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38일 / 흐림・ 1도
라봇키-니즈니노브고로드
계속되는 비와 쌀쌀한 날씨에 모든 것이 젖었고 몸도 마음도 지쳐있다.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쉬고 싶다."
아침 기온 1도, 침낭 밖을 벗어나면 금세 냉기가 온몸으로 전해진다.
"따듯한 커피가 먹고 싶다."
이틀 연속으로 라이딩을 일찍 끝낸 탓에 니즈니 노보고로드까지 60km의 거리가 남았다.
"일찍 도착해서 쉬고 싶다. 따듯한 샤워와 휴식이 필요해."
젖은 신발과 마르지 않은 양말에서 차가운 한기가 느껴진다.
첼니에는 밤사이 눈이 내린 모양이다.
"완전한 겨울의 시작이구나."
편하게 쉬면서 여행 자료를 정리하고 싶은데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호텔비는 끔찍하게 비싸다.
"배고프다."
따듯한 카페에 계속 머물고 싶은 마음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차량의 소통이 조금 더 많겠지만 갓길이 확보되어 있는 메인 도로가 더 안전할 것 같다.
시 외곽의 많은 자동차 대리점과 정비소 등을 지나치고서야 시내로 진입하는 교차로를 지난다.
크렘린이 위치한 강변까지 계속되는 오르막이다.
"아, 이 도시의 지형은 대체 어떻게 생긴 거야?"
공원을 지나면 차량의 통행이 없는 구시가지의 거리가 이어지는 것 같다.
첼랴빈스크의 오래된 거리처럼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이어지는 거리다.
자전거를 끌고 성의 안쪽으로 들어간다.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가도 괜찮은가?"
아무런 제재도, 유료입장의 티켓 판매소도 없어 안쪽으로 들어가 성 내부의 지도를 확인한다.
카잔의 크렘린에 비해 별다른 건물은 없어 보이지만 넓은 정원이 있어 산책하기에 좋은 장소일 것 같다.
"춥다. 일단 숙소로 가자."
"오, 이런 지형이었어?"
"카잔 크렘린과 느낌이 다르다."
프런트의 여직원에게 여권을 주자 비자를 보여 달라고 하더니 여권 첫 장의 몽골 비자를 보더니 무언가를 계속 말한다.
"나 한국 사람이야. 몽골인 아니야."
"괜히 미안하네."
게스트 하우스의 실내가 넓어서 다행이다.
샤워를 하고 잠시 침대에 누으니 며칠 동안 비를 맞으며 달려온 몸에서 노곤함이 빠져나오는 것 같다.
"배고프네. 한식 레스토랑이 없나?"
몸이 힘들고, 허기가 심할수록 한식이 먹고 싶어진다. 구글맵으로 검색을 하니 크렘린 주변에 한식 레스토랑이 한 군데 검색된다.
"버스를 타고 갈까."
프런트의 직원에게 버스 요금을 물으니 종이에 30루블을 적어 보이며 싱긋 웃는다.
"꽤 넓은 강이네."
"오, 비빔밥 색깔 좋네."
초고추장을 듬뿍 넣고 쓱싹쓱싹 비벼 먹는다.
"역시 비빔밥은 고추장 맛이야."
밥을 먹는 동안 내 테이블 앞에서 어린 여자들이 화보 촬영을 하는지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하며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댄다.
"뭔가 민망하지만 너의 예쁜 미모도 나의 식욕을 방해하지는 못해."
테이블의 앞과 옆을 오가며 한국어의 레온 사인을 배경으로 모델 포즈의 사진을 찍는 동안 비빔밥의 맛에 빠져든다.
"첼니의 친구들에게 맛 보여주고 싶네. 아쉽다."
고추장을 듬뿍 넣어 이글에게 먹이면 어떤 반응을 할까 궁금해진다.
"내일 한 번 더 먹을까?"
여행을 결심하기 전까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다른 나라의 도시를 혼자 걷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둘이면 좋을 텐데. 좋았을 텐데."
"뉘신지는 모르겠지만."
"이러다 패니어에 온통 냉장고 자석뿐이겠어."
"단지 흰색과 붉은색의 무게감 때문인가?"
"어라, 10루블은 철로 만드는 것인가?"
냉장고 자석에 달라붙은 10루블 동전, 자석에 붙는 동전은 처음 본다.
"동전 지갑에 자석을 넣어 놓으면 편하겠는데."
첼니에서 휴식을 보내고 자전거를 다시 타다 보니 허벅지가 묵직하게 뭉쳐있다. 계단을 오르는 것조차 뻐근하게 느껴진다.
"하루에 풀어지려나. 하루를 더 쉬어야 하나."
몽골 여행 중인 파박님과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즐거운 수다처럼 오랜 통화를 하고.
11시, 컴퓨터 자료를 정리하는 중 옆 침대를 사용하는 사람이 들어오고, 누군가 나를 향해 계속해서 무언가를 말한다.
이어폰을 빼고 커튼을 열어보니 젊은 여자가 러시아어로 나에게 아주 긴 문장의 말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나 러시아말 못 해."
여자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빙긋 웃으며 말을 하자 당황하며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Open the window?"
조금 더운 방 안의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겠다고 한다.
"창문을 열겠다는 러시아말은 이렇게 긴 문장이 필요한 것인가?"
여자는 창문을 열고 옆 침대로 들어간다.
"어라, 직원이 아니야?"
게스트 하우스는 남녀가 함께 쓰는 시스템인가 보다.
"어허, 이러면 신경 쓰이는데."
개인적으로 조금 시끄럽고, 냄새도 나고, 칙칙한 분위기지만 남자들이 쓰는 방이 훨씬 편하고 좋다.
"자자."
2시가 넘어 기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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