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33일 / 흐림
카잔
이글과 함께 카잔 크렘린을 구경하고, 카잔에서 자전거 세계일주를 했다는 사람을 만나기로 한다.
정말 이 꼼꼼한 남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싶다. 이글이 사준 오트밀은 조그만 봉지에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되어있고, 과일들이 들어가 있어 달콤한 맛이 아주 좋다.
일다의 집에서 아침으로 먹었듯이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좋은 음식인 것 같다.
"근데 빵은 꼭 먹어야 하는 건가?"
이글은 나에게 운전면허증이 있냐고 묻는다. 러시아에서 외출을 할 때 신분증을 소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인데, 나는 운전면허증이 있다고 답하고 이글은 면허증을 챙기라며 바보 같은 대화를 서로 하고 있다.
이글의 신분증, 러시아의 독수리 문장이 인상적이다.
"이글, 가운데 백마를 탄 기사는 뭐야?"
너무 어려운 질문인가 싶다. 러시아 문장의 백마를 탄 방패의 문양은 악과의 투쟁을 뜻한다고 한다.
"괜찮아. 저렇게 만든 놈이 나쁜 거지."
"이글, 여기에 다 있어."
구글맵을 보여주며 핸드폰을 흔들자, 이글은 아직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다며 웃는다.
"뭐야? 못 믿는 거야?"
"무료야!"
"이글 가자. 정보는 인터넷에 다 있어."
몇 걸음을 옮기고 붉은 벽돌의 탑을 보며 이글의 설명이 다시 시작된다.
"사비, 번역기를 열어줘."
한국어와 러시아의 번역은 아직 오류가 많아서 내용을 확인하려면 여러번 번역기를 사용해야 한다.
"이글, 그냥 인터넷으로 찾아볼게. 그냥 가자."
"따듯한 불빛을 갖은 도시다."
과거 몽골인들의 후예인 타타르스탄의 역사는 몽골의 역사와 비슷한 느낌이 난다.
이글이 보여준 영상들을 보면 샤먼 음악처럼 들린다.
이글이 연주를 하는 소리를 들으면 묘한 울림 같은 것이 있다. 이글은 기념품 가게에서 바르간을 만드는 명장의 연락처를 얻었다며 행복해한다.
흰 백색의 카잔 크렘린, 평범하고 단순한 색의 성의 모습은 너무나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인가."
"난 그 사람이 궁금하지 않아. 여기 도시의 풍경이 더 중요해."
이글은 정색을 하며 그 사람과 이미 약속을 했다며 당황한다.
"이글, 농담이야!"
"이글, 나는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사람들 중에 하나야."
카드 단말기를 들고, 승객에게 다가가 버스비를 결제하는 시스템이다.
앞뒤 문으로 승하차를 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는 것도 신기하지만, 이렇게 비효율적인 시스템에 불편해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신기하다.
여행은 각자의 삶이다. 누군가의 삶이 나의 삶이 될 수 없듯이 타인의 여행담이 나의 여행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건강하게 좋은 여행을 즐겨라'라는 말보다 좋은 경험담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하하, 이 형님 매니아네."
"아니 왜? 러시아 집에 미국의 성조기가 이렇게 큰 것이?"
여행에 대해 짧은 설명을 듣고, 말이 너무나 빠른 스타일이라 머리가 아파온다.
"어 그래."
양주를 전혀 먹지 않아 관심도 없었지만 나의 게으름에서 고기는 모두 고기이고, 술은 모두 술일뿐이다.
세상의 고기와 술에는 어떻게 좋은가의 문제만 있을 뿐, 어떤 게 좋은가의 문제는 나에게 없다.
"향이 좋고 부드러운 술이다."
"아이고, 이글이 챙겨놓은 짐들도 엄청난데."
동료 한 명과 카잔을 출발하여 유럽과 북아메리카, 아시아를 지나 러시아로 돌아오는 경로다.
"백년 전에 세계를 돌았다는 말이지."
이제는 세상이 좋아져소 여행이라고 말하지만, 백년 전의 여행은 모험에 가까웠을 것이다.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네."
포 일행의 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내일 카잔을 빠져나가는 경로를 안내하겠다는 제안에 감사를 표한다.
카잔에서 니즈니노브도로드로 가는 길에 포의 동네가 있다.
"스바시바!"
그는 여행자의 삶을 이해하는 멋진 사람이다.
"택시 때문이다!"
"안드레, 이글, 보바. 너희들이면 충분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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