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6일 / 맑음 ・ 20도
베이징 천단공원
6일간 베이징에서 보낼 생각이다. 장가계를 출발할때의 걱정과 달리 너무 일찍 베이징에 도착하여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라이딩이 없어 느릿하게 아침을 시작한다. 10시가 넘도록 늦잠을 자고 일어난다.
"오늘 뭘 해야 하지. 숙소를 연장하고, 자전거 정비를 할까?"
숙소를 연장하려 트립닷컴에 접속하니 숙소에 방이 없다. 하루를 보내고 만족스러우면 이틀을 연장하려고 했는데 단체 손님이 들어왔는지 7만원이 넘는 방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검색되질 않는다.
"아, 몰라. 프런트에서 해결하자."
아침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와 자전거가 잘 있는지 확인하고, 볼수록 깨끗하게 세차를 하고 정비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빨리 뒤돌아서 식당으로 향한다.
"햇볕이 좋은 아침이다."
아침을 하는 곳의 메뉴판을 한 번 째려보고 번역기로 메뉴들의 정체를 파악하느라 시간이 좀 걸린다.
사람들이 식판에 두 가지 또는 세 가지의 찬을 놓고 식사를 하는 것으로 보아 여러 가지 반찬 중에서 몇 가지를 선택하여 주문을 하는 것 같다.
两荤一素, 一荤两素.
"고기요리 둘 그리고 뭐지? 오케이, 이해했어. 고기반찬 두 개, 풀반찬 하나"
계산대로 가니 어제 봤던 어린 여자 직원이 나를 보고 또 왔냐는 듯 빙긋이 웃는다.
两荤一素를 주문하고 배식을 하는 주방에 주문표를 준다.
식판에 큼지막하게 밥을 퍼주는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여러 반찬 중 육해공을 하나씩 선택한다.
언제나 푸짐한 중국의 밥 인심.
중국의 생선은 잔가시가 많아 먹기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잔가시를 뱉어내며 먹고 있으니 동네 할아버지 한 분이 앞자리에 앉더니 물고기 이름을 알려준다.
크게 관심이 없어 예의상 한 번 더 물어보고 흘려듣는다.
"역시 생선은 구워야 맛있는데."
"오늘은 그냥 침대에서 뒹굴뒹굴해야겠다."
프런트에 숙박연장을 하고 싶다 얘기를 하니 방이 없다며 조금 기다려 달라고 한다.
"지금은 방이 없어요. 방이 나면 옮길 수 있도록 해드릴게요."
숙박하고 있는 방은 다른 예약이 있어 방을 옮겨야 한다고 안내를 해준다. 체크아웃 시간이라 매우 바쁜 직원에게 준비가 되면 연락을 해달라 부탁하고 방으로 돌아온다.
숙박비를 내기 위해 현금을 찾으러 고덕지도를 검색해 주변에 있는 공상은행으로 걸어간다.
한국어 서비스도 지원하는 신형 ATM 기기에서 1,000위안을 찾아 돌아온다.
숙소 프런트의 여직원은 여전히 바쁘다. 잠시 프런트 앞 소파에 앉아 기다리다 방으로 들어온다.
30분쯤 후, 전화벨이 울리고 여직원은 몇 마디 중국어를 하고 말을 이어가질 못하겠다.
"I will get down. 아니, 워 시아."
'我下' 했더니 알아들은 듯 OK 하며 대답한다.
여직원은 열심히 핸드폰을 두드려 방들을 안내한다. 표준 방, 큰 방, 창문이 없는 방이 있고 지금 묵고 있는 방은 없다고 한다.
"뭐 일단 방이 있으면 됐다. 얼마?"
238, 438, 238위안. 방들을 보고 결정을 하라 안내를 한다. 1층과 2층에 있는 방을 보니 지금 묵고 있는 방에 비해 작고 급이 낮다.
"2박 3일로 예약을 하지 않은 내 탓이니 어쩔 수 없지 뭐."
1층의 표준 방으로 결정을 하고 숙박비를 결제한다.
"I'll stay two more days. How much is it?"
계속 난감해하지만 친절하고 상냥한 여직원이다.
"아냐. 내가 잘못했어. 뚸 샤오 치엔?"
웃으면서 계산기로 238를 적어 보여준다. 그냥 암산으로 더하면 될 것을, 그것도 귀찮아서 다시 여직원에게 물어본다.
"얼티엔."
못 알아듣는 여직원.
"이틀이 중국어로 뭐야?"
그제서야 번역기로 两天을 보여주니 '아' 하며 방긋 웃는다.
처음부터 번역기를 사용하면 편하지만 여행을 하다 보니 몸짓으로 표현하고, 이것저것 아는 말들을 내뱉고, 그리고 소통이 안되면 번역기를 사용하게 된다.
타인에게 나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이해시키는 것, 또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려 한다는 것이 얼마나 정성스럽고 애틋한 행위인지를 여행을 통해서 배우고 있는 중이다.
"한 번 더 귀 기울여 들어줬더라면, 한 번 더 바라봐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고작 밥 한 끼, 하룻밤 잠자리에 이렇게 정성인데 말이야."
결제를 하고 고생스럽게 응대를 한 여직원에게 한라봉 하나를 건네주니 다이아 반지라도 받은 것처럼 좋은 웃음을 지어준다.
"방을 청소하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20분 후, 여직원의 연락을 받고 짐들을 정리해 4층 방을 나선다. 건너편 방을 청소하는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한라봉 하나를 건네다.
청소 직원도 너무나 좋아하며 감사의 인사를 한다.
"이거 한라봉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귀티 나서 그런 거 아냐?"
패니어 두 개를 덥석 들어 엘리베이터까지 옮겨주며 인사를 하고, 안내를 위해 4층까지 올라와 기다리던 다른 프런트 직원에게 패니어를 인계한다.
"你是韩国人吗?"
눈을 마주치며 호감 있게 웃는 여직원은 방문까지 패니어를 옮겨주고 환영의 인사를 하고 돌아간다.
"欢迎来到中国."
"아놔, 왜 중국어가 자꾸 들리지."
방을 옮기고 베이징 시내의 관광지들을 검색하다 공원에 나가 바람을 쐬며 산책을 하고 싶어진다.
고덕지도에 천안문과 함께 아이콘으로 표시된 탑모양의 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천단공원(天坛公园), 한 번 가볼까?"
베이징 시내의 버스 정류장에는 바닥에 버스가 정차하는 지역이 표시되어 있다.
비수기와 성수기 요금이 다른 것 같은데 11~3월까지는 비수기에 해당되나 보다. 공원입장료가 10위안, 기년전과 회음벽, 원구까지 들어갈 수 있는 입장료가 28위안이다.
잠시 입장료를 살피는 사이 한가하던 매표소에 사람들로 가득하다.
"방심했네. 여기는 중국."
공원 입구의 우측으로 체육시설 같은 것이 놓여있고 중국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기년전으로 가는 통로에 사람들이 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공짜인가?"
천단은 제천의식, 즉 오곡풍양(五穀豊穰)을 위한 기우제와 풍년제 등을 올리기 위해 1420년 명대의 영락제가 건설한 제단이다. 자금성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천단(天坛), 북쪽에는 지단(地坛), 동쪽에는 일단(日坛), 서쪽에는 월단(月坛)이 있어 각각 하늘, 땅, 해, 달에 제사를 지냈는데 천단은 황실 최대의 제단이었다. 이후 낙뢰로 소실되었다가 1896년에 재건되었으며 황제의 상징인 용보다 황후의 상징인 봉황이 더 크게 조각된 것은 당시 서태후의 권력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지식백과)
명대에서 청대까지(1368~1911) 황제가 풍년을 기원하던 축전(祝殿)으로 베이징(北京) 천단(天坛)에서 가장 먼저 건립된 건축물이며 1420년 착공되었다.(지식백과)
"옛 중국 관료들의 모자 같기도 하고."
단폐교 위로 관광객들이 붐볐지만 400미터 가까운 길이의 넓은 공간이 여유 있게 보인다.
길이가 360m이며, 지면에서 4m 높이에 있고, 폭은 30m이다. 가운데에 돌이 깔린 길을 '선루[神路]'라고 하여, 천제(天帝)만이 다니는 길로 정하였다. 동쪽의 벽돌이 깔린 길은 '위루[御路]'라고 하며, 황제(皇帝) 전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왕공대신(王公大臣)은 서쪽에 있는 '왕루[王路]'로만 다닐 수 있었다. (두산백과)
"용꼬리야? 붕어꼬리야? 귀엽네."
회음벽(回音壁)
황충위[皇穹宇]의 담장으로, 돌을 간 다음 쌓아 만들었으며, 담장 위에는 남색 유리기와를 얹었다. 두 사람이 둥[东], 시페이뎬[西配殿] 뒤편에 나누어 선 다음, 벽에 기대어 서서 벽 가까이에 대고 북쪽을 향해 말하면, 소리가 담벼락을 타고 전해져 200m 떨어진 곳에서도 들을 수 있다.(두산백과)
"싱겁기는, 누가 있어야 팩트체크를 해보지."
원구(圜丘)
한백옥(汉白玉)으로 된 3층의 기단(基坛)으로 황제가 제사를 올리던 곳이다. 제사를 올릴 때 기단 북쪽의 황궁우에 선대 황제의 위패를 안치했다. 원구의 계단과 포석, 난간의 수는 9의 배수로 되어 있다.
관광객들이 거의 없는 조용한 길이라 더욱 마음에 든다.
지난 과거의 유물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궁금하다.
열심히 제기를 차며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한참 후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데 뒤편 난간에 제기가 꽂혀있는 쇠줄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디어, 완성도, 편리성 최고!"
제기를 차는 소리가 묵직하여 적당히 무게감이 있을 줄 알았은데 생각보다 가볍다.
하얀 깃털 사이로 작고 부드러운 갈색 깃털을 추가하여 모양을 낸 것도 있다.
할머니와 공원을 산책 후 돌아가는 길인듯.
할머니가 웃으며 보여주라고 하니 의아해하며 제기를 전해준다.
"알록달록한 게 이쁘네."
예쁜 모양의 제기는 어른들이 차던 제기와 달리 기성품으로 만들어진 제품 같다.
"시에 시에, 고마워, 땡큐!"
여전히 이 사람은 뭔가 싶은 얼굴로 쳐다보는 아이에게 할머니가 '할로'를 하라며 웃는다.
어제 베이징 시내의 초입에도 주문을 아주머니가 받아 소통이 어려웠는데 여기도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는다.
말없이 주문대 위에 놓인 그림을 가리키며 37위안을 꺼내어 준다.
"자전거도 안 타는데, 너무 많이 먹는가."
식당과 숙소 사이에 작은 미용실이 있다. 미용실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는데 들어오라며 손짓을 한다.
"워쓰 한궈렌, 밍티엔."
손가락 가위 모양으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제스처를 하니 맞다며 하며 웃는다.
심심한데 내일 이발이나 해야겠다.
"방이 조금 안 좋아졌다고 와이파이까지 차별할 필요는 없잖아."
몇 분이면 될 업로드를 하느라 프런트를 왔다 갔다 하며 신호를 잡는다.
밤늦게 출출해져서 포장해온 할배네 햄버거 세트를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순서대로 꺼내어 먹는다.
"치즈파이, 치킨 3조각 그리고 하이라이트 햄.. 버. 이건 뭐냐?"
두툼한 치킨버거는 없고 무슨 밀가루 전병 같은 것이 들어있다.
"소고기 오방? 넌 뭐니!"
멘붕이 밀려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주문할 때 찍어놓은 메뉴판 사진을 핸드폰으로 다시 확인하니 이것을 주문한 것이 맞다.
세트 넘버 1을 말하는 게 귀찮아 언뜻 보이는 메뉴판을 가리켰는데 햄버거가 아니고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이다.
"제발, 이상한 향신료 맛만 나지 말아라."
다행히 그럭저럭 먹을만했지만 치킨버거의 행복감을 대신해 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조식도 빼먹고, 숙소예약도 꼬이고, 햄버거까지 날려먹다니. 느슨해진 거야, 정신 똑바로 차리자."
내일은 자금성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야겠다.
Trak 정보
GPS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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