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91일 / 맑음 ・ 14도
울란바토르-차민바즈
울란바토르에서의 휴식을 마치고 홉스굴로 가기 위해 출발을 한다. 몽골 중북부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하다.
9시가 다 되어 식당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는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시작해야 하는데 불행히도 아침 메뉴는 스파게티인 모양이다.
"밥을 먹어야 하는데."
패니어를 정리하고 다음 여정에서 필요한 현금과 비상식을 사기 위해 숙소를 나온다.
몽골은 한국에서 사용하던 중고 미니버스와 포터 같은 화물 트럭을 많이 사용한다.
숙소 옆에 있는 슈퍼마켓에 들러.
낱개로 진공 포장된 빵이 없으니 조금 난감하다.
삼각 김밥을 발견하고 맛이 어떨지 알 수 없어 하나만 집어 든다.
물과 빵 그리고 음료수를 사들고 슈퍼를 나와 현금을 찾기 위해 유니텔 건물의 현금 지급기를 사용해 보았지만 돈을 찾을 수가 없다.
"늘 가던 은행에 가야겠네."
유니텔 건물의 주차장에 자전거들이 세워져 있는데 하나같이 안장들을 빼놓거나 자물쇠로 잠가놓았다. QR레버 방식의 안장을 많이 훔쳐 가는 것인지 자전거를 세워둘 때 안장을 빼놓아야 훔쳐 가지 않는가 보다.
체크아웃을 하고 패니어들을 장착한 후 호텔을 나온다.
호텔 옆에 있는 칭기스칸 광장을 마지막으로 한 바퀴 돌며 돌러본다. 바람에 펄럭이는 몽골의 국기가 맞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저녁 시간 때보다 조금 덜하지만 울란바트로의 시내는 언제나 복잡하다. 갓길이 전혀 없는 울란바트로의 시내를 조심스럽게 빠져나간다.
울란바트로의 시내를 거의 벗어날 때쯤 도로변의 KFC가 눈에 들어온다.
"할배! 반가워요."
중국의 옌칭현을 지나며 마지막으로 햄버거를 먹은 이후 처음 보는 할배네 치킨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마침 몽골에서 이용하던 은행의 ATM 기기가 KFC의 건물 바로 옆에 떡하니 들어서 있다.
일단 ATM 기기에서 현금을 찾고.
몽골의 KFC 매장으로 들어간다. 세계의 소비 물가를 가늠할 수 있는 빅맥 지수가 있다면 나에게는 KFC와 콜라 지수가 있다.
"몽골의 할배네 치킨은 얼마인가?"
"코울슬로도 있네. 이걸 꼭 먹어야 한다고 했는데. 좋아!"
중국과 비슷한 가격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구성이 조금 다르지만 몽골이 훨씬 저렴하다.
햄버거 메뉴들을 패니어에 넣어두고 콜라를 마시며 잠시 쉬어간다.
울란바트로의 시내를 벗어나며 한가해진 도로는 맞바람이 불어온다. 기찻길을 건너는 교차로에서 잠시 길을 지나칠뻔했지만 지도를 확인 길을 잡는다.
"구글양, 일 안 하냐?"
바닥에서 널빤지 같은 차단기가 올라오는 철도 건널목을 건너고.
다르항과 므릉 그리고 카라콜룸의 길이 갈라지는 교차로를 향해 달려간다.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 회전교차로. 직진의 우측 길은 다르항, 좌측의 길은 므릉과 카라콜룸으로 향하는 길이다.
회전 교차로의 중앙에 놓은 묘한 석상에서 잠시 쉰다. 넘어가야 할 넘은 산의 방향에서 무심하게도 바람이 불어온다.
"누구세요? 몽골의 달마상인가?"
소를 타고 있는 석상의 인물 생김새가 굉장히 독특하다.
"얘네 주둥이는 왜 다 더러운 거야?"
바람이 불어오는 회전 교차로에 앉아 있으니 자전거를 끌고 출발하기가 꽤나 귀찮아진다. 베이징의 휴식 이후 첫 번째 라이딩이 그러했듯 오래 쉬고 나면 자전거를 타는 것이 조금은 힘들게 느껴진다.
교차로를 지나 바람이 불어오는 산길을 힘들게 오르니 정상에 울란바트로의 톨게이트가 나온다.
잠시 내려가던 길은 다시 큰 오르막을 앞에 두고 길이 이어지고 느리게 힘이 없는 페달링은 계속된다.
교차로에서부터 겨우 7km 정도를 이동하는데 50분의 시간이 걸렸다. 언덕 위로 어붜가 쌓여져 있고 이멜트(Emeelt, Эмээлт)의 작은 마을이 언덕 아래로 펼쳐진다.
작은 분지와 같은 곳에 넓게 펼쳐진 마을을 향해 내려가지만 멀리 건너편의 산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부담스럽다.
이내 시작된 오르막길의 도로변에는 양의 가죽들이 쌓여져 있고, 마을의 뒤편을 감싸고 있는 산의 중턱까지 무언가가 넓게 널려있다.
양의 가죽을 파는 마을인가 생각하며 천천히 길을 따라가니 양의 가죽과 함께 짙은 갈색의 가죽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말 가죽인가? 아니면 소?"
가죽들이 쌓여있는 마당의 사람들은 신발을 파는 자동차에 모여 신발들을 구경하고 있다. 비리고 역한 냄새가 조금씩 더해진다.
너무나 궁금해서 자전거를 세우고 뭔가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다가간다. 잠시 쳐다보더니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피비린내 같은 역한 냄새가 나는 마당에서 가죽의 털들을 가위로 제거하고 있다.
엄청나게 쌓여있는 가죽들 사이에 가축의 발목들이 보이는데 도무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드럼통 위에 가죽을 올려놓고 털을 제거하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제스처를 하니 무언가 짧게 대답하는데 부정적인 뉘앙스는 아니다.
조심스럽게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니 남자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한다. 여러 번 반복하는 남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보니 카멜, 낙타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낙타? 낙타구나!"
사람들이 하는 작업은 낙타의 가죽에서 털들을 제거하여 큰 포대자루에 담는 일이다.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주변에 앉아 쉬면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찍고 있으니 남자는 손을 들어 포즈를 취해준다. 낯설었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구경하는 나를 보며 서로 무언가 얘기를 주고받으며 웃는다.
남자는 자신의 가위를 건네주며 나에게 털을 잘라 보라고 한다. 그리고 핸드폰을 가리키며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제스처를 한다.
"이거 해도 돼? 이거 이상해!"
"헐. 나 털을 잘라버렸어! 어떡해?"
털을 제거한 가죽들은 바닥에 펼쳐놓고.
곳곳에 커다란 낙타들의 발목들이 널브러져 있다.
"발이 엄청 크네."
사람들의 작업을 구경하는 동안 마스크를 한 젊은 남자가 다가온다.
"Horse!"
"말?"
남자가 손을 가리키는 곳은 여러 명의 남자들이 갈색 가죽들을 화물차에 집어던지며 싣고 있다.
"아, 저쪽은 말가죽이구나."
마을의 뒤편의 산을 덮고 있는 것들을 가리키며 낙타의 가죽인지 물어보니 말의 가죽이라고 대답해 준다.
1톤 포터 트럭에 말의 가죽을 싣는 곳은 비린 냄새가 더욱 역하게 진동을 한다. 잠시 구경을 하다 냄새를 이기지 못하고 낙타의 털을 제거하고 있는 남자에게 돌아온다.
남자는 작업을 하며 허리가 아픈 것인지 허리를 펴고 서서 손등으로 두드리는 행동을 반복해서 한다.
"작업대 같은 것이라도 만들어서 하지. 하루도 아니고 매일처럼 이렇게 어떻게 해."
남자의 허리를 만지며 살짝 두드려 주고, 담배 한 개비를 건네주며 불을 붙여주니 '으으으' 신음소리를 내며 허리를 세운다.
작업을 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길을 이어간다. 건너편 산등성이 가득 말의 가죽들이 널려있고, 가죽을 실은 화물차들이 바쁘게 산의 중턱을 돌아다니고 있다.
이멜트를 벗어나는 산을 오르며 휘파람을 불며 손을 흔드는 사람들과 인사를 했다. 자민우드에서 사인샨드로 향하던 초원에서 휘파람을 불려 나를 붙잡으려 했던 검게 탄 얼굴의 유목민들이 생각난다.
낯선 사람들의 휘파람 소리에 잔뜩 경계를 하며 지나쳐 버렸는데 지금 생각하니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넓은 몽골의 초원에서 사람을 부르거나 가축들을 몰 때 휘파람을 불어 신호를 하는 것이 일상적이겠다 싶다.
꿀렁 꿀렁 오르내리는 몽골 중부의 산길들. 남부 사막 초원의 평평한 길들과는 달리 앞으로 이런 모양의 길들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바람에 날리는 구름의 모양이 솜뭉치를 문질러 놓은 것처럼 비현실적이다.
분위기를 살려보려 속도를 내어 달려봐도 바람 속에서 이내 지쳐버린다.
자전거를 세우고 햄버거와 코울슬로를 꺼내어 늦은 점심을 먹고, 치킨과 감자튀김은 남겨둔다.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들과 하늘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어딘가 머무를 곳이 있다면 한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그런 풍경이다.
겨우 자리를 털고 한 시간을 열심히 달려왔는데 뒤를 돌아보니 한 시간 전 햄버거를 먹었던 언덕이 저 멀리 눈에 들어온다. 급회전을 알리는 이정표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자리에 주저앉는다.
"아 정말, 사람을 허탈하게 만드는 길이다."
마주 오는 차들이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해주고, 잠시 동안 지나다니는 차량들을 향해 손인사를 하며 인사 놀이로 지루함을 달래본다.
5시가 되어가는데 겨우 40km 남짓 이동을 했다.
"아이고 50km만 채우고 적당한 곳에서 텐트를 치자. 오늘은 못 가겠다!"
오르막길이 이어지던 중 길 건너편으로 작은 주유소가 보이고, 주유소의 뒤편으로 게르와 석유 저장고처럼 보이는 커다란 통들이 놓여있다.
"저기가 좋겠네. 게르도 있고 바람도 막을 수 있으니."
자전거를 멈추고 작은 주유소로 들어간다. 주유소의 사무실 벽에 자전거를 기대어 놓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아무도 신경을 안 쓴다.
주유소의 점퍼를 입은 남자를 불러 주변에 텐트를 칠 수 있는지 물어보려니 답답함이 밀려온다. 툴가에게 전화를 걸어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는지 물어봐 달라 부탁하고 몽골어로 문장을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툴가와 통화를 한 남자는 흔쾌하게 게르를 가리키며 주변에 텐트를 치라고 알려준다.
주유소의 작은 사무실에 들어가 젊은 남자와 번역기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네트워크가 잘 잡히지 않은 곳이라 꽤나 어렵게 제스처를 써가며 서로의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카쉬 에르딘, 30세의 에르딘은 배구 선수를 하고 있고 가족들과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유쾌한 성격의 남자다.
에르딘의 게르 옆, 고장이 난 포터 트럭의 측면에 자리를 잡고 땅들을 고르고 있으니 에르딘이 다가와 밥을 먹자는 제스처를 한다.
에르딘을 따라 그의 게르로 들어간다.
"괜히 설레네."
세 개의 침대가 놓인 동그란 게르에는 중년의 남녀가 작은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고, 다른 중년의 여성 한 명이 더 앉아있다. 인사를 하고 들어가 에르딘과 함께 테이블에 놓인 츠이완을 먹는다.
우유차와 함께 정결하게 만들어진 츠이완을 먹으며 테이블에서 무언가를 정리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부모님인지 물어보니 아니라고 한다. 에르딘은 게르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게르에 앉아있던 다른 중년의 여자가 그의 어머니이고 밥을 먹기 위해 게르로 들어온 에르딘과 업무 교대를 한 남자가 그의 아버지이다.
테이블에 앉아 무언가를 정리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주유소와 관련된 정산을 하는 사람들 같다.
에르딘의 게르에는 엄청난 숫자의 배구 메달들이 걸려있다. 생활 스포츠나 아마추어 대회 같은데 몽골에서는 이런 대회가 많이 열리는 것 같다.
게르의 출입문 쪽에 간이 세면대와 세탁기도 있고.
처이르에서 감바와 놀러 갔던 화려한 게르에 비해 소박하지만 구조나 형태는 모두 똑같다.
식사를 하고 텐트를 치는 동안 에르딘은 아식스 스포츠 웨어를 말끔하게 입고 나온다. 그리고 10시에 돌아온다며 울란바토르에 간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의 에르딘이다.
"에르딘 멋진데!"
텐트에 들어와 누워있으니 울란바토르의 5성급 호텔보다 편하고 좋다.
"역시, 내 집이 최고야!"
네트워크가 좋지 않은 곳에서 사진 업로드를 걸어놓으니 업로드 속도가 한 세월이다.
"몰라. 자고 일어나면 되어 있겠지."
밖으로 나가 떨어지는 석양을 잠시 바라보고 침낭 속을 파고든다. 따듯한 침낭의 온기와 푹신한 초원의 흙바닥. 몽골의 체류기간 90일의 시간이 여유롭게 느껴진다.
몽골 사람들이 바다라고 부르는 큰 호수, 홉스굴까지 1,000km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Travelog > 몽골(19.04.14~07.08)'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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