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8일 / 비 ・ 10도
싱안현-링촨현-계림시
계속 이어지는 흐린 날씨, 비가 다시 내릴 것 같다. 얼마 남지않은 계림으로 향한다. "드디어 계림이다."
낡고 허름한 빈관에서의 하룻밤, 피곤이 풀리지 않고 남아있다.
어젯밤부터 부팅이 되질 않는 노트북은 메인보드나 파워가 고장이 난 것인지 수상하다. 멍하게 잠이 덜 깬 정신으로 재부팅을 해보지만 여전히 먹통이다.
계림에 도착하면 데이비스가 알려준 갑천하전뇌성(甲天下电脑城)에 들러 컴퓨터 수리부터 해야겠다.
"없는 것이 없는 중국인데 고칠 수 있겠지."
10시가 되기 전, 조금 늦게 출발을 한다. 다시 흐리고 어두워진 하늘이다.
작은 시내를 벗어나 계림에 가까워질수록 주변 산들의 모양새가 심상치 않다.
한 시간쯤 지나 수상하던 바람은 툭툭 빗방울을 떨어뜨린다. 도로변 한적한 식당으로 아침도 해결할 겸 들어간다.
메뉴가 한 가지뿐이니 주문도 편하다.
"이거 야요!"
주문과 함께 이내 음식을 내어주며 앞쪽에 놓인 양념들을 넣으라고 알려준다.
"뭘 알아야 넣지."
이것저것 조금씩 넣고 뚝딱 한 그릇을 비워낸다. 시원한 국물과 간간이 씹히는 땅콩의 고소함이 좋다.
잘 먹었다 인사를 하고 가격을 물으니 6위안, 저렴하다는 말도 아깝고 착해도 너무 착한 가격이다.
우의를 챙겨 입고 천천히 빗속으로 들어간다. 어제 무리를 해서 많은 거리를 이동해 놓아 조금은 편안하다 싶다.
중국의 기름값은 휘발유가 대충 리터당 5위안 정도 하나보다.
계림에 인접한 링촨현부터 시작된 시내길은 계림시까지 계속 이어진다.
울창한 계화수에 작은 홍등을 달아놓으니 길이 너무나 예쁘다. 가던 길의 걸음을 바로 멈춰 세운다.
링촨현을 벗어날 때쯤 길가의 자전거 샵을 발견하고 유턴을 해 가게 앞으로 다가간다.
"자전거 가게를 찾기가 정말 힘드네."
대부분 아동용 자전거들을 파는 것 같은 가게에 풀리를 가리키며 부품이 있는지 물어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볍게 물어본 것인데 어두운 가게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부품이 없다는 듯 큰소리를 내며 정색을 한다.
"없으면 빙긋 웃으며 없다고 하면 될 것을."
중국 사람들은 약간 이상한 성향이 있는데, 마치 어르신들이나 식당의 아주머니들처럼 없거나 모르는 것에 대해 역정을 내듯 정색을 한다.
마주하기 싶지 않은 경계심의 눈빛들은 언제 봐도 너무나 싫다.
"자전거 가게에서 생선구이를 찾은 것도 아닌데."
계림시에 들어서며 높게 치솟은 건물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건물들이 이어지고.
도심으로 들어갈수록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사람들의 수도 그만큼씩 늘어난다.
계림 초입의 유산 공원에서 비를 피하며 갑천하전뇌성의 위치를 다시 확인하며 전자상가 주변의 호스텔을 확인한다.
"어렵게 계림에 왔는데 컴퓨터 수리가 우선이라니."
전자상가가 있는 곳까지 경로를 정하고 리강 주변의 풍경을 구경하기로 한다.
성벽을 따라가며 리강의 산책로를 따라간다. 유명 관광지의 명성처럼 계림의 풍경들은 남다르다.
푸보산 공원(伏波山公园)의 오묘한 모습이 나타나고 조금 욕심을 내어 산책로를 따라 리강의 풍경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산책로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더니.
"망했다."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산책로에서 험난한 계단을 마주한다. 어쩔 수 없이 무거운 자전거를 들고 한 칸씩 오르고 있으니 산책을 하던 아저씨가 자전거를 들어주며 도와준다.
"씨에 씨에."
묘한 동굴을 지나.
다행히 밖으로 빠져나온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기암괴석들이 우뚝 우뚝 솟아있는 계림이다.
중국 여행을 생각하며 왜 계림에 오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계림의 풍경을 보니 이유 같은 것은 몰라도 될 것 같다.
더욱 풍성해진 것 같은 계화수의 가로수 길을 지나고.
리강을 건너는 다리에 도착한다.
다리 밑에서 비를 피하며 전자상가 주변의 호스텔을 예약한다.
"그나저나 다리를 어떻게 건너야 하는 거야?"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대로를 따라 멀리 있는 신호등에서 길을 건넌 후 돌아와야 한다.
정교한 목조건물의 회전 교차로를 돌아.
"고성이야? 호텔이야?"
메뚜기 떼처럼 뭔가 징그러운 면도 있는 오토바이의 행렬이지만 커다란 대로를 유턴하기 위해 우회전을 하는 오토바이 행렬의 흐름을 따라 이동한다. 직진 신호에 좌회전을 함께하는 위험한 중국에서 대로에서 오토바이 행렬을 따라 좌회전을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아무리 양보를 안 하는 중국의 운전자들도 오토바이 행렬이 시작되면 차량을 멈출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도심의 오토바이 행렬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은 한 그들만의 규칙이 있는 것처럼 흐름이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대로를 따라 리강을 건너는 다리로 돌아오는 동안 오토바이 행렬의 흐림에 뒤를 따라가며 수월하게 도착하고, 계림시를 둘러싸고 있는 뾰족하게 솟은 산들의 풍경을 바라보며 다리를 건넌다.
"저기는 유명한 공원인가?"
관광객들이 줄을 서 대기하고 있는 공원의 매표소를 지나치며 내일 들러보기로 한다.
작은 골목에 있는 깨끗한 주점에 도착한다. 젊은 여직원들이 근무를 하는 주점이라 여권과 바우처만으로 쉽게 체크인이 끝난다.
모던한 인테리어로 잘 꾸며진 주점이지만 자전거를 방에 두어도 괜찮은지 물으니 흔쾌하게 허락을 한다.
샤워를 하며 빨래를 하고, 자전거와 패니에 묻은 흙들을 씻어낸다. 샤워를 하는 것보다 빨래를 하는 시간이 더 소요되고, 자전거와 패니어를 씻어내는 시간은 더 오래 걸린다. 그리고 흙으로 엉망이 된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시간은 더더욱 오래 걸린다.
신발과 방풍 자켓만을 세탁하여 난방기 주변에 걸어두고 고장 난 컴퓨터를 들고 밖으로 나온다.
숙소에서 5분 정도 떨어진 쇼핑몰에 도착했지만 거대한 건물의 외관을 보고 막막한 생각이 먼저 앞선다.
각종 음식점들과 다양한 가게들이 들어서 있는 쇼핑몰은 넓은 광장처럼 느껴진다.
정신줄을 놓아버리게 만드는 음식점들을 살펴보고.
KFC로 들어가 헤매고 넓은 쇼핑몰에서 길 읽은 아이처럼 방황을 한다. 계속해서 지도앱을 확인해도 현재 위치는 이미 전자상가 위를 거닐고 있는데 도무지 전자상가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대체 어디냐고?"
방황의 끝에 쇼핑몰 밖으로 나오니 전자상가로 올라가는 외부의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커다란 쇼핑몰에 함께 있는 전자상가인데 출입구의 구조가 이상하다. 정말 알 수가 없는 중국 건물의 구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자상가가 있는 층에서 내리니 분위기는 우리의 전자상가와 비슷하다. 온갖 세상의 모든 전자기기들의 판매와 수리 그리고 바가지를 씌울 것 같은 친절한 미소들이 난무한다.
미로처럼 들어서 있는 각종 전자 매장과 수리점들 사이에서 데이비스가 알려준 컴퓨터 수리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에게 컴퓨터 수리점의 이름을 보여주며 위치를 물어 도움을 청한다.
전자상가에서 일을 하는 젊은 여자의 도움으로 찾고 있던 컴퓨터 수리점까지 안내를 받고, 노트북의 수리 접수를 한다.
"노트북 부팅이 안된다."
젊은 담당 직원은 차분하게 접수를 하고 노트북의 전원 어댑터가 없는지 묻는다. 전원코드의 굵기가 조금 얇은 중국의 전기 콘센트지만 전자상가에서 기본적인 전원 어댑터가 없을지는 생각을 못 했다.
숙소로 돌아와 노트북의 전원 어댑터를 들고 수리점으로 돌아가니 수리점에 있는 어댑터로 이미 점검을 했는지 접수증을 건네주며 내일 오후에 다시 오라고 안내한다.
"피니쉬? 수리가 가능할 것 같아?"
"글쎄, 분해를 해서 살펴봐야 알 것 같다. 내일 전화를 줄게."
전자상가의 컴퓨터 매장에서 노트북들을 구경한다. 최악의 상황이면 새 노트북을 구매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담장 여직원과 눈이 마주치고 발걸음이 붙잡힌다.
노트북의 가격을 물어보니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이다.
"근데 윈도우 한글로 설치 가능해?"
말이 안 통하는 한국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노트북 판매에 대한 기대감으로 정성스럽게 설명을 하던 여자는 당황스러워한다.
"나는 한국어 버전을 사용해야 해."
주변의 직원들에게 질문을 하며 한글 버전을 설치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하며 웃는 여자에게 한글 버전을 보여달라고 하니 얼굴이 빨개지며 웃는다.
"에이, 안 되는구나."
30분 넘게 웃고 떠들던 상냥한 여자도 한글 버전의 난관 앞에서 끝내 웃으며 포기한다. 정성스럽고 친절하게 응대를 해준 여자에게 감사를 표하고 전자상가를 나온다.
"일단 중국 노트북 가격을 알았으니 됐다."
쇼핑몰을 방황하며 잘못 들어갔던 KFC에서 햄버거를 사들고.
많은 음식점들이 들어선 코너를 지나다 재미있는 음식점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춘다.
"13위안 자조....찬? 자조찬이 뭐야?"
한자를 검색해보니 쯔주찬(自助餐)이 뷔페다.
"빙고! 18가지 반찬 13위안 뷔페!
생각할 것도 없이 식당으로 들어간다.
여행을 하며 좋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훨씬 이롭고 좋다.
"이 정도면 천국이지!"
일단 입맛을 확인하는 수줍은 맛보기로 한 판을 비우고.
음식들의 재료와 맛이 확인되면.
입맛에 맞는 것들을 푸짐하게 담아 한 판을 더 비우고.
"한 판 더 할까?"
든든하게 배가 채워지면 잃어버렸던 이성을 수습하고 맛있는 디저트 하나를 사서 끝을 낸다.
숙소로 돌아와 물에 담가놓았던 옷들을 세탁한다. 광시성의 흙먼지 가득했던 회색빛의 마을들을 지나오며 더러워진 옷들에서는 끝도 없이 누런 흙탕물이 빠져나온다.
8시가 넘어가고 출출함이 찾아든다. KFC에서 사 온 햄버거를 해치웠지만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주변에 한국 식품점이 없나?"
믹스커피가 먹고 싶은 마음에 쓸데없이 검색을 하고, 고장 난 노트북으로 널널해진 저녁 시간의 공백은 하릴없이 밖으로 나가게 만든다.
컴컴하고 어두운 저녁거리를 걸어 한국 식품을 파는 슈퍼마켓에 도착한다.
"커피 딱! 하지만 100개 짜리.."
"믹스 커피 작은 거 없어요?"
한국어를 잘 하는 중국인처럼 느껴지는 여자는 100개 수량의 큰 박스만 있다며 믹스커피 한 잔을 타서 준다.
빈 손이 심심하여 돼지바 하나를 집어 들고, 쓸데없이 김치가 생각나 총각김치와 소주 한 병을 사서 돌아온다.
겨우 10여 분을 걷는 동안 흐물흐물 녹아버린 돼지바를 먹고.
총각김치에 소주를 마신다. 피곤에 쌓인 노곤함을 풀어볼 생각이었는데 소주도, 김치도 한국에서 먹던 맛이 안 난다.
"비 오는 날에 이 정도면 고급진데. 이상하게 맛이 없네!"
"내가 정말 이 조합의 맛을 좋아했었나?"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도 어쩌면 게으른 자기 착각의 일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입맛이 변했나 보지 뭐."
내일은 계림의 풍경을 산책하며 둘러봐야겠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Travelog > 중국(19.01.30~04.14)' 카테고리의 다른 글
#30. 롱지전, 지독한 안개비의 산을 올라 용척제전으로 향하다. 2019.02.28 (0) | 2019.02.28 |
---|---|
#29. 구이린 형산공원, 계림의 풍경을 마음에 담다. 2019.02.27 (0) | 2019.02.28 |
#27. 싱안현, 주황빛 짙은 감귤의 동네를 지나다. 2019.02.25 (0) | 2019.02.25 |
#26. 링링구, Shell we dance together in China. 2019.02.24 (0) | 2019.02.24 |
#25. 창닝시, 조금만 웃어봐요 Chinese! 2019.02.23. (0) | 2019.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