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6일 / 구름・ 12도
마양 먀오족 자치현-펑황현-지서우시-샹시 투자족 먀오족 자치주
장가계가 멀지 않다. 3일이면 충분히 도착할 거리, 오늘도 열심히 달려보자.
어제의 식당에서 밥을 먹을까 생각하다 시내를 벗어나기 전에 적당한 곳에서 해결할 생각이다. 어제의 배고픈 불운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작은 시장 골목을 지나 몇몇 식당들이 있었지만 딱히 자전거를 세울 곳조차 없이 비좁은 곳이라 그냥 지나친다.
어제 이후 나의 첫 번째 관심사는 오로지 밥이다.
하지만 마땅한 식당을 찾지 못하고 순식간에 마야현을 빠져나오고 만다.
"오늘도 느낌이 싸하다."
시내를 벗어나자 고덕지도는 작은 마을길을 이리저리 돌게 만들더니 오래된 골목으로 안내한다.
시골 마을에서는 닭과 오리를 가게 앞에 내놓고 판다. 냉동냉장 시설이 없으니 살아있는 것을 팔거나 말려서 파는가 싶다.
작은 골목을 빠져나와 국도와 다시 합류하고 지도를 보니 마을길을 빙빙 돌지 않고 그냥 국도를 타고 이동해도 되는 경로였다.
몇 백미터 안되는 거리를 최단 거리라며 마을길로 안내하는 고덕지도다.
"고덕! 너."
국도를 만나자마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산으로 향하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무방비 상태로 한방 얻어맞은 기분과 함께 아침 식사가 날아간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오르다 보니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에 아이를 넣어 업고 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이건 또 뭐라니?"
시골에서 아이를 업고 다니는 여자들의 나이를 가늠하기가 힘들다. 검은 피부에 치장을 안 해서인지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 갓난 아이들을 업고 다니니 도무지 나이를 알아볼 수가 없다.
여자의 남편인지 동네 사람인지 혼자 산길을 걸어가던 여자를 오토바이에 태워 데려간다.
흔들거리는 오토바이에 아이를 넣은 바구니를 올리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가는 것을 보면 왜 저러나 싶기도 하고 나름 노하우가 있겠지 싶기도 하고 그렇다.
미국에서 저랬다가는 잡혀갈 것이고, 우리나라에서 저랬다가는 귀에서 피가 나오도록 온갖 욕을 먹겠지 싶다.
계단을 오르듯 한 고개씩 오르막이 계속되고 작은 마을을 지나치며 슈퍼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다.
대나무 모자를 손질하던 할아버지가 빵을 찾아 두리번거리니 빵 하나를 가리키며 그것을 먹으라 한다.
빵과 콜라를 5위안에 사들고 작은 의자에 앉아 점심에는 결코 밥을 먹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오늘도 바지와 신발은 흙으로 엉망이 되고.
"계속 비가 오면 대나무 모자를 사서 써볼까."
계속되던 오르막에 잠시 내리막이 짧게 이어지고.
중국의 산길에는 채석장이나 골재공장이 주변에 한두 개씩은 꼭 있는 것 같다.
골재를 실은 화물 차량이 많다 보니 길은 늘 흙먼지가 쌓여있고, 그동안 비가 와서 몰랐지만 구름만 있는 흐린 날에는 뿌옇게 일어나는 흙먼지가 엄청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비가 오는 날이 차라리 낫다."
내려가고 다시 오르던 길을 따라 펑황현에 도착한다. 주변에 산성이 있는지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주위를 둘러봐도 흙이 파인 산들뿐이고, 주차되어 있는 차량도 전혀 없다.
"길만 보며 다니기도 힘들다. 산성을 보여줘!"
아무것도 없는 도로변을 따라가다 관광객들이 모여있는 주유소로 잠시 쉴 겸 자전거를 멈춘다.
"뭐 좋은 게 주변에 있나 보네!"
관광버스를 세차하는 동안 사람들이 분주하게 이리저리 움직이며 돌아다닌다.
자세히 보니 장가계로 관광을 가는 사람들이 주유소에서 잠시 쉬는 것이다.
"별거 아니잖아. 난 또 좋은 게 있다고."
출발을 하려고 길을 확인하니 건너편에 산성 같은 것이 보인다.
"설마, 저게 산성? 아니지?"
주유소 코너를 돌자 고속도로로 나가는 톨게이트가 보인다.
"저 길로 가면 쉽고 빠를 텐데."
군침을 다시고 구불하게 이어지는 국도로 들어간다.
톨게이트를 지나 내리막길에 멋들어진 조각상이 세워진 작은 공원이 보여 핸들을 튼다.
"애잔한 이 느낌은 뭐라지."
조각상이 염장을 지르기도 하나 보다.
"반가워. 우린 이제부터 펑이요!"
마을을 돌아 나오는 도로변에 작은 음식점이 보인다. 출출함이 한계까지 올라왔지만 동네의 맛집인지 사람들이 북적이는 음식점을 들어갈 틈이 없다.
언덕으로 향하던 길에 때마침 작은 식당 하나를 발견하고 들어간다.
"오늘은 배고픈 하루는 아니구나. 다행!"
색과 모양이 다른 국수 중에 흰 국수를 고르고 국수에 넣을 양념들을 고른다. 무슨 맛인지 모르니 조금씩 모두를 추가하고.
잠시 후 모양이 좋은 국수가 나온다. 시원한 국물의 맛과 향이 좋다.
테이블 밑에 마련된 연탄난로도 따듯하고.
"워 요우 이거!"
국수 한 그릇을 더 주문하고 이번에는 계란 후라이도 추가해 달라고 말한다.
"맛이 좋다. 한 다섯 그릇은 먹을 수 있겠어."
든든하게 배를 채우니 주변의 물건들이 눈에 들어온다. 짐이나 아이들을 넣고 다니는 커다란 대바구니가 재미있다.
어린아이가 있는 식당의 젊은 여자는 아이를 넣고 다닐 것이다.
중국에는 나이차가 많이 나는 형제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일자녀 정책이 유명무실 해지며 늦둥이들을 낳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를 살뜰하게 보살피는 고등학생 정도의 아이에게 동생이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둘이 많이 닮았네."
길은 천천히 오르막으로 올라가고.
대나무 바구니를 메고 길을 걸어가는 두 명의 여자를 지나친다.
할머니가 입은 소수민족의 전통복장이 신기하지만 낯설지가 않다.
"소호강호에서 관지림이 입었던 복장인가?"
"관지림이 예뻤는데."
생뚱맞지만 관지림이 출연한 영화가 보고 싶어진다.
산을 오를수록 나타나는 마을들의 모습이 다른 소수민족의 마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롱지전을 지난 이후 연이어지는 소수민족의 자치현을 지나치는 여행은 산길을 따라 이동하는 어려움에도 흥미로운 재미가 있다.
언제나 마을의 초입에는 기도를 올리는 작은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다.
"우리의 토속 신앙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계속해서 올라가던 산길은 산등성이를 눈높이에 맞추고.
계곡은 깊어져만 간다.
산을 넘어 잠시 내려가던 길은 작은 마을을 관통한다.
아주 조촐한 비상식으로 심심함을 달래고.
길을 이어간다. 지서우시까지 20km 정도가 남아있다.
청록빛으로 잔잔하게 흐르는 완롱강을 따라 지서우시로 향한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들어선 지서우시는 새로 계획된 신도시처럼 깨끗한 느낌의 도시다.
박물관처럼 보이는 커다란 건물의 건너편 광장에서 잠시 쉬어간다.
"역동적이네. 느낌 난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중국의 석상들은 정교함이 대단하여 위엄이 있거나 역동적이다.
현대식으로 지어진 다리의 누각들도 둘러보고.
"중국의 홍등은 참 예뻐."
광장의 초입에 세워진 북을 치는 조각상처럼 이곳의 대표적인 상징물은 커다란 북인가 보다.
전통 문양이 새겨진 모양과 색감이 강렬하지만 조화롭다.
광장의 측면에 위치한 독특한 감각의 운동장이 보인다. 대단히 정교하고 멋진 중국의 조각상과는 달리 현대적 건물들이나 상징물들은 난해함 그 자체다.
광장에서 휴식을 취하며 10km 정도 떨어진 샹시 투자족 먀오족 자치주에 있는 주점을 검색하고, 자치주로 가는 길에 둘러볼 지서우시의 관광명소들을 알아본다.
"고성이 있나 보네."
광장에서 멀지 않은 도로변에 건주고성(乾州古城)이 나타난다.
"유료야?"
홍등이 달려있는 고성 내부의 거리가 궁금하지만 자전거를 세워둘 적당한 곳도 없고, 지나치듯 구경하기에는 입장료와 시간이 아깝다.
"아쉽지만 패쓰!"
고성 주변으로 들어선 건물들은 모두 오래된 목재건물들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물들이지만 대부분 식당이나 주점들이다.
"이 동네 뭐야? 유명한 동네인가?"
고성 주변에 위치한 재래시장을 찾다 길을 헤매고 바로 지서우시를 빠져나간다.
작은 음식점들과 거리의 사람들, 고성 주변으로 들어서 있는 거리가 지서우시의 옛 거리인 것 같다.
한가롭게 길을 따라가던 중 세련된 자전거샵을 발견한다.
"오. MTB샵."
정비를 하고 있는 남자에게 펑크정비용 본드를 달라고 하니 휴대용 펑크키트를 보여준다.
"부. 워 요.."
펑크키트에 들어있는 본드를 가리키며 '워 요'를 반복하니 알았다는 듯 서랍들을 뒤적이더니 용량이 큰 본드를 찾아준다.
"하오!"
인천공항에서 돼지표 오공본드를 빼앗기고 작은 펑크키트의 본드 하나로 펑크수리를 했던 불안함이 사라진다.
본드 하나를 구한 즐거운 마음으로 샹시 투자족 먀오족 자치주을 향해 짙푸른 계화수의 도로를 따라 달린다.
다른 도시와 달리 유난히 택시가 많은 동네다. 오토바이보다 택시가 많은 동네의 모습이 조금 어색하고, 큰 혼잡 없이 질서정연하게 운행을 하는 녹색 택시들의 움직임에 더한 어색함이 느껴진다.
"왜 그래? 어색하잖아!"
과거의 것들도, 현대의 것들도 모든 것이 이색적인 도시 지서우시와 샹시 투자족 먀오족 자치주다.
검색해 두었던 빈관에 도착했지만 고덕지도는 상가 오피스텔처럼 생긴 건물의 위치를 가리킨다. 안쪽의 주차장과 같은 공간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도무지 빈관의 위치를 알 수가 없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지?"
주차장과 건물 사이를 두어 번 왔다 갔다를 반복하고 빈관의 층수를 확인한다.
"6층?"
주차장 건물 외벽에 덕지덕지 정신없이 붙어있는 많은 빈관들의 안내판들이 가리키는 화살표가 보인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아이를 업은 여자를 따라가니 엘리베이터가 나온다. 사람이 없는 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6층으로 올라간다.
"이런 거야?"
상가아파트를 개조하여 빈관을 운영하는 것인지 게스트하우스처럼 꾸며진 빈관이 나온다.
리셉션의 벨을 누르고 잠시 앉아있으니 인상이 좋은 중년의 여자가 웃으며 다가온다. 친절하게 잘 웃는 여자에게 주숙등록이 가능한지를 묻고 체크인을 한다.
침대 하나가 겨우 놓인 좁은 방이지만 깨끗하고 침대도 편안하다.
여자에게 자전거를 보관할 장소를 물어보니 숙소 안쪽의 주방을 지나 옥상 같은 장소를 알려준다.
"구조가 어떻게 되어있는 거지?"
샤워를 하고 잠시 누워있으니 여자가 방문을 두드리며 주숙등록을 하려는지 여권을 달라고 한다.
"일단 너 씻자!"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낸 후 저녁을 먹기 위해서 밖으로 나간다. 리셉션에서 여자에게 준 여권을 받으려고 했지만 여자가 보이질 않아 먼저 식당으로 간다.
숙소 옆 식당에 들어가 고기메뉴를 주문하고.
맛이 좋은 음식에 만족스러운 젓가락질이 이어지는 동안 식당 안이 요란스럽고 시끄럽다. 식당의 테이블에서 공부를 하는 아이에게 끊임없이 핀잔을 주는 식당 여자의 잔소리 소리가 대단하다.
"왜 너 많이 틀렸냐?"
"어딜 가나 엄마들의 잔소리는 똑같은가 보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숙소로 돌아온다.
"아무도 안 가져갈 것 같은데. 굳이 넓은 주차장을 놔두고."
숙소로 돌아와 여권을 달라고 하니 숙소의 여자가 환한 얼굴로 웃으며 말을 한다. 아무래도 주숙등록을 위해 여권을 들고 경찰서 같은 곳을 다녀왔는지 고생을 했다며 무용담을 전하는 것 같다.
"시에 시에!"
어렸을 때 많이 예뻤을 것 같은 미인형의 여자는 치아가 많이 빠져있어 그 미소가 조금은 아쉽게 느껴진다.
좁은 방이지만 간만에 넓고 편안한 침대에 누워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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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og > 중국(19.01.30~04.14)'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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