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일:2018.10.31 / 맑음・16도

속초해변-대포항-양양 낙산사-하조대-남애항-주문진-경포대-안목해변-강릉항

7시 알람을 뒤로하고 따듯한 침대에 누워 늦잠을 청하였으나 8시가 조금넘어 깨고말았다. 화사한 햇살이 큰 유리창 너머로 넓은 방안을 눈부시게 비추고 있었다. 오늘은 천천히 동해해변길을 달리며 바다의 소리를 들어야지.

이동거리

71.55Km

누적거리

316.72Km

이동시간

5시간 29분

누적시간

22시간 09분


양양
주문진
42Km/3시간 05분
30Km/2시간 24분
속초
남애항
강릉항
 
 
317Km

 

물을 먹은 스펀지처럼 온몸이 무거웠고, 허벅지와 종아리의 뻐근함으로 묵직하였다. 상급 모텔의 따듯한 방과 적당히 내 몸을 덥히고 있는 전기장판의 온도, 바스락거리는 깨끗한 이불에 파묻혀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햇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매일 이런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하였다.


 

지난 저녁 보지 못한 바다의 풍경을 보기 위해 속초해변으로 나갔다. 따듯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속초해변, 동해안의 여러 해변 중 나는 이곳을 가장 좋아한다. 언제 오든 마음속 무게를 순간의 가벼움으로 날려버리는 상쾌함이 좋다.


그 마법 같은 해답을 바라며 지난시절 이유 없이, 계획 없이, 동행 없이 이곳을 향하곤 했었다.  


 


 

"언제나처럼 응어리진 나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겠니? 다음 너를 마주하면 네가 덜어내어준 지난 모든 것들이 지나갔음을 확인하며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랜 후에 다시 보자."


 


오늘 이동거리는 독도로 들어가는 여객선이 있는 강릉항까지 80Km 정도. 동해안 해안 자전거도를 따라 이동하면 된다. 예전 해안도로가 주문진에서 끊기어 양양을 거쳐 속초로 향하는 7번 국도를 타고 이동해야 했었다. 최근의 해안도로는 자전거 도로로 정비되어 고성까지 연결이 되어있는 모양이다.


어제의 미시령을 넘는 조금 무리한 라이딩은 약간의 시간의 여유로움을 갖게 해주었다. 살며 수많은 선택을 하여야 한다. 어제의 미시령을 넘을지에 대한 선택또한 그러한 선택 중에 하나였다. 


나는 어떠한 삶의 선택에도 잘못된 선택 또는 잘한 선택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자신의 선택에 의해 뒤따르는 과정에 충실하면 된다. 그것이 아무리 고단하고 아플지라도 삶에 있어 그때의 선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선택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만약이라는 가정이 담겨있는 나약한 현실 부정과 다를 바 없고, 공허한 후회라는 감정만을 남겨놓는다. 결국 어떤 선택에 의한 결과는 선택의 순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 이후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의 문제일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놓여진 현실에서 또 다른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따른 과정에 다시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제법 익숙하게 패니어의 무게들을 균등하게 만들고, 자전거의 장착에 시간이 줄어들었다. 겨울의 초입이라 생각하기 어려운 따듯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동해의 여행을 시작한다.



속초해변에서 설악해변까지의 해안 자전거도로는 한적한 해안길과 국도변 나무 테크로 전용도로를 만들어 바다 가까이 풍경과 함께 달릴 수 있었다. 아름다운 동해의 바다와 파도소리가 그 어떤 잡념의 개입을 가로막았다. 



7번 국도와 잠깐의 조우 후 낙산사에서부터 시작되는 양양의 도로는 해변 이면의 2차선 구도로로 이어지고 있었다. 몇 개의 업힐이 이어지고 아침해를 정면에 두고 달리는 라이딩은 약간의 지겨움을 느끼게 하였다. 


 


 

하조대를 지나 7번 국도를 타고 이동한다. 자전거를 타기에 넉넉한 갓길을 확보하고 있지만 언제나 통행량이 많은 이 길이 유쾌하지는 않다. 동해해변의 풍경에 심취해서 그리고 양양을 넘은 구도로의 나른함에 시간을 지체한 것을 국도를 달리는 시간에 줄이고자 속도를 내었다. 


왼쪽 새끼손가락이 어제부터 저리기 시작하더니 찌릿찌릿 신경을 건드린다. 


 

남애항 삼거리에 이르러 다시 해안도로를 타기위해 7번 국도를 빠져나왔다. 이곳의 등대횟집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오후 2시가 넘도록 밥을 먹지 않았다. 남애항의 안내판을 보는 순간 지난 오래전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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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애항 삼거리. 남애항에서부터 강릉까지 이어지는 자전거도로를 즐길수 있다.


 

 

오래전 짱구형과 함께 강릉에서 여름휴가를 보냈었다. 강릉 경포대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또다른 날 이곳 남애항까지 초등학교를 다니던 짱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와 점심을 먹었었다. 이모님이 운영하시는 음식점 등대횟집, 8년전 전국일주 때에도 잠시들려 식사를 하고 갔었다. 


어딘가 낯선 곳이 이런 인연들이 하나, 둘 있다면 좋겠다 생각하였다. 집앞 단골집에도 인연을 만들지 못하는 나의 게으름으로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소박하고 조용한 남애항. 근처 조그마한 남애해수욕장이 있어 휴가철 북적이는 유명 해안보다 이런 곳이 가족끼리 조용히 보내기에 좋은 것 같다. 


 

방긋이 맞이하는 이모님, 나를 몰라보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물회를 주문하고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것 같은 식당의 내부를 눈여겨본다. "어디 달라진 데가 없나?"


 

회가 따로 담겨 나오는 물회. 매콤 새콤한 그 맛있는 맛이 그대로였다. 늦은 점심의 허기로 순식간에 큰 그릇을 비우고 자리를 일어서자 믹스커피 한 잔을 내어 주셨다. "이모님, 건강하시네요. 저 예전에 윤기랑 자전거 타고 왔었잖아요." 하였다.


"윤기, 오윤기. 그래 오윤기" 하셨다. "네, 잘 먹었습니다. 이모님, 건강하세요!" 인사를 드리고, 남애항의 든든한 점심의 만족감과 함께 강릉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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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애항 등대횟집. 맛있는 회따로 물회를 먹을 수 있다.



 

남애항에서 강릉까지는 여러 해수욕장을 따라 해안길이 이어진다.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주문진의 비린 짠내음을 지나 해변가 해송의 솔향기가 은은하게 이어지는 연곡해변, 사천해변 그리고 강릉의 경포대로 이어지는 길. 지난 그때 체력이 지친 짱구가 투덜거리며 페달을 밟던 기억이 떠올라 피식하였다.


생각해보면 한가롭고 여유롭던 시절이었다. "언젠가는 꼭 한번 같이 갔으면 한다." 그의 마음을 받는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함께 즐겁게 여행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해안길 촘촘히 자전거길의 안내가 도로에 프린트되어있고, 자전거 전용길이 도로변 옆으로 2미터 정도 넉넉히 확보되어 있었다. 


 


다섯시가 넘어서야 경포대에 도착하였다. 속초 해변에서의 한가로움이 생각보다 늦은 라이딩 시간을 갖게 하였다. 충분히 아름다웠고, 마음속 시원함이 작은 행복감을 주었다. 



속초해변과 경포해변을 보면 놀랍다.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사장의 규모와 너무나 경쾌한 파도의 소리와 바다 빛. 조금더 머물고 싶지만 마저 가야 할 길이 있다.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 약간은 외져 보이는 도로 길을 달려 GPS는 강릉항을 가리켰다. 좁은 골목을 돌아서야 눈에 들어오는 등대. 넓은 주차장을 돌며 터미널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다시 주차장을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향했을 때 생각지 못한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잠시 의아해하는 순간 해변과 도로길을 따라 커피숍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오, 카페거리..!" 


일몰을 보기위해 방파제로 향하는 사람들 사이로 여객선 터미널을 찾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두어 번 제자리를 돌고서야 강릉항 여객터미널을 알리는 길 안내판을 발견하고 주차장과 해변 사이의 작은 소로를 따라 들어갔다. 등대의 방파제 밑 너무나 작은 여객터미널.


배의 승선을 기다리는 사람들, 표를 예매하는 사람들, 시간과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터미널의 안은 사람 한 명 보이지않고 텅 비어 있었다. 예상치 못한 어색한 상황에 잠시 멍하게 블라인드가 내려진 매표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도 크게 보기

강릉항 여객터미널은 방파제와 주차장 사이의 길을 따라 안쪽에 위치해있다.


"독도행 8시 20분 정상 출항, 발권 7시 20분부터" 안내 문구를 보며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표가 없으면 난감한데."


 

내일 새벽 일찍 와서 대기할 생각으로 터미널을 빠져나왔다. 미미한 석양빛이 남아있는 해변에서 젊은 청춘들이 셀카봉과 삼각대 그리고 갖가지의 모양들로 그들의 시간을 남기고 있었다. 


약간은 후미진 길가의 뒤편에 이런 화려한 거리와 생동감이 있을 줄 생각지 못하였다. 그들의 웃음이 경쾌하게 느껴졌고 강릉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플레이스임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첫 번째 야영을 할 장소가 필요하였다. 첫날의 우중 라이딩으로, 둘째날의 찬바람을 맞은 피로로 핑계하며 야영을 하지 않았다. 생에 첫 번째 와일드 캠핑이라 조금은 시간적 여유를 두고 했으면 하는 우려의 심정이었다.


어둠이 찾아오는 해변가에서 조급함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카페거리의 끝자락, 해변가의 사람들이 오지 않는 모레 사장 위를 선택하였다. 바다와 가까이 위치해 있었지만 언덕처럼 높게 위치하여 파도가 밀려올 걱정도 없었다. "여기로 정했어!"


 

텐트를 칠 장소를 결정해 놓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급격한 허기가 밀려들었다. 남애항의 물회 한 그릇이 오늘 식사의 전부였다. 


 

간단히 요기할 식당을 찾았지만 횟집 한두 곳을 제외하고 온통 커피숍뿐이였다. 해변가를 한 바퀴 돌고서 오늘은 편의점표 식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나저나 해변이 참 좋네"


 

근처 GS 편의점에 들렸다. 머릿속에 짭조름한 스팸 한조각과 따듯한 햇반이 떠다녔다. 햇반과 컵라면, 스팸 작은 것 하나를 골라들고 가격을 보는 순간 "어. 이거 식당밥 한끼 보다 더 비싼데.."


8평 남짓의 작은 편의점을 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진열된 상품을 집었다 넣어다를 반복하였다. 부스터를 켜고 음식을 조리하고 싶지 않은 게으름. 결국 삼겹살 도시락과 닭다리 하나를 사들고 전자렌즈에 데운 후 편의점을 나왔다.


 

여행을 위해 텐트를 구매하고 처음 설치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제품을 접하면 요리조리 제품의 설명서를 꼼꼼히 체크하고 때론 인터넷의 제품 사용기를 완전히 섭렵하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이처럼 게으른다. 


새로운 것을 구매하거나 생기더라도 그것을 사용하기 전까지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별로 없고, 없던 물건처럼 내버려 둔다.   


 

텐트는 설치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처음이라 조금 탐색의 시간이 필요한 정도였다. 텐트를 설치하고 약간의 설렘과 뿌듯함이 느껴졌다. 텐트를 잘 설치해서가 아닌 첫 번째 와일드 캠핑에 대한 즐거움이었다. 


"드디어, 바닷가에서 텐트를 치고 파도소리를 들으며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구.."


 

텐트 안은 어릴 적 뛰어놀던 숲속의 비밀 아지트처럼 아늑하고 비밀스럽게 느껴졌고, 오리털 침낭은 따듯했다. 군대 이후 이런 개인용 텐트에서 자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이 발냄새는 어쩔 거야."


야영을 준비하느라 편의점에서 데워온 도시락과 치킨 한 조각은 식어있었다. 뭐 그런 것에 연연하는 성격이 아니니 식은대로 나름 잘 먹으면 그만인 것. 



울릉도로 들어가는 배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며 표를 구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으면 하였고, 한 좌석 정도는 있을 테니 일찍 일어나 일순번으로 대기해야겠다 생각하였다.


바로 옆에서 밀려드는 것 같은 파도소리를 들으며 하루의 땀을 씻어내지 못한 끈적임의 불편함, 간간이 지나가는 사람의 인기척에 긴장하며 모르는 사이 잠들어버렸다.   

 

 


GPS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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