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알렉스는 폴란드 정부의 새로운 지침들을 알려준다. 이전 내용들과 비슷한 정도의 권고사항들인데 특이한 것은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는 슈퍼마켓에 60세 이상만 이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뭔가 어설프단 말이지."
2주 정도의 기간 동안 100여 명 정도였던 확진자가 2,000여 명이 넘어간 폴란드다.
"There are more details now. So senior's hours in shops are 10-12, these are to be only for people over 60. Gloves will be obligatory when entering shops. All hotels etc. are to be closed."
"잉? 호스텔 클로즏?"
주폴란드 대사관의 페이스북을 확인하니 정말로 모든 숙박업체의 영업을 정지시키고, 숙박 중인 게스트를 4월 2일까지 체크아웃시키라는 내용이다.
"이건 아니지! 공항과 국경을 폐쇄해놓고 숙박시설을 영업정지시키면 어떻게 하냐!"
정말 대책이 없는 덜떨어진 대응책이다. 식료품점의 입구에서 반드시 장갑을 착용하라는 권고사항은 있는데 마스크를 쓰라는 내용은 없다.
"마스크 쓰기가 그렇게도 힘드냐?"
High5 호스텔로 건너가 시리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향후 일정을 고민한다. 호스텔이 영업중지로 문제가 생기는 것은 배터리의 충전뿐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배터리들을 충전할 수 있으면 계속 캠핑을 해도 큰 상관은 없다.
우크라이나의 대사관의 페이스북을 보니 외국인 입국 금지가 4월 24일까지 연장되었다. 4월이나 5월까지는 예상을 한 상태지만 갈수록 태산이다.
"캠핑장들도 영업을 안 하겠지?"
발트해가 있은 레바 주변의 캠핑장들을 검색해 놓고 잠시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간다.
"웜샤워를 해야 하나?"
레바로 가서 캠핑장이나 주유소에서 배터리들을 충전할 수 있으면 조금 여유 있게 발트해 주변을 여행할 수 있고, 그다인스크에 사는 사람들에게 웜샤워를 이용하면 그다인스크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충전만 할 수 있으면 좋은데."
커피를 마시러 호스텔로 돌아오니 여자 직원이 심각한 얼굴로 호스텔을 닫아야 한다고 말한다.
"알고 있어."
케밥을 사러 구시가지로 걸어간다.
"그다인스크, 마음에 드는데."
알렉스와 전기 충전의 방법에 대해 메시지를 교환하고, 월터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달한다.
"월터, 폴란드 호스텔들이 내일부터 모두 닫혀. 나도 다리 밑의 공간이 필요한가 봐."
어제 월터는 한국의 자전거 여행자라며 이탈리아에서 발이 묶인 여행자의 사진을 보내왔다. 2주 동안 다리 밑에서 캠핑을 한다는 자전거 여행자의 상황은 꽤나 열악해 보였다.
"이런, 어떻게 할 거야? 대사관에 연락해야 하지 않을까?"
"글쎄, 그냥 전기 충전만 할 수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솔라 페이퍼 없어?"
"있지. 근데 햇볕이 없지!"
"친구들에게 물어볼게."
맥주를 사기 위해 편의점으로 들어가니 물건들을 정리하던 여직원은 다급하게 뭔가를 말하고 비닐장갑을 건네준다.
월터는 폴란드의 친구들에게서 전해 들은 정보들을 보낸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와 러시아의 렌트 하우스 같은 정보들인데, 내 생각에는 모두 부정확한 정보들이 아닐까 싶다.
한국행 비행기는 한 달 정도의 시간 내에 한두 편이 임시적으로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귀국은 최후의 선택사항으로 남겨둔 상태고, 저렴한 아파트를 임대할 수 있는 러시아는 입국 금지로 당분간 국경은 넘어갈 수 없다.
우크라이나나 러시아의 국경이 열리면 어느 쪽이든 이동을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웜샤워를 찾아봐."
"응. 찾고 있어."
웜샤워를 한다 해도 장기간 머문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에 드는 그다인스크에 조금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있어 주변의 웜샤워 호스트들을 검색한다.
Zofia라는 호스트, 가든에 텐트를 칠 수 있다는 호스트의 정보를 확인하고 메시지를 보낸다.
Zofia는 부모님의 연세가 많아 초대가 어렵다는 정중한 답장을 보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문의를 해보겠다고 한다.
월터와 이런저런 메시지를 교환하고, 포즈나뉴에 있는 알렉스의 집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알렉스, 발트해만 보고 너의 집으로 갈게."
"응. 어머니 때문에 우리 집에서 지낼 수는 없고, 포즈나뉴 외곽의 부모님 집에서 지낼 수 있어."
"당연하지. 이해한다."
"부모님의 집에서 네가 원할 때까지 머물러도 돼."
"오케이!"
Zofia는 먼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불안해하다 보니 만나서 대화를 하면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을 하기가 편하다는 메시지다.
Zofia에게 알렉스의 집으로 갈 계획을 알려주고 감사의 메시지를 보낸다.
폴란드의 발트해 주변을 더 여행하고 싶지만, 알렉스의 집으로 가서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따듯한 햇볕이 드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싶은 아쉬움이 든다. 노트북을 꺼내 영화를 보려다 도깨비를 틀어놓고 노트북으로 핸드폰도 충전한다.
"너와 함께 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한 편, 한 편이 지나가고 은탁이 검을 잡을 수 있게 되면서 노트북의 전원이 꺼진다.
"핸드폰 완충!"
오후 늦게 주폴란드대사관의 페이스북에 공지사항이 올라온다.
국제선 운항이 중지됐던 LOT항공편으로 바르샤바-인천간 특별기가 3월 31일에 운행된다고 한다.
우리의 코로나 사태의 대책들이 외신에서 호평을 받고, 의료품과 대처법들에 대한 각국의 요청들이 늘어나더니 체코에서는 차단되었던 한국의 입출국이 풀렸다.
"오호, 좀 멋진데!"
26일 22시부터 예약이 가능하다는 공지에 '왜 미리 공지를 하냐'며 대사관의 조치에 사과를 요구하는 젊은 여자의 댓글이 보인다.
내용을 보니 폴란드 정부의 공문을 받고 대사관이 공지를 올리자 사람들이 서둘러 항공사에 항공권 문의를 했고, 정보공지가 부족했던 항공사의 직원들의 답변은 일괄적이지 않았나 보다. 그러다 보니 정확한 안내를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안내를 받은 사람이 생겨난 것이다.
"참 대단한 프로 불편러네."
폴란드 항공사의 업무 혼선에 대해 정부에게 사과를 하라니 어이가 없고, 공지를 22시 예약 가능으로 올렸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전에 항공권을 구매했다며 '왜 사전에 공지를 올렸냐'며 따지는 모습에 묵직한 욕지거리가 목에 걸린다.
아마도 그동안 취소되고 연기된 항공권의 소지자에게 우선권을 주다 보니 몇몇 사람들은 정확한 안내를 항공사로부터 받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공지사항을 미리 공지했다고 따지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니? 사전에 미리 올리는 것이 공지야!"
문제의 상황이나 결정의 순간이 오면 그 사람의 의식은 행동으로 표출된다. 해외여행자나 유학생들의 입국을 막자는 사람들도, 내가 먼저 입국을 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각자의 생각이나 입장들은 있겠지만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자신들의 생각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이기적인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국경 폐쇄된 상태에서 자국민들도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감염 외국인들이 몰려든다며 해외입국을 막자는 생각은 너무나 엉뚱한 상상이고, 한국으로 들어가는 유학생이나 여행자들이 일시적으로 늘어나겠지만 그 숫자가 무한정이지 않을 테니 곧 줄어들 것이다. 몇몇 해외 입국자들의 무지한 행동들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그런 부류들일뿐이다.
잘못을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질타하면 그만, 배타심만으로 전체를 낙인찍는 행위는 인종차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예측 가능하고, 지속성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를 하고 관리를 할 것인지 해결책을 찾으면 최선인 것이고, 신천지나 몰지각한 사람들처럼 예측할 수 없는 발생 변수들에 대해 법만으로 부족하다면 사회적 규범 내에서 강제나 질타를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