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를 연장하려 트립닷컴에 접속하니 숙소에 방이 없다. 하루를 보내고 만족스러우면 이틀을 연장하려고 했는데 단체 손님이 들어왔는지 7만원이 넘는 방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검색되질 않는다.
"아, 몰라. 프런트에서 해결하자."
아침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와 자전거가 잘 있는지 확인하고, 볼수록 깨끗하게 세차를 하고 정비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빨리 뒤돌아서 식당으로 향한다.
"햇볕이 좋은 아침이다."
아침을 하는 곳의 메뉴판을 한 번 째려보고 번역기로 메뉴들의 정체를 파악하느라 시간이 좀 걸린다.
사람들이 식판에 두 가지 또는 세 가지의 찬을 놓고 식사를 하는 것으로 보아 여러 가지 반찬 중에서 몇 가지를 선택하여 주문을 하는 것 같다.
两荤一素, 一荤两素.
"고기요리 둘 그리고 뭐지? 오케이, 이해했어. 고기반찬 두 개, 풀반찬 하나"
계산대로 가니 어제 봤던 어린 여자 직원이 나를 보고 또 왔냐는 듯 빙긋이 웃는다.
两荤一素를 주문하고 배식을 하는 주방에 주문표를 준다.
식판에 큼지막하게 밥을 퍼주는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여러 반찬 중 육해공을 하나씩 선택한다.
언제나 푸짐한 중국의 밥 인심.
중국의 생선은 잔가시가 많아 먹기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잔가시를 뱉어내며 먹고 있으니 동네 할아버지 한 분이 앞자리에 앉더니 물고기 이름을 알려준다.
크게 관심이 없어 예의상 한 번 더 물어보고 흘려듣는다.
"역시 생선은 구워야 맛있는데."
밥을 먹는 사이 식당에 사람들이 붐빈다. 11시가 넘으니 다들 점심을 먹으러 오는가 싶다.
아침을 먹고 나니 움직이기가 싫어진다.
"오늘은 그냥 침대에서 뒹굴뒹굴해야겠다."
프런트에 숙박연장을 하고 싶다 얘기를 하니 방이 없다며 조금 기다려 달라고 한다.
"지금은 방이 없어요. 방이 나면 옮길 수 있도록 해드릴게요."
숙박하고 있는 방은 다른 예약이 있어 방을 옮겨야 한다고 안내를 해준다. 체크아웃 시간이라 매우 바쁜 직원에게 준비가 되면 연락을 해달라 부탁하고 방으로 돌아온다.
숙박비를 내기 위해 현금을 찾으러 고덕지도를 검색해 주변에 있는 공상은행으로 걸어간다.
한국어 서비스도 지원하는 신형 ATM 기기에서 1,000위안을 찾아 돌아온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노점에서 파는 한라봉처럼 보이는 큰 귤 세 개를 담아 10위안에 사든다.
숙소 프런트의 여직원은 여전히 바쁘다. 잠시 프런트 앞 소파에 앉아 기다리다 방으로 들어온다.
30분쯤 후, 전화벨이 울리고 여직원은 몇 마디 중국어를 하고 말을 이어가질 못하겠다.
"I will get down. 아니, 워 시아."
'我下' 했더니 알아들은 듯 OK 하며 대답한다.
여직원은 열심히 핸드폰을 두드려 방들을 안내한다. 표준 방, 큰 방, 창문이 없는 방이 있고 지금 묵고 있는 방은 없다고 한다.
"뭐 일단 방이 있으면 됐다. 얼마?"
238, 438, 238위안. 방들을 보고 결정을 하라 안내를 한다. 1층과 2층에 있는 방을 보니 지금 묵고 있는 방에 비해 작고 급이 낮다.
"2박 3일로 예약을 하지 않은 내 탓이니 어쩔 수 없지 뭐."
1층의 표준 방으로 결정을 하고 숙박비를 결제한다.
"I'll stay two more days. How much is it?"
계속 난감해하지만 친절하고 상냥한 여직원이다.
"아냐. 내가 잘못했어. 뚸 샤오 치엔?"
웃으면서 계산기로 238를 적어 보여준다. 그냥 암산으로 더하면 될 것을, 그것도 귀찮아서 다시 여직원에게 물어본다.
"얼티엔."
못 알아듣는 여직원.
"이틀이 중국어로 뭐야?"
그제서야 번역기로 两天을 보여주니 '아' 하며 방긋 웃는다.
처음부터 번역기를 사용하면 편하지만 여행을 하다 보니 몸짓으로 표현하고, 이것저것 아는 말들을 내뱉고, 그리고 소통이 안되면 번역기를 사용하게 된다.
타인에게 나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이해시키는 것, 또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려 한다는 것이 얼마나 정성스럽고 애틋한 행위인지를 여행을 통해서 배우고 있는 중이다.
"한 번 더 귀 기울여 들어줬더라면, 한 번 더 바라봐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고작 밥 한 끼, 하룻밤 잠자리에 이렇게 정성인데 말이야."
결제를 하고 고생스럽게 응대를 한 여직원에게 한라봉 하나를 건네주니 다이아 반지라도 받은 것처럼 좋은 웃음을 지어준다.
"방을 청소하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20분 후, 여직원의 연락을 받고 짐들을 정리해 4층 방을 나선다. 건너편 방을 청소하는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한라봉 하나를 건네다.
청소 직원도 너무나 좋아하며 감사의 인사를 한다.
"이거 한라봉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귀티 나서 그런 거 아냐?"
패니어 두 개를 덥석 들어 엘리베이터까지 옮겨주며 인사를 하고, 안내를 위해 4층까지 올라와 기다리던 다른 프런트 직원에게 패니어를 인계한다.
"你是韩国人吗?"
눈을 마주치며 호감 있게 웃는 여직원은 방문까지 패니어를 옮겨주고 환영의 인사를 하고 돌아간다.
"欢迎来到中国."
"아놔, 왜 중국어가 자꾸 들리지."
방을 옮기고 베이징 시내의 관광지들을 검색하다 공원에 나가 바람을 쐬며 산책을 하고 싶어진다.
고덕지도에 천안문과 함께 아이콘으로 표시된 탑모양의 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천단공원(天坛公园), 한 번 가볼까?"
숙소에서 버스로 4정거장 거리에 있어 부담도 없고 산책 겸 천단공원으로 간다.
베이징 시내의 버스 정류장에는 바닥에 버스가 정차하는 지역이 표시되어 있다.
2위안짜리 기다란 버스를 타고.
천단공원 동문으로 가니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중국 기준으로)
일단 공원의 대략적인 모양과 입장료를 확인하고.
비수기와 성수기 요금이 다른 것 같은데 11~3월까지는 비수기에 해당되나 보다. 공원입장료가 10위안, 기년전과 회음벽, 원구까지 들어갈 수 있는 입장료가 28위안이다.
잠시 입장료를 살피는 사이 한가하던 매표소에 사람들로 가득하다.
"방심했네. 여기는 중국."
중국 사람들이 표를 사며 신분증을 제시하길래 나도 여권을 꺼내어 보여주고 28위안 표를 구매한다.
"천국의 사원이라, 그럼 들어가 볼까."
향나무가 들어선 긴 산책로가 이어지고.
탑으로 향하는 길에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공원 입구의 우측으로 체육시설 같은 것이 놓여있고 중국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기년전으로 가는 통로에 사람들이 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공짜인가?"
길게 이어진 통로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 남녀노소 섞인 채 카드게임을 하고 있다.
너무나 많이 봐왔던 모습이라 그러려니 하며 지나치고 기년전으로 들어가는 게이트를 통과한다.
넓은 광장 위로 뾰족 솟은 원뿔 모양의 천단의 기년전.
진청색의 기와와 처마들, 붉은 문과 기둥이 강렬한 느낌을 준다.
천단(天坛) 천단은 제천의식, 즉 오곡풍양(五穀豊穰)을 위한 기우제와 풍년제 등을 올리기 위해 1420년 명대의 영락제가 건설한 제단이다. 자금성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천단(天坛), 북쪽에는 지단(地坛), 동쪽에는 일단(日坛), 서쪽에는 월단(月坛)이 있어 각각 하늘, 땅, 해, 달에 제사를 지냈는데 천단은 황실 최대의 제단이었다. 이후 낙뢰로 소실되었다가 1896년에 재건되었으며 황제의 상징인 용보다 황후의 상징인 봉황이 더 크게 조각된 것은 당시 서태후의 권력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지식백과)
붉고 화려한 기둥, 은은하지만 강렬한 색의 처마들과 황금빛 용 문양들이 검은 제단과 함께 웅장하게 느껴진다.
기년전(祈年殿) 명대에서 청대까지(1368~1911) 황제가 풍년을 기원하던 축전(祝殿)으로 베이징(北京) 천단(天坛)에서 가장 먼저 건립된 건축물이며 1420년 착공되었다.(지식백과)
"화려하다. 그런데 무언가 재미가 없다."
뒷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감동은 없었지만 이색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옛 중국 관료들의 모자 같기도 하고."
천단의 뒤편으로 황첸덴(皇乾殿, 황건전)이 들어서 있다. 왠지 모르게 작게 느껴진다.
안쪽에 검은 제단이 놓여있고 천장의 무늬들이 독특하고 화려하다.
기년전으로 들어가는 기년문을 지나 단비차오(丹陛桥, 단폐교)를 걸어 원구가 있는 성정문으로 향한다.
단폐교 위로 관광객들이 붐볐지만 400미터 가까운 길이의 넓은 공간이 여유 있게 보인다.
단폐교(丹陛桥) 길이가 360m이며, 지면에서 4m 높이에 있고, 폭은 30m이다. 가운데에 돌이 깔린 길을 '선루[神路]'라고 하여, 천제(天帝)만이 다니는 길로 정하였다. 동쪽의 벽돌이 깔린 길은 '위루[御路]'라고 하며, 황제(皇帝) 전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왕공대신(王公大臣)은 서쪽에 있는 '왕루[王路]'로만 다닐 수 있었다. (두산백과)
단체 관광객들의 가이드들이 용꼬리 같은 깃발들을 들고 단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기다린다.
"용꼬리야? 붕어꼬리야? 귀엽네."
공원입장 시 한 번, 천단 입장 시 한 번. 게이트를 지날 때마다 구멍이 하나씩 뚫린다.
"길긴 길다. 걷다가 지치네."
성정문을 지나니 오래된 향나무 사이로 원형의 돌담이 나온다.
아주 오래된 향나무가 공원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원구를 가기 위해 마지막 게이트를 통과하고.
"대체 뭐가 있길래?"
원형의 돌담, 회음벽 안으로 중앙에 원형의 사당과 좌우 양편에 직사각형의 사당이 놓여있다.
회음벽(回音壁) 황충위[皇穹宇]의 담장으로, 돌을 간 다음 쌓아 만들었으며, 담장 위에는 남색 유리기와를 얹었다. 두 사람이 둥[东], 시페이뎬[西配殿] 뒤편에 나누어 선 다음, 벽에 기대어 서서 벽 가까이에 대고 북쪽을 향해 말하면, 소리가 담벼락을 타고 전해져 200m 떨어진 곳에서도 들을 수 있다.(두산백과)
좌측이 서배전(西配殿), 우측이 동배전(东配殿)인데, 그곳에 서서 천단 방향으로 말을 하면 벽을 타고 반대편에서 소리가 들린다 하여 회음벽이란다.
"싱겁기는, 누가 있어야 팩트체크를 해보지."
회음벽 중앙에 원형의 환충위(皇穹宇, 황궁우)가 위치해 있다. 기년전의 미니미처럼 모양과 색이 비슷하다.
동배전 내부에 제단이 놓여있고, 천장과 기둥 그리고 문살이 독특하고 예쁘다.
기년전을 축소해 놓은듯한 황궁우.
회음벽 건너편의 원구로 넘어간다.
원구의 문이 조이고.
넓은 광장에 놓인 3단의 석조단인데 사당이나 누각 같은 것이 없고 하늘이 열려있다.
원구(圜丘) 한백옥(汉白玉)으로 된 3층의 기단(基坛)으로 황제가 제사를 올리던 곳이다. 제사를 올릴 때 기단 북쪽의 황궁우에 선대 황제의 위패를 안치했다. 원구의 계단과 포석, 난간의 수는 9의 배수로 되어 있다.
용들이 지천에 깔려있다.
원구에 오르니 사람들이 정중앙에 놓인 돌 위에 서서 기도를 하거나 기념촬영을 한다.
천심석(天心石), 원구 중앙에 놓인 돌로 하늘을 상징한다고 한다.
넓고 넓은 천단공원을 구경했는데 버스가 있는 동문까지 다시 걸어갈 생각을 하니 다리가 무겁다.
원구의 게이트를 빠져나와 단폐교를 걷지 않고 향나무들이 빼곡하게 심어진 산책로를 따라 동문 방향으로 걸어갔다.
이곳 주민이라면 매일처럼 산책을 하고 싶은 길이다.
어깨 높이로 내려온 향나무 가지들을 천천히 걸으니 깊은 숲속에 들어온 듯 비밀스럽고 좋다.
관광객들이 거의 없는 조용한 길이라 더욱 마음에 든다.
대각선으로 이어지던 길은 천단으로 들어섰던 곳으로 이어진다.
오랜 세월 인간의 헛된 욕망들을 지켜봤을 향나무.
동문을 빠져나오기 전 사람들이 모여 운동을 하던 곳으로 걸어간다.
지난 과거의 유물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궁금하다.
체육 시설이 놓여있고 여기저기에서 제기를 차느라 바쁘고 즐겁다.
"아놔, 이 귀여운 중국인들."
열심히 제기를 차며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제시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제기를 차는 사람들의 흐림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호기심만을 증폭시키며 기다렸지만 제기차기가 끝나질 않는다.
한참 후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데 뒤편 난간에 제기가 꽂혀있는 쇠줄이 눈에 들어온다.
배드민턴 공처럼 철사를 꼬아 제기 보관틀을 만들었다.
"아이디어, 완성도, 편리성 최고!"
네 갈래의 큰 깃털로 날개를 만들고.
밑 머리는 고무.
그리고 중간에 딱지 같은 양철 조각을 넣어 맛깔스러운 소리가 나도록 만들었다.
제기를 차는 소리가 묵직하여 적당히 무게감이 있을 줄 알았은데 생각보다 가볍다.
겹으로 분배해 놓은 고무와 양철 조각이 묵직한 타격음을 만들 뿐 제기를 차며 발등이 아플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얀 깃털 사이로 작고 부드러운 갈색 깃털을 추가하여 모양을 낸 것도 있다.
제기를 구경하고 동문으로 걸어가다 소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알록달록한 제기를 들고 있는 것을 보인다.
할머니와 공원을 산책 후 돌아가는 길인듯.
"웨이, Show me this."
할머니가 웃으며 보여주라고 하니 의아해하며 제기를 전해준다.
"알록달록한 게 이쁘네."
예쁜 모양의 제기는 어른들이 차던 제기와 달리 기성품으로 만들어진 제품 같다.
"시에 시에, 고마워, 땡큐!"
여전히 이 사람은 뭔가 싶은 얼굴로 쳐다보는 아이에게 할머니가 '할로'를 하라며 웃는다.
동문에 도착하니 땅끝으로 석양이 시작된다. 가볍게 산책을 나와서 급 피곤해진 오후다.
버스를 타기 전 할배네 햄버거를 사 가려고 들린다. 베이징이라 외국인들이 가게 안에 많이 있다.
어제 베이징 시내의 초입에도 주문을 아주머니가 받아 소통이 어려웠는데 여기도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는다.
말없이 주문대 위에 놓인 그림을 가리키며 37위안을 꺼내어 준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고.
식당에 들러 메뉴판을 째려본 뒤.
토마토 계란 볶음 덮밥을 시켜 먹었다. 토마토와 케찹맛이 전부였다.
"자전거도 안 타는데, 너무 많이 먹는가."
식당과 숙소 사이에 작은 미용실이 있다. 미용실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는데 들어오라며 손짓을 한다.
"워쓰 한궈렌, 밍티엔."
손가락 가위 모양으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제스처를 하니 맞다며 하며 웃는다.
심심한데 내일 이발이나 해야겠다.
숙소에 돌아와 사진들을 업로드하는데 와이파이가 너무 느리고 접속이 자주 끊긴다.
"방이 조금 안 좋아졌다고 와이파이까지 차별할 필요는 없잖아."
몇 분이면 될 업로드를 하느라 프런트를 왔다 갔다 하며 신호를 잡는다.
밤늦게 출출해져서 포장해온 할배네 햄버거 세트를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순서대로 꺼내어 먹는다.
"치즈파이, 치킨 3조각 그리고 하이라이트 햄.. 버. 이건 뭐냐?"
두툼한 치킨버거는 없고 무슨 밀가루 전병 같은 것이 들어있다.
"소고기 오방? 넌 뭐니!"
멘붕이 밀려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주문할 때 찍어놓은 메뉴판 사진을 핸드폰으로 다시 확인하니 이것을 주문한 것이 맞다.
세트 넘버 1을 말하는 게 귀찮아 언뜻 보이는 메뉴판을 가리켰는데 햄버거가 아니고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이다.
세 개의 알람을 거르고 7시 반의 알람에 겨우 잠에서 깨어난다. 샤워를 하고 날씨를 확인한다.
"24도까지 올라가네. 찬바람이 물러갔나 보다."
기온만을 확인하고 어플을 닫으려는 순간 어색한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남동풍 바람 8m/s. 남동풍? 남동풍이면 뒷바람인데."
바오딩시에서 베이징까지 북쪽으로 사선을 그으며 올라가는데 남동풍이면 뒷바람이 확실하다.
"몰라, 밥이나 먹자."
조식권을 들고 2층 식당으로 내려간다.
간밤에 튀김 빵을 네 개나 먹은 터라 허기짐이 없어서 인지 큰 기대 없이 놓인 메뉴들을 둘러본다.
돼지고기와 버섯.
이것도 버섯.
"소시지다!"
커피 자판기가 있지만 3.3.3 법칙의 우리네 커피가 아니라 관심이 없다.
간단하게 시작, 소시지는 겉이 질기고 중국향이 나서 맛이 없다. 반 조각만 먹고 그대로 방치.
입맛이 별로 없어서 눈치 안 보고 크게 두 접시만 비워내고 과일 약간으로 디저트를 한다.
방으로 돌아와 홍차를 마시며 리즈훼이와 잠시 메시지를 교환한다.
"리, 너는 3년 후에 무엇을 할 거야?"
"我现在都不知道要做什么. 很迷茫."
"Don't worry. Something good's gonna happenings!"
"一起加油!"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다는 23살의 여자아이.
알 수 없는 삶의 막연함이 두렵고, 어떤 해답도 찾지 못한 채 방치된 시간처럼 마냥 소모되어 가는 시절이 있다.
고민의 무게와 깊이, 아픔이나 슬픔 따위의 감정을 켜켜이 쌓아가는 동안 삶은 아무런 의미도 없이 싱거운 농담처럼 지나쳐 가버린다는 것을 그녀도 머지않아 알게 될 것이다.
"그때는 누구나 그렇지만, 그렇다고 누구나처럼 그럴 필요도 없다.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해봐!"
체크인을 하기 전 핸드폰을 재시작 했더니 네트워크가 끊겨버린다.
"뭐지? 데이터 충전한지 얼마 안 됐는데."
2기가 충전 후, 숙소의 와이파이만으로 사진을 업로드하고 데이터는 인터넷 검색만 사용했기 때문에 데이터가 모두 소진될 일은 없다.
숙소의 와이파이로 심박스에 카톡 문의를 남겼지만 하필 일요일이다.
"난감하지만 다음 숙소까지는 어쩔 수 없다."
일단 고덕지도의 내비게이션을 실행시키고 줘저우시를 목적지로 설정한다. 네트워크가 끊겨도 실행된 내비게이션은 정상작동된다는 것을 지난번에 확인한 터라 걱정은 없다.
"일단 목적지에 가서 숙소는 비번이 걸리지 않은 와이파이나 식당에서 검색하면 되겠지."
이미 한차례 겪은 일이라 조금 답답할 뿐 걱정 같은 것은 없다.
어제 일찍 쉬고 아침까지 든든히 먹었는데, 날씨도 좋고 바람까지 뒤에서 불어 등을 밀어준다.
"좋아, 신나게 달려 주겠어!"
경쾌한 페달링으로 깨끗하게 잘 뻗어있는 도로를 즐겁게 달려간다.
중국 사람들의 못된 운전습관에 욕이 착착 달라붙는 것이 컨디션도 너무나 좋은 것 같다.
대나무를 싣고 가는 것인지, 바닥을 청소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니 중국에서 포터 같은 1톤 화물차를 못 본 것 같다. 대개 개인들은 승용차나 승합차 그리고 픽업트럭을 타고 다니고, 화물은 특대형이나 대형 화물차 그리고 3륜차와 경운기 엔진이나 육공트럭 같은 것을 타고 다닌다.
이곳도 강바닥이 완전히 말라있어 흉흉하기 그지없다.
완벽하게 뒷바람이 불어온다. 주유소의 풍선이 거북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오니 코끼리다.
신나게 라이딩을 즐기고 있는데 자전거 도로에 승합차가 한 대 정차하여 길을 막고 있다. 살짝 피해서 돌아가는데 운전자가 돈을 흔들며 나를 부른다.
"워?"
차량을 지나쳐 멈춘 나에게 차를 몰고 다가와 선뜻 10위안을 건네준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인이라 말하고 감사의 말을 전하니 뭐라 중국어로 말을 한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지만 음성 인식을 사용할 수 없다.
"하필, 이런 날!"
내비게이션을 끄고 여행을 설명할 수도 없어 연신 감사의 말을 전하고 즐겁게 사진만을 찍는다.
정저우시부터 가끔씩 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나 운전자들에게 엄지척을 받기는 했지만 적극적인 관심과 응원은 처음이다.
"이것은 베이징 입성 때 마실 축하의 콜라를 사야겠다."
피로연인지 모르겠지만 집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문화는 이웃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마을 입구에 홍등과 붉은 리본을 가득 매달고, 사회자의 진행으로 치러지는 결혼식의 분위기는 우리와 비슷하다.
무대의 옆 간의 천막에서 손님들이 음식을 먹으며 식의 진행을 지켜본다.
"너희들 이렇게 하는구나."
여전히 잘 생긴 도로는 밀밭을 풍경으로 이어지고.
큰 강들조차 건조하게 말라가고.
삶은 고단하다.
13시, 베이징까지 80km 정도가 남아있다. 그냥 내달리면 6시 전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
"줘저우시는 그냥 지나쳐 줘저!"
곰돌이 푸우가 생각나는 뒷모습이다.
1시 20분, 처음 목적지인 줘저우시의 초입에 도착하여 도로변의 공원에서 잠시 쉬어가며 어렵지 않게 주변의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베이징시의 경계에 위치한 팡산구를 목적지로 재설정하고 출발한다.
사람이 많고 가게가 많으니 떠돌아다니는 와이파이도 많고, 비밀번호 88888888이나 12345678을 누르다 보면 하나쯤 네트워크가 잡힌다.
"미안, 좀만 빌려 쓰자."
세 명의 장수의 동상이 서있으니 자연스레 유비, 관우, 장비가 떠오른다.
줘저우시는 유비의 고향이고, 도원결의가 맺어진 장소이다.
삼국지를 보던 어린 시절에는 유비를 좋아했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 조조가 더 매력적인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은 관우가 왜 공자 정도로 신격화되어 모셔지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관우(關羽) 도교에서는 관우를 신격화하여 전쟁의 신인 관성제군(關聖帝君)이라 부른다. 공자의 사당을 문묘(文廟)라고 하듯이, 관우의 사당을 무묘(武廟)라 하여 관우는 무의 화신으로 추앙받는다. 관우가 황제(관성대제)를 넘어서 신으로 추대된 이후에 중국 후대 왕조의 황제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관우와 겹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 피휘(避諱)를 하였다. 중국인들이 관우를 차라리 운장이라고 부르거나 굳이 굳이 관공(關公)이라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위키백과)
작은 소도시처럼 느껴지는 줘저우시를 스치듯 지나치고.
베이징의 시계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도로변의 슈퍼에서 콜라와 빵 하나를 사들고 출발한다.
중국의 수도답게 검문소의 모습도 남다르게 좋다.
2시 30분, 베이징의 시계에 도착한다. 뒷바람이 불어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편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콜라로 축하주를 대신하고.
빵과 콜라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원형의 외곽 도로들로 겹겹이 둘러싸인 베이징시, 사각형에 가까운 정중앙의 위치에 천안문이 있다.
도시의 크기만 다를 뿐 중국의 모든 도시들은 원형의 외곽도로로 둘러싸여 있고, 동서남북으로 도시를 관통하는 길들이 이어진다.
마치 과거의 성곽의 형태로 길들이 이어지고 성문으로 연결되는 길의 모습과 유사하다.
현재위치, 베이징시 남동쪽 끝자락 여기. 이곳에서 천안문까지 50km 정도이니 대략 베이징시의 지름이 100km가 훨씬 넘을 것 같다.
고양시에서 한강을 타고 송파 가락시장까지 가면 대략 40km 정도이니 서울시 면적의 열 배쯤 되는가 보다.
(중국 베이징시 면적은 약 1만 6,410 제곱km로 서울 면적의 약 27배이며, 수도권 면적(약 1만 1,750제곱km)의 1.5배 정도.)
사진을 찍으며 쉬고 있으니 다혼 미니벨로를 타고 있는 아저씨가 말을 건다.
번역기를 쓸 수 없어 내비게이션을 보여주며 베이징에 간다고 하니 'Go together' 하며 같이 가자는 듯 웃는다.
"아저씨 동네니, 아저씨가 앞장을 서야지."
팔자로 페달링을 하며 의욕적으로 힘차게 달려가던 아저씨.
영어를 하는지 물어보고 어디에 사는지 물어보니 베이징 어디라고 말하는데 어딘지는 알 수가 없다.
"베이징이 서울 종로구도 아니고."
아마도 근처에 있는 외곽 지역에 사는듯싶다.
아저씨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재미있게 도로를 달려간다.
얼마를 못 가고 조금씩 속도가 느려지는 아저씨를 끌어주려고 앞으로 나가 적당한 속도로 달린다.
아저씨 앞으로 10분쯤 달려다 삼거리의 신호등에 걸려서 뒤를 돌아보니 아저씨가 따라오질 않는다.
"너무 달렸나? 그래도 인사는 하고 가시지."
4시쯤 팡산구 시내에 도착, 천안문까지 30km의 거리와 시간을 고려하면 6시 정도면 넉넉하게 도착할 것 같다.
도로변에서 와이파이를 잡아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를 천안문으로 설정을 하고, 숙소들을 검색하는데 베이징의 숙박비가 제법 비싸다.
마땅한 숙소를 찾지 못하고 시간만 흘려보낸다.
"그냥 여기까지만 타고, 내일 점심때 여유 있게 베이징 도심으로 들어가자."
팡산구의 숙소를 검색하고 조식이 포함된 평점이 좋은 곳을 골라 트립닷컴에 주숙등록 여부를 문의한다.
트립닷컴의 친절한 Bebe 상담원이 외국인 투숙 가능을 확인해 주어 바로 예약을 한다.
"Bebe 닉네임을 사용하는 상담원만 친절하다."
베이징으로 들어오니 외곽 지역의 숙박비도 40,000원이 넘어간다.
결제를 하고 바우처를 확인하는데 조식이 불포함이다.
"엉, 뭐지?"
조식이 포함된 룸과 불포함된 룸이 있는데 무심결에 불포함된 방을 예약한 것이다.
"겨우 1,500원 차이였는데."
바로 트립닷컴에 예약변경을 문의했지만 취소나 변경이 불가능한 상품이라고 안내한다.
"몹쓸 손가락, 어쩔 수 없지."
성급한 손가락을 째려보고 숙소의 위치를 확인하니 앉은 자리의 머리 위에 있다.
바로 들어가 체크인을 하고 조식을 물어보니 20위안이라고 한다.
조식 시간과 장소를 안내받고, 20위안을 꺼내어 조식권을 사려고 하는데 프런트 직원과 의사소통이 엇갈린다.
온라인으로 숙박비와 함께 지불하라는 안내를 받고 모든 것이 귀찮아진다.
조식권을 현금으로 사던지, 체크아웃 시 추가요금을 내든지 하면 되겠지만 빨리 쉬고 싶다.
샤워를 하고 간단히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간다. 이곳저곳에서 장기판들이 벌어지고 훈수꾼들이 몰려있다.
작은 식당에 들어가 덩치가 큰 사내가 맛있게 먹고 있는 메뉴를 가리키며 같은 것을 주문하고, 계란국도 추가한다.
볶음밥인 줄 알았는데 볶음면이다. 쫄깃하고 고소한 것이 제법 맛이 좋고 양이 많다.
"셜!"
밥값을 물었는데 못 알아듣겠다. 어리둥절 머뭇거리니 빌지 같은 곳에 12를 적어서 보여준다.
"아, 스얼콰이! 하하하."
발음을 짧고 빠르게 말하니 '셜'로 들린다.
"이 능력자 열매를 먹어봐야 하는데."
프런트에 들러 방에 있는 물과 콜라가 무료인지 묻고 능력자 열매의 이름을 물어본다.
"훠롱궈, 火龙果. 화룡과, 그럴싸하네."
누런 흙물이 배어 나오는 옷들을 샴푸로 주물럭거려 빨고.
콜라와 생수가 공짜니 조식의 아쉬움을 그런대로 달래보고.
"드디어 베이징에 들어왔구나. 열심히 달렸네."
베이징에서 둘러볼 곳과 숙소들을 검색하다 잠이 든다. 가볍고 즐겁게 달렸는데 기분과는 상관없이 피곤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