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66일 / 맑음 
옹구데이-쉐발리노
갑작스럽게 더워진 날씨, 러시아의 첫 번째 도시 고르노 알타이스크를 향해 달려간다. 알타이 지역의 자연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이동거리
93Km
누적거리
11,361Km
이동시간
7시간 57분
누적시간
822시간

 
P256도로
 
P256도로
 
 
 
 
 
 
 
0Km / 0시간 00분
 
0Km / 0시간 00분
 
옹구데이
 
토푸차야
 
쉐발리노
 
 
455Km
 
 

・국가정보 
러시아, 모스크바
・여행경보 
-
・언어/통화 
러시아어, 루블(1루블=18.5원)
・예방접종 
폴리오, 말라리아, 콜레라
・유심칩 
30일40기가, 7,000원
・전력전압 
◦2구220
・비자정보 
무사증90일
・대사관 
・긴급연락처 
+7(495)783-2727

 
아침에 깨어나 옹구데이에서 하루를 더 머물지를 고민한다. 네트워크도 괜찮고, 무엇보다 조용하고 좋은 곳이다.

텐트 옆에 놓인 테이블에서 여행 자료를 정리하는 동안 젊은 부부의 남자가 차와 간식거리를 건네주고 간다.

어제와 오늘까지 너무나 많은 것을 챙겨주는 부부이다.

잠시 후 젊은 부부의 옆집에서 캠핑을 하던 아주머니가 보라색 그릇을 들고 찾아와 물고기가 들어있은 수프를 건네주고 돌아간다.

감자를 넣고 맑게 끓인 국물인데 제법 시원하다.

"이건 이렇게 먹는 거구나."

식사를 끝낸 후 젊은 여자가 다가와 인사를 하며 사진을 찍자고 한다.

"응, 너의 인스타그램을 봤어. 고마워."

사진을 찍고 그녀의 이름을 물어본다.

"다나. 러시아 풀 네임은 어려워."

"다나, 고마워. 음식은 너무 잘 먹었어."

그녀의 본명은 코소바 타티아나(Kosova Tatiana)인 것 같다. 5~6세 정도의 귀여운 딸을 갖은 젊은 부부이다.

여행을 잘 하라는 당부와 함께 그녀의 가족은 캠핑장을 떠나고, 캠핑장의 입구에서 그들을 배웅하며 손인사를 건넸다.

물고기 수프를 챙겨준 아주머니의 가족도 캠핑장을 떠나고, 나도 짐들을 챙겨 캠핑장을 빠져나온다.

자전거를 끌고 도로변으로 빠져나오자 옹구데이의 경계를 알리는 구조물이 있다.

"오늘은 어디까지 가 볼까?"

90km 거리에 쉐발리노라는 마을이 검색된다.

길게 이어지는 어제와 같은 도로와.

비슷한 느낌의 마을들을 지난다.

알타이 공화국의 나무집들은 매력적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오래된 나무집, 파스텔톤의 창문과 하얀 커튼 그리고 풀들이 자란 크고 작은 마당에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놓여있어 소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타티아나의 가족과 물고기 수프를 챙겨준 아주머니 덕분에 오전의 라이딩이 가볍다.

조금씩 기온이 오르고 출출함이 찾아들 때쯤.

도로변에 작은 음식점이 나온다.

"밥 먹고 가자."

식당은 깨끗하고 가족단위의 여행객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카운터에 글자로만 적혀있는 메뉴판이 난감하지만 이젠 이런 문제에 익숙하다.

몽골의 보츠처럼 보이는 넓적한 튀김 만두를 두 개 주문하고 커피와 수프를 달라고 한다.

메뉴를 모를 땐 메뉴판의 가장 첫 번째 메뉴를 선택하거나 적당한 가격의 첫 번째 메뉴를 선택한다.

뜨거운 물을 따라준 커피잔에 믹스커피를 타고, 수프가 나오는 동안 튀김 만두를 먹는다.

곧바로 나온 수프는 고기와 감자, 토마토 소스에 면이 들어있는 음식이었다. 토마토 향이 듬뿍 나는 달콤한 맛의 수프.

"모두 해서 203루블이면 훌륭한데."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길을 따라간다. 점심 식사 후의 도로는 계곡이 사라지고 산을 향해 오르는 기분이다.

"아..."

도로변의 언덕들에는 파스텔톤의 꽃들이 알록달록한 각자의 색으로 산 전체를 뒤덮고 있다.

자극적이지 않고 매력적이지 않지만, 흔한 들꽃들의 군락과 은은한 풀냄새가 온 마음을 사로잡는다.

"저기 한가운데 눕고 싶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과 색감이다.

길을 따라 펼쳐지는 들꽃들을 모습에 반해 페달링의 힘겨움을 잊는다.

"근데 왜 자꾸 올라가는 거지?"

이유 없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길이다.

구름이 가까워지고 주변의 산등성이가 눈높이에 맞춰지기 시작한다.

점심을 먹은 후 4시간 동안 부지런히 페달을 밟으며 오르막길을 올랐지만 쉐발리노까지의 거리가 줄어들지를 않는다.

"뭐지? 얼마나 올라온 거야? 1,600미터!!"

5시가 가까워져 오는데 쉐발리노까지 아직도 50km가 남아있다.

주변의 산등성이와 구름의 위치로 보아 정상에 다다른듯하고, 페달링이 무거워지며 골반과 허리가 당겨온다.

"저기가 끝인 것 같은데."

산의 정상처럼 보이는 하늘길을 확인하고 출발하려는 순간 뒷바퀴가 이상하다.

"아, 왜 또!"

뒷바퀴의 바람이 반쯤 남아 물컹거린다. 좁은 갓길에 최대한 안쪽으로 자전거를 눕히고 튜브를 탈착한다.

차량 통행의 소음과 바람 소리 탓에 펑크가 난 자리를 찾기가 힘들다. 작은 실구멍이라면 펌프질을 해가며 갈 수 있을까 싶어 튜브를 넣고 공기를 채워놓으니 이내 바람이 빠져버린다.

"에쒸."

다시 튜브를 탈착하고 바람이 빠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공기를 넣어 겨우 펑크가 난 자리를 찾는다.

"찾았다. 요놈아!"

펑크 수리를 하는 동안 건장한 남자가 다가와 도와줄 일이 없는지 묻는다. 자신도 자전거를 탄다는 남자에게 명함을 건네주니 혼자서 여행을 하냐며 웃는다.

"유 아 크레이지!"

"그래, 안 그래도 지금부터 미칠 것 같아."

예비 튜브도 없고 튜브패치도 떨어져간다. 지난번 사용한 튜브패치를 재활용해서 정비를 했지만 1차 시도 실패, 다시 로드용 패치를 재활용해서 겨우 정비를 마친다.

타이어를 4번이나 탈착하는 동안 한 시간 반이 지나버린다.

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개비를 달콤하고 태우고 마지막 업힐을 끝낸다.

"산 정상에 마을이 있는 거야? 변태스럽게."

산의 정상에는 마을이 아닌 기념품 가게들이 길게 들어서 있다.

"러시아는 이런 느낌이군."

몽골의 산 정상에는 어김없이 어붜가 쌓여져 있고, 러시아의 산 정상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들어선 모양새다.

기념탑 같은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바람막이를 걸쳐 입은 후 바로 출발을 한다. 7시가 가까워지고 있었고 쉐발리노까지 여전히 40km 가까이 남아있다.

산의 정상에서 시작되는 내리막의 경사로, 브레이크를 풀고 시원하게 내달렸다. 적당히 맞바람이 불며 속도를 제어해 주었고, 하루 종일 힘겹게 오른 업힐에 대한 보상이다.

그리고 이틀 전 우중 라이딩 이후 브레이크의 제동력은 거의 느슨해져 있었던 터이다.

"달릴 거야!"

순식간에 10km의 거리가 삭제되고 급경사는 끝이 난다.

"조금 아쉬운데."

나지막하게 떨어지는 내리막길을 오랜만에 언더바를 잡고 신나게 질주한다.

나에게 있어 자전거 여행의 즐거움은 새로운 것들을 보고 경험하는 것과 세계의 도로를 마음껏 달려보는 것이다.

몽골 여행이 답답하고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람과 도로의 환경으로 경쾌한 라이딩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험한 오지를 자전거로 탐험하며 경이로운 자연을 마주하는 것보다 다양한 길과 풍경을 지나치며 페달을 밟아가는 라이딩이 더 즐겁다. 지금의 여행은 그렇다.

빠르게 알타이의 풍경들을 지나치며, 마을의 사람들과 바이커 그리고 손인사를 하는 운전자들과 인사를 하며 달려간다.

산과 들에 피어오른 이름 모를 들꽃들을 바라보며 내달리는 라이딩의 즐거움이 너무나 좋다.

비구름이 내려앉은 쉐발리노를 향해 달려간다.

도로변의 산에는 눈꽃이 내려앉은 듯 하얀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4시간 동안 올라갔던 30km의 오르막 그리고 쉐발리노까지 30km의 내리막을 한 시간 만에 도착한다.

도로의 아래로 쉐발리노의 풍경이 펼쳐진다.

마을 뒤편의 산을 배경으로 강을 따라 이어지는 쉐발리노, 예쁘고 평화롭다.

하루 종일 길을 안내한 다양한 들꽃들.

길을 따라 작은 언덕을 넘어가니.

더 큰 마을이 펼쳐진다. 쉐발리노는 지금까지 지나쳤던 마을들에 비해 굉장히 넓고 큰 느낌이다.

"일단은 슈퍼를 찾아 캠핑 음식을 마련하자."

구글맵을 검색하여 도로변에 있는 슈퍼를 확인했지만 찾을 수가 없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 슈퍼를 찾기 위해 마을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첫 번째 도착한 슈퍼,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자 젊은 여자가 황급하게 문을 닫으며 영업이 끝났다는 제스처를 한다.

"아니, 뭘 이리 야박하게."

다시 길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이동한다. 아직 해가 남아있는 시간임에도 거리는 너무나 한산하고 적막하다.

관공서처럼 보이는 건물 주변에서 슈퍼를 발견하고 들어간다.

동양인의 방문에 어리둥절한 주인 여자에게 아침부터 연습한 러시아 인사를 건네본다.

"즈드랏스 뿌이쩨."

여전히 어색한 행동의 여주인 웃음이 없다. 빵과 요거트, 음료 등을 사들고 계산을 하니 가게 안에 있던 사람에게 무언가를 묻고는 그제서야 '땡큐'라 말하며 엷은 미소를 짓는다.

비가 내릴 듯 흐려지는 날씨에 해가 떨어지고, 서둘러 마을을 벗어나 야영을 할 장소를 찾아야 한다.

오래된 고목의 가로수 길을 끝으로 쉐발리노를 벗어난다.

"어디가 좋을까? 이왕이면 강가의 들꽃들 속이면 좋겠는데."

야영지를 찾으며 도로를 따라가는 순간 통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 네트워크!"

핸드폰을 열어보니 데이터의 안테나가 하나가 남아있다. 온라인을 열어 통신이 되는지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본다.

"저기가 좋겠다."

하천 방면 언덕의 수풀 속을 헤집고 들어가 적당한 자리를 잡고,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져 서둘러 텐트를 치고 저녁 준비를 한다.

"좋네. 들꽃들 한가운데."

타티아나 가족이 챙겨준 음식으로 어제 먹지 못했던 닭고기 통조림을 꺼낸다.

"일단은."

"끓이자."

슈퍼에서 사온 빵을.

요거트와 함께.

닭고기 수프에 찍어서 저녁을 해결한다.

우리나라의 닭고기 제품보다는 못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저녁이다.

"엊그제가 초복이던데, 러시아 닭을 먹어보네."

조용하게 텐트를 두드리던 빗방울이 멈추고, 꽃과 풀내음은 더욱 짙어진다.

"산을 오르는 것이 힘들었지만 괜찮은 하루였어."

계곡의 물소리, 들꽃들의 풀내음.. 그리고 깊이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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