,000투그릭!"

자민우드에서 50기가를 충전하고 사진 업로드 등은 체체를렉의 페어필드 와이파이를 이용한 터라 데이터가 37기가나 남아있다. 한 달 정도의 몽골 일정 동안 15기가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 32,000투그릭의 상품을 충전해 달라고 요청한다.

테블릿을 아무리 눌러봐도 32,000투그릭의 요금제가 없다. 2G 폰을 주로 사용하는 몽골의 시골에서 데이터를 사용하는 요금제를 사용할 일이 없으니 슈퍼 아저씨도 모르는 듯 은근슬쩍 아주머니에게 태블릿을 넘겨버리고.

이리저리 메뉴들을 눌러보던 아주머니는 나에게 태블릿을 넘겨버린다.

"뭐야? 몰라? 모르는 거야?"

10,000투그릭의 상품이 맞다며 안내를 해주지만 그것이 데이터를 포함한 요금인지는 모르는 모양이다. 게르에서 이용하는 데이터 요금제를 자꾸만 눌러대는 아주머니를 보며 이러다 생돈을 날려버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된다.

아주머니는 한참을 태블릿을 눌러보며 고민을 하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그래, 유니텔에 물어보면 되지."

뭔가 통화를 하던 아주머니는 갑자기 전화기를 나에게 건네주며 받아보라고 한다.

"몽골 유니텔에 한국어 상담 서비스가 있는 거야?"

전화의 상대는 어눌한 한국어 발음으로 슈퍼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부모라고 소개하는 슈퍼집의 딸이다. 감바보다 한국어를 잘 하지 못했지만 천천히 설명을 하면 그런대로 이해하는 한국어 수준이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어를 하는 슈퍼집 딸도 데이터를 충전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한참을 통화를 하며 데이터 요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설명만을 전달하고, 무언가 결정을 한듯한 아주머니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50,000투그릭의 상품을 데이터 상품이라고 한다.

"뭐지? 근거 없는 자신감은!"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고 50기가 데이터를 충전한다. 그리고 1423번에 'See'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데이터 충전 내역이 갱신되지 않는다.

"거 봐! 안 됐잖아."

잠시 멘붕이 오려던 찰나 몽골 사람들이 슈퍼에서 데이터를 충전하고 핸드폰으로 세팅을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잠시만!"

1423번에 메시지를 Help, 50, On의 순서대로 보내어 데이터 충전 세팅을 해본다. 그리고 다시 'See' 메시지를 보내니 데이터가 충전된 것이 확인된다.

"됐네. 됐어! 이것 봐. 이렇게 하는 거야!"

중국에서는 주숙등록을 하는 것을 가르치며 다녔는데, 몽골에서는 데이터 충전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근데. 데이터 용량이 그대로 남아있네? 설마 미사용 데이터가 이월되는 거야?"

자정이 되어서 미사용 데이터가 사라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미사용 데이터와 신규로 신청한 데이터가 합산해서 표시되어 있다.

"졸지에 데이터 만수르가 된 거야? 초원에서 터지지도 않는 데이터로 뭘 할 수 있을까?"

1,500투그릭의 데이터만 충전했어도 되는 데이터를 50기가나 더 쓰게 생겼다.


무려 한 시간 동안 핸드폰 데이터를 충전하기 위해 아주머니와 난리 법석을 피운 탓에 아침을 먹을 시간을 뺏겨버렸다. 서동고에게 줄 과자와 마뜨가가 피우는 담배를 두 갑 사서 사동고의 집으로 돌아간다.

서동고의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마뜨가의 아내인지 아니면 뱀바의 가족인지 모를 사람들로부터 전화를 받았지만 알아들을 수 없으니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서동고 게르'만을 외치고 끊어버린다.

어제 술이 취한 마뜨가 부부와 함께 오지 않았던 서동고가 강아지처럼 웃으면서 뛰어다니고, 마뜨가는 술병이 났는지 힘이 없이 침대에 파묻혀 있다.

"서동고, 이리 와. 이제 아저씨 가야 해!"

마침 자주색 니트를 들고 있던 서동고의 옷을 입혀주고, 어제 식당에서 산 모자를 씌어주니 완벽한 깔맞춤이 된다.

침대에 누워있는 마뜨가에게 담배를 건네주며 건강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술을 조금만 마시라 제스처를 하고, 과일주스를 한 컵 따라서 건네준다.

마뜨가는 핸드폰의 번역기를 달라고 하더니 '행운을 빈다'다는 메시지와 '다음에 오면 언제든지 오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악수와 함께 짧은 포옹을 하고 서동고의 집을 나온다.

신이 나서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는 서동고와 마뜨가의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나선다.

"바이시떼! 서동고!"

핸드폰 데이터를 충전하느라 빵과 음료수를 사두는 것을 깜박하여 호르고에 도착하여 처음 들렀던 슈퍼로 들어간다.

들어선 가게에는 초도트쏨에서 '소주'를 외치며 장난을 치던 남자가 돈을 세며 나를 보며 웃는다.

"엉? 네가 여기에 왜 있어?"

능글맞은 웃음을 보이며 가게가 자신의 집이라는 제스처를 하는 남자 지그다.

"지그, 이리 와. 이번에는 사진을 찍자!"

사진 찍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던 지그가 이번에는 순순히 사진을 찍는다. 담배 한 개비를 건네며 피우라고 제스처를 하는 지그와 인사를 하고 호르고를 들어왔던 흙길을 따라 도로로 빠져나온다.

"정말 다사다난했던 날들이었다. 호르고 안녕!"

사간느 호수와 이어지는 하천을 지나 넓은 용암지대의 숲이 보이고 사간느 호수가 오른 편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눈이 내리며 더욱 차가워진 맞바람이 충분한 휴식을 취했던 체력을 금세 원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세기와 함께 왔던 호수의 반대편을 달리는 동안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강도는 더욱 거세져만 가고.

호수의 풍경을 구경하기는커녕 도로에 시선을 떨어뜨리고 소처럼 페달만을 밟는다.

쉴 새 없이 불어오는 강풍의 속도에 구름의 모양은 빠르게 빠르게 변화하며 마음을 사로잡고, 사간느 호수가 끝나는 지점까지 20km를 달려 잠시 자리에 앉아 쉬어간다.

엄청 달달한 맛의 몽골의 카스테라 빵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지겨운 바람을 맞는 동안 타리안트가 모습을 드러낸다.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작은 마을이다.

"작은 음식점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는데."

타리안트를 지나는 동안 음식점처럼 보이는 곳은 없고, 도로변에서 휘청거리며 취해있는 몽골인들만이 나를 향해 소리를 치며 불러 세운다. 호르고에서 너무나 많이 바라본 모습이라 이젠 놀랍지도 않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제는 징그럽기까지 한 초원의 도로는 자꾸만 산을 향해서 올라가고, 하늘의 구름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브갈대를 20km 정도 남겨두고 도로변의 몇 채의 집과 게르가 들어선 마을이 나타난다. 끊겨있던 통신도 불안정하지만 간간이 연결이 되고.

슈퍼로 보이는 집으로 무작정 들어간다. 슈퍼의 아주머니에게 맥주를 한 캔 사들고 밥을 먹는 제스처를 하니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한국분이세요?"

갑자기 어눌한 발음으로 존댓말을 하는 아주머니는 빙긋이 웃으며 뒤편에 있는 집을 가리키며 밥 먹는 제스처를 한다. 몽골에는 뜬금없이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손주를 보고 있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음식점에 들어가 음식을 달라고 요청하니 냉장고에서 고기 한 덩이와 당근 그리고 감자를 꺼내어서 보여준다.

"초이완?"

고개를 끄덕이는 할머니에게 '음메에', '음머', '히히잉' 세 가지 소리를 내어 무슨 고기인지 물어보니 소고기라고 한다.

"아니 이런 레어 아이템은 어디에서 난 거예요?"

할머니의 다용도 충전 케이블에 핸드폰을 충전하며 앉아있으니 사발과 함께 커피를 내어준다.

"할머니 센스쟁이!"

스탠레스 접시에 모양 좋게 내어준 6,000투그릭의 초이완은 양도 많고 정결하고 맛도 좋다. 슈퍼에서 사 온 맥주와 함께 오랜만에 맛있는 식사를 한다.

"숨은 맛집이네. 할매 음식 솜씨 짱!"

아브갈대를 지나 이흐울까지의 거리를 줄여놓을 생각이지만 바람으로 인해 속도가 떨어지며 목적지를 아브갈대로 정한다.

계속되는 산길의 오르막길에 변화무쌍한 구름의 움직임들이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고.

순간순간 변화는 하늘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믿을 수 없는 아름다움.

바람과 사람들로 인해 피곤해진 몽골 여행의 모든 것들이 눈이 녹듯 사라져버린다.

지면을 타고 하늘로 모아지는 구름들의 모습은 경이롭고.

몽골의 아름다움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시간을 멈추고 보이는 모든 것들을 눈에 담아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보여주고 싶어! 무언가 욕심을 내야 한다면 지금의 이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

가슴 뛰게 만드는 풍경들을 뒤로하고 작은 산의 언덕을 오르니 고개 너머로 아브갈대의 모습이 나타난다.

"오긴 왔는데,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볼까?"

도로의 왼편으로 아브갈대의 마을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고, 도로변으로 주유소와 작은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다.

천천히 도로를 따라가며 적당한 음식점을 찾던 중 초입의 작은 식당에서 창문을 열고 한 남자가 나를 부르며 손짓을 한다.

"부르는데 가 봐야지!"

남자의 식당으로 들어가 인사를 하니 마당 안쪽으로 자전거를 놓아두라며 안내를 한다.

"미니 싸비, 타니 네르?"

"다코라."

인상이 썩 좋지 않은 남자 다코라와 악수를 하고 허름한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그의 아내와 어린 아들 그리고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그의 딸이 어린 젖먹이 동생을 돌보며 나를 쳐다본다.

"샌 베노!"

스마트폰에 익숙할 큰 딸에게 가족들의 이름을 물어보고 대화를 이어가려 했지만 어딘가로 떠나는지 큰 캐리어 가방을 들고 창밖을 응시하며 바쁘다. 아마도 도시로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기 위해 떠나는 것 같다.

무난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큰 딸이 떠나버리고 다코라와 마주 앉아 대화를 시작한다. 저녁을 먹으라는 다코라에게 메뉴와 가격을 물으니 초이완을 설명하며 6,000투그릭이라고 알려준다.

강한 인상을 갖은 다코라는 얼굴에 주먹다짐의 상흔으로 보이는 상처가 나있어 더 불량하게 느껴진다. 오늘 도중 할머니의 식당에서 맛있는 초이완을 먹고 온 터라 초이완 대신 밥을 달라고 요청하고 8시 30분쯤에 밥을 먹겠다고 시계를 보여준다.

스마트폰을 주고 번역기의 자판을 몽골자판으로 바꿔주어도 도무지 글자를 쓸 생각을 하지 않는 다코라. 그에 비해 그녀의 아내는 서글서글한 인상을 갖은 마음씨 좋은 웃음을 가졌다.

다코라와 그의 아내는 테이블에 앉아 자꾸만 몽골어로 무언가를 말하며 떠든다. 다시 한번 시계를 보여주며 조금 후에 저녁을 먹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낡은 간이침대를 가리키며 잠을 자고 가겠다고 알려준다.

"밥 먹고 잠자는데 얼마야?"

다코라는 그제서야 11,000을 적더니 밥 먹는 제스처를 하며 6,000 그리고 잠자는 제스처를 하며 5,000을 적어 보여준다. 식사와 숙박비에 대해 알았다는 제스처를 했지만 다코라와 그의 아내는 무언가를 계속 물어보는 듯한 말들을 이어간다.

도저히 어떤 내용인지 알 수가 없어 툴가에게 전화를 했지만 수업 중이라 통화가 어렵고, 선교사님은 통화가 되질 않는다. 마지못해 감바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내용인지를 알려달라 부탁을 한다.

한참 동안 감바와 통화를 하던 여자는 통화가 끝나지 않는 전화기를 나에게 건네준다. 아마도 감바가 또 잔소리와 같은 연설을 여자에게 한 모양이다. 생각대로 감바는 여자를 붙잡고 '여행하는 한국 사람이니까 잘 도와줘야 한다'는 내용의 일장 연설을 한 것이다.

"우리 감바형은 정말 캐릭터가 확실해!"

식사와 숙박료에 대한 합의가 끝난 것으로 생각하고 낡은 침대가 놓인 어두운 방에 누워 잠시 쉰다. 그동안 술에 취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밥을 먹으며 시끄러운 소리로 대화를 이어가고 그중에 술에 취한듯한 한 사내가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벌러덩 드러눕는다.

술에 취한 사람들과 대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애써 그들을 외면하고, 다코라의 어린 아들에게 핸드폰의 사진을 보여주며 시간을 보낸다.

"야! 너 이름은 너무 어려워서 도저히 발음이 안 된다."

대형 화물 트럭을 운전하는 기사들이 식당으로 들어와 반주와 함께 술을 마시고, 울란곰으로 간다는 화물차 운전사는 약간 취기가 올랐는지 나에게 자전거를 싣고 가자며 두어 차례 말을 걸어온다.

웃으며 손사래를 쳤지만 정말 술에 취한 몽골인들을 대하는 것이 힘들게 느껴진다. 몽골을 여행하며 좋지 않은 도로의 환경과 100km 단위로 나타나는 작은 마을들, 고산지대의 산길과 계속되어 이어지는 거센 바람들, 의사소통이 안되는 언어 장벽 그리고 너무나 빈약한 몽골의 음식들보다 힘든 것이 밤낮으로 술에 취해있는 몽골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얼굴에 주먹다짐의 상처를 하나씩 달고 다니는 몽골의 남자들. 그것 또한 그들의 생활 방식이고 문화이겠지만 타국의 이방인의 눈에는 그런 모습의 사람을 바라보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툴가야, 몽골 사람들을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 거니? 전통적으로 술을 좋아하는 민족이니?"

"아니요. 술을 많이 마시지만 술과 어울리지 않아요."

"몽골 남자들이 손가락에 끼고 다니는 반지는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그것 때문에 싸울 때마다 사람들 얼굴에 상처가 나잖아!"

"아니요. 그냥 건강 반지 같은 거예요."

"..."

툴가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 다코라의 아내가 저녁 식사를 준비해 주고, 화물트럭 기사들이 빠져나간 식당에는 점잖은 노부부가 들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물을 찾던 중 '한국 커피'를 외치는 노신사에게도 한 대접을 타서 건네준다.

잠깐 동안 노부부와 여행에 대해 얘기를 하고 낡고 균형이 맞지 않은 간이침대에 눕는다.

승용차를 몰고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것인지 허름한 식당의 숙소에 들어와 자연스럽게 잠을 자는 점잖은 노부부를 보며 몽골인들의 일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술에 취해있지 않는 몽골인들은 너무나 사람을 좋아하고, 손님을 대하는 유목민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친족 또는 부족에 대한 강한 결속력은 때로 타인에 대한 배타적인 이면의 모습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겠지만 인구수가 많지 않은 넓은 초원에서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을 안고 사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단지 몽골 사람들의 문화일까 아니면 상실감에 의한 욕구의 불만일까? 정말 알 수가 없다!"

경사가 진 낡은 침대에서 패니어들을 묶은 와이어를 팔에 감고 잠이 든다.

"가난한 나라의 알 수 없는 사람들 틈에서 가난한 여행자가 가난한 마음을 품고 불안해하며 잠이 든다. 이런 불편한 마음을 품은 내가 구역질 나게 싫지만 이 여행을 멈추고 싶지 않아. 미안해 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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