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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팡산구-천안문
중국의 랜드마크, 베이징의 중심으로 이동하여 천안문을 지날 것이다.
천안문 광장까지 30km 거리가 남아있어 게으름을 피운다. 천안문까지 얼마 되지 않은 거리와 제공되지 않는 조식으로 일찍 일어날 이유가 없다.
"조식이 없어. 조식이."
9시가 넘도록 애정 결핍자처럼 침대 시트만을 칭칭 둘러감고 일어나기를 뭉그적거린다.
패니어에 넣어둔 면도기를 꺼내어 수염들을 정리하고 나니 뭔가 더 늙어 보이고.
"너무 귀티 나면 중국 사람들이 다가오기 어려울 텐데."
"정비를 하면 될 텐데, 천성의 귀차니즘이란."
"바람이 불면 라이딩이 힘들고, 바람이 없으면 뿌연 공기가 힘들어."
페달링도 귀찮아지고 힘이 없다.
시골의 작은 마을들을 지나며 먹었던 저렴하고 맛있던 면요리들이 생각난다.
본격적으로 베이징 시내에 들어서기 전 도로 건너편의 할배네 치킨을 발견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차량들의 행렬을 뚫고 길을 건너간다.
세트의 가격이 올랐는지 주문을 받는 아주머니가 메뉴판의 36을 가리키며 '치, 치'를 반복한다.
"알아요. 37위안."
맛나게 햄버거를 해치우고 그대로 두어도 되는 쓰레기를 치운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통째로 쓰레기통에 쏟아버린 후, 문을 나오며 파이와 치킨을 담았던 플라스틱 접시가 따로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미안. 난 도와주려고 했지."
햄버거를 먹고 나니 어제의 예약 실수를 잊을 만큼 기분이 살짝 좋아진다.
용띵허(永定河)를 넘어 시작되는 베이징의 시내, 용띵허 근처의 완핑성(宛平城)에 잠시 들린다.
바깥 성곽을 지나 안쪽으로 2층의 누각이 올라가 있는 성의 정문이 보인다.
예전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복원을 한 것인지, 현재의 모습이 예전의 형태를 유지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중년의 중국인이 나를 보며 한국 사람인지 물으며 한국말을 한다.
"워 쓰 한궈렌."
어디서 배웠는지 짧은 한국말을 하며 자신이 더 즐거워한다.
"일본 사람한테 한국말을 배웠나?"
중국어는 사성이 있어서 인지 중국인들의 한국 발음은 일본 사람의 발음과 차이가 나는데, 아저씨는 일본인처럼 한국말을 한다.
천안문까지 거리가 15km도 안되어 도시의 외곽이라 보기에도 그렇고, 중국의 모든 도시가 그렇듯 수도인 베이징도 느닷없이 나타날 모양이다.
"난 준비됐어. 네 모습을 보여줘."
"직선 성애의 끝판왕인가?"
"넓다 아니 광활하다."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있으니 검은 제복을 입은 사내들이 다가와 빨리 진행 방향으로 가라며 강경하게 안내를 한다.
"알았어. 몇 장만 찍고."
자꾸 재촉을 하는 바람에 자전거 인증샷도, 빙글빙글 동영상도 못 찍고 광장을 지나친다.
"뭐가 이리도 부자유스럽고 딱딱해!"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불편하고 불쾌한 기분이 든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자유를 누리며 사는구나."
경직된 분위기 탓에 천안문과 베이징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다.
천안문과 남해 공원을 다시 지나치고 넓은 도로를 건널 수 있는 사거리에서 숙소를 잡기 위해 잠시 쉬어간다.
보통 4~6만원 정도의 숙소들이 서울의 중하급 모텔 정도의 수준으로 보이니 꽤 비싼 편이다.
15,000원 정도 하는 도미토리에 가볼까 생각하다 중국의 열악한 환경을 생각하니 썩 내키지도 않고, 외국의 여행객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패쓰.
어렵게 천안문에서 4km 정도 떨어진 곳에 평점이 좋은 숙소가 있어 트립닷컴에 문의를 한다.
"외국인 투숙 가능 여부와 자전거 보관 유무를 알고 싶어요."
첫 번째 상담자는 빠르게 2성급 숙소라 외국인 투숙이 불가하니 3성급 이상으로 가라고 안내한다.
"숙소에 확인하고 답변한 건가요?"
지금까지 상담을 해주던 Bebe 상담원을 보면 호텔과 통화 후 안내를 하느라 4~5분 정도 응답 시간이 걸렸는데 너무 빠르고 쉽게 대답이 온 것이다.
바로 상담창을 닫고 평점 1점을 날려준다.
두 번째 상담자에게 외국인 숙박은 가능하지만 자전거를 룸에 넣을 수 없다는 답변을 받고 숙소를 예약한다.
숙소의 외부 사진으로 직원들의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놓아두는 별도의 공간이 있음을 확인한 터라 그곳에 보관하면 될 것 같다.
"2박 3일을 보내야 하는데, 하루 머물고 괜찮으면 연장하자."
중국 철도 박물관(中国铁道博物馆)을 지나 허물어진 성곽이 길게 이어지는 밍청공원(北京明城墙遗址公园)을 지나친다.
따듯한 햇살에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가도로 밑의 회전도로에서 차량들과 오토바이를 신경 쓰다 보면 방향감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베이징 시내는 베이징 올림픽을 즈음해서 지붕이 있는 실내에서는 금연을 하게 했다. 물론 담배 냄새가 조금씩 풍기지만 다른 곳에 비하면 청정지역이나 다름없다.
"중국인의 담배 사랑이란 참."
양고기 덮밥은 약간의 잡내가 있지만 그런대로 먹을만하고, 숙주나물을 계란과 야채를 섞어 볶은 요리가 맛이 좋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한가로움, 시간을 흘려보낸다."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과 의식, 공허한 일상의 억지스러운 감정들, 그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동떨어진 느낌. 쓸데없는 감정의 포만감이 찾아든다.
"좋네."
"12위안이면 비싼 건가?"
90일의 체류기간과 몽골의 비자 만료일이 한정되어 있어, 조금 더 넓게 돌아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생각 같아선 다시 S자로 턴을 해서 시안과 청도, 쿤밍시로 향하고 싶다.
"뭐, 또 다른 기회가 있겠지."
중국의 밤은 어두워서 그런지 조명이나 불빛들이 유독 멋지게 보인다. 골목들은 불빛 하나 없이 죄다 컴컴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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