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35일 / 흐림
슈토너보시-사르미스카시
카잔을 떠나 니즈니노브고로드를 향하는 여정, 다시 시작된 라이딩으로 뻐근함이 느껴지는 날이다.
"오늘은 날씨가 좋으려나?"
오랜만에 자전거를 탄 탓에 온몸이 무겁고 뻐근하다.
"이삼일 고생 좀 하겠네."
공기는 차갑지만 햇볕이 들어 상쾌하다.
다시 시작된 라이딩의 굿모닝을 알리고.
텐트가 마르기를 기다린다.
아침으로 이글이 챙겨놓은 고기가 들어간 빵으로 해결한다. 하나하나 호일을 감싸놓은 이글의 꼼꼼함이 느껴진다.
10시, 오늘의 라이딩을 시작한다.
누나의 전화를 받고 심란해진 정신, 프런트 패니에를 묶던 자물쇠가 바퀴에 엉키며 자물쇠와 패니어의 연결고리가 뜯어져 버렸다.
"젠장."
너무나 게으르지만 어떤 일과 생각에 몰두하면 예민해지는 성격 탓에 평상시라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들이 발생하곤 한다.
모스크바까지 700km,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다.
두 시간을 달려 작은 마을을 지나친다. 무릎과 허벅지, 종아리가 뻐근하고 쉬는 동안 말랑말랑 변해버린 엉덩이가 아파온다.
평속 10km가 겨우 넘는 속도지만 무리를 할 생각은 없다. 자전거와 라이딩에 적응할 때까지 조심스레 페달링을 하여야 한다.
추운 날씨 속에서 관절이나 인대에 무리가 간다면 그것보다 난감한 일은 없을 것이다.
마을의 회전 교차로를 지나고.
제법 규모가 있는 마을의 도로변에 슈퍼와 식당들이 있지만 그냥 지나친다. 아침으로 빵을 먹었고, 패니어에 이글과 포가 챙겨준 음식들이 가득 들어있다.
고개와 언덕들을 넘는 사이 하늘을 뒤덮는 구름의 모양이 심상치가 않다.
거대한 양탄자처럼 하늘을 뒤덮고.
때로는 우주의 성운처럼 수직으로 용솟음치며 울라 가기도 한다.
어제와 같은 회색빛의 세상으로 변해간다.
체복사리를 앞두고 작은 박물관처럼 생긴 곳의 안내판에 눈길이 간다.
"웬 한자?"
사람의 사진 밑에 한자가 적혀있어 중국인의 이름인가 생각하며 호기심에 자전거를 세웠지만 자세히 보니 환영(歡迎)이라는 인사말이다.
"제대로 낚었어."
" 쉬어 가자."
쉬는 동안 카잔을 벗어나서 경계를 넘었던 추바시 공화국에 대해 검색해 본다.
50만명 정도의 작은 공화국이고 수도는 이제 곧 지나치게 될 체복사리다.
"체복사리가 수도구나. 그나저나 근처에 식당이 없나?"
카페를 검색하려다 귀찮아진다. 아무리 작아도 공화국의 수도로 들어가는 길목에 식당 하나쯤은 있겠지 싶다.
멀지 않은 곳에 카페가 나타나고.
3시, 플롭과 닭고기로 늦은 점심을 해결한다.
"배도 채웠고, 이제 조금 신나게 달려 볼까."
6시 정도면 어두워지기 때문에 남은 2시간은 속도를 내어 달려볼 생각이다.
추바시 공화국의 수도 체복사리의 진입을 알리는 구조물을 지나치고.
"공화국 깃발이 노란색이네."
체복사리의 외곽을 지나는 도로지만 체복사리로 들어가는 교차로들과 신호등들을 지나치느라 시간이 소요되고, 도로도 혼잡하다.
체복사리의 외곽을 완전히 벗어나자 검은 비구름과 함께 검은 빗줄기가 내리는 모습이 전방에 펼쳐진다.
한편에서는 검은 빗줄기가 내리고 있고, 한편에서는 환한 태양빛이 구름을 뚫고 반짝거린다.
내가 가야 할 곳은 검은 비구름에 덮여있는 길이다.
크게 한숨을 쉬어보고.
빗속을 향해서 달려 들어간다.
천천히 옷과 신발이 젖어든다.
40여 분, 빗속을 달리고 서야 비구름의 지역을 벗어날 수 있었다. 회색 구름 너머로 주황빛 찬란한 햇살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다른 한편의 하늘에서는 여전히 검은 빗줄기가 흩날리고 있고.
붉은 태양빛이 선명해지는 하늘을 향해 페달을 밟는다.
"눈에 담고 싶은 하늘이다."
해가 지기 전, 다시 어두운 구름이 몰려오기 전에 석양빛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쉼 없이 달려간다.
연이어 나타나는 오르막길이 발길을 느리게 만들지만.
"이 관경을 놓치고 싶지 않다."
매일처럼 해가 뜨고 해가 지지만 자연의 풍경은 매일이 새롭고 경이롭다.
고개와 언덕을 넘는 사이 태양의 붉은빛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마지막 언덕을 오르고 자전거를 세운다.
지평선으로 떨어진 태양의 붉은빛이 하늘의 뒤덮은 구름을 물들이기 시작한다.
붉게.
붉게.
더 붉게.
"정말 멋진 하늘이야."
힘든 하루의 끝에 맞이한 황홀한 선물이다.
여행의 삶은 오직 오늘의 하루를 위해, 한순간 지나쳐버리는 시간에 대해 진심을 다하는 것이다.
내 삶의 마지막 오늘을 보내듯이 바라보고 느꼈던 모든 것들이 애틋함으로 다가온다.
야영을 위해 석양빛을 바라보던 자리의 측면에 있는 나무숲으로 들어간다.
좋은 자리를 찾아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니 둘레가 넓은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나타난다.
"와, 멋진 나무다."
커다란 고목 아래 텐트를 치고.
립킨이 선물해 준 통조림으로 저녁을 해결한다.
고기 통조림과 콩 통조림을 섞어서.
맛있게 끓여먹고.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비에 젖은 발은.
이글의 수면 양말로 따듯하게.
아주 조용한 밤이다.
정신없는 하루였지만 붉은 노을과 석양빛이 그저 좋았다.
"충분한 하루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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