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75일 / 맑음
고르데예브스키-바르나울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가기 위해 지나쳐야 하는 도시 바르나울로 들어간다. 카자흐스탄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노보시비르스크로 갈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한다.


이동거리
91Km
누적거리
11,827Km
이동시간
5시간 02분
누적시간
852시간

 
P256도로
 
P256도로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고르데예
 
폴코브니
 
바르나울
 
 
921Km
 
 

・국가정보 
러시아, 모스크바
・여행경보 
-
・언어/통화 
러시아어, 루블(1루블=18.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0기가, 7,000원
・전력전압 
◦2구220
・비자정보 
무사증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7(495)783-2727

 
새벽까지 잠을 못 잔 탓에 피곤한 아침이다.

아침 이슬이 내려앉아 텐트가 젖어있고, 간밤에 피난을 왔던 마르코 커플은 아침 일찍 일어나 있다.

"하이."

강가를 잠시 산책하는 동안 월터도 잠에서 깨어난다.

"사비, 바르나울 호스트의 집으로 갈 거야?"

"아니, 게스트하우스에서 쉬고 싶어. 호스트의 집이 좋은데 편하지가 않아. 영어도 피곤하고."

"응. 여기 좋은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350루블."


월터가 마르코 커플과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의 정보와 현금을 교환하는 동안 빠르게 짐들을 정리한다.

"사비가 지금 담배가 필요해. 우리는 이제 가야 해."

마르코 커플과 헤어지고 슈퍼를 찾아 마을로 들어간다.

흙길과 비포장 길이 이어지는 시골의 작은 마을이다.

동네의 작은 슈퍼에서 콜라와 요거트를 고르는 사이 월터는 조용히 빵과 과일 같은 것을 산다.

작은 요거트에 월터의 시리얼을 넣어, 빵과 함께 아침을 해결한다. 슈퍼 앞에 앉아 아침을 먹는 동안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친절하게 말을 걸며 인사를 한다.

11시 반이 넘어 바르나울을 향해 출발한다.

작은 마을을 빠져나와.

다시 P256 도로에 접어들고 내가 선두에 서서 길을 이끈다.

한 시간이 지나고 업다운이 반복되며 다시 월터가 길을 이끈다.

계속 이어지는 메밀밭을 배경으로 빠르게 거리가 줄어들고.

바르나울까지의 거리가 반으로 줄어든다.

언덕을 오르면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 월터.

"월터, 오르막이 영어로 뭐야?"

"스팁."

"스팁?"

"프, 프."

"스팁프"

"프, 프."

"우쒸 적어 봐."

"steep."

"그럼 내리막은?"

"down steep."

"아하 그런 거야?"

"인클라인, 디클라인."

"인클라임?"

"라인, 화이트라인. 라인!"

"아하 라인! 인클라인, 디클라인!"

"응. 비지니스 토킹이야."

다시 긴 오르막이 나타나고 월터는 완전히 사라진다. 천천히 나의 속도대로 길을 이어가고.

휴게소 같은 곳에서 월터가 기다리고 있다.

"밥 먹고 갈까? 저기엔 고기가 있을 거야."

바르나울로 들어가는 인터체인지를 앞두고 길 건너편 휴게소에서 허기를 달래기로 한다.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쉬는 사이 한 여성이 다가와 월터에게 말을 걸며 뭔가 이야기를 한다.

"사비, 리포터야."

러시아 기자는 여행의 경로 같은 것을 묻고 월터와 나의 사진을 찍어간다. 월터가 대화를 하는 동안 중국 내몽골 쑤이터우기에 도착하여 머물고 있는 파박님의 소식을 쑤니터우기의 친구들이 위챗으로 보내온다.

"너의 친구는 우리와 점심을 먹고 있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보내는데 월터가 나를 부르며 시원한 맥주병을 건네준다.

"뭐야?"

"그들이 주고 갔어."

"예!!!"

"저기에 고기가 있을 거야. 쇼핑하고 와."

"넌?"

자신은 괜찮다는 월터를 대신해 휴게소의 식당으로 들어간다.

"유레카!"

갈비와 닭고기 꼬치를 월터의 몫까지 사든다.

"한국 사람은 혼자는 안 먹지."

휴게소의 직원에게 비닐봉지를 얻어 음식을 포장해서 월터와 하나씩 나눠먹는다.

고기를 들고 흔들며 웃자 월터는 가격을 물어본다.

"몰라."

맛있게 고기를 먹고 조금의 돈을 보태려는 월터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손사래를 치니 월터는 한국어로 인사를 한다.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인터체인지에서 바르나울까지 20km 정도의 거리다. 조금 넓어진 갓길을 따라 바르나울을 향해서 간다.

"인증샷 좀 찍자."

사진을 찍는 사이 월터는 다시 시야에서 사라진다.

잠시 후 도로변에서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월터를 지나쳐 천천히 길을 따라간다.

바르나울로 들어가는 다리를 앞두고 월터가 나를 불러 세운다.

"사비, 나 호스트를 바꿔야 해.

"왜?"

"호스트가 지금 다른 도시에 있데. 80km나 떨어진 곳에."

도착일과 시간을 알려주며 호스트의 집으로 가는데 호스트가 다른 도시로 외출을 나간 것이다.

도로변에 앉아 다른 호스트에게 연락을 하고, 잠시 후 다른 호스트가 다행히 연결된다.

바르나울로 들어가는 오비강을 건너고.

"사비, 너는 이 길을 따라가다 좌회전을 하고 나는 여기서 우회전을 해야 해."

"응. 난 이틀 동안 쉬고 카자흐스탄으로 갈 거야."

"오케이. 저녁에 맥주 마실 건데. 같이 마실래?"

"알았어."

월터와 헤어지고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서 이동한다.

비스크보다 훨씬 커 보이는 바르나울의 모습에 약간 흥분감이 느껴진다.

"천천히 둘러봐야지."

초입에 멋진 기념탑이 서있고, 트램이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의 모습이 새롭다.

도로는 좁고 혼잡하지만 예쁜 목조 건물과 현대식 건물들이 뒤섞여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시내의 풍경을 천천히 감상하며.

월터가 찾아놓은 오래된 목조 건물의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다.

나무문을 열고, 나무 계단을 오르자 마음까지 넉넉하게 만들어주는 인상이 좋은 할머니가 손주를 맞이하는 듯한 표정으로 인사를 한다.

"잠잘 수 있어요?"

"오우, 지금은 방이 없어. 내일 오후에 방이 비는데 어떻게 하지?"

"히잉."

"괜찮아. 내가 다른 호스텔을 알려줄게."

천천히 다른 게스트하우스의 위치를 자세히 설명하는데도 길이 너무 복잡하다.

"아니야. 내가 전화를 해 볼게."

할머니는 다른 곳에 전화를 해서 방을 잡아주려 했지만 그곳도 방이 없는 모양이다. 바르나울에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여러 군데 검색이 되어 이곳이 아니어도 큰 어려움 없이 다른 곳을 찾을 것 같고, 호텔도 여러 곳이 있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나는 너를 좋아해. 정말 아쉽다."

할머니는 끝까지 마음을 써주며 포근하게 웃어준다. 너무나 좋은 환대다.

호스텔의 계단에서 다른 숙소를 검색하는 동안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젊은 남자가 호기심을 갖고 말을 건넨다.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 자전거에 트러블이 없는지 묻더니 바이크 샵을 운영한다고 말한다.

"뭐 괜찮아. 나도 정비를 할 수 있어."

"바르나울에서 자전거 문제가 생기면 연락을 줘."

남자와 사진을 찍으며 인스타그램을 교환하고 헤어진다.

다른 게스트하우스를 찾기 위해 언덕을 오르는 동안 대학교처럼 보이는 석조 건물도 보이고.

작은 석조 건물들이 도로변에 들어서 있다.

바르나울 호텔의 건너편 도로변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를 찾고.

작지만 깨끗한 게스트하우스, 쉽게 체크인을 하고 샤워와 세탁을 한다.

"사비, 잘 도착했어? 저녁에 내 호스트와 맥주 마실래?"

"아니, 오늘은 좀 쉴래. 내일은 괜찮아."

"나는 내일 시내를 구경하고 노보시비르스크까지 기차로 갈 거야. 그리고 카자흐스탄까지 5일 정도 자전거, 알마티까지 기차로 갈 생각이야."

"음, 나는 낼 쉬고 모레 카자흐스탄으로 갈 생각이야."

"카자흐스탄도 몽골처럼 빈약할 거야."

"맞아. 힘든 여행이 될 거야. 내일 보자."

자전거는 숙소 앞 계단 근처에 자물쇠를 걸어 잘 보관을 하고.

숙소의 아저씨가 알려준 식당으로 갔지만 문이 닫혀있다.

작은 도로를 건너 전쟁기념 공원을 산책하고.

"부모, 형제, 가족, 사랑하는 사람.."

전쟁의 포화 속에서 가슴에 묻어야만 했던 사람들의 이별, 슬픔, 그리움.. 모든 것을 주지 못한 감정의 아쉬움 같은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가족이 너무나 괴롭고 괴롭고 고통스럽다.

공원 건너편에서 KFC를 발견하고.

울란바토르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먹었던 할배네 치킨과 햄버거.

어렵지 않게 주문을 하고, 깨끗하게 해치운다.

극장이 있는 건물인지 젊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간이고, 신체 비율이 이상한 예쁜 인형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정말 러시아에 왔군!"

KFC와 함께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살아있는 인형들의 모습에 잠시 가라앉았던 기분이 되살아 난다.

"여행 중이잖아. 괜찮아."

숙소에 돌아와 자료를 정리하며 휴식한다. 파박님은 쑤니터우기의 친구들이 잘 대접을 해준 것 같다.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 보내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오늘 같은 날 함께 백주를 마시며 웃고 떠들었으면 좋겠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다.

게스트하우스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 편하게 쉴 수 있다.

"헤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가게로 와 도와줄게. 무료다!"

"내일 시간이 되면 놀러 갈게."

Izbar의 앞에서 만났던 자전거샵의 친구가 인스타그램의 메시지를 보내온다.

내일 시내를 둘러보고 잠시 놀러 가야겠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174일 / 맑음
비스크-고르데예브스키
카우치서핑의 호스트 세미온의 집을 떠나 바르나울로 향한다. 바르나울까지의 거리가 있어 오늘은 월터와 함께 캠핑을 해야할 것 같다.


이동거리
88Km
누적거리
11,736Km
이동시간
5시간 21분
누적시간
847시간

 
P256도로
 
P256도로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비스크
 
불라니카
 
고르데예
 
 
830Km
 
 

・국가정보 
러시아, 모스크바
・여행경보 
-
・언어/통화 
러시아어, 루블(1루블=18.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0기가,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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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알람과 함께 잠에서 깨어 핸드폰을 열었지만 네트워크가 끊겨있다.

"월터, 네트워크가 안 된다. 유심을 살 때 30일이라고 했는데 15일짜리인가 봐."

"아마도 그럴 거야. 핸드폰 가게에 들르자. 근데 너 어제 코 엄청 골았어!"

"정말?"

코골이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았는데 어제의 라이딩, 세미온의 집에서 제대로 휴식을 하지 못해 피곤했던 모양이다.

짐들을 정리하고 세미온을 깨우고 집을 나선다. 처음 경험한 카우치서핑의 헤어짐은 심플하고 쿨하다.

"잘 있어. 세미온."

우선, 슈퍼에 들러 월터가 사온 요거트에 시리얼을 넣어 아침을 대신한다.

월터는 매일 아침을 시리얼 같은 것으로 해결한다.

도로변에 있는 핸드폰 그림의 간판을 보고 들어갔지만 데이터 충전을 할 수 없고.

MTC 대리점으로 들어간다.

유심을 샀던 코쉬아가츠의 가격표와 뭔가가 다르다.

핸드폰 매장의 담당자는 영어를 못했지만 바로 구글 번역기를 꺼내어 사용하는 센스를 발휘한다.

"152루블을 충전해야 합니다. 저쪽 기기에서."

"도와주실래요?"

핸드폰 번호를 누르고 200루블을 충전하자 네트워크가 다시 활성화된다.

코쉬아가츠에서 구매한 데이터 무제한 유심칩은 15일 사용 기준인 것 같다.

"사비, 아마도 15일마다 충전이 필요할 것 같아."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핸드폰을 충전하고 복잡한 비스크의 시내를 빠져나온다.

P256 도로에 들어서 잠시 숨을 고르고.

"오늘도 지루한 도로야."

월터는 이어폰을 꺼내며 도로를 달릴 땐 작게 음악을 듣는다며 말을 한다.

"나도 그래."

각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출발한다.

내가 선두에 서서 도로를 따라가고 푸른 콩밭과 밀밭이 도로변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그리고 하얀 메밀밭이 넓게 이어지며 반복된다.

밀밭.

메밀밭.

야생화의 들녘과.

해바라기밭이 반복되어 펼쳐진다.

두 시간 가까이 라이딩이 이어지고.

조금씩 지쳐가며 앞서가는 월터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 간다.

점심을 먹을 적당한 장소를 찾으며 달려가던 월터는 시의 경계를 알리는 구조물의 그늘에 자리를 잡고 기다린다.

눈이 부신 메밀밭.

"해바라기 사진을 못 찍었다."

월터의 먹거리를 따라 어제 사두었던 식빵과 땅콩잼을 꺼내어.

"이렇게 먹는단 말이지."

월터와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월터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여자 친구를 만날 계획이다. 월터의 여자 친구는 변호사라 항상 일이 많고 바쁘다고 한다.

"난 매일 그녀를 기다리고 음식을 만들어야 해."

"한국 사람들의 삶도 매우 바쁘다. 일, 일, 일."

"맞아. 내가 본 한국의 남자들은 불쌍하다. 공부해야 하고, 군대에 가야 하고, 직장에 들어가야 하고. 그건 불공평하다."

"응. 나는 한국의 젊은 친구들이 너처럼 세상을 여행하기를 바란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부모에게 너무 의존한다. 부모님의 집, 부모님의 돈..."

"그래, 맞아. 잘 봤어."

"결혼했어?"

"아니, 한국 여자들은 날 별로 안 좋아해. 너처럼 금발도 아니고 파란 눈도 없거든."

"괜찮아. 러시아 워먼이 있잖아."

삼일 동안 월터가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그의 생각과 가치관이 건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월터가 생각해두었던 저수지 옆의 야영지까지 20km 정도를 남겨두고, 월터는 도로를 벗어나 마을 길을 따라 이동하고 싶어 한다.

"마을의 철도길을 따라 비포장길이 있을 것 같아. 메인 도로는 너무 지루해."

작은 시골 마을을 지나.

비포장의 산길을 따라갔지만 월터가 생각했던 길은 숲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이다.

"이쪽으로는 못 갈 것 같은데. 어때?"

"네가 선택해."

"음, 다시 메인 도로로 가는 것이 좋겠어."

P256 도로로 돌아가기 위해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을 따라간다. 많은 파리들이 땀 냄새를 맡고 몰려든다.

"웰컴투 몽골리아!"

"하하하. 정말 몽골 같잖아."

업다운이 계속 반복되는 도로 탓에 지쳐갔지만.

눈꽃처럼 느껴지는 메밀밭의 풍경은 너무나 좋다.

길게 이어지는 오르막길.

"아, 싫어. 이제 그만!"

월터는 저수지를 찾아 산길을 향해 들어가고.

하얀 메밀꽃 밭의 향기가 더욱 진해진다.

"월터, 프리덤 해 봐!"

"왓?"

"감성이 메마른 놈!"

월터가 메밀꽃 밭을 지나 숲으로 들어가는 동안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앞서가던 월터가 작은 언덕을 앞두고 지도를 보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아마도 이쪽으로 가면 바로 저수지가 나올 거야."

월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30미터쯤 이동하자 들꽃들 사이로 작은 저수지가 나온다.

주변을 둘러보던 월터는 물이 깨끗하지 않아 수영을 할 수 없다며 실망스러워한다.

작은 나뭇가지들을 모아 휘발유를 살짝 뿌린 후 모닥불을 붙인다.

저수지 옆이라 모기와 파리가 귀찮을 정도로 달라붙는다. 서둘러 텐트를 설치하고 저녁을 준비한다.

"사비, 뭘 만들 거야? 난 밥을 할 거야."

"글쎄, 짜장 라면을 먹어 볼까."

만저로크에서 얻은 오이도 준비하고 라면을 끓이는 동안 월터는 몽골에서 산 쌀로 능숙하게 밥을 짓는다.

월터에게 휘발유 버너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며 라면을 끓이고, 유브게니에게 선물 받은 러시아 군대식의 고기 통조림도 꺼낸다.

월터의 밥과 짜장라면 그리고 러시아 군대의 전투식량으로 저녁상이 차려진다.

"월터, 좋은 장소, 좋은 음식 그리고 좋은 친구와 함께 하니까 좋다."

"맞아, 오늘 저녁은 배고프지 않아!"

맛있게 식사를 하고 식수가 부족하여 유브게니의 전투식량 중 물 정수제를 사용해 보기로 한다.

"이걸 넣고 기다리라는 거지."

"정말 좋네!"

"사비, 뭐 할 거야?"

"일기를 좀 쓰고 잘 거야."

"난 책을 좀 읽고 잘게. 잘 자."

텐트의 내외피의 공간에 파리들이 달라붙어 요란한 소리를 냈지만 텐트 안에는 모기와 파리가 들어오지 않는다.

겨우 한두 개의 안테나가 활성화되어있는 네트워크로는 사진 전송이 힘들어 라디오와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사비, 자전거 여행자들이 방금 지나갔어."

"그래? 여자야?"

"남자와 여자였어."

"어, 관심 끊어!"

자정이 넘어서며 텐트 주변으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더니 나이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텐트 주변을 배회하며 소곤거리는 소리가 30여 분이 이어지자 월터가 조용히 해달라고 말을 한다.

몽골에서도 그랬지만 텐트 밖 사람들의 소리에 경계를 하면서도 텐트를 건들지 않는다면 떠날 때까지 그냥 텐트 안에 있었다.

굳이 밖으로 나가 말을 섞고 귀찮아지는 것보다 조용히 구경을 하고 떠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낫다.

영어를 못하는 아이들과 몇 마디가 오가자 아이들의 반응이 활발해진다.

헬로, 와이, 프렌드.. 그리고 알아듣지 못할 러시아 말소리의 톤이 높아져 간다.

"사비, 일어나 있어?"

"어."

월터가 텐트 안에서 아이들에게 말을 하는 동안 텐트 밖으로 나간다.

13~14살 정도의 어린아이 두 명이 나를 보더니 '프렌드'하며 말을 건넨다.

"알았으니까 집에 가! 빨리."

아이들에게 다가가려 하자 알았다는 제스처를 하며 오토바이를 몰고 가려고 한다.

"사비, 밖으로 나갔어?"

"어. 애들 두 명이야."

월터가 나오고 그의 손에는 작은 과도가 들려있다. 오토바이를 몰고 가려던 아이들은 월터를 보더니 다시 '할로우', '프렌드'를 하며 말을 섞는다.

"아우, 너네는 좀 맞아야겠다."

모닥불을 피웠던 자리로 가서 장작으로 쓰려던 몽둥이를 들고 아이들에게 다가가자 월터와 악수를 청하던 아이가 월터의 자전거와 텐트를 발로 차고도망을 친다.

"야! 이 @$$%#%#%//$%!"

오토바이는 저수지의 뚝방길을 따라 건너편으로 사라지고, 오토바이의 불빛을 주시하며 기다린다.

"사비, 다시 오겠지?"

"어쩌면.. 조금 전에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놓을 걸 그랬네."

"좋은 생각인데, 다시 오면 그때 찍자."

"어디를 가나 15~23살짜리들은 위험해. 특히나 술에 취한 아이들."

"맞아."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1시다. 월터가 옷을 입는 동안 오토바이의 불빛을 지켜보니 저수지의 건너편에서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마도 저녁 무렵 우리를 지나쳤던 자전거 커플의 캠핑지에 가서 해코지를 하는듯싶다.

"저기, 여자가 있는데. 러시아인이었어?"

"아니. 유러피안 같았어. 어디서나 여자 여행자는 위험해."

함께 있는 남자가 있고 아이들이 어려서 큰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불빛을 보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혹시나 여자의 비명소리 같은 것이 들리면 그곳으로 달려갈 생각이다.

20분 정도가 지나고 높은 여자의 언성과 함께 오토바이의 불빛은 저수지를 따라 사라진다.

"월터, 갔나 봐."

"또 돌아올 거야. 어쩌면 칼 같은 것을 들고 돌지도 몰라."

"뭐. 그럴 수도. 어쨌든 들어가자. 나는 지금 잠을 안 잘 거니까."

"나도."

오토바이 소리가 나는지 경계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2시가 훌쩍 넘어가고, 월터의 텐트 쪽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사비?"

"왜?"

텐트를 열고 내다보니 저수지 건너편에 있던 자전거 커플이 짐들을 챙겨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그들은 월터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고, 내 텐트의 옆에 텐트를 친다.

"이제 자자."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173일 / 흐림
고르노 알타이스크-비스크
안드레와 월터를 만나게 된 고르노 알타이스크를 떠나 바르나울을 향해서 떠난다. 바르나울까지 월터와 함께 여행하기로 한다.


이동거리
105Km
누적거리
11,648,Km
이동시간
5시간 10분
누적시간
842시간

 
P256도로
 
P256도로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고르노
 
비스트리
 
비스크
 
 
742Km
 
 

・국가정보 
러시아, 모스크바
・여행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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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 루블(1루블=18.5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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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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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40기가,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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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크로 떠나는 날, 오전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안드레가 어제 오늘은 맑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틀간 풀어놓은 짐들을 정리하는 동안 월터는 출발 준비를 모두 끝낸다. 자전거의 무게가 놀랍게도 45kg 밖에 안 된다는 월터의 패니어는 너무나 심플하다.

"왜, 내 건 이렇게 무겁지?"

내 자전거를 들어보던 월터와 안드레는 10kg 정도 차이가 날 것 같다고 하지만 15kg 이상은 무거운 것 같다.

아쉽지만 요가 마스터이자 채식주의자인 안드레와 헤어지고 비스크로 향한다.

"안녕, 안드레!"

길을 나서자마자 빗방울이 강해져 레인팬츠와 땡땡이 우의를 입는다. 비를 맞아도 괜찮지만 중국에서의 경험이 지긋한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모양이다.

고르노 알타이를 빠져나오는 언덕을 넘고.

P256 도로에 다시 들어선다.

한국에서도 누군가와 속도를 맞춰 라이딩을 한다는 것이 조금은 불편한 것이었는데, 오늘의 라이딩은 어떨지 궁금하다.

월터는 비스크를 지나 바이나울 그리고 대도시 노보시비르스크까지 간 후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갈 계획이고, 나는 아직 확실한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바르나울에서 카자흐스탄으로 바로 넘어갈지 아니면 노보시비르스크를 지나 옴스크까지 60일의 비자 기간을 사용하며 첫 번째 러시아 여행을 길게 이어갈지 결정을 못 한 것이다.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의 겨울을 생각하면 시간을 아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썬!"

한 시간을 달려 비가 멈추고 햇볕이 들자 월터는 자전거를 세운다.

우의들을 벗기 위해 자전거를 세우려고 낑낑거리자 월터가 자신의 자전거를 가리키며 이것이 필요하겠다고 한다.

핸들이 돌아가는 것을 막아주는 브라켓인데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다.

월터의 여행용 자전거는 내장기어를 장착한 고무벨트 체인의 자전거로 앞쪽에 라이트를 충전할 수 있는 장치까지 갖춰져 있다.

내장기어라 고장이 나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겠지만 큰 문제만 없다면 효율적일 것 같다.

트러블이 일어날 경우의 수가 줄고, 잡소리도 없고, 오일도 필요 없고, 부품이 마모되어 교체할 필요도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많은 공구와 짐들이 줄어든다.

하지만 긴 여행이라면 가장 보편적인 부품을 사용한 자전거가 번거롭지만 더 좋은 선택일 것 같다.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어떻게 내장 기어를 정비할 수 있겠는가.

100km 정도의 비스크까지 빠르게 달려간다. 오르막길에서는 월터를 따라가기가 버겁지만 일반적인 경사 정도는 크게 어렵지 않다.

카툰강을 따라 큰 풍경의 변화 없이 작은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평지의 길이 계속 이어진다.

고르노 알타이스크에서부터 도로변의 풍경은 조금 지루할 만큼 단조롭다.

1시, 고르노 알타이스크를 출발한지 2시간 30분 만에 45km를 달리고 도로변 작은 슈퍼 앞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슈퍼에서 시원한 콜라를 사 들고, 월터는 요거트 하나를 산다.

어제 안드레와 슈퍼에서 사놓은 빵으로 점심을 하고.

월터는 식빵에 땅콩잼과 초콜릿 잼을 발라 먹는다.

평상시 식빵을 잘 안 먹던 식습관 때문에 여행 도중 허기를 채우는 방법들이 궁금했는데, 월터를 관찰하면 좋은 해결책을 찾을 것 같다.

점심을 먹으며 월터는 비스크에 있는 호스트와 연락을 하고, 나는 비스크에서 보낼 숙소를 검색한다.

"비스크 숙소는 비싸네."

고르노 알타이스크보다 크지만 소도시에 불과한 비스크의 숙박료는 30,000원 정도다.

"월터, 카우치서핑은 어떻게 쓰는 거야?"

"음, 먼저 정보들을 입력해야 해."

"그래, 그럼 네가 써!"

월터는 필요 정보들을 입력하며 이것저것을 물어본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호스트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 것인지 등등 낯부끄럽고 귀찮은 나에 관한 사항들이지만 호스트에게 꼭 필요한 정보들이다.

"어. 고기, 술, 여자.. 알아서 적어주면 안 될까?"

"어. 안 돼! 아니, 내가 할게."

"하하하. 하여튼 이런 것을 발라 먹는다는 말이지."

월터의 먹거리들을 살펴보는 동안 월터가 갑자기 소리를 친다.

"사비, 바르나올의 내 호스트가 너도 함께 와도 된대!"

"정말!"

"응. 방금 메시지가 왔어. 굿 가이야!"

카우치서핑으로 비스크의 호스트 세미온에게 연락을 하고 다시 길을 출발한다.

도로변의 휴게소 같은 곳에서 잠시 구경을 하고.

꿀과 허브차 같은 것을 주로 팔고 있다.

월터는 100루블에 작은 꿀 한 병을 산다. 가게 주인은 200루블을 달라고 했는데 100루블을 들고 주저주저하고 있으니 그냥 가져가라며 웃는다.

"이상하지만 좋은 방법인데."

휴게소 뒤편으로 해바라기 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다시 길을 달려 비스크는 가까워지고.

넓은 평야에 해바라기나 밀 같은 것이 심어져 있다.

"오, 비스크!"

비스크 초입, 숯불구이를 하고 있는 음식점을 보더니 월터는 자전거를 세운다.

"먹고 싶어?"

"당연히, 하나만 먹자!"

작은 카페의 테이블은 모두 차 있었고, 입구에 세워진 냉장고의 시원한 맥주가 눈에 들어온다.

"월터, 맥주 안 마실래?"

"노! 비싸잖아."

냉장고의 캔맥주는 200루블 정도니 슈퍼나 맥주가게에 비하면 비싼 편이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다 다시 월터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

"딱, 한 캔만?"

"좋아!"

"예!!!"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있으니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숯불구이가 나온다.

200루블짜리 맛있는 닭고기다.

작고 좁은 다리의 건너편으로 비스크의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다리 건너 비스크 초입의 멋진 벽돌 건물, 러시아 여행의 머릿속 풍경이 조금씩 눈앞에 펼쳐진다.

"이제 러시아에 온 것 같네."

레닌의 동상이 세워진 광장 앞 커다란 회전 교차로를 지나.

비스크의 호스트 세미온의 집을 찾아간다. 길게 이어지는 공원을 따라 낯선 러시아의 풍경들이 이어지고.

복잡한 도로를 따라가던 월터는 이상한 숲길로 들어간다.

"이길이 아닌데."

다시 길을 잡고.

비스크 시내의 외곽까지 깊숙이 들어간다.

아주 오래된 궤도전차 트램이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월터는 별 관심이 없다.

"나는 처음 본다고."

오래된 작은 시내길을 돌아 세미온의 아파트에 도착한다.

나무와 풀이 울창하게 자라난 낡은 벽돌 아파트 단지다.

5분 정도 후, 밖에 나가있던 세미온이 아주 작은 아이와 함께 반갑게 맞이해준다.

"마이 프렌드, 웰 컴!"

몽골의 낡은 아파트와 비슷한 구조, 비슷한 느낌이다.

1층 계단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짐들을 옮긴다. 화장실과 주방, 거실과 방이 하나 있는 세미온의 집이다.

거실 한편에 인도 여자로 보이는 누군가의 사진과 제단 같은 것이 놓여있어 이색적이었으나 물어보지는 않았다.

샤워를 하고 세미온은 러시아에서 먹던 수프를 내어주고.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슈퍼에 가자고 한다. 아파트 단지 내 놓여있는 러시아의 올드카들이 흥미롭다.

러시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작은 올드카들은 몽골에서 보던 중고차와는 다른 느낌이다.

클래식한 느낌이 아주 좋고 타보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처음 보는 트램도 자세히 구경해 보고.

내일 라이딩을 하며 먹을 비상식을 구매하고 세미온의 집으로 돌아온다.

세미온은 우리를 위해 저녁으로 바베큐를 준비한다. 숯불을 준비하고.

양념을 하고 냉장고에 숙성을 시킨 돼지고기를.

숯불에 굽는다.

"아, 나 지금 행복해지려고 해."

잘 구워진 돼지고기는 길게 세로로 자른 오이, 잘게 썬 양파와 함께 먹는다.

오이와 양파를 버무린 소스가 독특하고 맛이 좋다.

식사를 하는 동안 음악을 좋아하는 세미온은 유튜브의 오래된 팝송을 아주 크게 틀어놓는다.

"뭔가 아주 독특한 친구네."

러시아 군인인 세미온은 한국의 친구가 있어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 친구가 비스크에 살아?"

"응. 여자, 남자 친구 모두 있어."

"만나볼 수 있어?"

"아니, 그녀는 한국말을 못 한다."

세미온이 말하는 한국 친구는 까레이스키로 불리는 러시아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교포 2세나 3세 정도 되는 사람들인가 보다.

영어를 잘 한다는 세미오온의 친구가 11시쯤 방문을 하여 월터와 긴 대화를 나누고 돌아간다.

군인이라 주둔지를 벗어나 여행을 갈 수 없다는 얘기, 돈이나 직업에 대한 얘기 등등이 이어지는 동안 피로가 몰려든다.

웜샤워나 카우치서핑은 현지의 사람들과 깊은 스킨쉽을 할 수 있지만 휴식의 시간이 많이 줄어드는 것 같다.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하기 때문에 성향이나 취미 등등이 서로 맞아야 할 것 같고,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공통의 언어도 필요하다.

"쉬고 싶은데.."

세미온의 친구가 떠나고, 거실에 놓인 커다란 침대(소파)에서 월터와 함께 잠이 든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172일 / 흐림
고르노 알타이스크
피를 맞으며 라이딩을 한 탓에 피곤함이 남아있다. 고르노 알타이스크에서 하루를 더 머물며 휴식을 취할 생각이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11,543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837시간

 
월터
 
맥주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고르노
 
고르노
 
고르노
 
 
637Km
 
 

・국가정보 
러시아, 모스크바
・여행경보 
-
・언어/통화 
러시아어, 루블(1루블=18.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0기가, 7,000원
・전력전압 
◦2구220
・비자정보 
무사증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7(495)783-2727

 
어제 초르토브 팔레츠를 다녀오느라 비를 맞고 피곤하여 하루를 더 머물기로 한다.

몽골의 오초르에게 전화가 와서 짧게 통화를 하고.

요거트로 아침을 대신한다.

"안드레, 자전거를 세차해야겠어."

안드레는 게스트 하우스에 있는 양동이와 수세미를 찾아서 건네준다.

"지금은 힘들어. 2시에 할래."

"헬로우, 만저로크에서 너의 이야기를 들었어."

"하이, 어디서 왔어?"

"네델란드!"

키가 큰 금발의 젊은 남자가 게스트하우스에 투숙을 하며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안드레, 자전거 여행하는 네델란드인 월터야."

월터는 17개월 정도 한국을 비롯해 인도, 네팔, 동남아시아, 일본, 중국, 몽골을 거쳐 러시아로 넘어왔다.

비행기나 기차 등을 이용하기도 해서 그동안 18,000km를 자전거로 달렸다며 속도계의 누적데이터를 보여준다.

"사비, 넌 얼마나 달렸어?"

"10,000 정도."

안드레는 나의 라이딩 거리를 묻더니 '겨우?'라는 표정을 지으며 웃는다.

"왜? 10,000km가 어때서?"

옆에서 월터가 5개월 동안 10,000km는 매우 빠르다고 설명을 하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월터가 짐들을 모두 정리하자 안드레는 함께 점심을 먹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월터는 어제 먹다 남은 음식이 있다며 코펠에 남은 마카로니 파스타를 보여준다.

"난 이걸 마저 먹어야 해. 저녁을 같이 먹자."

"사비, 어떤 식당으로 갈래?"

"고기 식당!"

안드레와 함께 첫날 갔었던 식당으로 가서 닭고기와 함께 생선도 추가해 본다.

채식을 하는 안드레의 식사 속도는 아주 느리고 느긋하다. 천천히 소화를 시키며 식사를 하는 안드레와 달리 육식을 주로 하는 나의 접시는 순식간에 비워진다.

안드레와 공원을 산책하며 숙소로 돌아가고.

해바라기씨를 던져주는 사람을 따라가며, 공원의 비둘기는 바닥에 뿌려진 해바라기씨를 깨끗하게 먹어치운다.

"사비, 이것 봐. 깨끗해!"

슈퍼에서 필요한 음식들을 사고, 숙소에 돌아와 자료들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고.

이른 저녁, 월터는 저녁을 먹자며 안드레를 찾는다. 자전거를 타고 왔으니 배가 고플 것이다.

안드레, 월터와 블리니를 파는 식당으로 들어가고, 월터는 팬케잌이 주메뉴인 식당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하다.

안드레가 여러 가지 설명을 해보지만 배고픈 여행자에게 팬케이크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것이 사실이다.

숙소에 가서 음식을 더 먹어야겠다는 월터는 맥주를 조금 마시자며 제안을 한다.

"사비, 맥주를 사서 게스트하우스에서 마실래?"

"좋아!"

두 사람을 따라 근처에 있던 작은 건물에 들어가니 여러 개의 맥주 밸브가 설치되어 있는 맥주 가게이다.

"이건 또 뭐야?"

러시아의 슈퍼에서 생맥주를 팔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맥주만 파는 가게는 처음 본다.

여러 가지 맥주 중 하나를 선택해서 안드레가 주문을 해주고 약간의 육포를 사든다.

"한국에서 맥주는 비싸다."

월터의 말대로 1리터의 생맥주가 100루블 정도이니 한국의 500cc의 맥주보다 싼 가격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맥주 파티를 준비하는 동안 옆 테이블에서 저녁을 먹던 어린 러시아 여자도 합석을 하고, 게스트하우스의 나타샤도 합석을 한다.

월터는 여행을 많이 해서 그런지 나에게 말을 할 때 쉬운 문장을 구사하고, 코리안 잉글리쉬라며 내가 하는 말도 알아서 잘 이해한다.

치아 교정기를 끼고 있는 러시아 여자는 말이 굉장히 빠르고 흘리는 듯한 발음이라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월터와 러시아 여자는 영어로, 안드레와 러시아 여자는 러시아어로 대화를 하는 동안 머리가 아파온다.

월터는 여행에 필요한 어플들을 여러 개 알려준다. 카우치서핑, 왓츠앱, 아이오버랜드.

카우치사핑은 웜샤워와 비슷한 여행자와 호스트를 연결해 주는 어플이고, 왓츠앱은 유러피안들이 주로 사용하는 메신저 그리고 아이오버랜드는 캠핑장소, 숙소, 식수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도앱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들이 오가는 동안 월터는 한국에서 만난 호스트 루나와 통화를 하더니 전화기를 건네준다.

루나와 여행에 대해 짧게 통화를 하고, 맥주가 떨어져 자리에서 일어난다.

"스몰 워킹?"

월터가 다가와 스몰 워킹이라며 손가락으로 걷는 제스처를 하는데 잘 모르겠다. 월터가 돌아가고 안드레가 다가와 다시 스몰 워킹이라며 무언가를 묻는 제스처를 한다.

"Take a walk?"

"Yes, do you want?"

안드레와 월터의 대화를 들어보면 이상한 말들을 한다. '쭈쭈'라는 표현을 하는데 약간이라는 의미 같고, Maybe라는 단어를 정말 많이 사용한다.

"산책을 스몰 워킹이라고 하는구나."

안드레와 함께 고르노 알타이의 밤거리를 걸는다. 맥주 가게도 여러 군데 보이고.

"안드레, 난 러시아 여자가 하는 말은 전혀 이해가 안 돼."

"나도 그래!"

안드레는 러시아 여자의 흉내를 내며 말이 너무 빠르다며 웃는다.

안드레와 함께 공원까지 걸어가 되돌아온다. 11시가 되자 공원의 모든 조명은 꺼지고 기념탑의 횃불만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안드레, 나는 내일 떠나야 해. 고마웠어!"

"응, 이 메일로 가끔씩 연락할게. 러시아말로 써도 괜찮지?"

"그럼. 번역기가 있잖아."

"맞아!"

"카자흐스탄을 지나서 다시 러시아에 오면 너의 동네에 갈게."

"좋아. 우리 동네에서 쉬었다 가."

안드레의 집은 우파와 카잔의 중간쯤에 위치한 소도시 나베레츠니 첼니이다. 다행히 모스크바로 가는 경로에 있어 다시 러시아로 돌아오면 안드레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안드레와 산책을 하고 숙소로 돌아온다. 내일부터 바르나올까지 260km 정도는 네덜란드 친구 월터와 함께 길을 갈 것이다.

러시아에서 계속 좋은 인연들을 만나 즐거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171일 / 비 ・ 18도
고르노 알타이스크-초르토브 팔레츠-고르노 알타이스크
안드레와 함께 초르토브 팔레츠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카툰강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멋진 곳이다.


이동거리
60Km
누적거리
11,543Km
이동시간
4시간 57분
누적시간
837시간

P256
P256
28Km / 2시간 07분
32Km / 2시간 50분
숙소
초르토브
숙소
 
 
637Km

・국가정보
러시아, 모스크바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러시아어, 루블(1루블=18.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무제한, 8,000원
・전력전압
◦2구220
・비자정보
무사증60일/180일내 최대 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7(495)783-2727

 

안드레의 차와 함께 요거트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게스트 하우스를 하루 더 연장한다.

"안드레, 오늘 우체국에 가서 엽서를 보내고, 초르토브 팔레츠에 가자."

"좋아."

우체국에 가던 중 어제 들렀던 작은 자전거 가게에 다시 가보았지만 로드용 튜브는 없다.

"일단 펑크 패치를 샀으니까 괜찮아."

우체국에 들렀지만 엽서를 사 와야 한다고 한다.

안드레와 길을 걷고.

작은 쇼핑몰 내에 있는 문방구에서 알타이의 풍경이 담긴 긴 엽서를 산다.

"멋진데, 나도 하나 사야겠다."

엽서를 보던 안드레도 같은 것을 하나 사든다.

"사비, 자전거 샵에서 자전거를 렌트하고 우체국으로 가자."

"자전거 렌트? 초르토브 팔레츠를 자전거로 가자고?"

"응, 자전거를 빌려서 같이 가자."

안드레는 고르노 알타이스크에서 25km 정도 떨어진 초르토브 팔레츠까지 라이딩을 하자고 한다.

사람들에게 자전거 렌트샵을 물어보던 안드레는 두 정거장 떨어진 곳으로 버스를 타고 가자고 한다.

"좋아, 버스를 타보고 싶었어."

미니버스 크기의 오래되고 커튼이 달린 버스를 타보고 싶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행하는 국가의 버스를 타면 재미있다.

"안드레, 여기 버스는 얼마야?"

"18루블."

"여기도 차비가 싸네."

시내를 관통하는 길이 하나뿐이라서 아무 버스나 타면 된다.

운전석 옆에 이상한 테이블이 있고 버스 안내양이 앞에 앉아있다.

러시아 버스는 느긋하다. 손님들이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으면 버스가 출발하고, 조금 후에 안내양이 다가가 현금이나 카드 같은 것을 받아 버스표를 주거나 카드 단말기에 터치를 한다.

"오, 찾아가는 서비스."

중국에서 버스를 탔을 때는 우리나라처럼 뭔가 조급하고 서둘러야 하는 기분이었고, 특히 베이징 버스에 탑승해있는 보안요원들은 굉장히 강압적인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버스는 편안할 만큼 느긋하고 바쁘지 않다.

안드레가 버스 정류장을 하나 지나쳐 내리는 바람에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간다.

그리고 다시 길을 지나쳐 되돌아가고.

"안드레, 죽고 싶어?"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겨우 자전거를 렌트할 수 있는 가게에 도착한다.

자전거 렌탈과 정비를 하는 작은 자전거 가게에서 안드레는 자전거를 빌리며 초르토브 팔레츠로 가는 길을 물어본다.

도로를 따라 25km 정도 이동을 하고, 산의 정상까지 올라가야 한다.

"사비, 길을 알겠어?"

"어, 접수했어!"

정비실 한켠에서 로드용 튜브를 발견한다.

"유레카!"

32C 튜브라서 펑크가 나면 펑크 패치를 붙이기가 조금 나쁘겠지만 이 정도면 훌륭하다.

"이제 안심이 되네."

자전거를 빌린 안드레는 신이 난 듯 상기되어 있다.

"안드레, 난 버스 타고 우체국으로 갈게. 넌 자전거를 타고 와."

두 정거장만 가면 되는 곳인데, 안드레는 버스를 잡고 나를 우체국 앞에서 내려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두 정거장 후에, 운전사와 안내양도 친절하게 우체국을 가리키며 길 안내를 해준다.

작은 도시들의 편안함이란 어디나 똑같은 것 같다.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무엇을 이런 것과 바꾸어 살고 있는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우체국에 도착하자 안드레도 곧 도착하고, 아이처럼 상기된 얼굴로 빨리 오지 않았냐며 즐거워한다.

엽서를 적는 동안, 안드레는 한국, 중국으로 엽서가 가는지 물어보고.

"안드레, 엽서는 당연히 가겠지. 그것이 궁금한 거야? 여직원이 마음에 든 거야?"

한국과 중국으로 두 번째 엽서를 보낸다.

"너도 무사히 잘 도착하기를."

온라인이나 SNS로 쉽게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엽서를 보내는 멋이 조금은 덜하지만 그래도 참 좋다.

필기를 할 일이 없어 삐뚤삐뚤 엉망으로 변해버린 손글씨고, 뭔가 쓸말이 없어 단순한 내용이지만 아련한 감정을 담아 보내는 기분이 든다.

"안드레, 점심을 먹고 출발하자."

어제 안드레가 소개해준 식당은 점심시간이라 대기하는 줄이 길게 서있어서 게스트 하우스 방향의 다른 음식점으로 걸어간다.

"여기는 좀 모던하네."

"사비, 고기?"

"당연한 것을 왜 물어."

식당의 메뉴에는 고기가 없다. 팬케이크 같은 메뉴가 주메뉴인데, 채식을 하는 안드레에게는 팬케이크 안에 들어가 있는 속재료도 많은 고기처럼 보이는 것이다.

안드레는 20년 가까이 요가를 하고 있고, 그래서인지 채식을 한다.

"이건 고기가 아냐! 두 개!"

블리니라고 하는 팬케이크인데 러시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인가 보다. 블리니 두 조각과 함께 수프를 주문해서 먹고, 안드레는 풀과 샐러드를 시켜 후추를 듬뿍 뿌리고, 소금으로 간을 한 후 천천히 오랫동안 식사를 한다.

점심을 먹고 나자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어제도 비를 흠뻑 맞은 탓에 다시 비를 맞는 것이 싫었지만 하루 종일 상기되어 있는 안드레의 얼굴을 보니 초르토브 팔레츠에 안 갈 수가 없다.

"고고싱, 안드레!"

어제 지나왔던 길이라 초르토브 팔레츠로 가는 길은 익숙하다.

패니어를 뗀 빈 자전거라 날아갈 듯 편하고 생활 자전거를 빌린 안드레의 속도를 맞춰가며 빗속을 달린다.

"안드레, 좋냐?"

산 위에 커다란 송신탑이 세워진 곳이 초르토브 팔레츠인 모양이다.

"근데, 저 위를 자전거로 갈 수 있나?"

카툰 강을 건너 초르토브 팔레츠가 있는 산의 둘레길을 빙 돌아 간다.

가는 동안 곳곳에 음식점들에서는 바베큐 냄새가 강하게 마음을 뒤흔들고.

초르토브 팔레츠로 오르는 입구에 도착한다. 역시나 도로변의 카페에서는 바베큐를 비롯하여 맛있는 냄새들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사비, 생선 먹고 싶어?"

다양한 생선을 훈제하여 팔고있는 노점이 신기하여 구경을 하고 있으니 안드레가 물어본다.

"아, 시원한 맥주 한 잔과 함께 먹으면 죽이겠다."

침샘이 폭발한 참을 수 없는 식욕을 가격표를 보며 억누른다.

"kg당 가격인가? 낱개의 가격인가?"

필요한 만큼만 살 수도 있지만 귀찮다 생각하면 귀찮아지는 법이다.

"그냥 가자, 정상까지 얼마나 걸리는지나 물어봐."

노점상의 남자에게 길을 물었지만 '모른다'라고 했는지 남자를 가리키며 안드레는 개구진 웃음을 짓는다.

자갈 길의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고 3~4km 정도 거리에.

차단기가 내려진 초르토브 팔레츠의 입구가 나온다.

입구를 관리하는 듯한 젊은 남자와 대화를 하던 안드레는 자전거를 가지고 더는 올라갈 수 없다고 한다.

"정상까지 4km래. 그런데 이쪽으로 가면 1.5km라는데. 어느 쪽으로 갈까?"

"숏 웨이!"

자전거를 묶어두고 젊은 남자가 알려준 지름길을 따라 산을 오른다.

완만한 산등성이를 따라가는 길에 비해 경사가 지고 미끄러웠지만.

크게 힘든 길은 아니다.

20분 정도 비를 맞으며 완만한 산의 능선에 도착하고 멀리 초르토브 팔레츠가 있는 송신탑이 보인다.

"안드레, 힘들지?"

"괜찮아!"

카툰강이 보이는 능선을 따라 초르토브 팔레츠로 향한다.

빗방울은 조금씩 더 강해지고.

길은 더 미끄러워진다.

그리고 도착한 초르토브 팔레츠.

"안드레, 저기야!"

암석으로 된 산의 정상, 그리고 정상의 옆으로 나선 모양으로 올라간 촛대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와, 겁나게 높다!"

"사비, 사진 찍어줄게."

"아냐, 네가 먼저 가 봐! 넌 결혼도 한 번 해봤잖아."

안드레는 빗물에 젖은 바위의 소로를 따라 조심스럽게 바위에 오르고.

빗물에 젖어 정신을 못차리는 핸드폰의 액정을 부지런히 닦아가며 사진을 찍는다.

"안드레, 이렇게 찍어 줘!"

날씨 때문에 단 한 번뿐인 포토타임, 안드레를 믿고 조심스럽게 바위에 오른다.

카툰강이 한눈에 펼쳐져 있는 절경 그리고 쿵쾅거리는 심장.

"안드레, 빨리 찍어. 무서워!"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바위의 꼭대기로 올라간다.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볼 건 봐야지!"

비안개가 밀려들며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지만 시원한 풍경이다.

"안드레, 이리 올라와 같이 찍자!"

바위에서 내려와 넓은 바위의 정상으로 올라간다. 촛대 모양의 바위가 내려다보이고 카툰강의 전경이 펼쳐진다.

"아쉽네. 이 구도에서도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비가 강해지고, 자욱하게 비안개가 주변을 감싼다. 그리고 핸드폰의 물기는 젖은 옷으로 훔쳐봐도 소용이 없다.

"가자, 안드레!"

"오, 여기 이제 문 닫았어요. 우리가 마지막이라고!"

정상을 향해 내려오는 다른 러시아 가족들을 보며 안드레는 개구진 농담을 하며 깔깔거린다.

순식간에 밀려온 비안개 때문에 더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미끌거리는 길을 따라 내려오며 중심을 잃고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도 깔깔거리며 웃고 떠든다.

"안드레, 나 배고파."

"사비, 고기?"

초르토브 팔레츠의 초입 도로변으로 내려와 숯불 바베큐를 굽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정신이 혼미하다.

식당에 들어가 비에 젖은 옷을 쥐어짜고, 진흙이 묻은 옷들을 씻어낸다. 그리고 차와 커피를 마시며 언 몸을 녹이고.

"사비, 뭘 먹을 거야?"

"당연히 고기지!"

안드레가 러시아말로 무언가 얘기를 하더니 식당의 아저씨가 고기를 준비한다.

"얼만데? 나 카드밖에 없어."

"전부 해서 900루블, 현금만 받는데."

20,000원 정도의 가격에 조금 놀랐지만, 고기의 양을 보고 더 놀랐다.

"뭐야? 한 꼬치뿐이야?"

안드레가 가지고 있던 현금으로 계산을 하고, 잠시 후 곱게 구운 양갈비가 나온다.

그리고 안드레는 볶음밥과 함께 풀들에 후추와 소금을 뿌린 후 천천히 먹는다.

"안드레, 고기 안 먹을래? 그건 소나 염소들이 먹는 거지?"

"안 먹어. 고기는 정신 건강에 해로워."

러시아에서 많이 사용하는 향신료 우크롭 (укроп), 은은한 향이 나름 매력적이다.

식사를 하는 동안 비가 잠시 멈추고.

안드레와 함께 논스톱으로 고르노 알타이스크까지 돌아온다.

"안드레, 나 현금을 조금 찾아야 해."

안드레는 러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은행이라며 설명을 해준다. 코쉬아가츠에서 처음 사용한 ATM도 이 은행이다.

영어 서비스가 안되는 구형 기기였지만 안드레가 있어서 무난하게 현금을 찾고, 안드에에게 1,000루블을 건네주니 사양을 한다.

"내가 비싼 고기를 먹었으니까 내가 살게."

"아냐. 너는 여행을 길게 해야하잖아. 그럼 하프로 하자."

안드레는 500루블을 되돌려주며 방긋 웃는다.

안드레는 자전거를 반납하기 위해 자전거 가게로 가고, 나는 숙소로 돌아온다.

비에 젖은 모습을 보며 깔깔거리며 웃던 게스트하우스의 나타샤는 빨리 샤워를 하라며 몸에 달라붙은 상의를 벗는 것을 도와준다.

샤워를 마치자 안드레도 곧 도착한다.

"빨리 왔지?"

안드레가 만든 차로 하루의 피로를 달래는 동안 다른 러시아 게스트들이 들어와 하나둘 침대를 차지한다.

"사비, 오늘 찍은 사진들을 내 친구의 이메일로 보내줄 수 있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안드레는 오늘 함께한 사진 전부를 친구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사진들을 메일로 전송을 하고, 안드레와 함께 세탁기를 돌린 후.

보일러실에 빨래를 건조시키고.

잠이 든다.

"안드레, 오늘 정말 재미있었어! 쓰바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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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70일 / 흐림
만저로크-고르노 알타이스크
만저로크 카툰강변에서이 캠핑을 끝내고 러시아의 첫 번째 도시 고르노 알타이스코로 들어간다. 러시아 도시의 풍경이 궁금하다.


이동거리
43Km
누적거리
11,483Km
이동시간
3시간 21분
누적시간
832시간

 
도로
 
도로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먼저로크
 
소우즈가
 
고르노
 
 
57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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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40기가,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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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구220
・비자정보 
무사증9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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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연락처 
+7(495)783-2727

 
어젯밤부터 시작된 비는 밤새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한다.

첫 번째, 튜브와 펑크 패치를 사야 한다.
두 번째, 씻어야 한다.
세 번째, 고기가 먹고 싶다.

잠시 비가 멈춘사이 고르노 알타이스크로 떠나기 위해 이틀 동안 널브러져 있던 짐들을 정리한다.

예브게니 아저씨가 준 러시아 군대의 비상식량 박스를 뜯고 내용물들을 나눠 담는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많은 비상식량들이 한가득 쏟아진다.

"우리랑은 차원이 다른데!"

천천히 짐들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텐트에 묻은 물기들을 닦아낼 때쯤 예브게니 아저씨와 그의 손자가 와서 사진을 찍고 인사를 건넨다.

"안전하게 즐거운 여행을 해라. 응원한다!"

잠시 후 예브게니 아저씨의 옆에서 캠핑을 하던 유리 아저씨와 아이들이 다가와 사진을 찍고, 무언가 말을 하면서 영상까지 부지런히 담아 간다.

"유리 아저씨, 유튜버인가?"

그 모습을 보던 예브게니 아저씨는 아쉬운 듯 다시 사진을 찍자며 다가온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하하하."

이틀 전, 예브게니의 손자에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하는지 물었을 때 러시아의 SNS라며 주황색 아이콘의 앱을 보여줬다.

"예브게니, 러시아 SNS 보여줘 봐요."

앱을 다운로드해 설치할 시간은 없고 SNS 앱의 이름을 찍어둔다.

"읒? 우리나라 몹쓸 저축은행을 가장한 사채금융 아냐!"

OK는 러시아에서 사용하는 SNS 어플이다.

그리고 예브게니의 아이디를 찍어두고.

"예브게이,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연락을 할게요."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소통하려면 중국의 위챗, 몽골의 페이스북 그리고 러시아의 OK까지 세계의 SNS를 모두 섭렵해야 하는 모양이다.

"이럴 땐 과거의 엽서나 편지가 훨씬 좋았겠어."

핸드폰 배터리는 46%, 40km를 이동하는데 충분한 용량이지만 숙소를 찾을 때까지 최대한 아껴 써야 한다.

길은 평탄한 도로이지만 고르노 알타이스크에 가까워질수록 차량의 통행이 많아지고 있다.

알타이 지역에서는 벌꿀을 판매하는 노점상이 많다.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리발카부터 도로는 이차선의 갓길을 갖춘 도로로 바뀐다.

"얼마 만에 만난 갓길이냐!"

충분한 넓이의 갓길은 편안했지만 지금까지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사라져 아쉽다.

한두 차례 긴 오르막을 오르고.

고르노 알타이스트와 노보시비르스크로 나뉘는 인터체인지가 나온다.

노보시비르스크는 이 근처에서 가장 큰 도시라고 한다. 450km 정도의 거리니 4~5일이면 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첫 번째 러시아 여행의 정확한 경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노보시비르스크와 옴스크를 거쳐 길게 러시아를 둘러볼지 아니면 바르나올에서 카자흐스탄으로 바로 들어갈지 결정을 못한 상태다.

고르노 알타이스크로 가는 마지막 오르막을 오르고, 버스 정류장에서 쉬며 자전거 샵을 검색한다.

Sportmaster, 종합 스포츠 용품을 파는 괜찮은 쇼핑몰이 검색된다.

"일단, 이곳으로 가자."

고르노 알타이스크로 들어가는 좁은 도로를 따라.

마주한 삼거리에서 우회전의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간다.

"어떤 도시일까?"

알타이 공화국의 수도인 고르노 알타이스크의 초입은 초라한 느낌이다.

울퉁불퉁한 도시의 도로를 따라 작은 소도시 고르노 알타이스크를 지나친다.

도로변의 낡은 건물들, 낡은 버스와 혼잡하고 좁은 도로 그리고 푸른 산과 산 위로 들어선 예쁜 나무 집들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조화롭게 들어선 소도시의 풍경이다.

러시아의 석조 건물이나 웅장한 규모의 오래된 건축물은 전혀 보이질 않고, 복잡한 차량들의 움직임만이 어지럽다.

도시의 첫 번째 사거리에서 작은 공원을 발견했다. 중앙에 놓인 기념탑을 배경으로 1941, 1945의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이 지역의 참전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인 듯싶다.

공원의 산책로에는 대리석의 흉상들과 사진 그리고 군인에 대한 설명 안내판이 곳곳에 놓여있다.

중국의 추모 공원처럼 도심의 한가운데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은 정말 좋게 느껴진다.

복잡한 도로를 따라 스포츠마스터 건물을 찾으며 천천히 도시를 구경한다.

기역자 모양으로 길쭉하게 생긴 고르노 알타이스크의 중심부처럼 보이는 곳에서 스포츠마스터의 건물을 찾는다.

인도로 올라가 건물의 코너를 돌자 넓은 광장이 나오고 광장의 중앙에 레닌의 동상이 멋들어지게 세워져있다.

"형, 나 왔어!"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하고 맑았다 개었다를 반복하는 날씨다.

"자전거 매장은 찾았고, 숙소를 찾아볼까?"

레닌의 동상에 앉아 숙소를 검색하는 동안 핸드폰의 배터리가 20% 이하로 떨어진다.

핸드폰의 밝기를 낮추며 빠르게 검색을 해보지만 고르노 알타이의 숙박료는 터무니가 없다.

아파트형 숙소, 일반 호텔, 펜션형 등 다양한 호텔이 있지만 모두가 40,000원 언저리의 가격들이다.

"미쳤다! 일단 튜브부터 해결하자."

아이스크림을 파는 노점의 옆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보관을 부탁한 후 스포츠마스터 건물에 들어갔지만 매장이 보이질 않는다.

커피를 파는 어린 여자에게 질문을 하니 무조건 모른다며 고개를 흔들고, 1~3층까지 올라갔지만 찾을 수가 없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작은 소품을 파는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지하에 있다는 제스처를 한다.

지하 1층의 스포츠 매장의 자전거 코너는 아주 작다. 엠티비 사이즈의 튜브만 전시되어 있고 로드용 튜브는 없다.

휴대용 튜브 패치만을 사들고 스포츠마스터를 빠져나온다.

"일단, 이것으로 그럭저럭 해결하자."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고, 숙소를 검색하는 동안 핸드폰의 배터리는 15% 이하로 떨어진다.

"식당에 가서 핸드폰 충전부터 할까?"

지나왔던 고르노 알타이스크의 초입에 500루블짜리 게스트하우스가 두 군데 검색이 되지만 4km를 되돌아가야 한다.

초입의 주변에는 식당이나 슈퍼가 보이질 않아 이동이 망설여졌지만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첫 번째 도착한 게스트 하우스는 트립닷컴에 서 검색을 한 숙소다. 도로를 벗어나 골목길 안쪽에 위치한 숙소는 조용하다.

어두운 실내를 들어가 한 아주머니에게 잠을 잘 수 있는지 묻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고개를 흔들며 안된다고 한다.

"젠장!"

다시 도로로 나와 부킹닷컴에서 검색된 건너편의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가 보지만 찾을 수가 없다.

10% 이하로 떨어진 핸드폰으로 지도를 봐가며 느낌대로 찾아간 골목 안쪽에서 한 남자가 아파트를 가리킨다.

"여기?"

"게스트 하우스 느낌 난다."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의 문이 닫혀있어 영업을 하지 않을까 의심했지만 자전거를 세우는 동안 두 명의 여자가 문을 열고 나오며 '와우!'라며 웃는다.

"와우! 즈드랏스 부이졔."

밝게 인사를 하고 게스트 하우스 안으로 들어간다. 컬러풀한 벽면에 작은 소품들이 인테리어 된 깨끗한 숙소다.

중년의 아주머니와 어렵게 대화를 하는 사이 백발의 마른 남자가 다가와 영어를 하는지 묻는다.

남자의 도움으로 체크인을 쉽게하고 500루블의 4인실 도미토리 방을 잡는다.

짐들을 떼어내고 옮기려 하자 남자는 자신이 도와주겠다며 패니어를 들고 방까지 안내한다.

남자의 이름은 안드레, 4인실 방에는 안드레가 사용하고 있고 맞은편 1층 침대를 선택한다.

그리고 안드레는 식당, 화장실, 샤워장 등등 숙소 곳곳을 안내해 준다.

"게스트 하우스 직원인가? 그냥 여행자인가?"

코쉬아가츠를 떠나 일주일 만에 샤워를 했다. 안드레의 말처럼 따듯한 물이 아주 잘 나온다.

"배 안 고파?"

"어, 죽을 거 같아."

"내가 좋은 식당을 알려줄게. 비싸지 않고 좋아. 같이 가자."

"그래? 좋아."

여행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며 식당을 향해 걸어간다.

"안드레 몇 살이야?"

"48."

"어, 나는 46."

"뭐, 46나 48 비슷하네."

"뭐, 그렇네."

48의 안드레 71년생이고, 나는 만으로 44이니 사실은 세 살 차이가 나는 것이다.

"위아래 열 살은 친구다!"

공원을 다시 지나 도착한 음식점은 배식형태의 식당이다. 아마도 혼자 이곳에 왔다면 꽤나 난감했을 듯하다.

"뭘 먹고 싶어?"

"고기! 고기를 줘!"

고기에 한없이 집착을 하는 나를, 실없는 사람을 쳐다보듯 안드레는 웃으며 쳐다본다.

"수프, 수프에 고기 많이 들어있어!"

"어, 그건 그거고. 비프, 램, 포크, 치킨 앤..."

안드레와 메뉴에 대해 말하는 동안 커다란 닭다리를 들고 가는 사람이 보인다. 순간 이성 마비, 머릿속에 종이 울리고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샘이 터져버린다.

"안드레, 저것을 주문해!"

러시아 수프와 커다란 치킨을 주문해서 정신없이 흡입을 시작한다.

"천천히 먹어! 나는 밖에서 기다릴게."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음식들.

"뭔가 많이 아쉽지만 참자!"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는 공원의 산책로를 안드레와 함께 걸는다.

러시아의 화장실에는 남자는 М, 여자는 Ж가 적혀있다.

저녁으로 먹을 간식거리를 찾아 근처의 슈퍼마켓에 들러 빵과 음료수 등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온다.

비와 땀으로 젖어있는 옷들을 세탁하고.

보일러실에 있는 빨래걸이에 말려두고.

오랜만에 편하게 휴식을 취한다.

"안드레 여기 봐"

안드레는 엘지의 2G폰을 사용한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정신건강에 해롭다나.

슈퍼에서 사랑하는 레츠비를 발견한다. 몽골의 레츠비와는 다르게 한국에서 생산된 제품이 아닌 러시아의 글자들이 적혀있다.

시원한 하이네켄 병맥주로 사치도 부려보고.

저녁이 되면서 게스트 하우스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요란스러웠지만 안드레를 만나 즐거웠던 또 하루가 지나간다.

"안드레, 내일 함께 초르토브 팔레츠에 올라가 볼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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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69일 / 맑음
만저로크
만저로크 카툰강에서 캠핑, 자전거를 정비하고 자료들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11,440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828시간

 
정비
 
뒹굴뒹굴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만저로크
 
만저로크
 
만저로크
 
 
53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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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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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니 타이어가 주저앉아 있다.

며칠 전 펑크 패치를 재활용하며 정비했던 곳에서 조금씩 바람이 빠지는 것은 알았지만 하룻밤 새 타이어가 주저앉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상하다.

카툰강으로 내려가 강물에 튜브를 담그니 몽골에서 정비했던 부분이 공기압을 이기지 못하고 펑크 패치가 부풀어 올라 바람이 새고 있는 것이다.

"너마저 문제가 생기면 정말 큰일이다."

2장이 남은 펑크 패치 중 하나를 마저 사용하여 정비를 한다.

"고르노 알타이스크에 가면 첫 번째로 자전거 샵을 찾아야겠군."

점심을 먹기 위해 정비된 자전거를 타고 슈퍼로 갔다. 여전히 사람들이 붐비고 세로 구조의 계산대에는 길게 줄이 서있다.

"아니 계산대를 왜 세로로 만든 거야?"

치킨이 먹고 싶었은데 조리가 되어있질 않고, 작은 만두와 요거트, 물과 어제 먹었던 쇠고기 통조림을 산다.

"오늘 점심은 만두라면!"

간만에 매콤한 라면을 먹는다.

텐트에 누워 여행 자료를 정리하고.

강가에 나가 물에 발을 담그고 시원한 맥주도 한 캔.

쓸데없는 낙서를 해봐도 시간이 너무나 느리다.

"에쒸, 철자도 틀렸네."

핸드폰의 배터리가 모두 떨어져 간다. 믿었던 대용량 보조 배터리는 자밍우드에서 충전을 한 후 사용을 하지 않은 탓에 방전이 됐는지 이틀 전 샤오미 배터리를 완충시킨 후 꺼져버린다.

"비상시에 쓸려고 그 무게를 감내하며 가지고 다녔는데 버려버릴까 보다."

"저녁은 뭘로 할까?"

어제와 같은 쇠고기 통조림에 마지막 누룽지를 털어 넣고 저녁을 해결한다.

"유나 선생님, 누룽지 잘 먹었습니다."

노트북의 배터리로 핸드폰을 충전한다. 느리지만 아침이면 고르노 알타이스크까지 사용할 배터리는 충전될 것 같다.

몇 대의 캠핑카들이 들어왔다 나가는 동안 천천히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빗소리는 좋은데..."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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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68일 / 맑음 
만저로크
카툰강변에서의 캠핑이 계속된다. 함께 캠핑을 하고 있는 러시아 아저씨들의 친절한 배려로 캠핑이 즐겁다.


이동거리
0Km
누적거리
11,440Km
이동시간
0시간 00분
누적시간
828시간

 
정비
 
예브게니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만저로크
 
만저로크
 
만저로크
 
 
53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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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정도에 잠이 깨어 카툰강물에 세안을 하고 다시 잠이 든다.

9시가 넘어서 다시 잠에서 깨고 아침으로 요거트와 햄을 빵과 함께 먹는다. 어제 저녁 샐러드를 만들어 주었던 케메로보 아저씨의 부부는 캠핑장을 떠나며 물과 통조림, 오이와 토마토 등 남은 식재료를 건네주고 떠난다.

텐트에서 자료를 정리하며 쉬는 동안 카툰강에서는 레프팅을 하는 사람들의 구호 소리가 들려온다.

강이 넓고 급류가 흐르는 카툰강은 레프팅을 하기에 괜찮은 장소처럼 생각된다.

오후에 자전거의 느슨해진 볼트들을 조이고, 펑크가 난 튜브와 며칠 전 못에 찔러 구멍이 난 튜브를 정비할 생각이다.

자전거 정비를 하려는데 톰스크에 사는 아저씨가 다가와 점심을 먹으라며 부른다.

아저씨의 캠핑 테이블에 가서.

물고기와 감자 그리고 러시아인들이 즐겨먹는 허브 줄기를 넣은 수프를 빵과 함께 먹는다.

"이 통조림은 이렇게 먹는 거구나."

아저씨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매년 알타이에서 여름을 보낸다는 아저씨는 러시아의 여러 곳을 소개해 준다.

텐트로 돌아와 펑크 정비를 한다. 못에 찔려 구멍이 난 새 튜브에는 4~5개의 크고 작은 구멍들에서 기포가 올라온다. 펑크가 난 후 안전한 장소까지 끌고 가는 동안 타이어에 박혀있던 못에 의해 여러 곳이 추가로 찔린 모양이다.

"사용한 지 몇 시간도 안 된 새 튜브였는데 살릴 수 있을까?"

이 튜브를 쓸 수 없으면 가지고 있는 예비 튜브는 없고, 튜브 패치는 딱 4장만이 남아있다.

튜브 패치 2장을 사용하여 정비를 해봤지만 실패다. 고르노 알타이스크까지 40km가 남아있어 남은 2장의 튜브 패치는 사용할 수 없다.

"미케닉 장인이 와도 이건 못 살리겠다."

케메로보 아저씨가 준 식재료에서 토마토로 튜브 정비 실패의 쓰라림을 달래고 있으니.

톰스트 아저씨의 손자가 와서 러시아의 커피라며 선물을 주고 간다.

"겨우 두 장 남았다."

중국 남부 산길들을 달리며 매일처럼 펑크가 난 탓에 가지고 왔던 펑크 패치가 모두 떨어졌다.

구글맵으로 고르노 알타이스크의 자전거 샵을 검색하니 다행히 몇 군데 가게가 검색된다.

산책을 겸해서 만저로크의 슈퍼에 가서 간식거리, 특히 숯불구이 꼬치를 사 먹기 위해 걸어갔지만.

8시의 시간인데 꼬치집은 문이 닫혀있고 슈퍼에는 계산을 하려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그냥 돌아온다.

"이건 뭘까?"

케메로보 아저씨가 남기고 간 통조림으로 저녁을 해결할 생각이다.

"일단 까 보자."

쇠고기 통조림에 누룽지를 넣고 끓이는 동안.

톰스크 아저씨가 구운 감자를 건네주더니.

비스킷과 함께 찍어 먹으라며.

버터 같은 것을 주었다.

예브게니 말루찐, 60세의 아저씨는 퇴역을 한 군인인 것 같다.

잠시 후 보이스카웃이 적힌 다용도 툴을 선물하고.

러시아 장교의 비상식량이라며 묵직한 상자를 건네준다.

해가 떨어지고 예브게니 아저씨는 차를 마시자며 초대를 하고, 그의 태블릿에 담긴 오래된 사진들을 보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군인 가족인 예브게니 아저씨의 가족들의 사진과 톰스크, 크림반도 그리고 러시아의 여러 곳을 여행했던 사진들 그리고 건강하고 젊은 예브게니에서 아이들과 손주들이 자라나 함께한 지금의 예브게니까지. 그의 삶이 담겨있는 사진들이다.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은 자연의 경이로움만큼 묘한 감동을 준다.

"나의 삶은 무엇이 남을까?"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167일 / 맑음
쉐발리노-만져로크
비에 젖은 들꽃들의 꽃내임이 싱그럽다. 고르노 알타이스크로 향하는 길, 가툰강변에서 캠핑을 하며 시간을 보낸 후 시내로 들어갈 생각이다.


이동거리
79Km
누적거리
11,440Km
이동시간
5시간 52분
누적시간
828시간

 
P256도로
 
P256도로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쉐발리노
 
세마
 
만져로크
 
 
534Km
 
 

・국가정보 
러시아, 모스크바
・여행경보 
-
・언어/통화 
러시아어, 루블(1루블=18.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0기가, 7,000원
・전력전압 
◦2구220
・비자정보 
무사증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7(495)783-2727

 
빗소리, 풀냄새. 비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싱그러운 아침이다.

비와 이슬 그리고 안개로 인해 텐트가 젖어있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좋은 아침이야!"

싱그러운 풀과 들꽃들에게 시원한 굿모닝을 알리고.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고르노 알타이스크까지 120km 정도 남았지만 오늘은 시내로 들어가지 않고 카툰강 근처에서 캠핑을 할 것이다.

구글과 부킹닷컴으로 검색되는 고르노 알타이스크의 숙박료가 평균 40,000 정도라 부담스럽고, 그동안의 여행기를 정리하려면 2~3일은 필요할 것 같다.

고르노 알타이스크에서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적당한 캠핑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오르막의 길은 없을 것 같다. 아니, 없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소박하고 예쁜 나무집들을 지나며 경쾌하게 페달을 밟아간다.

계속되는 내리막길이 이어지고.

도로변 마을 간의 간격도 많이 줄어든다.

시속 20km 정도의 라이딩 속도, 한 시간을 달려 첫 번째 마을 체르가에 도착한다.

마을에 들어서며 네트워크가 연결되고.

몽골의 오초르에게 페이스북 영상 통화가 온다. 옆집에 사는 오드바야르의 아내가 통화를 연결해 준 것이다.

"오초르, 러시아. 러시아라고."

항상 말은 통하지 않지만 웃는 얼굴을 보면 기분이 좋다.

"끊어, 오초르. 러시아라니까!"

잠시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길을 떠난다.

두 번째 마을 캄라크에 이르러 더워지는 날씨에 조금씩 지쳐간다.

작은 슈퍼에서 음료수를 사 먹을까 생각하다 멀지 않은 곳에 오늘의 야영지로 생각했던 우스츠 세마가 있어 그대로 지나친다.

잠시 짧은 오르막이 나오고.

우스츠 세마로 들어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카툰강의 본류가 지나가는 길목의 우스츠 세마, 다시 만난 카툰강은 협곡의 모습에서 넓고 웅장한 강으로 변해있다.

작고 좁은 다리를 건너.

우스츠 세마에 도착한다.

식당을 찾으며 숨을 돌히는 동안 기념품을 팔고 있던 아저씨와 호기심이 많은듯한 아저씨가 말을 건넨다.

"레스토랑?"

인상이 좋은 아저씨에게 명함을 주며 주변의 음식점을 물어보니 바로 옆의 카페를 가리킨다.

4개의 테이블이 놓인 한산한 음식점에 들어가 친절한 아주머니와 점심 메뉴에 대해 상담하듯 질문을 하며 주문을 한다.

글자 메뉴는 무시하고 메뉴판 하단에 조그맣게 그려진 만두와 볶음밥 같은 것을 주문하고 탄산수를 달라고 한다.

"수프! 수프는 어떤 거?"

수프를 반복적으로 말하자 메뉴판에서 첫 번째의 메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245루블? 왜 이렇게 싸지?"

100루블씩 하는 볶음밥과 만두, 탄산수, 수프를 주문했는데 가격이 저렴하다.

러시아에서 탄산수를 처음 마셨는데 의외로 괜찮은 것 같다. 그래도 난 냉수가 좋다.

보기에도 깔끔한 음식이 나온다.

"어, 수프는?"

주문했던 수프는 러시아 사람들이 마시는 홍차 같은 것이다.

"어쩐지 싸더라. 뭐 상관없고."

러시아 식당의 주문은 대략 메뉴를 고르면 빵과 음료를 추가할 것인지 묻고, 가끔은 샐러드 같은 것을 먹을 것인지 묻는 것 같다.

순식간에 비워진 접시, 아주머니에게 200루블을 건네며 같은 것을 달라고 하자 방긋 웃는다.

그리고 나온 음식은 이전보다 양이 많이 담겨 나온다.

"오, 센스쟁이."

식당을 알려준 아저씨는 카페의 주인처럼 보인다. 밥을 먹고 나오자 나를 뒤따라 나오며 웃으며 말을 건넨다.

블라디미르, 웃음이 많고 쾌활한 아저씨다. 번역기로 몇 가지 질문에 대답들을 하는 사이 기분이 좋으면 악수를 청하는 아저씨는 맥주를 마실 건지를 물어본다.

"예! 예!"

아저씨가 사다 준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대화를 주고받는다. 옆에서 기념품을 파는 앞니 전체를 반짝이는 금니로 씌운 멋쟁이 할아버지는 가끔씩 농담을 던지고, 수염을 기르고 헤어밴드를 한 아저씨도 이리저리 오가며 대화에 관심을 갖는다.

"한국에 가서 블라디미르랑 사진을 찍었다고 알려줘라!"

"쟤랑도 한 번 찍어!"

우스츠 세마의 아저씨들과 즐겁게 놀고 든든해진 배를 튕기며 야영지를 찾기 위해 떠난다.

너무 일찍 우스츠 세마에 도착한 탓에 고르노 알타이스크 방향으로 좀 더 가까이 가서 야영을 할 생각이다.

카툰강을 따라 달리며 캠핑을 하기에 적당한 장소를 눈여겨 살펴보지만 넓은 강줄기로 변하고 급류가 흐르는 강가에 야영지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강변의 좋은 곳에는 유료 캠핑장이나 펜션 같은 것들이 들어서 있고.

도로변에 차들이 빼곡하게 정차되어 있는 장소가 나타난다. 역시나 기념품 가게들이 길게 들어서 있고.

"유원지인가?"

도로의 건너편으로 철교처럼 생긴 오래된 다리가 놓여 있다.

"사람들이 붐비는 곳은 싫고."

구글맵에 제법 규모가 큰 만저로크까지 가보기로 한다.

강을 따라 왼쪽으로 크게 회전을 하며 나타난 만저로크의 도로변에는 큰 마트와 함께 여러 가지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고 사람들로 붐빈다.

우선 마트에 들러 물과 음료수만을 사들고, 카쉬아가츠에서 사 먹었던 치킨이 강하게 마음을 흔들며 유혹했지만 참아야 한다.

시원하게 환타 한 병을 들이마시며 주변의 숙소나 캠핑장을 검색해 봤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곳이 없다.

"이러다 고르노 알타이스크까지 가야 하는 거 아냐?"

40km 정도 거리의 고르노 알타이스크까지 가기에 넉넉한 시간이다.

"일단 가 보자. 뭐라도 나오겠지."

만조로크를 500미터쯤 벗어났을 때 도로 건너편으로 캠핑을 하는 차와 텐트들이 보인다.

"오, 좋은데! 유료 캠핑장인가?"

입구에 캠핑장의 관리 사무실이 없는 것으로 보아 유료 캠핑장은 아닌듯하고.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차량들 사이 적당한 곳에 자전거를 세운다.

"여기서 캠핑을 하려면 돈을 내야 하나요?"

텐트를 치고 있는 가족에게 다가가 번역기를 보여주니 고개를 흔들며 아니라고 대답한다.

"유레카!"

러시아 오니 자꾸 동전들이 쌓여 주머니가 무거워진다.

"아니 왜 같은 돈을 동전과 지폐로 다 만드는 거야."

섹시하게 텐트를 설치하고.

강가에 내려가 가볍게 얼굴과 팔 등을 씻어낸다.

편안한 옷으로 환복을 하니 상의에 소금꽃이 하얗게 피어있다.

"강에서 빨까, 고르노 알타이스크에서 빨까."

"일단 저녁부터 먹자."

마트에서 치킨을 사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해결할 수 있는 저녁거리는 가지고 있다.

"컵라면에 누룽지를 넣고 끓이자."

헙드를 떠날 때 유나 선생님이 챙겨준 누룽지로 든든한 한 끼를 해결하고.

소나무 숲을 산책한다.

가늘고 길게 자란 소나무들이 멋지고, 주변의 숲도 풀과 나무가 울창한 건강한 숲이다.

"공기 좋고, 시간도 좋고."

오늘 하루도 지나간다.

산책에서 돌아오니 옆에서 캠핑을 하던 아저씨가 말을 건네며 관심을 보인다.

명함을 건네주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캠핑 의자를 내어주며 샐러드와 차를 대접한다.

케메로보에서 왔다는 아저씨와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샐러드와 차를 먹는 사이 아저씨는 옆 텐트의 아저씨까지 불러와 대화를 하자고 한다.

톰스크에서 왔다는 60세의 아저씨는 자신의 손자라며 초등학생의 남자아이를 소개한 후 여행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묻는다.

"러시아에서 살고 싶어요?"

구글 번역기를 설치하더니 남자아이가 수줍게 핸드폰을 보여준다.

"러시아 여자들이 이쁘더라."

아이의 질문에 대답한 번역기를 보며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고, 즐거운 대화가 오간 후 사진을 찍자며 각자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언제 고르노 알타이스크로 갈 거냐?"

"하루 정도 있다가 모레 정도 가려고 한다."

"그래, 그럼 오늘은 가서 쉬어라."

내일 정도 갈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은 다음날 가겠다고 하니 잘 됐다는 듯이 악수를 청하며 쉬라고 한다.

재미있고 친절한 사람들이다.

타티아나, 블라디미르 그리고 캠핑장의 아저씨들까지 즐거운 만남이 계속되고 있다.

"좋은 하루다."


Trak 정보

GPS 정보

 

"Great Thanks :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에릭스도자기, 찬숙, 이지, 혜영, 카일라스, 에릭누나, 달그림자, 불타, 파라, 뜨락, 고고싱, 부침이, 마이크로, 둥이, 장미, 일루, 앳찌, 짱돌, 울산 바이크하우스, 다빈치, 나도달인, 폴/해바라기, 걍바다, 유나, 김혜숙 산부인과, 일산쭈니, 소미에이, 고양을, 감사리, 파도, 방가/나리, 김윤구, 세콤염기섭, 최정현, 엘사

 

D+166일 / 맑음 
옹구데이-쉐발리노
갑작스럽게 더워진 날씨, 러시아의 첫 번째 도시 고르노 알타이스크를 향해 달려간다. 알타이 지역의 자연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이동거리
93Km
누적거리
11,361Km
이동시간
7시간 57분
누적시간
822시간

 
P256도로
 
P256도로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옹구데이
 
토푸차야
 
쉐발리노
 
 
455Km
 
 

・국가정보 
러시아, 모스크바
・여행경보 
-
・언어/통화 
러시아어, 루블(1루블=18.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0기가, 7,000원
・전력전압 
◦2구220
・비자정보 
무사증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7(495)783-2727

 
아침에 깨어나 옹구데이에서 하루를 더 머물지를 고민한다. 네트워크도 괜찮고, 무엇보다 조용하고 좋은 곳이다.

텐트 옆에 놓인 테이블에서 여행 자료를 정리하는 동안 젊은 부부의 남자가 차와 간식거리를 건네주고 간다.

어제와 오늘까지 너무나 많은 것을 챙겨주는 부부이다.

잠시 후 젊은 부부의 옆집에서 캠핑을 하던 아주머니가 보라색 그릇을 들고 찾아와 물고기가 들어있은 수프를 건네주고 돌아간다.

감자를 넣고 맑게 끓인 국물인데 제법 시원하다.

"이건 이렇게 먹는 거구나."

식사를 끝낸 후 젊은 여자가 다가와 인사를 하며 사진을 찍자고 한다.

"응, 너의 인스타그램을 봤어. 고마워."

사진을 찍고 그녀의 이름을 물어본다.

"다나. 러시아 풀 네임은 어려워."

"다나, 고마워. 음식은 너무 잘 먹었어."

그녀의 본명은 코소바 타티아나(Kosova Tatiana)인 것 같다. 5~6세 정도의 귀여운 딸을 갖은 젊은 부부이다.

여행을 잘 하라는 당부와 함께 그녀의 가족은 캠핑장을 떠나고, 캠핑장의 입구에서 그들을 배웅하며 손인사를 건넸다.

물고기 수프를 챙겨준 아주머니의 가족도 캠핑장을 떠나고, 나도 짐들을 챙겨 캠핑장을 빠져나온다.

자전거를 끌고 도로변으로 빠져나오자 옹구데이의 경계를 알리는 구조물이 있다.

"오늘은 어디까지 가 볼까?"

90km 거리에 쉐발리노라는 마을이 검색된다.

길게 이어지는 어제와 같은 도로와.

비슷한 느낌의 마을들을 지난다.

알타이 공화국의 나무집들은 매력적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오래된 나무집, 파스텔톤의 창문과 하얀 커튼 그리고 풀들이 자란 크고 작은 마당에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놓여있어 소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타티아나의 가족과 물고기 수프를 챙겨준 아주머니 덕분에 오전의 라이딩이 가볍다.

조금씩 기온이 오르고 출출함이 찾아들 때쯤.

도로변에 작은 음식점이 나온다.

"밥 먹고 가자."

식당은 깨끗하고 가족단위의 여행객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카운터에 글자로만 적혀있는 메뉴판이 난감하지만 이젠 이런 문제에 익숙하다.

몽골의 보츠처럼 보이는 넓적한 튀김 만두를 두 개 주문하고 커피와 수프를 달라고 한다.

메뉴를 모를 땐 메뉴판의 가장 첫 번째 메뉴를 선택하거나 적당한 가격의 첫 번째 메뉴를 선택한다.

뜨거운 물을 따라준 커피잔에 믹스커피를 타고, 수프가 나오는 동안 튀김 만두를 먹는다.

곧바로 나온 수프는 고기와 감자, 토마토 소스에 면이 들어있는 음식이었다. 토마토 향이 듬뿍 나는 달콤한 맛의 수프.

"모두 해서 203루블이면 훌륭한데."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길을 따라간다. 점심 식사 후의 도로는 계곡이 사라지고 산을 향해 오르는 기분이다.

"아..."

도로변의 언덕들에는 파스텔톤의 꽃들이 알록달록한 각자의 색으로 산 전체를 뒤덮고 있다.

자극적이지 않고 매력적이지 않지만, 흔한 들꽃들의 군락과 은은한 풀냄새가 온 마음을 사로잡는다.

"저기 한가운데 눕고 싶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과 색감이다.

길을 따라 펼쳐지는 들꽃들을 모습에 반해 페달링의 힘겨움을 잊는다.

"근데 왜 자꾸 올라가는 거지?"

이유 없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길이다.

구름이 가까워지고 주변의 산등성이가 눈높이에 맞춰지기 시작한다.

점심을 먹은 후 4시간 동안 부지런히 페달을 밟으며 오르막길을 올랐지만 쉐발리노까지의 거리가 줄어들지를 않는다.

"뭐지? 얼마나 올라온 거야? 1,600미터!!"

5시가 가까워져 오는데 쉐발리노까지 아직도 50km가 남아있다.

주변의 산등성이와 구름의 위치로 보아 정상에 다다른듯하고, 페달링이 무거워지며 골반과 허리가 당겨온다.

"저기가 끝인 것 같은데."

산의 정상처럼 보이는 하늘길을 확인하고 출발하려는 순간 뒷바퀴가 이상하다.

"아, 왜 또!"

뒷바퀴의 바람이 반쯤 남아 물컹거린다. 좁은 갓길에 최대한 안쪽으로 자전거를 눕히고 튜브를 탈착한다.

차량 통행의 소음과 바람 소리 탓에 펑크가 난 자리를 찾기가 힘들다. 작은 실구멍이라면 펌프질을 해가며 갈 수 있을까 싶어 튜브를 넣고 공기를 채워놓으니 이내 바람이 빠져버린다.

"에쒸."

다시 튜브를 탈착하고 바람이 빠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공기를 넣어 겨우 펑크가 난 자리를 찾는다.

"찾았다. 요놈아!"

펑크 수리를 하는 동안 건장한 남자가 다가와 도와줄 일이 없는지 묻는다. 자신도 자전거를 탄다는 남자에게 명함을 건네주니 혼자서 여행을 하냐며 웃는다.

"유 아 크레이지!"

"그래, 안 그래도 지금부터 미칠 것 같아."

예비 튜브도 없고 튜브패치도 떨어져간다. 지난번 사용한 튜브패치를 재활용해서 정비를 했지만 1차 시도 실패, 다시 로드용 패치를 재활용해서 겨우 정비를 마친다.

타이어를 4번이나 탈착하는 동안 한 시간 반이 지나버린다.

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개비를 달콤하고 태우고 마지막 업힐을 끝낸다.

"산 정상에 마을이 있는 거야? 변태스럽게."

산의 정상에는 마을이 아닌 기념품 가게들이 길게 들어서 있다.

"러시아는 이런 느낌이군."

몽골의 산 정상에는 어김없이 어붜가 쌓여져 있고, 러시아의 산 정상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들어선 모양새다.

기념탑 같은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바람막이를 걸쳐 입은 후 바로 출발을 한다. 7시가 가까워지고 있었고 쉐발리노까지 여전히 40km 가까이 남아있다.

산의 정상에서 시작되는 내리막의 경사로, 브레이크를 풀고 시원하게 내달렸다. 적당히 맞바람이 불며 속도를 제어해 주었고, 하루 종일 힘겹게 오른 업힐에 대한 보상이다.

그리고 이틀 전 우중 라이딩 이후 브레이크의 제동력은 거의 느슨해져 있었던 터이다.

"달릴 거야!"

순식간에 10km의 거리가 삭제되고 급경사는 끝이 난다.

"조금 아쉬운데."

나지막하게 떨어지는 내리막길을 오랜만에 언더바를 잡고 신나게 질주한다.

나에게 있어 자전거 여행의 즐거움은 새로운 것들을 보고 경험하는 것과 세계의 도로를 마음껏 달려보는 것이다.

몽골 여행이 답답하고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람과 도로의 환경으로 경쾌한 라이딩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험한 오지를 자전거로 탐험하며 경이로운 자연을 마주하는 것보다 다양한 길과 풍경을 지나치며 페달을 밟아가는 라이딩이 더 즐겁다. 지금의 여행은 그렇다.

빠르게 알타이의 풍경들을 지나치며, 마을의 사람들과 바이커 그리고 손인사를 하는 운전자들과 인사를 하며 달려간다.

산과 들에 피어오른 이름 모를 들꽃들을 바라보며 내달리는 라이딩의 즐거움이 너무나 좋다.

비구름이 내려앉은 쉐발리노를 향해 달려간다.

도로변의 산에는 눈꽃이 내려앉은 듯 하얀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4시간 동안 올라갔던 30km의 오르막 그리고 쉐발리노까지 30km의 내리막을 한 시간 만에 도착한다.

도로의 아래로 쉐발리노의 풍경이 펼쳐진다.

마을 뒤편의 산을 배경으로 강을 따라 이어지는 쉐발리노, 예쁘고 평화롭다.

하루 종일 길을 안내한 다양한 들꽃들.

길을 따라 작은 언덕을 넘어가니.

더 큰 마을이 펼쳐진다. 쉐발리노는 지금까지 지나쳤던 마을들에 비해 굉장히 넓고 큰 느낌이다.

"일단은 슈퍼를 찾아 캠핑 음식을 마련하자."

구글맵을 검색하여 도로변에 있는 슈퍼를 확인했지만 찾을 수가 없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 슈퍼를 찾기 위해 마을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첫 번째 도착한 슈퍼,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자 젊은 여자가 황급하게 문을 닫으며 영업이 끝났다는 제스처를 한다.

"아니, 뭘 이리 야박하게."

다시 길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이동한다. 아직 해가 남아있는 시간임에도 거리는 너무나 한산하고 적막하다.

관공서처럼 보이는 건물 주변에서 슈퍼를 발견하고 들어간다.

동양인의 방문에 어리둥절한 주인 여자에게 아침부터 연습한 러시아 인사를 건네본다.

"즈드랏스 뿌이쩨."

여전히 어색한 행동의 여주인 웃음이 없다. 빵과 요거트, 음료 등을 사들고 계산을 하니 가게 안에 있던 사람에게 무언가를 묻고는 그제서야 '땡큐'라 말하며 엷은 미소를 짓는다.

비가 내릴 듯 흐려지는 날씨에 해가 떨어지고, 서둘러 마을을 벗어나 야영을 할 장소를 찾아야 한다.

오래된 고목의 가로수 길을 끝으로 쉐발리노를 벗어난다.

"어디가 좋을까? 이왕이면 강가의 들꽃들 속이면 좋겠는데."

야영지를 찾으며 도로를 따라가는 순간 통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 네트워크!"

핸드폰을 열어보니 데이터의 안테나가 하나가 남아있다. 온라인을 열어 통신이 되는지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본다.

"저기가 좋겠다."

하천 방면 언덕의 수풀 속을 헤집고 들어가 적당한 자리를 잡고,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져 서둘러 텐트를 치고 저녁 준비를 한다.

"좋네. 들꽃들 한가운데."

타티아나 가족이 챙겨준 음식으로 어제 먹지 못했던 닭고기 통조림을 꺼낸다.

"일단은."

"끓이자."

슈퍼에서 사온 빵을.

요거트와 함께.

닭고기 수프에 찍어서 저녁을 해결한다.

우리나라의 닭고기 제품보다는 못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저녁이다.

"엊그제가 초복이던데, 러시아 닭을 먹어보네."

조용하게 텐트를 두드리던 빗방울이 멈추고, 꽃과 풀내음은 더욱 짙어진다.

"산을 오르는 것이 힘들었지만 괜찮은 하루였어."

계곡의 물소리, 들꽃들의 풀내음.. 그리고 깊이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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