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8일 / 비 ・ 8도
푸롱진-장자제시
계림을 출발하여 장가계로 가는 700km의 마지막 여정, 드디어 오늘 장가계에 도착한다.
하늘이 뿌옇다. 출발 전 체크아웃을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숙소의 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눈다.
"시아 위. 시에 시에. 짜이지엔."
8시 30분, 출발을 앞두고 아침을 먹기 위해 어제의 식당을 찾아갔지만 아침 영업은 하지 않는다.
음식 재료를 다듬던 주인은 옆집에서 면을 먹으라 손짓을 한다.
"중국에서 아침밥 먹기 참 힘들다."
터미널 옆이라 아침부터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6위안과 8위안 면 메뉴 중에서 8위안 메뉴를 달라 하니 흰색 면과 약간 누르스름한 면을 보여주며 고르라고 한다.
"쌀면과 밀면인가? 모르겠다 흰색은 많이 먹어 봤으니 이번엔 노란 거!"
잠시 후 음식이 나왔는지 식당 여주인이 나를 부른다.
"셀프야?"
주문한 면이 나와있고 그 옆에 놓인 양념들과 다진 양념들을 선택해서 넣으라 가리킨다.
파, 매운소스, 고추, 토마토 소스, 작은 깍두기 김치를 추가로 넣는다.
만두 대신 함께 먹을 빵을 3위안에 주문한다. OYO 주점에서 조식으로 먹었던 빵인데 쫄깃한 게 기름맛이 돌면서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봉지에 담아주길래 먹고 간다니 쟁반에 먹기 좋게 잘려 나온다.
테이블마다 올려져 있는 통에 깍두기 김치 같은 것이 있어 먹었더니 양파다.
"깍두기인 줄."
"역시 나는 면보다는 밥인가 보다."
어쨌든 따듯한 국물과 함께 아침을 먹었으니 됐고, 남은 빵은 비닐봉지에 담아 패니어에 넣어 두고, 땡땡이 우의와 레인 팬츠를 입고 장가계를 향해서 출발한다.
출발과 동시에 시작되는 오르막, 채 3분도 안되어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산 위의 마을인데 뭐가 더 있다고 계속 올라간다니."
30분을 오르고 작은 슈퍼에 들러 콜라를 사며 레인 팬츠를 벗어 버린다. 이미 레인 팬츠의 안쪽은 땀이 차 물기가 가득하고.
여전히 어둡고 흐리지만 오늘도 이러다 말겠지 싶다.
"세차를 이렇게 쓰는구나. 洗车(씨처)"
1시간 20분을 달렸지만 겨우 10km를 이동했고, 땡땡이 우의도 마저 벗어 버리고 서둘러 출발한다.
이 지역은 키위를 많이 재배하는 동네인가 보다.
두 시간을 힘겹게 오른 해발 613m에서 겨우 만난 내리막길.
"3km가 어디야! 감사 감사."
뾰족한 봉우리들이 겹겹이 솟아있는 길을 따라 신나게 내려오고.
아주 작은 도로변 마을에 도착한다. 동네의 시장에서 따듯한 물을 데우며 이발을 하는 사람들.
병아리를 파는 말이 빠르고 소리가 큰 아주머니.
이제는 시골에 남아있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지 조금 황량하게 보이는 동네 시장이다.
지장 주변을 배회하며 먹을 것을 찾은 개, 중국 산속의 개들은 이렇게 생겨먹어서 정말 무섭다.
결국 개님은 정육을 파는 아저씨에게 쫓겨나고 만다.
대나무 바구니를 파는 할아버지들과 튀김을 파는 아주머니.
사람이 없으니 장사에는 관심이 없고 카드놀이를 하는 여자 상인들과 대바구니를 메고 장을 보는 사람들은 한가해 보인다.
옥수수 전분 같은 것을 파는 차량에 여자들이 모여든다.
바구니 용도가 정말 다양하다. 온갖 물건들과 아이들을 넣고 때로는 의자처럼 앉기도 한다.
작은 마을의 시장 모습을 구경하며 잠시 쉬었지만 길은 쉽사리 내려가지를 않는다.
12시, 터널을 지나 내려갈 것 같던 길은 다시 올라간다.
"그래, 오르막 마일리지 적립한다 생각할게."
아침으로 먹다 남은 빵을 핸들 패니어에 옮겨 넣고 오르막을 천천히 오르며 하나씩 꺼내어 먹는다. 묘하게 맛있다.
40여 분을 더 오르고 4.5km 내리막이 길게 이어진다. 바람을 가르며 멋진 풍경들 사이로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장가계가 해발 300m에 있는 도시가 아니라면 어제부터 쌓은 마일리지가 상당하다.
"쭉쭉 내려가자!"
정확하게 4.5km를 내려오고 바로 이어 3km를 다시 정립하라는 안내판과 함께 페달링은 다시 무거워진다.
"오랜만에 시원하게 내려왔네. 그럼 됐다!"
산들의 모양새가 더 높아지고 기이해져 간다.
다시 정확하게 3km를 오르고 터널을 마주한다.
터널을 지나면 내려가겠지 생각하며 터널을 들어서려는니 내부 조명도 없고 끝도 보이질 않는다.
"아우, 그냥!"
뒤쪽 멀리서 화물트럭의 힘겨운 엔진 소리가 들려와 재빨리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 페달을 밟는다.
점점 어두워지던 터널은 살짝 좌회전을 하듯 휘어지고 길은 희미한 형태의 실루엣으로 페이드아웃 그리고 페이드인하며 사라졌다 나타난다.
다행히 터널은 길지 않았고 오가는 차량도 없다.
"나이스 타이밍!"
터널을 지나 큰 숨을 한번 내쉬고, 바로 보이는 내리막 안내판에 껴안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나 살짝 쫄았다! 너 알지?"
두 번째 마일리지 찬스. 빗방울이 조금씩 툭툭 떨어지지만 신경 쓸 정도는 아니다.
내려오는 길, 간만에 부처의 석상을 본다. 중국은 불교보다 도교의 풍습과 문화가 실생활에 자리 잡고 있어 불상을 보기가 힘들다.
지금껏 지나왔던 산들을 아주 아담하게 만들어 버리는 거대한 천문산(天门山)의 모습이 안개 사이로 비밀스럽게 모습을 드러낸다.
내리막의 길들이 나빠지더니 골재공장이 나오고 화물트럭과 버스들이 정신없이 오가며 크락션을 울려댄다.
또 한 번 도착지를 근거리에 두고 지옥을 맛봐야 하는지 내심 걱정이 생겨난다.
미친 듯 울려대는 크락션과 뿌옇게 휘날리는 흙먼지들 그리고 엉망으로 망가져 있는 도로는 한참 동안 이어진다.
저렇게 아름답고 비밀스러운 자연이 하필이면 중국에 있다는 것이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중국에는 너무 과분한 자연이다."
중국은 분명 발전했고 앞으로도 더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그저 의미 없는 변화에 불과할 뿐, 지금의 중국 전체가 공사판으로 흙먼지를 날리듯 앞으로도 계속 더 많은 집과 건물을 짓기 위해 흙먼지만을 날리고 있을 것 같다.
중국의 가정을 보면 한 가정에 보통 2~4명의 아이들이 있고, 앞으로 그 세대들에게는 더 많은 집과 자원이 필요로 할 것이다.
"애들이 크면 지금 이 난리를 치며 짓는 집들은 모두 낡은 것이 되고 또다시 새집을 짓느라 난리들을 피우겠지."
중국에 필요한 것은 좋은 인프라보다 변화된 의식인 듯싶다. 전통을 이을 것인지 아니면 시대에 맞게 의식을 바꿀 것인지 말이다.
시내를 1km 앞두고도 길은 엉망이다. 늘 그렇듯 선을 그어놓은 것처럼 갑자기 도시의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너희들은 그냥 돌로 깎으면 더 정교할 것 같아."
마치 여기서부터 시가지의 시작이라는 듯 변하는 사거리 도로가 나온다.
우회전 차로를 막고 정차하고 있는 차량을 거대한 화물 차량이 스멀스멀 다가가더니 밀어 젖힌다.
운전석이 막혀 조수석 문으로 내리는 젊은 남자와 머리를 긁적이는 중년의 남자는 큰 고성도 없이 얘기를 나눈다.
정말 중국인들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고 싶을 만큼 황당한 시추에이션이다.
내일 천문산을 트레킹하기 위해 케이블카가 운행되는 곳에 숙소를 잡을 생각이다.
머리 위로 지나가는 케이블카를 따라 이동한다.
천문산의 케이블카는 세계에서 가장 길며, 장가계 시내에서 다이렉트로 올라간다.
"찾았다. 요놈!"
3시, 예상했던 시간보다 3시간이나 일찍 도착한다.
"여행은 정말 알 수가 없다."
주변에 있는 트립닷컴으로 숙소를 검색하고 위치를 찾았지만 30여 분이 넘도록 골목을 방황하고 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고덕지도에 있는 근처 빈관에 들어간다. 체크인을 하고 자전거는 프런트가 있는 공간에 세워둔다.
숙소의 남자에게 주변에 맛있는 집을 소개해 달라 요청하니 어떤 메뉴를 원하는지 묻는다.
돼지고기와 고추가 들어간 사진을 보여주니 숙소 건너편 음식점을 안내하며 함께 들어가 메뉴를 주문해 준다.
네 그릇쯤 비우고 나니 음식이 떨어진다. 작은 밥통에 아직 한 그릇쯤 더 나올 것 같은데 내일은 라이딩이 없어 꾹 참는다.
밥을 다 먹으니 식당 주인이 자몽을 건네준다. 과즙은 풍부한데 굵은 씨가 많고 조금 질겨 먹기가 불편하다.
아저씨가 유쾌하고 상냥하다. 음식값을 물으니 32위안인데 30위안만 달라고 한다.
관광지라 조금 비싼가 싶지만 친절한 아저씨가 마음에 든다.
슈퍼에 들러 콜라와 작은 빵들을 사서 숙소로 돌아온다.
"저녁에 혹시 배고플까 봐."
오전의 2시간이 힘들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일찍 도착한 라이딩이었다. 천문산의 둘레를 돌아오며 중국에 대해 크게 실망했지만 내일을 기대해 본다.
"장가계, 믿어볼게!"
경비내역
식비:41위안 / 식료품:21위안 / 숙박:80위안 /합계:142위안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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