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34일 / 맑음
카잔-슈토너보시
안드레를 만나기 위해 들어섰던 첼니에서 보바와 이글을 만나고 친구들과 함께 보낸 아쉬운 시간을 끝내고 다시 여행을 시작한다. "다음 목적지는 니즈니노브고로드야."
"이글 아침에 영업을 하는 식당이 있어?"
"모르겠어."
"한국에서는 헤어질 때 함께 밥을 먹은 후 작별을 한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식당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국의 환경이나 생활 패턴을 벗겨내지 못한 모양이다.
아침을 먹자는 말에 이글은 식당으로 가자고 한다.
"이글, 영업을 하는 식당이 있어?"
"레스토랑이 아니고 카페, 레스토랑은 웨이터가 주문을 받는 곳이고 카페는..."
식당이라는 단어가 레스토랑으로 번역되었는지 이글의 끝도 없는 자세한 설명이 이어지려고 한다.
"이글, 알아. 번역기가 잘못한 거야."
러시아의 레스토랑은 종업원이 서빙을 하며 주류를 판매할 수 있는 곳이고, 카페는 일반 음식점으로 식사만을 할 수 있는 곳을 말한다.
"알아, 카페. 한국의 카페는 커피를 마시는 곳이야."
식당이라고 말하면 번역기는 당연히 레스토랑이라고 번역을 한다. 번역기의 번역은 어순이 다르고, 가끔씩 주어나 목적어 등을 빼고 말을 하는 한국어는 오류가 많다.
"이글, 이 디테일한 녀석을 어떻게 말리겠어."
이글이 꼼꼼하게 챙겨준 용품들을 넣다 보니 패니어가 묵직해졌다.
"이글, 가자. 카페!"
이글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고.
10시에 만나기로 한 포(Павел)의 집으로 출발한다.
트레일러를 많이 사용하는 러시아에서는 차량에 트레일러 연결장치가 많이 장착되어 있다.
이글은 종종 보트를 가지고 낚시를 다니니 그때 트레일러에 보트를 싣고 다니지 않을까 싶다.
"가자, 이글."
카잔의 시내를 벗어나 시 외곽의 포의 집으로 간다.
어제 지나쳤건 도로변의 화려한 건물이 궁금하여 이글에게 잠시 구경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알록달록 첨탑 모양의 지붕이 많아서 정교회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느낌이 이상하다.
첨탑 위에 세워진 것들은 각종 종교의 상징물들이고, 외벽 한편에는 불상이 놓여 있다.
"정교회가 아니네. 종교 박물관 같은 건가?"
장난감 같기도 하고, 어린이 유치원처럼 재미있기도 하다.
"사비, 여기는.."
"응, 알아."
"안쪽을 구경하고 싶어?"
"응."
입구로 들어가서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내부를 구경한다. 종교별 벽화나 그림이 있을 것 같던 곳에는 여러 가지 인형들이나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림들이 놓여있다.
"컨셉이 뭐냐?"
"화가의 작업실 같기도 하고 모르겠지만 금손이네."
건물은 계속해서 증축되고 있는 모양이다. 내부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니 이글이 여직원과 대화를 하고, 작품 사이사이 걸려있던 사진 속의 남자를 만나게 해준다.
러시아의 많은 정교회의 벽화를 그렸다는 작가와 사진을 찍고.
"유명한 사람인가?"
포의 집에 도착했다.
1924년에 지어졌다는 물탱크를 자세히 관찰하고 있으니.
그 사이 이글은 맥커피를 한 봉지 사서 건네준다.
자전거를 타고나온 포는 나무젓가락을 선물로 건네주고, 니즈니노브도로드로 가는 다리로 길을 안내한다.
작은 숲을 가로질러.
볼가강을 넘는 다리에 도착한다.
짐들을 다리 위로 옮기고, 떠날 채비를 갖춘다.
마치 첼니와 카잔에서 보낸 시간이 아주 오랜 시간처럼 느껴진다.
"이글, 이제 가야 돼."
이글과 마지막 인사와 포옹을 하고, 이글은 나를 번쩍 들어 올린다.
"굿바이, 마이 프렌드."
헤어짐이란 감정은 정말 익숙해지지 않는 불편한 감정이다.
포가 앞장을 서 안내를 하고 볼가강을 넘어간다.
이글과 포가 챙겨준 음식들로 자전거가 무겁고 어색하다.
페달을 밟는 다리는 오랜 휴식으로 지금은 가볍지만 이내 힘들어질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힘든 것들도 다시 익숙해질 것이다.
"천천히 몸을 풀듯이 가 보자."
다리를 넘기 전 포는 출근 때문에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고마워요. 포."
포가 되돌아가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함께 있던 친구들이 사라지니 적막한 느낌마저 든다.
"가자!"
다리를 건너고 모스크바 777km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경찰 검문소를 지나 자전거를 세우고 가벼운 복장으로 바꿔 입는다.
"정말 가자!"
뭔가 허전한 마음과 함께 오랜만에 달리는 라이딩이 어색하다.
"언제나 휴식 후에 라이딩은 이렇게 힘들구나."
찌뿌둥한 날씨 탓인지 아니면 허전한 기분 탓인지 페달링의 속도가 느려져만 간다.
작은 언덕들을 넘으며 조금씩 몸이 풀려가듯이 허전한 마음도 조금씩 사라진다.
"아고, 힘들다."
계속 이어지는 작은 언덕들을 넘어가며 그동안의 휴식으로 다시 말랑말랑해진 엉덩이가 아파오고.
무릎과 종아리도 거북한 느낌이 느껴진다.
"다시 적응하려면 이삼일 고생하겠네."
"오늘은 어디까지 갈까."
무리하게 긴 라이딩을 하기보다 오늘은 이른 시간에 라이딩을 마무리하고 싶다.
적당한 야영자리를 찾으며 길을 따라가는 동안 도로는 갑자기 공사구간으로 들어선다.
"첫 날부터 이러면 곤란하지!"
새로 아스팔트가 깔리는 도로가 이어지고 도로변의 숲으로 들어가는 경계는 경사가 진 둔턱이라 자전거를 끌고 내려가기가 쉽지않다.
"에쉬, 질척거리는데."
마르지 않은 흙밭에 자전거의 바퀴가 빠져들고, 진흙 덩어리들이 바퀴에 엉겨붙어 바퀴가 굴러가지 않는다.
낑낑거리며 낙엽이 쌓인 숲으로 겨우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 적당한 위치에 텐트를 펼친다.
잠시 잊고 있었던 여행과 캠핑의 느낌이 살아나고, 하루 종일 허전했던 마음은 이유 없이 가벼워진다.
"그래, 이거지!"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포가 선물한 꼬냑과 보바가 선물한 말고기 육포로 다시 시작된 여행을 자축한다.
"친구들, 잘 달려볼게!"
이글과 포 그리고 친구들에게 여행의 시작을 알리고 달큰한 꼬냑의 도움으로 편하게 잠이 든다.
"역시, 캠핑이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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