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64일 / 맑음 ・ 23도
아크타쉬-인야
아름다운 알타이 산맥을 따라 고르노 알타이스크로 가고 있다. 알타이 공화국의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에 매료된다.


이동거리
106Km
누적거리
11,4195Km
이동시간
7시간 13분
누적시간
808시간

P256
P256
70Km / 4시간 25분
36Km / 2시간 48분
아크타쉬
카툰강
인야
 
 
289Km

・국가정보
러시아, 모스크바
・여행경보
여행유의・자제
・언어/통화
러시아어, 루블(1루블=18.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무제한, 8,000원
・전력전압
◦2구220
・비자정보
무사증60일/180일내 최대 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7(495)783-2727

 

푹 잠들었다. 알람이 없이도 자연스레 7시가 되면 잠이 깬다.

일어나 숙소 밖으로 나가니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지만 곧 그칠 것도 같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어제의 일기를 조금 적어보고 짐들을 정리하여 출발을 준비한다.

오늘 갈 곳은 Inya, 아크타쉬에서 90km 정도 떨어진 거리의 마을이다.

"내리막길일 테니 쉽게 가겠지."

비안개가 산을 타고 넘어가는 모습이 산골 마을의 정취를 더해준다.

마트에 들러 바나나와 음료만을 사 들고.

"밥을 먹고 가자."

어제의 식당에 들러 고기 한 접시를 비운다. 다시 먹어도 맛있는 음식이다.

출발을 준비하는데 엷게 미소만 보이던 가게의 어린 남자가 숙소가 필요한지를 물어본다.

"아니, 오늘 인야까지 가야 해."

함께 사진을 찍고 보니 머리통이 반밖에 안된다.

"몽골까지는 괜찮았는데, 작아도 너무 작다."

10:40, 비와 아침 식사로 출발 시간이 조금 늦어졌다.

침엽수가 자란 길들은 여전히 싱그럽고.

파스텔톤의 나무집들은 너무나 예쁘다.

앞으로 수없이 많은 길들을 달리겠지만, 이런 길들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한국은 오늘이 복날인가 보다. 삼계탕 한 그릇이 심하게 당기는 날이다.

고르노 알타이스크까지 345km.

높은 산과 강의 곡선을 따라 좌우로 휘어지고, 오르내림이 반복되며 이어지는 도로의 자연스러움이 너무나 좋다.

모든 짐을 떼고 다운과 댄싱을 반복하며 신나게 질주하고 싶어지는 길이다.

한 시간을 달리고 도로를 가로막는 말들 때문에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좀처럼 쉽게 길을 비켜주지 않는 녀석들이다.

"오늘은 널 사용하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뒷바퀴에 바람을 충분히 넣고 산과 계곡 그리고 카툰강을 따라 달려간다.

오르 내리막이 반복되는 사이 잘생긴 바위산이 나타나고.

사람들이 자동차를 세우고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다.

"뭐지? 폭포!"

잘 생긴 바위산의 측면으로 작은 폭포가 떨어지고 있다. 아직 수량이 많지 않아 멋진 장관은 연출되지 않지만 꽤나 운치가 있는 풍경이다.

작은 오솔길을 따라 사람들이 폭포 쪽으로 들어가고, 작은 간의 테이블에 앉아 잠시 쉬어간다.

"풍경이 좋네."

다시 길을 달려 작은 바위산이 우뚝 솟아있는 곳에서 자전거를 세운다.

달리는 동안 계속해서 눈길을 사로잡던 이름 모를 들꽃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도로변에 간단히 세워져 있는 작은 묘비들, 군인인지 아니면 일반인인지 모르겠지만 작은 사진과 함께 조화들이 놓여있다.

"배고프다. 빵이나 먹자."

다행히 러시아의 빵들은 제법 맛이 좋다.

전체적으로 산을 내려가고 있는 느낌이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며 라이딩이 쉽지만은 않다.

다시 도로변에 사람들이 자동차를 정차하고 무언가를 구경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군용 짚차와 트럭으로 보이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조형물의 건너편으로 무언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전거를 놓고 구경을 가고 싶을 만큼의 호기심은 없다.

길을 안내하는 강물은 조금씩 협곡의 형태로 깊어져만 간다.

작은 마을을 지나며 나의 반대편으로 향하는 자전거 여행 커플을 지나쳤지만 짧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는 것으로 지나친다.

조금씩 더워지는 날씨에 지쳐갈 때쯤이면 그냥 손인사를 하며 지나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알타이를 지나며 오토바이를 탄 바이커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러시아를 지나 몽골까지 이어지는 고산지대의 풍경을 감상하기에 오토바이가 좋을 것 같다.

손을 흔들거나 엄지를 치켜세우며 지나치는 바이커들이 혼자 여행을 하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도로변으로 관광지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세워져있고 작은 바위산 밑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조금 쉴까."

별 기대 없이 잠시 쉬기 위해 들어간 곳의 안내판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설명 사진이 걸려있다.

"사람 문양 돌? 상형문자?"

바위산을 배경으로 넓은 초원 위에 사람 얼굴의 돌상이 삐딱하게 기울어져 세워져 있다.

단순한 조각인데 왠지 모르게 강렬한 느낌이다.

상형 문자를 보기 위해 바위산으로 걸어간다.

"어디?"

"어디에?"

"어디에 그려진 거야?"

병풍처럼 솟아있는 바위산에는 사람들이 적어놓은 낙서를 지운 흔적 같은 것이 있을 뿐, 안내판에 찍혀있던 상형문자는 보이질 않는다.

"이건가? 어, 대충 느낌 나네."

바위산의 하단 부분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그림문자들이 보인다.

"말, 소, 사슴? 토끼? 얘도 무진장 심심했나 보네. 돌에다 낙서를 하고."

도로를 달리는 동안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낙서와 별반 다른 느낌은 없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락카로 낙서를 하고, 저 시절의 사람들은 돌로 낙서를 했다는 차이일 뿐.

"그래도, '나 왔다 감'보다는 생산적인 낙서네."

도로변에 세워진 작은 묘비, 자동차 핸들 모양의 묘비들인데 의미를 잘 모르겠다.

"묘비가 아닌가? 묘비 느낌인데."

어제 먹고 남은 빵을 한 개, 두 개 먹다 보니 모두 해치워버린다. 자꾸만 손이 가는 달콤한 맛이다.

인야가 가까워지며 도로는 매끈한 아스팔트로 새 포장되어 있다.

작은 마을을 지나치고.

협곡의 깊이는 더해진다.

그리고 많은 자동차가 정차되어 있는 오르막의 커브길, 카툰강의 협곡을 구경할 수 있는 장소가 나온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협곡 쪽으로 걸어간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언덕 밑으로 굽이지며 휘돌아가는 카툰강의 강줄기가 멋진 산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시원하다."

어떤 편의 시설이나 유치한 전망대조차 없는 자연의 언덕 위에서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이라 더욱 마음에 든다.

잠시 언덕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인야로 향한다.

묘하게 구부러지고 휘어진 도로를 오르고.

인야의 초입에 들어선다.

자전거 투어 관련 스티커들도 보인다.

"스티커 생각은 못 했네. 하나 만들어서 올 것을."

독일 커플의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인야의 오래된 나무다리를 찾으며 마을을 지나친다. 조용하고 오래된 마을처럼 느껴진다.

마을을 관통하고 강을 건너는 다리 부근에 작은 동상 하나가 세워져 페달링을 멈추게 만든다.

"오, 레닌!"

구소련이 붕괴되며 레닌의 동상들이 모두 허물어진 것으로 알았는데, 이곳의 동상은 큰 훼손 없이 그대로인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나의 사고와 가치관에 있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 아닐까 싶다. 대학시절 자본론을 비롯하여 그와 관련된 많은 책들을 읽었던 기억이 스쳐간다.

"모스크바 정도에서 볼 줄 알았더니, 일찍 보게 되니 반갑네."

조촐한 레닌의 동상을 구경하고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 인야를 벗어나 8km 거리에 떨어진 작은 강변 마을에서 캠핑을 하기 위해 출발한다.

협곡을 건너는 다리를 건널 때 다리의 왼편으로 찾고 있던 인야의 오래된 다리가 나타난다.

"저기에 있었구나."

바람과 함께 온종일 업다운을 반복했던 페달링의 속도도 느려져만 가고.

거북손처럼 생긴 기묘한 산이 정면에 나타난다.

"묘하게 생겼다."

잠시 후 짧은 내리막길의 끝에 야영지로 생각했던 작은 강변의 마을에 도착한다.

작은 수로를 따라 시냇물의 흐르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의 흙길을 따라 카툰강 쪽으로 내려갔다.

"강변에 괜찮은 야영지가 있을까?"

낮은 지형의 강변은 작은 모래들이 퇴적되어 캠핑을 하기에 괜찮았지만 양과 염소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공간이라 텐트를 칠 수가 없다.

"일단, 슈퍼가 없나?"

캠핑을 하기 위해 슈퍼를 찾아봐도 아무것도 없다. 나무 울타리로 되어있는 집들의 텃밭에는 감자처럼 보이는 것들이 심어져있고, 골목에는 사람들의 인기척도 보이질 않는다.

오는 도중 빵과 음료를 모두 먹은 후라 패니어 안에는 변변찮은 간식만이 몇 가지 남아있는 상태이다.

무엇보다 내일 80km 정도의 라이딩을 하기 위해서는 비상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네트워크도 끊기고 슈퍼도, 식당도 없네."

마을 앞의 도로변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잠시 고민을 하다 인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음식이든 통신이든 둘 중에 하나는 있어야지."

내려왔던 내리막길을 다시 올라가야 했지만 뒷바람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인야로 되돌아온다.

"젠장, 한 시간 반을 날려버렸어."

인야로 돌아와 식당을 찾고, 슈퍼도 확인한다.

작은 도로변의 식당에서 아주머니가 말하는 수프를 주문하고 환타 한 병을 사 마신다.

주방으로 들어간 아주머니는 접시에 무언가를 담아와 보여주며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중얼거린다.

"만두? 오케이! 다해서 얼마예요?"

아주머니는 메모지에 203을 적어서 보여주고, 음식을 준비하는 그녀에게 식당 옆의 공간에 텐트를 치고 잘 수 있는지 물어보니 안 된다는 제스처를 한다.

인야의 다리를 건너기 전 텐트를 칠만한 곳을 두어 군데 생각해 두었지만, 식당의 주변에 야영을 하면 내일 아침 식사까지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쉽다.

"뭐 어쩔 수 없고."

금방 조리가 되어 나온 수프는 우리의 육개장과 비슷한 맛이 난다. 면과 고기, 육수와 채수의 조화가 나름 괜찮은 맛이다.

"오호, 러시아의 수프는 이런 맛이군. 괜찮네."

고기만두와 함께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슈퍼로 들어갔지만 딱히 살만한 것이 없다.

"저녁은 해결했으니 내일 아침에 다시 오자."

다리를 건너가면 내일 아침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마을의 주변에서 야영지를 찾고 싶다.

"마당에 텐트를 치면 좋을 것 같은데, 아무 집이나 불쑥 들어갈 수도 없고."

마을을 둘러보며 이왕이면 협곡 쪽의 집들이 좋겠다 싶어 골목길을 따라 무작정 들어간다.

협곡의 언덕 위, 전망이 좋은 곳에 작은 의자와 테이블이 만들어져 있다.

"와우, 죽이는데."

나무 전망대에 앉아 카툰강을 바라보다 마당이 있는 건너편 집의 아이들과 눈이 마주친다.

"하이!"

재잘거리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젊은 남자에게 나를 가리키고, 남자는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온다.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자도 될까요?"

번역기를 보여주니 남자는 흔쾌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땡큐!"

자전거를 세워두고 전망대에 앉아 잠시 쉬는 동안 남자는 누군가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창고처럼 생긴 곳의 주변에 텐트를 치려고 마당으로 들어가니 남자가 다가와 다른 곳에 텐트를 치라며 마당의 안쪽으로 안내한다.

마당의 안쪽, 나무로 만든 게르처럼 생긴 공간(바베큐를 구워 먹은 장소)의 뒤편을 가리키며 원하는 곳에 텐트를 치라는 안내를 하고 남자는 집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텐트를 치려고 준비를 하는데 남자가 다가와 머뭇거리며 핸드폰을 보여준다.

루블을 가지고 있는지 묻고, 200루블을 달라는 내용의 메시지다. 조금 당황했지만 차라리 그것이 속 편하겠다 생각이 든다.

"응. 알았어. 근데 너 이름이 뭐야?"

"게무진."

텐트를 치고 집 안을 둘러본다. 아이들의 놀이터, 그네, 바베큐장, 화단 등 아기자기한 손길이 느껴진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작은 집들도 몇 채가 들어서 있고, 감자를 기르는 텃밭과 염소들의 헛간도 들어서 있다.

대부분의 집들이 울타리 안쪽으로 감자를 기르는 텃밭이 있다.

창고처럼 보이는 곳에는 쇠붙이로 공예품 같은 것을 만들고 있다. 취미 생활인지 솜씨가 그럴듯하다.

게무진에게 500루블을 줬더니 잔돈이 없는지 차를 몰고 어딘가로 나간 후 300루블을 내어준다.

"이거 네가 만든 거야?"

"아버지가 만든 거야. 기념품."

게무진의 아내로 보이는 젊은 여자는 창고 옆 칸의 공간에서 무언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굴뚝으로 연기가 피어오른다.

"부엌이 외부에 따로 있는가?"

그녀에게 안쪽을 구경해도 되는지 물어보니 조금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반야."

창고의 한편은 사우나를 할 수 있는 반야로 사용하고 있다. 한 가족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 나무 의자 같은 것이 놓여있고 불을 지펴놓은 후라 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아이들의 나무 그네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게무진의 아버지가 무언가를 마시는 시늉을 하며 집을 가리켰지만 정중하게 사양을 한다.

"200루블 받아서 삐진 거 아냐. 오늘 조금 피곤해서 그래."

아직은 러시아 사람들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몽골의 사람들에 비해 편안하기는 하지만 상냥한 느낌은 없다.

아마도 외지인, 동양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산중의 마을이라 낯설어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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