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1일 : 2018.11.09 / 바람, 맑음・18도

남해-해안도로-남해대교-하동-섬진대교-광양-광양제철-광양여객선터미널

어제의 우중 라이딩으로 인해 조금의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의 나른한 게으름을 뒤로하고 남해의 해안도로를 따라 여수를 향해서 출발하였다. 강한 바닷바람이 나를 밀어내었어지만 계획된 여정이 없는 여행자에게 그것또한 땀을 식히는 시원한 여유로 다가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시간을 즐겼다. 조금더 천천히 갈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이동거리

86.73Km

누적거리

1,538.86Km

이동시간

7시간 27분

누적시간

86시간 53분


죽방해안길
하동
55Km/4시간 51분
31Km/2시간 36분
남해
남해대교
광양
 
 
1,539Km

 

편안하고 좋은 아침이였다. 비가 지나간뒤 바람결에 남은 풋풋한 비냄새와 혼자만의 시간, 되돌아가 처리해야할 정해진 일들이 없다면 며칠쯤 머물고 싶은 편하고 느긋한 시간의 유혹이였다.


"꿈같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어."


 


따듯한 속소의 온기에 비에 젖었던 옷가지와 신발이 뽀송하게 말라있었다. 침대에 누워 게으름을 피우다 몸을 일으켜 여수를 향해 출발하였다.


남해대교를 넘어 남해의 남동방향을 돌아 사천으로 이동했던 지난 여행과 달리 이번 여행에서는 삼천포대교를 넘어 북동방향을 돌아 남해대교로 이동할 것이다. 목적지는 여수로 넘어가는 광양시.


 

나폴리 모텔을 나와 얼마지나지 않은 곳에 멸치쌈밥 남해밥상이 보였다. 통영에서부터 변변한 식사를 못한터이라 아침부터 출출함이 밀려와 자전거를 멈추고 가게안을 살피었다.


이내 여자 주인이 나를 보고 "아직 식사준비가 안되었어요." 하였다. 숙소 주인이 건낸 컵라면과 지난 저녁은 먹다남은 치킨을 패니어에 넣어두었다는 심리적 든든함이 있어서인지 괜찮다 싶었다. 


오히려 24시간 다를것 없는 도시생활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습관이 불편하다 생각되었다.  


 

 

 

길가의 왕후박나무, 지나온 길들에서 마주했던 고목들과는 다르게 짙푸르게 풍성한 나뭇잎을 넓게 펼쳐놓았다. 받침목이 없다면 지면까지 닿을 것 같은 가지의 풍성함이 마치 동굴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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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대벽리 단항왕후박나무


 

 

 


 

 

남해의 안쪽 바다를 품은 창선도의 1024번 지방도로는 큰 오르막 없이 잔잔하게 이어졌다.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의 풍경이 낯설다 생각되었다. 해안면에 인접되어 있는 논과 밭 그리고 바다로 이어지는 풍경이 다른 섬들의 해안들과는 색다르게 느껴졌다.


 

 

딱히 개울이나 수로시설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농업용수를 마련하는지 궁금하였다. "자연 강수만으로 농사를 지으시는가?" 


 

 

 

 

사포항의 방파제에 앉아 잠시 쉬었다. 발을 내리면 바다물에 담길 것 같은 낮은 방파제에 부딪치며 찰랑거리는 파도소리가 좋았다.


 

 

 

남해 본섬으로 넘어가는 창선교 부근에 이르자 대나무와 말뚝을 부채꼴 모양으로 박아 만들어 놓은 죽방렴들이 보였다.


 

 

 


창선도 주변에서 볼 수 없었던 빠른 유속의 바다 가운데 놓인 죽방렴들. 창선교를 넘어 가장 먼저 멸치쌈밥집을 찾았다. 


 

 

남해 해안도로로 들어선 코너의 첫번째 식당 손도죽방장어.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자전거를 세우고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식사되죠?" 


 

메뉴를 둘러보고 멸치정식을 주문하였으나 1인상은 주문이 안된다며 쌈밥을 추천하였다. "1인상을 먹겠다고 하지않았는데.."


여행중 대부분의 먹거리들은 그러했다. "2인이상 주문"


도심을 벗어난 곳에서 홀로 밥을 먹는 사람이 흔치않겠지만 같은 상차림의 비효율성 때문이라면 가격을 조금 높이더라도 1인과 2인의 구별을 하여 메뉴를 구성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텐데 생각하였다.


 

멸치쌈밥을 주문하였다. 이전에 한번쯤 먹어보았는지 기억이 가물하였지만 야채와 곁들여 쌈장과 마늘의 향을 느끼는 쌈밥이라는 것이 어지간하여 맛이 없을 수 없는 음식이지 않은가. 


 

가끔 집에서 직접 조리를 하여 먹던 음식처럼 어설픈 느낌의 비주얼이였다. "조림도 아니구 국도 아니구, 이건 뭘까?"


 

미꾸라지만한 크기의 멸치를 넣어 야무지게 한쌈을 하고서 맛있다 감탄하였다.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든든하게 한끼를 먹을 수 있는 맛이였다.  


 

맛있다는 두어번의 감탄에 "정식을 먹으면 더 좋은데"하며 추천을 하였다. 혼자라 안된다 하지않았느냐 반문하니 "지금의 찬에 멸치회와 장어구이만 추가하면 되는데요" 하였다.


"그럼 주세요." 


 

 


뒤늦게 올라온 멸치회, 장어구이, 멸치쌈밥으로 오랜만에 든든한 점심을 하였다. 아마도 저녁식사 였더라면 달달한 소주 한잔을 반주로 곁들였을 것이 틀림없다.


 

 

 

음식에 대해, 여행에 대해 친절하게 몇마디가 오가는 식사였고 썩 만족스러운 배부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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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방멸치과 장어구이를 먹을 수 있는 손도죽방장어


 

 

든든한 점심 식사 후 남해읍의 해안도로를 따라 남해대교로 향한다. 조금 거센 바람이 맞바람으로 자전거를 밀어내었다.


 

 

 

 

 

해안과 맞닿아 있는 해안도로는 오르내림 없이 평탄하였다. 비가 내린 다음날의 바람이 없었다면 즐거운 질주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천천히 바람을 느끼며 달리는 느긋함이였다. 


 

 

 

멀리 쇠섬 가까이 낚시를 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여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속았네.."


 

 

쇠섬의 방파제, 이번에는 정말 낚시를 즐기는 사람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나누고 잠시 곁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루어 낚시를 하다 잘 안되어 미끼 낚시를 한다고 하였다. 딱히 무엇을 잡겠다는 것보다 시간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남해읍 해안도로를 달리는 동안 만나지 못했던 오르막길은 고작 2분정도면 끝이나는 언덕 하나가 전부였다. 내륙과 고갯길을 넘는 남해의 남쪽해안과는 달리 누구나 편하게 바다를 보며 달릴 수 있는 편한 자전거길이라 생각하였다. 


 

 

 

남해대교에 이르기전 양옆의 벗꽃나무들이 가로수되어 있는 도로를 지나 남해충열사에 도착하였다. 언덕에 위치한 작은규모 사당처럼 보였다.

주위를 둘러싼 벗꽃들이 꽃을 피우면 소박한 정취가 좋을 것 같다 생각하였다.


 

 

 

 

 

 

 

 

 

사당으로 보이는 곳은 공사중이였고 사당 뒷편에 가묘가 놓여져 있었다.


 

 

충열사를 내려오는 길에 멋진 패션을 갖추신 한 노신사분이 말을 걸어왔다. 자신도 자전거를 탄다며 신기한듯 자전거와 패니어에 대해 물으셨다.


"구루마를 끄는 사람도 보고 많이 봤는데, 내가 본 사람중에 짐이 제일 많네 그려. 멋있구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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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대교에 위치한 남해충렬사

 

통영 강구항의 거북선은 조금 장난스러워 보였는데 이 곳의 거북선은 제법 멋이 났다. 실제의 크기인지 축소된 모형인지는 모르겠으나 몇척정도 더 놓아두었으면 좋을텐데 생각하였다.


 

 


노량대교가 새로 만들어져 남해대교는 차량의 통행이 줄어들어 다리는 건너는 동안 한대의 차량만이 자전거를 지나쳤다. 


시골의 사진첩을 보면 남해대교를 배경으로 찍은 부모님의 오래된 여행사진이 있다. 한때 우리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불리웠던 남해대교, 수많은 사랃들의 추억속 배경이 되어주었던 랜드마크도 시간의 흐름앞에 놓인 것이다.   


 

한적해진 남해대교의 한 차선을 차지하고 느긋하게 양편의 풍경들을 즐기며 건널 수 있었다. 아쉬운 것이 있으면 또한 좋은 것도 있기 마련이다. 그리 길지않은 다리이니 공원화하여 거닐수 있는 다리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았다. 


 

 

남해대교를 넘어 노량해안길을 따라 광양으로 이동하였다. 멀리 보이는 공업단지의 실루엣이 숨막히게 을씨년스럽다 생각하였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속 죽어가는 도시들의 모습들이 오버랩되었다.


 

 

하동군의 노량해안도로를 벗어나 처음 마주한 생활폐기물 처리장을 시작으로 긴 고갯길이 시작되었고, 하얀증기를 뿜어대던 거대한 기둥들이 무엇인지 궁금하였다.


 

고개를 넘는 내리막길 사이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주 낡은 제철소나 공업단지를 생각했는데 네모반듯 깔끔하게 들어선 거대한 건물이 나타났다. 하동 화력발전소, 단일건물로 본 가장 크고 넓은 규모의 건물이였다.  


 

공룡처럼 느껴졌다. 신기하여 유심히 건물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으며 생각하였다. "예전에 이러고 있었으면 딱 간첩이네."


거대한 기둥들과 냉각수 파이프로 구성되어 있는 발전소를 보며 인간에 대한 경외심이 들었다. "인간이란 참 대단하면서도 참 무섭다."


 

거대한 파이프를 따라 길이 이어지고 넓은 갈사만 간척지의 방파제를 따라 억새의 출렁임이 계속 되었다. 인위적인 인간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그것마저 품에 안고 아름다움을 연출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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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갈사만사업단지 방파제의 끝 연막마을 입구


 

연막마을과 나팔마을의 해안길을 따라 이동하는 사이 광양의 공업단지로 떨어지는 일몰이 시작되었다.


 


구름사이로 붉은 석양의 빛들이 산란하며 흩어졌다. 아름다운 석양빛과 공업단지의 검은 실루엣이 부조화의 조화처럼 모순적이였다. 일상의 바람들을 짓누르는 현실 인식의 만능 치트키처럼 내뱉고 마는 "현실이 그렇잖아?"의 투정처럼 느껴졌다.


"동의해 달라는 듯 나에게 묻지마. 적절한 현실 인식처럼 보이지만 그냥 자기부정의 체념에 불과해 보여."


 

 

 

석양의 섬진대교를 넘어 전라도에 들어섰다. "경기도-서울-강원도-경북-경남-전남까지 왔구나" 


 

포스코 광양제철소를 따라 직선으로 이어진 제철로를 따라 광영 여객터미널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도로를 이동하는 거대한 화물차량의 위압감과 퇴근시간에 맞물려 쏟아지는 차량의 행렬로 인해 도로 이동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끊길듯 끊길듯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를 찾아 따라가며 길호대교를 넘어 광양향에 도착하였다. "길이 수줍어 보이기는 처음이네. 숨바꼭질도 아니구."


 

 

여객터미널 근처 편의점에 들러 간단한 도시락과 음료를 사들었다. 든든하게 먹은 남해의 멸치쌈밥으로 배고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광양 여객터미널 옆 공원의 잔디밭에 텐트를 치고 하루를 정리하였다. 바스락거리는 푹신함이 좋았다.


 

편의점의 도시락과 나폴리 모텔에서 먹다남은 치킨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여수로의 이동경로를 살피었다. 제주도로 넘어가기전 여수를 충분히 여행하고 싶었다.


광양에서 여수까지 내륙의 도로를 타고 60~70Km의 거리, 여수항을 출발하는 제주도 배편은 새벽 1시 40분에 출항하기 때문에 시간은 넉넉하였다. 하지만 여수를 지나치듯 그렇게 떠나고 싶지 않았다. 


광양만을 돌아 내륙으로 이동하는 70Km의 경로와 이순신대교를 넘어 다이렉트로 이동하는 경로를 알아보고 내일 결정하고자 하였다.


"이순신대교 저거 자전거로 넘어도 괜찮은가?"



가족이 공원에 놀러나온 것인지 이리저리 뛰어나니며 까르르 웃어대는 어린아이의 웃음소리와 함께 잠이 들었다.




 

GPS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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