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 후 맑은 아침의 바람이 좋다.
첼니에서의 일주일을 보내고 카잔으로 떠나는 날, 이글과 함께 카잔으로 가기로 한다.
안드레는 언제나처럼 인도차를 끓여 아침을 해결하고, 안드레의 차는 향과 맛이 좋다.
"사비, 가끔씩 연락해야 해."
안드레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지만 참 편안한 친구다. 짐들을 정리하며 안드레에게 중국과 몽골, 러시아, 카자흐스탄의 여행 동안 사용했던 버프를 선물한다.
"안드레, 산에 갈 때나 강에 갈 때 이것을 써."
좀 더 좋은 선물이 있다면 좋겠지만 안드레라면 기꺼이 기분 좋게 받아줄 것 같다.
땅이 넓어서 인지, 전쟁이나 재해를 대비한 것인지 러시아의 지하 주차장의 지상은 아무런 용도 없이 비어있다. 우리라면 지상의 주차장으로 빼곡하게 이용을 할 텐데 말이다.
이글이 안드레의 집으로 찾아오고 짐들을 들고 밖으로 나온다.
"안드레, 이제 가야 해."
이글의 승용차에 자전거의 바퀴들을 분리하고 짐들을 싣는다.
월터의 말처럼 헤어짐의 감정은 그다지 좋아하거나 익숙해지는 감정이 아닌 것 같다.
"안드레, 잘 있어."
아쉬움의 인사를 여러 차례 반복하고 안드레와 헤어진다.
"다시 만날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지기를 바란다. 내 친구, 안드레."
이글은 성능이 떨어진 USB 케이블을 사주기 위해 전자기기 가게에 들르고.
튼튼해 보이는 USB 케이블을 사준다.
"아프리카까지 잘 써 볼게."
러시아의 물가는 우리보다 20~30프로 정도 저렴하다.
이글은 보바에게 가서 작별 인사를 하자고 한다. 이글이 말하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하자고 부탁했을 것이다.
보바의 직장으로 이동해서.
보바와 작별 인사를 한다.
언제나 다정다감한 따듯한 친구 보바, 소치에서 꼭 다시 만나자.
보바와 헤어지고 이글은 이발을 하자며 이동을 한다. 꼼꼼한 이글은 오늘의 동선을 메모리에 적어왔는지 뭔가를 계속 확인하며 시간을 사용한다.
며칠 전부터 이발을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동안 시간이 없어 머리카락을 자르지 못하고 있었다.
미장원에 앞선 손님이 있어 잠시 대기한다.
"얼마 만이야. 오늘 날씨 참 좋다."
미장원 앞에 있던 작은 고양이가 살갑게 다가와 자리를 잡는다.
"네가 사랑받는 법을 아는구나."
"잠깐 비포 사진을 찍고."
눈 내리던 몽골에서 머리를 자르고 러시아까지 왔다.
"기분 전환이 필요한 요즘이야."
짧게 머리를 자르고 인증샷, 시원하게 잘린 머리가 마음에 든다.
러시아의 모든 곳에는 할머니들의 노점이 있다. 거리에 나와 시간을 보내며 작은 용돈을 버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날씨가 쌀쌀하여 춥지는 않을까 생각되지만 이렇게 거리에 나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이글과 카잔으로 향한다. 200km 정도의 거리, 3시간 정도 이동하면 될 것이다.
이글은 이동하는 동안 지나치는 곳들의 설명을 하느라 바쁘다.
한 시간 반을 달려 중간 지잠에서 차를 세우는 이글, 도로변의 휴게소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자고 한다.
여기저기서 손짓을 하는 중년의 여성들, 간단한 음식과 함께 기념품과 말린 생선 등을 판매하고 있다.
러시아의 말린 생선은 정말 별미다.
이글은 한 가게에서 만두처럼 생긴 손바닥만한 큰 빵을 주문한다. 이름을 알려주었지만 어려워서 모르겠고 감자 반죽의 피에 다진 고기와 야채가 들어있어 쫀득하고 맛이 좋았다.
이글의 성화에 가게 주인과 사진도 찍고.
유료 화장실에서 급한 용무도 해결하고.
출발하려는 사이 다른 가게의 여자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이글과 무슨 대화를 하는지는 모르겠고, 테이블 밑에 숨겨두었던 말린 생선을 보여주는데 뭔가 은밀하게 행동하는 것이 판매가 금지된 어종인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도로를 달리던 이글은 뭔가 생각이 난 듯 차량을 유턴하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좋은 장소가 있다고 한다.
차를 몰고 도착한 곳은 도로변의 오래된 카페인데, 오래된 오토바이와 차량들이 카페 주변에 전시되어 있다.
카페에서 운영하는 작은 박물관인데 우리나라의 자동차 박물관에나 있을법한 올드카들이 주차장에 방치되듯 전시되어 있다.
"아깝다. 좀 더 제대로 보관하면 좋을 텐데."
장애인을 위한 차라고 하는데, 구조가 조금 다르게 생긴 것 같다.
오래전 러시아의 나무집도 재현되어 만들어져 있고.
상점의 모습도 재현되어 있다. 냉장고와 계산기, 카운터 포스 등을 제외하면 현재 러시아 시골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아, 그런데 인형이 너무 무섭다."
이글의 말레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 들리며 구경을 하고 사진 촬영을 하는 장소라고 한다.
졸음이 쏟아져 잠시 눈을 붙인다.
카잔으로 들어가는 교차로에 들어섰을 때 잠에서 깬다.
"사비, 저기 봐. 비가 내리고 있어."
"어, 몽골, 카자흐스탄, 러시아에서 많이 봤어."
이글은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알려주느라 간단한 것도 여러 번 설명을 하며 '언더 스탠드'를 외친다.
카잔의 날씨는 흐리고 비가 흩날리고 있다.
알 수 없는 거대한 구름들의 움직임이 계속된다.
카잔의 외곽에 들러서 이글의 친구를 만나고, 잠시 은행에 들린다.
은행 안의 풍경이 색다르다. 상담을 하고 있는 고객들이 모두 측면을 향해 앉아있는 구조다.
이틀 동안 머무를 집을 구했다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글과 친구, 아마도 호텔이나 게스트 하우스가 아닌 아파트를 빌려 머무를 생각인가 보다.
러시아의 거리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어느 곳을 가나 울창한 나무의 골목길, 산책로, 인도가 있다는 것이다.
인위적인 관리를 하지 않아 모기가 많기는 하지만 도시 한가운데 이런 길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오래된 건물에는 뭔가 특별한 멋이 있다.
인도의 길바닥에 뭔지 모를 글자와 숫자들이 많이 쓰여 있는데 의미를 모르겠다.
침대가 두 개 놓인 오래된 아파트를 렌트한다. 러시아의 숙소, 렌트의 시스템은 잘 모르겠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여행 중 아파트 숙소에서 머문 적도 있지만 시스템을 안다면 값비싼 호텔보다 좋을 것 같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이글은 어제 촬영을 했던 인터뷰가 방송이 된다고 알려준다. 첼니의 지역 방송이라 카잔에서 시청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이글은 카잔 크렘린 주변의 야경을 보러 가자고 한다.
완전히 어두워진 8시, 저녁을 먹기 위해 카페로 이동하며 핸들 패니어를 들고 가는 나에게 이글은 중요한 것이 없으면 핸드폰만 들고 가라고 한다.
"안 돼. 여행의 습관을 만드는 거야. 귀찮아도 항상 들고 다녀야 잃어버리지 않아."
구글을 검색하면 수프전문 식당으로 검색되는 카페인데, 저렴하게 여러 가지 메뉴를 먹을 수 있어 몇 차례 이용을 했던 곳이다.
카잔에 대학교가 있어서 그런지 다른 지역에 비해 젊은층의 세대가 많이 보인다.
메뉴가 다양한 카페에 들어서니 여지없이 이글의 자세한 설명들이 이어진다.
"사비, 이건 뭐고 저건 뭐고..."
"어, 이글."
"사비 샐러드 안 먹어?"
"어, 풀은 안 먹어."
이글의 모든 설명을 듣고, 번역기로 확인하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거, 이거."
재빠르게 메뉴들을 골라 주문을 하지만 이글은 내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고 배식을 하는 여직원에게 묻고 닭고기인지 생선인지를 설명한다.
"하하하. 내가 졌다. 이글."
플롭이 없어서 마카로니를 고르고 고기로 보이는 두 가지 토핑을 선택한다.
생선과 닭고기라며 꼼꼼하게 설명을 하는 이글과 달리 나에게는 모두 고기일 뿐이다. 고기 메뉴는 연어꼬치와 잘게 다진 돼지고기 같다.
이글은 재미있게 생긴 빵을 두 개 챙겨 나에게 하나를 건네준다. 안 쪽에 다진 고기가 들러간 빵이다.
이글의 메뉴는 샐러드와 감자다.
김치와 나물을 기본 반찬으로 하는 우리의 식탁에선 특별히 샐러드를 추가로 먹을 필요가 없지만 러시아의 식탁에서 샐러드와 메인 메뉴 그리고 빵과 차를 기본적으로 먹는 것 같다.
러시아를 여행하며 식당에서 주문을 받는 절차는 수프나 메인 메뉴를 고르면 빵이 몇 개 필요한지를 묻고, 차와 커피를 마실 것인지를 묻는다.
밥과 고기 그리고 밑반찬을 많이 먹는 나로서는 으깬 감자나 감자 등을 주메뉴로 먹는 것을 보면 가끔 신기하다.
"간단한 식사로 좋긴 할 것 같은데, 저게 배가 부른가?"
확실히 내 취향은 오리지널 한국의 촌놈 입맛이다.
식사를 하고 택시를 불러 카잔 크렘린으로 이동한다. 러시아의 도시에는 우버 택시가 많이 보이고, 정식 택시의 모습도 많이 보이지만 몽골처럼 개인이 택시를 하는 경우도 있는지 잘 모르겠다.
도로변에서 아무 차나 붙잡고 타는 몽골과 같은 시스템이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보는 사람도 게르에 앉아 함께 차를 마시고 음식을 먹는 몽골, 누구든 악수를 하고 나면 형제가 되는 카자흐스탄의 브로맨스처럼 러시아의 커뮤니케이션도 타인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은 듯싶다.
한국 사람들이 정이 많다고 하지만 몽골과 카자흐스탄, 러시아를 여행하며 이들이 처음 보는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한국인의 모습이 각박해 보일 정도이다.
잠시 첼니 방송국의 카메라맨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택시에서 내리자 펼쳐진 풍경은 실로 이색적이다.
"와, 러시아의 크렘린이 이런 것이군."
높지 않은 언덕을 따라 이어지는 성벽과 언덕 위로 모습을 드러낸 성 내부의 건물들이 조명을 받아 아름답게 반사된다.
약간의 흥분감으로 사진을 찍고 있으니 이글은 내일 구경을 하자며 강변으로 가자고 한다.
"내일은 내일이고, 야경은 다르지."
리카 카잔카의 강변으로 내려간다.
차가운 강바람과 함께 화려한 조명의 야경이 펼쳐진다.
강변의 카페들과 레스토랑들이 들어서 있고.
"이글 웃어봐."
건너편의 야경도 화려하다.
이글과 함께 강변을 걷고.
이글은 강 건너편에 세워진 항아리 모양의 구조물에 대해 설명한다. 카잔의 명칭과 관련된 유래이고, 그것을 상징하는 구조물이라는 설명이다.
"이글, 이제 돌아가자."
작은 조명들이 수놓아진 길을 걸으며, 이글은 타악기를 두드리는 남자에게 다가가 무언가 대화를 하더니 바르간을 물고 남자와 함께 즉흥 연주를 한다.
"너무 꼼꼼해서 잔소리가 많지만 정말 사랑스러운 남자다."
"이글, 이곳에 오면 없던 사랑도 생기겠다."
보바와 영상 통화를 하고, 늘 함께 있다 떨어져 있으니 어색하다.
분위기 좋은 리카 카잔카의 강변이지만 바람이 너무 차갑다.
이글이 택시를 부르고,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크렘린 주변의 야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사비, 저기 건물 입구에 나무가 자라고 있어."
커다란 석조 건물의 현관에 오래된 고목의 실루엣이 보인다.
"오, 신기하다."
택시를 타고 돌라오는 동안 크렘린 주변의 석조 건물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빛내고 있다.
"이글, 여기는 사람이 없어? 저녁에 무서워서 혼자는 못 오겠다."
쌀쌀한 날씨 탓인지 거리에 사람의 인적이 드물다.
바쁘게 움직인 날들로 인해 이글도, 나도 피곤하다.
"이글, 들어가서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고 푹 자자."
숙소의 주변 슈퍼에 들러 필요한 식료품은 샀지만 10시가 넘어 맥주는 살 수 없다.
오트밀을 좋아한다고 보바가 말했는지 이글은 오트밀과 함께 착착을 산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오트밀을 조리해 주고.
보바는 유튜브에 올려진 인터뷰의 영상을 캡처해서 보내준다.
"아, 정말 꾀죄죄하다."
"이글, 왜 보바를 째려보고 있는 거야."
우파에서 인스타그램으로 러시아 음식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인스타그램 친구들이 추천해 준 착착, 달콤한 꿀로 버무린 우리의 강정과 같은 맛이 난다.
간단하게 간식을 먹고 잠들었다. 카잔 크렘린의 모습이 궁금하다.
"오늘도 고마워.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