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3일 / 맑음 ・ 14도
퉁다오 둥족 자치현-징저우 먀오족 둥족 자치현
비가 오며 번개가 치던 요란한 밤이 지나고 비가 오지 않는 아침이다.
하늘은 그리 밝아 보지 않는데 일기예보를 보니 도통 어울리지 않는 햇살의 아이콘이 떠있다.
조금은 피곤함이 남아있는 아침, 풀어 헤쳐진 짐들을 정리하고 길을 떠난다.
우선 시내를 빠져나가기 전에 비상식으로 두꺼운 빵과 콜라를 사놓는다.
작은 퉁다오현을 쉽게 벗어났지만 하늘이 조금은 어둡다. 오늘 이동할 징저우현까지는 대략 80km, 역시나 지도상의 길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다.
퉁다오현에서 다시 만난 빈강을 따라 이어지는 강변길과 산길을 따라간다.
약한 안개비가 내려앉더니 이내 사라진다.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누런개가 짖으며 달려들어 전속력을 내어 달아난다. 어제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아니 이놈들이 왜 이렇게 달려들지? 펄럭거리는 태극기 때문인가?"
어제의 라이딩이 반복되 듯 고즈넉한 빈강 주변의 풍경을 구경하며 길을 이어가다 출출한 느낌에 잠시 쉬어간다.
마을의 초입 또는 집 주변에 하나씩 있는 촛불을 켜놓는 공간은 다리 입구에도 마련되어 있다.
첫 번째 처마에 올려진 조각상. 사자석상을 나무로 조각한 것인지 다른 형상의 동물인지 모르겠지만 그 모습이 이색적이다.
다리의 처마를 구경하는 사이 누런개가 다가와 먹을 것을 찾는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순간 깜짝 놀라고 만다. 이젠 개만 봐도 움찔움찔거린다.
순한 개들도 있다. 빵을 먹으면 그 냄새에 돌변할까 싶어 다른 곳으로 갈 때까지 기다린다.
"校车站点?"
학교의 스쿨버스가 정차하는 곳인가 보다.
5층으로 만들어진 처마는 각층마다 각기 다른 그림들과 문자들이 그려져있다. 3층에 그려진 남녀가 손을 잡고 있는 그림과 문양이 눈길을 끈다.
빵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점심은 12시쯤 도착할 것 같은 시안시전(县溪镇)에서 먹을 생각이다.
"오늘은 제때에 밥을 먹고 산을 오르자."
작은 마을을 스치듯 지나치려니 조그맣고 털이 정리가 안되어 더러운 개 두 마리가 달려든다.
"아놔, 이 동네 개들한테 나 호구 잡힌 거야? 뭐야!"
나지막이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고 한마을을 지나쳐갈 때 마당에서 돼지와 염소를 통으로 잡고있는 집을 발견하고 대문 앞에 자전거를 세운다.
"니 하오 마."
들어선 집에서는 염소의 털들을 뜯어내고 있다. 사진을 찍고 옆에서 구경하는데도 아무도 관심을 갖질 않는다.
그곳에는 돼지를 잡고 있다.
"뭘 하는 거지? 잔치 같은데."
주변의 남자에게 무엇을 하는지 물어본다.
"이 집의 딸이 시집을 간다."
결혼식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다.
남자와 나는 서로 궁금한 것이 있는데 산속 마을이라 그런지 핸드폰이 먹통이 되어 번역기가 제대로 작동을 하질 않는다.
한참을 답답해하자 남자가 자신의 핸드폰에 번역기를 설치해서 대화를 이어간다.
"센스쟁이!"
남자의 이름은 우바이주(吴宝炬). 담배를 한 개비 건네주며 사진을 찍고 우바이주는 함께 음식과 술을 마시자 한다.
"너는 귀한 손님이다. 오늘 우리와 음식과 술을 함께 먹고 가라."
베이징으로 향하는 여정의 바쁜 걸음이 선택의 망설임을 불러일으킨다.
"어떻게 하지. 중국 소수민족의 결혼식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데, 하루를 여기서 머무를까?"
안경을 쓴 남자는 호기심이 많고 친절하게 지역의 명소들을 알려준다.
"힝, 이틀을 머무를 수는 없는데. 너무나 아쉽지만 가야겠다."
할머니에게 손을 내밀어 조금 잘라서 달라고 부탁하니 처음에는 의아해하더니 이내 조금 잘라 준다.
한 입 깨물어 보니 고구마가 맞고, 단맛이 진하고 아삭하니 맛이 좋다.
우바이주는 어딜 갔는지 계속 보이질 않고 안경을 쓴 남자에게 가봐야 한다며 인사를 전한다.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니 음식을 먹고 가라며 모두들 아쉬워한다.
1시가 훌쩍 넘어버리고 남은 거리는 65km나 남아있다.
"부지런히 가면 산길이라도 해지기 전에는 도착하겠지."
좋은 사람들과 만나고 즐거웠으니 시간이 늦어진다 한들 문제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천천히 내리막을 내려오고, 등 뒤편으로 따듯한 기운과 함께 어색하기 그지없는 밝은 햇살이 느껴진다.
"어, 꿈인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세상에 하얗게 뭉실거리는 구름과 푸른 하늘이 열려있다. 무려 33일 만에 보는 푸른 하늘이다.
"나 지금, 감동 한 바가지 먹어도 될까?"
달리며 장갑을 벗고 자켓의 앞섬을 모두 내리고 신이 나서 흥얼거린다.
바로 보이는 마을 앞 버스 정류장에 서서 검은 겨울용 방풍 자켓을 벗고, 하늘하늘거리는 방풍자켓으로 갈아입는다.
"바람을 느껴야 해. 앞 지퍼 따윈 올리지 않아!"
조금 출출한 기분이 들어 휘파람 라이딩의 동력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지만 멀지 않은 곳에 시안시전이 있으니 거기에서 제대로 밥을 먹을 생각이다.
비가 올 것이라 생각하여 오는 동안 삐걱거리던 체인에도 윤활을 하고, 콜라 한 모금을 마신 후 출발한다.
오르막과 내리막, 그전까지 조금은 원망스럽던 쌀쌀맞은 맞바람이 산들산들 땀을 식혀주며 시원하게 느껴진다.
앞섬을 열어놓은 방풍 자켓이 바람결에 휘날리며 흥을 더해준다.
맑은 하늘과 구름, 빈강의 수려한 풍경 속을 즐겁게 달리다 보니 문득 투덜거리며 힘겨워 하더라도 이 좋은 것들을, 좋은 느낌을 함께 했으면 더없이 좋았겠다 싶다.
"함께 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것일까?"
가벼워진 페달링에 남은 거리들이 빠르게 지워져 간다.
너무나 밝고 찬란한 햇살 속에서는 벌써 2시였던 시각은 겨우 2시로 느껴지고, 기온을 확인하려 날씨를 확인하니 정말 어색하고 낯선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화창!"
상점들이 모여있는 작은 마을의 변두리 길을 빠르게 지나치고 경사와 상관없이 가벼운 페달링을 이어간다.
오르막길 도로 한가운데 놓인 오토바이 헬멧, 중국 사람들은 뭔가를 참 잘 떨어뜨리며 다닌다.
돌, 흙, 나무, 채소, 쓰레기 봉지, 신발, 짐보따리 그리고 이번엔 헬멧.
"그런데 왜 시안시전이 안 나오지? 배고파지는데."
계속 달리다 보니 빈강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드는 곳까지 와버렸다. 중간에 있어야 할 시안시전을 보지 못해 혹시 지나쳐버린 것이 아닐까 하고 자전거를 세운다.
지도를 확인하니 시원하게 내달렸던 상점들이 모여있던 변두리 길이 시안시전다. 빈강을 사이에 두고 왔던 길의 건너편이 중심가인 모양이다.
"빨리 와서 좋기는 한데, 밥을 못 먹어서 이걸 좋다고 해야 하나?"
"오늘은 밥 복이 없네."
"뭐야, 공갈빵이야! 정체가 무엇이냐?"
속이 비어있고 팥앙금 같은 내용물이 흔적처럼 붙어있다.
"3위안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나."
그래도 중국 빵들은 맛있다. 우리의 보름달이나 단팥빵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산길은 조금씩 오르막의 경사가 더해지면 이어진다.
만불산 길의 정상 봉우리들이 흥미롭다. 나무들이 없이 나선형 방향으로 돌아가며 깎여있다. 그동안 힘든 산길을 타고 다녀서 그런지 만불산의 정상을 너무 쉽게 오른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결코 쉽게 떨어지지 않던 다른 산길과는 달리 만불산의 내리막은 시원하게 논스톱으로 떨어진다.
"이럴 때 쓰는 거지. 웬열!"
이곳의 집들에는 작은 삼각형 깃발들이 집 주변에 걸려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집에서 보낸 시간으로 6시나 7시쯤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좋은 날씨 덕에 5시 전 징저우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시골 풍경과 흡사한 길을 달리고, 길은 평지로 길게 이어진다.
궁금했던 딸기 하우스의 내부가 보고 싶어 고개를 내밀고 빼꼼히 들여다본다.
가끔 오토바이에 작은 묘목들을 싣고 다니는 모습을 보는데 징저우현의 초입에 묘목을 파는 노점이 열려있다.
묘목들에 조그맣게 열매들의 사진이 붙어 있는데 베리 종류의 열매들이다.
60위안의 낡은 빈관인데 사람들이 밝고 친절하다. 중국여행을 하며 좋은 시설보다는 밝게 웃고 농담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 더 좋다고 느껴진다.
역시나 주숙등록을 처음 하는지 나에게 되려 물어본다.
"아줌마, 할 줄 모르지? 빨리해봐!"
여권의 개인 정보 면과 비자 면을 찍어 놓으라 알려주고 자전거는 패니어도 떼지 않고 프런트 옆에 묶어놓는다.
"이제 계단을 들고 나르는 것도 힘들다."
2층 방을 직접 안내해 주더니 난방기 켜는 방법을 알려준다.
"알아! 난방기는 됐고 키 줘!"
웃으면서 키가 없다며 필요 없다고 한다.
"하하하하하하. 알았어."
비좁은 욕실인데 뜨거운 물은 시원하게 잘 나온다.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간다.
밝고 따듯한 햇살이 여전하다.
길 건너 식당에 들어가니 메뉴판도 없고 재료들도 안 보인다. 할 수 없어 어제 너무나 맛있게 먹었던 시래기 돼지고기볶음 사진을 보여주니 주방장 남자가 나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으로 들어간다.
이곳은 테이블 밑에 불를 지피는 곳을 폐타이어로 만들어 놓았다.
크게 두 그릇을 비우며 메뉴의 이름을 물어보며 번역기에 써달라 부탁한다.
여자 주인은 메뉴의 글자를 쓰더니 마지막 글자를 모르겠다 웃으며 조금 전 가게에 들어온 남자 손님들에게 뭐라 말을 한다.
그리고 남자 손님들이 핸드폰에 메뉴의 이름을 적어주며 발음까지 알려준다.
"코우로우얀차이(扣肉腌菜)"
밥을 먹는 동안 몇몇 가지를 묻던 남자들 가운데 한 명이 밥을 다 먹을 때쯤 술 마시는 제스처를 하며 같이 먹자고 제안을 한다.
검지를 펴서 한 잔만 하겠다 제스처를 하고 남자가 내어준 자리에 앉는다.
그들이 시켜놓은 안주는 엄청나게 푸짐한 돼지고기 같다.
"오, 돼지고기!"
술 마시고 운전하지 말라고 하며 56도짜리 맑은 술 한 잔을 따라준다.
향긋하지만 독한 술에 쓰다는 소리를 크게 내니 다들 깔깔거리며 조금씩 먹으라고 한다.
이렇게 넷이서 여행에 대해, 한국에 대해 그리고 징저우현에 대해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가서 자야 한다며 사진을 찍자 하니 즐겁게 건배샷까지 연출해 주고 한 명 한 명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해준다.
마지막으로 자리에 초대해 준 남자가 따듯하게 어깨를 잡고 눈을 마주치며 또박또박 중국어로 뭐라 했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다.
'니 꺼이'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건강하라는 당부거나 여행 잘 해라 하는 격려겠지 싶다.
식당을 나오니 천천히 예쁜 노을이 지고 있다.
숙소에 돌아와 우바이주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니 자기가 일하는 사이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안주어서 내가 가버리고 없었다며 아쉬워한다.
소식을 자주 전하겠다 하니 나중에 자신들의 전통 의상을 선물하겠다고 한다.
오랫동안 우바이주와 위챗을 한다.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맑은 하늘보다 더 찬란하고 따듯했던 하루다.
"어서 베이징으로 가자!"
경비내역
식비:12위안 / 식료품:24위안 / 숙소:60위안 / 합계:96위안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Travelog > 중국(19.01.30~04.14)'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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