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0일 / 비 ・ 10도
계림시-룽지전
흐린 날씨, 계림을 출발하여 650km 떨어진 장가계로 향한다. 계림의 계단식 논밭 용척제전을 오를까?
구이린을 벗어나기 위해 오토바이 행렬에 섞여 큰 어려움 없이 시내를 빠져나간다. 소리 없이 다가와 부담스럽던 중국의 오토바이와도 어느새 친숙해진 모양이다.
G321 도로를 따라 룽지전으로 향한다. 구이린을 둘러싸고 있는 오묘한 돌산들이 도로를 따라 하나둘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뾰족하게 솟아오른 산봉오리들이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돌산에 가까이 다가가면 웅장한 돌산의 규모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그냥 경이롭다."
마치 열대 우림의 나무들처럼 구이린의 가로수들은 울창하고 풍성하다.
겨울 시즌인데 여름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의자가 있는 슈퍼에서 간식거리를 챙기고 경로를 확인하며 잠시 쉬어간다.
길은 천천히 산을 향해 올라간다.
이곳의 특산물은 꿀과 커다랗고 노란 한라봉처럼 생긴 과일인가 보다.
"이름이 뭐지? 정말 크다!"
다시 한 시간을 달리고 작은 마을의 오래된 나무 밑에서 점심을 해결할 겸 쉬어간다.
"450살."
구이린에서 사놓은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한다.
흐리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던 하늘에서 안개비가 내려앉기 시작한다.
"그래 웬일인가 싶었다."
시골의 마을들을 지나치다 붉은 폭죽들의 잔해가 깔려있는 길 위로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장례식이네."
잠시 후 백의에 붉은 천을 어깨 위로 두른 상주로 보이는 남자가 지나가고, 붉은 예복을 차려입은 중년의 남자가 지나간다.
땅이 넓고 문화가 다양한 민족들이 살다 보니 장례문화도 조금씩 다른 모양이다.
"인구가 많긴 많은가 보다. 하루가 멀다 하고 결혼식과 장례식을 보게 되네."
2시, 본격적인 오르막의 산길이 시작되며 페달링의 속도를 떨어뜨려 놓는다.
"비가 오는데 왜 갈증이 나냐?"
고개를 오르고 관광지의 안내석이 놓인 곳의 화장실에 잠시 들린다.
중국의 공공화장실, 산길의 중턱에 만들어놓은 휴게용 화장실인데 깨끗한 편이다.
"낯설게 왜 이래."
사람들의 사용이 빈번하지 않아서인지 화장실이 나름 깨끗하다.
산이 깊어질수록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대나무 숲이 계속 이어진다. 대나무가 쌓여있는 곳에는 숲에서 대나무를 잘라 도로변으로 옮긴 흔적들이 나있다.
도로에서 대나무를 화물차에 싣고 있는 부부를 만난다.
"니 하오. 워 쓰 한궈렌."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으로 부부는 쳐다보던 부부는 한국인이라는 말에 호기심의 웃음을 보여준다.
대나무의 밑둥 부분이 아주 굵은 대나무들이다.
"이런 건 어디다 사용하는 거지? 공사장이나 집을 지을 때 사용하나?"
중국어를 할 수 있으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싶은데 많이 아쉽다. 톱으로 대나무를 자르지 않는지 잘린 대나무의 밑둥이 뭉툭하다.
산을 올라갈수록 안개비는 짙어지고, 산을 오르는 더운 호흡도 거칠어진다.
오르막을 알리는 안내판의 애꿎은 화살표에 의미 없는 푸념만을 하며 페달을 밟아갈 뿐, 간간이 지나치는 차량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다 올라왔나?"
롱지전까지 아직 거리가 남아있는데 하늘이 열린 고개에서 헛된 바람을 염원해보고.
최최에 논을 갈았던 사람은 첩첩산중 오지 산골에 무슨 꿈을 꾸며 들어왔으려나 싶다.
"피난? 도망? 밀월을 나누던 사랑꾼들이었다면 삶이 척박하지만은 않았을 텐데."
내려간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할 것 같은 짧은 내리막길은 반갑지가 않다.
쓸데없는 내리막은 다시 산을 올라가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안겨준다. 오르막의 화살표도 모자라 지그재그의 번개표시가 된 산길을 하염없이 올라간다.
안개비는 더욱 짙어지고,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간다.
완전히 시야를 가려버리는 안개비다. 초행길인 산길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도 없고, 단지 간간이 산을 내려오는 차들의 엔진음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조심스럽게 산을 올라간다.
4시, 도로변에 버려진 낡은 건물과 넓은 공간 그리고 조금씩 경사도가 줄어들던 길의 변화에 롱지전으로 가는 고개의 끝에 도착했음을 짐작하고 자전거를 세운다.
"소처럼 올라왔는데 아무것도 안 보여!"
안개비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는 풍경, 힘든 업힐에 대한 보상이 없다는 아쉬움보다 짙은 안개비를 뚫고 내려가야 할 상황이 더 크게 느껴진다. 도로를 지나가는 차량들이 많지 않아 다행이다.
비에 젖어 삑삑거리는 브레이크 마찰음을 요란스럽게 울리며 산을 내려간다. 조금씩 주변의 풍경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멀리 집과 논들의 모습도 나타난다.
"꽃들만 봄이네."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중국의 나무집들이 보이고, 그동안 길 위에서 수없이 보았던 셔터가 달린 이상한 집들이 왜 그러한지를 짐작한다. 2층 구조의 전통집들과 비슷한 형태로 벽돌을 쌓아올려 짓다 보니 멋도 없는 웃긴 모양의 집이 되었나 보다.
"기와가 올려진 나무집들은 예쁘구나."
수북하게 쌓인 대나무를 어떻게 산에서 옮겼는지가 궁금하다. 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공간임을 감안하면 한 그루씩 끌어서 내린 것 같은 느낌이다.
시원하게 내려가는 도로의 다운을 즐기며 1,000미터 정도에 위치한 용척제전의 높이가 떠오른다.
"야! 그만 내려가! 그만!"
1층의 외벽을 벽돌로 보강을 한 것인지 아니면 1층의 벽돌구조에 나무집을 올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셔터가 달린 우스꽝스러운 집들보다는 훨씬 좋아 보인다.
"춥지는 않은가?"
온돌의 난방을 하지 않는 중국의 2층 목조주택은 방한을 어떻게 하는지가 궁금해진다. 남방부에 위치한 지역이라 겨울 한파의 추위는 없을 것 같지만 어쨌든 여름에는 무척 시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두 채씩 들어서 있는 산길을 내려오니 멀리 마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고, 오늘 밥값을 했네."
4시 반, 용척제전으로 가는 갈림길의 이정표가 나온다. 우회전을 하여 작은 강을 따라 15km 정도를 이동하면 평안채제전(平安寨梯田)이 나오고 이곳에서 산을 오르면 용척제전이 나온다.
중국의 비슷비슷한 목재건물이지만 룽지전의 초입에서 본 목재건물은 조금 특이하고 이색적이다.
예약해 두었던 룽지전의 주점으로 찾아간다. 음식점과 숙박업을 함께 하고 있는 주점의 할머니는 꽤나 친절하고 살갑다.
"수이 지아."
할머니에게 바우처를 보여주며 잠자는 제스처를 하니 숙박을 하는 사람인 것을 눈치채고 주방에 있는 중년의 여자를 불러낸다. 할머니의 딸이나 며느리로 보이는 중년의 여자는 늘상 대하는 외지의 관광객을 응대하듯 자연스럽게 안내를 한다.
어려움 없이 체크인이 끝나고 자전거는 넓은 1층의 비어있는 공간에 잠가둔다. 방으로 패니어들을 하나씩 옮기고 샤워를 한 후 밥을 먹기 위해 식당이 있는 1층으로 내려온다.
중년의 여자는 식당의 테이블에 앉아 카드게임 같은 것을 하고 있다. 며칠 전 산골의 작은 슈퍼에서 보았던 카드게임과 같은 종류인 것 같다. 심드렁하게 물건값을 받고 바로 카드게임에 빠져들던 그때의 여자처럼 이곳의 사람들도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정말 너네들은 돈놀이 게임을 좋아하는구나."
한 게임이 끝나고 숙소의 여자는 식당의 내부를 둘러보는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어본다.
"워 헌 어."
여자에게 그동안 먹었던 고기 메뉴의 사진을 보여주며 비슷한 메뉴를 달라고 주문하고 식당에 놓여있는 소품들을 구경한다.
"오늘 용척제전에 갈 수 있어?"
조금 이른 도착 시간으로 해가 지는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택시나 버스를 타고 용척제전에 다녀올까 싶은 생각으로 숙소의 여자에게 질문을 한다.
"지금은 못 가!"
"왜?"
"차가 없다. 내일 가!"
"어!"
겨우 7km 떨어진 거리인데 갈 수 없다는 것이 이해가 어렵지만 현지의 사람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내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던지 아니면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올라가든지 하면 될 것 같다.
"미판!"
언제나 단일 메뉴에 쌀밥을 주문해서 머슴밥을 먹는다. 비슷하게 말린 돼지고기를 사용할 텐데 주점의 돼지고기는 좀 더 부드럽게 느껴진다.
산골 룽지전의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지만 하루 종일 괴롭히며 내려앉던 안개비는 운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산속의 분위기라 역시 다르네."
"내일 용척제전을 올라갈 수 있나? 그냥 내려갈까?"
비가 내리는 흐린 날씨 탓에 경로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장가계로 향하는 산길들과 베이징을 지나 몽골의 국경으로 가야 하는 일정들을 계획하기가 쉽지 않다.
쿤밍시를 지나 청두와 시안을 경유하는 경로를 포기했음에도 베이징으로 가는 일정이 빡빡하게 느껴진다.
"몰라. 일단 장가계의 산을 넘으면 막 달려. 막!"
Trak 정보
GPS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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