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32일 / 흐림
카잔
이틀 전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다. 이글의 아들이 아파트로 방문하기로 한 날이다. 오랜만에 만난 이글 부자에게 시간을 내어준다.
오랫동안 두 남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 같은 부자의 관계처럼 보인다.
이글이 선물한 손뜨개질로 만든 양말, 따듯한 것이 수면 양말로 사용한다.
어린 시절 서울로 유학을 떠난 후 혼자 떨어져 살았고, 성인인 된 이후에는 연로한 부모님과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사춘기의 어린 시절과 혼란스러웠던 20대의 시간, 한때는 친구와 같은 젊은 부모를 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이글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길 건너편 슈퍼로 가자고 하더니 간편하게 먹을 수 있은 오트밀 팩을 여러 개 집어 든다.
시리얼로 생각하고 사서 먹었던 것은 오트밀이었나 보다.
"어쩐지 조금 딱딱하더라."
누나와 통화를 한 후 기분이 가라앉는다. 매일처럼 힘들어하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럽다.
"사비, 푸시킨의 황금 붕어 이야기를 알아?"
"아니."
푸시킨의 동화 어부와 황금물고기 이야기를 해주려던 이글, 재빠르게 검색을 하고 짧은 동화를 읽는다.
번역기로 이글의 설명을 들으려면 어쩌면 저녁 시간을 모두 사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글, 나 황금 붕어 읽었어."
이글과 많은 대화를 나눈다. 호기심이 많은 이글은 궁금한 것이 많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글이 묻는다.
"신이 있다고 생각해?"
"나는 유물론자이고 실존주의자야. 그래서 신을 믿지는 않지만 인간의 절대자를 향한 믿음의 행위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때로는 그 모습이 숭고하다고 생각해."
"사비, 살면서 어려움이 생겼을 때 어떻게 이겨내야 하지?"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아프면 아픈 만큼 아파하고, 슬프면 슬픈 만큼 슬퍼하라고 한다. 그것을 감추려 하거나 부정하려 하면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고,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아프고 힘들지라도 숨김없이 자신에 대해 스스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신 앞에서 모든 것을 드러내듯 진심을 다해 자신을 들여다보면 자신만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네."
"응."
"사비, 넌 나에게 황금붕어와 같아."
이글과 긴 이야기를 나누고 초저녁 일찍 쓰러진다.
"진흙 수렁에 빠진 코끼리가 스스로를 끌어내듯 너 자신을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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