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1일 / 맑음 ・ 21도
싱타이시-가오이현-위안스현
느긋하게 아침을 시작한다. 베이징까지 400km의 남은 거리가 여유를 갖게 만든다.
어쩌면 지독한 불면증보다 더 심각한 병이 생겨난듯싶다.
알림을 들으며 잠에 취해 있으면서도 깨어남의 의지를 불태우는 것은 직장을 다니던 때에도 안 해본 짓이다.
어제 빨아놓은 옷들은 뽀송하게 말랐지만 흙먼지의 얼룩들은 여전하다.
내일도 비가 올 테니 그만, 내일도 먼지 밭에 뒹굴 테니 그만했던 것들이 얼룩이 되어 귀티 나는 한국인의 컨셉을 방해하고 있다.
17층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의 느낌이 좋은 아침이다.
양치만을 하고 식당으로 내려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식당의 층수를 찾고 있으니 함께 탄 중국인이 6층이라고 알려준다.
넓은 식당과 깔끔한 인테리어.
"오, 좋아."
약간의 흥분감도 잠시, 기대와 달리 음식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 빵, 밑반찬, 죽, 밥, 음료, 과일이 구성된 메뉴의 전부다.
"가장 비싼 숙소인데, 완전 실망. 그래도 2만원어치 먹는다."
다른 메뉴가 있나 생각하며 담다 보니 애피타이저가 조금 부실하다.
볶음밥을 쉽게 리필하려고 밥들이 놓인 테이블 바로 옆에 자리를 잡는다.
간단하게 식욕을 돋우고.
메인 식사를 한다. 메인 식사를 담아오니 원형 테이블에 중국 여자들이 서너 명 자리 잡고 있다.
세 번째 밥을 리필해서 먹는 동안 그녀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조용한 아침 식사를 방해한다.
수박을 추가로 가져와 부족한 과일 섭취를 아쉬운 대로 채우고.
룸으로 올라와 트립닷컴 채팅 상담으로 복잡하게 꼬인 예약 취소들을 확인하고, 오늘 도착할 스자좡시의 숙소를 골라 외국인 투숙이 가능한지 문의를 한다.
호텔측의 사유 발생으로 예약이 취소되면 그곳 요금의 30%를 보상금으로 보내주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불편해서 이번에는 미리 투숙 가능 여부를 확인한 것이다.
시내 중심에 위치한 숙소의 숙박 가능을 확인받고 그곳을 목적지로 설정하고 체크아웃을 한다.
보증금 300위안을 돌려받고 자전거를 놓아둔 지하 2층 직원 오토바이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짐들을 정리하고 있으니 어제의 남자 직원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체크아웃에 대해 묻더니 길을 안내하겠다고 한다.
"다음에도 방문하시면 환영합니다."
어제부터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주저하더니 자신의 핸드폰으로 번역기를 돌려 보여준다.
"너, 형한테 관심 있었구나."
1층까지 안내를 하더니 큰 덩치 때문에 작게만 느껴지는 핸드폰을 한참 동안 조물딱거린다.
"오늘 밖이 춥습니다. 옷을 더 챙기세요."
날씨가 쌀쌀한지 겉옷을 더 입으라 알려주어 바람막이를 꺼내어 입는다.
덩치가 큰 남자 직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나오니 쌀쌀한 바람이 세차게 불어 춥게 느껴진다.
"다시 이너웨어를 꺼내 입어야 하는가. 그나저나 이 바람은 맞바람일까, 뒷바람일까? 운에 맡겨보자."
어렵사리 패니어에 넣어둔 장갑만을 착용하고 스자좡시까지 110km 여정을 출발한다.
가끔씩 자전거를 휘청이게 만드는 바람이 불어온다.
하천을 따라 시내를 벗어날 때쯤 하천을 넘는 다리에 색색의 천들이 걸려있고 요란한 악기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인다.
三官庙(삼관뇨, 싼관먀오), 사당 같은 곳처럼 보인다.
아무도 없는 다리의 건너편에서 빠르게 핸드폰을 준비하고 기다리니 붉은 전통 복장을 갖춘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다리를 건너온다.
중국 무협영화에서나 들을법한 노래를 부르며 제를 올리는듯한 행위를 한다.
제단에 절을 하고 향을 피우고 사방을 향해 부드러운 몸짓으로 무언가를 알린다.
계속되던 노래와 춤사위 같은 움직임을 잠시 멈추고 제단을 향해 무언가를 읊조린다.
그리고 노래와 춤사위가 반복된다.
제를 올리는 그들을 따라 마음속으로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오늘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갖게 해주세요. 제발!"
찬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30분이 넘도록 제를 올리는 행사는 계속된다.
중간중간 사람들과 자전거가 지나쳐도 아무렇지 않은 듯 신경도 쓰지 않고 끊김 없이 할 일들을 계속 이어간다.
마무리가 궁금했지만 40분 정도 구경을 하다 출발을 한다.
맑은 날이지만 어제의 지독했던 미세먼지 기운이 조금은 남아있는 것 같은 하늘이다.
숙소에서의 여유 있는 출발과 삼관묘의 행사 구경으로 시간을 보내어 오늘도 부지런히 달려야 한다.
G107 국도로 이어지는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자마자 바람이 자전거를 밀어낸다.
"젠장, 똥 됐다. 뒷바람을 달라 했더니 품에 안겨주네."
시내를 벗어나자 강물이 완전히 말라버리고 흙밭으로 변해버린 다리를 건너고.
G107 국도를 따라 스자좡시를 향한다.
단 1도의 비껴남도 없이 정면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온다. 30분 동안 겨우 5km 이동한다.
뒷기어를 5단까지 낮추었는데도 페달이 무겁고 자전거는 움직이질 않는다.
"죽겠어. 펑크가 났나? 누가 패니어에 돌덩이를 넣어놨나?"
페달링이 지루하고 땀이 나질 않으니 졸음까지 밀려온다.
중국의 일반 도로에는 신호등이나 건널목이 없고, 道口(도구, 따오커우)라는 통로만 뚫려있다.
저곳을 통해 이동하는 차량, 오토바이, 사람들이 좌우를 살피고 차량이 없을 때 이동해야 하는데 중국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따오커우를 통과해 버린다.
작은 마을의 입구에서 남은 콜라를 마시며 나른해진 몸을 깨워보려하지만 도움이 안된다.
12시 93km, 오전 3시간 동안 20km 밖에 이동하지 못하고.
"아이고, 오늘 스자좡시까지 못 가겠는데."
평상시 날씨라면 여유가 남은 거리지만 바람을 이길 수는 라이더는 없다.
꾸역꾸역 소처럼 페달링을 반복하고.
오늘 두 번째로 넘는 다리 역시 강들이 말라가며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겹겹으로 나무들을 심어놓은 중국의 눈물겨운 노력보다 흙바닥의 먼지마저 깨끗하게 날려버린 바람이 더 인상적이다.
"모두 어디로 날아간 거니?"
조금씩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듯하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
그런 사이 천천히 하늘이 밝아지며 제모습을 찾아간다.
14시 66km, 속도는 조금 빨라지지만 멈출 것 같지 않은 바람에 목적지를 스자좡시에서 20km 줄여 위안현으로 변경한다.
독특한 마을 입구에 앉아 쉬어간다. 든든하게 먹은 아침에도 불구하고 배가 출출해진다.
하늘은 한껏 브링브링한 자태를 뽐내고, 어제 싱타이시 초입 노점에서 사두었던 빵으로 허기를 채운다.
팥앙금이 살짝 들어간 빵은 고소한 기름맛과 어우러져 달콤하니 정말 맛이 좋다.
"이 집, 맛집인데! 몇 개 더 살 걸 아쉽다."
오후 들어 구름들이 조금씩 모이더니 하늘 위로 예쁘장하게 펼쳐진다.
"하늘만 좋네. 바람아 그만 멈추어 다오. 제발!"
3시 넘어 가오이현에 이르렀을 때 하루 종일 정면으로 불어오던 바람은 방향이 살짝 바뀌면서 그 기세가 조금 줄어든다.
가오현의 외곽을 지나는 동안 일정의 거리를 두고 대형 분무기가 계속 놓여있다.
하지만 오늘은 영업 중단이고.
바람이 강하게 흙먼지를 날려버리니 물을 뿜어내던 분무 차량도 할 일이 없고.
청소 아주머니도 할 일이 없는데.
나만 바람 덕을 못 보고 죽어라 달린다.
위한현으로 들어가는 오늘의 세 번째 다리, 마치 처음부터 흙 밭 위의 쓸데없이 다리를 놓은 것처럼 강의 형체마저 찾기가 힘들다.
"지도에는 파란선의 강물이 지나가는데."
위안현에 가까워지자 살수차들은 도로에 물을 뿌리느라 오늘도 바쁘고.
늘 젖어 있어야 하는 중국의 도로들이 안타깝지만.
이런 문화는 좀 바꾸면 안 될까 싶다.
스자좡시까지 가지 못했지만 오늘 아침부터 이곳에서 쉬고 싶었다. 복잡한 스자좡시보다는 한적할 소도시 위안현이 좋겠다 생각했다.
넓은 광장의 중앙 무대에서 팽이를 치는 할아버지들이 보인다.
쇠로 만든 커다란 팽이를 채찍 같은 것으로 치는데 그 소리가 날카롭고 엄청나게 크다.
채찍을 치는 것이 보기만 해도 힘들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채찍을 몇 번씩 휘두르고 할아버지들이 팽이보다 더 휘청인다.
한 사람이 지치면 다른 사람이 나와 팽이가 넘어지지 않도록 팽이를 친다.
"릴레이 팀워크 놀이네."
긴 지팡이에 손잡이 줄을 달고 끝부분에 전선 같은 것을 붙여놨다.
대리석 위에서 윙윙거리며 빠르게 돌아가는 팽이.
마작이나 카드게임을 하는 것보다 얼굴들이 밝고 즐거워 보인다.
광장이 넓은 것인지, 사람이 없는 것인지. 어쨌든 싱타이시의 고성 앞 풍경보다 밝고 좋아 보인다.
시내에서는 분무 차량도 열일을 하고.
아침부터 봐두었던 3만원짜리 4성급 주점에 들어간다. 문제없이 친절하게 체크인이 되고 자전거는 방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있다는 안내해 준다.
가벼운 농담과 대화가 오가고.
밖에 두었던 자전거를 끌고 들어와 조식이 제공되는 식당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으니 40대쯤 돼 보이는 여자가 난데없이 자전거를 보고서 시끄럽게 소란을 피운다.
"이번에는 아줌마야?"
반색을 하며 떠들어 대니 프런트에 여직원이 '한궈렌'하며 뭔가를 말하자 쑥스러운 웃음을 보이더니 뻘쭘하게 되돌아간다.
"사과라도 하던지, 눈 웃음이라도 맞추고 고개라도 끄덕이고 가라. 못난이 참견쟁이들아."
방을 안내해 주고 과일까지 서비스해 준다.
중국에서 보는 두 번째 노을인데, 이번에는 제대로다.
"곧 노을을 즐기며 라이딩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숙수가 외곽에 위치한 신규로 세워지는 단지들 사이에 있어서 식당이 보이질 않는다.
길 건너편, 훠궈 식당 같은 곳에 들어가 식사를 물어보려고 하니 젊은 여자가 외면을 한다.
외국인을 보면서 쌀쌀맞게 외면을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서로 부끄러울 것도, 감출 것도 없는 관계이고 공포나 두려움을 느낄 분위기도 아닌데 말이다.
"그냥 성격이 못돼 먹은 거지 뭐."
내일 아침 조식을 위해 슈퍼에서 빵과 과자를 사서 대신한다.
"내일은 15,000원어치 먹어야지."
"정말 쓸데없이 넓네."
저녁 늦게 노크 소리가 들린다. 룸의 노크 소리만 들려도 이번엔 뭔가 싶다.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방문을 여니 접시에 우유 같은 것을 담아 받쳐 들고 있다.
"한국에서도 모텔이나 펜션 말고는 가보질 않아서, 원래 이러는 건가?"
"3만원 고객에게 정성이네. 조금 전에 구멍가게 같은 식당에서 문전박대 당했는데."
중국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나라다.
경비내역
식료품:11위안 / 숙박:30,727원 / 합계:11위안, 30,727원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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