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7일 / 구름 ・ 14도
샹시 투자족 먀오족 자치현-구장현-푸롱전
산길들을 넘어 장가계로 간다. 150km 거리, 70km를 오늘 이동하면 내일 드디어 장가계에 도착할 수 있다.
똑똑똑 창문 밖으로 들리는 낙수 소리에 비가 내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짐들을 정리하며 빗속 라이딩의 피곤함이 먼저 밀려든다.
"또 하루를 빗속에서 허우적 거려야 하겠네."
오늘 가야 할 푸롱전은 69km에 있다. 150km가 남은 장가계, 푸롱전에서 장계가까지는 변변한 숙소가 보이질 않아, 이틀을 두고 장가계로 갈 것이다.
"일단 푸롱전에 가서 푹 쉴 것인지, 더 갈 것인지 결정하자."
자전거를 가지러 옥상으로 나가보니 비도 오지 않고 바닥에 물기도 없다.
"굿!"
난방기 실외기의 낙수 소리거나 다른 것의 낙수 소리였나 보다.
친절한 여자 주인과 인사를 하고 숙소를 나와 우선 주변에 식당부터 찾는다.
터미널 부근이라 아침에 문을 열고 분주한 식당이 많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식당에 들어가 면을 주문한다.
만두 같은 것이 없나 식당을 둘러봐도 삶은 계란과 빵처럼 보이는 것만 추가 메뉴로 있다.
바로 나온 음식은 면발이 그저 그랬지만 시원한 국물은 괜찮다.
간단히 한 그릇을 비우고 나와서 비상식을 사기 위해 근처 슈퍼를 찾는다.
바로 옆으로 식당들이 이어지고 뷔페처럼 밥에 밑반찬들을 골라 담는 곳들이 많다.
"꼭 먹고 나면 이렇다니까."
잠시 밥으로 한 그릇 더 먹고 출발할까 생각하다 오늘 라이딩할 거리가 짧으니 참기로 한다.
"뭐? 10위안 맞잖아!"
슈퍼의 포스기를 보니 10.5위안이 찍혀있다. 남자를 한번 째려보고 빵과 콜라를 들고 가니 남자는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중얼거리며 다시 넣는다.
아마도 비닐봉지 값을 0.5위안 받나 보다. 중국은 대부분 주황색 얇은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아 주는데, 남자가 들고 있던 비닐봉지는 제법 비닐봉지스럽다.
안개가 내려앉은 아침은 늦가을의 아침처럼 조금 쌀쌀하게 느껴진다. 시내를 벗어나자 초반부터 오르막이 시작된다.
"오늘은 또 얼마나 올라가려고 이러나?"
한 고개를 넘는 동안 쌀쌀하게 느껴졌던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숨을 헉헉거리며 온몸이 더워지기 시작한다.
하늘에서 한두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지만 오늘 예보된 강우량이 얼마 되지 않아 이러다 말겠지 싶다.
짧은 내리막, 밭에 여자들이 나와 곡갱이질을 한다. 잠시 자전거를 멈추고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여 다가간다.
집을 새로 짓다 보니 집 근처나 집 밖에 있던 것이 마당 한구석 뭔가 어색한 위치에 놓여있고.
여자들은 묘목 같은 것을 밭에 옮겨심고 있다. 낯선 사람이 마당에 들어와 구경을 하는데도 별 관심도 없고.
마당 한편에 남녀가 구분되어 있는 화장실이 있어 소변을 보려다 상태를 보고 참기로 한다.
"논두렁이 차라리 낫겠어."
마을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은 장가계의 남은 거리를 알려주고 내려가기 시작한다.
"열심히 달리면 한달음인데, 무리겠지? 일찍 쉬면서 밀린 자료나 쓰자."
"서로 모습이 신기할 텐데. 웃으면서 서로 구경하면 좋잖아요!"
길가에 잘 정비된 하천 사이로 목조 건물들이 모여있는 마을이 보인다.
마을의 풍경이 예쁘다 생각하며 마을 가까이 도착하자 버스에서 한무리의 사람들이 내리고 연이어 가이드를 따라 많은 사람들이 마을 쪽으로 걸어간다.
궁금해서 자전거를 끌고 입구 쪽으로 가서 사진을 찍으니 나를 주시하던 남자가 다가와 자전거를 다른 곳에 세우라며 주변의 여러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응, 알았어."
마을의 안내석 뒤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구경을 하기로 한다.
"오늘 시간도 많은데, 구경이나 하고 가자."
마을 입구에 매표소처럼 보이는 곳에 가봤지만 사람도 없고 표를 파는 어떤 흔적도 없다.
다른 중국 관광객들도 가이드를 따라 그냥 들어간다.
"무료입장인가?"
사진을 찍으며 중국 관관객들을 따라 들어가는데, 뒤에서 제복 입은 남자가 큰소리로 나를 부르며 '매표'를 외친다.
조금 전 자전거를 다른 곳에 두라고 말한 남자다.
"날 계속 지켜본 거야? 매표 나리?"
남자는 길 건너 관광버스들이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을 가리킨다.
길 건너편 주차장 안쪽에 매표소가 있다.
이 동네에는 이상하게 한글 안내가 잘되어 있다. 알고 보니 단체 관람객들은 번호표를 받아 목에 걸고 입장을 하는 것이었다.
"됐지!"
조금 전 노래를 부르며 관광객을 맞이했는데 혼자 들어가니 아무것도 안 해준다.
"우리들 쉬면서 놀고 있는데, 다른 곳을 다녀라."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진 마을은 실제로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집들이다. 집안으로 무작정 들어가 볼 수도 없고 해서 망설이는데 가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들어간다.
박물관 공간으로 묘족의 전통의상이나 생활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어떤 의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심풀이 마술은 아닌 것 같고, 남녀 간의 애정운 같은 것을 테스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결혼 전에 점을 치는 것일까?"
좁은 골목 사이사이에 있을 건 다 있다. 음식을 파는 곳에서 나뭇잎으로 싼 2위안의 떡을 하나만 달라고 하니 여자가 웃는다.
"딱 보면 알아! 좀 어설픈 거 너희들도 알지? 티 많이 나!"
다음으로 가이드는 차를 마시는 공간으로 데려간다. 차를 내리는 모습을 찍으려니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한다.
작은 의자에 앉아 전통차를 마시며 차를 팔려나 싶다.
그냥 혼자 나와 골목 곳곳을 구경한다.
관광객을 기다리는 앞에 앉아 사진을 찍으니 조금 전 함께 사진을 찍었던 어린 여자들이 '한궈렌'하며 손을 흔들고 자기들끼리 깔깔거리며 웃는다.
하루 종일 이것을 반복하고 있으면 피곤해서 가식적인 웃음을 팔법도 한데 웃고 떠드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12시 30분, 묘족마을을 구경하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다. 남은 거리는 여전히 45km.
2시쯤 푸롱전에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고 자료를 정리하려고 했는데 4시 정도에나 도착할 것 같다.
묘족마을을 출발하며 계속되는 내리막을 기대했지만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끝없는 오르막이 이어진다.
잘 쓰지 않던 앞기어의 1단을 걸고 힘겹게 페달링을 이어간다.
"다 좋은데, 올라간 만큼 꼭 그 만큼만 내려가라."
찌그덕 거리는 체인에 윤활을 하며 잠시 쉬고 다시 출발.
엉덩이 골반이 틀어진 듯 아파온다.
오르고 오르더니 그제서야 터널이 나오고, 터널의 길이조차 안내가 없다.
꽤나 길게 뚫린 터널 두 개를 조심스레 통과한다. 이상하게도 중국 운전자들은 터널 안에서는 매너가 좋다. 크락션을 잘 울리지도 않고 속도를 줄여 지나쳐 준다.
"아, 겨우 끝났구나."
얼마나 올라왔는지 산들샘 GPS를 보니 539미터.
"최소 10분 안에 10km 이상 내리막이어야 한다. 단 1미터도 빼먹지 마라!"
중국의 도로는 갑자기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역주행해오는 차량들이 있어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황산, 계림에서 그랬듯이 장가계에 가까워질수록 산들의 모양이 높고 기묘해진다.
"이게 저수지야? 호수지!"
중국에서 이 정도 사이즈는 쑤이쿠(水库), 저수지라고 하나 보다.
"타이호에 비하면 좁쌀만 한 크기니, 할 말은 없다."
계속 이어지던 내리막은 산들의 풍세가 높아지더니 다시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산들이 멋지다 생각하던 즈음 앞서가던 차량이 유턴을 해서 돌아온다. 설마 하며 그 앞으로 천천히 다가서니 교통 공안이 나와 팔을 가로젓는다.
"취부러!"
"헐, 못 가? 못 간다고?"
교통 공안은 앞으로 보이는 도로를 가리키며 통행금지라 알려주고 임시 사무실로 들어가 버린다.
황당 난감 모드, 고덕지도를 들고 공안을 부른다.
"워 취 저리."
푸롱전을 가리키자 공안은 내가 온 방향을 가리키며 길게 설명을 하고, 번역기를 주었지만 급한 상황에서는 언제나 오번역이다.
다행히 공안의 말 중에 1km를 말하는 '이공리'와 좌회전을 말하는 '샹주어츠완'이 들린다.
고덕양이 매일 수차례씩 떠들어 대는 단어들이다.
"이공리, 샹주어츠완?"
공안에게 한 번 더 확인을 하고 고덕지도를 확대하니 풍탄저수지를 따라 뱀처럼 휘어지는 작은 산길이 보인다.
공안에게 길을 보여주며 맞는지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다른 길이 있어 다행이었지만 그 길의 모양새가 절망적이다.
할 수 없이 힘들게 올라간 오르막을 뒤돌아 내려와 문제의 삼거리에 도착한다.
오던 길에 차로 중앙에 놓인 안내판을 보았지만 다른 차량들도 지나가고 한자도 모르니 그냥 지나쳐 간 것이다. 자세히 보니 교통 중단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고덕지도는 왔던 길로 되돌아가라며 유턴을 계속 외치고.
고덕양의 안내를 무시하고 동네길로 들어간다. 다시 경로를 잡은 고덕지도에는 푸롱전까지 14.7km가 찍혀있다.
조금 전까지 9km가 남았었는데 6km 가까이 돌아가는 것이다.
"흐규!"
길은 흙투성이 길로 변하고 화물차들과 차량들이 크락션을 울려대며 지나간다.
"하루라도 무난히 가면 재미가 없을까 봐 이러는 걸까?"
썩 좋지만은 않은 도로지만 올라온 만큼 털털거리며 내려가니 기분은 난다.
그런데 가끔씩 보이는 산채에서 개들이 짝을 지어 달려든다. 다행히 내리막이라 개 짖는 소리와 함께 속도를 내어 달아날 수 있지만 짜증나는 개도, 길도 위험하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집까지 개들을 피해 달리다 보니 기운이 다 빠진다.
그리고 엉망으로 망가진 도로 가운데 네 번째 집에서 개 짖는 소리가 다시 들린다. 개를 피해 달아날 수도 없는 난감함이 밀려온다.
잠시 자리에 서서 뒤에서 들려오던 배기음의 차량이 오기를 기다린다. 차량과 함께 지나가면 달려들지 못할 것 같다.
잠시 후 RV 차량이 내려와 그 뒤를 바짝 붙어 따라간다. 그런데 걱정했던 개는 없고 오래된 채석장에서 작업을 하느라 길을 완전히 막고있다.
"개 소리는 환청이었나?"
그 사이 두어 대의 차가 더 내려와 줄을 서고.
보통 이런 상황이면 작업을 멈추고 지나갈 자리를 마련해 줄 법도 한데 그런 건 일체 없다.
"정말 양보나 배려라는 것은 쥐똥만큼도 없어."
한참을 기다려 내려온 끝에 국도에 다시 접어든다. 그곳에도 통행금지의 같은 안내판이 조그맣게 놓여있다.
풍탄저수지의 풍경을 감상하며 천천히 길을 내려간다.
푸롱대교에서 푸롱전의 중심까지 3km의 거리 중 2km가 오르막길이다.
"정말 끝까지 오르는구나."
터미널 건너편 도로 이면의 빈관에 숙소를 잡고 나니 피곤함에 다리가 풀린다.
소파에 앉아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는 숙소 아주머니의 옆에 털썩 주저앉아 힘들고 배고프다 하니 애잔하게 쳐다본다.
"워 헌어. 츠판 나리?"
식당을 물어보니 어떤 음식이 필요하냐며, 매운 음식을 먹을 것인지 단백한 음식을 먹을 것인지 묻는다.
손으로 입에 부채질을 하며 매운 음식을 원한다 제스처를 하고, 번역기에 짧은 한자를 써서 아주머니에게 보여준다.
"肉!"
크게 웃더니 버스터미널 옆에 식당이 있고 15위안에서 20위안 정도 한다며 알려준다. 식당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니.
"내가 식당에 데려다줄게."
재미있게 웃으면서 보던 드라마를 끄고 일어나 가자고 한다.
식당에 들어가 숙소 아주머니가 알아서 주문을 해주고, 밖으로 나오라 하더니 두 가지 배추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
무엇을 하려는지는 모르겠고 들밭에 노랗게 꽃이 피는 향이 진한 배추를 선택하니 알았다며 15위안이라고 알려주고 아주머니는 돌아간다.
고기양이 적었지만 배추데침이 있어 너무 좋다. 향이 진하고 짭조름 한 것이 느끼함도 잡아주고 좋다.
이제 식당에 가면 알아서 밥솥에 밥을 퍼먹는다. 세 그릇을 고봉으로 비우고 불룩해진 배를 튕기며 나온다.
"한궈"
짧은 거리의 일정에 마음을 놓다 길고 힘든 라이딩이 돼버린 하루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여행이지 싶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시간과 순간들을 마주하자."
경비내역
식비:23위안 / 식료품:15위안 / 관람료:30위안 / 숙박:70위안 / 합계:138위안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Travelog > 중국(19.01.30~04.14)' 카테고리의 다른 글
#39. 티엔먼산, 장가계의 명산 천문산에 오르다. 2019.03.09 (0) | 2019.03.10 |
---|---|
#38. 장지아제, 중국 후난성의 절경 장가계에 도착하다. 2019.03.08 (0) | 2019.03.08 |
#36. 샹시 투자족 먀오족 자치주, 이색적인 소수민족의 도시에 도착하다. 2019.03.06 (0) | 2019.03.06 |
#35. 마양 먀오족 자치현, 엉망진창의 이상하고 요상한 날이다. 2019.03.05 (0) | 2019.03.06 |
#34. 홍지앙현, 왜 중국말이 귀에 들리는 걸까? 2019.03.04 (0) | 2019.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