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며 기온이 떨어진 체체를렉, 진눈깨비처럼 눈이 내리더니 하늘이 어둡다. 체체를렉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모두가 하얗게 변해있다.
아침으로 먹을 것은 일명 풀 일글리쉬 블랙퍼스트.
"빵 식사에 적응을 해야 해."
게스트하우스는 러시아 사람들이 빠져나간 이후로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 3인실의 방을 혼자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페어필드 전체를 독차지하고 있는 기분이다.
산책을 하기 위해 패니어에 들어있던 방풍 재킷을 다시 꺼내어 입고 불교사원을 둘러본다.
게르 형태로 지어진 작은 라마교의 불교 사원을 문을 열고 들어간다.
동그란 게르의 정면에 부처로 보이는 상들이 모셔진 제단이 있고, 천장으로 달라이 라마의 사진과 스님으로 보이는 모르는 사람의 사진도 커다랗게 걸려있다.
양쪽으로 나누어진 책상에 각각 세 명의 스님들이 앉아 있고 사람들이 마주 보며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입구 쪽에 놓아진 작은 의자에 네 명의 사람이 순서를 기다리며 앉아있어 조용히 그 옆에 앉는다.
옆에 있는 여자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보니 안된다며 엷은 미소를 보인다.
스님들은 작은 쪽지 같은 것을 넘기며 불경 같은 것을 계속 읊조리며 종을 울리거나 통에 든 주사위를 굴리거나 부적 같은 것을 적어 사람들에게 건네준다.
사람들은 스님들의 앞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거나 수첩에 무언가를 받아 적는 등 모두 제각각이다. 아이와 함께 온 사람, 부부처럼 보이는 사람, 중년의 아주머니, 부녀처럼 보이는 사람 등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앉아있다.
마치 우리의 점집이나 신당에 와있는 기분이 든다. 사람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고 경건한 모습들이다.
낮은 중저음의 불경 소리가 편안하여 오랫동안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다 숙소로 돌아온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몽골도 토템신앙을 기본으로 티벳불교의 문화가 복잡하게 섞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학교 옆에 있는 공원이 조각상. 중국의 조각상들이 정교하다면 몽골의 조각상들은 모두가 강렬하다.
주변의 몽골리안 식당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토요일이라 대부분 문을 열지 않는다며 안내를 해준다. 딱히 먹고 싶은 음식도 생각나지 않고 숙소에 있는 피자를 시켜 먹어본다.
10,000투그릭, 4,500원 정도의 피자인데 부드럽고 편안한 맛이다.
저녁 무렵 랜드로버를 타고 여행을 하는 독일인 커플이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온다. 러시아를 통해 몽골로 들어온 그들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컴퓨터로 무언가를 정리하는 남자가 짧게 대화를 하며 여행자 명함을 건네준다.
남자는 바로 인스타그램으로 친구 등록을 하며 'long long journey'라며 친근하게 웃는다. 조금씩 영어가 들리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말하는 것이 어렵다.
여행하며 아무 말이나 내뱉고 다니다 보니 외국인에 대한 낯선 거부감이나 언어 사용에 대한 부끄러움 같은 것이 전혀 없다.
"뭐 아무 말이나 던져 놓으면 지들이 알아듣겠지. 못 알아들으면 번역기 쓰고!"
함께 자전거를 타며 여행하는 외국 친구가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든다. 대충 나보다는 나이가 어릴 테니 언어도 배우고 일도 부려먹을 수 있게 말이다.
몽골의 게르나 집에서는 연료로 석탄을 태워 사용하기 때문에 마을은 언제나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로 가득하고, 연탄 냄새 같은 것이 난다.
새벽까지 진눈깨비가 날리더니 여전히 아침이 흐리다. 10시쯤 게스트하우스를 나서는 독일 커플과 인사를 나눈다. 마치 페어필드의 호스트가 된 기분이다. 남자는 나의 인스타그램으로 소식을 보겠다며 인사를 하고, 잘 생겨서 예쁜 여자는 좋은 여행을 하라며 악수를 청하며 웃는다.
"개미 손톱만큼 부럽기는 하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하루 종일 자료들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낸다. 점심 무렵 외국인 커플이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왔지만 숙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바로 나가버린다.
이후로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
나를 싱가폴 사람으로 생각했다는 여직원 자이카와 인사를 나눈다.
"싱가폴 사람보다는 내가 귀티가 날 텐데."
복도의 테이블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고, 소파에 기대어 핸드폰의 자판을 두들긴다.
저녁 8시가 되어 출출함이 느껴져 자니카에게 근처에 테이크 아웃 식당이 있는지 물으니 길 건너편의 식당과 숙소 바로 옆에 있는 호텔에 식당이 있다고 알려준다.
"저게 식당이었어?"
자니카에게 저녁을 어떻게 먹는지 물어보니 집에 가서 먹는다고 한다.
"나 밥 먹으러 갈 건데, 같이 안 갈래?"
언제나 웃는 얼굴의 자니카가 조금 주저하길래 같이 가자며 반강제적으로 소원을 한다.
불고기 같은 한국 음식을 판다는 길 건너편 식당은 불이 켜진 채 문이 닫혀있어, 숙소 옆에 있는 호텔의 식당으로 들어간다. 가라오케가 운영되는 묘한 컨셉의 호텔 식당에서 메뉴들을 주문했지만 요리가 안된다고 하여 간단한 것들을 시켜 먹는다.
"우리 게스트하우스에도 한국 음식이 있어."
"앙? 페어필드에 한국 음식이 있다고?"
"응."
왜 나는 쓸데없이 빵 식사에 적응을 한다며 굳이 양에 차지도 않는 빵과 베이컨 같은 것을 먹고 있었을까 싶다.
체체를렉에서 태어난 27살의 자니카는 7살의 딸이 있고, 남자 친구와 살고 있는데 아버지가 결혼을 반대해서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나처럼 여행을 하고 싶은데 가족, 돈, 일 등등으로 갈 수 없다고 말하고, 한국에 가보고 싶은데 비자를 받는 것이 어려워 갈 수 없다고 한다.
김병남 선교사님이 말하기를 몽골에서 한국에 가려면 500만투르크 정도를 보증금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비행기표 값이나 여행경비 등등을 고려하면 보통의 몽골인들이 한국을 여행하기란 쉽지가 않을 것 같다.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자니카와 어쩌면 삶의 고민거리일지도 모를 이야기가 오가다 보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 나는 왜 사람들과 이야기만 하면 주제들이 이렇지."
자니카와 페이스북을 연결하고 식당에서 나와 숙소로 돌아온다. 밥을 잘 먹었다며 웃으며 인사하는 자니카.
"같이 먹어줘서 내가 더 고맙지."
"I don,t know whether to stay another day or leave."
야영을 하면 좋은 것 중에 하나가 일찍 아침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며칠째 아침이 기온이 떨어져 제법 쌀쌀한 날씨이지만 따듯한 침낭 속에서 세상모르게 푹 자고 일어난다.
해발이 높은 몽골의 아침은 지면에 닿아있는 구름 탓에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가 없다.
하루의 굿모닝을 알리고.
몽골의 화장실에는 문이 없는 재래식 화장실이 많다. 처이르에서 길을 가다 가끔 사람이 들어앉아있는 화장실을 지나칠 때면 괜스레 내가 더 미안해진다.
텐트를 정리하고 언 몸을 녹이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가 아침을 주문한다. 어제와 같은 메뉴를 주문하니 이번에는 카운터 옆에 있는 보온병을 가리키며 무언가를 말한다.
"아, 차를 마실 거냐고 묻는 거구나."
식사와 함께 따듯한 우유차를 500투그릭에 추가로 판매하고 있다. 중국의 차가 입안을 정결하게 해주는 느낌이라면 몽골의 우유차는 몸을 따듯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다.
밥을 먹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으니 어젯밤 내 손을 끌며 집으로 가자고 했던 아저씨가 찾아와 인사를 한다. 아마도 추운 날씨에 별 탈 없이 잘 보냈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잘 잤다는 인사의 제스처를 하니 자신의 집으로 가서 밥을 먹고 잠을 잤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듯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따듯하게 관심을 가져준 아저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초원의 작은 식당을 떠난다.
울란바토르까지는 이제 120km 정도가 남아있다. 조금 일찍 라이딩을 시작했고, 어제와 비슷한 느낌의 바람이 불어오니 오후가 조금 넘은 시각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이르까지의 초원에서는 도마뱀이 자주 보였는데, 이곳에서는 작은 햄스터처럼 생긴 귀여운 설치류가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인다. 아주 귀엽게 생긴 녀석인데 가까이 가면 작은 굴속으로 재빠르게 몸을 숨겨버려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이 녀석아, 나와봐!"
안타까운 것은 달리는 내내 도로 위로 로드킬 된 녀석들의 사체가 많다는 것이다.
천천히 이어지는 오르막의 길이지만 바람이 적어 크게 힘이 들지는 않는다.
작은 언덕들을 넘으며 20km 정도를 달리니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도로변을 따라 좌우로 들어선 작은 마을이다.
울란바토르가 가까워지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버스 정류장이 도로변에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울란바토르까지는 버스가 운행되는 모양이다.
많은 수의 양떼들을 게르가 있는 곳으로 몰고 가느라 도로가 막히고.
오토바이를 타고 양떼를 모는 목동과도 손인사를 한다.
출발한지 2시간 35km 정도 지나 어제 도착하려 했던 바가항가이의 교차로 나온다.
바가항가이에 접어들며 갑작스레 바람의 거칠어지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자전거를 밀어주는 뒷바람이다.
"86km 정도면 3시 전에 도착할 수 있겠는데."
높은 언덕의 좌측으로 들어서 있는 바가항가이. 고개를 넘는 동안 뒤쪽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아무런 이유 없이 맞바람으로 돌변하며 미친 듯이 불어댄다.
어렵게 어렵게 언덕을 오르고 길게 이어지는 내리막길에서 자전거가 굴러가지를 않는다.
"뭐야 갑자기!"
두 시간 동안의 평화롭던 라이딩이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해버린다. 바가항가이의 검문소에서 버스에 내려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자전거를 눕혀놓으니 남자가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어디를 가는 거예요?
자민우드에서부터 짧게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고 있다. 울란바토르까지 80km가 남았다며 알려주는 남자에게 명함을 건네주니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순식간에 돌변해 버린 초원의 날씨이다. 5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던 울란바토르의 도착 시간을 짐작할 수 없다.
"아, 80km나 남았는데. 이건 너무 하잖아."
검문소를 지나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을 향해 페달링을 시작한다. 휘청휘청 거리는 자전거를 억지스레 전진시키는데 멀리 주유소의 담벼락에서 누워있던 검은 개가 나를 향해 짖으며 맹렬하게 뛰어온다.
"아! 이 개*********. 오지 마! 오지 말라고!""
50미터가 넘어 보이는 거리를 빠르게 달려온 크고 검은 개는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자전거를 쫓아온다. 바람 때문에 느릿느릿 기어가기도 힘든 상황에 더러운 개가 쫓아오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차량이 지나가 개를 도망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죽을힘을 다해 페달을 밟는다. 한참 동안을 따라오며 짖어대던 개가 떨어지자 다리의 힘이 모두 풀려버린다.
"아! 개*******************************."
휘몰아치는 모래바람 속에 모든 것들이 뿌옇게 변해버린다. 점점 가시거리가 짧아지고 나를 지나치는 차량들은 모랫바람 속으로 사라지고, 저 멀리 모랫바람 속에서 헤드라이트를 켠 차량들이 갑작스레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이리저리 요동을 치며 불어대는 초원의 모래바람에 페달링을 멈추고 만다.
눕혀놓은 자전거의 바퀴는 모래바람에 의해 바쁘게 회전을 하며 돌아가고 있다.
"이런 바람은 뒤에서 불어주면 안 되는 거니?"
갑자기 시작된 모래바람이 잦아들기를, 아니면 도로의 방향이 바뀌기를 바라며 꾸역꾸역 길을 이어간다.
계속 이어지는 언덕과 고개의 오르막길들, 한가롭게 시작되었던 울란바토르의 여정이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잠시 바람을 피할 곳조차 없는 초원의 한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냥 가던 길을 이어가는 것뿐이다.
"저 파란 하늘은 또 뭐야?"
지옥 같은 바람이 불어오는 지상과는 달리 머리 위의 하늘은 미친 듯이 파랗다.
바람으로 인해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사이, 길은 오르막의 산길이 계속 이어진다.
"나를 죽여라. 이놈들아!"
거친 바람과 지나가는 차량들의 돌풍, 갓길조차 없는 좁은 도로.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할 뿐 아무것도 보이질 않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높은 산등성이가 눈높이에 맞춰질 때쯤 자전거를 멈춰 세운다.
"에이 **!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
어제 아침 간져가 싸준 양고기만두를 꺼내어 바람을 등지고 길바닥에 퍼질러 앉는다.
"죽어도 밥은 먹고 죽어야겠다."
식어있는 만두지만 간져가 센스 있게 넣어둔 오이 피클과 함께 먹으니 그런대로 제법 맛이 좋다. 누렇게 변해버린 풍경 위로 솜뭉치를 문질러 놓은 듯 떠있는 구름들을 보며 만두를 먹는다.
시원한 오이 피클을 먹는 사이 세 개 정도 남은 양고기의 반찬통이 돌풍으로 엎어져 데구루루 초원을 향해 굴러가 버린다.
"#$%#^#$#%$%#^#$%#."
바람 때문에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꽤나 높이 올라온 느낌에 산들샘 GPS를 켜보니 1,650미터까지 올라왔다. 울란바토르에서부터 시작되는 몽골 중부의 산악지형을 예상했지만 초원이 시작되던 중국 내몽골의 장베이을 넘던 환경과 너무나 비슷한 모양이다.
"죽겠네. 저기 좀 더 올라가야 할 것 같은데."
휘청거리며 기어가는 자전거를 향해 지나가는 차량들은 스카프를 흔들거나 연이어 손인사를 하며 응원을 보낸다. 애써 답례를 하기 위해 잠깐 핸들바에서 손을 떼면 미친 듯이 휘청거리는 자전거.
"힘들어. 응원하지 마!"
"제발 저것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고개를 넘으며 이유 없이, 갑자기, 불현듯 바람이 사라지기만을 바랐지만.
그럴 일은 없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쭉 내려가 주기를 바랐지만.
그럴 일은 여전히 없다.
소들마저 자리에 앉아 바람을 피하는데, 할 일 없는 여행자만이 쓸데없이 페달질을 하며 바람을 이기고 있다.
도무지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 산등성이의 도로에 질리듯 자전거를 멈춰 세운다.
"언제 끝낼 거야?"
알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길을 확인하기 위해 어붜가 쌓아진 언덕 위로 올라가 본다.
거센 바람에 몸이 휘청이게 만드는 언덕의 위에서 주변을 둘러본다. 뿌옇게 사라지는 도로는 분명 내리막길이고, 저 멀리 풍력 발전기의 실루엣이 보인다.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도로를 지나던 차량에서 한 남자가 내리더니 어붜가 쌓인 언덕으로 뛰어 올라온다.
"그렇게 급한 거야?"
산등성이 쪽에 세워진 어붜를 향해 급하게 달려가던 남자는 어붜를 몇 바퀴 돌더니, 내 쪽으로 달려와 이쪽의 어붜를 정신이 뛰어다닌다.
돌풍과 바람소리, 모래와 흙먼지, 양떼와 말떼들 그리고 어붜 주변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사람까지 정말 혼을 쏙 빼놓는 느낌이다.
경사가 제법 가파르게 떨어지는 도로를 브레이킹을 하며 조심스럽게 내려온다. 지나가는 차량이 만드는 돌풍에 자전거가 휩쓸리는 것이 무엇보다 걱정이 된다.
"내리막조차 브레이킹을 하며 가야 하다니."
말들의 한가로움과는 달리 변속기마저 트러블을 일으키며 변속이 원활하지 않고.
급경사의 구간이 지나고 나지막이 떨어지는 내리막이 이어진다. 상태가 좋지 않은 도로를 살펴 가며 브레이크를 풀고 속도를 내어본다.
"프리덤!"
산을 돌며 좌측으로 크게 휘어지던 내리막은 그것으로 끝이 나고, 정면의 맞바람이 소떼와 함께 가던 길을 멈춰 세운다.
"저기 저 언덕은 또 뭐야?"
소들의 사체들과 쓰레기들의 뒹구는 언덕을 다시 넘고, 토브를 지나 울란바토르의 경계에 도착한다.
준모드와 울란바토르의 갈림길, 직진을 하여 울란바토르로 가야 하지만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2시 30분. 여유롭던 아침 시간에 생각했던 울란바토르의 도착 시간인데 아직도 45km가 남았고, 끔찍한 바람은 계속 불어오고 있다.
"힝, 앞으로 4시간은 족히 걸릴 거야."
발걸음이 떨이지지 않는 누런 풍경을 향해 기어 들어간다. 울란바토르의 톨게이트가 나오고 톨게이트의 직원이 나를 보며 인사를 하고 차단기를 올려준다.
저 멀리 다시 보이는 산의 실루엣이 어질어질하다. 엄청난 수의 묘지들이 들어선 산등성이를 돌아 오르락내리락 짧은 언덕들이 이어지더니.
울란바트로의 위성도시 날라흐(Nalaikh)가 뿌연 먼지 사이로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울란바트로와 날라흐의 갈림길의 회전교차로에서 길을 확인하고.
맞바람이 불어오는 울란바트로의 방향의 서쪽을 향해 언덕을 오른다.
"울란바트로는 내일 갈까? 쉬고 싶다."
언덕을 지나 울란바트로에 가까워지니 하늘의 색이 조금은 맑아지는 듯하고.
"어, 한국 식당!"
몸이 지치고 힘드니 자전거가 알아서 식당으로 끌려들어 가는 기분이다.
"화장실이 어디예요?"
3시 40분, 울란바토르까지 30km가 남아있는 거리가 부담스럽지만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무작정 메뉴판을 집어 들고.
"모르겠다. 김치찌개 한 그릇 먹고 가자!"
"90일 만에 너를 본다!"
한국 일반 음식점의 맛과 똑같은 김치찌개의 맛이다.
든든하게 두 그릇을 비워놓고.
한국말을 잘 하지만 한국인은 아닌 식당의 매니저에게 울란바토르에 코리안 타운이 있는지 물어보니 별도로 모여있는 곳은 없고 시내 여러 곳에 한국인이 산다고 말해준다.
밥을 먹느라 한 시간이 지나버렸지만 오랜만에 김치찌개를 먹었으니 그것으로 만족.
주유소가 있는 삼거리로 나오니 도로를 공사하는지 길이 막혀있다. 할 수 없이 공사장 옆으로 차들이 다니는 비포장길을 따라가다 보니 임시 도로라기보다는 그냥 초원의 흙길이다.
쉴 새 없이 오가며 먼지를 날리는 차량들의 틈에 끼어 털털거리는 비포장길을 자카르타 랠리를 하듯 요란스럽게 따라간다. 대책이 없는 먼지 구덩이의 흙길을 정신없이 가다 보니 나로 인해 차량의 흐름이 둔해지니 마주 오던 화물트럭의 운전자가 아직 공사를 하고 있지 않은 좌측의 도로를 가리키며 빠져나가라는 듯이 안내를 해준다.
도로와 가장 근접해 있는 구간에서 자전거를 끌고 도로로 빠져나온다.
"하루 종일 먼지를 뒤집어쓰는구나."
흙먼지를 날리는 복잡한 비포장길을 빠져나와 혼자 도로를 독차지했지만 한가로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다시 흙먼지 속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요동을 치는 비포장길을 정신없이 따라간다.
무려 한 시간 동안을 흙구덩이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공사가 시작되는 지점에 이르러 도로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너덜너덜해진 느낌이다.
그 사이 미친 듯이 불어오던 모래바람은 사라지고 거짓말처럼 하늘이 고요하다.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울란바토르의 외곽을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지나친다.
멀리 북쪽의 산등성이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게르와 판자집들이 이색적이다.
낡고 허름한 외곽의 시내를 지나자 포장도로의 상태가 좋아지며 아름다운 툴강의 모습이 나타난다. 강을 따라 촘촘하게 들어선 수변의 나무들이 어색할 만큼 아름답다.
"세상에 몽골에서 처음으로 나무를 보는 거야."
울란바트로의 시내에 접어들며 좁은 2차선 도로는 차량들로 혼잡하다.
복잡한 차들 사이로 두 군데의 원형 교차로를 통과하고.
칭기스칸 광장으로 향하는 도심의 도로는 완전히 정체되어 자전거가 지나갈 수조차 없다.
"아니 무슨 차들이 이렇게 많지!"
인도로 올라가 자전거를 끌고 칭기스칸 광장으로 걸어간다.
"마르코 폴로 형님은 이곳에 왜 서 있는 거지?"
7시, 11시간의 험난한 라이딩 끝에 목적지인 칭기스칸 광장에 도착한다.
넓고 한적한 광장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산책을 하는 칭기스칸 광장. 중국의 광장과는 전혀 다른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형, 나 왔어!"
광장의 정면에 웅장하게 놓여있는 칭기스칸의 석상.
계단 위로 더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지만 중국의 베이징처럼 부자연스러운 제재는 하지 않는다.
한적한 광장을 둘러보고 툴가에게 전화를 걸어 울란바토르의 도착을 알려준다.
"툴가야, 형 왔다! 같이 저녁 먹자."
수업을 듣는다는 툴가는 9시에 수업을 마치고 호텔이 있는 곳으로 오겠다고 한다.
"아이고, 칭기스칸이고 나발이고 완전히 너덜너덜해졌어!"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이곳의 하늘은 왜 이렇게 좋은 거야?"
광장에 누워 오랜만에 트립닷컴을 켜고 숙소를 검색한다. 많은 호텔들이 검색되는데 의외로 숙박비들이 비싸다. 5~6만원 정도의 숙박료들인데 일반 몽골의 작은 호텔에 가려니 자민우드에서부터 시작된 거친 바람의 시달림에 편하게 쉬고 싶은 생각이 먼저 앞선다.
"씻고 싶고, 먹고 싶고 편하게 자고 싶다!"
100미터조차 움직이기가 싫어진다. 가격을 포기하고 가장 가까운 울란바토르 호텔을 찾아 들어간다. 클래식한 분위기의 호텔에 들어가 호텔 바우처를 보여주며 체크인을 하고 자전거를 보관할 장소를 물으니 프런트의 직원은 걱정하지 말라며 안내를 한다.
호텔 직원을 불러 자전거를 짐 보관 창고에 넣어주고 방까지 짐들을 올려다 놓는다. 클래식한 호텔에서 볼 수 있는 당연한 서비스지만 왠지 이런 서비스들은 불편하다.
"그냥 내가 들고 가도 되는데."
호텔의 가장 작은방에 들어가 아무리 둘러봐도 칫솔 세트도 없고 물도 없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툴가를 기다린다.
9시가 넘어 호텔로 찾아온 툴가를 만나고 주변에 한국 식당이 있는지 물었다. 오는 도중 김치찌개를 먹어서인지 허기짐보다는 쓴 소주 한 잔이 생각난다.
"연아라는 한국 식당이 있데요."
주변에 한국 식당이 있는지 친구에게 통화를 해 물어본 툴가는 연아라는 한국 식당으로 가자고 한다. 2km 정도 떨어진 식당까지 그동안의 소식들을 이야기하며 길을 걸어간다.
10시, 서울의 거리를 지나 찾아들어간 연아(Yuna) 식당은 영업이 끝났다며 안내한다. 몽골의 대부분의 식당들은 10시를 전후로 영업을 마치는 모양이다.
하는 수없이 길 건너편에 있는 술집으로 들어간다.
"툴가, 너 먹고 싶은 것을 시켜. 나는 밥보다는 술이 조금 마시고 싶다. 사람들이 칭기스를 먹으래."
면 요리와 치킨을 시키고 보드카를 달라며 주문을 하던 툴가가 오랫동안 직원과 대화를 한다.
"왜? 칭기스 없데?"
"아니요. 오늘은 술을 팔 수가 없데요. 12시가 지나서 술을 마실 수 있다는데요."
"아니, 왜? 왜?"
"모르겠어요. 금요일이라 술을 안 판다고 하는데요."
평상시 손님들이 많다던 술집은 무슨 이유인지 술을 팔 수 없다고 하고 손님들도 없다.
"힝!"
맛있는 한국 음식도, 간절한 술 한 잔도 마시지 못했지만 몽골의 여행 동안 여러 가지로 도와준 툴가와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다.
조르노크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주며 간볼트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니 흔쾌히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하는 툴가.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다던 사람들은 내가 느꼈던 간절함과는 달리 툴가와의 통화에는 적극적이지 않다.
"혹시라도 전화가 오면 잘 설명해 주면 좋겠고, 자신들이 적극적이지 않으면 어떻게 도와줄 방법은 없지 뭐."
하고 싶은 바람이나 직면해 있는 문제들을 앞에 두고 고민에만 몰두하며 투정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고 싶으면 하면 되고,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면 된다.
삶을 살며 수많은 선택과 결정들을 해야만 하고, 선택으로 인한 과정들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 결과에 의한 또 다른 선택과 결정들 끊임없이 해야만 한다. 세상에 잘 된, 잘못된 선택이란 없다. 단지 선택에 의한 과정에 얼마나 충실했는지의 문제일 뿐.
강풍으로 정전이 되었던 처이르의 다시 전기가 들어와 있다.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데 창문 밖을 쳐다봐도 바람의 방향을 알 수가 없다.
바람의 방향을 알아보려 숙소 밖으로 나오니 쌀쌀한 겨울의 한기가 느껴진다.
"뭐가 이렇게 추워?"
슘베르의 날씨를 보니 영하의 기온에 찬바람이 불어 체감온도가 -6~-10도 적혀있다.
옷을 다시 챙겨 입고 처이르 초입에 세워진 커다란 석상이 있는 공터로 나간다.
"대체 어디서 불어오는 거야?"
동풍, 울란바토르의 방향으로 측면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온다.
220km가 남아있는 울란바토르, 처이르를 벗어나 숙소나 음식점이 있는 곳까지는 100km 정도가 떨어져 있다.
"120, 130km. 갈 수 있을까?"
여유를 두고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릴지, 조금이라도 울란바토르의 거리를 줄여놓을지 고민하다 매일 이어지고 있는 거센 바람을 예측하기 어려워 그냥 출발하기로 결정한다.
"일단 출발하고 갈 수 없으면 돌아오지 뭐."
처이르를 빠져나가기 전 슈퍼에 들러 빵과 물 등을 사두어야 한다.
몽골 슈퍼에는 이상하게 낱개로 포장된 빵이 없고, 모두 무게가 나가는 대용량 빵들뿐이다.
"한국에서 보름달이나 단팥빵 같은 것도 가져다 놓지."
매장을 두 바퀴나 돌며 적당한 빵을 찾아도 보이질 않고 그럭저럭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빵을 두 개 골라 든다. 간의 포장된 빵이라 빨리 먹지 않으면 변질돼서 버려야 할 것이다.
"한국 사람이세요?"
한국에서 5년 정도 일했다며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서툰 억양이지만 정확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울란바토르에 가고 있어요."
어디를 가는지 묻는 질문에 답하고 반갑다며 짧은 인사를 주고받았다. 계산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이미 계산을 마친 남자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기다리고 있다.
김치 컵라면과 믹스커피를 낱개로 사들고 있던 남자는 슈퍼의 근처에서 탁구장을 운영한다며 시간이 되면 컵라면을 먹고 가라며 제안을 한다.
남자를 따라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한 그의 탁구장으로 따라간다. 슈퍼의 건물에 있을 줄 알았던 그의 탁구장은 아파트 지하를 개조하여 운영되고 있다.
자전거를 묶어두고 지하에 있는 그의 사무실로 들어간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의 지하는 한국의 오래된 빌라들의 지하와 비슷한 느낌이다.
책상과 소파가 놓은 작은 사무실에는 탁구 대회의 입상 사진들과 우승 상금으로 주어졌을 몽골 화폐 모양의 트로피들이 곳곳에 붙어있다.
"탁구 선수이신가? 탁구를 잘 치시나 봐요."
감바(Гамбаа), 52세의 남자는 몽골 처이르에서 경찰 근무를 하며 탁구장과 당구장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10년 전에 한국에서 5년 정도 일을 했었다. 나 한국말 잘 못해."
한국에서 5년 정도 일을 하다 불법 체류로 추방되었다는 감바와는 한국어로 대화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와, 탁구 대회에서 우승을 많이 했네요. 근데 우승 상금이 되게 적네."
이틀 동안 휴무라는 감바는 어제 저녁 친구들과 술을 마셔서 해장을 하기 위해 김치찌개 컵라면을 사러 슈퍼에 들렀던 것이다.
감바의 컵라면을 먹고 얘기를 나누는 사이 처이르에서 하루를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어 감바에게 말했더니 자신의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출발하라고 한다.
"전에 다른 외국인들도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갔어."
감바는 처이르에서 경찰 근무를 하고 있고, 그의 부인이 탁구장을 운영한다고 한다. 탁구장은 어린이들이나 동네 주민들을 가르치는 레슨반 같은 것이 있고, 감바 챔피언스 탁구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낡은 지하실을 개조하여 4개의 구역으로 나뉜 감바의 탁구장은 포켓볼을 칠 수 있는 당구장과 아이들의 레슨구역 그리고 성인들이 이용하는 탁구장으로 되어 있다.
아파트 지하실의 낡고 허름한 시설이지만 규모가 제법 되는 감바의 탁구장이다.
어제 생각했던 대로 오래된 아파트의 1층을 개조하여 은행과 슈퍼 같은 공간이 들어서 있다.
간단한 생필품을 파는 가게가 아파트의 1층을 개조해 들어서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1960년대 러시아에 의해 지어졌다는 감바의 아파트로 간다.
한 층에 세 가구가 입주해 있는 오래된 아파트는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더 낡고 허름하다.
집을 사며 은행의 대출을 받았던 감바는 3개의 방이 있는 건너편 아파트에서 최근에 2개의 방이 있는 이곳으로 이사를 하며 은행의 대출을 상환한다고 한다.
2천만원 정도 하는 감바의 아파트는 욕실과 부엌, 거실 그리고 안방으로 심플하게 나눠진 구조이다. 며칠 전 이사를 하며 집안은 정리가 되지 않은 짐들이 펼쳐져 있다.
"아내가 집 정리를 하라며 울란바토르에 갔는데, 오면 잔소리를 할 거야."
"오늘 쓰레기를 치워도 내일이면 다시 바람에 날려와 의미가 없어."
동네의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비닐봉지와 페트병들을 보며 감바가 말한다. 아파트 단지 내에 쓰레기 분리수거함을 와이프와 함께 자비로 만들었다며 설명을 해준다.
아내와 통화를 하던 감바는 아내의 여동생이 병원에 입원을 했다며 함께 가자고 한다. 도로변에서 지나가는 차를 잡아 무언가를 말하더니 무작정 타라고 한다.
단지 앞에 택시들이 서는 정류장이 있지만 공공버스가 없는 처이르에서 동네를 다니는 차들을 잡아 목적지로 이동하는 것이다. 병원이 있는 건너편 산동네로 이동한다.
감바의 아파트 단지와는 달리 나무판자의 담들에 게르와 단층 집들이 어지럽게 들어선 동네이다.
"예전에 이곳이 게르들이 모여있던 동네이고, 내가 사는 곳은 러시아 애들이 아파트를 지어놓은 동네야."
작은 단층 건물과 2층 건물들로 이루어진 처이르의 병원. 아내의 여동생이 어디가 아픈지 정확히 모르고 있던 감바는 산부인과 병동에서 자신을 부르는 아내를 보고서야 산부인과 병동으로 들어간다.
2층 건물의 산부인과 병동은 입구를 들어서자 접견실 같은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어 병실의 안쪽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아내의 여동생, 처제가 셋째를 가져 제왕절개를 통해 아이를 낳아야 해서 울란바토르에 갔던 아내가 급하게 간병을 하러 돌아온 것이다. 접견실에서 잠시 아내와 이야기를 하던 감바는 옆에 있던 남자와 전화를 주고받더니 가자고 한다.
"아는 사람이에요? 여동생 남편?"
"아니 모르는 사람이야. 내가 전화기가 안돼서 무슨 일이 생기면 나한테 전화해 달라고 했어."
통신 요금을 내지 않았는지 전화를 걸 수 없는 감바가 산부인과에서 처음 만난 남자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전화해달라고 한 것이다.
"뭐. 이 동네의 대인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몽골을 여행하며 히치하이킹을 하듯 지나가는 차량을 잡고 스스럼없이 합승을 하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부탁하고 받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시간 나면 집 정리를 하라고 잔소리를 하네."
병원을 나온 감바는 다시 지나가는 승용차를 잡더니 뭔가를 얘기하고 타라고 한다.
흙바닥 길의 골목을 돌아 작은 마트 앞에서 내린다.
작은 슈퍼에는 생필품보다 술들이 더 많이 진열되어 있다. 감바의 형이 운영하는 작은 슈퍼에서 맥주 한 캔씩을 마시고 집으로는 걸어가자고 한다.
"여기 있네. 징기스!"
"게르가 보고 싶은데."
나무판자로 된 다른 사람의 집의 문을 열고 골목을 가로질러 가던 감바에게 게르가 보고 싶다고 말하니 모두 아는 사람들의 집이라며 게르에 가보자고 한다.
넓은 마당에 게르 한 채가 지어진 집.
양철로 지어놓은 현관을 지나 게르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동그란 게르의 내부는 가구들과 화로, 식탁, 침대 등이 놓여있다. 다섯 명 정도의 가족들이 따듯한 게르 안에서 이방인의 방문을 신기해하며 반갑게 맞이해 준다.
따듯한 우유차를 한 잔 내어주고.
기도를 올리는 곳 같은 작은 공간도 있고.
간단한 조리 기구가 있는 작은 식탁.
그리고 가축의 똥을 말려 연료로 사용하는 화로가 가운데에 놓여있다.
나를 위해 몽골의 음식을 만들어 주겠다며 말린 가축의 똥을 집어넣고 화로의 화력을 높인다.
말린 가축의 똥은 가볍고 냄새가 전혀 나질 않는다.
"초원의 좋은 풀만 먹고 자라서 냄새가 나질 않아."
"아니, 김종훈씨가 여기에서."
멋진 가죽 부추를 신은 아저씨는 한국의 예비군 군복을 입고 있다. 아마도 한국에서 수거되는 한 옷들이 몽골에 넘어오는 모양이다.
가축의 똥을 넣은 화로는 이내 화력이 높아지고.
큰 냄비에 약간의 물과 소금을 뿌린다.
얇게 썰어놓은 양고기와 적당량의 물을 넣고 끓이면 끝.
소변을 보러 넓은 길가에 나와 시원하게 해결을 하고.
군복을 입은 아저씨는 식수를 길러와 집들에 배달을 해주며 조금의 배달비를 받는다고 한다.
나에게 관심이 많은 게르 주인의 동생과 한 컷.
게르의 주인인 형은 오토바이를 수리하느라 바쁘고.
쇼바가 높은 몽골의 오토바이에는 푸른 천들이 묶여 있다.
소변을 보고 온 사이 양고기를 넣은 음식은 팔팔 끓어가고.
작은 그릇에 한 그릇을 가득 담아주고.
몽골의 김치라며 작은 병을 건네준다.
모양으로 보아 소금 같은 것으로 절여놓은 것인데, 국물에 조금 넣고 먹으니 짭조름하고 향긋한 향이 난다.
육수 국물에 빵을 적셔 먹기도 하고.
소금 이외에 아무런 양념이 들어가지 않는 양고기 요리는 마치 쇠고기 뭇국 같은 시원한 맛이 났다. 진한 국물이 속을 따듯하게 해주고 편안하게 해준다.
"야. 이건 완전히 해장용이야."
많이 먹으라며 계속 담아주는 양고기 국물을 세 그릇을 비우고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한국에서는 어떤 일을 했어요?"
"서울에서도 있고, 강원도에서 있고. 공장에서도 일하고 건설 현장에서도 일하고 했어."
10년 전, 감바는 관광비자를 가지고 불법체류를 하면서 5년 정도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을 했다고 한다.
"강원도에서 일할 때는 마음이 아프고 하면 바다에 가서 앉아있고 술도 마시고 했어."
강원도의 공장에서 일하며 3개월치의 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감바는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을 겪었음에도 다시 한국에 가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불법 체류로 추방되어 비자가 나오지 않는 감바는 6월 초에 결정되는 비자 신청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감바는 처이르의 체육행사가 있는지 회의를 하기 위해 잠시 가게를 비우고, 사무실에 앉아 7시에 돌아온다는 감바를 기다린다.
그 사이 어린 친구들이 탁구장으로 들어와 돌아가며 탁구를 치고.
두 번째에 서이는 감바의 첫째 딸은 탁구를 잘 치는지 몽골의 동급생 중 두 번째의 실력이라고 한다.
"감바, 제법 멋진데."
사무실에 앉아 자료들을 정리하는 나에게 탁구장의 아이들이 몰려든다.
너무 많은 질문들을 하는 아이들에게 중국 여행의 동영상과 한국의 영상들을 보여주니 호기심 가득 지켜본다. 옆자리에 앉아 핸드폰의 영상을 관심 있게 보며 수줍게 질문을 건네는 분홍색 여자아이에게 명함을 주니 너무나 좋아하며 친구들에게 자랑을 한다.
남자아이가 나에게 포켓볼을 치자며 제안을 한다. 어떤 포켓볼의 룰로 게임을 하는지 몰라 아무것이나 집어넣고 아이들의 반응을 보니 로우, 하이 볼을 집어넣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알았어. 내가 높은 숫자를 넣으면 되는 거지?"
분홍색 옷을 입은 여자아이의 밝은 치어리딩을 받으며 가볍게 게임을 정리해 주고, 포켓볼 게임을 제안했던 남자아이에게 잘 쳤다며 악수를 해주니 멍하게 서있다.
"내가 요즘 술을 안 먹어서 손떨림이 없다. 임자 잘 못 만났어 너."
꼬마 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노는 사이 회의를 마친 감바가 돌아온다.
"감바, 애들이 뭐라고 하는 거예요?"
"자기들에게도 명함을 달라고 하는데."
아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며 명함을 한 장씩 나눠주고서야 어수선했던 사무실이 조용해진다.
"아내의 엄마가 저녁을 줄 거야. 집으로 가자."
감바의 장모의 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간다. 감바의 장모님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있다.
양고기 국물로 끓인 국수와 빵으로 저녁을 먹고.
"감바, 저녁에 맥주 한잔할까요? 내가 슈퍼에서 맥주를 사서 들어갈게요."
"좋지."
10시까지 영업을 해야 하는 감바는 탁구장으로 들어가고, 슈퍼에 들러 몽골의 큰 페트병에 담긴 맥주 두 통을 사들고 감바의 집으로 간다.
아무리 열쇠를 돌려도 잘 열리지 않는 감바의 현관문. 10분 정도를 낑낑거리며 이리저리 열쇠를 돌리다 어떻게 열린 것인지 모르게 철커덕 문이 열린다.
현관 문을 열자 바로 거실문이 이중 문처럼 붙어있다.
냉장고가 없어 작은 베란다에 맥주를 놓아두고 거실에 앉아 핸드폰으로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으니 감바가 집으로 돌아온다.
"벌써 끝난 거예요?"
"아니, 오늘 여기에서 못 잘 것 같아. 아내의 작은 아버지 식구들이 울란바토르에서 와서 집에서 자야한데."
처제의 출산을 앞두고 울란바토르에서 가족들이 내려왔는지 가게의 사무실에서 자야 한다고 한다.
"아, 괜찮아요. 그럼 가게로 가요."
다시 돌아온 탁구장은 감바 탁구회의 동호회 사람들이 게임을 하고 있다.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탁구를 치는 감바의 공과 라켓을 다루는 실력이 애사롭지 않다.
남자와 여자의 팀으로 나누어 내기 게임을 하며 탁구를 치는 모습들을 구경한다. 제법 실력들이 좋고 즐겁게 떠들면서 운동을 한다.
"한국 사람도 구경만 하지 말고 같이 치자고 하는데?"
"탁구 못 쳐요. 그냥 구경할게요."
다들 실력들이 좋아서 게임이 안될 것도 같고 무엇보다 오른쪽 어깨가 좋지 않아 스윙이 불가능하여 탁구를 칠 수 없다.
핸드폰의 충전기를 가져오기 위해 사무실의 열쇠를 달라고 하니 구석기 시대에 사용했을 법한 열쇠를 건네준다.
"이런 열쇠 지금은 없어."
남자와 여자팀으로 나눠 5,000투그릭의 첫 번째 게임은 여자팀이 이겼고, 이후 7,000투그릭의 두 게임은 남자팀이 이기며 게임이 끝났다.
맥주를 마시며 탁구를 지켜보던 나에게 여자의 팀이 내기에서 진 금액으로 맥주를 추가로 사다 준다.
"이 아저씨는 몽골 씨름을 하는 사람이야."
키가 크지는 않지만 건장한 몸을 가진 남자를 가리키며 감바가 소개를 시켜준다.
간져, 30대 초반의 몽골 씨름을 하며 중고차를 수입해서 판매하는 밝게 웃는 얼굴이 귀여운 남자다.
감바, 간져와 맥주를 마시며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눈다. 통역이 되는 감바가 있으니 너무나 편하고 좋다.
"내일 가기 전에 양고기만두를 해줄게."
간져는 양고기만두를 해주겠다며 아침에 집으로 나를 초대한다.
맥주를 마시고 헤어지던 간져는 당구장에서 포켓볼을 치는 남자들에게 당구 큐를 넘겨받더니 게임을 정리한다.
"오, 간져. 운동 신경이 좋은데."
몽골 씨름을 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있는 것인지, 간져의 등치가 좋아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간져의 스스럼없는 행동에 비해 다른 사람들의 표정들은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아침을 초대해 준 간져와 악수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온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감바는 계속 남은 맥주를 비우자며 술을 권한다.
"오늘 하루 일해서 11,000투그릭을 벌었어. 이건 돈이 아니야."
"그래 감바, 비자가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이번에도 나오지 않으면 다시 몇 년을 기다려야 해."
"혹시 비자가 나와 한국에 들어가게 되면 연락을 줘. 도움을 줄 수는 없지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와줄 사람을 소개해 줄게."
"다른 것은 필요 없어. 일자리 센터 같은 곳에 함께 가서 이야기만 해주면 돼."
"그래, 한국 사람이 같이 가서 말해주면 못되게는 안 할 건데."
처이르에서 경찰 근무를 하는 감바는 한 달에 60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는다고 한다. 몽골의 생활 물가가 중국과 비슷한 것을 감안하면 너무나 적은 월급이다.
한국과 몽골의 환율은 2:1. 한국에 들어가 이삿짐센터나 막노동을 하면 벌 수 있는 300~400만원이면 몽골의 6개월의 급여이다. 90일의 몽골 여행비자로 불법 취업하여 일을 하고 돌아오면 집을 한 채 정도 살 수 있는 금액이니 모두들 한국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자민우드, 조르노크 그리고 처이르에서 만난 바트보르드, 오드바야르, 간볼트, 감바까지 모두들 한국에 가서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
중국 여행이 사람들과의 스킨쉽에 흥미롭고 즐거웠다면 몽골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마음을 무겁고 안타깝게 만든다.
"감바, 이제 그만 마셔. 나 내일 자전거 타고 가야 해."
약간의 취기가 오른 감바를 어렵게 집으로 돌려보내고, 남은 맥주통을 들고 감바는 장모의 집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